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MANZ'

출간일: 2021.04.08

분량: 본편 4권

point 1 책갈피

​"무섭냐?"

"뭐?"

잭슨은 아무 말 하지 않는 레비를 바라보며 어깨를 툭 쳤다. 레비가 잭슨을 쳐다보았다.

"다 그렇게 시작해. 다 무서워한다고."

"대체 뭐가 무섭다는 건지 모르겠다."

"원래 무서운 거랑 좋은 거는 종이 한 장 차이잖아. 심장이 무지 떨리는 거."

"아하. 내가 걔를 무지 좋아한다?"

"멍청아."

잭슨은 결국 성질을 부렸다. 레비는 불퉁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원래 감정에 빠지는 건 무서운 거야. 이성이 마비되니까."

"나도 알아. 그게 무섭다고 생각한 적 없어."

"발만 담그는 거 말고, 다이빙을 생각하란 말야. 잠수 같은 거."

생각만 해도 숨이 막혔다. 그런 건 싫다. 한 사람의 바다로 빠지는 것보다 많은 호수와 계속을 돌아다니는 게 더 좋다.

"사람들끼리 서로 잘해 보자는 말을 괜히 하는 줄 알아?"

"뭐."

"처음부터 손발이 맞는 경우는 없으니까 맞춰 나가는 거야, 이 바보야."

결국 욕만 옴팡지게 먹은 레비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으로 제이든을 생각했다. 조금 인정하기로 했다. 자신이 이제까지 했던 것도 사랑이 맞지만, 지금에 비하면 가벼운 건 맞는 것 같다고.

point 2 줄거리

기: NFL 우승팀, 라스베이거스 데인져, 그곳에 쿼터백 제이든 카터(제이)! 미식축구 슈퍼스타인 제이의 취미는 넷플릭스 보기다. 그런 제이는 팀원들에게 끌려 클럽을 가게 되고, 완벽한 이상형의 미인 강래희(레비)를 만난다. 예쁜 외모로 클럽에 인기인이었던 레비는, 자신에게 홀린 제이를 발견하고 룸으로 데려가 원나잇을 보낸다. 그 다음날 제이가 눈을 떴을 때 레비는 사라졌고, 그 후 첫눈에 반한 레비를 만나기 위해 제이는 매일 클럽에 찾아간다.

승: 하지만, 힘들게 만난 레비는 진지한 연애를 원하지 않았고, 제이는 원정 온 남부 마이애미와 비행기로 5시간 떨어진 서부 홈팀으로 돌아가야 했다. 물론, 제이는 레비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고, 무리하게 스케줄을 조정해 마이애미로 돌아온다. 한편, 카페 사장인 레비는 체육관 관장인 필립에게 원치 않은 대쉬를 받고 있었다. 그때 나타난 제이가 레비를 도와주고, 고마운 마음에 레비는 제이를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해 준다. 이들의 연애 없는 동거가 시작 된 것이었다!

전: 제이는 본 훈련이 시작되기 전인 4월까지, 레비와의 관계를 진전시키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무거운 만남을 극도로 기피하는 레비를 함락시키기란, 연애 고자인 제이에게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었다. 고로, 몸정만 쌓이고 맘정은 그대로인 생활이 이어지고, 어느덧 4월이 된다. 한편, 제이가 서부로 돌아 간 뒤 레비는 제이가 이제까지 만났던 사람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레비는 용기를 내서 제이가 훈련 중인 서부로 찾아가고, 두 사람의 관계는 드디어 변한다.

결: 하지만, 슈퍼스타와의 연애는 녹녹치 않았다. 파파라치에게 사진이 찍히며 레비가 콜보이라는 루머가 퍼지고, 온갖 잡것들이 레비를 괴롭힌다. 게다가 슈퍼볼까지 제이는 팀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었고, 레비 역시 카페를 비울 수 없었다. 게다가, 연애에는 초짜인 두 사람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해와 사과와 전전긍긍으로 점철된 험난한 연애사를 통해, 두 사람은 진실된 사랑을 배운다. 그리고, 마침내 제이는 레비를 터치다운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연애 참 어렵다.

'자존심은 높은데, 자존감은 낮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자존심과 자존감이 모두 높으면, 세상에 대부분에 것들을 무시할 수 있습니다. 잘난 대로 독불장군처럼 살면 되니까요. 자존심과 자존감이 모두 낮아도 세상에 대부분에 것들을 무시할 수 있습니다. 내가 너무 못났으니, 못난 대로 체념하며 살면 되니까요. 물론, 자존심은 낮고, 자존감이 높으면 제일 좋겠죠. 성공한 독지가들처럼요.

하지만, 불행히도 자존심은 높고, 자존감이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드높은 자존심을 지킬 자존감이 없어, 공격적으로 날을 세우며 방어적이 되는 고고한 겁쟁이들 말이에요. '레비, 터치다운'의 레비도 그런 사람입니다. 카페 사장님인 레비는, 눈에 띄는 미인인데다 어느 정도 사회적 위치도 유지할 수 있죠. 하지만, 슈퍼볼 슈퍼스타에 비하면, 가진 것이 없는 일반인이기도 합니다.

레비는 자신이 예쁜 걸 알았고, 클럽을 가면 누구든 쉽게 고를 수 있었지만, 역설이게도, 그 외모 때문에 진심을 얻기는 어려웠어요. 그래서, 레비는 과거 상처입은 적이 있었지만, 혼자는 외로웠어요. 그래서, '원나잇'만을 고집하며, 진지한 연애는 절대 안 하지 않습니다. 도도한 레비는, 사실 겁쟁이였죠. 그래도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제이를 만나기 전에는 말이에요.

필드에 성난 황소, 카리스마 쿼터백 제이는, 넷플릭스 애청자이자 집돌이였어요. 마이애미 원정 경기에서 최종 승리를 거머쥔 날도, 동료들의 닦달이 없었다면, 클럽 근처도 갈 일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누가 인생을 예측할 수 없는 이벤트의 연속이라 말했던가요? 제이는 그곳에서 레비를 만나고, 한눈에 반합니다. 그 뒤로는, 평소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의 연속이었죠. 보자마자 섹스하고, 뒷돈까지 줘가며 클럽에 출근 도장을 찍어요. 무엇보다, 슈퍼스타로 살아온 세월이 무색하게, 레비에게 만날 때마다 차입니다.

