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시크노블

출간일: 2017.03.29

분량: 본편 1권 + 외전 2권

 

 

 

 

 

 

point 1 책갈피

도영은 지쳐서 발을 멈추고 숨을 고르며 뒤돌아봤다. 깨지고 뭉개져 상처가 난 모양이 꼭, 자신의 가슴속 깊은 곳과 닮은 전구들이 널려 있었다. 그 알알이 생명력 없는 것들을 그제야 발견했다.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문제의 해답은 생각의 테두리를 조금 벗어난 곳에 있었다.

도영은 비로소 깨달았다. 빛은 안에서도 출발할 수 있다는 걸. 바깥에서 빛을 나눠 주지 않는다면 내가 빛을 만들면 돼. 그래도 부족하면 밖에 나가자.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면 터널의 천장을 뚫고 나가면 돼. 전구들이 빛을 비추어 나아갈 길을 알려 줄거야. 그럼 너는 터널 위에서 나를 기다리다 어서 올라오라며 손을 뻗어 주겠지.

point 2 줄거리

기: 도영은 우성과 대학동기로 허름한 빌라 옆 집에 사는 이웃이다. 인기 많고 당당한 네모 우성을, 세모 도영은 불편해 한다. 그러던 어느날 도영은 우성과 함께 듣는 수업에서 우성과 한 팀이 되고, 휴학을 한다고 우발적으로 말한채 자리를 피했다. 그 후 도영은 맹장염으로 쓰러지고, 우연히 집으로 들어가던 우성은 옆집 열린 문틈으로 쓰러진 도영을 발견해 병원에 데려간다. 우성은 수술 이후도 도영을 찾아와 돌봐준다. 퇴원 후 도영은 고마운 마음에 우성에게 밥을 사고, 우성은 간혹 도영을 찾는 대면대면한 관계가 된다.

승: 결국 도영은 휴학을 한다. 어느날 도영은 억울하게 치한으로 몰리지만, 가족과 절연해서 연락할 사람이 없어 우성에게 연락을 한다. 우성은 도영을 도와주고, 도영은 우성 앞에서 서럽게 운다. 이후 우성은 틈 날때마다 도영의 식사를 챙겨 주기 시작한다. 한편, 누나 결혼식에 용기내어 찾아간 도영은 가족들의 냉대를 받고, 결혼식을 보지 못한채 돌아온다. 시름시름 앓는 도영을 돌봐 주는 우성에게, 도영은 게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우성은 도영을 피하지 않고 한결같이 대한다.

전: 도영은 병원장 아버지와 미술관장 어머니 사이에서 막내아들로 귀여움을 받았다. 도영은 학창시절 동성애에 편견이 없다고 말하는 친구를 믿고 아웃팅을 했고, 그 친구는 도영의 부모님을 찾아가 도영이 게이라고 이른다. 가족들을 도영을 치료하려고 했지만, 도영은 바뀔 수 없었고 홀로 허름한 빌라에 살게 되었던 것이다. 아웃팅 한 후, 도영이 틀리지 않다고 인정해 준 유일한 사람인, 우성에게 도영은 마음을 연다. 솔찍한 도영은 너무 귀여웠고, 우성은 귀여운 도영이 좋아졌다.

결: 우성은 도영에게 좋아한다고 고백을 한다. 세모의 세상도 모르면서 세모가 되려는 우성을 도영은 밀어낸다. 하지만, 이미 일상에 깊이 물든 우성을 싫어 할 수 없었다. 도영과 우성은 곧 연인이 된다. 한편, 도영은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에 찾아가지만, 가족들의 박대를 받는다. 도영은 자신이 세모이기 때문에 받는 괴로움을 우성이 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헤어지자고 하지만, 우성은 그런 도영의 곁에서 도영이 그저 다를뿐이라고 말해준다. 도영은 용기를 내 가족들을 찾아간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평행선, 그렇지만 언제라도 발을 멈추면 접점이 생길 수 있다.

깅기님의 소설은 은유와 비유가 많아, 몽환적인 분위기가 느껴지곤 합니다. 도형이 가득한 가상의 공간, 작은 사물로 비유되는 비일상적 장면들, 그곳에 묻어나는 주인공의 고뇌가 그런 분위기를 이끌어내요.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내용은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입니다. 덩어리 진 지점토를 비틀어야 그 점성을 알 수 있는 것 처럼, 이런 깅기님의 '일상 비틀기'는 너무 흔하고 평범한 일상의 일면을 되세김질 하게 만들어 주죠.

'네가 네모인 세상' 역시 네모로 이루어진 세상에 성소수자인 세모로 살아야 하는 도영이 우성을 만나 서로의 별이 되는 이야기를 통해, '다른 것'의 모양을 보여줍니다. 네모로 열 맞춰진 도형판에서 세모는 쓸데 없고 이상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세모와 세모가 모이면 네모도 되고 별도 될 수 있죠. 정형화 된 틀로 가득찬 세상에서, 우성은 겁쟁이 도영을 훌쩍 끌어내, 별이 반짝이는 광활한 우주 아래로 놓아둡니다. 함께 별을 보는 두 뒷모습이 그려지는 잔잔한 여운을 느끼며 소설을 마무리 되요.

하지만, 이 소설이 감동을 주는 이유는, 단지 세상에 섞이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떠돌던 도영이 우성이라는 등대를 만나 닻을 내리는 해피엔딩 때문은 아닙니다. 도영은 우성을 보고, 평행선이라고 합니다. 세모는 세모의 길을 가고 네모는 네모의 길을 가서 서로 마주칠 수도, 이해 할 수도 없어요. 그런데 이런 평행선은 단지 이성애자 네모와 성수수자 세모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노동자 부모 네모와 대학생 아들 세모, '치료'를 바라는 사랑 네모와 '인정'을 바라는 사랑 세모, 그리고 현생에서 뽀족이며 나를 찌르는 많은 세모와 네모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나'에 대해서 묻습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그래서 '나'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나름대로의 답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우리'를 만들어가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는 '우리', 꿈이 같았던 '우리', 공통점이 많았던 '우리'말이예요.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니 전혀 다른 것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들' 속에 들어가 '그들'에게 '우리'로 인정 받는 과정이 필요하죠. 공부를 열심히 한다. 친절해야 한다. 약자를 챙기고, 바른말을 할 수 있는 정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분명, 이런 '모범'의 정의가 존재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그들'의 '모범'은 내가 전혀 모르는 '무엇'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조직 문화'라던데, '문화'의 정의도 이제껏 알던 것과 다른 것 같죠.

