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유즈

출간일: 2020.11.20

분량: 본편 3권 +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비로소 존 리든은 세스와 알렌산더 랜스키를 묶고 있는 틀을 이해했다. 제 것과 규격이 맞지 않은 틀이었다. 세스는 그의 틀에 얌전히 몸을 구기고 살았지만 그것은 네모 반듯한 어항 안에 작은 물고기를 넣어 키우는 것과 비슷했다. 존 리든은 시간 맞춰 어항 속으로 항우울제를 넣어 주기만 하면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세스는 물고기와 비슷해도 물고기가 아니었다. 아가미로 숨을 쉬며 아무말도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인간의 언어로 말을 할 수 있었다. 그가 이제껏 모르는 척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사랑했다. 하지만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사랑했다.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모든 게 거짓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존 리든이 어깨를 늘어트렸다. 멋대로 일그러지는 얼굴을 감추기 위해 팔을 들어 올리는 작은 행위가 벅찼다. 풀 죽은 어깨는 아무리 해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존 리든은 뭔가 더 해 볼 수 없는 상태였다.

"...... 나 좀 패줘."

존 리든이 구겨진 종이 뭉치 같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젠 끝내고 싶어. 나는 못 끝내겠으니까 그렇게 해서라도 끝내줘. 네가 이겨 버려. 내가 다시는 덤빌 수 었게.

point 2 줄거리

기: 세스 그린의 하루는 일로인의 왕자 알렉산더 랜스키(알렉스)를 훔쳐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물함 거울 너머로, 주차장 벤치에 앉아 지켜보기만 하던 생활이, 알렉스의 여자친구 헤이워즈와 에드거의 바람 현장을 목격하며 바뀐다. 에드거는 세스에게 더러운 소문을 내겠다고 협박하며, 자신과 헤이워즈의 사진을 알렉스에게 보여주라고 협박한다. 그 사진때문에, 알렉스는 화가 나 세스의 손을 밟고, 세스를 늘 지켜보던 존 리든은 세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 가는 계기가 된다.

승: 에드거는 알렉스와 자고 난 뒤 세스를 약 올리려 하지만, 세스는 오히려 알렉스가 게이라는 소문을 내려는 에드거를 막는다. 그 장면을 본 알렉스는 세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세스는 열심히 피해다니고, 존 리든은 그런 세스를 도와주고, 렌스키는 더 치열하게 쫒아가는 생활이 반복된다. 결국, 존 리든은 다치고, 세스는 알렉스에게 더 이상 도망치지 않기로 한다. 존 리든의 먼저 고백했지만, 세스는 알렉스와 연인이 된다. 알렉스는 세스를 깊이 사랑하게 된다.

전: 한편 둘째 형 루이 랜스키는 알렉스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세스에게 찝쩍거린다. 그리고 세스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루이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폭로하고, 옆에 있던 알렉스는 세스를 죽기 직전까지 폭행한 뒤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한다. 존 리든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상처 입은 세스의 곁에 친구로서 있어준다. 그리고, 10년의 동거 끝에 세스와 존 리든은 연인이 되고, 존 리든은 세스에게 청혼한다. 그리고, 세스가 결혼을 결심 한 날 돌연 나타난 알렉스에게 납치 된다.

결: 아버지와 큰 형이 죽은 후, 알렉스는 둘째 형 루이로부터 세스를 지키기 위해 안전가옥에 세스를 감금한다. 세스는 10년간 계속 사랑했다고 고백하는 알렉스를 밀어내지만, 안전가옥이 털려 죽을 위기에 놓이자 알렉스에게 안아달라고 한다. 다행히 둘은 구출 되고, 세스는 존 리든에게 돌아 간다. 하지만, 존 리든은 세스를 이해 할 수 있고, 사랑하는 알렉스에게 보내주어야 한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결국, 세스를 찾아 온 알렉스에게 세스를 보낸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하프 문 베이의 기적

'하프 문 베이'를 읽다보니 무라카미 하루키의 '하나레이 베이'가 유독 생각이 나더라고요. 작은 마을, 고요하고 한적한 해변가에는 이렇듯 신비로운 이야기가 깃들어 있나 봅니다.

하늘에 뜬 반달과 검은 바다에 비친 반달, 그 반달이 그림자와 더해져 하나의 둥근달이 하늘과 바다를 동시에 채우는 하프 문 베이의 기적은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아 유명세를 타지만, 결국 그 사진은 포토샵 조작으로 알려집니다.

랜더스 인더스트리의 무기가 필요했던, 마피아 벨체프는 랜더스가 첫째 아들과 사귑니다. 게이였던 그들은 중간에 루마니아 창부를 끼어 결혼하려하지만, 루마니아 접대부를 랜더스가의 일원으로 받아드릴 수 없었던 그의 아버지에 의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죠. 그 사이 랜더스의 아이를 갖게 된 루마니아 창부는 도망가고, 첫째 아들은 랜더스 왕국에서 쫒겨 납니다.

그 루마니아 창부의 아들의 이름은 세스 그린이예요. 이미 마약에 쩌든 몸이 낳은 세스는, 정상적으로 세르토닌 분비가 되지 않았죠. 무기력증, 부주의함, 공감부족과 인지부족, 그리고 이로 인한 우울과 집중력 장애는 곧 세스가 '평범'이라는 범주에서 얼마나 벗어 난 존재인지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의 모친은 어린 세스에게 랜더스가의 게이 아들이 어떻게 됐는지, 세스의 친부가 누구인지도 알려줍니다.

