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고럼팩토리

출간일: 2020.11.11

분량: 본편 3권

 

 

 

 

 

 

 

 

point 1 책갈피

시동이 사라지고 이화수는 고개를 수그렸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은월검이 쥐어져 있었다. 마치 평범한 것처럼 무명천으로 둘둘 감싼 그 검은 검집 안에 있어도 검신의 싸늘한 기색을 고스란히 전해 주었다.

정말로 주룡진이 자신을 이용해 죽기를 바랐단 말인가?

아니, 아니다. 그는 단지......

'......음, 나조차도 예상 못 한 일이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아.'

'그러니까 왜?'

'네게 무언가를 요구받는 게 좋아서?'

좋아서.

그 모든 것들이 좋아서 그랬나 보다.

이화수는 그 검을 집어 들고 스르르 일어났다.

point 2 줄거리

기: 화산파 이화영의 유일한 후계자 이화수는 자신을 납치하려는 마교주 주룡진을 피해 달아나지만 실패하고, 천신궁으로 끌려간다. 파천신공을 익힌 주룡진은 천하제일의 무공을 얻었지만 그 부작용으로 마기를 다스리기 어려워지자, 명문세가나 도가의 자제들을 납치해 겁간하며 양기를 얻어왔던 것이다. 화수 이전에 끌려온 명문세가의 자제들은 죽거나 주룡진의 애첩이 되어 살고 있었다. 한편, 주룡진은 화산파의 봉마주혈로 날뛰는 마기를 진전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승: 유용함이 증명 된 화수는 겁간의 위기에 벗어나지만, 주룡진에게 집착하는 당서란에게 시기의 대상이 된다. 화수는 정기적으로 주룡진에게 봉마주혈을 시전하며, 탈출을 위해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런 화수에게 주룡진은 자신의 보검 은월검을 준다. 당서란은 고고한척 하는 화수를 타락시키기 위해 미약을 먹이고, 주룡진과 화수는 뜨밤을 보내지만, 화수는 약이 취해 기억하지 못한다. 한편, 화수의 호위모사 해무영은 화수를 구출하기 위해 방법을 강구한다.

전: 주룡진은 그날 밤 이후 화수에게 애정을 보이고, 그런 주룡진을 대하며 화수 역시 변하기 시작하지만 그 실체를 몰라 혼란스러워 한다. 그러던 중 해무영은 비밀통로를 찾아 화수를 탈출시키지만, 곧 주룡진에게 붙잡힌다. 주룡진은 부상 입은 해무영을 인질로 화수의 몸을 탐하고, 성교를 통해 선기와 마기가 교차되면서 두 사람은 황홀경을 느낀다. 주룡진은 화수를 더더욱 아끼지만, 화수는 그 열락을 느낄수록 마음이 공동화 되어 생에 의지를 잃는다.

결: 한편, 무림맹은 결사대를 조직하여 주룡진이 자리를 비운 틈에 화수와 해무영를 구한다. 이 소식을 들은 주룡진은 천신궁으로 돌아와 화수가 없는 것을 보고, 분노하여 마기가 폭팔한 광마가 된다. 이성을 잃은 광마는 무림으로 화수를 찾아오고, 많은 무림인들이 목숨을 잃는다. 마지막 보루인 파마진 마저 실패한 위기의 순간, 화수는 시종을 통해 전해 받은 은월검을 들고 나타난다. 화수는 주룡진을 살리고 싶은 염원으로 화신의 경지에 이르고, 주룡진의 단전을 파훼한다. 화수는 주룡진과 함께 천신궁으로 돌아간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짐승'... 그리고 '무림기연'

유명한 작품은 많고, 그 중 일부 잘 쓴 작품, 또 그 중 일부 오랫동안 기억나는 작품, 그리고 그 안에서 몇몇만이 인생작이 됩니다. 사람의 사귐과 참 비슷하죠? 말이 통하는 사람들, 그 중 일부가 좋은사람, 또 그 중에 일부 진국, 그 안에서 소수만이 내 인생의 동행자가 되는 것 처럼요. 만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작품들... 그 인생작 중 한 작품은 분명 이순정님의 '짐승'입니다.

신작 '무림기연'을 읽으면서 '짐승'이 떠오른 이유는 본능적 공과 사회적 수의 조합이나 공이 쉽게 인정하는 애정을 어렵게 받아드릴 수 밖에 없는 수의 도덕관이 유사하기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짐승'과 같은 3권의 분량이었음에도 무협물이라 풀어야 할 시대배경과 관계설정이 많아서 였을까요? 이순정님의 강점인 입체적 인물들이 섭섭 할 정도로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고, 회수못한 떡밥은 없었지만 허무한 떡밥은 많았습니다. 그 분량 내에선 최선이었겠지만, 애당초 3권의 분량이 너무 적지 않았나 싶어요.

저는 이순정님의 입체적 인물묘사를 정말 좋아합니다. 선악과 시비를 나눌 수 없는, 복합적이고 복층적인 인물을 표현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재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당서란'이나 '백효조', '장태주'라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그저 소비되어 버린 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누구보다 정파의 자부심이 강했기 때문에, 더 많이 엇나가고 망가져야만 살아 질 수 있었던 당서란의 '집착'이나, 생명이나 평온한 미래보다 더 갈구했던 백효소의 '소속감', 차가운 바위여야 했지만 실은 지하를 잠잠히 흐르던 마그마 같던 장태주의 '애정'이,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이 쓰입니다. 천금궁이라는 특수한 공간 속에 감금된채 죽어가는 이들을 보며 생존해야만 했던 너무나 다른 인물들의 이면들이 묻힌 것 같아서요.

한편, 공수의 캐릭터는 매우 선명합니다. 주룡진 예쁘고 강한 것을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것은 마땅히 가져야하고, 가지는 방법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습니다. 곁에 두고, 좋은 것을 주고, 도망가면 잡아옵니다. 마치, '짐승'의 사내가 생각이 나죠. 반면, 이화수의 삶은 아버지 이화영의 그림자였어요. 이화영은 화산파 비원인 매령환무검을 통달하지 못해 사랑하는 여자를 떠나보내고 우수한 무재를 낳기 위해 애정 없는 결혼을 해요. 그렇게 태어난 이하수의 존재 가치는 오로지 매령환무검뿐이었죠. 화수는 세상과 단절 된 채 갇혀, 폭행에 가까운 채벌을 받으며 무술을 연마하고, 매령환무검을 익히지 못한 화수가 이루낸 모든 것들은 인정 받지 못합니다. 가문이 유일한 척도였던 지언처럼, 삶의 선택할 자유는 박탈되요. 정확히는 가져 본 적조차 없죠.

하지만, 주룡진은 사내와 달리 노련한 수장이었고 이화수 역시 도련님 특유의 솔찍하고 제멋대로인 일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룡진은 사내와 달리 화수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알고 꾀어 낼 수 있었고, 화수는 지언처럼 극도로 피폐한 선택을 하기 전에 주룡진에 대한 애정을 인정합니다. 좀 순해진 '짐승'과 부러지지 않고 휘어진 '선비' 같은 느낌이랄까요. 이야기가 너무 무겁지 않게 깊이를 조절하는 것도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짐승'을 읽고 폭팔 할 듯 샘솟던 사념이 '무림기연'에서 너무도 잔잔한 것이, 저로서는 지난 작품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어지네요.

