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시크노블

출간일: 2019.04.18

분량: 본편 2권

 

 

 

 

 

 

 

point 1 책갈피

"주군."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유안이 겨울 입을 뗐다. 그는 꼭 속삭이듯 륜을 불렀다.

"제게 왜 돌아오지 않았냐 묻지 마시고, 왜 돌아왔냐 물어 주시면 아니 되겠습니까."

유안의 물음은 어딘가 애처로웠다. 울고 있지 않으나 그의 말끝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듯도 하였다. 그것이 가슴을 애틋하게 움켜쥐었다. 목이 타는 듯함에도 술잔에 손을 가져다 대지 못한 륜이 물었다.

"유안. 왜 내게 돌아왔지?"

곧은 시선이 륜의 눈, 코, 입을 천천히 훑었다. 그의 눈에 자신이 담기고 있음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가슴이 둔중하게 뛰었다.

"주군의 곁에 있기 위해 돌아왔습니다."

문득 거창한 생각이 들었다. 제 짧지만 길었던, 어떤 날은 보잘것없고 어떤 날은 지대하게 느껴졌던 그 오 년이라는 시간은, 이 말을 듣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을까.

그럼 그가 전장에서부터 이곳까지 쉼 없이 달려온 연유는, 저 말을 전하기 위함이었나.

그만 잊자면서도 다짐밖에 하지 못하였던 케케묵은 감정들이 진실로 한봄의 눈처럼 녹아내렸다.

point 2 줄거리

기: 폐위된 륜의 자택에 다리를 저는 유안이 나타난다. 유안은 륜의 오랜 호위무사였다. 그리고 반정의 날에 원의 옆에 서 있던 사람도, 황궁에 남은 륜의 세력을 잔혹하게 학살한 것도 모두 유안이었다. 눈이 하염없이 내리는 날, 배신자에게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유안은 무릎을 꿇었고, 마음이 순하고 약한 륜은 결국 유안을 집으로 들인다. 유안은 륜에게 금족령이 풀렸음을 알려준다. 유안과 륜은 함께 시장에 가고, 소소한 대화를 나누고, 풍등을 날린다.

승: 륜의 어머니인 황귀비가 황제의 총애를 얻고 세를 불리면서, 황후의 적장자이자 문무를 겸비한 원은 북부 변방으로 자진 출정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원을 지지하는 대장군 금서목의 아들 금유안에게 목숨을 빚지고, 유안은 원의 사람이 되어 혈맹을 맺는다. 한편, 뛰어난 무재인 유안을 눈여겨 본 황귀비는 륜의 호위로 유안을 지명하고, 유안은 륜의 곁에서 원의 긴자 노릇을 한다. 하지만, 유안이 가까이서 본 륜은 착하고 순한, 황귀비의 희생양일 뿐이었다.

전: 황귀비로 인해 고립되어 외롭게 살던 륜은 유안에게 연심을 품고, 유안의 마음의 주인 역시 원이 아닌 륜이 된다. 륜은 황귀비에게 소극적 저항을 하지만, 황기 비는 황제의 유언을 고쳐 기어코 륜을 황제로 만든다. 한편, 유안의 변화를 알아챈 원은, 륜이 황귀비가 부정을 저질러 낳은 자식임을 유안에게 알려 준다. 유안은 원에게 륜의 목숨을 구걸하며, 스스로 배신자가 되어 반정이 앞장선다. 그리고, 전장에서 한 다리를 잃고서야 륜에게 돌아올 수 있었다.

결: 금족령이 풀린 륜의 집에는 손님이 들고 난다. 유안은 살얼음판 같은 황궁에서 꿈꾸지 못했던 평화로운 생활을 륜에게 주려 한다. 그리고 유안과 륜은 서로의 마음을 고백하고 연인이 된다.

point 3 전지 충의 Review: 돌아가는 길

사진 잘 찍는 사람들이 참 많아졌습니다. 물론, 저는 잘 못 찍습니다. 특히, 인물 사진! 그래서, 웬만하면 사진을 잘 찍지 않습니다. 같이 여행을 가도, 제 친구가 1000장을 찍을 때 저는 10장 정도를 찍죠. 그나마 그 10장도, 모두 '길' 사진입니다.

'길'에서 느껴지는 감성이 있습니다. 긴 전신주가 붉게 물든 노을을 어지러이 엮어 놓은 듯한 골목길, 나무 그림자가 띠를 이루는 산길, 자전거나 화분들이 낡은 철문을 지키는 주택가 앞길, 이런 길들을 보면 문득 울컥함이 샘솟을 때가 있어요.

오가는 이 없는 길은 공터가 되고, 발길이 닿는 흙무더기엔 오솔길이 나죠. 길은 목적지나 출발지가 되진 못하지만, 목적지로 향한 이야기나 출발지에서 시작한 설렘은 가지고 있어요. 얼마나 많은 발길이, 하나의 길을 만들었을까요? 물론, 이런 저에게 친구들은 인간에게서 못 느끼는 공감을 길에서 느낀다고, 길만큼 사람에게도 EQ를 발휘해보라고 놀립니다. 그래도, 저는 그들의 사진은 찍어주지 않습니다.(단호!)

유안에게 너무나 길고 멀었던, 륜에게 돌아가는 길을 생각해 봅니다. 추운 겨울 눈이 날리는 길 위, 다리를 저는 장수는 자신이 배신한 주군에게로 돌아가죠. 5년 전 마지막 봤던 그 절망적 표정을 기억하면서도, 박대 받아도, 끝내 거절당한다고 해도, 이 길을 걷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시간이 있었으니까요.

