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고렘팩토리
출간일: 2018.04.13
분량: 본편 2권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콩콩이 잃고 나서 슬퍼하지 않으려고 상담을 받기 시작한 거예요?"
"아니, 슬퍼하기 위해서."
최성훈의 시선은 아주 따뜻하게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내가 아주 사적인 내용을 물어본다고 해서 화내지 않으리라는 걸 확인했고, 예상대로 그는 따뜻한 우유처럼 부드러운 반응이었다.
"처음 얘기를 들었을 때, 태아가 사라지면 당신은 슬퍼하겠지만 나는 슬프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당신을 위로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슬퍼하기 위해, 당신의 슬픔에 공감하기 위해서 상담을 받았습니다. 그래야 위로할 수 있으니까."
point 2 줄거리
기: 서유(오메가)는 마포대교에서 자살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한 고급 외제차가 그런 서유를 보고 놀라 난간과 충돌한다. 운전자는 수능이 끝나고 어머니가 사준 차를 끌고 나온, 무면허 성현이었다. 형 성훈(알파)에게 혼날 것이 무서웠던 성현은 서유에게 돈을 줄 테니 잘 말해 달라고 한다. 서유는 그 제안을 수락하지만, 연락 온 성훈은 성현이 자살하려는 자신을 도왔다고 서유의 말을 믿지 않는다. 서유는 결국 성훈을 만나 설득하기에 이른다.
승: 빰에 흉터가 있는, 누가 봐도 깍두기 두목 성훈은 계속 서유를 의심한다. 서유는 자신이 자살하게 된 경위와 미리 작성한 유서까지 내보이게 되고, 졸지에 서유의 아픈 가족사를 알게 된 성훈은 더 이상 그를 다그치지 않는다. 하지만, 용돈이 끊긴 성현이 현물(?)을 지불하면서, 둘의 거래는 들키고 만다. 그리고 그 현물을 반환(?)하기 위해 만난 자리에서 술을 마신 서유는 극우성 알파인 성훈과 뜨밤을 보낸다.
전: 그 후 두 사람은 가까워지고, 성훈은 둘의 관계를 연인으로, 서유는 섹파로 여긴다. 성훈은 서유를 괴롭히는 전 남자 친구, 상사, 작은 아버지를 비롯한 난잡한 그의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서유는 그 내막을 알지 못한 채 성훈을 좋아하는 마음이 깊어질수록 비참함을 느낀다. 성훈은 서유를 가족들에게 소개하는 한편, 성훈과 어머니의 대화를 엿들은 서유는 성훈이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고 오해한다. 서유는 성훈을 피한다.
결: 그러던 중 서유는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쓰러지고,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병원에 찾아온 성훈은 서유에게 고백을 하며 청혼한다. 오해를 풀었지만, 그간의 이별로 상처가 있던 서유는 선뜻 성훈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임신 사실을 모르고 먹은 많은 약과 술로 인해 유산되고 만다. 성훈은 서유의 곁에서 서유를 돌보고, 위로해 준다. 결국 서유는 자신의 과거와 작별하고, 성훈과 결혼을 선택한다. 그리고 꿍꿍이를 임신하고, 출산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불행의 평균
불행의 평균은 어느 정도 될까요? '괜찮아, 다들 이 정도는 참고 살아.'라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이 정도'의 기준은 얼마나 높고 낮을까요? 외로운 것도, 우울한 것도, 불안한 것도, 공허한 것조차, 그저 도시에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느끼는 도시병의 일종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유난 떨 일이 아니라고 말할 때, 그 도시병의 범주 안에 묶인 사람들이 정말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사는 게 맞나요?
저는 가끔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합니다. 다들 그렇다고, 원래 그런 거라고, 평균은, 일반적으로, 보통은... 대화를 하다 보면 흔하게 등장하는 말들인데, 참 이상하죠. 도대체 어디서, 누가, 이렇게 난해한 기준을 쉽게 사용하기 시작했을까요? 1인분의 삶 밖에 살지 못하는 한 사람 입에 말하는 '보통'은, 그 부족한 근거와 모호한 정의에도, 언제부터 그렇게 '위로'가 되었을까요?
소림님의 '수'는 일면 순수하고 순진한 반면, 또 다른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유능하고 강합니다. 그리고, 그런 수에게 절대강자 공은 제대로 코가 꿰이죠. 전형적인 할리킹 뼈대에, 개그코드가 듬뿍 묻어 있습니다. 다소 과장스러운 슬랩스틱 코미디 같으면서도, 찰진 입담과 기발한 전개들이 연신 밝고 가벼운 분위기를 자아내죠. 하지만, 불현듯 냉수를 뒤집어쓴 듯 차가운 현실을 직면하게 된다는 점에서 소름 끼치기도 합니다. 급하강하는 롤러코스터를 탄 느낌이랄까요. 급냉각, 급해동, 냉탕과 온탕 사이를 정신없이 오가는 기분이 듭니다.
저는 깔끔하고 유쾌하게 휘발하는 기분 전환용 킬탐도 좋아 하지만, 오랫동안 마음에 잔여물을 남겨 놓는 고민 유발 저작물을 더 많이 아낍니다. 그러므로, 소림님의 소설에 언제나 쌍따봉을 날리게 되요. 비록, 다소의 개연성은 내려놓더라도 말이죠.
서유는 불행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었고,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트라우마에 지속적으로 시달립니다.