주룡진은 옥루정에 갇혀 파천신공을 익힙니다. 마치, 화산에 갇혀 매령환무검을 익혀야 했던 화수처럼요. 단지, 주룡진은 화수와 달리 성공하여 옥루정을 나오죠. 하지만, 절정고수의 무공임에도 파천신공을 익힌자가 없는 이유는 마기를 잡기 어렵고, 마기을 잡지 못해 주화입마에 들면, 광마 혹은 광신이 되어 인간성을 잃고 살인귀가 되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강제로 익혀야 했던 무공의 부작용에 시달리던 주룡진에게, 그 무공으로 얻은 권력을 누리는 것 역시 당연했는지도 모릅니다. 양기를 채우기 위해, 정파 제자와 자제들을 납치해와 겁탈하고 죽이면서도 주룡진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요.

주룡진은 죽은자들을 대신 할 자들이 계속 납치하고, 공력이 높아 기력이 빨리고도 살아 남은 자들은 기어코 살려내요. 치욕스러운 겁간에 몇번이고 도망치고 자진하지만 다시 운우정에서 눈을 떠야만 했던 위세높은 공자들은, 서서히 살기 위해 스스로 주룡진에게 길들여지는 쪽을 선택합니다. 그러다 화수가 나타나죠. 성교가 아닌 방식으로, 여러명이 간신이 잠재울 수 있었던 마기를 홀로 진정시킬 수 있는 사람... 화수는 주룡진에게 가장 귀한 사람으로 대접을 받습니다. 망가지지 않은채, 이제는 자신들이 말할 수 없는 고고한 사변(思辨)을 내뱉으며, 천금궁에서 호위호식하는 자... 화수의 등장은 운우정에 숨죽여 살던 많은 이들을 흔들어 버리죠.

심지어 주룡진 조차도 말이예요. 주룡진은 들끓던 마기가 화수의 선기에 의해 잠잠해지자, 그간 느끼지 못했던 인간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상처받고, 삐지고, 보고싶고, 주고싶은... 만약 언젠가 죽게 된다면 꼭 너였으면 좋겠다는 바람까지... 화산에 갇혀, 친우 한명과 호위 한명이 인간관계의 전부였던 화수 역시 그런 주룡진의 변화에 함께 울렁거리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 감정들은 화수의 정파 후계자로서 쌓아 왔던 도덕관이라는 허들을 넘지 못합니다. 미약을 먹고 주룡진과 잠을 잤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해무영을 살리기 위해 주룡진과 한 침대를 쓰기 시작하면서 화수는 텅빈 인형이 되어버리죠.

'무림기연'은 분명 BL장르에서 보기 힘든 제대로 된 무협물입니다. 그럼에도 분량의 한계인지, 주요전개가 너무 후다닥 진행 된 느낌이 있습니다. 화수가 주룡진이 준 영물을 잘 받아 먹고, 영기가 가득찬 천금궁에서 수련을 게을리지 하지도 않았으니, 매령환무검을 통달 한 것이야 그럴 수 있다치지만, 화신등장은... 사랑은 무한의 위대함이라고 이해해야할까요. 어쨌든 극적 반전을 위해서라지만, 화산파 후계자 한명을 살리고자 무림맹이 거의 전멸하고, 광마가 된 주룡진을 살리기 위해 화신의 경지에 도달한 화수는, 주룡진의 단전을 파훼하고 그를 데리고 천금궁에 돌아갑니다.

무림을 떨게 한 광마도 사라졌고, 이제 그가 더 이상 정파의 젊은이를 납치 할 일도 없어졌죠. 이화영은 후계자를 잃었지만, 평생 염원했던 매령환무겸과 화신을 보게 되고, 화수는 자유와 사랑을 찾습니다. 해피엔딩이죠. 그런데 왜 이리 찜찜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주인공만 좋으면 장땡인 할리우드 영화 엔딩 크레딧을 보는 기분이랄까요.

결론은, '역시 이순정! 하지만 아쉽다.' 입니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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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이클립스

출간일: 2018.02.14

분량: 본편 1권

 

 

 

 

 

 

 

 

point 1 책갈피

"사랑해"

청량한 웃음 끝에 이어지는 하나의 수순같은 저 말. 늘 듣는 말인데도 들을 때마다 두가지의 감정이 양극단으로 나를 옭아맨다. 하나는 이상한 설렘으로, 다른 하나는 미칠 것 같은 분노로.

너의 사랑은 나를 좀먹어 들어가고 있어.

나날이 썩어서, 그 껍데기만 남게 되겠지.

언젠가 그것마저 썩어 버리면, 너는 어떤 표정일까.

"나도"

녀석의 말에 부드럽게 대꾸하며 나는 추악하게 쓴 가면 밑으로 떨리는 감정을 숨겼다.

그리고 녀석의 사랑한다는 말에 오늘도 활짝 웃었다.

point 2 줄거리

기: 수혁과 영우는 배다른 형제지만, 수혁은 영우를 살뜰히 챙기고 영우도 수혁에게 의지한 채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어느날 고등학교 동창인 지철이 제대하고, 전화와 외출을 싫어하는 영우도 제대 축하 모임에 나간다. 그리고 그 다음날 평소 수혁을 의식해 영우에게 말을 걸지 않았던 학과 동기들이 영우에게 축제를 도와달라고 한다. 수혁은 타인과 교류하려하는 영우에게 갑자기 난폭하게 굴며 당황스러운 스킨쉽을 한다. 영우는 그런 수혁을 달래면서도 뭔가 어긋났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승: 한편, 고등학교 시절부터 영우를 좋아했던 지철은 수혁으로부터 영우를 탈출시키려하고, 그런 지철이 영우의 앞에 나타날때마다 수혁 집착은 점점 심해진다. 그러던 어느날 지철은 영우를 데리고 무작정 속초로 떠나고, 영우를 찾아온 수혁은 지철을 폭행한다. 서울에 올라온 영우는 지철이 입원한 병원에 찾아가 수혁을 대신해 용서를 빌지만, 그런 영우에게 지철은 본인만 모르는 '사실'을 알려준다. 혼란을 느낀 영우는 수혁에게 따로 살자고 제안한다.

전: 수혁은 영우를 감금하고, 영우는 수혁에게 길들여지면서도 탈출을 노린다. 그리고 수혁이 잠든사이 영우는 탈출에 성공하고, 지철에게 전화한다. 지철은 수혁이 가스폭팔사고를 가장해서 영우를 죽였다고 속이고 장례식까지 치렀다고 알려준다. 지철은 영우를 외가로 피신시키고, 영우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한편, 영우는 자신이 죽은후 어머니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병원으로 가지만, 어머니를 보기 전에 수혁에게 다시 잡혀 온다.

결: 영우는 수혁이 영우를 가지기 위해서 했던 일들과, 자신이 잊고 있었던 원죄에게 관하여 듣게 된다. 충격에 쓰러진 영우는 기억을 잃는다. 그리고, 그런 영우에게 수혁은 다시 거짓말을 시작한다.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영우는 몸이 약해 밖에 나갈 수 없다고 알려준다. 수혁은 영우를 다시 길들이기 시작하고, 스스로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된 영우는 수혁이 준 안락한 감옥에서 수혁을 사랑하게 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원색적 피폐물

개정증보판으로 e-book발간이 된지도 제법 되지만, '꼭두각시'는 훨~~ 씬~~ 이전에 쓰여진 작품입니다. 그래서 '옛날 냄새'가 많이나요. 피폐물에도 트렌드라는 것이 있어, 똑같은 감금이고 근친물이여도 분위기가 좀 다릅니다. 좋은말로 '집착'에만 포커스를 맞춘 농도 진한 피폐물이고, 나쁜말로는 세련미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어요.

