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비욘드

출간일: 2017.03.03

분량: 본편 2권 +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완전히 결박된 후에야 소영의 움직임이 멈췄다. 환이 안에 진득하게 파정하자 소영의 아랫배가 볼록해졌다. 내장을 틀어막은 압박감에 얕은 숨만 간신히 내뱉으며 눈물 흘리는 소영의 귓가에 대고 환이 속삭였다.

"영희공 환소영은 귀비에 봉하고 원자 호를 내려 그를 원귀비라 한다."

자신을 귀비에 봉한다는 말에 소영의 젖은 눈이 커졌다. 현재 황제의 후궁 중에 정일품 비는 품계를 받은 이가 없었다. 소영이 결박의 고통도 잊고 저를 동그랗게 뜬 눈으로 쳐다보자 환이 다정스레 웃으며 그 눈가를 쓸었다.

"처소는 영수궁으로 하나, 짐의 별궁인 양심전에서 옮겨 가는 것을 허락지 않겠다. 황제의 화원인 어화원에 유일하게 출입을 허락하며 원한다면 언제든지 짐에게 함께 가자고 청해도 좋다."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교지를 읊는 양하시는데 소영의 눈가에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귀비의 태에서 나는 황자가 이 나라의 태자가 될 것이며 그 태자는 짐의 뒤를 이어 다음 대의 황위에 오르게 될 것이다."

자신과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그 목소리가 너무나 달콤해서 기어이 눈물이 흘러넘쳤다.

"그러나 짐은 귀비를 닮은 황녀도 기꺼우니 귀비는 괘념치 말라."

덧붙이시는 말씀이 왠지 귀여워서 소영은 결국 웃어버렸다.

point 2 줄거리

기: 직첩조차 받지 못한 천한 어머니의 태에서 태어난 5황자 소영은, 궁인들의 박대와 괄시, 황자녀들의 괴롭힘을 당하며 삼남소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소영을 유일하게 아끼고 보살피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태자 환이었다. 태자는 동궁에 소영을 불러 함께 생활하고, 음인이 소영에게 발정기가 오자 최측근인 중랑장 민석호를 시켜 시침을 들게 한다. 당연히, 태자의 이런 총애는 시기를 불러왔고, 소영은 태자비의 눈 밖에 나 동궁에서 쫓겨난다.

승: 황후는 완전한 음인이 된 소영을 민석호에게 보내려 하는 한편, 소영은 무작위로 발정기가 찾아오는 야화라는 것이 밝혀지고, 잠잠했던 태자비의 행보도 거칠어지자, 태자의 마음은 급해진다. 사실 태자환은 소영에게 좋은 형의 가장하고 있었지만, 어린 소영과 각인이 되면서 양인으로 발현했고, 그 후 이복동생인 소영을 온전히 얻기 위해 준비해 왔었다. 하지만, 황제의 양위가 생각보다 늦어지면서, 소영의 초야를 뺏기고 소영마저 잃게 생긴 것이었다.

전: 마음이 급해진 태자는 소영의 몸을 끈덕지게 길들이고, 소영은 그런 형에게 이성적 성애를 느끼며 혼란과 갈등을 겪는다. 그때 마침, 소영은 자신의 약혼자이자 자신을 사랑하는 민석호와 함께 잠시 숨을 돌리러 출궁하고, 환은 허락 없이 사라진 두 사람에게 분노하며, 소영을 거칠게 대하고 강제로 각인한다. 그 후 상처 입은 소영을 달래 간신히 연인이 되지만, 야화라는 소문이 돌면서 결국 소영은 황적에서 제적 당하고 정업원에 유폐되기에 이른다.

결: 하지만, 갑작스러운 낙마 사고로 마비가 온 황제가 태자에게 양위를 결정하면서, 환은 곧 소영에게 '환'이라는 성을 내리고, 영희공에 봉작하여 곁에 둔다. 한편, 황후의 직첩을 받지 못한 태자비는 사가의 연이 있었던 의친왕과 함께 반역을 도모하지만, 이미 만만의 대비를 하고 있던 황제에 의해 발각된다. 환은 소영을 귀비로 삼고, 소영에게서 자식들을 본다. 그 후 민석호는 문성황녀와 결혼하여 부마가 되고, 소영은 황후가 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자낮수

근래 문득 자낮수가 참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스라이팅이 자주 당장하는 피폐물이나 할리킹의 일부에서나 볼 수 있었던 키워드 였던것 같은데... 이제는 스릴러, 판타지, 일상물 할 것 없이, 자낮수가 등장합니다. 우연인지, 최근 저의 책장을 메운 책들 중에서도 많은 유형의 자낮수가, 다른 소재와 장르의 이야기 속에 나오더라고요. 하지만, 아시나요? 리디북스에 자낮수 키워드가 없다는 것!

