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비욘드

출간일: 2018.01.19

분량: 본편 2권 +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헤이든 머피가 살을 뺐단 사실이 싫었다.

'내가 도와주려고 했는데.'

이안이 꿈꿨던 그림은 이게 아니었다. 처음 계획 - 헤이든 머피 친구 만들기 - 을 세울 적에, 이안은 통통한 헤이든과 함께하길 원했었다. 통통한 헤이든이 그 자체로 친구를 사귀고 '헤더의 양 날개'가 되건 뭐가 되건 숨지 않고 다니길 원했었다.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되게 만들거라고 확신했었다.

'내가 바보 같았어. 좀 더 일찍 도와줄 수 있었을 텐데...'

갑작스럽게,

'뚱뚱한 공주 같은 건 없어!'

언젠가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잊고 있던 기억 안에서, 얼굴도 기억나지 않은 어떤 남자아이가 그런 말을 외쳤었다.

그때부터 이안은 다소 염세적인 아이였다. 이안은 세상이 부정하는 모든 것을 한 번 더 부정하곤 했었다. 뚱뚱한 아이도 원한다면 공주가 될 수 있고 크림 선생님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며, 맨하튼의 유기견 이백 오십 마리에게 행복할 자격이 있고, 자신은 여자가 아닌 남자와 결혼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이안은 헤이든 머피가 부정당하는 현실이 싫었다. 헤이든 머피 스스로가 변화를 원했단 것이 싫었다. 이안이 반했던 통통한 헤이든 머피를, 헤이든 머피 본인조차 부정하고 떠나버린 것이 싫었다. 무엇보다 이안은 자기 자신이 싫어졌다.

'내가 뭐라고.'

이안은 회의에 빠졌다. 우드 집안의 귀한 도련님이라는 입자에서 이뤄 온 일들이 의미를 잃어버렸다. 모든 것이 그저 자만 같았다. 그는 헤이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언지에 대한 의문을 가져 본 적 없었다. 뭘 원하느냐고 물어본 적도 없었다. 그런 주제에 '헤이든 머피 친구 만들기'라니, 계획을 세웠던 것 자체가 부끄러웠다.

point 2 줄거리

기: 헤이든 머피는 심장에 선천적 기형을 가지고 태어났다. 부와 애정이 넘쳤던 헤이든의 부모는 아픈 외동아들을 과보호 속에 키웠고, 헤이든은 '돼지'라는 별명 속에 외로운 학교생활을 해야 했다. 그리고, 루이스 고교 입학 후 와이어트 존슨을 만난 후 헤이든의 불행은 정점을 찍는다. 와이어트는 헤이든은 '붉은 돼지'라 부르며, 때리고, 모욕하고, 부려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헤이든은 우연히 이안의 도움을 받고, 다정한 이안, 이안의 친구들과 친구가 된다.

승: 생에 첫 친구 이안을 위해 헤이든은 지옥의 다이어트에 돌입한다. 그리고, 방학이 끝나고 난 뒤 헤이든은 완벽한 '인싸'가 되어 루이스 고교에 나타난다. 하지만, 이안은 헤이든의 다이어트를 반기지 않았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름다운 외모로 주목받았던 이안은, 평범한 원생으로 자신을 대해주는 뚱뚱한 크림 선생님을 좋아했다. 이후, 게이인 이안은 루이스 고교 입학식에서 꿈에 그리는 이상형을 발견한다. 바로, 다이어트 '전'의 헤이든이었다.

전: 하지만, 헤이든과 이안은 반이 갈리면서, 이안은 헤이든에게 다가가는 데 시간이 걸렸고, 헤이든은 '붉은 돼지'가 되어 있었다. 한편, 이안의 노력과 헤이든의 바뀐 외모로, 헤이든은 즐거운 고교 생활을 누린다. 한편, 살 빠진 헤이든에게 차인 와이어트는, 다시 살이 쪘다며 헤이든을 괴롭힌다. 헤이든은 강박적으로 무리한 다이어트를 밀어붙이다, 쓰러진다. 고통에 허덕이며 깨어난 헤이든에게, 이안은 뚱뚱하든 아니든, 어떤 헤이든이든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결: 학교로 돌아 간 이안은 와이어트에게 보복하고, 와이어트는 어쩔 수 없이 헤이든에게 사과하기 위해 병원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헤이든은 지독히 괴로웠던 시간의 진짜 이유를 알게 된다. 헤이든은 이안에게 고백한다.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한편, 주지사 선거를 앞 둔 이안의 아버지와, 머피 일가가 모두 참석한 자선 파티에서 두 사람은 연인 선언을 한다. 다소의 우여곡절은 있지만, 이안은 큰 무리 없이, 무사히 머피가 이 예비(?) 데릴사위(?)가 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붉은 돼지'를 사랑해주세요.

면역력이 떨어지는 계절이면, 잠잠했던 고질병이 고개를 듭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허리가 시큰거리고, 잇몸이 욱신거리고, 승모근이 뭉치고, 무릎이 삐꺽거리고... 어떻게 그렇게 약한 부분만 기가 막히게 악화되는지 신기할 때가 있어요.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약해지기에 약점이라 불리기도 하는 거겠지만, 때론 감기만 걸려도 아파지는 허리를 부여잡고 있다 보면 억울한 마음에 눈물이 핑 돌 때가 있습니다. 부딪친 것도 아닌데!!!

마음도 그런 것 같아요. 꼭꼭 숨겨 둔 상처는 아주 사소한 노출에도 쉽게 공격당하고, 지치고 힘든 날이면 유독 더 심하게 곪죠. '이곳이 제일 약한 곳'이라고 표지판이 붙어 있는 것도 아닌데, '악의'와 '불안'은 그곳을 기가 막히게 찾아냅니다.

'마이 펫보이'는 밝고 명쾌한, 전형적 청게물이자 성장 소설이에요. 얼마나 전형적이냐 하면, 스토리가 한 줄 요약이 됩니다. '다이어트 후 미녀가 된 뚱뚱보 공주님은, 외모가 아닌 공주님 자체를 사랑해 준 왕자님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공주님은 심장병이 있고, 재벌가 외동에, 부모님의 절대적 애정을 받으며,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고, 괴롭힘을 당하지만 사랑스럽고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어요. 살을 빼니, 절.세.미.녀가 됩니다. 참, 어디서 본 것 같은 내용이죠.

하지만, 김아소님의 소설이 그러하 듯, '마이 펫 보이' 역시 단순한 스토리 아래 흥미로운 설정과 뼈 있는 메세지가 심어져 있습니다.

일단, 동전의 양면 같은 이안이 있습니다. 이안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름다운 외모로 의사의 감탄을 자아냅니다. 이안은 완전무결한 왕자님으로 보일 수 있는 법, 즉 젠틀하게 웃고, 말하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기대와 환상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있었죠. 이안에게 이 세상은 꼭 맞았고, 이안이 이 사회의 브라만으로 사는 것은 조금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안의 뒷면에는, 이런 사회에 대한 반발감이 있었어요. 이안은 뚱뚱한 크림 선생님이 아름다웠고, 뚱뚱하지만 유일하게 손을 든 친구가 공주 역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여자가 아닌 남자를 좋아했죠. 이안의 이런 반항심은 어느 순간 꿈속 완벽한 이상형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납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루이스 고교 입학식에서 그 꿈속 주인공을 만나게 됩니다. 이안에게 '그' 수드라 붉은 돼지는, 나의 공주님이 되어야 했어야만 했어요. 헤이든 폴더가 이안의 컴퓨터에 만들어지는 순간이었죠.