혈통, 재능, 기질 모두 황제감인 원은 황귀비에게 그 당연한 자리를 위협받습니다. 륜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죠. 륜은 황제가 되지 않기 위해, 문무를 멀리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죽어나는 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마음이 약한 륜은 원이 죽는 것도 싫었고, 자신의 시비들이 다치는 것도 싫었고, 황제가 되는 것도 싫었지만, 황제가 되지 않을 수도 없었죠.

륜은 그 끝이 죽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거부할 수 없었고, 그 길에서조차 원하는 것 하나 가질 수 없었어요. 그런 륜의 삶에 유안은,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의 주인이었고, 예정된 죽음으로부터 살고 싶게 만드는 유일한 사람이었죠. 즉위식 전날 유서를 써요. 륜은 그곳에 적지 못한 유안의 이름을 떠올리며 글을 써 내려갑니다. 그것 유서였지만, 연서이기도 했어요.

'배반'은 현재와 과거가 번갈아 나오는 구조로 진행됩니다. 이야기를 데칼코마니처럼 같은 형태의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색도 결도 다릅니다. 황궁에서 유안과 륜은 귀한 존재였고 가진 것도 많았지만 무기력했죠. 하지만, 모친의 기일조차 숨어 지내야 하는 상황과 더 이상 전장에 나갈 수 없는 무사는 훨씬 행복해 보입니다. 시장을 가고, 책방에서 빨간책을 빌리고, 낚시를 하고, 금을 타고, 그림을 그리고, 당과를 사 먹고, 풍등을 날립니다. 사랑을 나누고, 함께 여행을 다녀요.

륜은 유안에게 배신했다고 따지지 않습니다. 유안의 주인은 원래 원이었으니, 배신한 것이 아니라고 말이죠. 유안 역시 륜에게 왜 배신할 수밖에 없었는지 변명하지 않습니다. 륜을 살리기 위해서였다고, 도박이었음에도 다리를 내어 줄 정도로 간절히 돌아오고 싶었다고 말하지 않아요. 분명히, '배신'이고, 그것이 주요 내용인데도, 저 또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륜이 황제든, 황자든, 주군이든 유안이 돌아올 장소는 필시 륜이었을 것이고, 유안이 원의 첩자든, 상흔 무사든, 반정공신이든 륜은 유안을 기다렸을 테니까 말이죠.

해외로 입양된 후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한군으로 돌아와 예전에 살았던 집을 찾아가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 있습니다. 공항에서는 분명 미국인 같았는데, 살던 마을로 돌아오니 과거 깡촌 꼬마가 된 것처럼 앞장서 길을 찾아가더라고요. 돌아가는 길은 그런 것 같습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 어떻게 가게 돼도, 마땅하고 당연하게 나를 맞이해 주는 길이니까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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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비욘드

출간일: 2019.09.16

분량: 본편 5권 +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살짝 열어둔 창밖에서 싸구려 폭죽이 픽픽 튀어 오른다. 새해였다. 슈슈는 뤼옌을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코코아가 섞인 달콤한 술기운에 달아오른 몸이 뤼옌에게 가까워진다. 쪽, 맞붙은 입술이 따뜻하다. 마시멜로우처럼 말랑말랑하고 달달한 향기가 풍긴다. 입맞춤에서 시작된 키스는 좀 더 짙었다. 혀로 입술을 핥고 서투른 몸짓에 맞춰 그를 헤집듯이 녹였다. 한계치까지 달아 오른 찰나에 뤼옌은 억지로 제동을 걸었다. 만일 여기서 선을 넘는다면, 여태 뤼옌이 의도하려던 다정함이 더는 될 수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나를 자꾸 건드리면 안 돼, 슈슈."

"내가 뤼옌을 건드렸어요?"

"아주 많이. 지금도 그러고 있고."

실낱처럼 가늘어진 경계선 중간이 점점 흐려진다. 숨을 크게 내쉰 슈슈가 뤼옌의 목에 팔을 가볍게 둘렀다.

"뤼옌이 싫다면 안 건드릴게요. 하지만."

팔을 붙잡은 손가락이 약하게 살결을 두드린다. 문을 열어달라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나는 건드려도 되는데."

입술을 벌리고 헤헤 웃으며 슈슈가 속삭였다.

point 2 줄거리

기: 본명 윤수영, 한국계 미국인이지만 중국계 매춘부 페이에게 길러져 '슈슈'로 불린다. 불법 약물 유통책이자 형사 마이클의 정보원인 슈슈는, 신형 마약을 유통한 라틴계 마약 카르텔 바실리스크 수사를 돕게 된다. 그리고 클럽에 잠입해 마르게스에 접근하던 슈슈는, 절대 만나야 안되는 사람과 마주친다. 천뤼옌, 페이가 죽던 날 그 장소에 흔적을 남기고 떠난 중국계 마피아 백사의 간부, 슈슈는 그 날 이후 백사의 정보를 FBI에 넘기고 증인 보호 프로그램을 받고 있다.

승: 얼떨결에 슈슈는 마르게스와 천뤼옌의 포커 상품으로 걸린다. 다행히 마이클의 급습으로 현장은 정리되지만, 슈슈는 룸메이트 앤디와 도망을 가고, 기차역에서 천뤼옌에게 잡힌다. 뤼옌은 앤디의 안위를 담보로 슈슈를 협박하고, 결국 슈슈는 뤼옌의 호텔방에 감금된다. 슈슈는 뤼옌이 페이를 죽였다고 추측하면서도, 천뤼옌에게 페이를 죽인 범인을 죽여 달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그 대가로, 살인 청구 완료시까지 자신의 몸을 뤼옌에게 준다. 뤼옌과 슈슈는 페이를 죽인 범인을 함께 쫓는다.