드라마는 시대의 이상을 반영하고, 소설은 시대의 아픔을 반영한다. 어디선가 읽었던 구문인데,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드라마나 소설이 그만큼 대중적 채널이고, 어떤 형식으로든 시대를 투영하고 있다는 거겠죠. 유난히 '헬 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때에 '이세계물', '회귀물', '환생물'이 많아진 것 처럼요. 그렇다면, 걱정 많고 늘 불안해하지만, 알고 보면 재주도 많고 사랑스러운 자낮수도 이 시대 일면을 비추고 있는 걸까요?

'야화'는 고백하자면, 한번 읽고 방치한 많은 도서들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 다시 보니, 조금 다르게 보였어요. 문득, 이 책이 절륜한 황제와 백치 이복동생의 씬풍년 시대물 BL이 아니라, 환의 일생을 건 계략기 혹은 한걸음 당 한 번씩 '자낮의 덫'에 빠지는 소영의 구원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제가 환을 보며, '집착' '광공'이 아니라 '성실' '헌신'이란 단어를 떠올렸다는 것이, 저조차도 낯설었어요. 분명, 제 기억 속 '야화'는 킬탐용 뽕빨물이었거든요.

일단, 제가 과거 '야화'를 저평가했던 이유는, 갈등이 변변찮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어요. 출신도 천하고 뒷배도 없는 5황자 소영은,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짓궂은 황자녀들의 괴롭힘 대상이었죠. 게다가, 소영의 유일한 동아줄 태자에게는 황후의 조카인 태자비가 있었고, 그 묘가는 견고한 외척세력으로의 입지를 다지며 정치력을 키워왔어요. 황제가 될 것이 확실한 태자에게는, 소영을 반려로 맞는다는 것은 여러모로 힘든 일이고, 당연히 갈등도 많긴 했지만...

황제가 허무할 정도로, 너무 쉽게 모든 일을 해결합니다. 소영을 사랑한 민석호는 소영의 시침도 들고 약혼자도 되지만, 단 한 번의 반항도 없이 소영을 포기합니다. 태자비와 의친왕의 반역은 놀랍도록 위협적이지 않았고, 황후는 불용패 조카를 쉽게 버립니다. 태자는 황제의 낙마사고도, 소영과 환의 관계를 반대하는 상소들도, 어렵지 않게 처리하죠. 물론, 소영을 단 한번이라도 건드린 자들을, 그 시기와 신분를 불문하고 톡톡히 복수해줘요. 그래서 갈등은 있으나, 갈등 풀어가는 재미는 좀 아쉬웠습니다.

그럼에도, 첫인상이 '나쁨'이 아니었던 건, 분량과 가격이 혜자스럽기 때문이었어요. 한 권 10만 자도 안 되는 소설들도 즐비한데, 야화는 한 권 당 20만 자초과에 4500원! 가성비가 우수하죠. 또, 환의 원앤온리와 소영의 귀욤귀욤에도 후한 점수를 줬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정신만 들면 '그' 생각뿐인, 절륜한 황제의 씬씬씬은 달달구리하지만, 지나치게 왕성하셔서 소영도 지치고, 보는 독자1도 어느 순간 흐린 눈 스킵을 하게 됩니다.