그래도, 시계 속 부품이 무브먼트를 탈출하면 그저 무용한 알갱이에 불과하니, 사방의 톱니바퀴와 맞춰가며 모난 부분은 깎아내고 부족한 부분은 덧대가며 삽니다. 반듯한 네모들이 각 잡고 도열한 틈에, 똑같은 모양과 색깔에 네모가 되길 바라며 말이예요. 어느 순간 노력을 하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고, 되려 누군가의 '다름'이 불편하게 느껴져 자연스레 비난을 하게 될 때, 아... 내가 네모가 됐구나!란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해 지는 것은 세모였던 내가 썩 싫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애당초, 세모가 더 좋은지 네모가 더 좋은지 내가 선택했었나? 그냥 네모로 살아야 할 줄 알았지. 그래서, 세모를 비난하다보다. 내가 못했는데, 누군가는 세모로 당당히 살까봐. 뭐, 그런 생각도 듭니다.

대학가는 아들을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는 우성의 부모, 동성애를 고백한 아들에게 치료를 권하는 도영의 부모... 소름끼치게도 현생의 일면입니다. 오메가버스를 처음 접했을 때, 어쩌면 작가는 그 흔함을 판타지로 만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뀔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결코 바뀌지 않는 것이 있어요. 자신의 경험만을 유일한 진실로 믿는 부모님의 생각입니다. 그분들의 살았던 삶은 바뀔 수 없고, 그 삶을 통해서 얻은 깨달음 역시 바뀌지 않아요.

결국, 다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바꾸는 노력이 아니라 벗어나는 시도가 필요하지만, 그것이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눈뜨고 처음 본 사람도, 처음 꺼낸 말도,처음 먹은 음식도 가장 많이 먹은 밥도, 세상을 보는 안경이 되어준 사람 역시 부모님이죠. 부모님이 네모인 세상에 세모로 사는 것은 그래서 '잘 못 되었다.'로 쉽게 귀결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네모와 세모가 함께 공존하기 위해서 꼭 한쪽이 변해야 할까요? 네모를 비난하는 세모도, 세모를 비난하는 네모도, 서로 바뀌라 다투는 그 논쟁들이 반드시 필요한 걸까요? '네가 네모인 세상'이 왜 '내가 세모인 세상'도 아니고 '네가 세모인 세상'도 아닐까요? 결국은, 없었던 것도 필요한 것도 '접점'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떠밀려가는 속도에 잠시 서서, 반대편을 직시하고 이해하려는 침묵의 시간말이예요.

어쩌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멀고 힘든 답만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시리어스 모드에도, '네가 네모인 세상'을 '시리어스물'이 아닌 '달달물'로 분류한 이유는, 두 편의 외전 때문입니다. 6남매 장남이 도저히 가질 수 없는, 막내 도련님의 본태성 귀염질(?)을 마음껏 감상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이해심과 돌봄을 탑재한 우성의 다정함은 말해 뭐하겠습니까? 포도당 사탕을 챙겨 먹지 않아도 정신이 번쩍 드는 달달로, 본편의 다소 씁쓸함을 입맛을 씻어 낼 수 있습니다. 마치, 잘 차려진 한상차림의 디저트처럼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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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고럼팩토리

출간일: 2020.11.11

분량: 본편 3권

 

 

 

 

 

 

 

 

point 1 책갈피

시동이 사라지고 이화수는 고개를 수그렸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은월검이 쥐어져 있었다. 마치 평범한 것처럼 무명천으로 둘둘 감싼 그 검은 검집 안에 있어도 검신의 싸늘한 기색을 고스란히 전해 주었다.

정말로 주룡진이 자신을 이용해 죽기를 바랐단 말인가?

아니, 아니다. 그는 단지......

'......음, 나조차도 예상 못 한 일이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아.'

'그러니까 왜?'

'네게 무언가를 요구받는 게 좋아서?'

좋아서.

그 모든 것들이 좋아서 그랬나 보다.

이화수는 그 검을 집어 들고 스르르 일어났다.

point 2 줄거리

기: 화산파 이화영의 유일한 후계자 이화수는 자신을 납치하려는 마교주 주룡진을 피해 달아나지만 실패하고, 천신궁으로 끌려간다. 파천신공을 익힌 주룡진은 천하제일의 무공을 얻었지만 그 부작용으로 마기를 다스리기 어려워지자, 명문세가나 도가의 자제들을 납치해 겁간하며 양기를 얻어왔던 것이다. 화수 이전에 끌려온 명문세가의 자제들은 죽거나 주룡진의 애첩이 되어 살고 있었다. 한편, 주룡진은 화산파의 봉마주혈로 날뛰는 마기를 진전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승: 유용함이 증명 된 화수는 겁간의 위기에 벗어나지만, 주룡진에게 집착하는 당서란에게 시기의 대상이 된다. 화수는 정기적으로 주룡진에게 봉마주혈을 시전하며, 탈출을 위해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런 화수에게 주룡진은 자신의 보검 은월검을 준다. 당서란은 고고한척 하는 화수를 타락시키기 위해 미약을 먹이고, 주룡진과 화수는 뜨밤을 보내지만, 화수는 약이 취해 기억하지 못한다. 한편, 화수의 호위모사 해무영은 화수를 구출하기 위해 방법을 강구한다.

