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고렘팩토리

출간일: 2018.04.13

분량: 본편 2권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콩콩이 잃고 나서 슬퍼하지 않으려고 상담을 받기 시작한 거예요?"

"아니, 슬퍼하기 위해서."

최성훈의 시선은 아주 따뜻하게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내가 아주 사적인 내용을 물어본다고 해서 화내지 않으리라는 걸 확인했고, 예상대로 그는 따뜻한 우유처럼 부드러운 반응이었다.

"처음 얘기를 들었을 때, 태아가 사라지면 당신은 슬퍼하겠지만 나는 슬프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당신을 위로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슬퍼하기 위해, 당신의 슬픔에 공감하기 위해서 상담을 받았습니다. 그래야 위로할 수 있으니까."

point 2 줄거리

기: 서유(오메가)는 마포대교에서 자살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한 고급 외제차가 그런 서유를 보고 놀라 난간과 충돌한다. 운전자는 수능이 끝나고 어머니가 사준 차를 끌고 나온, 무면허 성현이었다. 형 성훈(알파)에게 혼날 것이 무서웠던 성현은 서유에게 돈을 줄 테니 잘 말해 달라고 한다. 서유는 그 제안을 수락하지만, 연락 온 성훈은 성현이 자살하려는 자신을 도왔다고 서유의 말을 믿지 않는다. 서유는 결국 성훈을 만나 설득하기에 이른다.

승: 빰에 흉터가 있는, 누가 봐도 깍두기 두목 성훈은 계속 서유를 의심한다. 서유는 자신이 자살하게 된 경위와 미리 작성한 유서까지 내보이게 되고, 졸지에 서유의 아픈 가족사를 알게 된 성훈은 더 이상 그를 다그치지 않는다. 하지만, 용돈이 끊긴 성현이 현물(?)을 지불하면서, 둘의 거래는 들키고 만다. 그리고 그 현물을 반환(?)하기 위해 만난 자리에서 술을 마신 서유는 극우성 알파인 성훈과 뜨밤을 보낸다.

전: 그 후 두 사람은 가까워지고, 성훈은 둘의 관계를 연인으로, 서유는 섹파로 여긴다. 성훈은 서유를 괴롭히는 전 남자 친구, 상사, 작은 아버지를 비롯한 난잡한 그의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서유는 그 내막을 알지 못한 채 성훈을 좋아하는 마음이 깊어질수록 비참함을 느낀다. 성훈은 서유를 가족들에게 소개하는 한편, 성훈과 어머니의 대화를 엿들은 서유는 성훈이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고 오해한다. 서유는 성훈을 피한다.

결: 그러던 중 서유는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쓰러지고,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병원에 찾아온 성훈은 서유에게 고백을 하며 청혼한다. 오해를 풀었지만, 그간의 이별로 상처가 있던 서유는 선뜻 성훈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임신 사실을 모르고 먹은 많은 약과 술로 인해 유산되고 만다. 성훈은 서유의 곁에서 서유를 돌보고, 위로해 준다. 결국 서유는 자신의 과거와 작별하고, 성훈과 결혼을 선택한다. 그리고 꿍꿍이를 임신하고, 출산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불행의 평균

불행의 평균은 어느 정도 될까요? '괜찮아, 다들 이 정도는 참고 살아.'라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이 정도'의 기준은 얼마나 높고 낮을까요? 외로운 것도, 우울한 것도, 불안한 것도, 공허한 것조차, 그저 도시에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느끼는 도시병의 일종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유난 떨 일이 아니라고 말할 때, 그 도시병의 범주 안에 묶인 사람들이 정말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사는 게 맞나요?

저는 가끔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합니다. 다들 그렇다고, 원래 그런 거라고, 평균은, 일반적으로, 보통은... 대화를 하다 보면 흔하게 등장하는 말들인데, 참 이상하죠. 도대체 어디서, 누가, 이렇게 난해한 기준을 쉽게 사용하기 시작했을까요? 1인분의 삶 밖에 살지 못하는 한 사람 입에 말하는 '보통'은, 그 부족한 근거와 모호한 정의에도, 언제부터 그렇게 '위로'가 되었을까요?

소림님의 '수'는 일면 순수하고 순진한 반면, 또 다른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유능하고 강합니다. 그리고, 그런 수에게 절대강자 공은 제대로 코가 꿰이죠. 전형적인 할리킹 뼈대에, 개그코드가 듬뿍 묻어 있습니다. 다소 과장스러운 슬랩스틱 코미디 같으면서도, 찰진 입담과 기발한 전개들이 연신 밝고 가벼운 분위기를 자아내죠. 하지만, 불현듯 냉수를 뒤집어쓴 듯 차가운 현실을 직면하게 된다는 점에서 소름 끼치기도 합니다. 급하강하는 롤러코스터를 탄 느낌이랄까요. 급냉각, 급해동, 냉탕과 온탕 사이를 정신없이 오가는 기분이 듭니다.

저는 깔끔하고 유쾌하게 휘발하는 기분 전환용 킬탐도 좋아 하지만, 오랫동안 마음에 잔여물을 남겨 놓는 고민 유발 저작물을 더 많이 아낍니다. 그러므로, 소림님의 소설에 언제나 쌍따봉을 날리게 되요. 비록, 다소의 개연성은 내려놓더라도 말이죠.

서유는 불행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었고,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트라우마에 지속적으로 시달립니다.

게다가 그 사고로 제대로 졸업하지 못해, 친구도 없습니다. 한 명 있는 친구는, 서유를 깔아 뭉개는 것으로 하찮은 자존감을 높이는 한심한입니다. 서유도 알지만, 친구라고는 그 한 명 뿐이니, 그런 취급을 받으면서도 끊어내지 못합니다.

