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시크노블
출간일: 2017.12.15
분량: 본편 4권
point 1 책갈피
"...느는 그 섬서 암것도 아니었다. 적해도 섬노, 입 구멍 아랫도리 돌려쓰는 노예, 돈 몇천 원 받고 죽어라 일해서 몇십억 벌어다 주는 머저리 새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
"애인은 왜 시킸냐고? 느 구멍 내만 쓸라고 시킸다. 줘 패 놓고 로션은 왜 사다 주고 기름은 왜 사다 줬느냐 물었시? 구멍 쓰는 맛 안 떨어지게 관리하라고 줬다."
"......"
"느가 백날 일 다니던 양고미 밭 바로 앞 절벽, 느 애미 시체 거 있다. ... 즈는 지 애미 뼈가 코앞에 있는지 코밑에 있는지도 모르는 등신 새끼였시. 애미 보는 앞에서 구멍 따이고 애미 머리 위에서 궐련이나 피워 대는 머저리를 뉘 사람 취급 해 주간? 사람으로 안 보여 밉도 않았다."
철썩! 장우가 맞을 멎음과 동시에 이매의 손이 휘둘러졌다. 빛이 있음에도 어둠기만 하던 상자에 날카롭게 울린 소리에 다가오던 구두 소리가 우뚝 멎었다. 장우 뒤에 두 사람은 눈이 휘둥그레져 입을 크게 벌렸다.
불편하다 못해 섬뜩한 정적이 흘렀다. 돌아간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굳어 버린 장우가 거친 숨을 내쉬는 소리, 벌겋게 핏발 선 눈으로 장우를 노려보는 이매의 악문 이가 갈리는 소리가 짤막짤막하게 정적을 깨트렸다.
"...똑치 사람 배에서 사람으로 났긴데 왜 섬노만 사람 아닌데요."
point 2 줄거리
기: 험한 바닷길을 지나야 닿을 수 있는 오지 섬 적해도, 40명이 채 되지 않은 주민들이 대마를 제배하고 있다. 마약상 기현오와 남정태는 마약 '작업'을 위해 적해도로 들어가고, 돈이 두둑한 '객'을 이장은 받아들인다. 이장은 심부름꾼 이매를 시켜 객들의 식사와 잡일을 수발들게 했다. 기현오는 이매를 눈여겨보고, 곧 그가 대마 재배와 제조에 재주가 남다르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의 이상스러운 행동의 이유도 알게 된다. 그는 섬노였던 것이다.
승: 적해도의 섬노는 인간이 아니다. 앓다 말라죽을 때까지 섬 주민들에게 아랫도리 시중을 들어야 하는 여자 섬노는 제대로 걷지도 못했고, 남자 섬노는 굻어 죽거나 맞아 죽을 때까지 일하며 조리돌림 당해야 했다. 이매를 포함한 섬노는 3명, 그들의 삶은 시궁창이었다. 기현오는 그런 이매를 보며 분노를 느끼기 시작하고, 그 섬을 '정리'하려 한다. 기현오는 섬주민들을 헤로인에 중독시키고, 살인, 병화, 인신매매를 서슴지 않으며 섬을 장악하고 섬노들을 탈출시킨다.
전: 그 과정에서 이매의 출생 비화를 듣지만, 차마 알리지 못한다. 한편, 뭍으로 나온 섬노들은 인간다운 삶은 찾는다. 말과 생긴 건 험하지만 정 많은 정태는, 가족처럼 2명의 섬노를 챙기고, 현오는 이매와 연인이 된다. 이매는 처음으로 글자를 익히고, 노예가 아닌 '사람'이 사는 법을 배운다. 그러던 중 현오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이매는 현오의 '고객'을 만나고, 그를 피하려다 만난 무당에게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는다. 현오의 이야기와 너무 다른 잔혹사였다.
결: 현오는 결국 이매의 원해는 굿을 해주며, 알고 있었던 어머니의 삶을 알려준다. 현오는 이장과 이장 아들의 단죄를 이매에게 맡기고, 이매는 섬노로서의 삶을 스스로 마무리를 짓는다. 그리고, 이매는 현오의 마약 작업장이 되어 버린 적해도를 선물로 받는다. 한편, 이매를 건드린 '고객'에게 경고하기 위해 짜인 판에 이매가 등장하는 예외가 발생하지만, 현오의 계획대로 무사히 흘러간다. 현오와 정태, 3명의 섬노들은 '악인'이 사라진 적해도로 휴양을 떠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악을 벌하는 악
'정당화된 폭력'이라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둥근 세모'처럼 존재하지 않아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가령 교사의 채벌은 정당한가요? 저는 훈육의 도구로서 채벌이 얼마만큼 효과적이냐 따지는 사람들이 무서울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때린다는 것이, '방법' 중 하나라고 믿는 점이 소름 끼치거든요.
무서워하는 사람을 다루는 건 쉽습니다. 그래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후배나 고용인, 부하직원, 심지어 서비스 직원에게조차도 공포감을 형성하고, 홀로 도취감에 취해 좌지우지하려 들어요. 편하게 내 맘대로 조종하고 싶어 하죠. 그들의 공포는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라, 상황, 생활, 생존, 생계에 대한 것임에도, 그 순간은 깨닫지 못합니다. 그게 공포죠. 마비시키고, 전염되고, 정당화되는 '고질적 악'이요.