전: 주룡진은 그날 밤 이후 화수에게 애정을 보이고, 그런 주룡진을 대하며 화수 역시 변하기 시작하지만 그 실체를 몰라 혼란스러워 한다. 그러던 중 해무영은 비밀통로를 찾아 화수를 탈출시키지만, 곧 주룡진에게 붙잡힌다. 주룡진은 부상 입은 해무영을 인질로 화수의 몸을 탐하고, 성교를 통해 선기와 마기가 교차되면서 두 사람은 황홀경을 느낀다. 주룡진은 화수를 더더욱 아끼지만, 화수는 그 열락을 느낄수록 마음이 공동화 되어 생에 의지를 잃는다.

결: 한편, 무림맹은 결사대를 조직하여 주룡진이 자리를 비운 틈에 화수와 해무영를 구한다. 이 소식을 들은 주룡진은 천신궁으로 돌아와 화수가 없는 것을 보고, 분노하여 마기가 폭팔한 광마가 된다. 이성을 잃은 광마는 무림으로 화수를 찾아오고, 많은 무림인들이 목숨을 잃는다. 마지막 보루인 파마진 마저 실패한 위기의 순간, 화수는 시종을 통해 전해 받은 은월검을 들고 나타난다. 화수는 주룡진을 살리고 싶은 염원으로 화신의 경지에 이르고, 주룡진의 단전을 파훼한다. 화수는 주룡진과 함께 천신궁으로 돌아간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짐승'... 그리고 '무림기연'

유명한 작품은 많고, 그 중 일부 잘 쓴 작품, 또 그 중 일부 오랫동안 기억나는 작품, 그리고 그 안에서 몇몇만이 인생작이 됩니다. 사람의 사귐과 참 비슷하죠? 말이 통하는 사람들, 그 중 일부가 좋은사람, 또 그 중에 일부 진국, 그 안에서 소수만이 내 인생의 동행자가 되는 것 처럼요. 만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작품들... 그 인생작 중 한 작품은 분명 이순정님의 '짐승'입니다.

신작 '무림기연'을 읽으면서 '짐승'이 떠오른 이유는 본능적 공과 사회적 수의 조합이나 공이 쉽게 인정하는 애정을 어렵게 받아드릴 수 밖에 없는 수의 도덕관이 유사하기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짐승'과 같은 3권의 분량이었음에도 무협물이라 풀어야 할 시대배경과 관계설정이 많아서 였을까요? 이순정님의 강점인 입체적 인물들이 섭섭 할 정도로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고, 회수못한 떡밥은 없었지만 허무한 떡밥은 많았습니다. 그 분량 내에선 최선이었겠지만, 애당초 3권의 분량이 너무 적지 않았나 싶어요.

저는 이순정님의 입체적 인물묘사를 정말 좋아합니다. 선악과 시비를 나눌 수 없는, 복합적이고 복층적인 인물을 표현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재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당서란'이나 '백효조', '장태주'라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그저 소비되어 버린 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누구보다 정파의 자부심이 강했기 때문에, 더 많이 엇나가고 망가져야만 살아 질 수 있었던 당서란의 '집착'이나, 생명이나 평온한 미래보다 더 갈구했던 백효소의 '소속감', 차가운 바위여야 했지만 실은 지하를 잠잠히 흐르던 마그마 같던 장태주의 '애정'이,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이 쓰입니다. 천금궁이라는 특수한 공간 속에 감금된채 죽어가는 이들을 보며 생존해야만 했던 너무나 다른 인물들의 이면들이 묻힌 것 같아서요.

한편, 공수의 캐릭터는 매우 선명합니다. 주룡진 예쁘고 강한 것을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것은 마땅히 가져야하고, 가지는 방법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습니다. 곁에 두고, 좋은 것을 주고, 도망가면 잡아옵니다. 마치, '짐승'의 사내가 생각이 나죠. 반면, 이화수의 삶은 아버지 이화영의 그림자였어요. 이화영은 화산파 비원인 매령환무검을 통달하지 못해 사랑하는 여자를 떠나보내고 우수한 무재를 낳기 위해 애정 없는 결혼을 해요. 그렇게 태어난 이하수의 존재 가치는 오로지 매령환무검뿐이었죠. 화수는 세상과 단절 된 채 갇혀, 폭행에 가까운 채벌을 받으며 무술을 연마하고, 매령환무검을 익히지 못한 화수가 이루낸 모든 것들은 인정 받지 못합니다. 가문이 유일한 척도였던 지언처럼, 삶의 선택할 자유는 박탈되요. 정확히는 가져 본 적조차 없죠.

하지만, 주룡진은 사내와 달리 노련한 수장이었고 이화수 역시 도련님 특유의 솔찍하고 제멋대로인 일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룡진은 사내와 달리 화수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알고 꾀어 낼 수 있었고, 화수는 지언처럼 극도로 피폐한 선택을 하기 전에 주룡진에 대한 애정을 인정합니다. 좀 순해진 '짐승'과 부러지지 않고 휘어진 '선비' 같은 느낌이랄까요. 이야기가 너무 무겁지 않게 깊이를 조절하는 것도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짐승'을 읽고 폭팔 할 듯 샘솟던 사념이 '무림기연'에서 너무도 잔잔한 것이, 저로서는 지난 작품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어지네요.

주룡진은 옥루정에 갇혀 파천신공을 익힙니다. 마치, 화산에 갇혀 매령환무검을 익혀야 했던 화수처럼요. 단지, 주룡진은 화수와 달리 성공하여 옥루정을 나오죠. 하지만, 절정고수의 무공임에도 파천신공을 익힌자가 없는 이유는 마기를 잡기 어렵고, 마기을 잡지 못해 주화입마에 들면, 광마 혹은 광신이 되어 인간성을 잃고 살인귀가 되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강제로 익혀야 했던 무공의 부작용에 시달리던 주룡진에게, 그 무공으로 얻은 권력을 누리는 것 역시 당연했는지도 모릅니다. 양기를 채우기 위해, 정파 제자와 자제들을 납치해와 겁탈하고 죽이면서도 주룡진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요.