어머니가 죽고, 세스는 마이클 그린과 맥스 터낸토, 게이 부부에게 입양 됩니다. 가족이 가지고 싶었던 마이클 그린은 5살 세스를 입양하지만, 곧 부러진 손가락에 고통도 표현 할 줄 모르는 세스의 장애를 발견하고 절망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세스의 상태를 안 뒤 맥스 터낸토는 최선을 다해 그의 아들을 돌봐요. 그 맥스 터낸토의 아버지 얀 터낸토가 바로 하프 문 베이 사진을 찍은 사진작가였죠.

세스는 자신이 '망가진 틀'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알렉산더 랜더스(알렉스)를 알아 본 세스는, 자신과 다른 알렉스를 그저 그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만족하려 합니다. 그러나 누가 인생은 예측 할 수 없는 이벤트의 연속이라고 했던가요. 이들 사이에 발생 한 사건은 아주 사소했지만, 두 사람은 블랙홀에 빨려 드는 것처럼 강력한 끌림을 느낍니다. 세스는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스가 알렉스를 피할수록, 알렉스는 거칠어지고 사람이 타지고 차는 파손 되죠. 결국, 세스는 알렉스를 멈추기 위해 도망치는 것을 포기합니다.

세스의 출신이 밝혀 졌을 때, 알렉스는 세스가 자신을 속이고 이용했다고 믿지 않습니다. 세스는 정말 열심히 알렉스를 밀어냈으니까요. 하지만, 게이를 혐오한 아버지가 삼촌과 사람에 빠진 조카를 살려 둘리 없었죠. 얼굴뼈가 무너지고 폐가 찟기는 무차별한 폭행을 저질러서라도 세스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초주검이 된 세스를 존 리든에게 맡겨요. 존 리든은 16년, 알렉스와 세스가 묶여 있었던 그 비밀의 시간만큼 기다리겠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세스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이 되길 바라면서요.

그리고 모두에게 가혹했던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릅니다. 존 리든이 드디어 세스와 연인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죽은 알렉스 역시 세스 앞에 나타나요. 세스는 존 리든과 함께 있으면, 약도 잘 챙겨 먹고, 일도 하면서, 누구에게도 피해주지 않고 살 수 있었어요. 세스는 정상이 될 순 없지만, 정상처럼 살 수 있는 존 리든과의 생활을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그것이 흉내내기일지라도 말이예요.

'안정이라는 틀에 고여 위태롭게 닳아 가던 세스의 삶이 다른 형태를 띠우고 스스로가 원하는 곳으로 흘러 갈 수도 있게 되었다.'

존 리든은 안정적인 틀이었지만 세스에게는 위태로운 틀이었고, 알렉스는 망가진 틀이었지만 세스에게는 꼭 맞는 틀이었어요. 죽음을 앞두고 세스는 존 리든과의 결혼보다 알렉스와의 정사를 원하지만, 구출 된 후 알렉스가 아닌 존 리든에게 돌아갑니다. 진심으로 원하는 사람이 알렉스라 할지라도, 선택해야하는 사람은 존 리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최선이니까요.

하프 문 베이의 기적을 찍은 한 장의 사진, 기적이 찍혀 있지만 그 진실은 기적이란 없다고 말하는 냉정한 증거... 하지만, 그 사진을 찍은 얀 터낸토는 실제로 그 기적을 경험했죠. 1968년 하프 문 베이의 기적을 본 얀 터낸토는 다시 한번 그 기적을 보고 싶어 매일 하프 문 베이로 가지만 실패하고, 결국 1991년 사진을 조작합니다. 불가능에 가깝지만 일어 날 수 있는 일, 일생에 두 번은 없는 기회, 그걸 '기적'이라 부르는 걸거예요. 얀 터낸토의 1968년 단 하루, 세스에게 단 한사람, 망가진 틀이어야 정상이 되는 세계인 알렉스처럼 말이예요.

'기적'은 선택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어느날 어쩌다 갑자기 만나게 되죠. 하지만, 보았다면 벗어 날 수 없는 행운이자 불운이 되어 버리는 것 같습니다.

'전전반측' 리뷰에서 '상장되지 못한 섭공 주식'으로 설영을 꼽았는데, 왠지 그 순위가 아슬아슬합니다. 존 리든이 세스를 '사랑' 때문에 보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존 리든이 옆에 있으면 세스는 망가진 틀이 되지만, 알렉스 옆에 있으면 세스는 정상적인 틀이 됩니다. 정상처럼 보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세스'로 사는 삶을 바랄 수 있고, 그러기에 앞으로 나아 갈 수 있죠. 그것은 존 리든이 '최선을 다해 사랑해 주는 것'으로 묵인 할 수 없는 커다란 것이었고, 이것을 깨달아 버린 존 리든은 알렉스에게 세스를 빼았기를 요청 할 수 밖에 없었어요.

바밀씨님 소설에 수는 참 많이 구릅니다. 하지만, 공들의 절대적인 일편단심 사랑을 받으며 행복해 집니다. 그래서, 수에게 잔인한 사건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답다.'라는 감상을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줄탁동시처럼, 나아가려는 수의 의지와 공의 애정이 만날 때, 알에서 병아리가 깨어나 듯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느낌이거든요.

왠만한 명작도, 체력의 한계 때문에 중간에 한번은 쉬어가는데, 정말 '하프문 베이'는 끊을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그 다음날 두통이라는 어쩔 수 없는 부작용도 겪었지만요. 그래도, 좋은 책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요즘은 두통약도 잘 나오고 말이죠.