게다가 그 사고로 제대로 졸업하지 못해, 친구도 없습니다. 한 명 있는 친구는, 서유를 깔아 뭉개는 것으로 하찮은 자존감을 높이는 한심한입니다. 서유도 알지만, 친구라고는 그 한 명 뿐이니, 그런 취급을 받으면서도 끊어내지 못합니다.
작은 아버지는 서유의 대학 입학을 위해 부모님이 모아 놓은 돈을 갈취하고, 19살인 오메가 서유를 늙은 거래처 사장에게 넘겨 줍니다. 그 후로도 원망하는 서유에게 되레 화를 내며, 계속 하자품 늙은이들에게 서유를 내놓죠. 나중에 그 사실을 빌미로 서유를 협박하기도 합니다.
직장은 더 가관입니다. 베타 과장은 10년 사귄 애인과 결혼했음에도 계속 서유에게 성희롱 하며 추근 댑니다. 서유는 과장 말을 당돌하게 받아치지만, 괜히 인사상 불이익을 받거나 하지 않아도 될 야간 업무를 강제로 떠맡죠.
서유의 전, 전전, 전전전 남자친구들에게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정말 설사와 똥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배설물들일뿐입니다.
하지만, 서유를 마포대교로 향하게 한 이유는 나아지지 않는 악몽도, 외로운 인간관계도, 스트레스 받는 직장 생활도 아니었어요. 자신을 살리고 죽은 형의 나이보다 일찍 죽어서도 안 되지만, 그보다 더 오래 살고 싶지도 않았거든요.
서유는 불행합니다. 하지만, 서유 자신은 불행하지 않습니다. 그저, 독자가 그렇게 느낄 뿐이죠. 내가 발정 난 오메가이기 때문에, 내가 질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감히 성훈의 사랑을 받는다는 가정조차 불가능한 무가치한 사람이기 때문에...라고 말하는 서유에게 이 불행한 사건들은 일상입니다. 흔한 자낮수 같죠? 하지만, 자낮수가 설정적 캐릭터라면, 서유는 그런 작위성이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왜냐면, 서유는 당당하게 따지고, 속물처럼 적응하고 살거든요. 현생에 흔한 '보통'과 '일반'인 것처럼요.
서유는 호르몬 조절이 잘되지 않는 열성 오메가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고, 스스로를 헤픈 오메가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가족의 트라우마를 가진 서유가 제사를 준비하는 동안, 이별의 원인이 서유라고 비난하며 헤어짐을 통보한 남친을 그럴 수 있다고 넘기죠. 서유는 공과금으로 다투는 부부가 부러 울 정도로 가족을 원했기에 최선을 다해 애정을 갈구한 거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기가 질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연애는 오래가지 못했고, 자신의 밤 기술만 원하는 전 남친들의 더러운 연락들도 흔한 일상처럼 받아드립니다. 작은 아버지가 부모님이 남겨 놓은 재산을 가져가고 자신은 창부처럼 거래처에 팔아넘긴 상황에서도, 홀로 독립해 꿋꿋이 살아온 일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원래 재벌은 재벌과 수준이 맞으니, 싸구려는 낄 데가 없다고만 생각하죠.
기대하는 바가 없으니 실망하지 않는다. 대단한 일이 아니니 좌절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못 견디게 가족이 그립고, 자살하는데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는 삶을 산다는 것은, 죽지 못한 그날에 대한 죄책감일 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 걸까요? 세상에 강한 사람은 있어도 상처받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진심입니다.
서유는,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성훈에게 유일하게 감정을 알려주는 사람이기에, 불행한 현실로부터 구원받습니다. 쓰레기들은 정리되고, 가장 안락하고 아름다운 집에서, 사랑스러운 가족들과 함께 행복을 누립니다. 할리킹! 백마탄 왕자님을 만나 부엌데기가 공주님이 되는 낭만적 이야기죠. 하지만, 소림님은 한 발짝 더 나아갑니다.
성훈의 가족들은 서유가 느끼지 못하는 불행을 대신 공감하고, 아파하고 보상해 주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예쁘다고 말해주고, 맛있는 음식, 좋은 장소, 재미있는 경험, 못 간 대학까지 모두 주고 싶어 하죠.
'서유가 불쌍하니?' 서유의 어머니는 성현에게 묻습니다. 성현은 서유가 불쌍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서유를 본 친구들은 서유를 보고, '아무 고민 없이 산 것처럼 행복해 보이는 웃음'이라고 말하죠. 하지만, 성현은 서유를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싫으면서도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어요.
하나뿐인 친구 장원조에게, 서유가 불쌍한 것은 '너 같은 애도 있는데 나는 너보다 낮다.'라며 백수인 자신을 자위하기 위해 필요했을 거예요. 성현에게 서유가 불쌍해 보인 것은, 그 부족분을 채워주고 싶은 동기가 되었을 것이고, 성훈에게는 더욱 서유를 세심히 관찰하고 상담을 받으면서까지 공감하고 위로해 줘야 하는 이유였겠죠.
서유는 평균적 불행을 가지고 있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그럼 가볍게 지나쳐지지 않았던 서유의 불행을 통해, 저는 무엇을 투영하고 있었을까요? 소림님의 글은 마음의 문을 두드립니다. 그리고, 그 진동에 반응해 문을 열어야 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겠죠. 다만, 존재가 희미했던 문을 열게 되는 것은 설레고, 무섭고, 무거워요. 분명, 웃으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소림님이 글의 종점은 언제나 이즈음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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