주룡진은 죽은자들을 대신 할 자들이 계속 납치하고, 공력이 높아 기력이 빨리고도 살아 남은 자들은 기어코 살려내요. 치욕스러운 겁간에 몇번이고 도망치고 자진하지만 다시 운우정에서 눈을 떠야만 했던 위세높은 공자들은, 서서히 살기 위해 스스로 주룡진에게 길들여지는 쪽을 선택합니다. 그러다 화수가 나타나죠. 성교가 아닌 방식으로, 여러명이 간신이 잠재울 수 있었던 마기를 홀로 진정시킬 수 있는 사람... 화수는 주룡진에게 가장 귀한 사람으로 대접을 받습니다. 망가지지 않은채, 이제는 자신들이 말할 수 없는 고고한 사변(思辨)을 내뱉으며, 천금궁에서 호위호식하는 자... 화수의 등장은 운우정에 숨죽여 살던 많은 이들을 흔들어 버리죠.

심지어 주룡진 조차도 말이예요. 주룡진은 들끓던 마기가 화수의 선기에 의해 잠잠해지자, 그간 느끼지 못했던 인간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상처받고, 삐지고, 보고싶고, 주고싶은... 만약 언젠가 죽게 된다면 꼭 너였으면 좋겠다는 바람까지... 화산에 갇혀, 친우 한명과 호위 한명이 인간관계의 전부였던 화수 역시 그런 주룡진의 변화에 함께 울렁거리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 감정들은 화수의 정파 후계자로서 쌓아 왔던 도덕관이라는 허들을 넘지 못합니다. 미약을 먹고 주룡진과 잠을 잤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해무영을 살리기 위해 주룡진과 한 침대를 쓰기 시작하면서 화수는 텅빈 인형이 되어버리죠.

'무림기연'은 분명 BL장르에서 보기 힘든 제대로 된 무협물입니다. 그럼에도 분량의 한계인지, 주요전개가 너무 후다닥 진행 된 느낌이 있습니다. 화수가 주룡진이 준 영물을 잘 받아 먹고, 영기가 가득찬 천금궁에서 수련을 게을리지 하지도 않았으니, 매령환무검을 통달 한 것이야 그럴 수 있다치지만, 화신등장은... 사랑은 무한의 위대함이라고 이해해야할까요. 어쨌든 극적 반전을 위해서라지만, 화산파 후계자 한명을 살리고자 무림맹이 거의 전멸하고, 광마가 된 주룡진을 살리기 위해 화신의 경지에 도달한 화수는, 주룡진의 단전을 파훼하고 그를 데리고 천금궁에 돌아갑니다.

무림을 떨게 한 광마도 사라졌고, 이제 그가 더 이상 정파의 젊은이를 납치 할 일도 없어졌죠. 이화영은 후계자를 잃었지만, 평생 염원했던 매령환무겸과 화신을 보게 되고, 화수는 자유와 사랑을 찾습니다. 해피엔딩이죠. 그런데 왜 이리 찜찜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주인공만 좋으면 장땡인 할리우드 영화 엔딩 크레딧을 보는 기분이랄까요.

결론은, '역시 이순정! 하지만 아쉽다.' 입니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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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이클립스

출간일: 2018.02.14

분량: 본편 1권

 

 

 

 

 

 

 

 

point 1 책갈피

"사랑해"

청량한 웃음 끝에 이어지는 하나의 수순같은 저 말. 늘 듣는 말인데도 들을 때마다 두가지의 감정이 양극단으로 나를 옭아맨다. 하나는 이상한 설렘으로, 다른 하나는 미칠 것 같은 분노로.

너의 사랑은 나를 좀먹어 들어가고 있어.

나날이 썩어서, 그 껍데기만 남게 되겠지.

언젠가 그것마저 썩어 버리면, 너는 어떤 표정일까.

"나도"

녀석의 말에 부드럽게 대꾸하며 나는 추악하게 쓴 가면 밑으로 떨리는 감정을 숨겼다.

그리고 녀석의 사랑한다는 말에 오늘도 활짝 웃었다.

point 2 줄거리

기: 수혁과 영우는 배다른 형제지만, 수혁은 영우를 살뜰히 챙기고 영우도 수혁에게 의지한 채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어느날 고등학교 동창인 지철이 제대하고, 전화와 외출을 싫어하는 영우도 제대 축하 모임에 나간다. 그리고 그 다음날 평소 수혁을 의식해 영우에게 말을 걸지 않았던 학과 동기들이 영우에게 축제를 도와달라고 한다. 수혁은 타인과 교류하려하는 영우에게 갑자기 난폭하게 굴며 당황스러운 스킨쉽을 한다. 영우는 그런 수혁을 달래면서도 뭔가 어긋났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승: 한편, 고등학교 시절부터 영우를 좋아했던 지철은 수혁으로부터 영우를 탈출시키려하고, 그런 지철이 영우의 앞에 나타날때마다 수혁 집착은 점점 심해진다. 그러던 어느날 지철은 영우를 데리고 무작정 속초로 떠나고, 영우를 찾아온 수혁은 지철을 폭행한다. 서울에 올라온 영우는 지철이 입원한 병원에 찾아가 수혁을 대신해 용서를 빌지만, 그런 영우에게 지철은 본인만 모르는 '사실'을 알려준다. 혼란을 느낀 영우는 수혁에게 따로 살자고 제안한다.

전: 수혁은 영우를 감금하고, 영우는 수혁에게 길들여지면서도 탈출을 노린다. 그리고 수혁이 잠든사이 영우는 탈출에 성공하고, 지철에게 전화한다. 지철은 수혁이 가스폭팔사고를 가장해서 영우를 죽였다고 속이고 장례식까지 치렀다고 알려준다. 지철은 영우를 외가로 피신시키고, 영우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한편, 영우는 자신이 죽은후 어머니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병원으로 가지만, 어머니를 보기 전에 수혁에게 다시 잡혀 온다.