전교 1등 헤이든이 있는 A 반에 배정받지 못한 이안은 헤이든의 끔찍한 불행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와이어트의 체육복을 빌려준 사건을 계기로 드디어 헤이든과 친분을 만들기 시작해요. 이안은 헤이든 앞에서는 다정하고 상냥한 친구, 뒤에서는 숨은 해결사가 되어 주었죠. 이안과 친구가 되고 헤이든은 행복해졌고, 이안을 절대 잃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몇 번이고 실패하고, 그토록 고통스러우면서도 결심하지 못했던, 다이어트를 성공해요. 그리고, 이안은 깊은 회의에 빠집니다. 물론, 이안이 '어떤 헤이든이든 사랑해!'로 마음이 굳어졌기에, '전형적인' 청게물이 되긴 합니다.

소설을 읽다보면, 문득 불편한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마이 펫 보이'의 경우는, '빨간 돼지를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였습니다.

'마이 펫 보이'를 읽다 보면, '헤이든은 '빨간 돼지'가 자신이라는 것을 몰랐다.' '헤이든은 '빨간 돼지'를 미워하고 있었다.'라는 식의 서술이 자주 등장합니다. 헤이든은 자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이안에게도 눈물을 흘리며, '나도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다.'고 말하죠. 분명, 헤이든은 '빨간 돼지'를 아주 싫어합니다.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빨간 돼지'를 싫어할까요?

거울에 비친 뚱뚱보가 보기 싫어서? 예쁜 옷을 입을 수가 없어서? 외모가 하고 싶은 직업이나 취미에 방해가 돼서? 아닙니다! 헤이든이 빨간 돼지를 싫어하는 '빨간 돼지'가 자신의 삶은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었어요. 헤이든은 사과를 위해 병문안 온 와이어트가, 살이 쪄서 헤이든을 괴롭힌 것이 아니라 반응이 재밌어서 괴롭힌거라고 말하자 발작적 공황 증세를 보여요. 와이어트가 자신을 괴롭힌 이유는 반드시, 자신이 뚱뚱하기 때문이어야 한다는 듯이 말이에요.

헤이든이 외로운 학교생활을 한 이유는 심장병으로 학교를 자주 빠져서 친구를 사귈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숫기가 없는 성격이라 '헤이트 헤이든'이라는 놀림을 당해도 잘 받아치지 못했을 거예요. 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겁니다. 하지만, '혼자'라는 것에, '뚱뚱하다는 것'에 의기소침해 있던 헤이든의 '약점'에 와이어트라는 '악의'가 들러붙으면서, 살이 쪘다는 것은 모든 불행의 원인이 되어 버립니다.

진짜 가해자는 와이어트인데도, 헤이든은 '빨간 돼지'라는 가해자에게 괴롭힘받고 있었어요. 그래서, 헤이든은 와이어트를 부모님이나 학교에 알릴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계속 그 고통을 감내합니다. 하지만, 헤이든은 살이 빠지자마자 이안의 도움 없이 혼자서, 와이어트에게 물세레를 내립니다. '붉은 돼지'는 사라졌고, 그래서 헤이든은 더 이상 괴롭힘당할 이유가 없었죠.

그런 헤이든에게 다시 살이 찐다는 건 그 불행의 구렁텅이로 회귀하는 것이었고, 와이어트의 '살이 찐 것 같다.'라는 흘린 말에도 먹지 못하고, 잠을 줄여 무리하게 운동하며, 심지어 출처 불명의 다이어트 약을 사 먹기 시작해요. 결국, 쓰러져 입원한 헤이든은 와이어트에게 화를 냅니다. 나는 살이 빠졌는데, 더 이상 괴롭힘 당할 이유가 없는데, 와이어트는 자신을 괴롭게 하고 있으니까요. 동물처럼 학대할 때도, 한마디 하지 못했던 화를 이제서야 말이죠. 하지만 돌아온 건, 그렇게 오래토록 자신을 괴롭힌 '가해자'가 존재한 적 없다는 대답이었어요.

'오컴의 면도날'을 아시나요? 가장 간단한 대답이 옳다는 이론인데요, 뻔한 말 같지만 의외로 현실에선 잘 적용이 안 돼요. 교통사고가 났다면, 원인은 중앙차선을 넘어온 상대방 차량일 텐데, 그날 약속 시간을 변경해서 그 차량과 마주쳤다며, 원래 지하철을 타는 거린데 마침 파업이 일어나서 차를 몰고 왔다며, 가해자와 죄책감을 양산해내죠. 그렇게 따진다면, 사고가 난 이유는 '태어났기 때문'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도 몰라요.

보이는 것을 보이는 데로 보는 것도 어려운 일이 되어갑니다. 아는 것이 많아지고, 그래야 하는 것이 많아져서 그런 걸까요? 바다처럼 푸른 눈을 올망 거리며 샐러드를 양볼에 넣고 뇸뇸거리는 헤이든은 사랑스럽습니다. 안경을 쓰고, 조금 큰 바지를 입었지만 붉은 돼지도 사랑스럽습니다. 붉은 돼지는 아무도 괴롭힌 적 없고, 어떤 잘못을 저지른 적도 없으며, 언제나 헤이든 안에 함께 살고 있었으니까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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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비욘드

출간일: 2017.03.03

분량: 본편 2권 +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완전히 결박된 후에야 소영의 움직임이 멈췄다. 환이 안에 진득하게 파정하자 소영의 아랫배가 볼록해졌다. 내장을 틀어막은 압박감에 얕은 숨만 간신히 내뱉으며 눈물 흘리는 소영의 귓가에 대고 환이 속삭였다.

"영희공 환소영은 귀비에 봉하고 원자 호를 내려 그를 원귀비라 한다."

자신을 귀비에 봉한다는 말에 소영의 젖은 눈이 커졌다. 현재 황제의 후궁 중에 정일품 비는 품계를 받은 이가 없었다. 소영이 결박의 고통도 잊고 저를 동그랗게 뜬 눈으로 쳐다보자 환이 다정스레 웃으며 그 눈가를 쓸었다.

"처소는 영수궁으로 하나, 짐의 별궁인 양심전에서 옮겨 가는 것을 허락지 않겠다. 황제의 화원인 어화원에 유일하게 출입을 허락하며 원한다면 언제든지 짐에게 함께 가자고 청해도 좋다."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교지를 읊는 양하시는데 소영의 눈가에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귀비의 태에서 나는 황자가 이 나라의 태자가 될 것이며 그 태자는 짐의 뒤를 이어 다음 대의 황위에 오르게 될 것이다."

자신과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그 목소리가 너무나 달콤해서 기어이 눈물이 흘러넘쳤다.

"그러나 짐은 귀비를 닮은 황녀도 기꺼우니 귀비는 괘념치 말라."

덧붙이시는 말씀이 왠지 귀여워서 소영은 결국 웃어버렸다.

point 2 줄거리

기: 직첩조차 받지 못한 천한 어머니의 태에서 태어난 5황자 소영은, 궁인들의 박대와 괄시, 황자녀들의 괴롭힘을 당하며 삼남소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소영을 유일하게 아끼고 보살피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태자 환이었다. 태자는 동궁에 소영을 불러 함께 생활하고, 음인이 소영에게 발정기가 오자 최측근인 중랑장 민석호를 시켜 시침을 들게 한다. 당연히, 태자의 이런 총애는 시기를 불러왔고, 소영은 태자비의 눈 밖에 나 동궁에서 쫓겨난다.