전: 한편, 바실리스크의 수장 미아 토레스를 만나러 간 자택에서, 슈슈는 백사의 또 다른 간부 레이몬드를 만난다. 그 후 뤼옌과 슈슈는 공격을 받고, 퇴역 군의관 사만다가 있는 성당에 숨는다. 그곳에서 슈슈는 마이클을 만나 백사의 정보를 넘기고, 레이몬드는 그런 슈슈의 행보를 천뤼옌이 다 알고 있다고 알려준다. 더불어 백사의 다른 간부들이 노리고 있다며, 보호를 이유로 슈슈를 카오춘의 배에 태운다. 그리고 그 배에서 슈슈는 뤼옌의 살인자다운 면모를 실감한다.

결: 슈슈는 뤼옌에게 도망쳐 마이클을 찾아가고, 페이가 자신처럼 '정보원'으로 일했고, 백사의 수장 '천쿤'의 물건을 훔치려 했다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이클은 흥분한 슈슈를 체포하지만, 슈슈는 바실리스크 미아의 자택으로 도망친다. 하지만, 미아는 뤼옌에게 슈슈를 넘기고, 뤼옌은 슈슈에게 '진실'을 알려준다. 한편, 천쿤은 페이가 훔친 물건을 가진 슈슈를 납치하고, 뤼옌은 슈슈를 구하러 간다. 뤼옌은 천쿤을 죽이고 크게 다친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온 슈슈의 앞에 뤼옌이 나타난다.

point 3 전지 충의 Review: Go Go 슈슈!!!

'수렵'에는 정말 많은 인물과, 복잡하게 얽힌 관계, 그 배경이 되는 복층적 감정이 나옵니다. 오랜 시간 누적 된 사건사고들이, 계기를 만나 또 다른 사건의 변곡점이 되며, 이야기는 활기찬 가지치기를 이어가죠. 그래서, 몸을 대가로 살인청부한다는 설정상 신의 비중은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거침없이 뻗어나가는 스토리 라인 중간중간마다, 다소 길고 반복되는 신이 있다는 것이 '제동'처럼 느껴져 아쉬웠습니다.

'수렵'에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많이 나옵니다. 주인'공수'에게 헤드라이터를 양보한 채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존재감으로 남는 것이 아닌, 모두 자기 자리에서 나름에 애환과 사명감을 가진, 성격 있는 인물들로 묘사되죠. 악역이든, 조연이든 말이에요. 물론, 그중에 단연 1등은 주인수 슈슈입니다.

슈슈에 대한 평가는 리뷰어마다 차이가 큽니다. 답답수나, ㅈㄹ수로 묘사되는 경우도 꾀나 많습니다. 이유는, 슈슈가 페이에게 속고, 마이클에게 속고, 레이에게 속지 않았다면, 모든 갈등은 애초에 시작되지도 않았거든요. 슈슈를 위해 희생도 불사한,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해왔던 뤼옌의 결정은 실패로 끝납니다. 아마도 많은 독자들은, '슈슈 제발 가만 좀 있어!!!'를 외치지 않았을까... 예상해 봅니다.

하지만, 모두가 뤼옌처럼 재력과 정보를 가진 결정적 위치에 놓이는 것은 아니죠. 오히려, 돈도 정보도 없이, 불합리한 결과를 강요받는 경우가 더 많을거예요. 그때, 힘있는 누군간가 그냥 아무것도 묻지 말고 나만 믿고 기다리라고 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최선일까요? 글쎄요. 아무것도 모르고, 할 수 있는 일도 없는 망망대해같은 상황 속에, 그 기다림은 '믿음'이 아니라 '체념'에 가깝지 않을까요? 진실을 알려고 노력하고,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이런 게 약자가 포기할 수 없는 일에 끝까지 매달리는 법 아니던가요? 마치 슈슈처럼 말이죠.

슈슈는 12살 위탁가정에서 가출해 샌프란시스코 매춘가로 와 페이를 소매치기 합니다. 페이는 그 어린 슈슈를 경찰에 끌고 가는 대신,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와서 가족으로 돌봐줘요. 물론, 그 마음이 대리만족이든 우월감이든 어쨌든 그건, 슈슈에게 구원이었고 생에 처음 맛본 따뜻한 것이었죠. 페이는 슬프게도 슈슈의 기억만큼 좋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경찰의 정보원으로서 백사 수장 천쿤의 측근인 챈들러 웨슬리에게 접근하다가, 챈들러가 관심을 보이자 슈슈를 버리고 그 남자를 따라가요. 그리고, 그를 통해 빼돌린 천쿤의 '살인 청부 명부'를 슈슈의 생일 선물에 숨겨 보내고, 또 그걸 붑니다. 덕분에 슈슈는 백사의 표적이 되죠.

하지만, 슈슈에게는 유일한 가족이었어요. 어느 날 잔인하게 죽어버린 페이의 사체와 그 곳에 보란 듯이 놓인 옆집 남자의 코트를 보고, 뤼옌의 예상처럼 증오심만으로 기다릴 수는 없었죠. 뤼옌이 슈슈를 위해 페이를 살려줬고, 페이가 뤼옌의 눈에 칼집을 냈고, 뤼옌이 그 페이가 저지른 과오로부터 슈슈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고군분투 중일지라도, 슈슈는 연인이 가족을 죽였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손 놓고 있을 순 없었어요. 그래서 FBI에 백사의 정보를 넘기고, 마이클의 정보원이 됩니다.

기다릴 줄 알았던 슈슈의 죽음을 접한 뤼옌은 절망합니다. 하지만, 역시 그답게 곧 슈슈를 찾아내죠. 그럼에도 슈슈를 바라봐야만 했던 5년은 마이클의 정보원으로 온갖 조직의 이권 전쟁 한가운데에 있는 슈슈가, 백사의 노림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어요. 마이클이 페이의 진범을 찾아 줄 용의는 고사하고, 진실을 알려 줄 의도조차 없음에도, 슈슈는 그 위험한 일에 이용되고 있었던 거죠. 그런 면에서 레이의 속임수는 귀여운 수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리카이춘으로부터 지켜줄 마음이 있긴 했으니까요.