결: 영우는 수혁이 영우를 가지기 위해서 했던 일들과, 자신이 잊고 있었던 원죄에게 관하여 듣게 된다. 충격에 쓰러진 영우는 기억을 잃는다. 그리고, 그런 영우에게 수혁은 다시 거짓말을 시작한다.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영우는 몸이 약해 밖에 나갈 수 없다고 알려준다. 수혁은 영우를 다시 길들이기 시작하고, 스스로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된 영우는 수혁이 준 안락한 감옥에서 수혁을 사랑하게 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원색적 피폐물

개정증보판으로 e-book발간이 된지도 제법 되지만, '꼭두각시'는 훨~~ 씬~~ 이전에 쓰여진 작품입니다. 그래서 '옛날 냄새'가 많이나요. 피폐물에도 트렌드라는 것이 있어, 똑같은 감금이고 근친물이여도 분위기가 좀 다릅니다. 좋은말로 '집착'에만 포커스를 맞춘 농도 진한 피폐물이고, 나쁜말로는 세련미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어요.

'꼭두각시'는 BL판 '미저리'입니다. 눅눅하고 어둑한 공간, 비정상을 숨기지 않는 노골적 행동과 도망치지 않는 소극적 사냥물... 제대로 압박감 오는 전개지만, 한편으로는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분위기'가 느끼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것저것 머리쓰지 않고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원색적이고 직접적인 배덕감, 피폐감, 공포감 말이예요. 그런점에서 '꼭두각시'는 정말 좋은 작품입니다.

많은 계략 집착공들이 수의 인생을 설계(?)하긴 하지만, 그런경우 공은 월등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돈이든, 지위든, 아니면 수를 원활하게 통제가능한 초월적 능력이든 말이죠. 그러고도, '트루먼쇼'처럼 완벽하게 개인을 속이는 것 쉽지 않기 때문에, '자낮수'를 설정하거나 공에 대한 맹신, 냉정한 판단이 어려울 정도로 급박하고 절실한 상황을 깔아 놓습니다. 하지만, '꼭두각시'는 쿨하게 이 과정을 패스하죠.

수혁과 영우는 배다른 형제예요. 영우는 본부인의 아들이었고, 수혁은 밖에서 낳아 온 아이였죠. 수혁의 어머니는 수혁의 아버지를 가지기 위해, 수혁의 아버지 앞에서는 가련한 여자를 연기하고, 아버지를 만나기 위한 목적으로서 수혁을 대합니다. 그리고, 뒤에서는 영우의 어머니를 스토킹하며 협박도 서슴치않죠.

영우는 어릴때 아버지와 함께 수혁을 만나러 갔습니다. 몸이 안 좋았던 수혁의 어머니는, 자신이 죽은 뒤 수혁을 거둬달라고 말하고, 그 이야기를 들은 영우는 아줌마가 죽으면 수혁과 함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상식적이고 소심한 모범생인...영우는 우발적으로 수혁과 함께 살기 위해 아줌마의 인공호흡기를 떼서 죽여요. 그리고 수혁은 그 장면을 보죠.

그 사건은 수혁이 영우와 함께 살게 되는 계기이기도 하지만, 영우에게 집착하는 도화선이 되기도 합니다. 수혁은 영우의 친구들이 모두 알 정도로 유명인사였습니다. 입학 전에는 교문에서, 입학한 이후로는 교실 문 앞에서 매일 형을 기다렸거든요. 영우의 어머니는 수혁을 학대하고, 어린영우는 어머니에게서 수혁을 구해내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있었죠. 그래서, 영우는 어머니가 없는 공간에서만큼은 언제나 수혁을 우선으로 생각합니다. 친구들은 영우의 이상한 동생과, 그 이상한 동생 때문에 늘 친구들을 뒤로 하는 영우가 정상적이지 않다고 말했지만, 영우에게는 더 강한 의무감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런 영우조차도 어쩔 수 없이 수혁을 떼 놓아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그때마다 수혁은 영우를 망가트려요. 껌딱지 동생 말고 자기랑 생일을 보내자는 지철의 애원이 있던 날, 영우는 스토커를 만나고 그 이후에 온갖 협박, 성추행 등에 노출됩니다. 그로 인해 밖을 나가기 싫어하고, 전화 사용을 무서워하게 되죠. 그리고, 군대를 들어가기 몇 일 전 수혁이 운전대를 잡은 차에서, 영우는 사고를 당합니다. 그리고 다리에 큰 부상을 입어 다리를 절게 되요. 따로 살자고 말하는 영우는 가스폭팔사고로 죽은 사람이 되고, 수혁에게 도망쳐 잡혀 온 뒤로는 기억을 잃고 피부병 환자가 되어 반 감금 된 유령으로 살아갑니다.

아쉬운 점은,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수세로 몰아넣은 수혁의 '방법'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미성년 학생이었던 수혁이 어떻게 영우를 범죄자에게 던져 줄 수 있는지부터, 수혁이 폭행, 살인, 방화, 문서조작 등 엄청한 범죄를 벌임에도 세상은 수혁에게 작은 생채기 조차 내지 못한채 그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것 까지... 아무도 의심하지 않은 '이사법' 같은 디테일은 제쳐두더라도, 큰 줄기 속에서도 밑작업에 대한 복선이나 암시는 없고, 그저 '수혁의 계획'이라는 '전제'만이 깔려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암울하고 칙칙하면서도 공포스럽고 숨막히는 분위기가 끊김없이 누적되는 순효과 역시 생기는 듯 합니다. 마지막, 수혁을 속이고 낮 산책을 하는 영우를 보면서, '여운이 느껴진다.'는 감상을 받는 이유도, 열심히 쌓아 온 '검은 진실의 무게'에 비해 영우의 '하얀 작은 거짓'이 그 차만큼이 공백으로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수의 정서적 불안만으로 하드캐리하는 것이 어색한 면이 있긴 하지만, '꼭두각시'는 선택과 집중에 강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수시점으로 바라보는, 점점 늪에 빠져 들 것 같은 침전감도 이 작품의 특징이죠. 형을 위해 치킨을 튀기는 살림꾼 동생이라 동생이 형을 키우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영우의 고뇌에 분명 '동생'이라는 허들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역키잡 특유의 배덕감도 있습니다.

