출판사: 시크노블

출간일: 2019.01.11

분량: 본편 3권 + 외전 1권

​​

 

point 1 책갈피

"이주."

그리 딱딱하지 않은 효운의 목소리에 이주의 손이 조금 느슨해졌다. 그러나 효운의 입에서 이어지는 물음은 날을 숨기지 않은 칼과 같았다.

"네가 조금 미쳐 있다는 것을 너도 알고 있지."

굳게 다물렸던 이주의 입이 조금 벌어지더니 곧장 대답했다.

"예."

무서우리만치 서슴없고 선선한 대답이었다. 왜 아니겠냐는, 약간의 웃음기도 섞인 목소리였다. 이리 미쳐 있는데 스스로 모를 리가 있는가. 자신의 광증을 서슴없이 인정하는 이주의 목소리에 웃음이 터져 버린 효운은 잡혀 있던 팔 한쪽을 들어 그의 곧은 턱뼈를 길게 쓸어 올렸다.

"오해받는 건 익숙한 일이지만 이런 오해는 또 처음이군. 내가 너를 미워할 일은 없다고 분명 말했건만."

확실히 안심시켜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내 의지로 너를 떠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그리 확실하게 말했는데 참 어지간히도 말을 듣지 않는 아이였다. 턱 끝에서 떨어진 효운의 손이 이주의 목을 훑어 내리곤 가슴 한가운데에 닿았다.

"몇 번을 말해야 여기에 닿는 거지?"

숨을 멈추고 있던 이주의 목 너머로 꿀꺽 소리가 났다.

"혹 네가 정말 미쳤다 해도, 앞으로 더욱 미쳐 갈 거라고 해도."

"...... 효운 님."

"다신 날지 못하게 내 날개를 자른다고 해도 내가 너를 미워할 일은 없을 것이다."

이주가 고개를 들었다. 불안함과 조급함, 그리고 죄스러움으로 물들어 있던 눈동자의 테두리 속으로 밤 하늘 별이 우수수 쏟아져 들어왔다.

"너를 물어 와 키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이미 그리되어 있었어."

point 2 줄거리

기: 푸른 깃털의 흑매를 신수로 모시는 교국, 어느 날 신수가 태자를 물고 사라져 버렸다. 신수 효운은, 무인 영손과 산속을 떠돌며 태자 이주를 키웠다. 황손 중 등에 매흔을 가진 자만이 황제가 될 수 있는 신수에 나라, 이주는 가장 완벽한 매흔을 가지고 태어난 4번째 태자였다. 외숙부 좌상을 등에 업은 둘째 태자 이견은, 황태자 이현에게 누명을 씌워 폐위시키고, 황제를 중독시켜 병들게 했다. 그가 이주를 쫓고 있었던 것이다.

승: 신수는 황가와 이어져 있었고, 황족이 죽거나 다치면 신수도 신력을 잃고 병들었다. 이견이 횡포를 부린 22년간, 효운의 상태도 나날이 악화되어 갔다. 그러다 황제의 죽음이 다가오자, 이견은 노골적으로 이를 드러내, 황위 계승권도 없는 황자까지 죽인다. 신수의 신력을 떨어트리기 위해서, 그가 보호하는 이주를 찾기 위해서 말이다. 원래 황제의 무인이었던 영손은 이주와 효운을 지키기 위해, 폭죽으로 위치를 노출시켜 우상과 환국의 신수 미송을 부른다.

전: 신력은 바닥나고 생명이 위태로웠지만 효운은 이주를, 이주는 효운을 서로 놓지 않았다. 이견의 추적으로부터 이주를 보호하고 효운을 살리기 위해, 우상과 미송은 둘을 떼어 놓아야 했다. 결국, 신수의 무기를 써서 효운을 해치고, 정신을 잃은 효운을 이주에게 빼앗은 미송은 효운을 데리고 선운산으로 사라진다. 한편, 황제의 붕어와 동시에, 우상과 첫째 태자 이현은 이견과 죄상을 낱낱이 밝혀 퇴출시킨다. 이견은 망국 환국의 잔당을 모아 교국을 공격한다.

결: 이들로 인해 교국은 크고 작은 내전에 시달렸고, 이주는 그 선봉에 서서 승리를 거두며 백성의 신임을 받았다. 그날 이후 4년, 이주는 드디어 황제 즉위식을 올린다. 그때, 이견은 또 교국을 공격하고, 이주는 검은 새의 무리를 이끌고 나타난 효운과 재회한다. 효운은 갓난 이주를 데리고 궁을 떠나야 했던 이유를 알려준다. 어느덧 완연한 성인이 된 이주에게, 효운은 쓰~윽~한다. 이견 무리를 발본색원한 뒤, 이주는 이현에게 양위하고 효원과 산속으로 들어간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비빔밥 소설(이것저것 섞였다 + 맛있다.)

연휴 마지막 날이네요. 흑... 그래도 대체 공휴일에 감사드립니다.(꾸벅) 책은 '또' 여름휴가의 동반자였죠. 불안한 것은, '또' 추석의 동반자도 될 거 같다는... 취미가 여행인데, 취미를 몇 년간 못하면 그것도 취미라고 할 수 없겠죠. 여권은 갱신하자마자 '보관 중'이고, 곧 쓰겠지 싶어 환전 안한 외폐들은 파우치 안에 쿰쿰한 냄새를 풍기고 있네요. 3배 정도 증가한 독서량과 2차 대유행 전후로 시작한 블로그 정도가, 그나마 위로라면 위로예요. ㅠ.ㅜ

저의 마지막 동반자, 주효록입니다. 주효록은 출판 당시부터 눈여겨봤지만 손이 가진 않았어요. 바로, 리뷰 때문에요. 주효록의 호불호 리뷰는 대게 필력과 설정이 좋거나 지루하다고 나뉘더라고요. 제 당시 느낌은, 배경과 문체에 엄청 힘이 들어가서 잘 쓴 것 같긴 한데, 역키잡이라는 자극적 소재와 호감형 캐릭터에도 불구하고 몰입감이 낮은 작품! 여유로울 때 읽으면 풍성하지만, 지쳤을 때 읽으면 더 지치게 하는 작품! 이었어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주효록... (쌍따봉) 물론, 쎅턴이 약해 5점을 주진 못했지만, 색이 분명한 작품이었습니다. 비슷한 클리셰 중에 제일 재밌는 작품이 아니라, 특정 키워드로 분류하긴 애매하지만 매력적인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왜 리뷰들이 그렇게 쓰였는지도 충분히 공감하겠더라고요. 틀을 살짝 비껴간 작품은, 기대한 바가 명확한 독자에게는 혹평의 대상이 되고, 그렇지 않은 독자에게는 유레카가 되니까요. 호불호는 나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초반 - 잔잔물: 긴 세월을 산 신수도 아이를 키우는 건 처음이었죠. 다행히 영손이 있었지만, 그래도 철렁하는 일들이 연속인 서툰 양육자였어요. 초반은 이런 에피소드들로 채워져있습니다. 가령, 효운의 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이주를 보며 어쩔 줄 모르는 동안, 이주가 앞으로 넘어져 이마에 멍이 들고, 효운은 머리를 짧게 자릅니다. 또, 효운은 따뜻한 방을 이주와 영손에게 내주고 자신은 냉방을 썼는데, 이를 몰랐던 이주가 시모방만 불 빼는 악덕 며느리마냥 영손을 세모나게 쳐다보기도 하죠. 산속에 사는 순박한 남자 셋의, 잔잔한 일상물이라고 보시면 될 듯해요.