때려 본 사람은 계속 때리는 것에 무감해지고, 때려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어떤 경우라도 손을 쉽게 올리지 않습니다. 폭력은 발생하면 무뎌지고, 무뎌지면 고착화되죠. 그런데, 폭력이 '수단'이나 '관행'으로 여겨지는 집단을, 법이나 도덕이 바꿀 수 있을까요? 그럼 어린 생명을 물고문해 죽이고도 몇 년 뒤면 출소할 아동학대범과, 평생 악몽에 시달려야 하는 피해자가 있음에도 나라에서 주는 기초연금을 받으며 일상을 누리는 성폭력범이 있는 사회는 공평한 건가요? 법은 법이죠. 하지만, 왜 폭력이 더 우월한 시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을까요? 그래서, '악을 벌하는 악'을 바라게 됩니다.
적해도의 주민들은 폭력에 무감해진 악인들입니다. 스스로가 악인이라고 느끼지 못할 만큼, 악이 들러붙은 땅이죠. 그들은 묻에서 소히 '끈 떨어진', 즉 연고가 없는 아이들을 끌고 와 섬노로 부립니다. 굶기고, 때리고, 가두고, 화장실 가는 듯 강간하고, 그들이 피 흘리고, 부러지고, 곪어터지는 것을 즐기죠. 화풀이로 때려죽이고, 곶굴에 가둬 굶어 죽여도, 곧 또 다른 섬노를 데리고 와 그들의 일을 시킵니다. 이를 아는 섬노는 감히 도망갈 생각을 못 하고, 도망가려다 들킨 섬노는 바로 맞아 죽어요. 적해도는 완벽한 악인들의 '불가침 성지'인 셈이죠.
그런 악인들의 땅에 더 쎈 악이 들어옵니다. 기현오는 확실한 악입니다. 그는 사람도, 법도 미치지 못하는 천해의 마약 작업장이 탐났고, 대마를 다루는 재능을 가진 이매가 필요했죠. 섬주민들을 헤로인에 중독시켜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이고, 이장은 손발을 뚫는 고문도 하고, 박씨 형제는 태워 죽이고, 남은 주민들은 연변에 팔거나 다른 섬 일꾼으로 보내요. 그 섬엔 현오의 대마를 키워 줄 새로운 섬노들이 들어와, 뭍사람들을 중독시킬 아편을 열심히 키우고 있습니다. 현오는 엄연한 '약탈자'에요.
그럼에도 기현오 앓이를 가능케 하는 이유는, 현오가 '무엇' 때문에 분노했는가? 바로 그 '무엇'에 공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오는 죽도록 일을 하면서도 '돈'대신 '끼니'를 받는다는 이매의 말에, 성시중을 들고 3장을 받는다면서 오만원이나 만원짜리 지폐를 낯설어하는 그의 눈짓에, 패악질에 얻어터지면서도 엎드려 죄를 비는 모습에, 분노합니다. 그리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차려준 식사를 칭찬해 주는 것만으로도 들떠 기뻐하는 이매에게 무엇인가 해주고 싶어, 글을 알려주고 과자를 사 먹이죠. 아파하는 것을 보고 아파하고, 기뻐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고... 섬 밖에 악인과 섬 안에 악인은 그것이 달랐어요.
1권은 섬노의 비참한 생활, 2권은 현오가 섬을 정리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다 보니, 현오와 이매의 본격적 애정사는 3권부터 시작합니다. 쓴맛과 단맛의 비율 상, 단맛이 좀 더 적습니다. 게다가 쓴맛이 엄청 독하니, 현오의 집착 한 꼬집 다정함과 이매의 엉뚱 발랄 뭍생활이 달달해도, 전체적으로 무겁습니다. 피폐물은 설정상 어느 정도 잔인성을 깔고 있고, 사패나 연쇄살인범도 드물지 않게 등장하죠.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상'으로 느껴지기에 즐길 수 있는 거 같아요. 근데, '적해도'는 아닙니다. 가상이되, 가상으로만 여겨지지 않아요.
물론, 이매와 수향, 철호의 뭍생활은 귀엽습니다. '잘 지냈다.'라는 인사가 '살쪘다.'인 세 사람의 해우는 가슴이 아팠지만, 카페 메뉴를 섭렵하고, 수향에게 휴대폰 사용을 교육받으며 쩔쩔매고, 도무지 100점이 나오지 않는 받아쓰기 점수에 낙담해하는 모습이 흐뭇합니다. 수향과 철호를 돌보는 정태는 보답을 바라지 않는 선인 같고, 이매를 애지중지하는 현오의 모습은 풋풋한 소년 같아요. 그들의 직업이 사람을 타락시키는 일이고, 살인, 고문, 협박을 태연히 저지르고 있다고 하더라도, 분명 세 사람에게는 상량한 구원자였죠.
현오와 정태가 살린 사람보다 죽인 사람이 많고, 섬주민 수보다 섬노의 수가 적으니, 현오와 정태가 죽고 섬노가 학대 당하는 것이 전체의 공리는 더 높을지도 모릅니다. 더 옳은 결정처럼 보일지도 모르죠. 그런데 왜 이장과 청년회장에겐 조금의 동정도 들지 않고, 현오와 정태는 기특하고 장해 보일까요?
건강한 한 사람을 죽여 그 장기로 열 환자를 살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건 '방법'이 될 수 없고, 이득을 따져 볼 필요도 없죠. 정당화된 폭력 따위가 어디 있겠습니까? 폭력의 유용함을 따져 볼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게 용납되는 사회라서, '섬노'가 '유니콘'이 아닌 세상이라, 악인에게는 악인이 되고, 선인에게는 선인이 되는, 그런 악인에 쾌감을 느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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