가끔 어느 키워드로 분류되기 좀 애매한 작품들이 있어요. 그래서 '꼭두각시'는 그냥 '꼭두각시' 인 것 같아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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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연필

출간일: 2017.12.04

분량: 본편 3권

 

 

 

 

 

 

 

 

 

point 1 책갈피

리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도 머리로는 알고 있을 것이다. 부모의 사랑을 못 받았다고 해서 모두가 그녀 같은 선택을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어린시절을 떠올려 베풀고 기부하며 사는 사람들도 많았다. 결국 다 자신이 선택한 길이다.

point 2 줄거리

기: 이카르트 제국의 황태자 자이비드는 지네마물이었던 전생 기억을 가지고 태어난다. 100년 정도 산 마물은 감정을 배우지만, 80년 된 마물었던 자이비드는 감정을 모른다. 자이비드는 자신의 감정을 실험 하기 위해, 절대적 애정을 보이는 제타크를 화상을 입히고 손발톱을 뽑아내고 채찍질을 하는 고문을 자행 한 뒤 내친다. 고문을 받으면서도 자이비드를 걱정하던 제타크는 마지막 순간 증오를 내비치고, 사라진다. 이후, 자이비드는 기도 중 미래를 바꾸라는 신의 계시를 받는다.

승: 계시 속 황제가 된 자이비드는 완전한 마물이 된 제타크에 의해 참혹하게 죽고, 제타크는 국가를 멸망시킨다. 그리고, 그 날 신관들에게 끌려 온 제타크를 본 자이비드는 시종으로 들인다. 미래를 바꾸기 위해 자이비드는 제타크에게 용서를 빌며 눈치를 보고, 제타크를 보호하기 위해 황태자 직위도 내려 놓는다. 과거와 다르게 인간이 아닌 반 마물인 제타크는 실수로 자이비드의 오른팔을 불구로 만들지만, 자이비드는 그 또한 용서한다. 제타크의 복수심은 조금씩 흔들린다.

전: 한편, 사교계의 중심인 카리알은 자이비드에게 집착하며, 제타크를 경계한다. 카리알의 가문은 고아원 아이들을 대상으로 잔혹한 실험을 하고, 그 유일한 생존자가 바로 제타크였다. 카리알은 과거 자이비드에게 내쳐진 제타크를 죽였지만, 시체와 융합한 마물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점쟁이에게 자이비드가 곧 죽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타크는 그것이 카리알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제테크는 자신의 과거와 카리알의 악행을 고발하고, 오랜 가문의 만행은 공개된다.

결: 한편, 자이비드는 제타크를 마계로 돌려보내려 한다. 제타크의 몸은 탈피를 거쳐 성인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마계로 돌아가야만 했다. 제타크와의 이별을 결심하자, 자이비드는 전생에 만난 나비사내처럼 괴로움에 눈물을 흘린다. 제타크는 마계에서 못 돌아올거라고 믿는 자이비드에게 꼭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한다. 그리고 7년 뒤, 정원에서 차를 마시는 자이비드에게 완전한 성인이 된 제타크가 나타난다. 두 사람은 여행도 하며, 행복한 삶을 함께 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결국 이거슨! 웃긴맛!

차원이동물, 빙의물, 환생물... 소설 속 '현생'조차 스스로 풀릴 길이 막막해서 '초월'의 힘을 빌리는 이야기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즐겁게 읽으면 그만 일지 모르겠지만, 가끔은 시대의 반영인 것 같아서 입맛이 쓴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오늘 리뷰할 작품이 심각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거 뭐지? 갸웃 갸웃 하면서도, 계속 웃게 되는 개그물이예요. 더불어, 공수가 빙의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빙의하는 독특한 현상도 발생한달까요? 흠흠...

내용은 분명 매우 잔인합니다. 이야기는 한 고아원에서 발생한 비극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사교계의 중심 귀족인 하트레인가는 힘없는 고아들을 이용해 '키메라'를 만드는 실험을 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마물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자이비드는 의례상 방문한 고아원에서 이상함을 느끼죠. 그리고, 그 원인을 찾아 내려간 지하에서 끔찍한 장면을 보고, 살아 남은 한 아이를 업고 나옵니다. 바로, 어린 제타크였죠. 당시 하트레인가의 부인은, 아이를 데려가는 대가로 자이비드의 기억을 지웁니다. 충격으로 인한 기억상실로 사건은 마무리 되고, 제타크는 자신의 구원자인 자이비드를 보기 위해 입궁을 꿈꿉니다.

하지만, 고아에게 기회는 돌아오지 않았죠. 결국, 제타크는 자이비드를 감시하기 위한 첩자가 되어서야 입궁하게 됩니다. 제타크는 자이비드의 제대로 된 정보를 가져오지 못하는 무능한 첩자였고, 그 탓에 고된 체벌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트레인가도 제타크에게 잔혹한 행위를 멈추지 않죠. 하지만, 제타크는 자이비드가 대신 먹으라고 넘겨 준 정력제가 훨씬 괴로웠어요. 제타크의 삶에 자이비드가 아닌 다른 것들은 익숙한 고통이었고, 자이비드 곁에서 있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충신이었죠. 하지만, 그런 제타크를 자이비드는 무참히 밟아버립니다.

자이비드가 고문을 시작했을 때, 제타크는 첩자인 것이 들켜서 고문을 받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곧 그것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자이비드의 실험이며, 그건 하트레인가, 카리알과 같은 것이었죠. 제타크는 무참히 상처입고 버려져, 카리알에게 눈과 혀가 뽑히고 장이 꺼내져 죽습니다. 그리고, 10년 미만의 마물과 자타크의 시체가 융합 된 채, 마물의 몸에 제타크의 정신이 합성 되어 자이비드 앞에 나타납니다.

하지만, 읽으면서 잔인하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습니다. 이미 피폐에 물들어 버려서 그런 것인가... 라고도 생각 할 수 있지만! 감정을 느끼는 듯 느끼지 못한 자이비드와 촉수 괴물이 된 만만치 않는 성격에 제타크 콤비가 보여주는 만담이 웃깁니다.