슈슈는 아주 여러번, 뤼옌에게 페이를 죽였냐고 묻습니다. 페이가 슈슈가 생각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야 했던 뤼옌은, 대답을 회피합니다. 어떤 독자가 슈슈에게 무언의 외침을 멈추지 못했다면, 저는 뤼옌의 멱살을 몇 번 잡았죠. '제발, 말을 하란 말이야!!!' 슈슈는 리옌이 페이를 죽였다고 확신하면서도,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 간극에는, 뤼옌이 페이를 죽이지 않았다고 믿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 있었어요. 어쩌면, 그 많은 사람들에게 속고, 죽음 가장해서라도 뤼옌에게 벗어나 페이에 죽음을 파헤쳐야 했던 이유는, 그 코트의 주인이 뤼옌이지만 뤼옌은 범인이 아니라는 진실을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슈슈는 뤼옌이 페이를 죽였다는 확신이 들자, 뤼옌을 떠납니다. 페이에 복수로부터도 도망을 치고 말죠. 물론, 여러 번 언급하지만, 슈슈와 뤼옌의 정보 비대칭은 심각해요. 뤼옌은 슈슈를 매우 쉽게 찾습니다.

오해가 풀리자, 지나 온 시간이 아까운 것처럼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떨어질 줄 모릅니다. 이름도 많았던 백사의 천쿤이 죽고, 리카이춘은 더 일찍 감치 죽이고, 레이는 정신병원에 가죠. 백사의 간부들은 과거 백사 수장의 아들이자 천쿤을 죽인 뤼옌에게 반기를 들지 않았지만, 슈슈와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싶었던 뤼옌은 경호회사 대표가 됩니다. 잠깐의 출장도 애타는 신혼생활로는 부족했던지, 외전에서는 AU버전으로 Jr.슈슈도 볼 수 있죠.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나은 경우도 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많은 사람이 현명하게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죠. 그렇다고 약자가 권리도 판단도 의지도 양도할 필요가 있을까요? 빠르고 좋은 결론보다는, 납득 가는 결론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중한 것을 위해, 스스로 움직 일 수 있는! Go Go 슈슈!!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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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비욘드

출간일: 2018.12.19

분량: 본편 1권

 

 

 

 

 

 

point 1 책갈피

"산타클로스도 누군가 소원을 들어줬으면 좋겠어. 특히나 사랑하는 사람이 대상이라면."

그는 얼굴을 붉히며 낮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너를 알고 지낸 세월은 너무 일방적이었어. 너를 더 알고 싶었지만, 불문율을 깰 수 없어 늘 망설여야 했지. 하지만 이렇게 되고 보니... 길었던 기다림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결국 너는 내게로 왔잖아. 우리의 남은 시간을 앞으로도 영원할 거야."

그는 내 손을 잡고 나의 얼굴을 시간을 들여 차분히 바라보았다. 마치 그 속에 과거의 내가 숨겨져 있기라도 한 듯, 입맞춤을 조르던 아이와 그에게 엉뚱한 소원을 빌었던 내 모든 순간을 건져 올리듯 나를 보았다. 그 깊은 눈을 바라보자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그의 얼굴을 마주해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소원이 뭔데요?"

소원을 들어주고 싶어 안달이 난 내 모습에 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어렸다.

point 2 줄거리

기: 어릴 때부터 매해 크리스마스 소원을 빌었던 아인 리, 올해는 '섹시하고 잘 생긴, 카리스마 넘치는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게 해주세요.'라고 적어 성탄 양말에 넣었다. 그때, 상사 레지 이글턴에게 연락이 온다. 갑작스럽게 연장된 출장 때문에 이틀 뒤 미팅에 대신 나가 달라는 것! 아인리는 젠텐스사의 가장 중요한 고객인 산타클로스의 첫째 아들, 하칸 클로스의 신제품 브랜드 매니저가 된다. 잘생기고 거만한 하칸 클로스는, 아인 리에게 크리스마스 소원을 묻는다.

승: 하칸은 '야근 없는 크리스마스 맞이'를 소원이라고 말하는 아인 리에게 무례하게 굴며, 아인 리의 작년 민망한 크리스마스 소원을 말한다. 신제품 계약은 성사 됐지만, 아인 리는 적나라한 망상을 들켰다는 사실에 몸서리친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홀로 사무실에 남아 야근을 하는 아인 리 앞에 하칸 클로스가 나타난다. 하칸은 뒷걸음 질 치는 아인을 데리고 옥상 주차(?) 된 순록 썰매에 태운다. 아인은 하늘을 나는 썰매를 타고 하칸과 함께 선물을 나누어 주러 다닌다.

전: 신비스러운 경험에 신이 난 아인 리는 긴장을 풀고 수다스러워진다. 하칸은 아인이 여섯 살 산타와 함께 선물을 배달하고 싶다는 소원, 여덟 살 하늘을 날고 싶다는 소원을 빌었다고 말해준다. 그러나 열 살 옆집 형과 입 맞추고 싶다는 소원이 이루어지며, 아인의 크리스마스 소원은 은밀한 욕망의 절정을 이룬다. 하칸은 아인의 소원을 하나씩 모두 이루어 주겠다고 하고, 쌓아 온 소원들을 하나씩 실천(?)한다.