이 소설에는 숨겨진 섭공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설표'예요. 한결같이 소영을 바라보는 순정파 표범이죠. 물론, 나중에 반려를 만나 아이를 낳고 잘 산다만은... 나름 애정에 목마른 야수예요. 소영은 분명 일부의 황자녀들과 권력으로만 가치를 평가하는 궁인들에게 괄시 받습니다. 하지만, 두 섭공인 민석호나 설표에게, 일반적이지 않은 독점적 애정을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태자의 절대적 비호를 받고 있고, 태자는 그것을 외부에 숨기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소영은 태자의 권위를 앞세워 호가호위할 수도 있고, 그럴 깜냥에 없다 하더라도 자신을 사랑하는 권력자들에게 고단한 삶에 대해 토로하고 기댈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소영은 태자가 위대한 줄은 알아도, 태자가 사랑하는 자신은 '이복동생'이고 '야화'라는 이유만으로 유령이 되어 평생 후궁에서 비참한 삶을 살 거라고 무서워합니다. 민석호가 공신 가문의 장자이며, 많은 황녀들이 꿈꾸는 이상적 반려임을 알아도, 대 놓고 구애하는 민석호의 약혼자 자리가 얼마나 대단한 줄은 알지 못합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면, 이 소설을 많은 갈등을 열심히 풀어가려 노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갈등은 암투도 아니고 근친관계도 아니었어요. 세상으로부터 숨고 싶어 하는 소영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황제가, 설득하고 달래고 안심시키는 과정이었던 거죠.

태자의 첫째 미션, 선물 주기! 태자가 어린 소영과 각인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환은 서서히 소영에게 '주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궁박한 소영에게 하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죠. 많은 이들은 하사받고자 했고, 하사받았다는 사실을 떠벌리며 친분을 과시하고 싶어 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소영은 주면 쩔쩔매고, 없는 살림에 답례품 구해오고, 답례품 대신 연주를 듣게 된 후로도, 너무 자주 준다며 부담스러워하죠. 소영에게 태자비도 누리지 못한, 태자의 지밀을 공유해 주었음에도, 태자비가 쫓아내면 고자질은 고사하도, 냉큼 초라한 남삼소로 돌아갑니다. 태자가 준 팔찌는, 착용하지 않고 상자에 보관만 해요.

태자의 둘째 미션, 안심시키기! '야화'의 설정상, 양인이 음인과 각인이 되면, 자신의 음인 이외에 만족감을 얻지 못할 뿐 관계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반면에, 음인은 오로지 각인한 양인과만 관계를 할 수 있죠. 태자는 소영을 안고 포태시키고 싶었지만, 황제가 될 때까지 참아야 후환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소영의 발정기에 믿을 수 있는 민석호를 보내지만, 가까이 각인된 음인을 두고 안지 못하는 고통에 시달립니다.

그리고, 마침내 소영에게 각인을 합니다. 하지만, 각인 전의 고난보다 더 큰 고난이 있었으니, 그것은 소영을 달래는 일! 태자는 지존이지만, 태자의 약속은 믿을 수 없는 것일까요? 사모하고, 어떤 경우에도 보호해 주고, 그대가 낳은 아이를 태자로 삼겠다고 달래어도, 소영은 세상에 손가락질 받고 이름 없는 자가 되어 어느 후궁의 전각에서 비참한 생을 이어갈 거라고 태자를 원망하죠. 야화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태자는 '정말' 비참한 상황에 놓일 뻔한 소영을 기지와 협상으로 구해내지만, 소영은 보호받았다는 '증명'보다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슬퍼합니다.

태자의 세 번째 미션, 결혼하기! 태자는 황제가 된 후 황적에서 지워져 평민이 된 소영을, 영희공으로 봉작하면서 형제가 아닌 황족으로 만듭니다. 또, 자신의 이름에 획만 바꾼 '환'이라는 성을 주어 '내 사람'임을 찜하고, 즉위식 연회장에서 나쁜 손으로 '내 음인'임을 만인에게 알립니다. 게다가 소영을 구박했던 태자비는 황후는 고사하고 재인이 되었고, 소영에게는 태후라는 든든한 우군도 있어요. 하지만, 소영은 귀비가 되는 것을 기꺼워하지 않죠.

소영은 태생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고, 주목받는 자리가 무서우며, 황제의 총애는 받아도 총비가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황제와 보내는 밤이 늘어나나 회임을 하지 못하자, 황제에게 후궁을 권하기도 합니다. 후사의 책임은 막중하고, 환을 독점하고 싶어도, 독점할 자신은 없었죠. 황제는 이미 오래전에 소영의 독점물이었음에도, 황제는 소영의 시기심을 자극하고, 자리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역설하며, 어렵게도 소영의 반려가 돼요.