작은 아버지는 서유의 대학 입학을 위해 부모님이 모아 놓은 돈을 갈취하고, 19살인 오메가 서유를 늙은 거래처 사장에게 넘겨 줍니다. 그 후로도 원망하는 서유에게 되레 화를 내며, 계속 하자품 늙은이들에게 서유를 내놓죠. 나중에 그 사실을 빌미로 서유를 협박하기도 합니다.

직장은 더 가관입니다. 베타 과장은 10년 사귄 애인과 결혼했음에도 계속 서유에게 성희롱 하며 추근 댑니다. 서유는 과장 말을 당돌하게 받아치지만, 괜히 인사상 불이익을 받거나 하지 않아도 될 야간 업무를 강제로 떠맡죠.

서유의 전, 전전, 전전전 남자친구들에게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정말 설사와 똥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배설물들일뿐입니다.

하지만, 서유를 마포대교로 향하게 한 이유는 나아지지 않는 악몽도, 외로운 인간관계도, 스트레스 받는 직장 생활도 아니었어요. 자신을 살리고 죽은 형의 나이보다 일찍 죽어서도 안 되지만, 그보다 더 오래 살고 싶지도 않았거든요.

서유는 불행합니다. 하지만, 서유 자신은 불행하지 않습니다. 그저, 독자가 그렇게 느낄 뿐이죠. 내가 발정 난 오메가이기 때문에, 내가 질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감히 성훈의 사랑을 받는다는 가정조차 불가능한 무가치한 사람이기 때문에...라고 말하는 서유에게 이 불행한 사건들은 일상입니다. 흔한 자낮수 같죠? 하지만, 자낮수가 설정적 캐릭터라면, 서유는 그런 작위성이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왜냐면, 서유는 당당하게 따지고, 속물처럼 적응하고 살거든요. 현생에 흔한 '보통'과 '일반'인 것처럼요.

서유는 호르몬 조절이 잘되지 않는 열성 오메가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고, 스스로를 헤픈 오메가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가족의 트라우마를 가진 서유가 제사를 준비하는 동안, 이별의 원인이 서유라고 비난하며 헤어짐을 통보한 남친을 그럴 수 있다고 넘기죠. 서유는 공과금으로 다투는 부부가 부러 울 정도로 가족을 원했기에 최선을 다해 애정을 갈구한 거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기가 질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연애는 오래가지 못했고, 자신의 밤 기술만 원하는 전 남친들의 더러운 연락들도 흔한 일상처럼 받아드립니다. 작은 아버지가 부모님이 남겨 놓은 재산을 가져가고 자신은 창부처럼 거래처에 팔아넘긴 상황에서도, 홀로 독립해 꿋꿋이 살아온 일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원래 재벌은 재벌과 수준이 맞으니, 싸구려는 낄 데가 없다고만 생각하죠.

기대하는 바가 없으니 실망하지 않는다. 대단한 일이 아니니 좌절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못 견디게 가족이 그립고, 자살하는데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는 삶을 산다는 것은, 죽지 못한 그날에 대한 죄책감일 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 걸까요? 세상에 강한 사람은 있어도 상처받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진심입니다.

서유는,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성훈에게 유일하게 감정을 알려주는 사람이기에, 불행한 현실로부터 구원받습니다. 쓰레기들은 정리되고, 가장 안락하고 아름다운 집에서, 사랑스러운 가족들과 함께 행복을 누립니다. 할리킹! 백마탄 왕자님을 만나 부엌데기가 공주님이 되는 낭만적 이야기죠. 하지만, 소림님은 한 발짝 더 나아갑니다.

성훈의 가족들은 서유가 느끼지 못하는 불행을 대신 공감하고, 아파하고 보상해 주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예쁘다고 말해주고, 맛있는 음식, 좋은 장소, 재미있는 경험, 못 간 대학까지 모두 주고 싶어 하죠.

'서유가 불쌍하니?' 서유의 어머니는 성현에게 묻습니다. 성현은 서유가 불쌍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서유를 본 친구들은 서유를 보고, '아무 고민 없이 산 것처럼 행복해 보이는 웃음'이라고 말하죠. 하지만, 성현은 서유를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싫으면서도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어요.

하나뿐인 친구 장원조에게, 서유가 불쌍한 것은 '너 같은 애도 있는데 나는 너보다 낮다.'라며 백수인 자신을 자위하기 위해 필요했을 거예요. 성현에게 서유가 불쌍해 보인 것은, 그 부족분을 채워주고 싶은 동기가 되었을 것이고, 성훈에게는 더욱 서유를 세심히 관찰하고 상담을 받으면서까지 공감하고 위로해 줘야 하는 이유였겠죠.

서유는 평균적 불행을 가지고 있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그럼 가볍게 지나쳐지지 않았던 서유의 불행을 통해, 저는 무엇을 투영하고 있었을까요? 소림님의 글은 마음의 문을 두드립니다. 그리고, 그 진동에 반응해 문을 열어야 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겠죠. 다만, 존재가 희미했던 문을 열게 되는 것은 설레고, 무섭고, 무거워요. 분명, 웃으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소림님이 글의 종점은 언제나 이즈음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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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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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피아체

출간일: 2020.12.15

분량: 본편 2권

 

 

 

 

 

 

point 1 책갈피

"가끔은 헷갈립니다."

"폐하."

"그리고 이 헷갈림이 저를 얼마나 기쁘게 하는지, 숙부는 모르실 겁니다."

연교는 몸을 굳혔다. 검게 가라앉은 황제의 눈빛에 슬픔이 담겨 있었다.