 

 

 

※ 동일 작가의 다른 소설 리뷰

 

2020/10/17 - [BL 소설] - [환생물/동양풍/피폐물/힐링물] 바르도의 궁 - 바밀씨

 

[환생물/동양풍/피폐물/힐링물] 바르도의 궁 - 바밀씨

출판사: 유즈 출간일: 2019.06.07 분량: 본편 3권 + 외전 1권 ​ ​ ​ point 1 책갈피 ​ ​ 단 한번만. 내게 천 년을 날아가자 약조했던 그 사내를 보여줘. 마지막으로 ​ 원제의 입술을 물었다. 입술도

b-garden.tistory.com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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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에피루스

출간일: 2020.10.07

분량: 본편 2권

 

 

 

 

 

 

 

point 1 책갈피

그래, 범 같은 사람이 저를 사랑할 리가 없는데, 혹시 속 안에 엄마가 들어찬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자 선우는 범이 제 입 앞으로 랍스터를 발라 나르는 것까지 의심스러웠다. 말도 안되는 생각이긴 하지만 손가락을 들어 콕 하고 범의 볼을 찔러 보았다. 범이 쳐다보자 그 볼에 쪽 뽀뽀했다. 혹시 엄마야? 빙의했어? 마음으로 물었다.

"씨발. 안되겠다, 상 엎자."

'아, 우리 엄만 예쁜 말만 한다. 고로 엄마는 아니고 범이 맞다.'

선우는 엄마가 아니라 조금 실망했다가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범이 그냥 범인데도 저를 좋아한다. 귀신에 씌지 않은 멀쩡한 범이 맨 정신으로도 저를 좋아한다. 선우가 볼록 광대를 올렸다가 내렸다.

point 2 줄거리

 

기: 선우의 아버지는 카지노에게 도박으로 거액의 빚을 진 채 죽고, 선우는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카지노 VIP 라운지에서 접대부로 일한다. 20살 부터 갇혀 돈을 번 5년 동안 어머니는 죽었다. 선우는 빚을 갚자마자 일을 그만두고, 노쇠한 할머니를 돌본다. 선우는 돈을 벌어야 했지만 할머니의 곁을 오래 떠날 수 없었고, 결국 선우의 우성오메가 형질이 필요한 깡패 유회장의 막내아들인 범의 아이를 낳아주기로 한다. 선우는 인공수정을 통해 임신한 아이를 출산 할 때까지 범의 집에 묵게 된다.

승: 우성 알파인 범과 선우 사이에서 무사히 우성 아이가 태어 날 수 있도록 유회장은 배려하지만, 고용인들은 고급창남 씨받이인 선우를 무시한다. 그래서 선우는 늘 식사량이 부족했지만, 눈치를 주는 돌봄 아줌마에게 말하지 못한다. 어느날 선우는 배고픔을 참지 못해 한밤 중 내려와 냉장고를 뒤지고, 그 모습을 범에게 들킨다. 범은 예쁘고 처연한 선우에게 한 눈에 반한다. 그 날 이후 범은 돈과 먹을 것을 지불하고 선우에게 스킨쉽을 요구하는 나날이 지속된다.

전: 단순히 손님과 접대부라고 생각했던 범과 선우의 관계는, 점점 로맨틱하게 바뀐다. 범은 선우에게 다정했고 선우의 할머니도 살뜰히 챙긴다. 그리고 겉으로는 무심하고 태연하지만, 속으로 상처가 곪아 있는 선우를 보듬어 준다. 선우는 그런 범을 좋아하게 되고, 범의 청혼을 수락한다. 한편, 막내를 견재하기 위해 선우를 찾아 손지검을 한 둘째형 혁은 오른팔이 불구가 되고, 첫째형 랑은 선우의 출신을 빌미삼아 범의 신경을 긁다가 기절할 때까지 맞는다.

결: 선우와 태어날 아기를 위해 범은 깡패일을 그만두려한다. 그리고, 그 전에 선우에게 트라우마를 남긴 접대부 시절 고객들을 찾아 한명 한면 응징한다. 그런 범의 행보를 위협으로 느낀 랑은 선우를 찾아가, 할머니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며 범을 막으라고 협박한다. 욱한 선우는 병으로 랑을 내리치고 기절 한 후, 병원으로 실려 가서 출산한다. 범은 랑을 사고로 위장해 죽이고, 두 형 대신해 조직에 남게 된다. 출산-결혼-연애, 순서는 뒤바뀌었지만, 선우와 범은 연애를 하기로 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사람은 추억만으로 살 수 있다.

Dips님의 소돔성 리뷰에도 잠시 언급했지만, 같은 작가, 유사 소재의 통시적 성장을 보는 일을 제법 즐거운 일 입니다. 막연히 '글이 좋아졌다.'라는 직관적 '감상' 보다는, 구체적으로 성장을 '확인' 할 수 있어서 말이죠. 마치 아이의 작아진 옷을 보며 자라난 키를 체감하는 기분입니다. 담레인님의 전작 '로튼 애플'과 '호랑이 굴'이 그렇습니다. 물론, 갈등의 전개와 해소는 아직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갈등이란 균형을 이루는 대척점 간의 힘싸움인데, 시소를 타기엔 이미 한 쪽이 지나치게 전능한 느낌입니다.