자낮수가 고구마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자낮수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게끔 만드는데, 엄청난 공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인들 중 자존감이 떨어졌다고 말하는 이들이, 이렇게 많았던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 때문이다, 경기 때문이다, 자연재해 때문이다, 그런 것들이 위로가 되었을 때도 있었겠지만, 그 위로의 유통기한은 의외로 짧아서, 당장 되는 일이 없으면 자신의 가치도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요. 그리고, 항상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성공하는 사람들은 존재하고요. 그들의 존재가, 위기를 기회로 만들지 못한 자신의 무능을 지탄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존감이 낮다는 건, 반대로 자기 가치는 높다는 말인 셈이죠. 자존감이 떨어져 힘들다면, 적어도 지금 느끼는 자신보다는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BL에 나오는 '자낮수'는, 잘난 공이 가지지 못하고, 공 주변에서도 도무지 찾을 수 없는, 귀한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음에도 스스로는 모르고 있어요. 공이 그것을 발견하고, 알려주고, 사랑해 주는 것으로 자낮수의 인생을 달라집니다. 신데렐라랑은 달라요. 마법사는 필요 없고, 왕자만 있거든요.

이 시대가 자낮수를 필요로 하는 걸까요? 그럼 자낮수의 '자낮'보다는 결국, 마침내, 파이널리, 그 자낮수가 도달한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서 였으면 좋겠습니다. 오랜 BLer로서, 확신하지면, 그 '결과'는 이미 자낮수에게 있어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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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연필

출간일: 2019.06.03

분량: 본편 4권

 

 

 

point 1 책갈피

"폐하, 이렇게 살아 폐하를 다시 뵈니 너무나도 기쁘지만...... 만일 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희, 어리석구나. 어찌 그런 말을 하지."

"......"

"네가 짐이었다면, 그때도 그리 생각했을 것 같으냐."

"폐하, 어찌...... 어찌 제가 그렇게 생각하겠습니까."

단우가 당치도 않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화인은 그를 더욱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기며 몸을 단단히 붙였다.

"한데 어찌 짐의 마음이 다르리라 생각하느냐."

"...... 저는 폐하를 연모하기 때문에, 저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폐하를 먼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폐하처럼, 대단한 분이 될 수 없는 것이겠지요."

그 말에 화인은 한숨처럼 웃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를 먼저 생각한다면, 그것이 연모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화진 국왕에게 그런 전갈을 받았을 때 그를 버린다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배제하고 구할 방법부터 생각했던 자신의 마음은 무엇일까.

가장 특별히 아끼던 수집품을 잃은 자가 할만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그것은 자신도 끔찍하리만큼 노골적으로 느껴왔다.

"...... 그렇다면, 우희."

"......"

"짐 역시 너를 연모하는 모양이다."

point 2 줄거리

기: 소국 화진과 대국 창이 화친을 맺으며, 화진의 창녕대군 위단우는 창의 볼모로 가게 된다. 그 후 청운궁에 머물게 된 단우는 하인들의 박대 속에서, 제대로 된 섭식, 관계, 배움도 없이, 고립된 채 서러운 생활을 한다. 그런 단우는 간혹 청운궁을 찾다가 아예 발길을 끊어버린 2황자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8년을 보낸다. 한편, 화진의 국왕이 화친을 깨고 창의 땅을 침범함하자 창의 황제는 단우를 불러 죄를 묻고 죽이려고 한다. 그때, 태자가 된 2황자가 나타난다.

승: 소국 화진은 제갈량의 현신이라 불리는 학자 한맹위를 얻고 창을 쳐 창의 땅을 얻었다. 태자는 이 한맹위를 창으로 데리고 온 상으로 단우를 요구하고, 화진의 대군 신분을 버린 단우는 동궁 내 연위궁에 머문다. 그러던 어느 날 태자의 정사를 엿보게 되고, 얼떨결에 함께 하게(?) 된 후, 단우는 태자의 총자가 된다. 그리고 태자의 지밀에서 나신으로 목줄을 차고 태자만을 기다리며, 성적으로 길들여지고 통제받는다. 그러던 중 황제와 태자는 광보성으로 떠난다.

전: 4황자는 그 틈에 연위궁을 찾아 단우를 모욕하고, 태자가 묶어준 정조대를 훼손시킨다. 한편, 황제는 정신을 잃어 급히 환궁한다. 황제의 병인은 중독이었고, 황제는 곧 병사한다. 그리고, 4황자의 친모인 귀비가 준 다식판에서 독이 발견되면서, 4황자는 모반죄로 죽는다. 황제가 된 태자는 단우를 은밀한 낙랑궁으로 옮기고 탐한다. 그때, 화진 왕비의 무사였던 윤상궁이 단우를 화진으로 도피시키려다 잡히는 사건이 발생하고, 단우는 황제의 계략을 알게 된다.