"......아십니까, 숙부"

"......"

"모후는 때로 그런 눈으로 저를 보시곤 했습니다."

point 2 줄거리

기: 제국 황제의 황숙 백왕 연연교는 사절로서, 제국의 동쪽에 있는, 작지만 강한 군사력과 재력을 갖춘 유하국과 국교를 맺는다. 우월적 외교 성과를 가지고 온 백왕을 치하하고자 황제는 연회를 배풀고, 그 자리에서 백왕은 변경백 개문의 경씨 딸과 혼례를 올릴 것이라 고하자, 황제는 노여워 하며 연회를 파한다. 그리고 왕부로 황제가 보낸 붉은 주단을 휘감은 마차를 타고, 황궁 깊숙한 월궁으로 들어 간 후 백왕은 황제의 비첩이 된다.

승: 황제는 연교를 부인이라 부르며, 모욕적 성행위를 훈육시키고 여장을 감상한다. 왕부와 월궁 시비들을 볼모로 잡힌 연교는 황제에게 길들여지고, 아슬아슬한 부부생활은 이어간다. 하지만, 연교를 주축으로 이루어진 유하와의 친교가 어그러질 위험에 처해지면서, 연교는 황제의 부재를 틈타 유하에 친서를 쓰기 위해 묵성운과 왕부에 인장을 가지러 가려한다. 그러나, 황제에게 들켜 묵성운은 죽고, 월궁으로 다시 끌려온 연교의 일상은 시궁창에 쳐박힌다.

전: 황제는 연교를 묶고, 때리고, 이물질(?)을 삽입하고, 공개적으로 수치스러운 성교 행위를 강요하며, 정신과 육체적를 학대하고 압박한다. 벼랑에 몰린 연교는 자결을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한편, 유하와의 관계는 극단으로 치닫고, 전쟁을 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출정한 황제가 부재한 월궁에 유하의 좌장군이 연교를 찾아오고, 그제서야 연교는 자신만 모르고 있었던 모반의 실체를 알게 된다. 유하는 현황제를 실각시키고 연교를 황제로 옹립하고자 했던 것이다.

결: 연교의 측근인 백왕부 서청과 오랜 유학 생활로 유하의 사상에 심취한 경씨 딸, 유하국 왕비가 일을 꾸몄고, 황제는 이들이 모사한 연교의 친필문서와 인장 등을 보고 그의 배신을 확신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연교를 처벌하지 못하고 월궁에 유폐한채 원망을 욕구로 풀었던 것이다. 전쟁 중 유하는 연교를 미끼로 계속 황제를 흔들지만, 연교는 독에 취한채 황제를 찾아가 오해를 푼다. 결국 유하는 멸망하고, 황제는 연교에게 용서를 구한다. Happy ending!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마라탕이 그리운 계절

울리겠다 작정하면 웃겨지고, 겁주겠다 작정하면 우스워지기 마련이라, 맛있게 달고, 맵기는 참 쉽지 않아요. '월궁'은 노골적인 피폐씬으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거 또 미리 보기형 소설 아닌가 의심했죠. 어느 시절에는 미리보기가 재미있으면 신났던 것 같은데, 이제는 '미리보기만 영끌'이라는 의혹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씁쓸하긴 합니다.

결론적으로, '월궁'은 맛집 마라탕 같은 소설이었습니다. 단맛도 있고, 얼얼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매우 맵습니다. 매운걸 못 드신다면 피하시는 것이 좋아요. 무리하게 먹다가는 거북해 탈이 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마라탕 매니아들에게는, 김치찌개로 만족 못하는 혀 찌릿 통각의 맛을 선사 해 줄거예요. 이런 음식은 은근 많은 것 같지만, 실상 찾아보면 먹기 쉽지 않거든요. 핵심은 비율 조절입니다.

황제는 맛있는 매운 맛인가? 맵기의 단계가 점점 매워집니다. 그리고 맵기의 종류가 다채로워지죠. 마지막으로 매운 이유가 매우 감칠맛 납니다.

연교는 쓴 맛만 나나? 일단 통각이 울릴 정도로 아린 맛입니다. 하지만 고추장 단맛과 다른 고추 기름의 단맛이 있습니다. 그 속엔 중독성이 있죠. 마지막은 달달한 디저로트 끝납니다. 결국 마지막은 입안을 맴도는 단내와 부드러운 식감만 남죠. 이것이 바로 만찬의 공식아니겠습니까?

모든 비극의 시작은 황제와 연교의 정보 비대칭으로부터 발발합니다. 황제는 연교가 유하국과 내통 하는 정황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사실'은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고, 유일무이한 존재인 연교를 떠나 보낼 명분은 모른척 하고 싶었어요. 반면에, 연교는 자신의 모사된 필체로 쓰여진 연서와 밀서, 그리고 인장이나 검 따위가 이용 당하고 있다는 상상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저 조카의 치세에 도움이 되고 싶었던 평화주의자이자, 들어 온 혼담을 거절 할 이유를 찾지 못한 만기의 황실 종친에 불과 했어요.