결: 일찍이 깨달은 성향, 보수적인 집안, 소심한 성격의 아인 리는 상상 속 자유분방한 또 다른 아인 리의 소원을 성탄 양말에 넣었었다. 그 대부분의 소원을 한큐에 이룬 아인 리는, 열 살 처음 이루어진 크리스마스 소원의 주인공인 옆집 형이 사실은 하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밤을 보내고 아인은 하칸을 떠나보낸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아인은 주택가에 주차된 빨간 페라리에서 하칸을 발견한다. 아인의 크리스마스는 끝나지 않았다.

point 3 전지 충의 Review: 진짜 소원

오늘이 크리스마스이브라는데... 이것이 정말 실화인가요? 어제가 23일인 것은 알았지만, 오늘이 크리스마스이브인 것은 이렇게 낯설 수가 없습니다. 산타클로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도, 매년 크리스마스는 들뜨는 날이었습니다. 소소하게 지인들과 선물도 주고받고, 제법 좋은 레스토랑에서 특별한 식사도 하고, 반짝이는 트리 장식과 신나는 캐럴, 연말의 우울함을 잊게 되는, 에너지 넘치는 휴일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올해는... 정말 1년을 정확히 365등분 한 것 같은 비중의 하루네요.

길거리에서는 찾을 수 없는 성탄절 분위기를 책에서 찾습니다. 그래서, 12월 들어서는 크리스마스 테마의 작품들을 몇 권 사서 읽었지만... 슬프게도 성공률이 낮았습니다. 오히려 우울해지는 부작용에 시달렸죠. 올해는, 참으로 경건하고 고요하게 지나가겠구나... 생각하고 있었을 때, 두둥! 하고 등장한 '섹시 산타 카리스마'! 정말 제대로 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올해 실패한 크리스마스 테마 서적들의 공통점은, '업'에만 집중했다는 거였어요. 밝고, 자극적이고, 가벼운 소재와 전개들이 주류를 이뤘죠. 그런 것들이 나쁘다기보다는, '어울림'이라는 것도 중요한데, 이 내용에 왜 꼭 '크리스마스'가 필요한지 설득력이 부족했습니다. 호객꾼이 산타 복장을 입어도, 산타가 될 수 없는 느낌이랄까요. 산타는 빨간 옷을 입은 사람 아니라, 선물을 주는 사람 아니던가요? 좀 빚 좋은 개살구 같았어요.

그런 점에서 '섹시 산타 카리스마'는 투텀즈 업!이었습니다. 아인 리는 게이에 작고 소심한 동양인입니다. 성실하고 믿음직하지만, 그런 점이 상사에게도 놀림거리가 되죠. 아인 리는 좋아했던 옆집 형에게 고백하지 못하고, 그 짝사랑의 마음을 소원에 담아 성탄 양말에 넣습니다. 그리고, 그 해 소원이 이루어져요. 형이랑 입 맞춤을 하게 되거든요. 그다음부터 아인 리는, 현실의 아인 리가 결코 입에 담을 수 없는 가장 음습하고 본능적인 소원들을 성탄 양말에 넣습니다. 올해도 말이죠.

'전 세계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려면, 산타 할아버지는 엄청 부자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부자였죠. 젠텐스사의 숨겨진 VIP, 세계 유수 재벌보다 더 많은 부를 보유한 큰 손, 클로스가의 장남 하칸 클로스는 매해 아인 리의 '진짜 소원'을 봅니다. 하지만, 옆집 형이 되어 들어주었던 열 살 이후로의 소원은... 도저히 들어 줄 수 없었어요. 하지만, 올해 소원을 달랐죠. 섹시하고, 잘 생긴 카리스마 있는 상대가 되어 아인 리의 앞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아인 리는 누적된 진짜 소원들을 들어줘요.

'진짜 소원'은 의외로 알기 힘들어요. 어릴 때는 솔직했던 것 같은데, 생각이 많아지면서 스스로에게 조차도 솔직해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확실한 건, 백과사전 전집이나 위인전을 소원하지는 않는다는 거죠. 아인 리는 대외적으로 '야근을 하지 않는 크리스마스'를 크리스마스 소원을 빌 수밖에 없었지만, 진실로 원한 건 상상 속 '아인 리'처럼 거침없이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는 거였죠. 양말에 넣는 순간, 빼박 접수된다는 소원 접수처인 성탄적 양말의 실체를 알게 된 아인 리는, 하칸에게 더 이상 숨길 방법도 이유도 없었어요. 게다가 섹시하고, 잘 생기고, 카리스마 있고, 절륜하고, 돈 많고, 정확히 아인이 원하는 바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죠.

크리스마스 자정, 하늘을 나는 순록 썰매를 타고 황홀한 밤을 보낸 아인 리는 그 다음날 현실로 돌아옵니다. 산타의 선물은 행복하지만, 크리스마스에만 받을 수 있죠.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와야 할 때입니다. 하지만, 그 다음날 아인 앞에 하칸은 또다시 나타납니다. 하칸은 말합니다. 이번엔 산타의 소원을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이죠. 하칸은 아인에게 '천년 뒤의 크리스마스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는 소원을 빌어요. 네, 크리스마스엔 모두가 행복해야겠죠. 아인 리와 하칸을 포함해서 말이에요.

나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모두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되길 바랍니다. '진짜 소원'을 클로스가에 전송해주는 성탄 양말은 없을지 모르지만, '진짜 소원'을 알고 있고, 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희망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진짜 희망'이 Happy New year에 이루어지길 바랄게요.

Merry Chistmas!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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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ss me, Liar 본편 Review

 

2020/08/02 - [BL 소설] - [오메가버스/리맨물/삽질물] Kiss me, Liar - ZIG

 

[오메가버스/리맨물/삽질물] Kiss me, Liar - ZIG

출판사: 이클립스 출간일: 2017.01.18 분량: 본편 4권 + 외전 2권 ​ ​ point 1 책갈피 ​ "아프고, 아프게 하고, 다치고, 다치게 하고, 그리고 키스하고 화해하고. 다시 고백하고, 외롭지 않게 안아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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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1 책갈피

두통이 일어나 무심코 신음을 흘렸다. 연우가 기억을 잃었을 때 자신과 있었던 일을 못 믿고 계속해서 엉뚱한 소리를 했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자신의 바닥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 때마다 그는 더 깊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크레바스조차 이 정도로 깊지 않을 것이다.

