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주)고렘팩토리
출간일: 2018.09.27
분량: 본편 3권 +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이게 바로 오로라 조각이야."
이안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황급히 오로라 조각을 책상 위로 올려놓았다. 너무 귀한 존재라 손에 들고 있기가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보니 더 대단하다. 어떻게 오로라를 조각으로 만들 생각을 하셨지......?"
"이걸 만들기 위해서 몇 년 동안 연구하셨대. 나도 우리 아버지가 대단해. 몇 년 동안 한 가지 연구에만 몰두할 자신이 없거든, 나는."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조각에 작은 자국이 나 있음을 발견했다. 그건 다름 아닌 앙증맞은 용의 손자국이었다. 이안은 손가락으로 그 자국을 가리켰다.
"이건 네가 한 거야?"
그 말에 루도 고개를 숙여 자국을 보았다. 그의 얼굴에 밝은 웃음이 번져 갔다.
"맞아, 내가 한 거야."
"다시 만져 봐도 왜?"
"얼마든지."
이안은 오로라 조각을 조심스럽게 다시 들었다. 루는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아버지가 처음으로 만든 오로라 조각이야. 그런데 내가 구경하다가 오로라가 굳기도 전에 만져 버렸대. 결국 이렇게 아기 때의 내 손자국이 남아 버린 거고."
이안은 그 옛날 아기 용이 남긴 손자국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작디작은 크기의 이안은 말랑말랑한 기분이 들었다.
point 2 줄거리
기: 20살이 된 루! 아버지들로부터 기어코 카스티야 마법 학교 입학 허락을 받아 낸다. 설레는 마음으로 입학시험장에 도착한 루는 대기장에서 보석같이 예쁜 펠로데로스 황자 이안을 만난다. 이안은 무례하게 자신을 뚫어지게 보는 루를 불쾌해하지만, 루는 그저 이안과 친해지고 싶었다. 루는 수석, 이안은 차석으로 입학하고, 같은 방에 배정되면서, 루는 '이안과 친구 되기!'에 박차를 가한다.
승: 이안은 정통 황위 계승자였지만, 아버지가 요절하자 숙부는 어린 조카의 자리를 빼앗는다. 이안은 어머니와 궁에서 쫓겨 곤궁한 생활을 하지만, 황제가 후사를 낳지 못하자 부득불 궁으로 다시 불려온다. 그 후, 자신을 눈에 가시처럼 여기는 황제와 황후에 박대를 받으며, 결국 타국의 마법학교로 쫓겨난 것이다. 하지만, 이안은 루와 시몬과 친해지면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루에게도 점점 빠져들어갔다.
전: 그러던 어느 날, 루가 편해진 이안은 황제가 되기 위해서 용을 잡겠다는 계획을 말하지만, 루는 그런 이안과 언쟁을 벌인다. 두 사람은 화해하려다 고백하게 되고, 사귀게 된다. 그 후, 우연히 루는 용의 비늘을 들키면서 얼떨결에 용이라는 사실도 고백한다. 그때, 북쪽 마을에서 블레어는 루의 친구 이안이 펠로데르스의 황자라는 소식을 듣고, 카스티야로 찾아간다. 그리고, 살얼음 같은 아버지들의 시험대를 통과한 이안은, 루와의 관계를 인정받는다.
결: 4년의 시간이 흐르고, 두 사람은 모두 마법학교를 졸업한다. 아버지들에게 졸업 축하를 받고 있을 때, 이안은 펠로데르스 황제의 병세가 악화됐다는 연락을 받는다. 급하게 돌아가야 하는 이안을 졸라, 루는 왕궁으로 함께 간다. 황제와 황후는 이안을 괴롭히며, 황위를 물려주지 않으려 수작을 부린다. 이를 지켜 본 루는 용이 되어 황제 앞에 나타나, 이안의 수호룡이 되겠다고 말한다. 이안은 무사히 황제가 되고, 황제와 황후는 사필귀정의 결말을 맞는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연작의 부작용, 반사효과와 역차별
'용의 황자님'은 저에게 실망감을 줬습니다. '햇살 세 스푼'만의 매력은 온데간데없고, 대형견 공과 비운의 황자수에 몰빵했는데, 그 깊이도 매우 얕습니다. (전)루비 (현)루와 황자는 평면적 성격, 일차원적 관계, 전형적 클리셰에서 벗어나지 못 해요. '햇살 세 스푼'의 다채로운 볼거리와 세계관, 인물들은 카메오수준으로 줄어들고, 분량은 늘어났지만 풍성함은 없습니다.
만약, '햇살 세 스푼'을 읽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낙담하진 않았을 거 같아요. '용의 황자님'도 작품 그 자체로는 나쁘지 않습니다. 결국, '용의 황자님'은 '햇살 세 스푼'의 반사효과 때문에 선택됐지만, 감상 결과는 역차별이 된 셈이죠. 그래서 두 작품을 읽을 예정이 있다면, '용의 황자님'을 먼저 읽을 것을 추천드립니다.