'꼭두각시'는 BL판 '미저리'입니다. 눅눅하고 어둑한 공간, 비정상을 숨기지 않는 노골적 행동과 도망치지 않는 소극적 사냥물... 제대로 압박감 오는 전개지만, 한편으로는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분위기'가 느끼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것저것 머리쓰지 않고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원색적이고 직접적인 배덕감, 피폐감, 공포감 말이예요. 그런점에서 '꼭두각시'는 정말 좋은 작품입니다.

많은 계략 집착공들이 수의 인생을 설계(?)하긴 하지만, 그런경우 공은 월등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돈이든, 지위든, 아니면 수를 원활하게 통제가능한 초월적 능력이든 말이죠. 그러고도, '트루먼쇼'처럼 완벽하게 개인을 속이는 것 쉽지 않기 때문에, '자낮수'를 설정하거나 공에 대한 맹신, 냉정한 판단이 어려울 정도로 급박하고 절실한 상황을 깔아 놓습니다. 하지만, '꼭두각시'는 쿨하게 이 과정을 패스하죠.

수혁과 영우는 배다른 형제예요. 영우는 본부인의 아들이었고, 수혁은 밖에서 낳아 온 아이였죠. 수혁의 어머니는 수혁의 아버지를 가지기 위해, 수혁의 아버지 앞에서는 가련한 여자를 연기하고, 아버지를 만나기 위한 목적으로서 수혁을 대합니다. 그리고, 뒤에서는 영우의 어머니를 스토킹하며 협박도 서슴치않죠.

영우는 어릴때 아버지와 함께 수혁을 만나러 갔습니다. 몸이 안 좋았던 수혁의 어머니는, 자신이 죽은 뒤 수혁을 거둬달라고 말하고, 그 이야기를 들은 영우는 아줌마가 죽으면 수혁과 함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상식적이고 소심한 모범생인...영우는 우발적으로 수혁과 함께 살기 위해 아줌마의 인공호흡기를 떼서 죽여요. 그리고 수혁은 그 장면을 보죠.

그 사건은 수혁이 영우와 함께 살게 되는 계기이기도 하지만, 영우에게 집착하는 도화선이 되기도 합니다. 수혁은 영우의 친구들이 모두 알 정도로 유명인사였습니다. 입학 전에는 교문에서, 입학한 이후로는 교실 문 앞에서 매일 형을 기다렸거든요. 영우의 어머니는 수혁을 학대하고, 어린영우는 어머니에게서 수혁을 구해내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있었죠. 그래서, 영우는 어머니가 없는 공간에서만큼은 언제나 수혁을 우선으로 생각합니다. 친구들은 영우의 이상한 동생과, 그 이상한 동생 때문에 늘 친구들을 뒤로 하는 영우가 정상적이지 않다고 말했지만, 영우에게는 더 강한 의무감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런 영우조차도 어쩔 수 없이 수혁을 떼 놓아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그때마다 수혁은 영우를 망가트려요. 껌딱지 동생 말고 자기랑 생일을 보내자는 지철의 애원이 있던 날, 영우는 스토커를 만나고 그 이후에 온갖 협박, 성추행 등에 노출됩니다. 그로 인해 밖을 나가기 싫어하고, 전화 사용을 무서워하게 되죠. 그리고, 군대를 들어가기 몇 일 전 수혁이 운전대를 잡은 차에서, 영우는 사고를 당합니다. 그리고 다리에 큰 부상을 입어 다리를 절게 되요. 따로 살자고 말하는 영우는 가스폭팔사고로 죽은 사람이 되고, 수혁에게 도망쳐 잡혀 온 뒤로는 기억을 잃고 피부병 환자가 되어 반 감금 된 유령으로 살아갑니다.

아쉬운 점은,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수세로 몰아넣은 수혁의 '방법'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미성년 학생이었던 수혁이 어떻게 영우를 범죄자에게 던져 줄 수 있는지부터, 수혁이 폭행, 살인, 방화, 문서조작 등 엄청한 범죄를 벌임에도 세상은 수혁에게 작은 생채기 조차 내지 못한채 그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것 까지... 아무도 의심하지 않은 '이사법' 같은 디테일은 제쳐두더라도, 큰 줄기 속에서도 밑작업에 대한 복선이나 암시는 없고, 그저 '수혁의 계획'이라는 '전제'만이 깔려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암울하고 칙칙하면서도 공포스럽고 숨막히는 분위기가 끊김없이 누적되는 순효과 역시 생기는 듯 합니다. 마지막, 수혁을 속이고 낮 산책을 하는 영우를 보면서, '여운이 느껴진다.'는 감상을 받는 이유도, 열심히 쌓아 온 '검은 진실의 무게'에 비해 영우의 '하얀 작은 거짓'이 그 차만큼이 공백으로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수의 정서적 불안만으로 하드캐리하는 것이 어색한 면이 있긴 하지만, '꼭두각시'는 선택과 집중에 강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수시점으로 바라보는, 점점 늪에 빠져 들 것 같은 침전감도 이 작품의 특징이죠. 형을 위해 치킨을 튀기는 살림꾼 동생이라 동생이 형을 키우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영우의 고뇌에 분명 '동생'이라는 허들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역키잡 특유의 배덕감도 있습니다.

가끔 어느 키워드로 분류되기 좀 애매한 작품들이 있어요. 그래서 '꼭두각시'는 그냥 '꼭두각시' 인 것 같아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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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처: 봄툰

분량: 본편 52화 + 외전 7화

point1: 한 컷

 

봄툰

 

point2: 줄거리

기: 작은 동네, 군인 아버지와 엘리트 형을 둔 김지성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숨긴채 공기업에서 일해 왔다. 하지만, 결혼을 강요 당하자 참지 못하고 가출을 단행한다. 그 후 진지한 사랑을 바라던 모범생 지성은 게이바에서 상기를 만나고 강간당한다. 상기는 지성에게 돈을 주고, 빈손으로 가출한 지성은 상기의 돈을 받고 계속 잠자리를 이어간다. 지성은 원래 하고 싶었던 애견 미용에 관련 된 일은 하지 못하고, 경력을 살려 사무직 단기 아르바이트를 구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대리를 만난다.

승: 친절한 이대리를 좋아하게 된 지성은 곧 그가 게이이고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성은 꿈꾸던 진지하고 행복한 연애를 하며 동물병원 취직도 성공한다. 지성은 상기에게 받은 돈을 갚고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만나고, 그 장면을 본 전 회사 직원은 이대리에게 고자질한다. 이대리는 지성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상기는 대놓은 두 사람을 훼방논다. 지성은 이대리에게 진심이 담긴 편지를 쓰지만 고열로 쓰러져 건내지 못한채 헤어지고, 상기는 아픈 지성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온다.

전: 상기는 약과 섹스로 지성을 길들이며 집에 붙잡아 둔다. 그리고 아웃팅을 두려워하는 지성과 그런 지성이 섭섭한 상기는 갈등을 겪지만, 오히려 서로를 더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되어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하지만, 상기는 지성이 과거를 물을 때마다 폭력적으로 변하고, 결국 최악으로 치달은 상황에서 지성은 상기의 얼굴을 칼로 긋는다. 둘은 헤어지고 지성은 고향으로 돌아가려하지만, 결국 지성은 다시 상기를 찾아가고 둘은 더 깊이 사랑하게 된다. 그런 두 사람에게 상기의 '아버지'라는 사람이 나타난다.