자이비드는 마물의 기억을 가지고 있고, 일부 감각이 인간에 비해서 뛰어나죠. 그런 우수함과 더불어 황후의 장자라는 정통성이 황태자로서의 지위를 견고하게 만들어 줍니다. 하지만, 제타크의 등장과 함께, 자이비드는 쿨하게 황태자 자리를 내려 놓습니다. 결국, 미래 제타크는 자이비드가 황제였기에, 그 땅을 도륙했던거였으니 말이죠. 하지만, 자이비드는 폐태자를 안주 삼는 귀족들의 조롱과 비하에 어떠한 굴욕감도 느끼지 못해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자이비드에게 부끄러움인란, 보는자의 몫일 뿐인걸요. 그러면서도, 제타크의 복수심을 없애야 하는 목표 때문에 어설픈 감정 연기를 합니다.

한 침대에서 제우고, 연인이라고 공표하고, 애정의 정점인 뜨밤도 보냅니다. 문제는 자이비드가 못느끼는 감정을 제타크가 대신 느낀다는 거예요. 과거 제타크에겐, 자신을 고아원 지하에서 구해준 은인에 대한 충심과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연심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것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을 덮고 남을 정도의 증오심이 생긴거였어요. 하지만, 자신을 위해서 희생하고 용서를 비는 자이비드를 보면서, 조금씩 그 증오심은 희석되고 그 아래 있었던 따끈한 감정들이 샘솟아 오릅니다. 욕정도 함께요. 하지만, 성장하지 않은 신체에는 번데...흠흠...그래서, 적극적으로 촉수를 이용합니다. 전 촉수 애용자 자이비드의 코치를 받으면서...

물론, 감동구간도 있습니다. 10년 미만의 마물은 자아조차 없지만, 100년 된 마물은 감정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자이비드는 전생에 자신을 거두어 준 나비사내를 생각합니다. 외로움, 슬픔, 연민, 애정, 행복... 인간의 감정을 느끼는 나비사내는 80년 된 자이비드 역시 시간이 지나면 감정을 느낄거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제타크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를 탓하지 않으며 곁에 둔 것이, 그때 나비사내가 말했던 감정이 생긴걸까? 의심하죠. 분명 자이비드는 제타크에게 애정을 느끼고 있었지만, 감정을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자이비드는 제타크에게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을 하고 맙니다.

그로부터의 시간이 지나고, 마물로서 살았던 80년과 인간으로 살았던 20년의 시간이 흐를즈음에, 자이비드는 깨달아요. 그리고, 그건 제타크에 관한 모든 감정이었죠. 제타크는 그런 자이비드에게 '감정의 무게'를 이야기 합니다. 차리리 감정을 못 느끼는 것이 더 나았다고 생각 할 만큼, 자이비드가 느껴야 하는 감정의 무게는 신체의 고통을 능가하는 것이었어요. 처음으로 인간의 껍데기를 쓴 마물이 아닌, 마물이었던 인간으로서 자이비드는 눈물을 흘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총 합을 더하면! 그래도 '마물의 환생기록'을 웃긴맛입니다. 아~~~~주~~~ 먼 과거에 일본 요괴물 중에 촉수를 애용(?)한 작품들이 제법 있었던 것 같은데, 한 동안 마물이 나와도 촉수 플레이가 이토록 효과적(?)인 경우가 드물어 그런지, 묘~~한 병맛이 느껴지는 작품이었어요. 게다가, 감정을 느끼지 못하거나, 잔혹사에 의해 정상적인 정서를 가지지 못한 능력자의 이야기는 서양풍 BL에 섭섭치 않게 자주 등장하는 소재지만, 그 무심한 4차원과 입걸걸한 마물과의 갑을인듯 을갑인듯 한 관계는 신선했습니다. 흔한 재료에, 비기 감미료를 더하면, 새로운 맛이 되는 듯한 느낌!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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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유펜비

출간일: 2020.01.23

분량: 본편 2권 +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그는 섭청에게서 한걸음 물러났다.

"섭청."

그리고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로 섭청을 불렀다.

"이별은 짧을 수록 좋지. 그러니 헤어지기 전 마지막 선물로 설영이라 다시 불러다오. 나는 네게 영백윤이 아니라 설영이고 싶다."

섭청은 입술을 꾹 씹었다. 일부러 설영의 이름을 부르고 있지 않았던 것을 들킨 탓이었다. 헤어짐이 아쉽기도 했고 이제 한 문파의 장문인이 된 설영과 거리를 두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였다.

"... 설영."

그 부름에 설영이 환하게 웃었다.

"응. 나리. 나 여깄소."

point 2 줄거리

기: 흰 백발, 얼굴을 가로지는 큰 상처를 가진 거구의 섭청은 야차로 불린다. 하지만, 속은 누구보다 따뜻하고 성실한 정해현의 수사관으로, 우문단의 충실한 호위다. 과거 강소성 동진무관의 뛰어난 무림인이었으나, 설영을 보호하기 위해 벌어진 싸움에서 단전이 파훼되어 무공을 잃고 무림을 떠났다. 죄책감을 느낀 설영은 화산파의 후계자 영백윤의 신분을 숨기고, 섭청의 곁에서 그를 보필한다. 한편, 섭청의 은밀한 취미는 검은사립을 쓴 화라는 사내와 함께 차관에서 당과를 먹는 것이었다.

 

승: 화는 정보수집에 능한 천이문의 문주로, 월정각 기녀 '이화'로 가장하여 정해현에서 우문단과 함께 황제를 돕고 있었다. 황숙인 폐현왕은 황위를 노리고 있었다. 어느날 폐현왕 일파가 월정각에서 살인을 벌이고, 섭청은 그 사건을 수사를 하며 '이화'를 만난다. '이화'는 아름다운 외모에도 과묵히 일하는 섭청을 마음에 품고, 대놓고 꼬시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그러던 어느날 차관에서 화와 차를 마시던 섭청은 이화에 대한 연심을 비치고, '이화'는 음월설고를 미끼로 섭청을 덥썩 잡아 먹는다.