제가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햇살 세 스푼'의 매력적인 인물들이 사라졌다는 거예요. 마을의 평화가 우선이지만 어느 선까지는 선의를 베풀려는 이장, 이익과 인정의 양면을 가진 마을 사람들, 겁도 걱정도 많지만 용기 있는 쥬드, 자존심도 정의감도 강한 루시, 까칠하고 냉소적 이면에 따뜻함을 바라는 블레어... 입체적이고 다양한 사람들이 만드는, 아름다운 동화는 어디로 가고, 갈등과 의심을 모르는 울보공과 츤데레수만...흑 ㅠ.ㅜ
물론, 대형견공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원래 단순하긴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러버를 지키는 충성심, 누구와 싸워도 이길 것 같은 강함, 프로펠러 꼬리와 축 처진 귀로 어필하는 귀여움까지! 이 모두 가져야만 비로소 대형견공이 될 테니까요. 그러니, 누가 꼬셔도 갈등하지 않고, 수의 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해결사면서도 둘 만 있을 때는 절대 '을'이 되죠. 여기에 직업과 출생 배경만 정해지면, 모든 독자는 이미 예언자!
'용의 황자님'도 그런 면에서, 대형견공이 보고 싶은 날에는 좋은 작품입니다. 반짝이는 보석을 좋아하는 용, 루는 이안을 보자마자 반합니다. 이안은 반짝이는 금발을 가진, 예쁜 황자 님이었거든요. 마법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한 루는 입학식 선서에서 차석인 이안을 보며, 운명을 확신했을지도 몰라요. 게다가 룸메이트! 루는 이안을 졸졸졸 따라다니며, 이안이 지키는 든든한 가디언이 되죠. 이안도 순수한 선의를 가진 루에게 점점 빠져듭니다.
문제는 이안이 알인 '루비'를 강탈하려고 루의 어머니를 죽일 뿐만 아니라 그 가죽을 장식으로 걸어 놓은 황제의 나라, 펠로데르스의 황자라는 거였죠. 심지어, 그 황제는 황자에게 황제가 될 조건으로 용을 잡아오라고까지 합니다. 당연히, 그의 아버지들을 포함해 루를 사랑하는 이들은 두 사람을 반대할 수밖에 없었죠. 물론, 루는 대형견공의 공식에 맞게, 절대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중년이 되어서일까요? 블레어와 쥬드도 의외로 쉽게 마음을 바꿉니다.
이안은 그의 아버지들에게, 펠로데르스 황제의 만행을 듣게 돼요. 그리고 루가 처한 위험도 알게 되죠. 그래서, 결코 루를 위험에 처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서도, 졸업 후 그와 함께 궁으로 돌아가요. 물론, 루의 선택이었지만, 저는 이 부분부터 뭥미?싶었어요. 아픈 황제는 이안을 대신할 소국의 왕자를 입양하고, 황후는 이안 어머니의 유품을 불태워 버리려고 해요. 미증유의 절대적 위기에서도, 이안은 '용'이라는 패를 쓸 갈등조차 하지 않죠.
앨런 우드를 포함한 대마법사는 죽거나 죽임 당했고, 황제는 쇠약해졌어요. 그리고, 이안은 신관의 증언이 있으니 용을 데리고만 오면 황제가 될 수 있었죠. 그리고, 무엇보다 루가 어마 무시하게 강했답니다. 오히려 루는 황제를 많이 봐줘요. 이안을 위협하는 모든 이에게 살의를 품은 것 치고는, 이해 안 갈 정도로 관대한 처사였죠. 소리 소문 없이 황제를 악몽이 시달리게 할 수 있으면서, 그 이상은 하지 않습니다. 루와 이안은 심각한데, 전 음...이었어요.
'용의 황자님'에서 제일 좋았던 부분은, 외전이었어요. 두 사람은 루의 고향이, 먼 북쪽 마을로 떠납니다. 황제와 수호룡이 아닌, 이안과 루만의 조용하고 은밀한 여행이었죠. 사랑하는 아버님들이 있는, 천방지축 아가 용을 기억하는 마을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오로라 조각에 우연히 찍힌 아가 용의 발자국이 그들을 맞이하고 있죠. 특히 루가 썰매를 타고 마을을 돌며, 사람들에게 이안을 소개하는 장면은 좀, 뭉클했어요.
루가 인간의 수명으로 살기로 한 선택이나, 루의 오랜 보호자였던 아버지들이 수호룡이 된 아들을 떠나보내는 장면이나, 어머니의 잔인한 죽음과 납치될 뻔한 기억에도 불구하고 이안을 위해 복수를 포기하는 부분같이, 극적인 씬도 많았는데 너무 평이하게 지나간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아요. 또, '아싸' 아버지들이 들려줄 수 없는 '인싸' 마법사의 세계 같은 판타지 양념도 부족했어요. 저의 기대가 너무 많았나 봐요.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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