승: 황후는 완전한 음인이 된 소영을 민석호에게 보내려 하는 한편, 소영은 무작위로 발정기가 찾아오는 야화라는 것이 밝혀지고, 잠잠했던 태자비의 행보도 거칠어지자, 태자의 마음은 급해진다. 사실 태자환은 소영에게 좋은 형의 가장하고 있었지만, 어린 소영과 각인이 되면서 양인으로 발현했고, 그 후 이복동생인 소영을 온전히 얻기 위해 준비해 왔었다. 하지만, 황제의 양위가 생각보다 늦어지면서, 소영의 초야를 뺏기고 소영마저 잃게 생긴 것이었다.

전: 마음이 급해진 태자는 소영의 몸을 끈덕지게 길들이고, 소영은 그런 형에게 이성적 성애를 느끼며 혼란과 갈등을 겪는다. 그때 마침, 소영은 자신의 약혼자이자 자신을 사랑하는 민석호와 함께 잠시 숨을 돌리러 출궁하고, 환은 허락 없이 사라진 두 사람에게 분노하며, 소영을 거칠게 대하고 강제로 각인한다. 그 후 상처 입은 소영을 달래 간신히 연인이 되지만, 야화라는 소문이 돌면서 결국 소영은 황적에서 제적 당하고 정업원에 유폐되기에 이른다.

결: 하지만, 갑작스러운 낙마 사고로 마비가 온 황제가 태자에게 양위를 결정하면서, 환은 곧 소영에게 '환'이라는 성을 내리고, 영희공에 봉작하여 곁에 둔다. 한편, 황후의 직첩을 받지 못한 태자비는 사가의 연이 있었던 의친왕과 함께 반역을 도모하지만, 이미 만만의 대비를 하고 있던 황제에 의해 발각된다. 환은 소영을 귀비로 삼고, 소영에게서 자식들을 본다. 그 후 민석호는 문성황녀와 결혼하여 부마가 되고, 소영은 황후가 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자낮수

근래 문득 자낮수가 참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스라이팅이 자주 당장하는 피폐물이나 할리킹의 일부에서나 볼 수 있었던 키워드 였던것 같은데... 이제는 스릴러, 판타지, 일상물 할 것 없이, 자낮수가 등장합니다. 우연인지, 최근 저의 책장을 메운 책들 중에서도 많은 유형의 자낮수가, 다른 소재와 장르의 이야기 속에 나오더라고요. 하지만, 아시나요? 리디북스에 자낮수 키워드가 없다는 것!

드라마는 시대의 이상을 반영하고, 소설은 시대의 아픔을 반영한다. 어디선가 읽었던 구문인데,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드라마나 소설이 그만큼 대중적 채널이고, 어떤 형식으로든 시대를 투영하고 있다는 거겠죠. 유난히 '헬 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때에 '이세계물', '회귀물', '환생물'이 많아진 것 처럼요. 그렇다면, 걱정 많고 늘 불안해하지만, 알고 보면 재주도 많고 사랑스러운 자낮수도 이 시대 일면을 비추고 있는 걸까요?

'야화'는 고백하자면, 한번 읽고 방치한 많은 도서들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 다시 보니, 조금 다르게 보였어요. 문득, 이 책이 절륜한 황제와 백치 이복동생의 씬풍년 시대물 BL이 아니라, 환의 일생을 건 계략기 혹은 한걸음 당 한 번씩 '자낮의 덫'에 빠지는 소영의 구원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제가 환을 보며, '집착' '광공'이 아니라 '성실' '헌신'이란 단어를 떠올렸다는 것이, 저조차도 낯설었어요. 분명, 제 기억 속 '야화'는 킬탐용 뽕빨물이었거든요.

일단, 제가 과거 '야화'를 저평가했던 이유는, 갈등이 변변찮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어요. 출신도 천하고 뒷배도 없는 5황자 소영은,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짓궂은 황자녀들의 괴롭힘 대상이었죠. 게다가, 소영의 유일한 동아줄 태자에게는 황후의 조카인 태자비가 있었고, 그 묘가는 견고한 외척세력으로의 입지를 다지며 정치력을 키워왔어요. 황제가 될 것이 확실한 태자에게는, 소영을 반려로 맞는다는 것은 여러모로 힘든 일이고, 당연히 갈등도 많긴 했지만...

황제가 허무할 정도로, 너무 쉽게 모든 일을 해결합니다. 소영을 사랑한 민석호는 소영의 시침도 들고 약혼자도 되지만, 단 한 번의 반항도 없이 소영을 포기합니다. 태자비와 의친왕의 반역은 놀랍도록 위협적이지 않았고, 황후는 불용패 조카를 쉽게 버립니다. 태자는 황제의 낙마사고도, 소영과 환의 관계를 반대하는 상소들도, 어렵지 않게 처리하죠. 물론, 소영을 단 한번이라도 건드린 자들을, 그 시기와 신분를 불문하고 톡톡히 복수해줘요. 그래서 갈등은 있으나, 갈등 풀어가는 재미는 좀 아쉬웠습니다.

그럼에도, 첫인상이 '나쁨'이 아니었던 건, 분량과 가격이 혜자스럽기 때문이었어요. 한 권 10만 자도 안 되는 소설들도 즐비한데, 야화는 한 권 당 20만 자초과에 4500원! 가성비가 우수하죠. 또, 환의 원앤온리와 소영의 귀욤귀욤에도 후한 점수를 줬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정신만 들면 '그' 생각뿐인, 절륜한 황제의 씬씬씬은 달달구리하지만, 지나치게 왕성하셔서 소영도 지치고, 보는 독자1도 어느 순간 흐린 눈 스킵을 하게 됩니다.

이 소설에는 숨겨진 섭공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설표'예요. 한결같이 소영을 바라보는 순정파 표범이죠. 물론, 나중에 반려를 만나 아이를 낳고 잘 산다만은... 나름 애정에 목마른 야수예요. 소영은 분명 일부의 황자녀들과 권력으로만 가치를 평가하는 궁인들에게 괄시 받습니다. 하지만, 두 섭공인 민석호나 설표에게, 일반적이지 않은 독점적 애정을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태자의 절대적 비호를 받고 있고, 태자는 그것을 외부에 숨기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소영은 태자의 권위를 앞세워 호가호위할 수도 있고, 그럴 깜냥에 없다 하더라도 자신을 사랑하는 권력자들에게 고단한 삶에 대해 토로하고 기댈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소영은 태자가 위대한 줄은 알아도, 태자가 사랑하는 자신은 '이복동생'이고 '야화'라는 이유만으로 유령이 되어 평생 후궁에서 비참한 삶을 살 거라고 무서워합니다. 민석호가 공신 가문의 장자이며, 많은 황녀들이 꿈꾸는 이상적 반려임을 알아도, 대 놓고 구애하는 민석호의 약혼자 자리가 얼마나 대단한 줄은 알지 못합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면, 이 소설을 많은 갈등을 열심히 풀어가려 노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갈등은 암투도 아니고 근친관계도 아니었어요. 세상으로부터 숨고 싶어 하는 소영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황제가, 설득하고 달래고 안심시키는 과정이었던 거죠.