2) 중반- 애절물&시리어스물: 평화로운 일상은 황제가 실권하고, 이견이 본격적 사냥에 나서면서 박살 납니다. 이견은 황제가 되려는 행보를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첫째 이현은 이견의 모함에 억울하게 쫓겨나고, 셋째 이운은 이견이 무서워 도망갈 준비를 하죠. 이견은 이제 성군의 매흔을 가졌다는, 실종된 동생 이주를 사냥하러 나섭니다. 이를 위해, 경쟁자조차 되지 못한 막내에게 독이 든 탕약을 내리죠. 막내는 섧게 울며 독을 마셔요.

여기서부터 일반적인 궁중 암투물과 좀 다른데요, 보통은 이견 vs 반이견으로 나뉘잖아요. 하지만, 이주와 효운은 '황제'에 조금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우상과 이현은 '황제'가 될 이주를 이견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효운이 이견을 숨겼다고 믿었죠. 하지만, 20년을 약속했던 효운은 22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어요. 효운은 미친개 잡는 사냥개로 이주를 쓰는 게 싫었고, 이주 역시 관심사라곤 오로지 효운 하나였으니까요. 둘은, 그들로부터도 도망칩니다.

궁에 돌아간 뒤에도 이주는 마찬가지였어요. 반면, 옹립할 태자도 있고 황제도 서거했으니, 우상과 이현은 굴욕의 시간을 견디며 모은 증거들로 이견을 단죄합니다. 무소 불이의 권력에 취해 오만방자였던 이견은 손쉽게 쓸려 나가죠. 이 과정이 빈약하긴 하지만, 대안도 없고 반역죄로 역공 당할 위험도 큰 상황! 그때 최선은 숨죽여 '준비하는 것' 뿐이라는 점에서 설득력 있었어요. 물론, 이때도 이주는 노~관심으로 관여하지 않습니다.

3) 후반-달달물: 즉위식 날, 효운과 이주는 재회합니다. 또, 여기서부터 일반적인 역키잡과 다릅니다. 역키잡이란, 음흉한 어린아이가 '아저씨는 내 거야!' 혹은 다정한 아저씨가 '내가 어떻게 너와!!!'라며 갈등하게 되고, 곧 피폐와 집착, 광기에 휩싸이게 되죠. 하지만, 효운과 이주의 관계는 늘~ 온유합니다. 이주가 효운을 너무 꽉 껴안아, 허리에 멍이 하나 들긴 해요. 이주는 효운에게 집착하지만, 광기는 밖에다 부리고, 이조차 효운이 무마시키기 일쑤죠. 결정적인 것은! 효운이 먼저 이주를 좋아했었다는 것!!! 효운은 이주에게 '이제 그럴 마음이 사라진 줄 알았다.'며 은근한 유혹을 해요. 매 아닌 여운 줄 알았다는!

4) 외전-오~예!물: 황제위에 오른 지 며칠 되지도 않았지만, 이주는 양위의 의사를 밝힙니다. 사실, 이견의 모략만 아니었다면 황제가 되었을 첫째 이현은, 이주만큼 매흔이 뚜렷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황제가 되고 싶었고 자질도 충분했죠. 아쉽긴 했지만, 이주를 황제로 올리는 일에 사심을 부리지도 않았어요. 즉위 후 3년 뒤, 이주는 효운과 사랑을 확인한 그 산속 너와집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해요. 드디어, 섹턴다운 섹턴이 등장하지만... 솔직히 많이 약합니다. 섹턴이 점잖다! 그래도, 없으면 서운할 뻔했다! 정도였어요.

전체적으로 '멋진 여자 캐릭터'들이 많은 것도 좋았어요. 황제가 된 첫째 이현은 여자예요. 이주의 어머니인 모영도 왈패였지만, 현명하고 사랑받는 황후였죠. 신수가 없기에 황족들이 신력을 가진 나라, 누국의 공주답게, 이주의 미래를 예지하고 효운에게 부탁합니다. '제 아들을 살려 주세요!'가 아니라, '신수님의 권태에 이주가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유언을 남기면서요. 의리파 미송도 빠질 수 없죠. 환국이 망한 뒤, 미송은 선운산으로 가지 않고 이견에게 굴욕을 당하면서도 교국에 남습니다. 미송은 생존한 환국의 황족 서단을 걱정했으니까요. 물론 실수도 하지만, 미송은 서단의 유해를 수습해 줘요.

주효록에 익사이팅은 없습니다. 자극적인 사건들은 '묘사'가 아니라 옛이야기로 전달되거나 짧은 서사로 요약되죠. 공과 수가 편하게 살지도 않습니다. 달달하고 잔잔하기에는, 많이 다치고, 도망치고, 울고, 속앓이해요. 참... 어떻다고 줄여 말하긴 힘든데, 생각해 보면 그게 주효록의 매력인 것 같아요. 그래서, 주효록의 장르는 주효록인 것으로...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

출판사: 연필

출간일: 2020.06.26

분량: 본편 2권

​​

 

point 1 책갈피

"진짜 맞으면서 운동했어요? 이제는 그런 거 없어진 줄 알았는데."

사진 보는 도중 프레임에 걸려 있는 선배나 코치가 보일 때마다 가리키며 '어, 이 새끼도 나 존나 많이 팼는데.' 같은 소리를 하기에 이경은 좀 놀라서 물었다. 선호가 어깨를 으쓱였다.

"없어졌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거지. 나 초딩 때도 박지성이 막 자기 선배들한테 이유도 없이 맨날 맞았던 거 자서전에 써서 운동부 부모들이 난리 나고 그랬었어. 근데 눈치 보고 고치는 사람은 소수고, 대부분은 그냥 계속하던 대로 하니까. 위에서 한번 싹 잡아 족쳐야 되는 건데."

"얘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

이경이 사진 속 조그만 선호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해가 뜨거워서 그런지 인상을 한껏 찡그리고 팔짱을 낀 채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는 차선호. 이경은 언젠가 선호가 얘기했던 것들을 떠올린다.