레비에게 한낱 해프닝에 지나지 않아야 했을, 제이와의 만남은 의외로 계속 되요. 제이는 이상적이게도, '자존심은 낮고, 자존감은 높은' 타입이었거든요. 진심을 다해 고백해도, 섹스만 좋다는 레비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해, 일정을 끼어 맞추며, 남부와 서부를 오가는 장거리 구애를 이어가죠. 미식축구 시즌에는 전화기를 붙들고 전전긍긍하며, 동료의 여자친구를 이용해서라도, 어떻게든 레비와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해요. '레비, 터치다운'은... 정말 골인점을 향해 온몸을 날리는 제이의 눈물겨운 연애성공담이에요.

물론, 이런 이야기는 제이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면, 비록 제이가 레비에게 매달리는 관계지만, 밖에서 보기엔 제이가 훨씬 잘났거든요. 제이에 집으로 들어가는 레비 사진 한 장은, 그의 일상을 엉망진창으로 만듭니다. 사람들은 레비를 예쁜 '콜 보이' 정도로 생각합니다. 슈퍼스타 제이의 개인사가 궁금했던 파파라치들은 레비의 주변에 모여들고, 포르노 비디오를 찍자며 명함을 주는 사람들도 늘었죠. 이렇게 예쁜데, 이쪽이 더 돈이 된다면서 말이에요. 게다가, 구단주는 제이를 불러 선도 보게 합니다. 그리고 그 사진은 자극적인 기사와 함께 레비를 포함한 만인에게 노출돼요.

더 좋아하는 사랑이 약자가 된다. 마음을 주면 상처 입는다. 진지할수록 이별이 힘들어진다. 이런 것들을 툴툴 털어 낼 만큼 강하지 않다.그래서 레비는 연애를 하고 싶지 않았던 거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제이가 좋아져 버렸어요. 하지만, 제이를 만나면서 변한 현실은 레비를 겁먹게 만들었죠. 내가 정말 제이와 사랑할 수 있을까? 연애할 수 있을까? 물론 이때마다 제이는 아주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한 레비가 예전처럼 돌아갈까 봐 덜덜거리죠. 설상가상, 제이는 시즌에 돌입하고, 야속하게 그의 팀은 지지도 않습니다.

연애가 이렇게 힘듭니다. 좋아하면 사귀면 되는데... 제법 높은 허들이 있어요. 이름하여, 자존심! 어찌 보면 자존감을 지키고 싶은, 처절한 궁여지책! 물론, '레비, 터치다운'에는 제이가 있죠. 맷집 좋은 남자, 제이든 카터는 돌진을 멈추지 않습니다. 거절당해도 포기하지 않고, 무시당하면 눈치 보며 다음 기회를 노리죠. 둔하고 서툴지만 빛보다 빠른 사과와 반성을 할 수 있는 이 남자! 레비를 좋아하는 일만은 타협하지 않습니다. 결국, 레비는 인정합니다. 제이가 옆에 없다는 사실을 못 견뎌하고 있는 자신을 말이에요.

사실, '레비, 터치다운'은 울보 대형견공의 재롱(?)를 보고 싶어 골랐던 책이었지만... 칠전팔기 제이에게선 달달함보다 비장함이 느껴졌어요. 또, 레비가 쾌락을 즐기고, 제이는 체력이 남아도는 운동선수이니, 씬은 처음부터 줄창 나옵니다. 하지만, 레비가 마지막에가서야 제이에게 함락 되기 때문에, 씬은 원나잇의 반복이에요. 즉, 정말 비슷합니다. 어느 정도에 가서는 스킵 할 정도로요.

그래서, '레비, 터치다운'은 재미 포인트는, 레비와 제이가 연애를 하기 위해서 극복해 내야 했던, 다사다난한 사건들이에요. 사랑이면 다 되지!라고 여기기엔, 실제로 머뭇거려지는 이유는 밖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이런 미묘, 복잡한 감정들은 디테일하고 개연성 있게 다루고 있어, 꾀 자주 끄덕이게 돼요. 중간중간 씬이 끼어들어 흐름이 끊기는 것이 거슬릴 정도로 말이죠. 또, 사건은 달라도 갈등의 패턴이 반복되다 보니, 다소 쳐지는 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찌 보면 이게 진짜 연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욕구로 시작하고, 사소한 오해로 끝나지만, 쉽게 끊어내지 못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끝내 유일한 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 그 전쟁 같은 투쟁의 역사 말입니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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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BLYNUE 블리뉴

출간일: 2021.04.14

분량: 본편 4권

point 1 책갈피

라핀은 말릴 새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눈을 커다랗게 뜨며 말을 떠듬거렸다.

"꼭지는... 설마, 씨도 먹었어요?"

"응? 응."

"그, 그건 먹는 거 아니에요! 사과씨에는 독도 들어 있다고요! 어른 뱉어요!"

라핀은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 누아의 등을 퍽퍽 때리듯 두들겼다.

도대체 꼭지랑 씨는 왜 먹은 거야? 딱딱하고 맛도 없어서 먹기 힘든 것도 있지만, 사과 씨앗에는 독성이 있었다.

독이라니. 누아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갑자기 눈물이 차올랐다. 어제는 총에 맞아서 돌아오더니, 오늘은 독에 중독돼서 죽게 생겼다니. 그를 좋아한다고 자각하자마자 왜 자꾸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지 모르겠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이와는 함께 하지 못할 운명인 걸까.

라핀은 울먹거리며 그의 등을 열심히 두드리자, 누아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한쪽 눈썹을 일그러트렸다.

"아니, 켁, 독?"

"네! 그러니까 얼른요!"

"아냐, 잠깐. 때리지 말아 봐. 씨앗 한두개 먹는 정도론 어떻게 안돼. 여태까지 아무런 문제도 없었고."