결: 불행한 인생의 원인이 황제라는 것을 알게 된 단우는 그를 거부하고, 황제는 폐가와 다름없는 영수궁으로 단우를 유폐한다. 단우는 반성하고 황제에게 돌아가지만, 곧 한맹위를 찾기 위해 창으로 온 화진의 사신단에 의해 붙잡혀 화진으로 간다. 황제는 한맹위의 신분으로 화진에 가 단우를 구하고, 단우는 천둥 트라우마 이면에 숨겨진 친부의 비극사를 기억해 낸다. 단우와 황제의 도움으로 화진은 새로운 왕을 맞는다. 창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산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불가역'과 '화중매'

베스트셀러 혹은 스테디셀러는 많고, 무공진님의 작품들 중에도 유명한 작품이 많지만, 세계관 주인공 서사 모두를 인정받는 작품은 많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점에서 무공진님의 '불가역'은 명작 중에 명작이죠.

'화중매'는 '불가역' 그 이후 창의 황실을 배경으로 합니다. 태조가 기틀을 잡았던 창천성, 태조의 마지막 전투가 있었던 광보성, 글과 그림에 빠져 있던 태조... '불가역'의 내용이 소록소록 떠오르죠. 또, 직접적이진 않지만, 탈 많았던 희매성, 매위가 좋아했던 하미과, 산이 피운 남령초 등 소재들도 간간이 등장해 소소한 재미를 선사해 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인을 보며 산을 오버랩하게 되는 부분들도 제법 있었어요.

그러면, '화중매'는 '불가역'의 후속작이나 아류작처럼 느껴지는가? 물으신다면, 아닙니다! '화중매'에는 '화중매'만의 매력이 있습니다.

일단, 산과 강은 감정적으로 건강했습니다.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을 수 있었죠. 다만, 그들 사이엔 '과거'의 역린이 아슬아슬하게 돋아 있었어요. 하지만, '화중매'에 두 사람은 감정적으로 건강하지 않습니다. 화인의 단우에 대한 소유욕은 아름다움에 대한 수집욕으로 시작해서, 통제욕을 거쳐, 마지막에서야 연심에 다다릅니다. 그 대상이 된 단우는, 화인의 총자일때도 연인일때도, 절대적 맹종을 보이죠.

제갈량의 버금가는 지략가이자 계략가, 하지만 그 우수한 이성의 산물도 결국은 감정을 가진 인간입니다. 화인은 심리적 허기를 심미적 만족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도자기, 보석, 심지어 사람까지도 아름다운 것들을 모아요. 겁 먹은 10살의 단우 역시 그렇게 눈에 띕니다. 화인은 단우를 진심으로 아끼는 윤영을 8년간 단우와 격리시켜 놓고, 청운궁에 단우를 방치한 채 간간이 찾아가 오아시스 같은 다정함을 쏟아부어 줍니다.

화진의 왕비와 밀약을 했으면서도, 유일한 구세주인 마냥 단우를 구해요. 그리고, 고립되어 제대로 배우지도, 사람을 사귀지도 못한 채, 백치가 된 단우을 성 노리개처럼 조련하죠. 그렇게 아낌 받는 것이, 단우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이자 유일무이한 상량함인 것처럼 말이에요. 화인이 도자기를 닦는데 들이는 시간은 줄어들고, 단우를 길들이는 시간은 늘어납니다. 그리고, 단우가 '진정한' 총자가 되자, 화인은 더 이상 도자기와 보석을 모으지 않죠.

또 다른 차이이자,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수 포지션입니다. '불가역'에 능력수, 얼마나 능력이 있느냐 하면 공을 덜덜 떨게 할 정도의 능력이죠. 천리안을 가지고 있고, 장서각의 책은 모조리 읽고도 결코 잊지 않는 비망의 재주를 가진, 하늘로 돌아갈 수 있는 귀한 신분! 아름다운 외모와 서화에 능한 사기캐예요. 강은 산에게 천하를 얻게 해 준 책사이자 치세를 돕는 든든한 내조자였어요. 두 명의 수 모두 똑같이 냉궁에 갇히지만, '불가역'에서 공이 사정해서 수를 데리고 왔다면, '화중매'에서는 수가 사정해서 공이 용서해 주는 모양새였죠.