연교는 유화국과 황제 사이에 팽팽히 당겨진 고무 줄 위에 서 있는 줄 도 모르고, 그 태풍의 눈 중앙에서 활시위를 당깁니다. 연교가 받아 드린 혼담은, 황제의 맞은 편에 서기로 결심 했다는 선언이었어요. 그리고 황제는 그런 속사정을 숨기지 않습니다. 황제가 연교를 월궁에 부른 후 말했던 모반은, 왕부로 되돌려 보내지 않기 위한 협박이 아니라 안전한 내 곁에 제발 머물어 달라는 진심이었죠. 황제는 연교에게 분노했지만, 또 절실하게 보호하고 싶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황제는 연교를 여장시키고, 부인이라 부르며, 갖가지 방중술을 가르칩니다. 그것은 황제 나름대로의 타협점이었어요. 타국과 황제 시해를 밀약한 황숙은 왕부에 유폐되어 죽고, 월궁에 연교를 숨어 살게 하면 괜찮을거라고 말이죠. 그래서, 황제는 모반을 꾸민 연교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강요합니다. 그 결정에 확신이 필요 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연교는 묵성운을 따라 월궁을 떠나고, 서청의 밀서를 받고 신호를 보내요. 황제는 그 때마다 몰래 지켜보지만, 연교는 늘 그 믿음을 저버리죠. 그래도 황제는 끝내 연교를 죽이지 못해요.

하지만, 연교도 억울하긴 매 한가지였어요. 연교는 4살의 어린 태자를 기억합니다. 황제는 친모에 대한 상처를 가지고 있었고, 태자에게도 연교에게도 서로는 특별하고 유일한 존재였죠. 연교는 황제의 나라에 도움이 되기 위해 유하로 갔고,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친교를 선택 했어요. 매해 청명절 황제의 복을 빌던, 온순하고 순종적인 연교였기 때문에, 황제의 모욕적이고 굴욕적인 요구에도, 그런대로 적응 합니다. 하지만, 황제가 도망친 연교를 잡아 온 뒤... 그 정도는 한계를 넘어서요. 결국 연교는 정신을 놓아 버리죠.

'월궁'엔 전형적인 물리적 감금은 나오지 않습니다. 월궁에 들어 왔을때는 '진실'로 연교를 가두고, 다시 잡아 왔을 때는 폭력과 기절의 반복, 그 후는 공개 된 장소에서 난잡한 정사를 강요하는 황제로 인해 되려 궁을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요. 그리고 S가 있는 피폐물의 경우, 대게 길들여진 수가 M의 성향을 가지게 되는데, 연교의 경우 딱히 피학적 성향을 보이지는 않습니다. 또, 근친물의 첫사랑+배덕감+후회의 패턴에 '배신감'이라는 요소가 더해져 후회와 용서 사이에 설득력을 높혀 주죠. 그 클리셰 안에서, 너무 뻔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포인트들이 많은 소설이었어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

출판사: M블루

출간일: 2017.06.13

분량: 본편 2권 +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억울해? 천제림이 물었다. 아니, 안 억울해. 떨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따지고 보면, 이 상황을 만든 건 나다. 내가 벌인 일이야. 억울하지만 아무한테도 억울하다고 말할 수 없다. 일자로 다물린 내 입술을 천제림은 손가락 빨듯 쪼옥 빨았다. 천제림이 칼을 들어 손묵 위를 겨냥했다. 손목에 차갑고 뾰족한 감각이 느껴졌다.

"......!"

"안 아프게 그어 줄게요."

잡힌 손목은 못이 박힌 것처럼 미동조차 없다. 연신 고개를 흔들었따. 벌어진 입에선 말소리 대신 공기만 터져 나왔다. 천제림은 사형수의 마지막 만찬처럼 한 번 더 기회를 주었다.

"진짜 죽으려고 그랬어요?"

"...흐, 아...니..."

우위를 채우고 있던 뜨거운 열기가 잠시 사그라졌다. 잡힌 손목이 느슨해지며, 뾰족한 감촉도 사라졌다. 천제림이 뚫어지게 나를 쳐다본다. 나는 녀석이 지키고 있는 침묵이 내게 변명할 기회를 주고 있는 것임을 알아차렸다.

point 2 줄거리

기: 고아인 김순조는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을 듯 공부해 명문대에도 입학하지만, 쪼들리는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후배 재이는 여장을 조건으로, 월200만원짜리 과외를 소개 해 준다. 돈이 필요했던 순조는 과외를 수락하고, 천제림의 과외 선생님이 된다. 예상과 다르게, 제림은 순조를 잘 따랐고, 순조는 그런 제림 앞에서 긴장을 내려 놓는다. 그리고, 제림의 친구들과 즐겁게 술 게임을 한 날, 순조는 제림에게 강간 당한다.

승: 한 번만 더 하면 받을 수 있는 200만원을 생각하며, 순조는 마지막 과외를 간다. 그리고, 제림의 발언에 정사 장면이 몰카 당했다고 의심하게 된다. 그렇게 과외는 계속 되고, 제림이 순조의 학교에 합격하면서, 순조의 일상에 제림은 깊숙히 침투한다. 순조는 제림 몰래 학교를 그만두고 시골로 내려 갈 계획을 세우지만, 제림에게 들켜 끌려 온다. 그 후 자살시도를 하지만 그 역시 제림에 의해 제지 당하고, 제림과 같은 상처를 나누는 의식만 치루는 꼴이 된다.

전: 그러던 어느날 순조는 과방, 제림과 섹스 장면을 재이에게 들키고, 흥분한채 제림의 집에 쳐들어가 몰카를 부시려 난동을 피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제림의 어머니를 만난다. 순조는 그 후 제림의 어머니를 찾아가 제림으로부터 숨겨 달라고 애원하고, 그녀는 순조를 정신병원에 입원 시킨다. 하지만, 순조의 보호자로서 병원에 나타난 제림에 의해 퇴원하고, 제림의 집에서 살게 된다. 한편, 순조는 동네 편의점 알바인 주언과 친해진다.