"그, 그래요?"

라핀이 목소리를 벌벌 떨며 등을 때리던 손을 멈췄다. 어디선가 사과 씨앗에는 독성이 있다고는 들었는데, 하나를 먹는 정도로는 치명적이지 않은 건가? 정말인가?

point 2 줄거리

기: 수토끼 수인 라핀는 두 성의 성기를 가지고 있다. 인간들의 실험체로 신체 개조 당한 채 방생된 라핀은 가족의 곁으로 돌아오지만, 토끼 무리는 괴물이라며 라핀을 따돌리고 끝내 버린다. 그렇게 홀로 남겨진 라핀은 검은 늑대 리더 누아와 은빛 늑대 리더 블란에게 사냥 당한다. 누아와 블린은 라핀이 자신의 먹잇감이라며 다투지만, 결국 라핀은 누아의 것이 된다. 토끼 고기를 좋아하는 누아는 라핀을 먹는 대신 암토끼를 잡아와 토끼 농장(?)을 만들 계획을 세운다.

승: 얼떨결에 늑대 굴에 살게 된 라핀은 신체의 비밀을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오히려 블린의 호기심을 자극해 비밀을 들키고 강간 당한다. 반면, 라핀과 뜨밤을 보낸 블린은 라핀이 제 짝이라고 확신하고, 누아에게서 라핀을 빼앗을 계획을 세운다. 블린은 라핀의 비밀을 빌미로 라핀에게 성관계를 계속 강요하고, 누아에게 말도 못 하고 블린에게 시달린 라핀은 시름시름 앓는다. 그러던 어느 날, 술을 마신 누아는 우연히 라핀의 비밀을 알게 되고, 누아를 강간한다.

전: 블린은 라핀이 점점 더 좋아졌고, 누아 역시 라핀에게 집착하게 된다. 그래서, 누아는 사냥 때마다 라핀을 데리고 다니고, 그런 누아에게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라핀을 싫어하는 검은 늑대들이 생긴다. 한편, 블린과 누아의 마음과 다르게, 틈만 나면 달려드는 늑대들로 라핀의 몸은 고통받는다. 그러다 블린과 누아가 함께 덤벼(?) 드는 사태까지 터지자, 라핀은 탈출을 결심한다. 그리고, 두 늑대 수장이 조상에게 의식을 치르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도망친다.

결: 두 늑대 중 누아가 먼저 라핀을 찾는다. 그리고, 라핀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누아는 라핀을 별장에 숨긴다. 누아는 무리로 돌아가 몬드에게 리더 자리를 물려준다. 누아는 라핀의 반려로서, 라핀이 블린의 아이를 낳는다고 하더라고 함께 키우려 한다. 라핀은 자신을 자상하고 헌신에게 돌보는 누아를 좋아하게 된다. 한편, 라핀은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하고, 누아도 방법을 찾아주지만, 결국은 아이를 낳는다. 라핀은 블린의 구애를 거절하고, 누아와 가족을 만든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좀... 애매합니다.

망태기님의 '욕망 형제' Review에서 언급한 적 있지만, 하드코어는 피폐물이나 초고수위랑은 카테고리가 좀 다릅니다.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드코어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면, 하드코어로 분류되는 듯합니다. 그 요소들이 특수한 선호를 반영하다 보니, 지뢰가 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는 반면, 키워드로 예상한 기대치와 실제가 일치할 확률이 높다는 장점도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런, 래빗, 런!'은 예상과 실제가 달랐어요. 하드코어 요소가 참 많이 들어가 있는데, 늑대의 순애보와 토끼의 귀여움이 메인이고, 다크 다크하고 자극적 분위기는 그다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노선이 애매합니다. 개인적으로 하드코어물은 전개 개연성에 대한 기대치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생각해요. 왜 공과 수가 이렇게 비정상적이고, 현실적으로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며, 어떤 인과로 이런 사태까지 이르게 되는지, 잘 따지지 않죠. 하드코어물 자체가 비일상적 소재이기 때문에 이해 가능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런, 래빗, 런!'은... 경계선 어드메 있는 것 같아요.

초반에는 두 늑대들이 선사하는 빻빻한 피폐물, 후반에는 토끼와 늑대의 알콩달콩 동거기를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 같은데... 일단, 처음부터 늑대들은 토끼에게 가장 상냥한 존재들입니다. 인간들의 실험체로 괴물 같은 몸을 가지게 된 라핀은, 동료들의 냉대와 차별 속에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그들은 말도 없이 라핀을 남겨두고 모두 떠나버리죠. 홀로된 라핀은 차가운 토끼굴에서, 근근이 살아갑니다.

그러다 늑대 동굴로 갑니다. 끌려간 라핀은, 따뜻함 물에 씻고 상처 치료를 받아요. 편안하고 큰 침대에서, 라핀은 누아에게 꼭 안겨 잡니다. 누아는 본인이 먹지도 않는 토끼 먹이를 방에 가득 쌓아두고, 라핀이 먹고 싶다면 인가까지 내려가 당근과 사과를 훔쳐 오죠. 블린과 누아는 서로 라핀을 미루는 것이 아니라 데리고 가려고 신경전을 벌여요. 비록, 신분은 '먹잇감'이었을지언정, 관심과 안락함이 있는 환경인 셈이죠.

물론, 이 덩치 큰 늑대들이 작고 작은 토끼를 매우 괴롭히지만, 배덕함이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늑대들이 일편단심, 평화주의자이기 때문이죠. 모럴리스하기엔, 매우 모럴한 캐릭터예요.

늑대는 유일한 짝만을 만들고 블린은 라핀이 바로 그 짝이라고 확신해요. 하지만, 라핀을 누아의 방에 있도록 내버려 두고, 누아가 없을 때만 누아의 방으로 가 라핀을 만납니다. 누아 역시, 자신 소유인 라핀을 블린이 계속 건드리는 것을 알고도, 싸우지 않고 피해요. 그냥, 블린과 라핀이 마주치지 않도록, 데리고 사냥하죠. 블린은 라핀이 누아를 좋아한다고 말하자, 깔끔하게 라핀을 포기하기도 하죠. 그저, 처연하게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한 발 뒤에서 바라만 봅니다.