그냥, 형에 비해 좀 못한 애 취급을 받았단 거나 생긴 거 때문에 얼마나 구박받고 산 줄 아냐며 하소연했던 거. 그런 걸 생각하다 제 옆에 앉아 남의 어깨 위에 고개를 걸쳐 놓고 있는 차선호의 뺨을 살살 쓰다듬었다. 앨범에 박혀 있던 선호의 시선이 느리게 올라와 이경을 향했다.

"예쁨 좀 받고 살지 그랬어요."

그게 사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닌 건 알지만, 그래도 말한다. 좀 속상하니까. 선호가 한쪽 입술 끝을 비스듬히 올렸다.

"네가 좀 일찍 나타나지 그랬어."

어릴 때와 똑같은 얼굴로 웃으면서 말해 놓고는 한 박자 늦게 좀 머쓱한 듯 뺨을 긁적이며 눈길을 돌려 버린다. 나 보고 오글거리는 말 잘한다며 뭐라고 하더니. 이경의 어깨가 작게 들썩거렸다.

"뭘 웃어."

선호가 검지로 이경의 입술을 툭 쳤고, 그게 또 약속된 신호인 것처럼 다시 입술을 맞댔다. 뭘 했다고 이렇게 좋은가, 차선호가 고등학생 때까지 누워 자던 침대 위에서 혀를 얽으면서 생각한다. 이렇게까지 좋을 일인가? 연애가 원래 이랬나?

point 2 줄거리

기: 입대 전 가끔 인사나 나누던 선배 차선호, 하지만 복학 후 수업이 겹치면서 친분이 쌓였고, 얼떨결에 자취방을 빼게 된 윤이경의 새로운 집주인이 되었다. 월 50의 좁은 방에서, 월 40의 쾌적한 오피스텔에 살게 된 이경은 차선호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차선호의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참아줬다. 매주 다른 남자와 거실에서 질펀하게 섹스를 해도, 혐오의 시선이나 가식적 태도가 없는 이경에게 선호 역시 호감을 느낀다.

승: 선호는 소꿉친구 배우 강태주를 오랫동안 짝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태주는 선호와 냉정하게 선을 긋고, 친구이길 강요했다. 선호는 태주에 대한 마음을 죽이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선호와 친해진 이경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호는 매번 상대를 바꾸기가 번거롭다며, 이경에게 섹스 파트너를 제안한다. 이경은 어이없으면서도 한 번의 시도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로 한다. 둘은 술을 마시고 첫 섹스를 한다.

전: 몸에 상성이 좋았던 선호와 이경은, 때때로 서로의 파트너가 되어 준다. 이경은 여전히 세심히 집안일을 챙기고, 선호를 돌봤다. 선호 역시 이경에게 여전히 경제적으로 후한 선배였다. 먼저 마음이 바뀐 건 이경이었다. 이경은 선호의 가정환경과 운동선수 시절 이야기, 특히 태주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알아 갈수록 선호가 좋아졌다. 이경은 태주에게 상처 입은 선호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친절에 굶주린 선호에게 다정한 두 번째 사람, 선호는 흔들린다.

결: 이경은 선호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한편, 태주는 이경과 부쩍 가까워진 선호를 보며 불안해하다, 결국 선호에게 고백한다. 이경은 태주의 등장으로, 자신이 모르는 두 사람만의 세계를 실감하고 역시 불안해하기 시작한다. 선호는 결단의 시간이 찾아왔음을 직감한다. 선호는 이경에게 시간을 달라고 하고, 태주와는 관계를 친구로 정리한다. 선호는 이경에게 찾아가 꽃다발을 건넨다. 선호와 이경은 낭만적 연애를 시작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낭만을 위하여

낭만... '현실에 매이지 않은' 감상적이고 이상적인 태도나 심리, 영어로는 roman! 그래서, 로맨스 소설은 판타지인가 봐요. 현실에 얽매이지 않아서 말이죠. 현실에서 묶이면 묶일수록 사람들은 낭만과 멀어집니다. 그리하여 이 시대를 '몰낭만적 시대'라고 부를 수 있을 거예요. 소설 속 선호는 '낭만'을 꿈꾼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경이 아는 한, 선호는 몰낭만적 시대에, 가장 몰낭만적 연애를 하는 사람이었죠.

왜냐면, 선호는 몰낭만적 환경에서 살고 있었거든요. 선호의 삶은 건조했지만, 어찌 보면 평범했습니다. 딱히 선호의 부모님이 선호를 학대한 것도, 방치한 것도 아니고, 썩 좋아하지 않으셨지만, 어쨌든 선호는 하고 싶었던 축구도 했었죠. 대학 입학 이후에는 재정적 지원도 빵빵하게 받아요. 다만, 선호가 못 받은 것은 '마음'이었고, 그래서 선호는 겪어보지 못한 낭만을 갈구하게 됩니다. 문제는 '낭만'이 뭔지 모른다는 거죠.

저는 언제나, 효율적으로 시간관리하는 밀도 높은 생활을 하고 싶어!라고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 이유는, 한 번도 효율적으로 시간관리를 하는 밀도 높은 생활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죠. 늘 정신없이 바쁘고, 정신을 차리며 계절이 바뀌어 있고, 연말에는 허무감에 시달립니다.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바라지만,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어요. 이때는 뫼비우스 띠를 끊어주는, 띠 밖에 도우미가 필요합니다. 저는 없었고, 선호는 있었죠. 바로 이경말입니다.

선호가 태주를 7년간 짝사랑했던 계기는, 어이없게도 '낙지'였습니다. 선호와 태주의 기호는 상관없이 부모님은 큰 형이 좋아하는 낙지를 사와요. 태주는 선호가 곤란하지 않도록 낙지를 맛있고 감사하게 먹고, 부모님의 눈을 피해 살며시 뱉어요. 그건 선호가 경험한 첫 번째 '낭만'이었어요. 그리고, 대학생이 되고서야 두 번째 '낭만'이 찾아옵니다. 시키지 않은 집 안일을 하는 이경의 모습에서요.

이경은 친해진지 얼마 안 된 선배의 도움으로, 곤란 없이 적은 돈에 좋은 집에서 살게 되었으니,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선호는 굳이 요청하지도 할 필요도 없는 일을, 자신을 위해 스스로 나서서 해주는 이경의 모습이 생경했어요. 게다가, 난잡한 자신의 섹스 라이프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방 값을 반으로 깎아줬지만, 이경은 원래의 금액으로 입금해요. 자주 밥을 사주는 선배에게 미안한 마음에서였죠. 이경이 아무렇지 않게 베푸는 친절이, 선호에게 낭만으로 다가옵니다.