결: 죽은 친부의 연인이었던 '아버지'는 어린 상기를 학대하고, 성인인 된 후 돈을 뜯어냈다. 한편, 이대리는 지성에게 찾아와 다시 만나자고 하지만, 지성은 거절한다. 그리고 이대리를 만났다는 것을 알게 된 상기는 지성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둘은 헤어진다. 하지만 헤어진 뒤로도 상기와 지성은 서로를 잊지 못한다. 둘은 우연히 다시 만나고, 그때 상기에게 '아버지'가 사고로 죽었다는 연락이 온다. 그런 상기의 곁에 지성이 함께 있어준다. 두 사람은 용기내어, 서로의 가족이 되어 준다.

point3 진지충의 review: 더 나은 사람이 되다.

'나쁜 버릇'은 하드코어합니다. 보면서도 덜덜덜 떨려요. 소심한 모범생, 아직까지 운명의 상대를 믿는 순정남 지성이 상기를 만나면서 점점 나락으로 떨어져가는 모습이 숨 막히기도 하고,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상기가 지성을 협박하고 모욕적 행동을 강요하는 것 보면 흠짓하기도 합니다. 특히나, 자동차 탈출씬은... 탈출씬이 아니라 잠금씬이라고 해야 할까요? 고강도 피폐씬으로 손꼽을만 합니다. 그럼에도, '나쁜 버릇' 자체가 그렇게까지 피폐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결론이 완벽한 해피엔딩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퍼즐이 맞춰지는 것 처럼, 서로에게 꼭 맞는 진정한 운명의 상대로 마무리되거든요. 게다가 달달한 외전은 보너스!

압력이라는 것은 무섭습니다. 본래 성질을 바꿔버릴 만큼의 힘이 있어요. 수면을 노닐던 어종이 가라앉아 심해어가 되면, 수압을 견디지 못해 눈이 튀어나오고 몸이 변경되어 다소 괴기스러운 모습이 됩니다. 심지어 퇴적암도 열과 압력으로 변성암이 되면 성질이 변하게 되죠. 하지만, 이것도 엄청한 스트레스를 견뎌내 살아남은 경우에 이야기 입니다. 변하지 않는다면,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서서히 생에서 멀어지거나 소멸할거예요.

지성은 오랜세월,집 안에 압력에 숨막힌 생활을 해왔습니다. 아버지를 화나게 만들고, 집안에 분란을 일으키고, 자신의 존재 자체가 잘 못 된 것 같았죠. 그래서, 형을 따라 하려고 했지만, 그렇다고 지성이 이성애자가 될 순 없었습니다. 한번도 일탈이라는 것을 해 본 적 없는 순둥이는, 압사 당하기 직전에 살기위해 집을 뛰쳐 나옵니다. 월급 통장, 핸드폰 명의도, 본인의 것이란 없는 의존적인 삶에 종지부를 찍었지만, 온실 속에 화초처럼 자란 지성에게 세상은 만만치 않았어요.

상기는 게이인 아버지가 결혼을 해서 낳은 아들이었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속여야 했던 아버지를 지켜본, 그의 연인은 상기가 미웠어요. 꼭, 결혼식에 만난 그 여자를 떠올리게 했죠. 하지만, 상기는 두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싶었고, 조금씩 친구들과 다른 생활을 하게 되요. 그건, 상기를 폭력적이고 감정적이게 만들었죠. 그리고, 친부가 죽자마자 남은 '아버지'는 자신을 버리고 떠납니다. 텅 비어버린 집을 보며, 상기는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바로, '혼자 남겨지는 것' 말이예요. 그래서 상기는 관계를 만들지 않고, 즐기는 생활만을 이어갑니다.

그런 상기는 주변에 절대 없을 신기한 유형의 사람을 만납니다. 운명의 상대를 찾고 있다는, 좋은회사 출신의 순진한 지성... 지성은 술김에 잘생긴 상기에게 입맞춤을 하고, 그 간질거리는 스킨쉽은 상기에게 욕망이 섞이지 않은 최초의 스킨쉽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상기는 지성에게 집착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돈도 없고, 겁도 많은 지성을 손에 넣는건 쉬운 일이었죠. 지성은 처음엔 상기에 돈에, 그 다음은 상기와의 섹스에, 마지막엔 게이인 자신이 돌아갈 유일한 장소라는 것 때문에 상기를 찾습니다.

문제는 상기였어요. 너무나 바랐지만 바란적 없는 것 처럼 살았던, 자신을 기다려 주는 존재를 만나요. 상기는 행복해하지만, 그런 지성의 존재는 곧 트리거가 되어 자신을 눌러옵니다. 지성도 자신을 떠날 수 있다는 공포감 말이예요. 그 압력은 상기를 폭주시킬만큼 무거웠고, 지성은 그 때마다 큰 상처를 입어요. 상기와 지성은 몇 번이고 그런 위기를 겪으면서도, 서로를 놓지 못하고 다시 만납니다. 상처주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그때마다 지성은 울고, 우는 지성을 보면서 상기는 지성을 놓아주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자기혐오의 순간들이 상기에게 쌓여갔을 때, '아버지'와 이대리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상기는 '작은 오해'를 풀지 않고 이별을 선택하죠. 몇번이고 매달리는 지성을 모질게 떼어냅니다. 하지만, 상기에게도 지성에게도 서로는 끝나지 않은 상처이고 사랑이었어요. 다시 만났을 때, 상기는 지성에게 주지 못했던 커플링을 건내줍니다. 그렇게 같은 반지를 끼고 있는 순간에도, 상기는 지성에게 다시 시작하자는 말을 하지 못해요.

그러다 '아버지'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습니다. 매번 돈을 뜯어가는 아버지에게 돈을 주고 친부의 기일에 찾게 되는 이유는, 그가 상기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가족'이었기 때문이었죠. 상기는 친부의 납골당 근처에 정착 할 정도로 '가족'을 바랐지만, 더 이상 혼자 남겨지는 것이 무서워 새로운 가족을 만들지 못합니다.

이럴때 연상의 힘이 발휘 됩니다. 지성은 상기의 곁에 남습니다. 그리고 가족이 되어주죠. 상기는 여전히 지성에게 집착하지만, 지성은 더 이상 휘둘리지 않습니다. 상기의 집착보다, 상기의 불안함을 달래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제일 통쾌한 것은, 드디어 지성이 집에서 월급 통장을 가지고 온다는 것! 성인 샐러리맨의 월급을 부모가 관리한다니... 저로서는 절래절래한 설정이었어요. 어쨌든, 지성은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집과는 완전히 절연하죠.

지성과 상기는 자신들을 누르는 무거운 압력으로부터 더 나은 사람이 됩니다. 순두부 지성은 단단해지고, 천둥벌거숭이 상기는 소중한 걸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워요. 지성의 가족은 여전히 지성을 불량품이라고 생각하고, 상기가 가족이라 여겼던 두 사람은 모두 죽고 없습니다. 압력이 없어진 것이아니라, 압력을 이기지 못했던 과거로부터 변한거죠. 그래서, 두 사람이 가족이 되는 결말이 완벽한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상처 입고 암울한 삶을 살던 주인공이, 서로를 만나 행복을 찾은 이야기라 '힐링물'로 분류 될 법도 하지만.... 그 피폐한 장면들을 보았던 저로서는, 도저히 '힐링'이라는 글자가 써지지 않더라고요. 중간 부분에는 정말 심장이 뜁니다. '상기야 제발 그만해!' 그런데, 다음 편은 더 심한 씬이 나오고... 그래서, 한 동안 심호흡한 뒤 보곤했습니다. 저 같은 독자1를 위해 한컷 남깁니다. 고 구간을 넘으면, 상기는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된답니다. 안심 안심!