동맹을 지키려는, 두 리더의 노력인가? 보기엔, 이 리더들... 별로 리더십이 없어요. 라핀이 도망친 뒤 블린은 라핀은 제 짝이라고 말하며, 무리도 내팽개치고 계속 라핀을 찾지만, 실패합니다. 그나마, 누아가 혼란을 염려해 리더 후계자를 세우긴 하는데, 그 큰 결심의 계기가 좀.. 늑대무리에게서든, 블린에게서든, 라핀을 보호하려는 노력도 다소 어설프고요. 전체적으로 설득력이 좀 떨어집니다.

라핀은 '먹잇감'으로 잡혔을 때도 결박 당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도망친 라핀이 다시 누아에게 잡혔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단지, 누아가 라핀을 '혼자' 두고 잠시 별장을 비웠을 때, 팔을 천 조각으로 묶긴 합니다. 물론, 다리는 자유이고, 결박도 어딘가에 고정을 해 놓은 것은 아니라 무슨 의미인가 싶긴했어요. 그래서인지 누아도 돌아와, 라핀을 찾아 별장을 헤매죠. 도망수는 있는데, 감금은 없는 이 느낌...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런, 래빗, 런!'의 재미 포인트는, 라핀, 누아, 블린의 달달한 삼각관계예요. 정에 굶주린, 마음 여린 토끼가 매우 귀엽습니다. 하드코어물인데도, 이들의 몸정 스토리보다 맘정 스토리가 훨씬 예쁘게 잘 쓰여 있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양성구유'라는 것이 호불호가 갈리는 소재다 보니, 달달한 수인물로서 보기엔 좀 강력한 지뢰 요소가 있습니다. 차라리, 피폐를 빼고 L이 있는 다정한 다공일수 하드코어물로 가거나, 하드코어 요소를 빼고 달달한 인외존재 구원물로 갔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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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1 책갈피

 

 

최정은 자신이 언제부터 이렇게 긍정적이었나 생각했는데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박태서를 만나고부터였고, 긍정적인 건 박태서와 관련된 일뿐이었다. 예를 들어 영상 통화하며 밥을 먹자는 말도 다른 사람에겐 평생 못 할,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말이다.

 

태서는 사람을 편하게 해준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언제나 이런 사람이 필요했다.

 

내게 관심을 갖고, 걱정을 아끼지 않는 사람.

 

'백태서가 날 길들였어.'

 

불안해야 할까. 이렇게 길들이고 떠나 버리면 전보다 더 크게 외로워질 테니까.

 

하지만 불안하기보다는 홀가분히 미소 지었다. 이 순간만을 즐기고 싶었다. 살면서 별로 느껴 본 적 없는 행복한 시간이니까.

 

 

 

point 2 줄거리

 

 

기: 20살 박태서는 악인 그 자체였다. 마약을 비롯한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다녔다. 하지만, 그는 세계 굴지의 대기업 고성의 막내아들이었고, 수려한 외모를 지녔으며, 부모와 형제들에게 절대적 애정을 받고 있었다. 고로, 그의 악행은 모두 무마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태서는 음주운전 후 할머니를 치고, 이에 태서의 부모들은 '힘겹게' 태서의 카드 정지를 결정한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용서문을 받아오지 않으면 카드 정지를 풀어주지 않겠다고 한다.

 

승: 할머니는 자살한 최정의 셋방을 정리해 주면 용서문을 써주겠다고 하고, 태서는 바로 업체를 부른다. 작고 낡은 방엔 최정의 유서와 소소한 그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문득 호기심이 든 태서는 최정의 pc를 가져오고, 최정이 요리 레시피 카페에 올린 게시글을 보게 된다. 그렇게 알게 된 최정은 태서와 동갑인 고아였고, 제대로 배우지 못해 맞춤법도 다 틀리며, 바보같이 사기나 당하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당차고 성실하며, 수다스럽고 사랑스러웠다.

 

전: 태서는 재력을 쏟아부어 최정을 찾지만, 속초를 마지막으로 그의 자취는 끊겨 버렸다. 하지만, 태서는 최정을 만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그가 기뻐할 만한 것들을 준비하고, 부끄럽지 않도록 좋은 사람이 되려 한다. 가족과 친구들은 그런 태서의 변화를 반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최정의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었고, 태서는 나날이 최정을 그리며 우울증에 빠진다. 그렇게 먹지 못하고, 슬픔에 침식돼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실종 5년, 최정은 법적으로 죽은 사람이 된다.

 

결: 태서는 최정을 따라 죽기 위해, 속초 바다로 뛰어든다. 그 순간 태서는 기적을 만난다. 최정이 태서를 구한 것이다. 최정은 그동안 속초에서, 자신을 구해준 부부에게 갈취당하는 줄도 모른 채 착취 당하며 살고 있었다. 언뜻 행복해 보이나, 최정은 여전히 외로웠다. 그러다 은인의 추한 민낯을 보게 된 최정은, 태서와 함께 서울로 온다. 그곳엔 태서가 공들여 만든, 최정만을 위한 세상이 있었다. 물론, 잠시의 위기는 있었으나, 두 사람은 결국 완벽한 행복을 찾는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악인에게 가장 행복한 세상, 선인에게 가장 불행한 세상

 

 

미지의 절대자가 세상을 운영할 때, 좋은 사람에게 좋은 삶을, 못된 사람에게 나쁜 삶을 매칭 시켜 주면 좋을 텐데... 그전에 절대자가 선의를 가진 합리적 존재라면, '못된 사람'과 '나쁜 삶' 자체가 없겠죠. 인간이 괴로운 건 인간 탓이라고 발 빼서 그런가요. 뭐.. 어쨌든, 저는 원죄도 기적도 운명도 천국도 윤회도 믿지 않습니다. 그저, 이 세상은,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에 의해, 좌충우돌 굴러가고 있을 뿐... 그리하야, 세상은 요지경이죠.