반면, '화중매'는 수가 너무 백치 같다, 답답하다, 고구마다, 라는 리뷰를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그리고, 아마도 작가님은 그렇게 보이도록 의도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단우가 암굴에 갇혀 있다가 화인을 만났어도, 절대자처럼 느껴졌을 거예요. 하지만, 단우가 있었던 환경은 암굴보다 훨씬 냉혹했죠. 신분이 낮은 이들에게 음식과 같은 기본적 욕구를 저당잡힌 채 조롱당했고, 이런 서러운 삶에 유일한 출구였던 귀국의 꿈은 아버지가 자신을 버림으로써 끝났습니다. 사람은 있었지만, 자신과 대화해 줄 사람은 없었고, 문밖에 세상은 있었지만, 문을 열 수는 없었어요. 비록 이 모든 것이 화인이 꾸몄다 하더라도, 단우가 따뜻하게 대해 준 단 한 사람을 절대적으로 의존하지 않을 방법은 없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계략공의 레벨이 업! 합니다. '불가역'에서 산 역시, 처음부터 모든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일을 꾸미고 상황을 유도합니다. 하지만, 건국황인 산은 전쟁에서 칼을 들고 싸우는 황제였고, 화인은 무능한 선황을 몰아내고 창의 번영을 되찾아야 하는 지능형 암투가였죠. 산이 명민한 야수였다면, 화인은 괴물을 품은 선비라고 볼 수 있어요. 화인은 긴 시간 공을 들여, 어떠한 불필요한 손실 없이,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집니다. 무시무시해요.

그 대표적인 설정이 '한맹위'예요. 강건한 창은 무능하고 여색만 밝은 황제로 인해 지고 있고, 주변 소국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립니다. 소국의 황자들을 볼모로 잡고 있지만, 창의 근본적인 내실 문제는 나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화인은 트리거를 당겨요. 바로, 한맹위로 위장해서 화진의 황제에게 천하를 가질 수 있는 천기를 누설한 것! 화진은 청천성까지 창의 땅을 삼키고, 야심가인 화진의 국왕은 단꿈에 젖어들죠.

그때, 한맹위가 창에 억류됩니다. 그로부터 10년, 화진은 창과 화친이 깨진 상황에서, 더 이상 진격도 하지 못하는 사면초가에 빠져요. 한편, 화진에 영토를 빼앗기면서 창의 실태가 면면히 드러나고, 선황의 권위는 땅으로 떨어집니다. 하지만, 화인은 태사는 양위를 권고에도 불구하고, 되려 이를 사양하며 황제를 천천히 독살합니다. 주변국의 승냥이떼가 기회를 노리는 시국에, 내부에서 갑론을박의 양분화를 막아야 했으니, 효자로서 무탈히 황제에 오를 수를 노린 셈이죠.

단순히 SM을 동양풍으로 각색한 자극물이라기엔 볼거리도 풍성하고, 흥미진진한 서사도 '불가역' 못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천둥과 악몽이라는 복선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화진의 혁명에 명분을 제공하기 위해서든, 단우가 친부에게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든, 아니면 황제를 영수궁으로 가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든, 뭔가 쓰이다 만 느낌입니다. 초반부터 너무 의미심장하게 여러 번 등장한 것치고는, 살짝 바람 빠지는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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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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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블래스트

출간일: 2020.05.07

분량: 본편 3권

 

point 1 책갈피

"나한테는... 가족이 중요해요."

맥주 캔을 쥔 인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럼 그렇지. 씁쓸한 마음에 맥주를 마시며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준원이 고기를 다시 뒤집는다. 기름이 떨어지며 숯에서 불이 후루룩 올라왔고, 익은 고기는 능숙하게 한쪽으로 옮겨 놨다.

"그래도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인우가 다시 고개를 돌려 준원을 바라봤다. 준원은 익은 고기를 접시에 덜어 놓은 뒤 눈을 맞추고 웃었다.

"인우씨 옆에 있을게요."

인우는 눈조차 깜빡일 수 없었다. 준원의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무조건 인우씨 편들어 줄게요. 내가 많이 좋아하니까."