그래서 '호랑이 굴'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사건'보다는 '에피소드' 중심으로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자존감을 쉽게 '에고'의 표현이라고 한다면, '자존감이 낮다.'는 것은 자아가 미약해 타인이나 외적 기준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스스로를 지켜 낼 수 없다는 것을 말 할 겁니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 견고한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도 불안감에 휩싸여 사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나'를 자신 안에서 찾지 못하고, 밖에서 헤메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자낮'이겠죠.

그런면에서 선우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입니다. 지켜야 할 존재도 잘 알고 있고, 미래 역시 스스로 선택합니다. 물론, 그 선택이 '원하는 바'는 아니었을 겁니다. 누구도 빚쟁이 아버지의 부채를 위해 몸을 팔고 싶어 하지 않고, 폭력과 모멸에 노출 되고 싶어 하지 않죠. 하지만, 평범한 생활로 20년 안에 못 갚는 빛을 5년 안에 상환 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고, 어머니 때 처럼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사태를 차단하기 위해 씨받이를 선택해요. 그리고, 묵묵히 그 일을 해냅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일이라고 상처 받지 않는 것도 아니고 힘들지 않은 것도 아니예요. 그래도 선우는 내가 선택한 일이기 때문에 불평하지 않고 받아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호랑이 굴이 위트 있고 달달한 소설임에도, 웃고 떠드는 선우의 모습조차도 짠~하더라고요. 특히, 배가 고파도 말도 못하고 눈치 보는 모습이요. 요즘은 전국민이 다이어트를 하는 시대인지, 쥐똥만큼 먹는 여자들이 많나 봅니다. 가끔 배식 식당을 가면, 여자라고 정말 새 모이만큼 떠주더군요. 고봉밥을 먹던 선우가 받은 밥상이 상상이 가서, 더 이입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우는 배 속 아이와 늘 대화를 합니다. 접대부 출신, 우성 오메가 씨받이... 먹음직스러운 먹이는 범의 집 사람들에게 좋은 구경거리였죠. 선우는 눈칫밥을 주며 텃세 부리는 출산 도우미 아주머니와 외설스러운 말로 조롱을 일삼는 깍두리무리를 담담히 받아드리며, 다락방에서 유일한 친구인 태아와의 시간을 소중히 합니다. 그리고, 낳자마자 사라질 엄마보다는 아빠를 좋아하길 바라죠. 대부분의 일에 굳은살이 배겨 무감한 선우지만, 그래도 아이를 보내는 일은 많이 아파합니다.

그러던 선우 앞에 범이 나타납니다. 냉장고를 터는 예쁜 귀신을 우연히 만난 범은, 선우를 찾기 시작합니다. 선우에게 범은 VVVIP고객이었어요. 선우는 자신을 찾아 온 범에게 무엇을 해드리냐고 묻죠. 그리고 범은 자연스럽게 돈을 주고 선우에게 펠라를 받습니다. 물론, 보너스로 자두도 사다줍니다. 당연히 고객과 접대부인 두 사람이 부부가 되는 과정, 결국 '호랑이 굴'을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람은 추억만으로 살 수 있다.' 저는 그것이 선우가 '버텨내는 힘'의 근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와의 추억이 사육장 동물처럼 갇혀 손님을 받느라 지키지 못한 어머니의 임종을 견디게 해 준 힘이었어요. 할머니와의 즐거웠던 기억이 다락방 건조한 생활에서도 웃을 수 있는 원동력이었죠. 배고픈 순간, 할머니가 해 줬던 맛있는 음식들을 생각하며 서러움을 추억으로 떨쳐 냈던 것처럼요.

그리고, 선우는 범과의 행복한 순간도 아이를 보지 못하게 되는 미래를 버티게 해 줄 추억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범이 선우를 꼬시기 위해 했던 노력들을, 선우는 그렇게 귀하게 받아 드립니다. 범과 간 드라이브, 바다, 맛있는 음식들 모두 말이예요. 그런 선우를 보면서 범은 '호구'가 되죠. 범은 늘 태연하고 냉정해 보일 정도로 무심한 선우의 상처를 엿보게 됩니다. 그리고 뒷조사를 통해 알게 된 선우의 삶은 너무 아팠어요. 본인이 깡패임에도, 사랑하는 선우를 괴롭힌 놈들은 죽일 놈이 되죠. 이런 클리셰는 흔한데, 유독 내로남불스럽다고 느껴진 이유를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말하는 것만 보면, 머리 속에 든건 '떡치기'밖에 없을 것 같은 일자무식인데... 실은 범은 엄청 똑똑했답니다. BL소설에 만능치트키 공은 많지만, '호랑이 굴'은 그 '과정'이 성경 수준이라 아쉽습니다. '신의 뜻'으로 모든 사건이 갈음되는 성경처럼, '공의 뜻'만으로 '디테일'없이 해결 되는 갈등을 갈등이라고 봐야하는지 모르겠네요. 아무리 싸움도 절대 지지 않고, 모략에 빠트릴 지언정 절대 당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지능의 소유자, 넘치는 돈이라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요. 어쨌든 선우의 출신, 선우를 견재하기 위한 집안 내 갈등, 선우를 무시하는 세력들은 일거에 해결 됩니다.

그럼에도, '호랑이 굴'은 재미있습니다. 유사 성행위까지 씬이라고 치자면, 정말 소설이 통으로 씬인 것 같은 다소 지치는 전개에도... '선우'와 '범'이라는 캐릭터가 매력적입니다. 또, 킬탐으로 읽으면 킬탐용이고, 한없이 무겁게 보자면 또 고소와 냉소가 가득해지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주관적으로, 선우와 범이 꽁냥거리는 염병첨병 일화 중심의 유쾌한 어화둥둥 달달물로 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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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M블루

출간일: 2018.10.09

분량: 본편 3권 +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이제 왔어?"