사실, 이경에게 섹파를 제안한 것은 태주 때문이었어요. 배우 태주의 소꿉친구가, 문란한 성생활을 한다는 것이 이슈가 될까 봐 무서웠거든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단순한 룸메이트 이상으로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이경과, 좀 더 특별한 관계가 되고 싶기도 했죠. 이경 역시 벽 넘어 소리로만 듣던, 그 실체를 경험해 보고 싶은 호기심이 있었어요. 그리고 몸정에서 맘정으로 먼저 바뀐 건, 다정한 이경씨였어요.

이경은 할 말을 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상처 주지 않는, 원만하고 사교적인 성격을 소유자예요. 게다가 연애 경험도 몇 번 있었죠. 하지만, 선호는 운동하느라, 생긴 게 사나워서, 아웃팅을 경계해서 등등등 언변이 좋지 못하고, 연애 경험도 없었어요. 당연히 둘의 관계는, 이경이 보듬어 주고, 선호가 기대오는 형태로 발전합니다. 이경은, 아직 태주를 좋아하지만 안 좋아해 보도록 노력하겠다는 선호와 사귀기 시작해요. 투투를 챙기고 싶다는 선호에게 선물을 챙기는 것도, 이경의 일이었죠.

'몰낭만 시대의 낭만적 연애'는 일상물입니다. 중간에 태주가 사실은 선호를 좋아했었다!는 위기가 있긴 하지만, 큰 영향 없이 지나가요. 하지만, 선호와 이경의 일상은 이가 썩을 정도로 달달합니다. 덩치 큰 선호는 점점 대형견수가 되죠. 그래서 저는 '낭만적 연애'라기보다는 '낭만적 일상'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계산 없는 순수함으로 매일 사랑하며 살 수 있다는 것! 정말 낭만을 위하여네요.

※ 동일 작가의 다른 소설 리뷰

 

2020.10.31 - [BL 소설] - [현대물/잔잔물/힐링물] 당신의 서정적인 연애를 위하여 - 김모래

 

[현대물/잔잔물/힐링물] 당신의 서정적인 연애를 위하여 - 김모래

출판사: 시크노블 출간일: 2016.07.15 분량: 본편 2권 ​ ​ ​ ​ ​ ​ point 1 책갈피 ​ ​ 어쩌면...... ​ "그러니까 같이 가요." ​ 꿈결같은 목소리 하나가 맴돈다. ​ '사랑이라면, 네가 알 거야.'

b-garden.tistory.com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

출판사: 비욘드

출간일: 2018.01.19

분량: 본편 3권 + 외전 2권

​​

 

point 1 책갈피

"씨발 니가 왜 울어, 지금 울고 싶은 건 나인데."

"못 본 사이에 존나, 임포라도 됐냐고, 멀쩡하게 서던 게 왜 요즘은 잠잠한데?"

"야 그건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애새끼같이 보이냐? 내가 왜 애새끼야, 니가 늙은 거지!"

화가 나서 문장도 제대로 못 만들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토해내며 눈물을 뚝뚝 떨구고 있었다. 심지어는 자기가 말해 놓고 자기가 반박하며 북 치고 장구 치고 희권의 빰도 쳤다.

희권이 손가락으로 눈가를 닦아 주려고 해도 아랑곳 않고 콧물까지 찔찔거리며 서러움을 토하던 강진은 희권이 무슨 변명을 하려고 입을 열기만 하면 입술을 부닥쳤다.

"일단 진정해 봐, 니가 생각하는 그 이유가 다가 아니라니까 그러네."

눈물 때문에 축축한 입맞춤을 연달아 하다 보니 꼭 강아지 코에 뽀뽀를 한 기분이 들어 희권이 인상을 쓰고 강진을 말리다가 결국 못 참고 강진의 뒤통수를 잡아 누르고 입을 맞췄다.

눈물의 짠맛이 나는 입술을 빨다가 울어서 더 열이 오른 입안을 훑었다. 코를 옆으로 틀어 강진의 혀를 옭아매고 더 깊게 입을 맞추던 희권은 강진이 킁킁거릴 때마다 숨을 쉴 수 있게 쉬어 갔다.

눈물이 좀 멈추고 강진이 킁킁거리는 소리도 줄어들 때가 되어서야 입술을 뗀 희권이 욕을 내뱉으며 신경질적으로 시동을 걸자 옆에서 강진이 딸꾹질을 하며 웅얼거렸다.

"진짜 하고 싶은 게 맞으면, 여기서 하면 되잖아. 이 차 씨발 쓸데없이 시트 존나 잘 젖혀지더만."

아직 아무것도 시작 안 했는데 다 짓무른 눈가를 손등으로 세게 문지르며 약간 부은 입술로 툴툴거리는 강진을 보지 않고 희권이 차를 움직였다.

"나 좁은 거 싫어해."

point 2 줄거리

기: 아이돌 '원사이드'의 비주얼 담당 이강진, 28세 데뷔 7년 차, 루머가 많다. 거친 말투, 까칠한 성격, 속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투명함 때문이다. 국민배우 윤희권, 42세 연예계의 잔뼈가 굵은 제벌 3세, 엔터테인먼트 대주주, 그리고 이혼남, 역시 루머가 많다. 거친 말투, 까칠한 성격, 권위적 태도 때문이다. 둘은 영화<이면> 투톱 주연으로 발탁된다. 과거 한 시사회에서 강진을 보고 팬이 된 희권은, 강진을 놀리는 재미에 빠진다. 물론, 강진 역시 당하지만은 않는다.

승: 희권은 은근히 강진을 챙기지만, 강진은 계속 경계를 풀지 않았다. 사실, 강진은 같은 팀 멤버 태우에게 협박 당하며, 호모포비아 대현을 짝사랑하며, 사생 스토커에게 시달리며, 팬들에게 실력 없다고 비난받으며, 친구 하나 없이 힘들게 살고 있었다. 그러다 <이면>의 조연 성민근에게 태우와 같은 이유로 협박 당한다. 이 모습을 본 윤희권은 강진을 취조하고, 눈치 백단인 희권은 백지 같은 강진의 상황을 삽시간에, 그리고 정확하게 파악한다.

전: 태우와 대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진은 희권과 사귀는 척을 하기로 한다.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가면서, 희권은 입만 거칠고 마음은 약해 홀로 폭탄을 떠 앉고 사는 강진에게 '진짜로' 마음이 쓰이기 시작한다. 강진 역시 든든하고 유능한 보호자(?) 희권을 진심으로 의지하게 된다. 한편, 강진은 성민근이 마약 혐의로 체포되자 함께 휘말리고, 때마침 성민근의 복수 계획까지 알게 되자, 희권에게 피해 갈 것이 두려워 그를 피한다.