태자의 첫째 미션, 선물 주기! 태자가 어린 소영과 각인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환은 서서히 소영에게 '주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궁박한 소영에게 하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죠. 많은 이들은 하사받고자 했고, 하사받았다는 사실을 떠벌리며 친분을 과시하고 싶어 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소영은 주면 쩔쩔매고, 없는 살림에 답례품 구해오고, 답례품 대신 연주를 듣게 된 후로도, 너무 자주 준다며 부담스러워하죠. 소영에게 태자비도 누리지 못한, 태자의 지밀을 공유해 주었음에도, 태자비가 쫓아내면 고자질은 고사하도, 냉큼 초라한 남삼소로 돌아갑니다. 태자가 준 팔찌는, 착용하지 않고 상자에 보관만 해요.

태자의 둘째 미션, 안심시키기! '야화'의 설정상, 양인이 음인과 각인이 되면, 자신의 음인 이외에 만족감을 얻지 못할 뿐 관계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반면에, 음인은 오로지 각인한 양인과만 관계를 할 수 있죠. 태자는 소영을 안고 포태시키고 싶었지만, 황제가 될 때까지 참아야 후환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소영의 발정기에 믿을 수 있는 민석호를 보내지만, 가까이 각인된 음인을 두고 안지 못하는 고통에 시달립니다.

그리고, 마침내 소영에게 각인을 합니다. 하지만, 각인 전의 고난보다 더 큰 고난이 있었으니, 그것은 소영을 달래는 일! 태자는 지존이지만, 태자의 약속은 믿을 수 없는 것일까요? 사모하고, 어떤 경우에도 보호해 주고, 그대가 낳은 아이를 태자로 삼겠다고 달래어도, 소영은 세상에 손가락질 받고 이름 없는 자가 되어 어느 후궁의 전각에서 비참한 생을 이어갈 거라고 태자를 원망하죠. 야화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태자는 '정말' 비참한 상황에 놓일 뻔한 소영을 기지와 협상으로 구해내지만, 소영은 보호받았다는 '증명'보다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슬퍼합니다.

태자의 세 번째 미션, 결혼하기! 태자는 황제가 된 후 황적에서 지워져 평민이 된 소영을, 영희공으로 봉작하면서 형제가 아닌 황족으로 만듭니다. 또, 자신의 이름에 획만 바꾼 '환'이라는 성을 주어 '내 사람'임을 찜하고, 즉위식 연회장에서 나쁜 손으로 '내 음인'임을 만인에게 알립니다. 게다가 소영을 구박했던 태자비는 황후는 고사하고 재인이 되었고, 소영에게는 태후라는 든든한 우군도 있어요. 하지만, 소영은 귀비가 되는 것을 기꺼워하지 않죠.

소영은 태생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고, 주목받는 자리가 무서우며, 황제의 총애는 받아도 총비가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황제와 보내는 밤이 늘어나나 회임을 하지 못하자, 황제에게 후궁을 권하기도 합니다. 후사의 책임은 막중하고, 환을 독점하고 싶어도, 독점할 자신은 없었죠. 황제는 이미 오래전에 소영의 독점물이었음에도, 황제는 소영의 시기심을 자극하고, 자리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역설하며, 어렵게도 소영의 반려가 돼요.

자낮수가 고구마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자낮수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게끔 만드는데, 엄청난 공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인들 중 자존감이 떨어졌다고 말하는 이들이, 이렇게 많았던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 때문이다, 경기 때문이다, 자연재해 때문이다, 그런 것들이 위로가 되었을 때도 있었겠지만, 그 위로의 유통기한은 의외로 짧아서, 당장 되는 일이 없으면 자신의 가치도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요. 그리고, 항상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성공하는 사람들은 존재하고요. 그들의 존재가, 위기를 기회로 만들지 못한 자신의 무능을 지탄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존감이 낮다는 건, 반대로 자기 가치는 높다는 말인 셈이죠. 자존감이 떨어져 힘들다면, 적어도 지금 느끼는 자신보다는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BL에 나오는 '자낮수'는, 잘난 공이 가지지 못하고, 공 주변에서도 도무지 찾을 수 없는, 귀한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음에도 스스로는 모르고 있어요. 공이 그것을 발견하고, 알려주고, 사랑해 주는 것으로 자낮수의 인생을 달라집니다. 신데렐라랑은 달라요. 마법사는 필요 없고, 왕자만 있거든요.

이 시대가 자낮수를 필요로 하는 걸까요? 그럼 자낮수의 '자낮'보다는 결국, 마침내, 파이널리, 그 자낮수가 도달한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서 였으면 좋겠습니다. 오랜 BLer로서, 확신하지면, 그 '결과'는 이미 자낮수에게 있어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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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B-Lab(비랩코믹스)

분량: 본편 2권

point 1 한 컷

point 2 줄거리

기: 나츠카는 고등학교 때부터 하쿠시마를 좋아해, 대학까지 따라간다. 하지만, 과거 '그릇'에 대해 고민하는 하쿠시마를 보고 섣불리 고백하지 못한 채, 섹파 세노와 욕구를 풀며 하쿠시마의 친구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느 날, 사소한 잔소리에 빈정 상한 나츠카는 집으로 찾아온 하쿠시마를 돌려보내고, 돌아가는 길 하쿠시마는 세노의 오토바이에 치인다. 그리고, 먼저 정신이 든 세노는 자신이 '하쿠시마 히로'라고 말하고, 하쿠시마는 의식불명에 빠진다.

승: 세노의 몸에 들어간 하쿠시마는 집으로 가지 못하고, 나츠키의 집으로 찾아간다. 나츠키는 세노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둘만의 추억인 '루바이야트'시를 암송하자, 하쿠시마의 말을 믿게 된다. 그렇게 두 사람의 동거는 시작되고, 나츠키는 하쿠시마의 몸을 돌릴 방법을 찾는다. 그러던 어느 날, 하쿠시마에게 게이라는 사실을 들킨 나츠키는 폭주해서 하쿠시마를 안으려 하지만, 하쿠시마는 거부한다. 한편, 나츠카의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는다.

전: 하쿠시마와 나츠카는 함께 본가로 가고, 나츠카는 입양 사실을 고백한다. 나츠카는 다시 하쿠시마에게 고백을 하고, 하쿠시마는 나츠카를 받아들인다. 한편, 의식불명의 '하쿠시마'가 깨어난다. 혼란을 느낀 나츠카는 세노의 몸에 들어간 하쿠시마를 믿고 계속 사랑한다고 고백하지만, 그는 하쿠시마를 연기해 나츠카를 속인 세노였고, 사실을 밝힌 세노는 나츠카의 집을 떠난다. 한편, 나츠카는 진짜 하쿠시마가 그날 사고를 낸 이유를 듣고, '친구'로서 위로해 준다.

결: 세노가 고등학교 동창임을 알게 된 나츠카는 세노를 찾아 고향으로 내려간다. 세노는 오랫동안 나츠카를 좋아했지만, 하쿠시마만을 바라보던 나츠카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나츠카는 세노의 하숙집에서 굶고 있는 세노를 발견해 병원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그곳으로 찾아온 하쿠시마에게 커밍아웃하고 세노와 함께 살 계획에 대해서 알린다. 하쿠시마는 나츠카를 격려해 준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뻐꾸기 3마리

타메코우님은 개성이 강한 작가님입니다. 정확히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다양한 소재와 연출을 사용했음에도, 각 작품들에서 '일관성'이 느껴져요. 그것이 스타일 때문인지, 아니면 어떤 동일한 메세지가 함의 되어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생각의 꼬리가 꼬리를 물어고 늘어지면, 그 자체로 소설이 될 것도 같고 말이에요. 다만, 타메코우 풍의 감각적 표현법이 있고, 비정상적 주인공들의 보편적 정서에 대해서 말하고 있긴 한 것 같습니다.