봄툰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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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주)현대지능개발

출간일: 2015.08.18

분량: 본편 2권

 

 

 

 

 

 

point 1 책갈피

"아무것도 모르면서!"

굳은 표정으로 마사히코가 소리쳤다.

"애완동물이라면 옆에 있는 것만으로 만족했을 테지. 하지만 넌 다르잖아. ... 섹스를 좋아하잖아."

덜컹 소리를 내며 소파에서 일어섰다.

마사히코가 놀라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아키사와는 그대로 무릎을 굻고 바닥에 네 발로 엎드렸다. 그리고 주인에게 복종을 맹세하는 종처럼 마사히코의 운동화 끝에 입을 맞추었다.

"날 거세해도 좋아."

"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난 정말 애완동물로도 충분해."

곁에 있는 것 그이상, 더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이 사랑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 뭐든 참을 수 있어. 떨면서, 울먹이면서... 아주 조금이나마 그 손을 내밀어 준 마사리코가 사랑스러웠다. 애뜻해서 견딜 수가 없다. 목 위로 미적지근한 물방울이 떨어졌다.

마사히코는 '나도 구제불능이지만, 너도 머리가 이상해.'라며 빨개진 눈가를 팔로 가렸다.

point 2 줄거리

기: 떠오르는 수제 악세서리 브랜드 CRUX의 창업자인 형 마사히코 마사미츠와 동생 쿠스다는 CRUX 전속 모델을 찾지만, 쉽지 않았다. 어느날 드라마DVD를 보던 쿠스다는 아역 연기자 아키사와 카이토를 보고 관심을 갖지만, 성인이 된 아키사와는 영화감독 도몬 요이치과 다툰 후 변변치 않은 역만 전전한 패배자로 살고 있었다. 좌절한 남성을 이미지로 작업하고 있었던 마사미츠는 그런 아키사와에 영감을 받아 슬럼프를 끝내고, 다사다난한 작업이었지만 아키사와는 CRUX 모델을 계기로 제기에 성공한다.

승: 한편, 연기 천재인 아키사와는 역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회성도 전혀 없는 '날 것' 그 자체로, 쉽게 폭주해서 다루기 어려웠다. CRUX 모델로서 물의를 일으켜 화제가 되는 것 만큼은 막고 싶었던 쿠스다는, 도몬 요이치와 다투는 아키사와를 달래기위해 우발적으로 키스를 한다. 쿠스다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착각한 아키사와는, 쿠스다에게 욕구와 애정을 숨기지 않고 급발진 고속질주를 멈추지 않는다. 그런 아키사와에게 휩쓸려 얼떨결에 쿠사다는 그의 연인이 된다.

전: 아키사와는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처럼 쿠스다에게만 의지하고, 자제 없이 쿠사마를 탐한다. 그런 비정상적인 행동을 힘들어하면서도, 쿠스다는 순수한 아키사와의 애정에 아키사와를 좋아하게 된다. 그러던 중 오키나와에 촬영 중이던 아키사와의 스캔들이 터지고, 추궁하는 쿠스다에게 아키사와는 여자 배우와 잤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말한다. 화가 난 쿠스다는 연락을 끊고, 아키사와는 촬영을 때려치고 도쿄로 온다. 아키사와는 오키나와라 안 가겠다며 쿠스다를 협박하며 공항 화장실에서 강제로 안는다.

결: 결국, 쿠스다는 아키사와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흥분한 아키사와는 쿠스다를 폭행하고, 감금한채 강간하고, 낯선사람에게 쿠스다를 강간토록 시킨다. 다행히 쿠스다는 아키사와의 매니저에게 구출되지만, 트라우마가 생기고, 죽은척 아키사와를 속이고 뉴욕으로 떠난다. 연기자로 성공한 아키사와는 3년 뒤, 쿠스다를 찾아 뉴욕으로 간다. 쿠스다는 아키사와를 거부하고, 아키사와는 다시 찾아오지 않겠다고 약속한채 떠난다. 하지만 그 후 매일 사과 편지를 보내는 아키사와를, 결국 쿠스다는 용서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COLD HEART 시리즈'는, 토오루에 든든한 아군이자 조언자인 쿠스다가 주인공인 'COLD 시리즈'의 스핀오프 작품입니다. COLD 시리즈 Short story에 나온 후지시마와 토오루의 나체 사진 포스터가 히트하면서, CRUX 포스터 모델이라는 것이 주목받는 자리가 됩니다. 반면, 회사가 커지고, 큰 관심을 받으면서 '사장'으로서 부담을 느낀 마사미츠는 '디자이너'로서 위기를 맞습니다. 마사미츠는 나이가 들어가고, 트렌드는 빠르게 바뀌어가죠. 그래서 마사미츠는 자신과 함께 나이 들어가며 변하는 디자인처럼, 함께 나이들어 갈 CRUX 전속 모델을 찾습니다. 그리고 절망적인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한 이번 시즌 작품에 어울리는 아키사와가 선택 되죠.

아키사와는 천재적 재능을 가진 연기자였지만, 일찍이 연기를 시작해서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도 못했고 주변에 변변한 인간관계도 없었어요.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아키사와는 '인간'으로서 제대로 사회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도몬 요이치의 방해로 오디션에 줄줄이 낙방하지만, 그런 아키사와는 연기 이외에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고, 아키사와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반면, 쿠스다는 전형적인 '사교형' 사람이었어요. 후지시마와의 대화처럼, 토오루나 아키사와 같은 천재적 재능은 없지만, 그들을 빛나게 해주는 훌륭한 보조자였죠. '그' 토오루마저 마음을 열게 만든 이해심 갑, 인성 갑, 사회성 갑! 그런 쿠스다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 몸에 밴 사람이었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가 보다는, 무엇이 가장 원만한 해결책인가에 따라 움직입니다.

본능에 충실한 아키사와, 양보가 삶 그자체인 쿠스다... 참 상극의 만남이죠. 천재를 다루는 작품에서 등장한 갈등은 일상성을 벗어나 신선하고 흥미로운 반면, 결론을 맺기위해 갑자기 '그' 천재가 인간성을 회복하는 캐붕이 일어나기 쉽죠. 그런면에서 'COLD HEART 시리즈'에서 쿠스다 캐릭터는 신의 한수였다고 생각합니다. 아키사와 역시 노력으로 변할 수 없는 것 처럼, 쿠스다 역시 바뀔 수 없는 본질이 있습니다.

'폐를 끼치지 않는다.' 정확히 '양보'와 '배려'라기 보다는, 일본 문화 특유의, 교육 된 금기라고 할까요. 왜 아키사와의 폭주를 단호히 제지하지 못하고 받아 줄 수 밖에 없었나? 왜 아키사와를 신고하지 않고 도망 갈 수 밖에 없었나? 왜 아키사와를 피하고, 또 용서 할 수 있는나? 모두 정말 그런 쿠스다다운 결정이었다고 수긍가게 만들죠.