 

'만약 널 만난다면'의 세상도 요지경입니다. 악인은 행복하고, 선인은 불행하죠. 모든 걸 가진 악인은, 살면 살수록 더 가지고, 빈손으로 태어난 선인은, 살면 살수록 간신히 가진 그 '조금'조차 가차 없이 빼앗깁니다. 악인은 사람을 이용하고, 선인은 사람에게 이용당해요. 그러다 요지경의 요지경이 발생합니다. 바로 그 악인이 본 적도 없는 그 선인에게 속절없이 빠져들어요.

 

태서의 세상은 완벽합니다. 넘치는 돈, 자신과 닮은 친구들, 천사 부모님과 다툼 없는 형제들, 거기다 조각 같은 외모까지! 넘치는 돈은 태서에게 편하고 호의적인 세상을 주었고, 자신과 닮은 친구들 때문에 막 나가는 삶을 살아도 태서는 외롭지 않았어요. 부모님은 넘치는 애정으로 태서가 친 사고를 모두 수습해 주었고, 막내가 귀엽기만 한 형제들은 뭘 해도 우쭈쭈였어요. 대가는 없고, 무한한 혜택만 있는 삶인 셈이죠.

 

반대로 최정의 세상은 무한 대가를 치름에도, 혜택은 전혀 없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어요. 고아인 최정은 시설에서 나오자마자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 밤낮없이 일합니다. 학교도 못 다니고, 놀러 다닐 시간도 없는 최정은 언제나 혼자였어요. 그리고, 그나마 그렇게 일해 번 돈조차, 믿었던 형에게 배신 당해 뺏기죠. 최정은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지만, 나이지는 건 없었어요. 그런 최정의 유일한 위안처는 요리 레시피 카페였죠.

 

하지만, 그 조차 녹녹하진 않았어요. 처음에 카페 회원들은 수다스럽게 일상을 올리는 최정을 귀여워합니다. 엄마는 왜 입양이 안되냐는 글에 위로해 주고, 추위에 떨면서도 성실하게 돈 버는 모습을 기특해하며, 때때로 기프트콘도 보내 줍니다. 그러나 분위기는 서서히 변합니다. 맞춤법을 고의로 틀리는 관종이다, 괜히 카페 분위기 어둡게 무거운 이야기만 쓴다면서, 점점 최정의 글에 늘어가는 죽음의 메시지를 알아채지 못하죠. 결국, 최정은 그 유일한 동아줄마저 놓아버립니다.

 

최정이 삶을 포기하고 난 뒤, 우연히 태서는 최정의 그 글들을 보게 돼요. 그리고 태서는 최정이 입고 싶었던 롱패딩, 먹고 놀랐던 마카롱, 부럽기만 했던 벌꿀 인형, 그런 하찮은 것들조차 가지지 못한 최정을 안타까워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태서의 일상 속에 최정은 서서히 물들어 갑니다. 태서는 자주 최정을 떠올렸고, 최정이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하게 됐어요. 최정의 유서를 보고, 그의 방을 정리까지 했지만, 태서는 어느덧 가상의 최정과 함께 살고 있었죠.

 

뒤틀리기 시작한 태서의 일상은 호재처럼 보였어요. 태서는 최정이 그토록 원하지만 가지지 못한 가족과 친구들에게 친절해집니다. 최정이 자신을 형편없게 보는 것이 두려워, 과거의 잘못을 만회하려고 노력하죠. 그래서 소망 재단 이사가 되어 선행을 베풀며, 사고도 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최정이 없다는 거였어요. 비록 시체가 없어 실종 상태였지만, 넘치는 재력을 쏟아부어도 도저히 최정은 찾을 수 없었고, 끝내 법원마저 최정의 사망을 선고합니다.

 

태서는 살려고 발버둥 칩니다. 최정의 콜센터 통화 파일을 구해 AI 음성도 만들고, 최정과의 합성 사진은 물론 DNA 모형까지 제작해요. 그렇게나마 최정의 존재를 메꾸려고요. 어쩌면 최정이 인어가 되었거나 아틀란타스에 갔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며, 사후세계와 오컬트에 관한 책들도 읽죠. 더불어 우울증 치료도 꾸준히 받아요. 하지만, 최정이라는 구멍은 태서의 마음속에서 커지기만 합니다. 태서는 외로워졌고, 그 외로움은 죽음으로 이르는 병이었어요. 최정이 그러했듯 말이죠.

 

최정의 죽음 후 태서의 사랑은 시작됐듯, 태서의 죽음 후 최정의 행복은 발동을 겁니다. 태서는 자살하러 간 속초에서 살아있는 최정을 만나요. 그리고 태서를 비롯한 그의 가족과 친구들은 최정을 포획(?)하기 위한 필사의 전략을 펼칩니다. 처음 태서는 최정이 행복해졌다고 생각하고, 함께 속초에 살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참으로 가관이었죠. 최정은 여전히 잘 먹지 못했어요. 휴일은 한 달에 단 하루뿐이었고, 비정상적 저임금에, 그나마 그 돈조차 오롯이 최정의 것이 아니었어요. 무수한 무임 노동에 머슴처럼 부려지기도 했고요.

 

서울이 최정을 외롭게 만든 사람들의 도시였다면, 속초는 최정의 외로움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죠. 최정의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어요. 어찌 보면 '기만' 당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나빠졌죠. 태서는 최악의 끝에서 다시 최악으로 빠진 최정을 구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최정에게 가장 완벽하게 준비된 행복을 주려해요. 최정이 가장 행복한 세상이, 태서에게도 가장 완벽한 세상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실제로, 진실로, 그 세상은 '완벽'했어요.

 

소림님 작품이 늘 그러하듯, '만약 널 만난다면' 역시 엉뚱 발랄 캐릭터와 유쾌한 서사, 통통 튀는 사건들로 웃으며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묵직하게 가슴 한편을 누르는 '현실 비틀어보기'도 있습니다. 다만, 최정이 태서의 오랜 스토킹에 대해서 알게 되는 부분이, 다소 잉?스럽게 마무리되어 허무했어요. <완결>를 보고 냉수 먹고 띵한 기분이었죠. 그리고, 외전에서 태서에게 완전히 정착한 최정의 일상은 므흣했지만, 결혼까지 가지 못한 점은 아쉬웠어요.