 

이미 새벽인데도 수현은 자지 않고 있었다. 집에 있을 때 입는 편한 옷이 아니었다. 꾀 차려입은 수현은 말했다.

 

"너는 바빠서 모르는 것 같았지만...... 나는 기억해서."

 

선우는 도통 알 수 없는 눈길을 보냈고 수현이 말했다.

 

"우리 결혼기념일"

 

그제야 선우는 뭔가 맞은 듯한 얼굴로 수현을 바라봤다.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래서 설이 오늘 자신에게 무슨날인지 물었던 것인가? 빠르게 생각을 한 선우가 수현을 바라봤다. 늦게 들어왔음에도 수현은 타박 없이 말간 얼굴로 선우의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설명했다.

 

"촛불도 켜 놨었는데....."

 

"......"

 

"날이 지났지만 그냥 넘어가긴 좀 그래서."

 

쑥스러움을 숨기지 못해 속삭이듯 말하는 수현은 영락없이 사랑스러운 신부였다. 수현이 눈치를 보면서도 선우를 보더니 다가와 이마를 맞댔다. 수현은 큰 용기가 필요한 것 처럼 숨을 들이마시더니 누가 들을까 걱정되는 듯 작게 말했다. 귀 기울여 들을 수 있게. 애정이 충만한 목소리로.

 

"나랑 결혼해줘서 고마워, 선우야."

 

그러면서 선우의 손을 잡은 수현이 꼼지락거렸다.

 

"사랑해, 선우야."

 

 

 

point 2 줄거리

 

 

기: 오메가 수현은 차기대권주자인 김성식 의원 차남으로, 올곧은 아버지와 따뜻한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며 바르게 자라왔다. 김의원과 대척점에 있는 대성그룹 부회장 아들 알파 강선우와 계열사 신성호텔 사장 아들 알파 민정우는 수현과 같은 학교를 다닌다. 어느날 수현은 도서관에서 히트가 터지고, 휘말린 선우는 수현과 각인이 된다. 선우의 알파 아버지는 오메가 어머니를 학대했지만, 각인된 둘은 헤어지지 못했다. 그 가정에서 자란 선우는 오메가를 혐오하고 각인을 저주라고 생각하며, 수현과의 각인 사실도 숨긴다.

 

승: 한편, 선우에게 열등감을 가진 정우는 선우를 좋아하는 수현을 강간하고 영상을 촬영해 협박한다. 수차례 폭행과 강간을 당한 수현은 복통으로 쓰러지고, 사건은 수면 위로 떠오른다. 법의 허점을 이용해 정우는 수현에게 각인하여 감형받고, 정우의 어머니는 김의원 포섭을 위해 수현과의 결혼을 밀어부친다. 선우는 베타 여자친구 설이 있었지만, 정우 어머니를 견제하기 위해, 수현의 상처와 자신에 대한 애정을 이용하여 수현과 결혼한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수현 정우를 더욱 사랑하고 의지한다.

 

전: 하지만, 선우는 첫날밤에 여자친구 설에게 찾아가고, 결혼 후 계속 두 집 살림을 하며 수현을 기만한다. 수현은 성폭행 피해자인 자신과 결혼해 준 선우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맞추려 노력하지만, 선우는 그런 수현의 헌신과 오메가 수현과 러트를 보낼 때 느끼는 만족감이 불편했다. 결혼기념일, 수현은 외박하고 온 선우를 이해하며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그 처연한 모습에 욱한 선우는, 수현을 사랑한 적도 없고 수현 때문에 각인이 되었다고 비난을 쏟아내며 목을 조른다. 선우는 실신한 수현을 방치하고, 설에게로 간다.

 

결: 이후로 선우는 대놓고 수현을 냉대하며 이혼해주지 않는다. 결국, 수현은 선우를 증오하며 밀어내고, 그런 수현을 보며 선우는 수현에 대한 사랑을 깨닫는다. 한편, 출소한 정우는 설의 존재를 노출 시키며 선우를 공격한다. 정우는 수현을 가지기 위해, 개과천선한 척 연기를 하며 수현에게 접근하지만 김의원은 속지 않는다. 정우와 그 모친은 그런 김의원을 사고로 죽인다. 그리고 그 전모를 알게 된 선우는 수현을 지키기 위해 정우를 죽이고 감방에 가고, 정우 모친 역시 처벌 받는다. 수현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 사회운동가가 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쌍욕 유발자들! 화병주의!

 

 

각인하다'는 초반부 진입장벽이 있습니다. 보통 용두사미의 글이 많은데, 오히려 앞부분이 어색했어요.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한 수현의 모습과 오메가의 인권이 무시당하는 사회배경에 대해서 서술 되어 있는 부분인데, 문맥이 부자연스럽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흐름이 뚝뚝 끊기는 느낌이랄까요. 화면전환도 매끄럽지 못하고, 전개 속도도 급발진 급정거를 반복할 뿐더러, 대사로 배경정보를 전달하다보니 작위적인 부분도 불편했어요. 솔찍히, 계속 읽어야 하나? 고민 했습니다.