제가 타메코우님 작품 중에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라라의 결혼'입니다. 정발은 1권까지 됐고, 일본에서는 3권까지 발간된 것으로 알고 있는, 미완결 작품이죠. 'ZE'처럼 일본 발간과 정발 사이에 시차가 벌어지는 것 같아, 내심 언젠가는 다 보겠지... 마음을 내려놓고 있습니다.....(훌쩍 ㅠ.ㅜ)

'뻐꾸기의 꿈'은 뻐꾸기 3마리가 꾸는 꿈에 대한 이야기예요. 묘~하죠. 본디, 뻐꾸기라는 새는 원래 둥지의 주인을 몰아내고, 그 주인이 받았어야 하는 애정과 안락을 훔쳐 주인 행세를 하는 악역을 빗댈 때 사용되잖아요. 분명, 정상적이지 않고, 윤리적이지도 않죠. 하지만, '뻐꾸기의 꿈' 속 3마리 뻐꾸기를 보면, 뻐꾸기로 살아가는 그들이 안쓰럽고 치열해 보입니다. 그 안에는 가장 순수한 애정을 갈구하지만, 그 순수성에 대해서 결코 단정할 수 없는, 보편적 갈등이 담겨있기 때문일지도요.

첫 번째 뻐꾸기, 나츠카는 친동생의 자리를 차지한 뻐꾸기예요. 슈퍼 사장인 양부모에게 입양되어 자라는 동안 친동생이 생기지만, 집 안에서는 여전히 나츠카를 후계자로 여깁니다. 나츠카의 가족들은 나츠카를 다정하고 격식없이 대해주고, 언제나 '가족' 속 그의 자리를 비워둡니다. 하지만, 나츠카는 그 둥지 안에서 이질감을 느끼며, 권리 없는 행복과 자격 없는 자리를 받았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거칠어졌고, 학교에서 트러블이 생겼습니다. 그런 나츠카를 도와주고, 친구로서 함께해 준 사람이 바로 하쿠시마였어요.

나츠카는 하쿠시마를 좋아하고, 어쩌면 자신이 주인이 둥지를 함께 만들 수도 있을 거라고 바랐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츠카는 후쿠시마에게 고백도 하지 못하고,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도 밝히지 못하며, 친구로서 만족해야 했죠.

그 이유는, 하쿠시마가 이런 외모, 이런 집안, 이런 성적, 이런 성격이 아니었다면,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를 좋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무엇을 그 사람으로 정의해야 하는지는 난해한 문제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반문하게 되는 질문입니다. 사고로 외모를 잃어도, 집안이 망해도, 내가 더 이상 우수한 인기인이 아니어도, 지금처럼 한결같이 사랑받고 싶다. 사람은 그런 소망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물론, 정답은 없고, 그래서 아직도 돌고 도는 듯 합니다. 나츠카에게도 그랬을 테고요.

하지만, 상황이 바뀝니다. 하쿠시마의 영혼이 세노의 몸으로 들어갑니다. 세노의 육체를 지닌 하쿠시마는, 담배를 피우고, 문신을 했고, 닳고 닳은 게이였지만, 나츠카는 여전히 하쿠시마를 사랑하고 있었어요. 나츠카는, 과거 하지 못한 질문에 대해 확실한 답을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쿠시마가 '그' 그릇이 아니어도, 난 하쿠시마의 영혼, 그 자체의 본질을 사랑하고 있어!라고 말이죠.

두 번째 뻐꾸기, 바로 하쿠시마를 연기한 세노입니다. 나츠카는 한 사람을 사랑하면, 올인하는 스타일이었어요. 하쿠시마가 모르는 것이 이상 할 정도로, 언제나 하쿠시마를 바라보고 있었죠. 그래서, 하쿠시마 이외의 것들은, 하쿠시마와의 비교 대상일 뿐 그 자체로서 비치지 않습니다. 섹파인 세노에게도, 하쿠시마에게는 없고 세노만 있는 것들을, 무의식적으로 거부할 정도로 말이에요.

하지만, 세노는 하쿠시마에게 향하는 나츠키의 애정이 탐났습니다. 그 올곧은 시선을 받고 싶었죠. 하쿠시마는 '그릇'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지만, 세노는 그 애정이 주는 행복에 참과 거짓을 따질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내가 사랑을 받아 행복하다면, 그 소중한 것을 감사히 아껴주리라... 어쩌면, 하쿠시마의 고민은, 세노에게는 가진 것이 많은 자의 배부른 고민처럼 여겨졌을지도 몰라요.

그럼에도, 세노는 그렇게 그리고 그리던 나츠카의 다정한 손길을 거부합니다. 욕구만 해갈되면 그만이었던 그간의 정사와, 전혀 다른 그 몸짓을 견딜 수 없었죠. 세노는 세노로서 사랑받고 싶었으니까요. 세노는 이 둥지에서 자신이 불청객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지워내지 못합니다.

마지막 뻐꾸기, 하쿠시마예요. 하쿠시마는 형의 형수와 부정한 관계를 맺습니다. 실제로, 작품 내에는 자세히 나와있지 않지만, 하쿠시마의 집에 있는 형수의 물건들과 그 물건을 돌려 달라는 형수를 뻔뻔하다 분노하는 하쿠시마의 모습,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어져 온 그릇에 대한 고민 역시, 두 사람이 '좀 친한'관계는 아님을 추측하게 하죠. 무엇보다, 사건의 발단이 된 교통사고가 하쿠시마의 자해였다는 것만으로도 하쿠시마의 절박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쿠시마는 형이 주인인 둥지에서, 형의 여자를 탐낸 뻐꾸기였던 셈이죠. 후쿠시마는 교통사고가 나서 자신이 많이 다치게 되면, 예정된 형과 형수의 결혼식이 성사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깨어난 후쿠시마는 형수 노릇을 하기 위해 집을 찾은 '진짜' 형수를 만나게 됩니다. 그녀가 있는 둥지는 형의 둥지였고, 형수도 형의 것이었으니, 그것을 빼앗긴다고 해도 객은 억울해 할 수 없습니다. 후쿠시마가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자해였던 것처럼요.

원래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뭐가 있을까요? 누구 말대로 좋은 부모 아래 태어난 것도 나의 운이니, 부모의 재산도, 그로 인한 기회도, 마땅히 나의 것일까요? 틀리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딘가 반발감이 느껴지긴 하죠. 그 이유는, 노력 없이 우연히 얻은 것을 당연히 독점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 Crystal Clear한 답변이 아직까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나의 것이 아니라고 느껴지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 껄끄러운 일일 거예요.

그래서인지, 저는 이 장면이 많이 인상 깊었습니다. 후끈하지도, 절절하지도, 유쾌하지도 않은데, 잠시 멍~ 때리고 봤던 것 같아요.