버티기 힘들었을 텐데.

연우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눈치채지도 못했다.

그만큼 나를 좋아했구나.

새삼스러운 죄책감과 무안함과 안도감이 동시에 치밀어 오르고, 자신이 얼마나 졸렬한 쓰레기인가를 연달아 자각했다. 페로몬을 이유로 자신은 실제 그토록 많은 상대와 놀아난 주제에 연우가 같은 짓을 한다는 상상만으로 이렇게나 속이 뒤집어지다니.

point 2 줄거리

외전1: Kiss me, Idiot: 연우는 키이스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키이스가 잠자리 경험이 많다고 오해를 하도록 내버려 둔다. 그러던 어느 날 SM 플레이가 화재로 등장하고, 얼떨결에 연우는 키이스와 플레이를 약속하게 된다. 하지만, 연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플레이는 성공(?)하지 못했고, 결국 키이스를 좋아해 오메가로 변이한 후 10년간 누구와도 자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외전2: 어느 날 갑자기: 외전1에서 SM 플레이 준비(?) 해야 했던 연우는, 급한 데로 데인에게 SOS를 요청하고 함께 성인용품점에서 쇼핑을 한다. 그리고 그 장면이 파파라치에 찍히면서, 연우와 키이스의 파경 기사가 나고, 연우는 해명을 위해 키이스의 사무실로 가려 한다. 그러던 중 연우를 쫓아오던 스펜서가 계단에서 넘어지고, 연우는 몸을 날려 스펜서를 구한다. 병원에서 깨어난 연우는 기억상실에 걸린 채, 오로지 키이스가 상처 준 사실만을 선명히 떠올린다.

외전3: Kiss me, Gentleman: 외전2에서 연우는 다행히 기억을 찾지만, 키이스는 과거 연우에게 많은 상처를 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면서 연우가 얼마나 많이 참고 불안했을지 이해한다. 그러던 중 키이스는 장기 출장이 잡힌 날, 연우는 감기에 걸린다. 그리고, 비슷한 상황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연우는 불안함을 느낀다. 그 모습을 본 키이스는 아픈 연우를 데리고 출장을 떠나고, 오랜만에 회사일을 접한 연우는 비서였던 과거를 떠올린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해결하지 않은 것은 해결되지 않는다.

저는 외전에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외전은 본편 이후 이야기나 AU를 가정한 별개 스토리를 다룬, 있으면 좋고 없어도 나쁘지 않은 '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비유하자면, 건빵의 별사탕 같은 존재랄까요. 별사탕이 없으면 섭섭하지만, 건빵은 건빵만 있어도 건빵이죠. 그래서, 본편의 연장선상에서 스토리 전개가 있는 외전은, 외전이 아니라 2부로 편성해야 한다!!! 고 생각 합니다.

이런 점에서 Kiss me, Liar 외전은 참 독특합니다. 물론, 본편보다 외전이 더 많은 작품들은 간혹 있습니다. 하지만, 본편의 이야기에서 더 전개가 된 것이 아님에도, 번외 단편을 다뤘다고 하기엔 외전과 외전끼리, 또 외전들과 본편이 유기적 연관 관계를 맺고 있는 작품은 생경해요. 고로, 외전을 리뷰하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Kiss me, liar'는 오만한 재벌이자 극우성 알파 키이스와, 그를 사랑한 거짓말쟁이 연우의 '사랑 찾아 삼만리'를 그린 작품입니다. 대학시절 만남, 변인, 그리고 사랑을 모두 비밀에 부치고, 유능한 비서를 연기하며 키이스와 그의 파트너 뒷수습을 도맡고 있던 연우가, 불행한 사고로 퇴사하게 되면서 급진전돼요. 키이스는 연우에게 끌리면서도 남자인 연우에게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죠. 하지만, 눈앞에서 연우가 사라지자 다급해집니다. 결국, 연우의 치료를 돕겠다는 명목으로 반동거를 시작하고, 본능처럼 사랑하게 돼요. 물론, '사랑'을 해 본 적 없는 키이스와 '진실'을 숨기기 바쁜 연우의 연애는 쉽지 않았고, 많은 시련을 겪습니다.

결론은 Happy ending입니다. 하지만, 누가 사랑은 짧고, 생활은 길다고 하던가요? kiss me, liar의 외전들은 그 ending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물론, 다정한 키이스와 행복한 연우의 깨소금 결혼 생활이나 스펜서의 사랑스러운 육아기도 나옵니다. 더불어, 'Kiss me, If you can'의 주인공 조쉬의 아이들과 스펜서의 '사랑 쟁탈전'도 매 외전에 등장하죠.

하지만, 외전과 외전의 고리를 잇는 줄거리는, 연우와 키이스가 풀었어야 했지만 방치했던 과거의 이야기들입니다.

결과가 좋으면 다 괜찮아진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성공만 하면 과오는 만회된다. 어쨌든, Happy ending이라는 걸까요? 결국, 그래서, 결론적으로 어떻게 됐는데? 그것이 중요하다면 맞는 말들일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저는 그만큼 충분히 좋은 결과도 성공도 겪어 보지 못한 까닭인지, 그다지 동의하는 말들은 아니에요. 화해하더라도 싸울 때 상처 준 말들이 아프지 않은 것도 아니고, '없던 일로 치자.'라는 말은 쉽게 하지만 시간을 돌릴 수 있는 사람은 없죠.

단지, 더 이상 그 불편한 화제를 꺼내지 말길 바라면서, 상처를 묵인하더라도 잃기 싫은 관계이기에, 감수할 따름이에요. 그리고, 그렇게 툴툴 털어 버리는 건 피해자만 할 수 있을 뿐, 가해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가해자들이 더 많이 하는 말이라는 것이 씁쓸하긴 하네요.