 

하지만, 1권 1/4정도를 넘으면 이런 껄끄러움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그 구간에 이후 작가님이 엄청 성장하셨거나 초반부가 유독 잘 안 풀렸던 것 같아요. 그 이후 브레이크 없는 가속도 욕!욕!욕!구간이 펼쳐집니다. 많은 개아가공과 후회공을 봐왔고, 쓰레기 통은 뜨거운 빨간색부터 우울한 파란색까지 가리지 않지만, 정말... '각인하다'는 최고의 쌍욕 유발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읽기 시작하셨다면 반드시, 결론을 봐야합니다. 열 받는다고 중간에 멈추면, 쓰레기의 몰락을 보지 못하거든요.

 

'각인하다'에서 '각인'은 알파의 저주라고 일컬어 집니다. 알파는 단 한명의 오메가에게만 각인이 가능하지만, 오메가는 다수의 알파와도 각인 가능해요. 하지만, 사회의 주인이 '알파'였기에, 이 '각인'은 오메가에게도 저주가 됩니다.

 

정우는 선우를 좋아하는 오메가를 강간하지만, 모두가 쉬쉬하는 상황에서 은주는 자퇴를 해야 했고, 수현이 복통으로 병원에 실려와 강간 사실이 밝혀지자 학교측은 수현의 잘못을 먼저 따지며 피해를 무마하려 합니다. 의원의 아내로서 의식이 있던 수현의 어머니가 나선 후에야 비로소 '강간 사건'이 되죠. 하지만, 정우는 각인이 감형 사유가 된다는 것을 알기에 수현과 각인합니다. 그리고, 각인된 알파의 안정을 위해서 성폭행 피해자인 수현은 가해자 정우와 대면을 강요 받고, 정기적으로 만나서 신체접촉을 해야 했습니다. 결혼 후 선우의 페로몬이 묻은 채 정우를 면회한 수현은, 관리 공무원에게 더러운 취급도 받아요.

 

'알파는 원래 오메가를 망치는 존재다.' 정확히 그 대사 같죠.

 

하지만, 진짜 욕나오는 것은 이런 거지같은 사회적 차별이 아닙니다. 이런 불평등은 현생에도 있습니다. 성범죄 피해자는 여성이 월등히 많고, 피해 여성들을 비난하는 시선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성범죄 처벌 수위가 낮은 국가에 속하고, 매맞는 아내, 바람피는 남편, 가부장적 사고, 성추행이 농담인 조직문화, 이 외도 불평등의 증거들은 산재해 있어요. 애당초 '여권신장'이라는 말이, 도대체 얼마나 바닥으로 부터 시작한 것이어야 이 정도를 '신장'이라고 말하는지부터 따져봐야겠죠.

 

진짜 욕을 부르는 것은 대성 그룹 사촌 형제예요. 한 리뷰에서 정우가 더 쓰레기인지 선우가 더 쓰레기인지에 대한 논쟁이 붙은 적이 있어, 저도 고민해봤습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정우가 더 쓰레기가 맞지만, 수현의 입장에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똥과 설사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죠. 그저 둘 다 배설물일 뿐입니다.

 

선우의 아버지는 어머니와의 각인을 저주하면서도, 오메가인 어머니를 완전히 가질 수 없다는 본능적 갈증에 폭력을 휘둘렀고, 어머니는 늘 그런 아버지에게 용서를 빌었어요. 끝내 어머니는 미쳐버렸고, 그 모습을 보고 자란 선우는 알파로 사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베타인 여자친구를 사랑하면서, 결코 오메가를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하죠. 그래서, 정우가 자신에게 고백한 오메가를 노린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무시합니다.

 

하지만, 선우는 우연히 수현의 히트에 휘말려 오메가와 각인 한 알파가 됩니다. 마치 아버지처럼요. 수현이 미웠던 선우는 수현을 이용하고, 결혼 후 수현에게 박대하면서 설에게 사랑을 쏟는 기만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수현은 한결같이 헌신적이었고, 수현과의 정사는 설과 비교 할 수 없을 정도의 만족스러웠어요. 선우는 점점 수현에게서 어머니의 그림자를 봅니다. 구타와 모욕을 당하면서도, 아버지의 사랑을 맹목적으로 바라던 오메가의 모습을... 선우는 수현에게 더 잔인하게 행동합니다.

 

수현의 가족들은 수현을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려합니다. 대성그룹을 겨냥했던 검사 출신 김성식 의원은 신념을 꺾은 부패한 정치인으로 평가받으면서도, 오로지 수현의 행복만을 빌어 주었어요. 수현은 범죄 피해자가 되고, 불행한 결혼을 하는 것이 그런 가족들에게 큰 짐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말도 못하고 숨깁니다. 반면, 대선 출마한 김의원의 당선이 이득이 되기 때문에, 대성그룹은 병들어가는 수현을 숨기며 선우의 외도를 알면서 이혼도 시켜주지 않아요. 당연히, 선우 역시 밖에서는 좋은 남편인 척 연기하며, 수현에겐 청승떨지 말고 참고 살라고 하죠.

 

저는 선우에게 면죄부를 주고 싶지 않습니다. 불행한 가정사로 인해, 알파로서의 삶을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의도하지 않은 각인으로 인해 삶이 망가졌다. 그런 변명을 대기엔 선우는 각인을 숨겼고, 수현을 이용해 이득을 챙겼으며, 수현에게 청혼했으면서 설과 헤어지지 않았죠. 이율배반적인 선택이었고, 스스로 한 결정한 일들이었어요. 선우는 뒤늦게 수현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수현에게 용서를 빌고 정우를 살해 한 죄로 10년의 수감 생활을 견디지만, 결국 수현과 이루어지지 않죠. 돌이키지 못하는 죄로 아파 해야하는 건 가해자의 몫이니까요.

