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처: 봄툰
분량: 본편 55화
point1: 한 컷
point2: 줄거리
기: 김승호는 히키코모리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집에 틀어 박힌 채, 게이앱을 통해 상대를 집으로 불러 일회성 섹스를 즐기는 것 이외는 누구도 만나지 않는다. 그런 승호 앞에 초등학교 동창인 나석주가 나타난다. '까만콩'이라는 불리며 주변에 따돌림을 받던 소심한 꼬봉은, 최고 명문대 인싸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승호를 밖으로 나가게 하고 싶었던 승호 엄마는 석주에게 하숙을 권유하고, 석주는 들 뜬 마음으로 수락하지만, 승호는 석주를 피하기만 한다.
승: 어린 석주는 아픈 어머니와, 그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두르다 떠나버린 아버지 사이에서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 했다. 석주 어머니와 친구였던 승호 어머니는 그런 석주를 챙기고, 승호 역시 석주를 데리고 놀아 줬다. 석주는 그런 승호를 우상으로 여기지만, 이사를 가게 된 후 볼 수 없었다. 다시 만난 승호는 너무 낯선 사람이 되어 있었고, 더 당황스러운 건 승호의 섹스 장면을 보고 흥분하는 자신이었다. 석주는 승호를 이성적으로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전: 석주는 승호에게 고백하지만, 승호는 석주를 밀어내기만 한다. 한편, 게이앱을 통해 만나게 된 강신우와 승호는 함께 일을 하게 되면서 깊은 사이로 발전하고, 승호는 자신의 과거를 털어 놓는다. 승호는 고등학교 시절 아웃팅 당하면서 끔찍한 집단 폭행을 당해 왔다. 그리고, 짝사랑했던 선배에게 조차 모멸 받았던 날, 승호는 교실 창문 아래로 뛰어 내린다. 그 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보험금으로 어머니가 식당을 시작하면서, 승호는 홀로 남게 되었던 것이다.
결: 승호는 매번 모질게 굴어도 포기하지 않는 석주에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우여곡절 끝에 승호는, 결국 신우와 관계를 정리하고 석주와 사귄다. 한편, 석주는 친구인 유한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석주를 좋아하는 유한은 석주를 생일파티에 불러 약을 먹여 강간하려 한다. 석주는 다행히 탈출하지만, 유한의 형에 의해 사고를 당해 부상을 입는다. 승호는 석주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집 밖으로 나와 석주를 찾는다. 승호는 세상으로 나왔고, 석주에게는 가족이 생겼다.
point3 진지충의 review: 인간은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낄 때에만 용기를 얻는다. - 알프레드 아들러
자존심이 도대체 뭘까요? 어릴 때는 '이기는 것=자존심'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소한 말싸움, 미묘한 차별대우, 하대하는 태도들을 못 견뎌 했습니다. 자다가도 분한 마음에 씩씩거리며 일어났죠. 입은 '공평'과 '정의'에 대해 말했지만, 마음 속 가장 밑바닥에는 '동등한'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것으로 나를 대해주세요!라는 이기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을 경계로 '자존감=자존심'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만큼 살아가는 원동력이 절실 해 졌습니다.
내가 존재한다는 감각, 나의 존재를 실감한다는 것, 나의 무게감을 느낀다는 것, 어딘가에 안정적으로 뿌리 내리고 싶은 욕구, 그걸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자존심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일과 돈은 무거운데, 그 일을 하고 돈을 버는 나의 존재는 깃털 처럼 가벼울 때가 있습니다. 철 없던 시절의 '자존심'보다 지금 더 '자존심'을 지키기 힘든 것 같은데.. 이건 그저 느낌적인 느낌 일 뿐일까요?