본편에서 도망친 연우를 찾으면서, 키이스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요. 연우는 키이스에게 각인한 것도, 키이스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도 숨기죠. 결혼을 하자고 매달리는 키이스를 받아주는 것처럼 기만하고, 준비했던 빅엿을 선사하며 키이스를 떠납니다. 키이스는 연우를 번번이 놓치며, 연우가 다른 알파와 아이를 지우러 병원을 갔다는 소식을 들으며, 연우가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정에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스펜서를 낳은 결말이 훌륭한 happy ending이라고 여겨졌을지도 모릅니다. 연우와 키이스가 서로 동등하게 주고받은 거라고요.

'해결하지 않은 것은 해결되지 않는다.' 외전에서는, 그 엔딩이 동등하지도, 완벽한 happy도 아니라고 보여주는 것 같아 흥미로웠어요. 두 사람은 '결혼'을 한 것이지, 오랫동안 누적된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라고 말이에요. 물론, 감정에 '해결'이 있을 수 있을까? 싶긴 하지만, 연우의 '거짓말'은 짝사랑을 위해서였다고 변명하기엔, 키이스가 연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만든 원인을 제공했고, 키이스의 '폭언'은 서투른 애정이었다고 주장하기엔, 연우에게 잊히지 않는 상처를 너무도 많이 남겼죠.

용서를 비는 사람이 없는데, 용서를 하는 사람만 있고, 진실을 알려 줄 당사자는 없는데, 오해가 없다고 믿는 사람만 있는 꼴이에요. 감정'해소'는 어렵더라도 분명 감정'해결'은 미룰 수만은 없죠. 하지만, 참 쉽지 않습니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것 같고, 과거의 사건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괜히 찌질해 보일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각 외전마다 어쩔 수 없이, 풀어내야만 하는 사건들이 등장합니다. 외전1 SM 플레이, 외전2 스캔들 기사와 기억 상실, 외전3 연우의 회사 방문, 말이에요. 참 재미있는 구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양파 껍질처럼, 한 사건 뒤 켜켜이 쌓인 실체들을 알아가면서, '의도'와 '해석'을 새로 쓰는 일들이 반복됩니다. 그 과정을 통해 숨겨져 있던, 꼬인 실타래를 풀어가죠. 연우가 몰랐던 것, 키이스가 몰랐던 것이 모두 있지만, 그 합을 보면 결국 키이스의 후회 지분이 더 많은 듯합니다.

받은 상처의 통증이, 준 상처의 후회보다 더 아프기 때문일까요? 피해 입은 일은 세세히 기억하면서도, 피해 준 일은 정말 기억이 안 납니다. 무시하거나 잊었다기보다는, 정말 인식조차 안 돼요. 그런데, 만약 내가 많이 아파한 일의 주범이 후회는 고사하고 기억조차 못 하고 있다면, 너무 괘씸합니다. 매일 반성을 하고 살 필요는 없지만, 제쳐 둘 일도 아닌 듯하죠. 키이스처럼 길~~게, 미뤄 둔 분만큼의 죄책감을 더해서, 언젠간 꼭 해결해야 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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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모드

출간일: 2021.04.09

분량: 본편 3권 +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그의 고동색 눈동자가 자신만을 가득 담고 있는 연녹색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나는 사는 데 대단한 목표가 있진 않았어. 주어진 데서 큰 욕심 없이 적당히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라파엘은 겨우 이 정도 말로도 퍽 속상한 얼굴을 했다.

"네 옆에 있으면 계속 현재 이후의 시간에 대한 기대가 생겨나."

"......"

일그러졌던 미간이 금세 풀리고 눈꺼풀이 깜빡였다. 가을바람이 귓가에 꽂힌 꽃잎을 흔들었다. 놀란 눈으로 멈춰서 있는 라파엘에게 단테가 한 반짝 다가갔다.

"너는 내게 생각보다 더 벅차고 행복한 일이더라."

단테에게도 라파엘만큼 달콤하지는 못하겠지만 고대하던 날에 대한 계획이 있었다. 몇 번이고 먼저 문을 두드려준 후배를 대신해, 이번 고백만큼은 자신이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었다.

"네가 준 것들을 내가 알아챌 때까지 기다려줘서 고마워."

point 2 줄거리

기: 특수부대 ODA-133 팀장 단테 베일리는 3개월간 진행된 작전을 마치고, 제도로 돌아와 팀원들과 회포를 푼다. 팀막내 헤인스워스 라파엘의 6개월간의 수습 마지막 날이자 다음날부터 장기 휴가에 돌입하는 팀원들은 취할 때까지 마시고, 단테는 만취한 라파엘을 연회장이 있는 호텔 빈방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둘은 뜨밤을 보낸다. 그 다음날부터 라파엘은 연락 두절되고, 단테가 그런 태도에 실망을 하고 있을 때 폭행 당한 얼굴이 상한 라파엘이 나타난다.

승: 라파엘은 그날 자신이 단테를 강간했다고 판단하고, 자수 전 육군 총사령관인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고백하다 맞았던 것이었다. 단테는 라파엘과 함께 헤인스워스가를 찾아가 강간이 아니었고 화간이었다고 정정하며, 총사령관에게 라파엘 폭행의 부당함을 주장한다. 단테의 그 모습에 헤인스워스가는 단테를 라파엘의 약혼자라고 단정 짓고, 졸지에 단테는 명문 귀족가인 헤인스워스의 사위가 된다. 그리고 라파엘은 숨겨왔던 단테에 대한 연심을 밝힌다.