결: 희권은 강진을 둘러싼 문제를 해결하려 고군분투하고, 한차례 홍역을 치른 강진과 희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하지만, 연이어 터진 사건으로 곧 위기를 맡는다. 희권의 이혼 사유에 대한 제보가 터지고, 강진의 스토커를 찾은 희권이 그를 폭행한다. 동시에, 성민근은 강진에게 마약을 주사하고 스폰서에게 넘기려 하다, 희권에 의해 미수로 끝난다. 하지만, 두 사람은 끝내 진실을 밝혀내고, 가해자에게 그들 식의 응당한 처분을 내린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대현

연예계물이 보고 싶었습니다. 오글오글, 꼴갑꼴갑, 꽁냥꽁냥한 걸로 말이죠. 마침 리디북스에서 대체공X휴일수 할인행사를 하고 있어 뒤적뒤적 거리는데, 연예계물이 2편 있더라고요. 한편은 대배우와 아이돌 출신 하룻강아지의 티키타카 개그물, 다른 한편은 대배우와 매니저의 시리어스 버스물이었어요. 저는 저의 니즈에 맞게, 전자를 골랐죠. 하지만... 형사도, 탐정도, 의문의 살인사건도 발생하지 않지만, 이건 분명히 추리물이었습니다. 반전을 거듭하는...

'오프 더 레코드'는 제목처럼, 화려한 연예계 이면에 암암리 행해지는 스폰서 브로커, 사생 테러, 성 상납, 마약, 거액의 위약금과 폭력적 추심, 계약 결혼, 언론 플레이 등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밝고 맑은 소재는 아니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프 더 레코드'는 개그 코드를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작위적인 오버액션이 아니라, 욕쟁이 공수의 입담 때문이에요. 어느 리뷰어는 정진이 28살이 아니라 18살 같다고 하셨는데, 28살에 떼쟁이를 적잖게 봐 온 저로서는, 꾀나 현실감 있었어요.

정진은 매우 잘 생겼습니다. 그래서 길거리 캐스팅되고, 곧 데뷔를 하죠. '원 사이드'는 연습생 시절을 거치며 훈련받은 멤버들로 만든 그룹인데, 비주얼이 부족하다는 사장님의 판단에 급하게 정진이 합류된 거였어요. 여기에 정진의 잘못은 없습니다. 하지만, 소설의 얽히고 설킨 혐오는, 바로 이 시점부터 시작돼요. 대현에게 '원 사이드'는 무명 작곡가의 곡을 사고, 스폰서에게 성 상납을 하며 브로커 역할까지하더라도, 반드시 이루어야 할 절대적 목표였기 때문이죠.

그런 대현에게 정진은 미운 오리였어요. 대현은 모든 감정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정진의 마음을 알고도 노골적으로 냉대하죠. 정진 앞에서 호모포비아라며, 호모들에 대한 비난도 서슴지 않아요. 그러다, 결정적 사건이 터집니다. 몸이 헐도록 성 상납을 해도 얻을 수 없었던 스폰서가, 정진을 원하죠. 또 다른 브로커 성민근은 정진을 그 스폰서에게 바치려 하고, 대현은 분노를 느껴요. 아무것도 안 하고 다 가진 정진... 그 정진을 몰락시키려고 합니다.

정진은 애당초 대현 이외에 소속사 사람들에게도 그다지 인정받지 못했어요. 노래도 춤도 못 하면서 얼굴 하나로 데뷔했고, 연습생 기간이 없었으니 유대감도 없었죠. 게다가 입은 걸걸해서, 쉽게 오해를 사고 루머에 시달렸어요. 하지만, 정진은 배우로서 돈을 벌어주는 오리였기에, 재계약을 하면서도 그냥 방치해요. 정진이 친구가 있었다면 부당함을 알았겠지만, 갑자기 데뷔한 정진에게 연예계 안이나 밖에나 친구가 있을 리가 없었죠.

대현의 분노와 소속사의 무관심 속에서 정진은 고립됩니다. 대현은 같은 그룹 멤버 태우에게 마약과 돈을 주겠다며, 정진에게 마약을 먹이고 섹스 사진을 찍어오라고 합니다. 이걸로 정진을 묻어버리려 하지만, 때마침 터진 같은 그룹 멤버의 대형 사건으로 적기를 놓쳐버립니다. 태우는 약속된 마약과 돈을 받지 못한 대신, 이 사진으로 정진에게 성 상납을 받아요. 호모라는게 밝혀져 대현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았던 정진은, 태우와 끔찍한 관계를 거부하지 못하죠.

대현은 스토커도 고용합니다. 무려 정진의 전 남자친구이자 전 과외 선생님! 처음이자 마지막 애인이었어요. 왜냐면, 그 이후 정진은 연애에 치를 떨게 됐으니까요. 명문대 공대 출신인 그의 전 남자친구는, 머리도 나쁜 주제에 혜성처럼 데뷔해 인기를 얻고 있는 정진이 못마땅했어요. 너 따위가!!! 하고 있을 때 대현이 손을 내밀고, 온갖 난잡한 짓거리부터 불법 도청과 촬영, 심지어 고양이 시체를 정진의 침대 위에 두기도 해요. 나중엔 희권에게 까지 손을 뻗치죠.

데뷔했단 죄로, 정진은 눈 먼 혐오의 대상이 됩니다. 그런 정진의 인생에 희권이 나타나요. '오프 더 레코드'가 할리킹이 아닌 이유는, 희권이 재벌3세에 머리 좋은 대배우라도, 희권 역시 연예인이기 때문이에요. 그 한계를 넘을 수 없었죠. 하지만, 일찍히 연예계의 더러운 일면에 직면하고 아끼던 동생의 자살까지 봐야 했기에, 희권은 더 예민하게 주위를 살피며 힘을 키워왔어요. 이미 '경험'해 봤다. 정진과 희권의 결정적 차이는 그곳에서부터 비롯됩니다.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 진실이 무엇인지, 심지어 범죄인지 아닌지, 누가 죽거나 다치거나,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게 얼마나 자극적이고, 구미에 맞게 각색할 수 있는지, 언제 터트릴 때 가장 효과적인지가 중요했어요. 그래서, 사파리 같은 연예계에 오랫동안 살아남은 이들은 모두 이슈 전문가들입니다. 희생자는 이슈 전문가라고 착각한 장기말이거나, 이슈 전문가에게 버림 받은 장기말들 뿐이었죠. 물론, 이슈 전문가에게 사랑 받은 장기말은 아니구요!

'노칼라' 리뷰 할 때도 언급했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노력한 것을 쉽게 얻은 사람에게 일종의 분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악의가 없고, 부정한 방법을 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내가 힘들게 극복한 것은 너도 힘들게 극복해야 공평하다고 여겨요. 자신의 비난은 정당하다고 생각하죠. 물론, 저도 그렇고요. 다만, 그 분노의 기원이 나의 자격지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면 내가 좋은 기회를 얻게 되면, 그건 나의 공덕이라고 정당화하거든요.