결: 주언은 알바비를 탓다며 순조에게 술을 쏘고, 순조는 의심없이 그 술을 먹는다. 사실, 주언은 제림에게 원한을 가지고 순조에게 약을 먹어 강간하려 했다. 하지만, 제림에게 발견 되 실패한다. 제림은 순조를 다치게 할 뻔한 사건 이후, 순조에게 병원 약과 함께 예전에 순조가 샀던 집 열쇠를 준다. 순조는 드디어 제림에게서 벗어났다. 하지만, 순조는 제림이 없는 생활을 불안해 하며, 결국 제림에게 도움이 요청한다. 순조는 제림의 집으로 스스로 들어간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인간적인 사패공, 천제림

인간적인 사패공이라니, 소리 없는 아우성이란 말인가? 하지만, 정말 저는 이렇게 인간적인 사패공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순조의 다사다난한 인생을 보면서도, 그다지 피폐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시점이 넘어서는, 순조의 공포가 과장 되었다는 생각도 초큼 들었죠. 물론, 천제림의 행동이 정상범주에서 이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순조로운 생활'은 '피폐물'아니겠습니까? 하드코드치고는, 매운맛이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천제림은 영국에서 수영을 했습니다. 그리고 영국으로 여행 온 재이와 친해지면서, 간혹 서울로 놀러와 그의 친구들과 어울렸죠. 이 만남은 제림의 지루하고 무감한 인생에 변곡점이 됩니다. 일단, 재이가 어울렸던 무리 중 주언이 열등감을 이기지 못해 제림의 어깨에 볼링공을 던지면서, 제림은 수영을 할 수 없게 되요. 뒤늦게 대학 공부를 시작하죠. 그리고, 재이가 보여 준 학과 사진에서, 아꼈지만 결국 죽고만 햄스터와 닮은 순조를 발견하고 관심을 보입니다. 늘 돈이 궁했던 순조의 사정을 잘 아는 재이가, 순조를 제림의 과외선생님으로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었죠.

제림은 장난처럼 요구한 여장을 하고 온 순조가, 수영 선수를 못하게 된 사건을 들으며 대신 분노하고, 사명감에 가득차 열성적으로 쫑알거리는 모습을 보며, 관심 이상의 흥미를 가지게 되죠. 그리고 술에 취한 순조를 강간합니다. 여기까지는 빻빻한 피폐물 속 개아가공의 공식루트를 차근차근 밟아간다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제림이 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순조는 빡빡한 살림에, 한 번만 더 과외를 하면 받을 수 있는 과외비가 궁해집니다. 그래서, 강간 사건이 있은 이후에도 제발로 제림을 찾아갑니다. 순조의 맛을 알아버린 제림에게 과외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죠. 순조는 마지막이라며 그의 강제에 응하고, 제림의 눈짓과 장난에 몰카가 있다는 의심합니다. 제림은 몰카가 있다고 말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없다고도 말하지만, 순조은 되려 몰카의 존재를 확신합니다. 그렇게 무형의 덫에 스스로 걸려 버려요.

제림이 순조의 학교에 들어오고 난 뒤, 순조는 문자나 전화를 안 받는 소극적인 방법으로 제림을 피하지만, 오히려 이런 행동은 제림을 더 화나게 하죠. 순조는 제림에게 제법 고분고분하게 굽니다. 그래서, 제림은 순조와 자신의 관계에 봄이 왔다고 믿게 되어요. 순조가 제림으로부터 도망칠 준비를 하는 줄도 모르고 말이예요. 힘들게 들어 온 대학이었지만, 순조는 자신의 생활을 지배하는 듯 한 제림의 존재를 견디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아무도 없는 시골로 떠나죠.

순조의 계획은 서툴렀고, 제림은 순항 중이라고 생각했던 순조와의 관계가 거짓말 범벅인 기만이었다는 것을 깨닫죠. 제림은 순조를 끌고 옵니다. 하지만, 딱히 뭔가를 하지는 않습니다. 감금을 하지도 않고, 몰카를 찍지도 않고, 약을 먹이지도 않아요. 순조는 그렇게 학교와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 후 순조는 가스를 켜고 자살하려하지만, 제림이 칼을 들이 밀었을때는 또 살고 싶어해요. 제림은 순조의 손을 베지만, 자신의 손에 더 깊은 자상을 입힌채 둘만의 의식을 치릅니다.

이후, 정신병원에 찾아 갔을 때도 제림은 화를 내지도, 감금하지도 않고, 집에 모셔 둡니다. 오히려, 순조의 몸이 제림과의 정사를 기억하고 못견뎌하죠. 물론, 제림은 순조의 병원기록을 지우고, 순조에게 병원에서 처방한 강한 약을 쥐어 주긴 합니다. 불안해진 순조가 자신의 곁을 안락하다고 느껴며 스스로 돌아 올 수 있도록 말이예요. 분명 가슬라이팅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평균적 집착광공의 통제치에 비하면 결코 높다고 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죠.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하지 않던가요? 순조는 그토록 바라던, 순조로운 생활을 합니다. 학교도 복학하고, 대학 신문에 인터뷰도 하고, 제림과 함께 수영도 합니다. 교환학생으로 영국도 가고, 제림과 1월1일 불꽃놀이도 봐요. 돈이 궁박한 생활도, 노력을 보상받지 못한 삶도 아닙니다. 또, 제림은 마치 슈퍼맨 처럼, 순조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적재적소에 날라가죠.

물론, 강간과 폭행이라는 요소가 있으니 피폐물로 보아야겠지만, 읽는 동안 저의 개인적 감상은 도망수 있는 할리킹 같았어요.대놓고 달달한 외전도 한 몫했지만, 본편에서도 제림으로 인한 위기보다 제림이 구해 준 위기가 더 많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제림은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모럴리스한 사패가 맞습니다. 하지만, 매우 인간적이예요. 외전이 한편 더 나온다면, 저는 제림을 당당히 다정공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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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이클립스

출간일: 2019.09.02

분량: 본편 1권 + 외전 2권

 

 

 

 

 

 

 

 

point 1 책갈피

우리라니. 네겐 처음인 단어다. 내 첫사랑이, 첫 남자가, 또 처음인 것을 주려한다.