그는 곧 아무렇지 않게 남은 고기를 올려놨다. 치이익- 고기 익어가는 소리가 사랑의 세레나데처럼 들렸다. 인우가 위로 올라가는 입술을 애써 감쳐물고 맥주를 입으로 가져갔다. 괜히 민망해져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이 반짝반짝 수두룩했다. 아, 왜 이러지? 이럴 리가 없는데. 서울 하늘에 저렇게 별이 많을 리가 없는데. 매일 보던 하늘도 땅도 나무들도 왜 달라 보이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point 2 줄거리

기: 엔조이 게이 라이프를 즐기며 살고 있던, 톱스타 배우 김인우는 야구 시구 차 야구장을 찾는다. 인우는 얼굴을 붉히며 팬을 자처하는 서준원을 보고, 호기롭게 자신의 시구볼을 치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서준원이 친 볼은 인우의 중요 부위로 직진하고, 인우는 국민 고자(?)가 된다. 준원은 사과하기 위해 인우가 입원한 병원을 찾는다. 그리고, 인우의 빨간(?) 요구를 받게 되고, 이런 자극을 처음 맞본 준원은 기절한다. 그 후 재도전(?) 끝에, 무사히 뜨밤을 보낸다.

승: 인원의 오랜 팬이었고, 인우를 많이 좋아했던 준원은 바로 고백한다. 하지만, 인우는 준원을 거절하고, 준원은 상처 입는다. 한편, 준원의 은퇴 소식이 터지고, 은퇴 사유로 인우가 거론되면서, 인우는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 어쩔 수 없이 인우는 준원을 만나 해명을 부탁한다. 하지만, 인우의 예상과 다르게 준원은 사과를 했고, 그런 순수한 모습을 본 인우는 준원과 만날 수 없는 이유를 솔직히 고백하고, 개의치 않는다면 만나자고 제의한다.

전: 두 사람의 연애는 시작되었다. 인우는 11자리 번호로만 저장되어 있는 수많은 섹파들을 정리하고 준원에게 정착하려 한다. 반면, 은퇴 후 제빵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떠날 예정했던 준원은, 한국에 빵집을 차리기로 계획을 선회한다. 한편, 인우는 오랜 염원인 윤태용 감독 작품 출연을 위해, 강원도에 은둔한 윤감독을 찾아가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고를 당해 쓰러진 윤감독을 구하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김원기와 윤감독 영화를 함께 찍게 된다.

결: 게이인 김원기는 인우의 난잡한 생활을 알고 있었고, 흥미 삼아 인우와 즐겨보려 수작질을 부린다. 한편, 인우의 전 섹파이자 준원의 친형인 영민은 둘 사이를 반대하지만, 준원은 오히려 가족들에게 인우와의 관계를 당당히 밝힌다. 그때, 인우의 섹스 동영상과 스토커가 나타나고, 윤감독 영화 캐스팅의 비밀이 드러나는 등의 사건사고가 발생하지만, 두 사람은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알콩달콩 사랑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What for?

사회생활은 무데뽀, 사생활은 동물남, 하지만 겉과 속이 똑같아서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백치수! 이런 인우가 저의 생활에 비타민이었을 때가 있었죠. 물론,한결같은 인우쟁이 준원이야 말할 것도 없고요. 어쩌면, 인우가 이렇게 투명하기 때문에, 연기를 잘 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알람이 안 울려도, '그' 시간이면 눈이 떠지는 것처럼, 다른 일을 하다가도 업댓 시간이 되면 자연스럽게 접속할 정도로, 열심히 챙겨 봤던 연재작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마지막에 fin이라는 글자를 봤을 때는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순간 fin tech인가?라는 엉뚱한 생각까지 들었을 정도였어요. 갑자기, 준원과 사랑을 외치며 끝납니다. 준원 집안과의 갈등이나, 의미심장한 서영민의 경고, 온갖 고초를 겪어가며 찍게 된 영화에 대한 마무리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연재작이란 작가의 일신상 혹은 출판사 사정이나, 단순히 새로운 작품에 필이 꽂혀서 등등 여러 이유로 허망하게 끝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실망은, 그 요일, 그 시간을 기다려 읽었던 독자의 몫입니다.