'까만콩'에는 잘 난 사람이 많이 나옵니다. 돈이 썩어나는 재벌 3세 김유한, 회사에서 존경 받는 선배이자 유능한 직원인 강신우, 최고 명문대 공대생 나석주... 모두 타인들이 선망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돈, 능력, 스팩 플러스 꿀리지 않는 외모의 소유자들이죠. 하지만, 용기가 필요한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승호에게는 해야 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밖으로 나가는 것'이 었어요. 손으로 문고리를 잡아 돌리고, 발을 현관문 밖으로 딛는 행동, 누군가에게 매일 습관처럼 반복되는 행위지만 승호에게는 쉽지 않았습니다. 승호 앞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고, 그건 승호의 왜곡된 기억과 누적된 공포였죠. 그래서 문 밖은 늘 무섭고 끔찍한 짐승들의 세상이었고, 문 안은 안전한 쉼터였어요.
하지만, 그 문 밖에 '석주'라는 존재가, 승호에게 보이지 않은 벽을 넘을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그제서야 승호는 자신이 기억하는 모습과 다른 가해자들의 얼굴을 SNS에서 확인하죠. 과거의 비극은 없어지지 않지만, 현재 문에 빗장을 걸 수도 없어요. 승호는 나옵니다. 그리고 행복해져요.
하지만, 유한이나 신우, 석주는 승호와 다릅니다.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해야 하는 일'이었거든요.
유한은 존경하던 첫째형이 사랑하는 동성의 애인을 버리고, 아버지의 기대에 따라 사는 것을 지켜봤죠. 형은 잘 사는 것 처럼 보였지만, 실은 잘 살지 않았어요. 유한은 형처럼 살고 싶지 않았고, 난봉꾼이 되어 모범생인 형과 다른 삶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실상 다를 바 없었어요. 유한은 석주에게 자신이 게이인 것도, 문란한 것도, 석주를 좋아한다는 것도, 모두 말 할 수 없었거든요. 그래야 '친구'라도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신우 역시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을 두려워 합니다. 진심을 다하는 것의 끝은 씁쓸하고, 그 쓴맛을 견딜 자신은 없었죠. 그리고, 자신의 아웃팅을 기다리는 여동생에게조차도 게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못해요.
그런면에서 석주는 용감한 편이예요. 아니면, 애당초 김승호 성애자다보니 세삼스러울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지만요. 하지만, 석주에게도 해야 하지만 하지 않는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버지를 용서하는 일이었어요. 석주는 아버지를 사랑했지만 끝내 버림 받은 어머니를 기억하고 있어요. 그리고 더 이상 아버지의 폭력에 움추려 떨던 꼬마가 아니었죠. 그런 석주에게 죽어가는 아버지는 연락을 합니다.
승호가 밖에 나가기 위해 고통스러운 기억을 마주해야 했던 것 처럼, 석주 역시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 숨어서 맞는 엄마를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던 검은콩 석주를 마주해야만 했죠. 사실, 석주가 아버지를 만나러 가지 않겠다고 결정 했던 것은, 죽을 떄가 되서야 마음에 짐을 덜려하는 그 이기심에 분노 한 것인지, 아니면 단지 무서웠을 뿐인지, 혹은 둘 다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소우 미츠아키 'SEASON'에서 리뷰 했던 것 처럼, '당신의 가치'를 정하는 것은 '당신'이 아닙니다. '검은콩'에 극적인 반전은 없습니다. 신우는 계속 회사를 다니고, 유한은 아버지 회사에서 본부장이 되어 첫째형처럼 살아요. 승호는 집에서 그림을 그리고, 석주는 회사원이 됩니다.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숨기지 않습니다. 그렇게 바뀔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된다고 말해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신우는 희성을 만나고, 유한은 석주에게 용서를 받습니다. 그리고 석주는 아버지를 만나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가족이 되어 주겠다고 말하는 승호의 청혼을 수락하죠.
'인간은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낄 때에만 용기를 얻는다.' 누군가 용기를 내지 못하고 머뭇거릴 때, '험한 세상 어떻게 살래?' 라고 모진 말로 밀어내지 말고, 얼마나 당신이 나에게 가치 있는 사람인지 말해 줘야겠습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용기를 주는 일이 아니라 자존감을 느끼게 해주는 일일테니까요. 그리고 내가 용기를 내지 못하고 낙담해 있을 때, 비어 버린 건 용기 주머니가 아니라 자존감 주머니라고 다독여 줘야 겠습니다.
물론, 나의 가치를 정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아쉬운대로 셀프 땜빵이라도 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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