아키사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COLD HEART 시리즈는 읽으면서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가 생각이 났어요. 자기상실 상태에서 바닥으로 곤두박질 친 젊은 영혼들에게 남은 것은 질주하는 본능 뿐이죠. 왜 질주하는 본능이 섹스와 마약 밖에 없냐! 무라카미 류의 소설이나 한국 영화 '청춘'처럼 젊은이들의 방황을 다룬 작품들을 많이 받는 비판이긴 합니다. 뭐... 그런데 깊은 무기력과 내가 누군지 모르겠는 불안, 그래서 뭘 해야하는 지도 모르겠는 방황하는 자아들이, 폭식이나 폭면을 선택하긴 힘들지 않을까요. 상실감을 덮을 수 있을 만큼, 더 강한 쾌락을 쫒아야 하는 원초적 동물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아키사와는 타인의 역할에 완벽히 빠져 연기 할 수 있는 천재 연기자지만, 그런 연기자 아키사와는 이해 받지 못합니다. 누군가를 연기하지 않는 아키사와는 초라하고, 겁이 많고, 늘 아버지에게 야단을 맞죠. 그렇게 많은 사람이 되어 살 수 있는 재능을 가졌으면, '아키사와'로 사는 방법은 알지 못합니다. 아키사와는 어떻게 행동할까? 어떻게 생각할까? 무엇이 아키사와다운가? 오로지 '그 사람'만은 제대로 연기 할 수 없습니다. 아키사와에게 아키사와의 삶은 혼돈 그 자체였죠.

상식적인 쿠스다를 대하는 비상식적인 아키사와를 보면, 정말 뭐 이런 미친놈이 있나 싶습니다. 개아가공도 유형을 달리한다지만, 이건 정말 밑도 끝도 없는 벽창호가 따로 없죠. 그런데, 아키사와는 정말 최선을 다해 쿠스다를 사랑합니다. 때리고 싶어도 참고, 오키나와를 가기 싫어도 가고, 용서 할 수 없는 일이어도 용서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랑은 할 줄 알아도 '소중히 여기는 법'은 알지 못한 아키사와는 결국 쿠스다를 놓치고 맙니다. 그건, 아키사와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결국 도달 할 수 밖에 없는 실패였죠.

가끔, 청춘의 방황을 다룬 소설을 읽으면, '비극은 피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이기 때문에 결국 실패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단지, 실패 할 수 있는 상황이 나타나는 시기만 다를 뿐이죠. 저 역시 그렇습니다. 고통스러운 실패를 하고 되돌아 보면, 그건 '나'이기에 피할 수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로지 실패를 통해서만, 너무 익숙해서 직시 할 수 없었던 나의 '근본적 결함'을 발견하죠. 차이는, 그래서 계속 생긴대로 사느냐? 사람은 바뀔 수 없다지만 그래도 바뀌려고 노력하고 사느냐?인 것 같습니다.

아키사와는 바뀔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합니다. "날 거세해도 좋다." 아키사와는 '본능'을 포기하고 '본능이 아닌것'을 선택하죠. 아이는 언제 어른이 되는가 묻는다면, 저는 '포기하는 법을 배울 때'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그건 체념이라기 보다는, 내 안에 있는 것보다 내 밖에 더 소중한 것이 생겼다는 것이고, 그것을 갖는 법을 알고 있다는 의미 일테니까요.

도서 후기에 코노하라 나리세 작가님이 남겨 주신 코멘트 처럼, 1년 뒤에는 쿠스다의 트라우마도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실패하고, 아파하고, 시도하고, 성공하는 스토리를 보고 싶은 독자1의 희망입니다.

아! COLD HEART시리즈에서 쿠스다에게 조언하는 토오루를 보면 정말 뿌듯합니다. 토오루... 그 이후에도 행복하게 잘 사는 구나. 주변을 돌아보고, 소신을 가질 정도로 안정되었구나... 상황은 심각한데, 묘하게 흐뭇해진달까요. 토오루와 후지시마... 정말 아끼는 이들이죠.

※ 동일 작가의 다른 소설 리뷰

 

2020/10/28 - [BL 소설] - [현대물/피폐물/애절물] COLD시리즈(COLD Sleep, COLD Light, COLD fever) - 코노하라 나리세

 

[현대물/피폐물/애절물] COLD시리즈(COLD Sleep, COLD Light, COLD fever) - 코노하라 나리세

출판사: 현대지능개발사 출간일: 2013.10.11 분량: 본편 3권 point 1 책갈피 ​ ​ "강해지고 싶어..." ​ 중얼거리며 후지시마는 토오루를 끌어 안았다. ​ "나는 강해지고 싶어." ​ 누구에게도,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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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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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현대지능개발사

출간일: 2013.10.11

분량: 본편 3권

 

 

 

 

 

 

 

 

 

point 1 책갈피

"강해지고 싶어..."

중얼거리며 후지시마는 토오루를 끌어 안았다.

"나는 강해지고 싶어."

누구에게도, 무엇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강해지고 싶어. 도망치는 게 아니라 싸울 수 있게 되고 싶어.

내 마음에 이기고 싶어.

그리고 언젠가 토오루의 기억이 돌아와 자신의 곁을 떠나는 날이 온다 해도..., 상대방의 행복을 빌 수 있는 자신이 되고 싶어. 이 마음을 강한 힘으로 바꾸고 싶어.

어머니와 얘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무서워했건만 다시 한 번 마주 서 보기로 한 것이다. 동정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토오루와 함께 있는 거라고 말하자. 계속 이 남자를 좋아했었다고 말이다.

경멸을 당해도 그것이 꾸미지 않은 자신의 모습이다.

'용기를 주세요.' 후지시마는 자신에게 생각지도 못한 행복을 선사한 신에게 기도했다.

어떤 것에도 맞설 수 있는 용기와 받아드릴 수 있는 용기를 주세요. 모든 것을 드러내고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세요.

후지시마는 연인의 손을 잡아 자신의 가슴에 갖다 댔다.

결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세게, 아주 세게 눌렀다.

point 2 줄거리

COLD Sleep:

타카히사 토오루는 기억을 잃은채 병원에서 깨어났다. 곁에는 자신과 같이 일한 적 있는 친구라 말하는 후지시마 케이시가 있었다. 후지시마는 퇴원한 토오루를 집에 데려와 보살핀다. 후지시마는 토오루에게 사진 전문학교 입학을 권유하지만, 토오루는 그것이 '과거의 토오루'를 강요하는 것 같아 거부감을 느낀다. 토오루는 자신의 과거를 알기 위해 이전에 살았던 집과 직장을 찾아가고, 자신이 다혈질에 폭력적이었다것, 카메라를 좋아해 전문학교 진학을 준비했다는 이야기와, 자신을 찾는 여자가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과거를 알고 싶어하는 토오루와 그런 토오루를 이해하지 못하는 후지시마는 다투고, 토오루는 집을 나온다. 다시 집에 돌아왔을 때, 술에 취한 후지시마는 토오루에게 키스를 한다. 토오루는 그것이 싫지 않았고, 오히려 후지시마가 좋아하는 케익에 질투 할 정도로 좋아지기 시작했다. 한편, 토오루는 단 것을 좋아하는 후지시마를 위해 양과자점 '포트'에서 매일 케익을 사오고, 그 인연으로 '포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제빵을 배우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한 여자가 자신을 찾아와 칼을 휘두르고, 후지시마는 토오루를 대신 그 칼에 찔린다.

그리고 토오루는 후지시마가 입원한 병원에서, 자신이 교통사고 가해자이며 그 여자의 동생을 죽였고, 후지시마가 그의 대부분의 재산을 사용해 사고를 무마한채 자신을 데리고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토오루는 그 여자에게 용서를 빈다. 그리고 토오루는 후지사마에게 '진실'을 묻고, 후지시마는 토오루가 자신을 싫어했다고 말한다. 후지시마를 싫어했던 기억을 잃어서 다행이라는 토오루에게 후지시마는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COLD Light:

후지시마는 유서깊은 기모노 기업 '나기류'의 장녀 치에코의 장남으로 태어난다. 능력을 인정받아 데릴사위가 된 아버지는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고, '후지시마 혈통'에 집착이 심했던 어머니는, 병약한 그녀의 오빠 야스아키와 통정해 후지시마를 낳았다. 후지시마는 어머니의 광적 집착 속에 끔찍한 통제를 받으며 비정상적으로 성장한다. 한편,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복수하기 위해, 피가 섞이지 않은 토오루를 양자로 입적하고 어머니는 토오루를 학대한다. 초등학생이던 토오루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본가로 숨어든다.