 

외전에서 수현과 선우는 다시 태어납니다. 사회운동가였던 수현이 최초 오메가 대통령이 된 이후의 세계에서 말이예요. 수현은 선우를 사랑하고, 선우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습니다. 날 찾아주고, 기회를 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선우와 그저 천진난만한 수현의 모습에 긴 여운이 느껴졌어요. '만약'이라는 가정은 의미 없지만, 선우가 알파와 오메가라는 속박으로 부터 벗어나려 했을 때, 그 방향이 잘 못 되었다고 제동을 걸어줄 계기가 단 한 번도 없었을까?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정우는... 저혈압인 분들에게 좋은 치료제가 되어 줄 것입니다. 선우가 조금이라도 연민을 느낄 여지가 있었다면, 정우는 그냥 타지도 않고 재활용도 불가한 쓰레기죠.

 

욕하면서도 아침드라마를 챙겨보시는 분들이라면, 그 못지 않은 욕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드라마를 잘 보지 않아서 그런지, 보면서 숨이 차더라고요. 재탕 할 만한 좋은 작품이지만, 재탕 하기에는 용기와 체력이 필요한 듯 합니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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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시크노블

출간일: 2017.03.29

분량: 본편 1권 + 외전 2권

 

 

 

 

 

 

point 1 책갈피

도영은 지쳐서 발을 멈추고 숨을 고르며 뒤돌아봤다. 깨지고 뭉개져 상처가 난 모양이 꼭, 자신의 가슴속 깊은 곳과 닮은 전구들이 널려 있었다. 그 알알이 생명력 없는 것들을 그제야 발견했다.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문제의 해답은 생각의 테두리를 조금 벗어난 곳에 있었다.

도영은 비로소 깨달았다. 빛은 안에서도 출발할 수 있다는 걸. 바깥에서 빛을 나눠 주지 않는다면 내가 빛을 만들면 돼. 그래도 부족하면 밖에 나가자.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면 터널의 천장을 뚫고 나가면 돼. 전구들이 빛을 비추어 나아갈 길을 알려 줄거야. 그럼 너는 터널 위에서 나를 기다리다 어서 올라오라며 손을 뻗어 주겠지.

point 2 줄거리

기: 도영은 우성과 대학동기로 허름한 빌라 옆 집에 사는 이웃이다. 인기 많고 당당한 네모 우성을, 세모 도영은 불편해 한다. 그러던 어느날 도영은 우성과 함께 듣는 수업에서 우성과 한 팀이 되고, 휴학을 한다고 우발적으로 말한채 자리를 피했다. 그 후 도영은 맹장염으로 쓰러지고, 우연히 집으로 들어가던 우성은 옆집 열린 문틈으로 쓰러진 도영을 발견해 병원에 데려간다. 우성은 수술 이후도 도영을 찾아와 돌봐준다. 퇴원 후 도영은 고마운 마음에 우성에게 밥을 사고, 우성은 간혹 도영을 찾는 대면대면한 관계가 된다.

승: 결국 도영은 휴학을 한다. 어느날 도영은 억울하게 치한으로 몰리지만, 가족과 절연해서 연락할 사람이 없어 우성에게 연락을 한다. 우성은 도영을 도와주고, 도영은 우성 앞에서 서럽게 운다. 이후 우성은 틈 날때마다 도영의 식사를 챙겨 주기 시작한다. 한편, 누나 결혼식에 용기내어 찾아간 도영은 가족들의 냉대를 받고, 결혼식을 보지 못한채 돌아온다. 시름시름 앓는 도영을 돌봐 주는 우성에게, 도영은 게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우성은 도영을 피하지 않고 한결같이 대한다.

전: 도영은 병원장 아버지와 미술관장 어머니 사이에서 막내아들로 귀여움을 받았다. 도영은 학창시절 동성애에 편견이 없다고 말하는 친구를 믿고 아웃팅을 했고, 그 친구는 도영의 부모님을 찾아가 도영이 게이라고 이른다. 가족들을 도영을 치료하려고 했지만, 도영은 바뀔 수 없었고 홀로 허름한 빌라에 살게 되었던 것이다. 아웃팅 한 후, 도영이 틀리지 않다고 인정해 준 유일한 사람인, 우성에게 도영은 마음을 연다. 솔찍한 도영은 너무 귀여웠고, 우성은 귀여운 도영이 좋아졌다.

결: 우성은 도영에게 좋아한다고 고백을 한다. 세모의 세상도 모르면서 세모가 되려는 우성을 도영은 밀어낸다. 하지만, 이미 일상에 깊이 물든 우성을 싫어 할 수 없었다. 도영과 우성은 곧 연인이 된다. 한편, 도영은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에 찾아가지만, 가족들의 박대를 받는다. 도영은 자신이 세모이기 때문에 받는 괴로움을 우성이 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헤어지자고 하지만, 우성은 그런 도영의 곁에서 도영이 그저 다를뿐이라고 말해준다. 도영은 용기를 내 가족들을 찾아간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평행선, 그렇지만 언제라도 발을 멈추면 접점이 생길 수 있다.

깅기님의 소설은 은유와 비유가 많아, 몽환적인 분위기가 느껴지곤 합니다. 도형이 가득한 가상의 공간, 작은 사물로 비유되는 비일상적 장면들, 그곳에 묻어나는 주인공의 고뇌가 그런 분위기를 이끌어내요.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내용은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입니다. 덩어리 진 지점토를 비틀어야 그 점성을 알 수 있는 것 처럼, 이런 깅기님의 '일상 비틀기'는 너무 흔하고 평범한 일상의 일면을 되세김질 하게 만들어 주죠.