대현은 억울할지도 모릅니다. 잡아 먹고 잡아먹히는 야생에서, 나만 사냥의 대가를 치르는 것 같겠죠. 누군가는 스폰서에게 지목되고, 망가지고, 진탕 속에 살아야 해요. 그렇다면 그 대상은 팀을 띄우겠다고 검은 일도 마다치 않고, 연습생 시절부터 노력하고 인내해 온 내가 아니라, 손쉽게 기회를 잡은 정진이 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정진은 또 '우연히' 희권을 만나 보호와 애정을 받죠. 누구는 기회를 얻고, 누구는 노력해도 얻지 못하는가? 그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실체 없는 분노가 망치는 것은, 괴물이 되어가는 자신뿐이라는 거예요. 구원의 기회는 인간 한정이니까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

출판사: 이색

출간일: 2017.10.30

분량: 본편 1권

​​

 

point 1 책갈피

어느새 이스엘 프레이저가 내 거가 됐는지.

태자가 반응 없는 내 거를 슬쩍 쳐다보았다. 사타구니를 조물조물하자 불편한지 몸을 뒤튼다. 좋은 냄새가 났다. 숨을 들이마시자 식욕이 돋았다. 저녁은 걸렀고, 아침은 먹는 둥 마는 둥 물 한 잔만 겨우 마셨다.

일단 벗겨놓고 한 판 하고, 침이나 좀 빨아먹고 늘어져서 자야지. 그러려면 분위기를 잡아야 하는데... 어디 보자. 내가 지금 멋있나? 뒷머리 눌린 건 아니겠지? 이럴 때면 집무실 한쪽을 죄다 거울로 만들고 싶단 말이야.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한 태자가 기사의 바지 안으로 쑥 손을 넣었다. 옷 안을 함부로 뒤적거리며 묻는다.

"오늘은 팬티 입었나?"

그 말에 기사의 몸이 흠칫 굳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태자는 지분거리며 손가락을 놀렸다. 제 손에 흡수된 보습제의 바닐라 향이 이스엘의 성기에 옮을 때까지 주물럭댔다. 어쩔 줄 몰라 헤매면 그 뺨을 죽죽 빨고 옷을 홀랑 벗겨서 또 팬티를 뺏어갈 생각이었다.

point 2 줄거리

아델라이데 귀족 이야기: 순혈로 이어져 온 귀족가, 이스엘은 그 피를 지키기 위해 임신하는 약을 먹고 침대에 묶인 채 아버지에게 강간 당해야 했다. 그리고, 성교가 끝나면 아버지의 비서, 이스카란이 준 알약을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스카란은 이스엘에게 아버지는 죽고, 자신이 가문의 주인이 되었음을 알린다. 사실, 이스카란이 이스엘에게 먹인 약은 '임신하는 약'이 아닌 '정조대'라는, 섹스파트너를 천천히 죽게 만드는 약이었다. 이스카란은 이스엘을 갖기위해 오랜 세월 더러운 일을 참으며 오늘을 기다린 것이다.

아델라이데 왕족 이야기: 능력은 출중하지만, 사교성이 떨어지는 태자 포사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포사가 은밀히 마약 유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을 모으려 하자, 당연히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그때, 제1기사단 부단장 세리언이 나서고, 조사는 시작된다. 세리언은 적을 만드는 포사의 태도를 고쳐주려 하지만, 곧 포사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고립된 상황을 알게 된다. 세리언은 포사에게 마음이 쓰이고, 볼 때마다 몸이 달아오는 것을 느낀다. 한편, 왕의 명령으로 홀로 슬럼가에 간 포사는, 죽을 뻔한 위기에서 세리언에게 구출된다. 그 후, 베르나차의 여관에서 포사는 다른 의미로 세리언에 의해 죽을 뻔한다.

아델라이데 동맹 이야기: 재능과 충심을 겸비한 이스엘은 제국의 태자 피닉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스엘의 부모형제가 어마 무시한 부패를 저지르다 처형당하고, 이스엘은 피닉에게 경멸 받는다. 하지만, 이스엘의 능력을 인정한 황제는 그를 태자의 호위로 임명한다. 그러다 이스엘은 피닉에 대한 연심을 우연히 들키고, 피닉은 이스엘을 역겨워하며 괴롭힌다. 모멸감을 주기 위해, 화풀이로, 때론 재미 때문에 이스엘을 불러 강간하고, 그 빈도도 점점 늘어갔다.

그러던 중 제국을 방문한, 동맹국 아델라이데의 2왕자가 이스엘을 달라고 하고, 피닉은 이스엘을 그의 밤 시중을 들라 한다. 하지만, 이스엘은 차마 2왕자의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마법사 제레미를 찾아가 마음을 없애는 시술을 받는다. 한편, 이스엘의 실종으로 공황에 빠져있던 피닉은 이스엘이 돌아오자 반긴다. 하지만, 이스엘은 피닉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며 떠나겠다 말한다. 순간 이성이 끊긴 피닉은, 2왕자에게 빼앗은 '임신하는 약'을 이스엘에게 먹인다.

이스엘은 도망친다. 피닉은 샅샅이 뒤지지만 이스엘을 찾지 못하고, 그간 이스엘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고 있었는지, 자신이 얼마나 이스엘에게 못되게 굴었는지 깨닫고 절실히 후회한다. 그때, 이스엘은 피닉의 아이를 임신해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결국, 이스엘을 숨겨주었던 엘리노어는 피닉에게 사실을 고백하고, 이스엘은 궁으로 들어온다. 피닉은 이스엘에게 기꺼이 발 닦개가 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변태력

제가 '세헤라자데'를 선택한 이유는 전적으로 '리뷰'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리뷰를 쓰고 있고, 다른 이웃님들 리뷰도 읽지만, 같은 책을 읽어도 감상은 다~ 다릅니다. 특히나, 공감을 많이 받은 리뷰들은 대게 <매주 좋음>과 <매우 나쁨>으로 나뉘기 쉽습니다. 극단의 감정일수록 공감도가 높으니까요. 또, <매우 좋음>안에도 공맘, 수어메, 클리셰 편식, 작가 팬심, 필력부심 등 꽂히는 요소도 다양하죠. 그래서, 이렇게 리뷰가 대동단결하는 것은! 참 대단한 일입니다.

그 공감의 요소는 다름 아닌 변태!!! 변태의, 변태에 의한, 변태를 위한, 변태적인 판타지!!! 공감 순위는 좀 낮지만, 정말 아래 리뷰들이 대부분의 리뷰를 요약해 놓은 것 같아요. 흥미롭지 않으십니까? 빻빻한 빨간 맛과 창의적 하드코어물이 영역을 늘려가는 이 시국에, 피폐물인데 개그물인 것도 기발한데, 이렇게 많은 독자가 '변태'를 외치는 작품이란, 도대체 어떤 내용일까? 궁금했어요.