"네가 있어야 의미가 있어."

마치 눈앞에서 영화 필름이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주인공은 결말만을 앞두고 있다. 내결정이 엔딩을 장식하겠지. 아니, 영화는 끝이 있지만 에버 애프터는 이제 시작이라는 걸 안다. 진짜 엔딩이 어떻게 될지는, 신조차 모를 것이다.

"그럼....."

내 대답을 기다리는 그의 얼굴이 너무 초조해 보여 안쓰러웠다. 그런 표정을 짓게 하는 존재가 나란 사람을 믿을 수 없었다. 내가 이 과분한 선물을 받아도 될까? 정말 그래도 괜찮을까?

아니, 솔찍해지자. 뻔뻔하고 욕심 많다고 손가락질해도 모른척, 받고 싶다. 가지고 싶다.

"그럼, 바다가 있는 곳으로 가."

당신이 날 버려도 그 푸른색을 보며 떠올릴 수 있게. 이 버석버석한 황무지와 사막을 모두 소금물로 채워 버릴 수 있을 만큼 넓은 바다로.

point 2 줄거리

기: 황무지를 가로지르는 도로, 그 한 중간에 오래된 휴게소가 있다. 레미는 난봉꾼 아버지의 소유인 그 낡은 가게에서 일하고, 아버지는 때때로 들러 레미가 번 돈을 들고 놀러 나갔다. 아버지는 여러 여자와 살았지만, 그 중 레미를 학교에 보내주고 다정하게 대해 준 여자는 도라뿐이었다. 하지만, 도라는 어느날 휴게소를 자주 오던 트레커와 함께 떠났다.

승: 레미는 어느날 자신의 이상형인 카일이 휴게소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한 눈에 반한다. 그를 잡기 위해 커피를 무료로 제공해 아버지에게 욕을 먹지만, 한달에 두번 오는 그를 기다리는 것이 레미의 유일한 행복이었다. 레미는 카일과 더 깊은 관계가 되고 싶어 매춘을 제안하고, 엉성하고 서투른 레미의 제안에 카일은 응한다. 그 후 카일은 레미를 '첼시'라 부르며, 휴게소에 올 때마다 두둑한 화대를 내고 레미를 안는다.

전: 어느날 우연히 CCTV를 보게 된 아버지는 남자와 섹스를 하는 레미를 보고 분노해 폭력을 휘두른다. 그리고, 그때 카일이 나타나 레미를 구하고 아버지를 총으로 쏘려한다. 아버지는 도망치고 레미는 카일을 대피시키려 하지만, 카일은 오히려 레미에게 함께 휴게소를 떠나자고 한다. 카일은 레미에게 좋아한다고 말하며, 가족이 되어주겠다고 했다. 레미는 카일과 함께 그 오래된 휴게소를 떠난다.

결: 두 사람은 해변가에 살며, 레미는 카페에서 카일은 식당에서 일한다. 그러던 중 카일의 가족들이 두 사람을 찾아온다. 카일은 자수성가하여 성공한 레스토랑 오너의 아들로 기대를 받았고, 그런 카일을 동생 멜빈은 시기했다. 결국 멜빈은 카일이 아끼던 개 첼시를 죽이고, 그 사건을 계기로 카일은 집을 나왔던 것이다. 가족들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카일은 새로운 가족인 레미와 사는 것을 선택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문장이 좋아서 아쉬움이 더 큰...

장르소설과 문학소설은 문장의 결이 다릅니다. 장르소설 안 에서도 BL, 로맨스, 판타지 각각 문장의 결이 또 달라요. 콕찝어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그 메세지와 분위기에 어울리는, 가장 '그 소설'다운 문체가 있습니다. 그러면에서 bise님 글에는 참 좋은 문장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문학, 로맨스, BL의 교집합 혹은 경계선 어디 즈음 있는 것 같으면서도, 어색하지 않고 특색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붕우유신' 같은 작품은 김유정 소설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현대 문학 향기가 나고, 그 외 작품들도 단어 선택이나 문풍이 그랬습니다. 반면에 스토리는 좀 약한 편이죠.

그래서, 저에게 bise님의 소설은, 신선하고 잘 쓰여진 문장, 도전적 소재에 비해 힘 없는 전개, 임팩트 있는 도입부와 아쉬운 결말, 이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비유하자면, 일러스트 수준의 고퀄리티 작화에 다소 미진한 스토리의 만화를 보는 것 같은... 내용이 뻔하거나 평범, 무난해서라기보다는 전개 지구력이나 설정 내구도가 떨어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장 자체를 읽는 맛이 있어서 챙겨보는 편입니다.

'트럭 스탑'은 광활한 벌판 한 중간에 '갇힌' 레미의 이야기입니다. 레미가 있는 오래된 휴게소 사방에는 레미의 발을 묶는 어떠한 벽도 없고, 그곳을 들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유로운 영혼들이죠. 레미의 아버지 역시 평소 레미를 방치하다가 돈이 필요할때만 휴게소로 돌아와요. 그렇기 때문에 레미가 시트콤에서나 만담을 볼 수 있는, 혼자만의 외롭고 작은 세계에 갇힌다는 설정은 흥미로워 보입니다. 맥주 한 잔을 위해 찾아 온 트레커 오토바이 뒷자리만 빌려도 언제든 떠날 수 있었을 테니까요.