후지시마는 그런 토오루를 발견하고 숨겨준다. 그 후 매일 밤 토오루는 후지시마를 찾아오고, 후지시마는 토오루를 친동생처럼 보살펴 준다. 하지만, 어느 순간 후지시마의 토오루에 대한 감정은 이성적인 성애의로 변하고, 참지 못한 어느날 후지시마는 토오루를 만진다. 토오루는 그런 후지시마를 밀치고 도망친다. 그 다음날 치에코는 토오루의 별채에 들이닥쳐, 후지시마가 준 물건들을 훔친 도둑이라며 토오루를 무차별 폭행한다. 후지시마는 뒤늦게 어머니를 말리지만, 학습된 공포로 경직된채 토오루를 돕지 못했다. 그 후 토오루는 기숙사제 학교로 보내진다.

고등학생이 되어 돌아온 토오루는, 행패를 부리며 후지시마를 때린다. 하지만, 아버지가 죽고 자신의 출신의 비화를 듣자 곧 후지시마가를 떠난다. 홀로 사는 토오루를 후지사마는 찾아가지만, 토오루는 후지시마를 때리고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토오루가 교통사고 난 후에야 후지사마는 토오루를 볼 수 있었다. 토오루는 후지시마 퇴원 후 계속 연인이 되어 달라고 조르지만, 후지시마는 거부한다. 토오루는 자신을 경멸하고 있고, 기억이 돌아 온 후 '지금의 토오루'에게 사랑받은 기억을 가진채 버려지는 것이 두려웠다.

한편, 후지시마는 토오루와 쇼핑 중 전 부인과 딸을 만난다. 이를 오해한 토오루는 후지시마가 유부남이라고 생각하고, 그에게서 독립하려한다. 하지만, 이사 당일, 전 부인으로부터 토오루의 거처를 알게 된 치에코는 집으로 찾아와 난동을 부린다. 토오루는 후지시마의 거짓말을 눈치채고, 후지시마가 도망 칠 수 없도록 열혈히 구애한다. 후지시마는 어차피 괴로울거면 함께 있자고 말하는 토오루에게 항복한다. 두사람은 애뜻한 연인이 되어, 잔잔하지만 사랑이 넘치는 생활을 한다.

COLD fever:

그 후 6년 뒤, 토오루는 기억을 되찾고 6년간의 기억을 잃은채 깨어난다. 혼란을 느낀 토오루는 길거리로 뛰쳐나가고 난동을 부리다 경찰서에 가고, 후지시마에게 인도된다. 토오루는 후지시마에게 경계감을 숨기지 않는다. 후지시마는 6년간의 기억이 없는 토오루에게 파티셰로 호텔에서 일했다고 알려준다. 토오루는 자신과 다르게 붙임성 좋고, 상점가의 아이돌로 귀여움을 받으며, 쿠스다라는 이상적인 친구를 가진 '6년 전 토오루'에 대해 낯설어한다. 한편, 자신을 보살펴주는 후지시마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토오루는 사진전문학교를 다니기 시작한다.

어느날 토오루는 우연히 후지시마의 책상서랍에서 '6년간 토오루'의 사진을 본다. 그리고, 후지시마와 자신의 정사사진을 발견하고, 과거 후지시마의 배신을 떠올리며 분노에 떤다. 토오루는 후지시마를 심하게 폭생하고, 가위로 성기를 자르려 한다. 그 후 토오루는 매일 후지시마를 폭행하고, 마치 자위도구인듯한 모욕적 성행위를 후지시마에게 강요한다. 후지시마는 토오루의 분노를 기꺼이 감내한다. 그리고, 후지시마가 회사여행을 떠난 날, 키노시타 사토코란 여자가 토오루를 찾아온다.

그녀를 통해 토오루는 자신이 6년전 교통사고의 가해자이고, 후지시마가 자신을 위해 한 일을 알게 된다. 한편, 전문학교 여자인 친구와 집에 있는 토오루는 본 후지시마는 토오루의 독립을 제안한다. 토오루는 불안함에 후지시마를 강간하려하고, 후지시마는 '토오루'에게 도움을 청한다. 후지시마가 사랑하는 '6년 전 토오루'를 지우고 싶었던 토오루는 책상 속 사진을 모두 버리고, 후지시마는 그 사실을 알고 좌절한다. 집에 돌아온 토오루는 후지시마가 없는 것을 발견하고, 공포를 느껴 찾아나선다.

공원에 홀로 앉은 후지시마를 거칠게 안으며 바라 본 토오루는 후지시마가 자신이 아닌 '6년간 토오루'만을 바란다고 생각한다. 토오루는 폭주하여 자신의 목을 조르며 자해한다. 토오루는 후지시마에게 '6년간 토오루'인 척 할테니, 자신의 곁에 있어달라고 간절히 빈다. 후지시마는 토오루를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그 후 토오루는 후지시마에게 극도의 분리불안을 느낀다. 어느날 토오루와 후지시마는 함께 바다를 보러 가고, 후지시마는 토오루 앞에서 단 한장 남은 '6년간 토오루'와의 사진을 태운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심연을 마주보다.

이 감정을 어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코노하라 나리세 'COLD 시리즈'는 저의 BL입문작이자 인생작입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2004년-5년 즈음 으로 기억합니다. 우연한 기회로 COLD fever를 보게되었고, 충격을 받았죠. 그간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였거든요. 저의 BL life 첫사랑입니다.

하지만, E-book 'COLD시리즈'는 오타가 심하게 많아요. 저도 '오타의 여신'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오타를 잘 발견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돈 받고 파는 책이라고는 상상 할 수 없을 정도에, 웃어 넘길 수 없는 오타 천지인 책을 보니, 훌륭한 내용을 너무 많이 훼손하는 것 같아 정말 속상합니다. 단적으로, '책갈피'에 해당하는 단락에서도 오타가 두 개나 있었답니다. 'COLD HEART 시리즈'에는 회사이름도 오타가 납니다. 절레절레예요.

'COLD시리즈'는 아소우 미츠아키님이 작화한 만화책으로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소설을 작화하는 경우에 생략과 편집이 발생 할 수 밖에 없고, 연출력이 부족하면 원작 기대치가 있는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아소우 미츠아키님의 'COLD시리즈'는 코노하라 나리세님의 소설과 다른 감동을 줍니다. 같은 내용이지만 다른 메세지를 읽을 수 있어, 저는 두 가지 컨텐츠를 모두 접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소설'과 '만화'의 다른 감상에 대해서는, 후에 아소우 미츠아키님의 'COLD시리즈'를 별도로 리뷰 하도록 하겠습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이 싸움에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만일 네가 오랫동안 어떤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네 안으로 들어가서 너를 본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선과 악의 저편'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BL리뷰하다가 니체가 왠말이냐! 토오루를 보니 생각이 나더라고요.

'나답다.'라는 것이 실존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장소, 어떤 상황, 어떤 사람에 따라 다르게 표출되지만, 나는 어떤 '본질'적인 나라는 부분이 있을거라고 말이죠. 대학생 까칠수가 이세계로 넘어가도 까칠한 황후가 되는 것 처럼요. 빈민가에서 태어났을 때와, 재벌가에서 태어났을 때의 성격과 습관은 다르지만, 결국은 '나 다운' 자아로 수렴한다고 말입니다.