'세헤라자데'의 변태력은 매우 높습니다. 귀족, 왕족, 동맹 편에서 공통적 등장하는 중요 소재는 '약'입니다. '정조대'와 '임신하는 약'! 섹스 상대방의 이성을 앗고 끝내 죽게 만드는 약인 주제에, 이름이 '정조대'예요. 이것만으로도 작가님의 변태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리고, '임신하는 약'... 작중 의원에 말대로 이 약의 개발자는 변태예요. 임신하자마자 가슴에서 모유가 나오고, 극심한 통증을 없애기 위해 주기적으로 애 아빠의 정액을 먹어야 하죠.

피닉이야... 언제나 이스엘이 입었던, 검은 팬티를 갖고 다니는데요... 이 팬티가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는지... 읽는 내내, 작가님의 상상력에 투텀즈업을 날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귀족 편의 이스카란이 감금을 좋아하는 집착 통제광이라면, 왕족 편의 세리언은 초하이 텐션의 절륜공이예요. 하지만, 피닉은 순수한 변태예요. 앞선 두 공이 지나치게 건강한 신체(?)가 문제라면, 피닉은 거기에 더해 수치를 모르는 성향과 호기심을 지니고 있죠. 그래서, 홀로 후회공과 발닦개공의 루트를 걷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수가 처한 상황 때문에 '피폐물'을 넣지 않을 수 없었지만, 피폐물을 잘 못 보시는 분도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개그물에 훨씬 가까워요. 일단, 설정 자체가 현실과 백만리 쯤 떨어진 판타지여서, 마음 편히 변태력을 즐길 수 있습니다. 또, 3편의 수는 결국 공에게 종속되지만, 그전보다 나은 삶을 살게 됐어요. 귀족 편의 이스엘은 애매하지만, 분명히 포사나 이스엘은 사랑을 이룬 셈이니 공의 변태력만 좀 덜하다면 완벽한 해피엔딩인 셈이죠.

주의! 귀족 편의 '이스엘'과 동맹 편에 '이스엘'은 다른 사람입니다. 둘 모두 소극적이고 피학적인 수 이미지라, 다르다는 문구를 읽었음에도 저는 자꾸 오버랩되더라고요. 짧은 단편에 안에 같은 이름을 반복해 쓰신 걸 보니, 작가님이 '이스엘'이라는 이름을 좋아하시나 봅니다. 헝거게임도요. 그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주인공 이름을 그 영화에서 차용하셨다고 하더라고요. 네... 어떤 이름이든 좋습니다. 작가님의 다작을 기원합니다.(찡긋)

 

 

 

※ 동일 작가의 다른 소설 리뷰

 

2020.12.12 - [BL 소설] - [현대물/달달물] 올림피언 - 한여름

 

[현대물/달달물] 올림피언 - 한여름

출판사: B&M 출간일: 2018.05.04 분량: 본편 1권 ​ ​ ​ ​ ​ point 1 책갈피 ​ ​ "저야 올림픽에 나가는 것만도 감지덕지지만 선배는 다르잖아요. 선배는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니까.... 혹시 1

b-garden.tistory.com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

출판사: 비올렛

출간일: 2021.03.23

분량: 본편 2권 + 외전 1권

​​

 

point 1 책갈피

"재판 결과를 처음 들었을 때는 그게 꼭 제 고통이 2년짜리라는 통보 같아서 속상했어요. 저는 그런 기억이 고작 2년만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거든요. 어쩌면 평생 그림자처럼 뒤를 따라다니다가 중요한 순간 저를 약하게 만들 거라는 것도."

역시 자신의 인생은 극적인 해피엔딩이랑은 거리가 먼 것 같다는 자조 어린 생각도 했다. 정헌에게도 말하지 못한 생각이었다. 아니 정헌이라서 말하지 못했다. 이단보다 더 마음이 아파하고 걱정할 테니까.

"처벌이 약해서 또 여러 사람을 다치게 했다고 생각하면 화가 나지만, 그 사람한테 사형이 나왔다고 해서 제가 마법처럼 행복해지지도 않을 것 같아요. 그 말은...... 판사님 입에서 나온 숫자는 감히 누군가가 겪은 고통의 수치가 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해요."

이단이 재판정에 서지 않았다고 해서 그가 겪은 사건들이 없는 일이 되는 게 아닌듯이, 그 냉엄한 숫자는 고통의 유통기한이 될 수 없었다. 누구도 평가하고 강요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저는 또 판결문에 어떤 숫자가 적히든 상관없이 마음껏 슬퍼하다가 다시 행복해지려고 해요. 어쨌든 저는 싸웠잖아요. 아니 설령 싸우지 않았더라도......"

호박빛 조명이 비친 눈이 안쪽에서부터 조용히 빛났다. 작지만 분명한 빛이었다.

"제 삶은 여기 그대로 있고 저는 살아 있어요. 늘 바라 왔던 대로 부끄러움 없이, 떳떳하게요. 저는 상처를 입은 거지 죄를 지은 게 아니니까요."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었다. 과거를 끊임없이 곱씹고 후회하며 불행해져야 할 사람은 이단이 아니었다.

고개를 들자 지원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이단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혼자 말을 늘어놓은 것이 부끄럽고 머쓱해져서 뒷덜미를 어루만졌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데, 안 될까요?"

point 2 줄거리

기: 빨간 카디건에 싸여 버려졌기에, 이름이 단(붉을 단)이 된 이단(열성 오메가)! 예쁜 얼굴과 다소곳한 성격으로 충분히 사랑스러운 아이였지만, 3번이나 파양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첫 번째는 양부모의 이혼, 두 번째는 양부모의 사망, 세 번째는 성폭행 하려는 이부형 때문에 가출... 결국 17살부터 길거리에 내몰리게 된 단은 22살이 된 지금까지 자신을 '줍는'이들의 손을 전전하며 살아야 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것도 해주는 대우도 똑같았다.

승: 그날도 단은 하룻밤 잠자리를 구걸하기 위해 폭력을 견디려 하고 있었다. 일하던 슈퍼에서 도둑으로 몰려 쫓겨나고, 연인이 다른 이를 데려오면서 지내던 곳에서마저 나왔기 때문이다. 그때, 정헌(극우성 알파)이 나타나 단을 구하고 '주워' 준다. 좋은 집, 포근한 잠자리, 따뜻한 식사... 하지만, 정헌은 단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숙식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 몸을 내주려는 단을 되려 밀어냈다.

전: 정헌은 단에게 얼마든지 집에서 머물러도 좋다고 말하며, '대가'없는 호의를 한결같이 베푼다. 단은 주제넘은 줄 알면서도 그런 정헌을 점점 좋아하게 되고, 정헌의 마음에 들고 싶어졌다. 단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월급을 받아 정헌의 선물을 살 희망에 부푼다. 단이 알바를 시작한 햄버거 가게 지점장과 동료들은 단에게 친근하게 대했고, 단은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부지점장이 본심이 드러내면서, 단은 위기에 빠진다.