왜 그럴까? 생각해 봤더니, 이 장면에는 '뻐꾸기'가 없더라고요. 세노와 나츠카가 있을 때는 세노가, 나츠카와 하쿠시마가 있을 때는 나츠카가, 거짓으로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연기합니다. 하지만, 이 병실은 속여야 하는 자도 없고, 속이고 싶은 자도 없는, 그냥 그 자체로 있어도 상관없는 장소였고, 그래서 이곳이 뻐꾸기가 주인인 둥지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뻐꾸기들은 이제 그 불편한 둥지에서 독립을 선언합니다. 나츠카는 슈퍼 후계자 자리를 고사하고, 세노와 함께 동거하며, 하쿠시마에게 게이라는 사실을 밝혀요. 세노는 '나츠카 스토커'에서 은퇴하고, 세노로서 나츠카의 흔들림 없는 시선을 받습니다.

세노는 하쿠시마에게 나츠카의 애정을 정말 몰랐냐고 묻습니다. 대답을 하지 못한 하쿠시마는 세노에게 다정한 나츠카의 모습을 바라보죠. 하쿠시마는 편안한 표정으로 웃으며 그들의 보금자리를 떠납니다. 나츠카의 애정도, 형수에 대한 연심도, 결국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는 듯이 말이에요.

예전에 안젤리나 졸리가 영화 시상식에서, '왜 나는 나이고, 난민은 난민인지 모르겠다.' 말한 것을 들은 적 있습니다. 왜 그들은 굶주리고 위협받고 있으며, 나는 이 화려한 시상식에서 스포트라이트와 갈채를 받고 있는가... 어쩌면, 뻐꾸기들은 억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도 뻐꾸기로 태어나고 싶지 않았어! 태어나 보니 뻐꾸기였고, 뻐꾸기로 살았을 뿐이야!라고 할지도요.

다만, '왜'라는 질문은 너무 현학적이니, 좀 더 쉬운 길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무엇을'이라는 말이에요. 세 뻐꾸기들이 그랬던 것처럼요. '뻐꾸기의 꿈'은 이 세 명의 뻐꾸기가 꾼 꿈 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모든 뻐꾸기들의 바람을 뜻하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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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연필

출간일: 2019.06.03

분량: 본편 4권

 

 

 

point 1 책갈피

"폐하, 이렇게 살아 폐하를 다시 뵈니 너무나도 기쁘지만...... 만일 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희, 어리석구나. 어찌 그런 말을 하지."

"......"

"네가 짐이었다면, 그때도 그리 생각했을 것 같으냐."

"폐하, 어찌...... 어찌 제가 그렇게 생각하겠습니까."

단우가 당치도 않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화인은 그를 더욱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기며 몸을 단단히 붙였다.

"한데 어찌 짐의 마음이 다르리라 생각하느냐."

"...... 저는 폐하를 연모하기 때문에, 저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폐하를 먼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폐하처럼, 대단한 분이 될 수 없는 것이겠지요."

그 말에 화인은 한숨처럼 웃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를 먼저 생각한다면, 그것이 연모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화진 국왕에게 그런 전갈을 받았을 때 그를 버린다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배제하고 구할 방법부터 생각했던 자신의 마음은 무엇일까.

가장 특별히 아끼던 수집품을 잃은 자가 할만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그것은 자신도 끔찍하리만큼 노골적으로 느껴왔다.

"...... 그렇다면, 우희."

"......"

"짐 역시 너를 연모하는 모양이다."

point 2 줄거리

기: 소국 화진과 대국 창이 화친을 맺으며, 화진의 창녕대군 위단우는 창의 볼모로 가게 된다. 그 후 청운궁에 머물게 된 단우는 하인들의 박대 속에서, 제대로 된 섭식, 관계, 배움도 없이, 고립된 채 서러운 생활을 한다. 그런 단우는 간혹 청운궁을 찾다가 아예 발길을 끊어버린 2황자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8년을 보낸다. 한편, 화진의 국왕이 화친을 깨고 창의 땅을 침범함하자 창의 황제는 단우를 불러 죄를 묻고 죽이려고 한다. 그때, 태자가 된 2황자가 나타난다.

승: 소국 화진은 제갈량의 현신이라 불리는 학자 한맹위를 얻고 창을 쳐 창의 땅을 얻었다. 태자는 이 한맹위를 창으로 데리고 온 상으로 단우를 요구하고, 화진의 대군 신분을 버린 단우는 동궁 내 연위궁에 머문다. 그러던 어느 날 태자의 정사를 엿보게 되고, 얼떨결에 함께 하게(?) 된 후, 단우는 태자의 총자가 된다. 그리고 태자의 지밀에서 나신으로 목줄을 차고 태자만을 기다리며, 성적으로 길들여지고 통제받는다. 그러던 중 황제와 태자는 광보성으로 떠난다.

전: 4황자는 그 틈에 연위궁을 찾아 단우를 모욕하고, 태자가 묶어준 정조대를 훼손시킨다. 한편, 황제는 정신을 잃어 급히 환궁한다. 황제의 병인은 중독이었고, 황제는 곧 병사한다. 그리고, 4황자의 친모인 귀비가 준 다식판에서 독이 발견되면서, 4황자는 모반죄로 죽는다. 황제가 된 태자는 단우를 은밀한 낙랑궁으로 옮기고 탐한다. 그때, 화진 왕비의 무사였던 윤상궁이 단우를 화진으로 도피시키려다 잡히는 사건이 발생하고, 단우는 황제의 계략을 알게 된다.

결: 불행한 인생의 원인이 황제라는 것을 알게 된 단우는 그를 거부하고, 황제는 폐가와 다름없는 영수궁으로 단우를 유폐한다. 단우는 반성하고 황제에게 돌아가지만, 곧 한맹위를 찾기 위해 창으로 온 화진의 사신단에 의해 붙잡혀 화진으로 간다. 황제는 한맹위의 신분으로 화진에 가 단우를 구하고, 단우는 천둥 트라우마 이면에 숨겨진 친부의 비극사를 기억해 낸다. 단우와 황제의 도움으로 화진은 새로운 왕을 맞는다. 창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산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불가역'과 '화중매'

베스트셀러 혹은 스테디셀러는 많고, 무공진님의 작품들 중에도 유명한 작품이 많지만, 세계관 주인공 서사 모두를 인정받는 작품은 많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점에서 무공진님의 '불가역'은 명작 중에 명작이죠.

'화중매'는 '불가역' 그 이후 창의 황실을 배경으로 합니다. 태조가 기틀을 잡았던 창천성, 태조의 마지막 전투가 있었던 광보성, 글과 그림에 빠져 있던 태조... '불가역'의 내용이 소록소록 떠오르죠. 또, 직접적이진 않지만, 탈 많았던 희매성, 매위가 좋아했던 하미과, 산이 피운 남령초 등 소재들도 간간이 등장해 소소한 재미를 선사해 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인을 보며 산을 오버랩하게 되는 부분들도 제법 있었어요.

그러면, '화중매'는 '불가역'의 후속작이나 아류작처럼 느껴지는가? 물으신다면, 아닙니다! '화중매'에는 '화중매'만의 매력이 있습니다.

일단, 산과 강은 감정적으로 건강했습니다.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을 수 있었죠. 다만, 그들 사이엔 '과거'의 역린이 아슬아슬하게 돋아 있었어요. 하지만, '화중매'에 두 사람은 감정적으로 건강하지 않습니다. 화인의 단우에 대한 소유욕은 아름다움에 대한 수집욕으로 시작해서, 통제욕을 거쳐, 마지막에서야 연심에 다다릅니다. 그 대상이 된 단우는, 화인의 총자일때도 연인일때도, 절대적 맹종을 보이죠.