 

북적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위로가 늘 외로움을 덜어주는 것은 아닌 듯해요. 얼마나 '나'를 알고 싶어 하는가? 이해하려고 하는가? 이것을 가능케 하는 진실로 순수한 '관심'... 그것이 그토록 어렵고 희귀해 사람은 외롭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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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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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모드

출간일: 2020.07.15

분량: 본편 5권 +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생일 축하한다, 명하야."

"네?"

"하순이잖니. 그러니 네 생일이라고 하자."

"오늘을요?"

"오늘을."

명하는 실낱과 사훤을 번갈아 보다가 천천히 입을 벌렸다.

"저한테 생일이 있다고요?"

"내가 정해준 거라도 괜찮다면."

"너무 좋아요! 네! 좋아요, 저하!"

좋아서 명하가 사훤을 부르는 호칭이 또 멋대로 바뀌었다. 사훤은 명하가 기뻐하는 것이 가슴이 저미도록 좋았다. 고작 날짜를 정한 것 하나로 좋을까. 그럼 안 되는데. 오늘은 비록 준비가 부족했지만 다음부터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건데.

"다음 달 하순에도 네 생일이 있을 거야."

"생일은 한 번이죠, 저하."

"나한테는 매달 네 생일이 있는데."

시훤이 명하를 감싸 안으려 함께 옆으로 쓰러졌다. 그것으로도 부족해 실로 묶은 손을 단단히 잡았다.

"나는 모든 하순을 좋아할 거다. 모든 하순에 네가 태어난 걸 기억하며 살 거야. 그러면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어도 다시 행복해지겠지. 나는 슬프고 불행할 틈이 없을 거야. 네 덕에."

명하는 주변을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던 순간부터 아무도 자신이 태어난 걸 기뻐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강 진사는 사훤에게 살아있는 살로써 보낼 용도를 떠올리다가 명하의 존재를 기억했다. 죽어야만 의미가 있는 존재였다.

그런 명하가, 명하의 태어남이 사훤에게는 불행하지 않을 이유란다. 가슴이 설렁설렁 부풀었다. 연이 되어 하늘 높이 날 수 있을 것 같다.

point 2 줄거리

기: 강 진사의 서자로 태어난 명하는,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한 채 선산 무덤지기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강진사는, 명하에게 아들로 인정해 주겠다며 심부름을 시키고, 동생 청하를 아꼈던 명하는 가족이 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수락하지만, 곧 우수꽝스러운 여장을 당한 채 사지로 던져졌음을 깨닫는다. 명하는 절망하며 죽음을 각오한다. 그때 나타난 사훤은 명하를 풀어주며 다정하게 대해준다. 명하는 좌의정의 계략으로 대군저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승: 사훤은 좌의정의 살을 맞아 귀문이 반쯤 열렸고, 밤이 되면 광인이 되어 괴행을 일으켰다. 처음이자 유일하게 상량함을 보여준 사훤이었기에, 명하는 사훤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밤이면 정염에 젓어 명하를 찾는 사훤에게 몸을 내어주었고, 자신이 사훤의 귀문을 완전히 열기 위한 아기살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살을 뒤집어 사훤의 귀문을 대신 받기로 한다. 그렇게, 명하는 죽음을 선택한다.

전: 명하와의 밤을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사훤은 순리처럼 명화를 사랑하게 된다. 사훤은 건강해지고, 명하는 병들어갔다. 결국 진실을 안 사훤은 괴로워하지만, 위태로움 속에서도 두 사람의 마음은 깊어만 졌다. 한편, 병약해진 왕은 동생 사훤에게 보위를 부탁하고, 사훤은 왕세제로 책봉된다. 동시에 사훤이 책봉식으로 대군저를 비운 사이, 명하는 좌의정에 모략에 의해 대군저를 나와 붙잡혀 갇히고, 불타는 집에서 강진사를 뿌리친 채 간신히 도망친다.

결: 사훤은 무사히 왕이 된다. 그리고, 명하를 찾지 못한 지옥 같은 시간을 가까스로 견디고 있었다. 한편,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예감한 명하는, 마지막으로 사훤을 위해 좌의정과 모반을 공모했다며 스스로를 관에 고발한다. 때마침 사훤의 호위 영욱이 명하를 찾지만, 이미 명하는 삼도천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때, 늙은 산파로 둔갑한 가믄장아기의 도움으로 명하는 아들 이강과 자신의 명줄을 붙잡는다. 살아난 명하는 사훤의 곁붙이가 되어 살아간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내 곁붙이

대부분 동양풍 BL은 가상의 국가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세계관은 중국 명청시대를 토대로 할 때가 많습니다. 그 때의 관직명이나 복식, 소품들이 차용되곤 하죠. 간간이 원을 배경으로 할 때도 있지만, 주로 이민족과 맞닿은 변방으로 친정도 가야하고, 제후국과 긴장관계도 필요하다 보니, 아무래도 제약이 많죠. 그래서, 중국 배경의 동양품 BL은 스케일이 큰 대신 디테일이 부족하고, 전형성이 강해 뻔한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그런 이유로, 한국 배경의, 특히나 민속 신앙이나 설화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이 느는 추세가 매우 신납니다. 알게 모르게 자주 접해 왔고, 싫으나 좋으나 배울 수밖에 없었기에, 확실히 구성이 더 탄탄하고 어색함이 적죠. 소재도 신선하고, 클리셰를 벗어난 전개의 자유도도 높습니다. 그래서인지, 한국풍 동양 판타지 BL에서 심심치 않게 명작 타는 냄새를 맞곤 해요. 완결 난 작품으로는 '저승꽃감관,' 미완결 작품으로는 '혼불'이나 '단밤술래' 등등이 있죠.