전: 폐현왕은 무림의 화산파와 함께 모반을 꾸미고, 화는 섭청에게 '이화'라는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황실로 떠난다. 섭청은 소문과 몇가지 사건을 통해 '이화'와 화가 야반도주를 했다고 오해한다. 한편, 설영은 혼란한 화산파를 정리하기 위해 섭청을 떠나고, 우문단은 폐현왕을 속이기 위해 그의 측근을 가장한다. 섭청은 화와 함께 황제를 호위하는 역할을 맡는다. 화는 섭청에게 호의를 표하지만, '이화'에 대한 연정을 품은 섭청은 화가 불편했다. 한편, 설영과 섭청의 관계를 오해한 화는 섭청을 또 잡아먹는다.

결: 폐현왕의 지시를 받은 화산파 공격에 섭청은 크게 다치고, 깨어난 섭청에서 화는 자신이 '이화'라고 고백한다. 한편, 설영은 화산파를 통합하여 장문인이 되고, 황제와 우문단의 협공으로 폐현왕의 모반은 실패한다. 우문단은 병부상서가 되고, 설영은 자신과 함께 화산파가 있는 섬서로 가자고 한다. 하지만, 섭청은 정해현에 머물며 이화와 부부가 되는 것을 선택한다. 섭청은 정기를 잃고 행복을 얻었고, 이화는 모든 것을 얻은채 행복하게 산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포기하지 못한 나의 비상장주식

BL은 유독, 섭공과 주인수가 맺어질 확률이 낮습니다. 아무래도 후회공 클리셰가 많아, 개아가공이 아무리 패악질을 부려도 처절하게 후회하고 돌아와면, 수가 딴 눈 안 팔고 받아주죠. 덕분에 비운의 섭공들도 참 많습니다. '여우다루'에 "나와 산책해주오.", 전전반측에 "마음을 놓고왔다."... 긴 시간이 지나도 놓을 수 없는 저의 대표적인 비상장 주식들입니다.

훈남 설영과 미인 화, 얼빠 섭청이 고양이과보다 개과를 좋아했다면 아마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무림인이었던 영백윤과 섭청은 강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그 짧은 만남에도 섭청은 자신을 설영이라고 소개한 영백윤에게 의리를 지켜요. 영백윤은 화산파의 유력한 후계자였지만, 자유가 좋아 문파를 나와 설영으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화산파의 장문인을 살해하고 권력을 탐했던 세력들은, 설영의 존재가 불편했죠. 그래서, 그를 찾아 죽이려 하지만, 섭청은 끝내 설영에 대해 일언반구하지 않습니다. 덕분에 무림인으로서 삶을 잃습니다.

섭청이 무공을 잃었다는 사실에 크게 실망한 동진무관 장문인은 섭청을 쫒아내고, 섭청은 일반인이 되어 작은현의 수사관이 됩니다. 설영은 그런 섭청에 대한 연정을 품고도, 진죄가 많아 감히 밝히지 못하죠. 그래서, 섭청이 부디 안전 할 수 있도록 그의 곁을 묵묵히 지키려고 합니다. 바로, 월정각 살인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월정각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조사하던 중, 현 황위를 노리는 폐현왕과 화산파가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설영은 화산파로 돌아가고, 그간 자신이 모른척 해 온 책임을 져야 할 시간이 왔음을 알게 됩니다. '이화'와 뜨밤을 보내고 눈 쌓인 길거리에 쓰려져 있던 섭청을 안아 들고 그의 방으로 오면서, 설영은 '나리의 호위 설영'다운 미소를 짓고, 아무것도 묻지 않습니다. 떠나야 할 시간을 받아 둔 설영에게는, 섭청과의 시간 자체로 천금이었을테니까요. 설영은 섭청이 메어준 붕대를 풀지도 못하고, 섭청에게 놓고 온 마음과 섭청을 계속 떠올립니다.

그때, 이화는 자신의 외모에 무덤덤한 섭청을 얻고자 갖은 요망을 떨고 있었고, 끝내 섭청의 마음을 얻어냅니다. 하나밖에 할 줄 모르는 우직한 사내 섭청은, 그 연정을 묵묵히 지킵니다. 더 오랫동안 섭청의 곁에 있었고, 더 먼저 연심을 품었지만, 섭청에게 무공을 빼앗았다는 죄책감에 감히 건내지 못했던 말을, 이화는 몇 번이고 섭청에게 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맺어진 두 사람을 설영은 지켜보기만 하죠.

설영은 구증을 바라는 마음으로, 간절히 섭청에게 기회를 달라고 합니다. 귀하게 당신을 여겨 줄 기회를, 내가 당신에게 잘 할 수 있는 기회를 말입니다. 하지만, 섭청은 단호히 거절합니다. 그래서 그런 섭청에서 설영은 마지막으로 '설영'이라 불러 달라고 부탁합니다. 영백윤으로 살아갈 삶에는 더 이상 없겠지만, 설영으로 살았던 시간 동안에는 늘 섭청 곁에 머무를 수 있었던 그 사람으로, 그 기억으로, 남고 남겨달라고 바라죠.

이루지 못한 사랑은 가슴이 아픕니다. 물론, 치열하게 노력 했으나 실패한 이야기도 아쉽습니다. 하지만, 노력을 할 수도 없는 상실이 더 많이 아쉬운 것 같습니다.

과유불급이라고도 하고, 중도라고도 하죠. '적당히'의 미덕 말입니다. 하지만, 멈추고 싶어도 넘쳐흐르고, 그만하고 싶어도 질주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입을 막아도 나오는 기침처럼, 숨을 참아도 비집고 나오는 딸꾹질처럼, 불가항력인 연정은 하얗게 탈 때까지 시간을 흘려보내는 수 밖에 없어요.

외전에서 설영이 보낸 녹두고에 이화는 질투 하지만, 어쨌든 달래 주는 섭청이 있어 달달한 밤을 보냅니다. 하지만, 이 녹두고와 함께 보낼 편지를 쓰던 설영은, 몇 번이고 창을 보며 사념에 잠기다, 다시 먹을 갈고, 또 몇 장의 서편을 찢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고 나서야, 이 생일 선물을 가는편에 띠울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설영과 섭청... 정말 놓을 수 없는 저의 비상장 주식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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