제갈량의 버금가는 지략가이자 계략가, 하지만 그 우수한 이성의 산물도 결국은 감정을 가진 인간입니다. 화인은 심리적 허기를 심미적 만족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도자기, 보석, 심지어 사람까지도 아름다운 것들을 모아요. 겁 먹은 10살의 단우 역시 그렇게 눈에 띕니다. 화인은 단우를 진심으로 아끼는 윤영을 8년간 단우와 격리시켜 놓고, 청운궁에 단우를 방치한 채 간간이 찾아가 오아시스 같은 다정함을 쏟아부어 줍니다.

화진의 왕비와 밀약을 했으면서도, 유일한 구세주인 마냥 단우를 구해요. 그리고, 고립되어 제대로 배우지도, 사람을 사귀지도 못한 채, 백치가 된 단우을 성 노리개처럼 조련하죠. 그렇게 아낌 받는 것이, 단우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이자 유일무이한 상량함인 것처럼 말이에요. 화인이 도자기를 닦는데 들이는 시간은 줄어들고, 단우를 길들이는 시간은 늘어납니다. 그리고, 단우가 '진정한' 총자가 되자, 화인은 더 이상 도자기와 보석을 모으지 않죠.

또 다른 차이이자,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수 포지션입니다. '불가역'에 능력수, 얼마나 능력이 있느냐 하면 공을 덜덜 떨게 할 정도의 능력이죠. 천리안을 가지고 있고, 장서각의 책은 모조리 읽고도 결코 잊지 않는 비망의 재주를 가진, 하늘로 돌아갈 수 있는 귀한 신분! 아름다운 외모와 서화에 능한 사기캐예요. 강은 산에게 천하를 얻게 해 준 책사이자 치세를 돕는 든든한 내조자였어요. 두 명의 수 모두 똑같이 냉궁에 갇히지만, '불가역'에서 공이 사정해서 수를 데리고 왔다면, '화중매'에서는 수가 사정해서 공이 용서해 주는 모양새였죠.

반면, '화중매'는 수가 너무 백치 같다, 답답하다, 고구마다, 라는 리뷰를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그리고, 아마도 작가님은 그렇게 보이도록 의도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단우가 암굴에 갇혀 있다가 화인을 만났어도, 절대자처럼 느껴졌을 거예요. 하지만, 단우가 있었던 환경은 암굴보다 훨씬 냉혹했죠. 신분이 낮은 이들에게 음식과 같은 기본적 욕구를 저당잡힌 채 조롱당했고, 이런 서러운 삶에 유일한 출구였던 귀국의 꿈은 아버지가 자신을 버림으로써 끝났습니다. 사람은 있었지만, 자신과 대화해 줄 사람은 없었고, 문밖에 세상은 있었지만, 문을 열 수는 없었어요. 비록 이 모든 것이 화인이 꾸몄다 하더라도, 단우가 따뜻하게 대해 준 단 한 사람을 절대적으로 의존하지 않을 방법은 없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계략공의 레벨이 업! 합니다. '불가역'에서 산 역시, 처음부터 모든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일을 꾸미고 상황을 유도합니다. 하지만, 건국황인 산은 전쟁에서 칼을 들고 싸우는 황제였고, 화인은 무능한 선황을 몰아내고 창의 번영을 되찾아야 하는 지능형 암투가였죠. 산이 명민한 야수였다면, 화인은 괴물을 품은 선비라고 볼 수 있어요. 화인은 긴 시간 공을 들여, 어떠한 불필요한 손실 없이,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집니다. 무시무시해요.

그 대표적인 설정이 '한맹위'예요. 강건한 창은 무능하고 여색만 밝은 황제로 인해 지고 있고, 주변 소국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립니다. 소국의 황자들을 볼모로 잡고 있지만, 창의 근본적인 내실 문제는 나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화인은 트리거를 당겨요. 바로, 한맹위로 위장해서 화진의 황제에게 천하를 가질 수 있는 천기를 누설한 것! 화진은 청천성까지 창의 땅을 삼키고, 야심가인 화진의 국왕은 단꿈에 젖어들죠.

그때, 한맹위가 창에 억류됩니다. 그로부터 10년, 화진은 창과 화친이 깨진 상황에서, 더 이상 진격도 하지 못하는 사면초가에 빠져요. 한편, 화진에 영토를 빼앗기면서 창의 실태가 면면히 드러나고, 선황의 권위는 땅으로 떨어집니다. 하지만, 화인은 태사는 양위를 권고에도 불구하고, 되려 이를 사양하며 황제를 천천히 독살합니다. 주변국의 승냥이떼가 기회를 노리는 시국에, 내부에서 갑론을박의 양분화를 막아야 했으니, 효자로서 무탈히 황제에 오를 수를 노린 셈이죠.

단순히 SM을 동양풍으로 각색한 자극물이라기엔 볼거리도 풍성하고, 흥미진진한 서사도 '불가역' 못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천둥과 악몽이라는 복선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화진의 혁명에 명분을 제공하기 위해서든, 단우가 친부에게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든, 아니면 황제를 영수궁으로 가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든, 뭔가 쓰이다 만 느낌입니다. 초반부터 너무 의미심장하게 여러 번 등장한 것치고는, 살짝 바람 빠지는 것 같았어요.

※ 동일 작가의 다른 작품 리뷰

 

2020/09/24 - [BL 소설] - [시대물/인외존재/시리어스물] 불가역 - 무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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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30 - [BL 소설] - [현대물/연예계물/시리어스물] 소실점 - 무공진

 

[현대물/연예계물/시리어스물] 소실점 - 무공진

제목: 소실점 작가: 무공진 출판사: 연필 출간일: 2017.01.20 분량: 본편 5권 + 외전 1권 #point 1 한 줄 정말 많이 좋아하는 거면 그건 사랑하는 걸까. 이준은 스치듯 생각하며 작게 웃었다. 그래도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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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블래스트

출간일: 2020.05.07

분량: 본편 3권

 

point 1 책갈피

"나한테는... 가족이 중요해요."

맥주 캔을 쥔 인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럼 그렇지. 씁쓸한 마음에 맥주를 마시며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준원이 고기를 다시 뒤집는다. 기름이 떨어지며 숯에서 불이 후루룩 올라왔고, 익은 고기는 능숙하게 한쪽으로 옮겨 놨다.

"그래도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인우가 다시 고개를 돌려 준원을 바라봤다. 준원은 익은 고기를 접시에 덜어 놓은 뒤 눈을 맞추고 웃었다.

"인우씨 옆에 있을게요."

인우는 눈조차 깜빡일 수 없었다. 준원의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무조건 인우씨 편들어 줄게요. 내가 많이 좋아하니까."

그는 곧 아무렇지 않게 남은 고기를 올려놨다. 치이익- 고기 익어가는 소리가 사랑의 세레나데처럼 들렸다. 인우가 위로 올라가는 입술을 애써 감쳐물고 맥주를 입으로 가져갔다. 괜히 민망해져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이 반짝반짝 수두룩했다. 아, 왜 이러지? 이럴 리가 없는데. 서울 하늘에 저렇게 별이 많을 리가 없는데. 매일 보던 하늘도 땅도 나무들도 왜 달라 보이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point 2 줄거리

기: 엔조이 게이 라이프를 즐기며 살고 있던, 톱스타 배우 김인우는 야구 시구 차 야구장을 찾는다. 인우는 얼굴을 붉히며 팬을 자처하는 서준원을 보고, 호기롭게 자신의 시구볼을 치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서준원이 친 볼은 인우의 중요 부위로 직진하고, 인우는 국민 고자(?)가 된다. 준원은 사과하기 위해 인우가 입원한 병원을 찾는다. 그리고, 인우의 빨간(?) 요구를 받게 되고, 이런 자극을 처음 맞본 준원은 기절한다. 그 후 재도전(?) 끝에, 무사히 뜨밤을 보낸다.