'열병'도 그중 한 작품입니다. 물론, '열병'이 설정에 몰빵한 작품이라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열병'의 포인트는 공수의 '애절함'이에요.

명하는 강진사댁 서자로 태어나지만, 명하 생모의 저주로 대과에 합격 못했다는 찌질한 생부로 인해, 사람 취급조차 받지 못합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종인 줄 알았다면 덜 비참하거나 도망치기라고 했을 텐데, 명하에게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친애하는 동생 청하가 있었어요. 청하를 보기 위해, 곁에 있기 위해, 멍석말이 당하고, 종놈에서 괄시당하고, 배곯는 외로운 무덤지기로 선산에 버려져도, 꿋꿋이 버텨냅니다.

그날도, 청하에게 줄 다람쥐를 잡아 밥을 구걸하러 강진사 집에 가요. 그런 명하를 불러, 강진사는 문중에 이름을 올려주겠다며 심부름을 시킵니다. 명하는 양반이 되는 것보다 청하의 형이 될 수 있다는 희망에, 무조건 하겠다고 해요. 하지만, 곧 강진사는 애당초 자신을 아들로 인정해 줄 생각은 없었고, 자신은 죽으러 가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아요.

그런 명하에게 사훤은 처음이자 마지막이고 유일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어요. 자신이 추울까, 배고플까 물어주고 챙겨주는 이도, 다정하게 말 걸어주고 웃어주고, 글을 알려주는 이도, 오로지 사훤 하나였죠. 그래서, 명하에게 사훤을 위해 죽고 병드는 것은 전혀 힘든 선택이 아니었어요. 어차피, 가치도 없이 버려진 목숨, 사훤을 위해 쓸 수 있다면, 오히려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라면, 기쁜 일이라고 말이에요.

명하가 간과한 것은, 사훤의 마음이었어요. 명하는 자신처럼 하찮은 존재를 고귀한 사훤이 좋아할 리 없다고 단정하죠. 사휜의 애정은 살에 휘말린 일시적인 착각일 거라고 말이에요. 자신의 마음은 거짓 일 수 없는 진심이라고 믿으면서, 자신이 죽어도 사훤은 왕으로서 반려를 맞아 행복하게 살아갈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명하는 너무 쉽게 비밀을 만들고, 도망치고, 죽기로 결심해요. 사훤이, 그저 명하의 생사를 확인할 때까지, 고통뿐인 생의 시간을 잠시 유예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해요.

'열병'은 폐지된 소격서 무당과 도사가 살을 날리고, 인외존재들이 조연으로 등장하며, 명계의 신들이 위기를 반전시켜요. 오메가버스가 아님에도 명하가 임신을 하고, 원자를 낳은 남자 중전을 궁인들과 신료들은 결국 받아들이죠. 저는 조선 초를 떠올리며 읽었는데, 솔직히 세계관을 넘기더라도 감상에 크게 지장은 없습니다. 정쟁이나 갈등이 촘촘하고 밀도 있게 짜여 있다기보다는, 사훤과 명하의 애절한 사랑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거든요.

그래서, 10년을 넘겨 끌어온 좌의정과의 갈등 해결은 의외로 쉽게 풀리고, 임금이 된 후에는 모든 것이 일사천리에요. 사훤의 뜻대로 모두 진행됩니다. 반면에, 생과 사의 경계에서 돌아오는 명하의 여정이나, 사훤과 명하가 함께 있는 일상과 감회에 관해서는 깊이 있고 세밀하게 다루고 있어요. 문맹의 무덤지기는 사랑을 지키는데 단호하고 헌신적이었고, 왕의 자질과 운명을 타고난 대군은 사랑 앞에서 초조하고 위태로웠죠.

사훤의 그림자에 묶여 명하는 살아납니다. 하지만, 선산을 뛰어다니면서도 감기 한 번 안 걸렸던, 건강하고 윤기나던 명하는 더 이상 없어요. 사훤 대신 밤이면 악몽에 시달리고, 수시로 열이 나고 길게 잠들며 수척해졌죠. 그럼에도 두 사람은 분명 행복합니다. 명하는 더 이상 내리는 눈을 맞으며 하루 종일 비질을 할 순 없지만, 이불에 꽁꽁 쌓여 사훤에게 안긴 채로 눈 구경을 합니다. 다정을 나누고, 짓궃은 농담에 삐지면서도, 결국은 하루도 떨어질 수 없는 내 곁붙이가 되어서 말이에요.

짧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정신없이 읽었어요. 소조금님의 문체와 내용이 잘 어우러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새벽에 읽으려면 각오가 필요해요. 감수성의 바다에, 심해어가 될 수 있습니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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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W-Beast

출간일: 2021.04.26

분량: 본편 1권

 

point 1 책갈피

"신경 쓰여?"

이런 내 모습이 좋아 죽겠다는 듯이 얄밉게도 웃는다.

"막, 나 보면 당황하고 긴장되고 평소랑 달라서 죽겠고, 티 내면 쪽팔리니까 숨기고 싶은데, 그럴수록 더 부자연스럽고 그렇지?"

술술 쏟어지는 그의 정답 퍼레이드에 반쯤 포기했다.

"넌 왜 그렇게 잘 알아?"

"다 겪었던 거니까."

새삼 나를 아주 오랫동안 좋아했다는 게 와닿았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친구로 그의 곁에 붙어 있는 동안, 정수범은 무슨 생각으로 고통을 참아낸 걸까.

"뭐, 나도 포기해보려 했고, 너랑 똑같은 온도로 대하려고 죽어라 노력해 봤는데."

스윽.

손을 뻗어 내 볼을 잡는다. 정수범의 손가락은 차가웠다. 아니면 내 볼이 비정상적으로 뜨겁거나.

"안 되겠더라고. 아무리 해도 안 돼. 안되는 걸 매달려도 소용없어. 그래서 결심했지. 나 혼자서는 끝낼 수 없으니까 어디 끝까지 가보겠다고."

볼에 닿은 손이 내려와 테이블 밑에 있던 내 손을 꽉 잡았다.