'네가 네모인 세상' 역시 네모로 이루어진 세상에 성소수자인 세모로 살아야 하는 도영이 우성을 만나 서로의 별이 되는 이야기를 통해, '다른 것'의 모양을 보여줍니다. 네모로 열 맞춰진 도형판에서 세모는 쓸데 없고 이상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세모와 세모가 모이면 네모도 되고 별도 될 수 있죠. 정형화 된 틀로 가득찬 세상에서, 우성은 겁쟁이 도영을 훌쩍 끌어내, 별이 반짝이는 광활한 우주 아래로 놓아둡니다. 함께 별을 보는 두 뒷모습이 그려지는 잔잔한 여운을 느끼며 소설을 마무리 되요.

하지만, 이 소설이 감동을 주는 이유는, 단지 세상에 섞이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떠돌던 도영이 우성이라는 등대를 만나 닻을 내리는 해피엔딩 때문은 아닙니다. 도영은 우성을 보고, 평행선이라고 합니다. 세모는 세모의 길을 가고 네모는 네모의 길을 가서 서로 마주칠 수도, 이해 할 수도 없어요. 그런데 이런 평행선은 단지 이성애자 네모와 성수수자 세모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노동자 부모 네모와 대학생 아들 세모, '치료'를 바라는 사랑 네모와 '인정'을 바라는 사랑 세모, 그리고 현생에서 뽀족이며 나를 찌르는 많은 세모와 네모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나'에 대해서 묻습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그래서 '나'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나름대로의 답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우리'를 만들어가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는 '우리', 꿈이 같았던 '우리', 공통점이 많았던 '우리'말이예요.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니 전혀 다른 것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들' 속에 들어가 '그들'에게 '우리'로 인정 받는 과정이 필요하죠. 공부를 열심히 한다. 친절해야 한다. 약자를 챙기고, 바른말을 할 수 있는 정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분명, 이런 '모범'의 정의가 존재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그들'의 '모범'은 내가 전혀 모르는 '무엇'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조직 문화'라던데, '문화'의 정의도 이제껏 알던 것과 다른 것 같죠.

그래도, 시계 속 부품이 무브먼트를 탈출하면 그저 무용한 알갱이에 불과하니, 사방의 톱니바퀴와 맞춰가며 모난 부분은 깎아내고 부족한 부분은 덧대가며 삽니다. 반듯한 네모들이 각 잡고 도열한 틈에, 똑같은 모양과 색깔에 네모가 되길 바라며 말이예요. 어느 순간 노력을 하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고, 되려 누군가의 '다름'이 불편하게 느껴져 자연스레 비난을 하게 될 때, 아... 내가 네모가 됐구나!란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해 지는 것은 세모였던 내가 썩 싫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애당초, 세모가 더 좋은지 네모가 더 좋은지 내가 선택했었나? 그냥 네모로 살아야 할 줄 알았지. 그래서, 세모를 비난하다보다. 내가 못했는데, 누군가는 세모로 당당히 살까봐. 뭐, 그런 생각도 듭니다.

대학가는 아들을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는 우성의 부모, 동성애를 고백한 아들에게 치료를 권하는 도영의 부모... 소름끼치게도 현생의 일면입니다. 오메가버스를 처음 접했을 때, 어쩌면 작가는 그 흔함을 판타지로 만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뀔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결코 바뀌지 않는 것이 있어요. 자신의 경험만을 유일한 진실로 믿는 부모님의 생각입니다. 그분들의 살았던 삶은 바뀔 수 없고, 그 삶을 통해서 얻은 깨달음 역시 바뀌지 않아요.

결국, 다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바꾸는 노력이 아니라 벗어나는 시도가 필요하지만, 그것이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눈뜨고 처음 본 사람도, 처음 꺼낸 말도,처음 먹은 음식도 가장 많이 먹은 밥도, 세상을 보는 안경이 되어준 사람 역시 부모님이죠. 부모님이 네모인 세상에 세모로 사는 것은 그래서 '잘 못 되었다.'로 쉽게 귀결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네모와 세모가 함께 공존하기 위해서 꼭 한쪽이 변해야 할까요? 네모를 비난하는 세모도, 세모를 비난하는 네모도, 서로 바뀌라 다투는 그 논쟁들이 반드시 필요한 걸까요? '네가 네모인 세상'이 왜 '내가 세모인 세상'도 아니고 '네가 세모인 세상'도 아닐까요? 결국은, 없었던 것도 필요한 것도 '접점'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떠밀려가는 속도에 잠시 서서, 반대편을 직시하고 이해하려는 침묵의 시간말이예요.

어쩌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멀고 힘든 답만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시리어스 모드에도, '네가 네모인 세상'을 '시리어스물'이 아닌 '달달물'로 분류한 이유는, 두 편의 외전 때문입니다. 6남매 장남이 도저히 가질 수 없는, 막내 도련님의 본태성 귀염질(?)을 마음껏 감상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이해심과 돌봄을 탑재한 우성의 다정함은 말해 뭐하겠습니까? 포도당 사탕을 챙겨 먹지 않아도 정신이 번쩍 드는 달달로, 본편의 다소 씁쓸함을 입맛을 씻어 낼 수 있습니다. 마치, 잘 차려진 한상차림의 디저트처럼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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