레미를 가둔 건, '도라'에 대한 기억이었습니다. 도라는 무서운 아버지와 싸워 레미를 학교에 보내줬고, 레미가 따돌림을 받자 학교로 쳐들어와 아이들과 아이들의 드센 어머니를 눌러버리죠. 하지만, 그런 도라조차도 레미의 가족만은 되어 주지 않았습니다. 도라와 트레커 남자의 거친 정사를 훔쳐 보내 된 날, 레미는 도라에게 그 남자를 사랑하냐고 묻지만 도라는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남자와 홀연히 휴게소를 떠나요.

나를 좋아했지만 가족이 되어 주지 않았던 도라는, 좋아하지 않는다는 그 남자와 가족이 되어 자신을 떠났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레미는 자신이 가족을 가질 자격이 없다고... 그 도라마저 떠나 버린 자신 곁에 머물로 주지 않을거라고 믿게 되었는지도요. 레미는 아버지가 싫었고, 혼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도 아니지만, 휴게소 밖에서의 삶은 꿈꿀 수 없게 됩니다. 자신의 유일한 자리는, 이 낡은 가게 밖에 없다고 체념했을거예요.

그런 레미에게 카일이 나타납니다. 레미는 영혼까지 끌어와 모든 용기를 다해 카일을 꼬십니다. 좋아한다고 말했다면 기나긴 삽질은 시작하지 않았겠지만, 도라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레미는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사람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죠. 레미는 카일이 자신을 떠나지 않도록, 매춘을 선택합니다. 카일 역시 레미에게 한 눈에 반하지만, 몸을 팔겠다고 말하는 레미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서툰 정사를 나누며, 카일은 레미에게 못된 포주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카일은 레미가 포주에게 모진일을 당하지 않도록 많은 돈을 주고, 그 돈을 벌기 위해 휴게소를 드물게 찾으며 일을 합니다. 레미는 그런 카일을 기다리며 불안해하고, 카일이 준 돈은 아버지에게 고스란히 뜯겨버리죠.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비밀을 파헤치지 않고, 오로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만을 원하며, 8개월간 꾸준히 삽질해요.

그 뒤 아버지가 두 사람의 사이를 알고, 카일이 레미를 구해내고, 카일이 레미를 부르던 '첼시'라는 이름의 주인을 알게 되고, 카일이 트럭운전수가 아니라 반듯한 레스토랑 오너의 아들로서 모범적이게 살아왔던 과거나, 그의 가족들이 카일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 놓고 싶어하는 이야기들은, 모두 카일의 레미에 대한 굳은 사랑으로 해결 됩니다. 좀 힘 빠지는 전개였어요.

황무지 휴게소를 벗어 날 수 없었던 사람과, 그 사람을 위해 다시 휴게소를 떠나야 하는 사람, 이름 밖에 몰라도 멈출 수 없었던 아슬아슬한 연정이 아스라이 묘사된 초반에 비해서요. 카일 가족의 등장은 레미의 트라우마를 자극하지만, 이 위기도 허무하게 마무리 됩니다. 마지막에 레시피를 두고 도망치는 카일 아버지의 뒷모습은 귀엽기까지 하죠. 그냥, 레미가 행복해져서 다행이구나... 나의 수어메로서 안도감을 느끼는 것으로 만족한달까요.

정말 한 끗차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글 무기'를 많이 가지고 있어서, 더 기대하고 그래서 섭섭한 마음도 드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의미심장하게 등장해서 짧게 끝나는 패턴보다, 흥미로운 시놉시스보다, 탄탄한 골자로 무장한 진득한 장편이 보고 싶습니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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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B&M

출간일: 2018.05.04

분량: 본편 1권

 

 

 

 

 

 

point 1 책갈피

"저야 올림픽에 나가는 것만도 감지덕지지만 선배는 다르잖아요. 선배는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니까.... 혹시 1등을 놓치거나 하면. 걱정되지 않으세요?

충동적이었지만, 한 번쯤 꼭 묻고 싶던 것이기도 했다. 내 물음에 액정만 내려다보던 선배가 눈을 들었다. 선배가 말했다.

"진천에서 가장 일찍 일어나는 팀이 어딘지 알아?"

"어디인데요......?"

"우리야.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

"그리고 우리팀에서 가장 일찍 일어나는 사람은 나야."

"......"

"훈련장에 마지막까지 남는 사람도 나고."

"......"

"내가 가장 잘하는데, 내가 1위인데. 나보다 오래 하는 사람이 없어. 다들 나보다 늦게 일어나고 일찍 훈련장을 떠나지. 다른 나라 선수라고 다르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내가 계속 1등일 수밖에 없는거고"

자랑이 아니었다. 사실에 대한 담담한 기술이었다.

point 2 줄거리

기: 연이은 우연과 행운으로 '어쩌다 국대'가 된 이여준은 금메달리스트 남지훈과 룸메이트가 된다. 동계올림픽 첫 출전인 여준은 스타 선수이자 무수한 메달의 주인공인 지훈을 보며 긴장하지만, 지훈은 '형'이라고 부르라며 무심한듯 여준을 챙겨준다. 여준을 무시하며 메달을 반쯤은 포기한 감독을 대신해, 지훈은 여준에게 귀한 노하우를 알려주며 족집게 과외를 해준다.

승: 지훈의 코치와 함께 노력형 천재인 지훈의 훈련 모습에 자극받은 여준은 죽을 듯 훈련하기 시작하고, 그런 여준을 말리며 지훈은 음험한 스킨쉽을 시도한다. 지훈에게 몸이 반응한 여준은 부끄러움과 혼란스러움에 지훈을 피하지만, 지훈은 별거 아니라고 되려 쿨하게 다독여준다. 이윽고 올림픽은 개막하고 올림픽 선수촌에서 역시 지훈과 여준은 같은 방을 쓰게 된다.