"자신에 관해서 많이 이야기 하는 것은, 자신을 숨기기 위한 하나의 수단 일 수 있다." 역시 '선과 악의 저편'에 나오는 니체의 말입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나'의 본질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는 이미지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일지 모릅니다. 파란색을 좋아하고, 단음식을 싫어하고, 건방진 사람과 친해지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나'라고 믿는 것은, 세상에 나의 일부를 정착시키는 것 같은 안정감을 느끼게 하죠.

그러면, 진짜 토오루는 누구일까요? 여자의 얼굴에 담배 연기를 내 뿜으면서 폭력을 휘두르고, 요리는 전혀 하지 못하면서,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후지시마에게 배신 당해 절대 그를 용서하지 못하는 토오루가 진짜일까요? 6년간의 토오루는 환상이고, 6년 뒤에 기억을 찾고 본래의 토오루가 된 것 뿐일까요? 왜 기억을 잃은 토오루는, 후지시마에게 배신당 했던 이야기를 듣고도 그를 여전히 사랑 할 수 있었고, 식빵하나 제대로 못 굽는 똥손이 호텔 파티셰가 되어 프랑스 연수까지 갈 수 있게 된걸까요? 상황이 달라져 토오루가 밝아 질 수는 있겠지만, 정말 본질적인 부분까지 기억과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을까요?

'피투'와 '기투'라는 말이 있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에 나오는 말인데,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는 겁니다. 태어났는데 그냥 세상에 있다는 거죠. 이것이 '피투'이고 그래서 그저 살아가는 사람을 '비인간'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사람은 이성을 통해서 스스로를 세상에 주체적으로 던 질 수 있는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런 '기투'를 통해서 사람은 비로서 '인간'이 되죠. 깊이 들어가면 '자살론'으로 넘어 갈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까지 하겠습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자신의 심연을 마주할 의지'입니다.

꽃이 그 자리에서 피는 건, 바람의 세기와 씨의 무게가 그 자리에 떨어 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일거예요. 분명히, 나의 많은 부분들 역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져 있을 겁니다. 토오루는 호스티스 어머니에게서 태어나길 선택하지 않았고, 방치되서 영양실조에 걸리길 원하지 않았을 거예요. 하필이면, 연락 간 곳이 후지시마의 아버지였고, 연고도 없었던 그는 복수심 하나로 토오루를 호랑이 굴로 데리고 옵니다. 토오루는 아버지를 찾아 왔지만, 아버지는 보지도 못하고 외딴 별채에서 목욕도, 세탁도, 청소도 할 수 없이 최소한의 밥만 제공되는 가축과 같은 생활을 하죠. 모두 토오루가 거부 할 수 없었던 것들이고, 이는 토오루를 숨박이는 외로움 속으로 몰아 넣습니다.

토오루가 증오심을 느낄 대상은 많습니다. 하지만, 용서 할 수도, 무뎌지지도 않은 상처는 오로지 후지시마 뿐이었죠. 토오루는 자신을 방치한 친모지만, 돌아가게 해달라고 아버지를 찾아갑니다. 자신을 이런 집에 데리고 오고 만나주지 조차 않는 아버지지만, 정학을 맞고나서 꼭 집으로 돌아옵니다. 자신을 늑골이 부러져 폐를 찌를 정도로 구타한 치에코에게 복수 하지 않습니다. 때리는 것은 그 옆에 후지시마 뿐이었어요. 토오루는 자신에게 한 번도 따뜻한 적 없었던 사람들이 아닌, 유일하게 따뜻했었던 사람만을 원망합니다.

토오루는 외로운 것이 싫었습니다. 축제에 잡은 물고기 한 마리가 죽었을 때, 남은 물고기를 방류하면서 생각하죠. 큰고기에게 먹혀 죽는 한이 있어도, 홀로 남는 것을 볼 수 없다고요. 토오루는 후지시마를 경멸하지만, 언제나 외롭고 힘들 때는 후지시마를 부릅니다. 토오루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공포는, 사실 후지시마가 아닐 지도 모릅니다.

그건 후지시마의 손길을 밀어냈던, 자신의 선택에 대한 후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날 후지시마가 자신을 계속 만지도록 했다면, 후지시마는 치에코로부터 나를 지켜줬을 지도 모른다고, 언제나 처럼 매일 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의 기모노를 입혀 축제에 데려가주는, 따뜻한 형과 함께 잠들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후회 말이예요.

아무리 살아봐도 후지시마는 오로지 후지시마였고, 토오루는 후지시마가 없으면 누구도 필요없었어요. 정말, 토오루가 만나고 사귀었던 많은 사람들 중에 진심이었던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매정하다고 토오루에게 화내는 여자친구도 없었겠죠. 토오루는 이 감정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후지시마는 자신을 배신했는데, 그 배신자에게 기대지 않으면, 고독의 덫에서 벗어 날 수 없는 불행한 삶을 받아 드릴 수 없었을 겁니다.

기억을 다시 찾은 토오루는 후지시마를 용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신과 후지시마의 정사 사진을 보고 심연 속 숨겨운 공포가 고개를 들죠. 후지시마가 어린 토오루에게 품은 욕정 때문에 시작된 후회로, 끔찍하게 고독했던 생활이 떠올랐을거예요. 후지시마가 토오루를 욕정의 대상으로 보았다는 것이, 토오루를 다시 검고 깊은 심연 속으로 끌어 내렸죠. 토오루는 또 자신이 외로워 질거라는 공포를 느끼고, 패닉에 빠져, 후지시마를 폭행합니다.

후지시마의 성기를 가위로 자르려는 장면은, 그 불행의 씨앗을 제거하고 싶은 충동적 행동이었을 거예요. 저는 성기를 가위로 자르려는 장면이나, 후지시마에게 오럴를 강요하는 장면에서, 잔인함보다는 애잔함이 느껴졌습니다. 살려고 하는, 덫에서 벗어나려고 바락하는 토오루의 절실함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요.

'6년간 토오루'와 토오루가 다른 것은 바로 그 외로움을 제대로 바라 볼 수 있는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6년간 토오루'와 토오루 모두 자신을 떠나려는 후지시마를 겪지만, '6년간 토오루'는 후지시마를 위해 케익을 만들고, 좋은 사람이 되어 주고, 거짓말을 하며 자신을 밀어내는 후지시마를 끝까지 쫒아갑니다. 토오루는 '자신이 후지시마를 거부했던 일'로 인해 후지시마에게 곁에 있어달라고 하지 못합니다. 쫒아가 잡지도 못하죠. 그 폭팔 할 것 같은 외로움은 폭력으로 표출되고, 반복되는 외로움에 할 수 있는 건 홀로 후지시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뿐입니다.

내가 심연을 바라 볼 때 심연은 역시 나를 바라보면서, 심연에 취한 나를 더 깊은 어둠 속으로 잠식 시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눈을 감지 말고, 똑바로 바라봐.'라고 간절히 외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 심연이 나일테고, 어쩌면 가장 열심히 찾고 있는 나일지도 모르죠.

여담입니다만, COLD fever 마지막 후지시마의 대사 중에 "...가지도 못해"라는 부분이 있는데, 솔찍히 좀 잉? 하면서 봤었습니다. 그 후 기회가 있으면 원서에 뭐라고 적혀있나 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계속 미뤄지던 일본행이 아예 불가능해졌네요. 뭐, 언젠간 볼 수 있겠죠. BOOK off에서 팔아만 주신다면요 ㅠ.ㅜ

마지막으로 아소우 미츠아키 콜드피버 한 장면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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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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