전: 단테는 라파엘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구애를 받으면서 라파엘의 진심을 느낀다. 단테는 자신의 출신과 라파엘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며 라파엘에게 포기를 설득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라파엘의 사랑은 더욱 깊어만 졌고, 우여곡절 끝에 단테 역시 라파엘을 같은 마음으로 사랑하게 된다. 그러던 중 라파엘이 있는 테네시에서 테러가 발생한다. 단테는 그 테러를 진압하며 영웅이 되고, 귀환한 단테와 라파엘의 애절한 모습이 방송을 타며 두 사람 사이는 제국적으로 알려진다.

결: 한편, 사관학교 시절부터 고아인 단테를 무시해 온 데릭슨 에프런의 시기심은 폭발하고, 결국 단테가 자란 성당을 위기에 빠뜨린다.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된 단테는 데릭슨과 싸우고 징계를 받는다. 그 뒤 라파엘은 데릭슨을 폭행하는 하극상을 저지르고, 제대한다. 단테는 라파엘과 동거를 시작하고, 라파엘은 단테와 같은 재능 있는 아이들을 발굴하고 돕기 위해 헤인스워스 재단 이사로 취임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Life는 단테 베일리처럼, Love는 헤인스워스 라파엘처럼

'로맨틱 캡틴 달링' 단행본이 나왔습니다. 두둥! 짧았던 크리스마스 외전의 아쉬움을 달래 줄 따끈한 외전과 함께 말이죠. 새로운 외전에서, 어린 신부를 꿈꾸던 라피의 소원이 드디어 이루어 집니다. 단테 베일리는 단테 헤인스워스가 되고, 무시무시한 시동생 11명과의 결투(?)에서 라파엘은 단테를 얻어 내죠. 본편의 방점을 제대로 찍은 외전이라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대형견공과 우월능력미인수, 울보절륜공과 유혹연상수, 애절과 달달이 적절히 섞인 포근 따뜻 므흣 스토리, 모아이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키워드입니다. 이렇게 귀여워도 되는 거야! 싶은 울보들이 순수하고 올곧게 직진하는 이야기들이죠. 하지만, 제가 모아이님의 소설에서 유독 애정 하는 캐릭터는 이런 댕댕이들보다는 좋은 사람의 표본 같은 강수들입니다. 공에게 사랑과 존경을 한 번에 받는, 정말 만나고 싶은 인간상들이에요. 물론,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좀 다른 타입의 공수를 다룬 군부물입니다.

단테는 고아예요. 하지만, 성당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자랐고, 80명의 동생들을 가진, 책임감 있고 정의로운 사람이기도 하죠. 어릴 때부터 뛰어난 신체 기량을 발휘한 단테는, 장학금을 받고 학군단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우수한 성적으로, 대다수가 귀족층으로 이루어진 제1사관 학교에 차석으로 입학해요. 성격 좋고, 수려한 외모의 단테지만 차별은 피할 수 없었죠. 동생에게 후계자 자리를 밀려 군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한 기수 선배 데릭슨 에프런은 고아 출신의 평민과 같은 학교 다니는 것을 치욕으로 생각해요. 그래서 단테를 괴롭힙니다. 그 서러움이 익숙해져, 무감해질 때까지 말이죠.

차별을 받은 사람은 두 가지로 나뉘죠. 내가 받은 차별을 나보다 더 약자에게 대물림하거나, 내가 받은 차별을 반면교사로 삼아 반대로 행동거나 말이에요. 단테는 후자였고, 팀장, 사수, 선배가 되어도 아랫사람에게 친근한 상대가 되어 줍니다. 억울할 법도 하지만, 단테는 요령도 불평도 없이 소신껏 살아갑니다. 약자의 목소리가 묵살되는 군대가 싫었던 라파엘은, 가장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는 단테의 모습에 반하게 되죠. 그리고, 오랜 군대 생활을 한 총사령관도, 3선 정치인 도시자도, 몸값 비싼 황실 변호사도 그 낯선 정직함에 빠져들어요. 아이러니하게도, 헤인스워스 가족들에게 단테는 신기할 정도로 만나기 어려운 사람이었으니까요.

단테는 월급의 8할을 성당에 가져다주고, 어머님이 없는 상황이 오면 동생들 중 일부를 맡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죠. 그래서 단테는 스스로를 '사랑'에는 헌신적일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가벼운 만남만을 이어왔어요. 그렇기 때문에, 라파엘이 좋은 사람일 수록, 더 자신을 많이 사랑 할 수록, 밀어내고 피합니다.  하지만 헤인스워스 패밀리는 단테를 제대로 찜 했고, 오히려 이런 노력들은 개미지옥처럼 단테의 매력에 빠지는 계기만 돼요.

 

결국, 단테는 행복한 항복을 선택합니다. 생각이 많은 단테는, 직진하는 라파엘를 이길 수 없었고, '좋은 사람' 단테는 라파엘은 만나 비로소 '좋은 사랑'을 배우죠.

'로맨틱 캡틴 달링'은 박진감 넘치고, 흥미진진한 군부물은 아닐지 모릅니다. 사건과 갈등은 있지만,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해결 되리라 예상 가능하기도 하고, 시작부터 헤인스워스의 전폭적 지지를 받기 때문에 단테의 고생은 그리 심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댕댕이가 우리 캡틴을 너무 사랑하게 되면서, 그의 과거 상처를 안타까워하는 것을 골자로 하니까요.

하지만, '로맨틱 캡틴 달링'은 몰입도가 높습니다. 단테와 라파엘이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거든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들이죠. 눈이 따뜻한 촉감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퐁실함이지 않을까? 눈부신 순백색의 솜뭉치 같은 포근함이 느껴진달까요. 좋고, 예쁘고, 착하고, 귀엽고, 바른 것 종합세트! 자극적인 매운맛에 쓰린 속을 땃땃하게 댑혀 주는 닭고기 스프 같은 글이죠. 그래서, 구원물이 아님에도 꼭 '힐링물' 키워드를 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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