전: 1500m 개인전, 여준은 캐나다 리트리버의 더티 플레이에 넘어지고, 동료 선수의 진로방해를 해 실격당한다. 남지훈은 여유롭게 금메달을 딴다. 낙담해 땅까지 파고 드는 여준을 반드시 금메달리스트로 만들겠다는 지훈은, 여준에게 특효약이라며 사심이 가득한 '그런 짓'을 한다. 그 효과(?)로 여준은 쇼트트랙 계주에서 금메달을 획득한다.

결: 한편, 게이인 캐나다 리트리버는 여준에게 접근한다. 순진한 여준은 홀랑 잡아 먹힐 뻔 하지만, 지훈에 의해 건져진다. 그리고, 여준은 미친 줄 알았던 지훈에게 고백을 받는다. 여준을 군대에 보내지 않기 위해, 지훈은 여준을 꼭 금메달리스트로 만들어야 했던 것이었다. 여준은 지훈과 사귀고, 그의 집착과 변태끼 충만한 연애를 시작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올림픽

저는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실, 잘 모릅니다. 주변에 야구 광팬들이 많아, 가끔 끌려가서 치킨을 먹고 오긴 하지만, 규칙도 잘 모릅니다. 올림픽과 월드컵도 역시 잘 챙겨보지 않습니다. 결과만 뉴스로 접하는 정도랄까요. 금메달 숫자는 기억해도, 종목과 선수이름은 잘 외우지 못합니다. 오히려 BL소설에서, 가장 열심히 스포츠를 공부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 얼마 전 뉴스를 보며, 1년에 한 번 있는 수능시험인데 올해 수험생들 마음이 참 고되겠다. 생각하고 있자니 문득, 올림픽은 4년에 한 번 열리지.... 떠오르더군요. 30살이면 사회초년생까지는 아니라도 어디서 전문가라고 듣기는 힘든 나인데, 그 나이면 선수들은 은퇴를 하죠. 그렇게 수명 짧은 일에 전력을 다 받혀, 4년에 한 번 오는 기회에 평가를 받고, 남은 생에 그 결과를 꼬리표로 달고 살아야 한다니... 참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수를 할지언정, 적어도 수능은 매년 보고싶은만큼 볼 수있을테니까요.

그래서 스포츠에서 드라마 같은 극적 순간들이 펼쳐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절실함이 주는 감동은 분명 큰 울림이 있겠죠.

하지만, 일단 BL 스포츠물에 공수는 대게 '천재성' '수려한 외모'를 디폴트 값으로 가지다 보니, 그런 감동은 미미한 한 편입니다. 천재도 이 만큼 열심히 한다! 와 범재가 열등감과 한계를 극복 해 나가는 이야기는 분명히 다를테니까요.

여준의 국가대표 선발전 최고 성적은 8등입니다. 올림픽과는 거리가 먼 '선수'였죠. 그래서, 여준이 얼떨결에 국가대표가 된 후 누구도 여준이 금메달을 딸거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효자 종목 메달 하나가 날라간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들만 가득했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거의 유일한 사람이 있었으니, 천재, 금메달, 아이돌 외모, 선망의 대상 모두 혼자하는 지훈이었습니다.

지훈은 과거 동계체육대회에서 여준을 봅니다. 여리여리한 체구에 예쁜 얼굴, 보는 순간 한 눈에 반합니다. 그리고 일부러 반칙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푸쉬로 여준을 넘어트리죠. 여준은 그런 지훈에게 원망은 고사하고 순진하고 동그란 눈을 껌뻑이고, 지훈은 이 연두부 같은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해요.

지훈은 여준이 가능성 없는 선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준의 미진한 성적은, 그의 지나친 배려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준은 상대가 휘청하면 받쳐주고, 추월을 시도하다가도 상대가 넘어 질 것 같으면 주저하다 기회를 빼앗기죠. 짧은 시간 승부를 내야하는 쇼트트랙에서, 성공하기 힘든 성격이었습니다. 오히려, 이기적이고, 승부욕 강하고, 자애심 강한 지훈이 더 좋은 선수의 자질을 가진 셈입니다.

하지만 그런 지훈조차도 여준과 함께 이기고 싶어 집니다. 올림픽 금메달은 있지만 '올림픽 정신'은 없었던 지훈이, 메달은 없지만 '올림픽 정신'만은 충만한 여준을 통해 변하죠. 그래서, 결코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던 노하우를 전부 방출하며, 여준의 가능성을 깨워줍니다. 물론, 몸싸움에 약한 여준은 개인전에서 실격을 받지만, 여준이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것은 지훈의 독주때문만은 아니었을 거예요. 충분히 국가대표 한사람 몫을 할 수 있을 만큼의 능력과, 지훈의 충격 요법(?)... 큼큼

지는 법을 모르는 지훈은 기어코 여준을 가집니다. 솔찍히, 여준이 그냥 끌려가는 것 같긴 하지만... 늘 지켜봤던, 존경해마지 않는 지훈이 불도저처럼 밀고 들어 오는데, 막을 방법은 없죠. 이미, 결혼해서 낳을 아기 이름까지 생각하는 직진 집착남! 잠시 오메가버스인가 생각하다 오메가버스가 아닌데도 너무 자연스러워 더 소름 돋은!

뭐.. 그래도 금메달도 따고, 손해보고 살던 순둥이 곁에서 평생 함께 하겠다는 이기주의자 연인도 얻고, 여준도 해피엔딩입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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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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