승: 인원의 오랜 팬이었고, 인우를 많이 좋아했던 준원은 바로 고백한다. 하지만, 인우는 준원을 거절하고, 준원은 상처 입는다. 한편, 준원의 은퇴 소식이 터지고, 은퇴 사유로 인우가 거론되면서, 인우는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 어쩔 수 없이 인우는 준원을 만나 해명을 부탁한다. 하지만, 인우의 예상과 다르게 준원은 사과를 했고, 그런 순수한 모습을 본 인우는 준원과 만날 수 없는 이유를 솔직히 고백하고, 개의치 않는다면 만나자고 제의한다.

전: 두 사람의 연애는 시작되었다. 인우는 11자리 번호로만 저장되어 있는 수많은 섹파들을 정리하고 준원에게 정착하려 한다. 반면, 은퇴 후 제빵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떠날 예정했던 준원은, 한국에 빵집을 차리기로 계획을 선회한다. 한편, 인우는 오랜 염원인 윤태용 감독 작품 출연을 위해, 강원도에 은둔한 윤감독을 찾아가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고를 당해 쓰러진 윤감독을 구하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김원기와 윤감독 영화를 함께 찍게 된다.

결: 게이인 김원기는 인우의 난잡한 생활을 알고 있었고, 흥미 삼아 인우와 즐겨보려 수작질을 부린다. 한편, 인우의 전 섹파이자 준원의 친형인 영민은 둘 사이를 반대하지만, 준원은 오히려 가족들에게 인우와의 관계를 당당히 밝힌다. 그때, 인우의 섹스 동영상과 스토커가 나타나고, 윤감독 영화 캐스팅의 비밀이 드러나는 등의 사건사고가 발생하지만, 두 사람은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알콩달콩 사랑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What for?

사회생활은 무데뽀, 사생활은 동물남, 하지만 겉과 속이 똑같아서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백치수! 이런 인우가 저의 생활에 비타민이었을 때가 있었죠. 물론,한결같은 인우쟁이 준원이야 말할 것도 없고요. 어쩌면, 인우가 이렇게 투명하기 때문에, 연기를 잘 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알람이 안 울려도, '그' 시간이면 눈이 떠지는 것처럼, 다른 일을 하다가도 업댓 시간이 되면 자연스럽게 접속할 정도로, 열심히 챙겨 봤던 연재작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마지막에 fin이라는 글자를 봤을 때는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순간 fin tech인가?라는 엉뚱한 생각까지 들었을 정도였어요. 갑자기, 준원과 사랑을 외치며 끝납니다. 준원 집안과의 갈등이나, 의미심장한 서영민의 경고, 온갖 고초를 겪어가며 찍게 된 영화에 대한 마무리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연재작이란 작가의 일신상 혹은 출판사 사정이나, 단순히 새로운 작품에 필이 꽂혀서 등등 여러 이유로 허망하게 끝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실망은, 그 요일, 그 시간을 기다려 읽었던 독자의 몫입니다.

그러다 우연치 않게, 단행본을 읽게 되었습니다. 외전 형식으로나마 벌려 놓은 떡밥들을 회수해 놓으셨더라고요. 그나마 다행입니다. 김원기는 마약에 강간 미수, 동물 학대까지 했는데, 녹취 하나 약점으로 남겨 놓고 눈치 보며 종결! 영화는 그럭저럭 찍고 있음! 우리만 사랑하면 장땡이지! 가 아니라, 단행본 발간과 함께 더해진 외전에는, 옴팡지게 고생하는 김원기와 순항하고 있는 촬영, 인우의 선물공세에 한풀 꺾인 회장님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영민의 경고가 암시했던 사건들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순수한 염려였던 것으로...

인우는 아마도, 이렇게까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줄 몰랐을 거예요. 인우는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성공한 배우였고, 충분히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섹파들이 많이 있었죠. 욕구에 충실한 단세포 동물! 조금 부족한 지식과 상식, 더 부족한 수치심까지, 엔조이 게이 라이프를 부추겼을 거예요. 하지만, 자신과 전혀 다른 순정 곰탱이 서준원을 만납니다. 형과 섹파라고 해도, 동영상이 있다고 해도, 김원기가 인우의 난잡한 성생활을 고자질해도, 심지어 집안의 반대가 있어도, 흔들리는 척 조차 하지 않는 직진 순정 다정남말이에요.

인우가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지금까지와의 다른 삶이 시작됩니다. 하나는 연인으로서, 다른 하나는 배우로서의 삶이었죠. 성욕은 있어도 애욕은 없었던 인우는 한 사람에게 정착하려 합니다. 그러자, 지금까지 없었던 시련이 찾아와요. 젠틀한 섹파였던 영민은 인우를 걸레라고 부르며 무시하고, 섹스 동영상을 이유로 광고를 해지하려 하죠. 흔적도 없었던 과거 섹파는 스토킹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연예계에는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는 지뢰들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즐기는 생활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약점과 비난의 대상이 돼요.

배우로서 인우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윤감독의 영화에는 도무지 캐스팅되지 않았죠. 쫓아가면, 도망가는 윤감독이란 사람! 인우는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하고, 윤감독이 은신해 있는 강원도까지 찾아갑니다. 윤감독은 집에 없었고, 기다려도 오지 않았죠. 그때, 준원이 미심쩍은 흔적을 발견하고 윤감독의 사고를 추측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입원부터 보호자 소환까지, 놀라 덜덜 떠는 인우를 달래며 처리해 줘요. 물론, 깨어난 윤감독이, 생명의 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역할을 주진 않지만, 중요한 계기가 되긴 하죠.

더불어, 김원기가 마약사건을 덮기 위해 인우의 소속사와 계약하면서, 인우는 윤감독 작품의 무려 주연이 됩니다. 작은 역이라도 그저 감사했던 인우로서는, 고진감래라고 할밖에요. 그 애타는 구애의 몸짓이 빛을 봅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 역이 오롯이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김원기와 양대표의 찜찜한 거래가 있었다는 사실에 상처받습니다. 김원기는 웃는 낯으로 인우를 비웃고, 인우는 영화를 안 찍으려 하죠. 물론, 준원의 설득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에요.

살던 대로만 살 수 있으면, 편하지만 재미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절대적 다수는 살던 대로 살죠. 그래서, 정 반대의 사람을 만나, 살던 대로 살지 않으면서, 살던 대로의 방식으로부터 난관을 겪는 이야기는 흥미롭습니다. 게다가, 그 당사자가 우월한 외모와 재력을 지닌, 똘끼 충만한 육식남이라니! 저는 '순정 곰탱이'가 그런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이 이야기가 인우가 사랑을 깨닫는 과정이었나? 그럼 그간에 사랑을 느껴온 장면들은 뭐였지? 그냥 어느 날 보니, 생각보다 큰 사랑이었나? 연예계 일상물도 아니고... 뭘 쓰고 싶었던 거지? 제가 멘붕에 빠졌습니다.

캐릭터가 너무 사랑스럽고 매력적인이라, 더더 아쉬움이 짙은 작품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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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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