결: 하지만, 단은 달라졌다. 부지점에게 저항했고, 정헌은 그후 부지점장을 고소한다. 정헌은 2년 전 단과 우연히 만나 한눈에 반했고, 단의 히트에 휘말려 각인도 되지만, 자신의 감정에 혼란스러워 단을 잡지 못했다. 그 후 간신히 단과 재회하자, 집으로 데려와 귀하게 여겨주었던 것이다. 단과 정헌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쌍방 각인 후 부부의 연을 맺는다. 한편, 부지점장은 제 무덤을 스스로 파고, 제대로 파멸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쌍방'성장'물

'스위트 낫 슈가'의 단을 보면서, '뉴욕뉴욕'의 멜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최악의 환경을 타고나 몸을 팔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사랑에 헌신적인 모습이 단과 멜이 참 많이 닮아 있었어요. 게다가, 예쁜 얼굴과 순한 성격, 차별과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도덕을 지키는 모습까지도요. 심지어,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동정하는 모습까지도 너무 비슷했습니다. 참고로, 마리모 라가와님의 '뉴욕뉴욕'의 저의 인생작 중 하나랍니다. 갓띵작이죠!

반면, '스위트 낫 슈가'의 정헌과 '뉴욕뉴욕'의 케인은 완전 반대였어요. 정헌과 케인 모두 사랑이 넘치는 가정에서, 모범적인 부모님께 교육받죠. 다만, 정헌은 그대로 자랐고, 케인은 반대의 길을 갑니다. 물론, 오메가버스와 뉴욕이라는 배경차도 있지만, 감정적 혼란 상태에서 정헌은 인내하고 자제하지만 케인은 일탈했다는 점에서 캐릭터차가 더 큰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스위트 낫 슈가'는 쌍방성장물, '뉴욕뉴욕'은 쌍방구원물로 느껴집니다.

재벌공을 만나 자낮수가 호강하는 건 할리킹입니다. 공은 수에게 큰 부를 쥐여 주며, 출구 따윈 없었던 환경의 굴레를 손쉽게 정리해 줘요. 정헌이 단에게 누명을 씌운 슈퍼에서 못 받은 월급을 받아주거나 단을 죽이려고 하는 부지점장을 뭉게버리는 것, 그리고 최상의 의식주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재벌공'처럼 보여요. 하지만, 단이 정헌을 만나 '행복'해졌다면, 정헌이 단을 만나 '생명'을 잃지 않게 됐으니, 정헌이 얻은 것이 더 커 보이기도 합니다.

'스위트 낫 슈거'는 공수는 서로에게 '성장의 계기'가 되어 줘요. '구원'보다는 말이죠. 정헌을 만난 후, 단의 가장 큰 변화는 '자존감'이 생긴거예요. 단은 몸을 파는 일이 비난받을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잠자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누군가에게 주워달라고 해야 했지만, 처지는 건 핑계고, 자신은 올바르게 살지 못한 한심한 사람이라 여기죠. 단은 더럽게 살기를 선택한 자신이 받는 부당한 대우는, 자신이 치러야 할 죗값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부지점장에게 저항하는 단은 "당신에겐 나를 만지 권리가 없다!"고 외쳐요. 그리고, 지원에게 "자신은 상처 입은 거지 죄를 지은 것이 아니다."라고도 말하죠. 정헌은 단을 존중해줬고. 단은 정헌이 존중해 준 사람을 자신도 존중하려 합니다. 물론, 정헌이 알 밖에서 도움을 주긴 했지만, 알을 깨고 나온 건 분명 단의 의지라고 볼 수 있어요.

정헌 역시 마찬가지예요. 청교도인가? 의심하게 만드는 이 남자, 정헌은 단에 대한 감정에 혼란스러워합니다. 독점욕, 집착 같은 폭력적 감정들은 몽실몽실한 사랑의 감정과는 다른 각인의 증거였으니까요. 하지만, 인생은 타이밍이고, 정헌이 단에 대한 감정을 갈무리했을 때부터 정헌은 단을 찾을 수 없게 됩니다. 정헌은 2년간, 각인된 오메가를 곁에 두지 못한 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만했죠.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요.

그래서, 정헌은 단과 재회한 후, 정말 조심합니다. 각인으로 인한 강한 욕구에, 사랑이라는 고삐를 채워 두죠. 단을 귀하게 여기며, 모든 걸 가진 정헌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단에게 한껏 몸을 낮춰요. 그러느라 '사랑하는 일'을 피합니다. '지키는 일'만 열심히 하죠. 단은 그런 지헌에게 파렴치해질 것을 요구합니다. 그건 단을 상처 입힐 수도 있지만,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었거든요. 참는 익숙한 것에서, 참지 않은 필요한 것으로, 정헌은 용기를 냅니다.

결정적으로 정헌과 단은 '구원'이라는 말을 쓰기엔, 너무 바른 사람들이었어요. 늙은이 같은 소리지만, 정헌을 보면 '그 부모에 그 자식' '자식 교육 참 잘 했네!'같은 말이 하고 싶어집니다. 내가 할 수 있었는데 못 해준 일은 미안해하고, 남이 할 수 없는 것을 못하는 건 당연하다며 타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차이는 타고난 환경이며, 그건 선택도 노력도 아닌 감사해야 할 행운이라고 여겨요.

단은 거의 기적 수준입니다. 단은 빨간 카디건과 함께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에게 카디건을 주고 한 겨울, 온 길을 뒤돌아 갔을 어머니가 추웠을 거라고 말해요. 정헌의 돈이 많은 줄 알아도, 그 돈을 받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은 삶을 살았어도, 도둑질은 커녕 다른 사람에게 피해 준 적도 없었죠.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해야 하기 때문에, 언제나 스스로만 손해 보는 선택을 해왔어요.

자존감의 무게와 상관없이 두 사람은 자기 철학과 의지가 아주 강한 사람들이죠. 그래서 그런지, 읽는 내내 이모 미소를 짓게 됩니다. 기특하다. 기특하다. 하면서 보게 돼요. 너무나 경건한 작품이라, 19금이고 절륜공과 경험 많은 오메가수가 등장하는, 심지어 러트. 노팅, 히트가 모두 나옴에도!!! 왜 이렇게 건전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지나친 배려심 때문에 늘어지는 삽질 구간도 있습니다. 사건 중심보다는 인물 중심이에요.

저는 착한 사람들이 나오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기승전결이 스펙터클하지 않아도, 심장을 쫄깃쫄깃하게 만드는 긴장감은 없어도, 흐뭇하게 볼 수 있거든요. 하지만, 밀당을 좋아하신다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