"너도 끝까지 가. 가보고 나서 안 되겠으면 말해. 근데."

그 꽉 잡은 손가락이 깍지를 얽으면서 빈틈없이 맞물렸다. 정수범은 깍지를 낀 손을 들어 올렸다.

"너한테 도망칠 구멍 주는 그런 어설픈 새끼 아니다, 나는."

쪽.

맞잡은 내 손등 면에 입을 맞춘다.

point 2 줄거리

기: 모범생 이차준에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알친구가 있다. 어머니들 배 속에서부터 이미 소꿉친구의 운명을 타고났다고 하지만, 정수범은 초중고 내내 이차준의 그림자였고, 좋아하는 여자에게 거절당한 이유도 모두 정수범이었다. 이차준은 공부머리라곤 조금도 없는 정수범이 절대 올 수 없는 명문대로 도피하려 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정수범은 체육 특기생으로 먼저 그 학교에 수시 합격한다. 이런 이차준과 정수범의 관계는 수능 직후 급변을 겪는데...

승: 정수범은 야동을 본 적 없는 이차준을 집으로 불러 야동을 보여주다가, 갑자기 가슴을 만지기 시작한다. 놀란 이차준은 그날 이후 정수범을 피하지만, 오히려 정수범은 태연하게 굴며 차준의 집으로 와 강의를 핑계로 더 대담한 짓거리를 한다. 차준은 그날 이후 면접을 핑계로 정수범을 또 피한다. 하지만, 이미 부모가 절친인 관계! 둘은 안 만날 수 없었다. 결국, 차준은 얼떨결에 12월 31일 수범과 약속을 잡고 만다.

전: 차준은 꾀병으로 약속을 피해보려 하지만 실패하고, 수범이 알바해서 사 준 명품 옷을 입고, 수범과 맛집에서 식사 한 후, 수범이 예약한 호텔에서 술을 마신다. 수범은 차준에게 고백하고, 차준은 술에 취해 수범에게 2번째 강의를 해달라고 유혹한다. 두 사람은 뜨밤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며 연인이 된다. 차준마저 대학에 합격하면서 두 사람의 동거는 시작된다. 바야흐로, 열혈 CC의 탄생이 되시겠다.

결: 차준은 공부 이외에 뭐든 잘하는, 잘생기고 몸 좋고 인기 있는 수범을 보며 불안해 한다. 동시에 차준은 수범과의 섹스에 빠져들며, 점점 수범에 대한 애정도 깊어져갔다. 반면, 수범은 어려서부터 차준과 결혼하기로 결심했고, 중간중간 시련과 혼란은 있었지만, 차준을 가지기 위해서 치밀하게 계획하고 노력해왔다. 고로, 이미 차준과의 미래 설계까지 끝내 놓은 수범에게 그런 차준의 걱정은 그저 불 쏘시게 일 뿐! 두 사람은 염병첨병 연애를 계속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맑고 밝고 유쾌한

'달콤하게 적셔줄게'는 망태기님의 기존 작품에서 연상되는 하드코어, 고수위, 다공일수와 결이 다른 작품입니다. 또, 기존작들 역시 사랑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정신적 애정보다는 몸정이, 짝사랑과 일편단심이라는 소재에서도 욕망 우선했다는 점에서, 확실히 양상이 다릅니다. 그래서, 망태기님의 '시그니처'를 기대한 독자라면, 호불호가 나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망태기님 특유에 색스러움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수범은 수능이 끝남과 동시에, 차준과 친구 이상의 관계를 시도합니다. 백지와 같은 순수 영혼인 차준이 도망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대학 입학 전까지 승부를 봐야 하는 상황이었죠. 풋풋과 상큼 발랄의 대명사 학원물에서, 이런 경우 아가들은 입맞춤을 하지만... 망태기님은 가슴을 먼저 길들입니다.

또, 모럴리스한 강수는 없지만, 몸정으로 신세계를 연 유혹수는 있습니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수범은 호텔을 예약하고 차준에게 섹스하겠다며 엄포도 놓지만, 쉽게 건드리지 못해요. 차일 수도 있다고, 싫으면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런 마음으로 문신도 하고, 실제로 그렇게 말도 해요.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관계를 진전 시킨 건 차준이었어요. 차준은 수범이 준 쾌락을 떠올렸고, 수범이 아닌 사람과 이런 일을 하고 싶지 않았죠. 결국, 수범뿐이라는 결론에 이른 차준은 오히려 멈짓하는 수범을 유혹합니다.

이후로도, 수범은 매일 아침 차준의 이불 속에 들어가 차준의 가슴에 집착하면서도, 과제도 시험도 많은 차준을 걱정하고 배려합니다. 애달프고 끼를 부리는 건 또 차준! 수범은 확실한 계략공이지만, 결국 질투든 섹스든 둘 사이에 트리거를 당기는 건 쾌락에 약한 수인셈이죠. 그런 면에서 망태기님 답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체적으로 기존의 작품들이 퇴폐적 분위기가 강했다면, '달콤하게 적셔줄게'는 맑고 밝고 유쾌해요. 짝사랑, 첫사랑, 첫 연애, CC 커플에서 연상 가능한, 의욕과 체력과 호기심이 넘치는 소꿉친구의 연애담입니다. 정상적이고, 일반적이고, 오히려 서로가 너무 잘난 애인이랑 둬서 불안하고, 서로를 추켜세워주기 바쁜 귀여운 커플들이죠. 수시점의 서사가 재치 있고, 공이 입버릇처럼 욕은 하지만 의외로 더티 토크는 많지 않습니다.

학점, 군대, 취업, 결혼... 이런 문제를 고민하고 계획하는 모습이 매우 상식적입니다. 웃으며 므흣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지만... 글쎄요... 이 남모를 아쉬움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장난감에 호기심을 느끼고, 잘난 서로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는 장면에서, 고 아슬아슬한 선을 넘어 집착광공과 방만한 유혹수가 되길 예상했기 때문이겠죠. 끝까지 맑고 밝고 유쾌한 커플들에게, 못난 어른이라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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