그러다 우연치 않게, 단행본을 읽게 되었습니다. 외전 형식으로나마 벌려 놓은 떡밥들을 회수해 놓으셨더라고요. 그나마 다행입니다. 김원기는 마약에 강간 미수, 동물 학대까지 했는데, 녹취 하나 약점으로 남겨 놓고 눈치 보며 종결! 영화는 그럭저럭 찍고 있음! 우리만 사랑하면 장땡이지! 가 아니라, 단행본 발간과 함께 더해진 외전에는, 옴팡지게 고생하는 김원기와 순항하고 있는 촬영, 인우의 선물공세에 한풀 꺾인 회장님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영민의 경고가 암시했던 사건들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순수한 염려였던 것으로...

인우는 아마도, 이렇게까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줄 몰랐을 거예요. 인우는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성공한 배우였고, 충분히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섹파들이 많이 있었죠. 욕구에 충실한 단세포 동물! 조금 부족한 지식과 상식, 더 부족한 수치심까지, 엔조이 게이 라이프를 부추겼을 거예요. 하지만, 자신과 전혀 다른 순정 곰탱이 서준원을 만납니다. 형과 섹파라고 해도, 동영상이 있다고 해도, 김원기가 인우의 난잡한 성생활을 고자질해도, 심지어 집안의 반대가 있어도, 흔들리는 척 조차 하지 않는 직진 순정 다정남말이에요.

인우가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지금까지와의 다른 삶이 시작됩니다. 하나는 연인으로서, 다른 하나는 배우로서의 삶이었죠. 성욕은 있어도 애욕은 없었던 인우는 한 사람에게 정착하려 합니다. 그러자, 지금까지 없었던 시련이 찾아와요. 젠틀한 섹파였던 영민은 인우를 걸레라고 부르며 무시하고, 섹스 동영상을 이유로 광고를 해지하려 하죠. 흔적도 없었던 과거 섹파는 스토킹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연예계에는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는 지뢰들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즐기는 생활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약점과 비난의 대상이 돼요.

배우로서 인우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윤감독의 영화에는 도무지 캐스팅되지 않았죠. 쫓아가면, 도망가는 윤감독이란 사람! 인우는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하고, 윤감독이 은신해 있는 강원도까지 찾아갑니다. 윤감독은 집에 없었고, 기다려도 오지 않았죠. 그때, 준원이 미심쩍은 흔적을 발견하고 윤감독의 사고를 추측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입원부터 보호자 소환까지, 놀라 덜덜 떠는 인우를 달래며 처리해 줘요. 물론, 깨어난 윤감독이, 생명의 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역할을 주진 않지만, 중요한 계기가 되긴 하죠.

더불어, 김원기가 마약사건을 덮기 위해 인우의 소속사와 계약하면서, 인우는 윤감독 작품의 무려 주연이 됩니다. 작은 역이라도 그저 감사했던 인우로서는, 고진감래라고 할밖에요. 그 애타는 구애의 몸짓이 빛을 봅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 역이 오롯이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김원기와 양대표의 찜찜한 거래가 있었다는 사실에 상처받습니다. 김원기는 웃는 낯으로 인우를 비웃고, 인우는 영화를 안 찍으려 하죠. 물론, 준원의 설득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에요.

살던 대로만 살 수 있으면, 편하지만 재미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절대적 다수는 살던 대로 살죠. 그래서, 정 반대의 사람을 만나, 살던 대로 살지 않으면서, 살던 대로의 방식으로부터 난관을 겪는 이야기는 흥미롭습니다. 게다가, 그 당사자가 우월한 외모와 재력을 지닌, 똘끼 충만한 육식남이라니! 저는 '순정 곰탱이'가 그런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이 이야기가 인우가 사랑을 깨닫는 과정이었나? 그럼 그간에 사랑을 느껴온 장면들은 뭐였지? 그냥 어느 날 보니, 생각보다 큰 사랑이었나? 연예계 일상물도 아니고... 뭘 쓰고 싶었던 거지? 제가 멘붕에 빠졌습니다.

캐릭터가 너무 사랑스럽고 매력적인이라, 더더 아쉬움이 짙은 작품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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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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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비애노블

출간일: 2018.07.20

분량: 본편 3권

 

point 1 책갈피

"한철아, 사람이 꿈을 위해서 사는 거냐, 사람을 위해서 꿈이 있는 거냐."

박한철은 대답이 없다.

"너한테 내가 어떤 존재인지는 잘 알지만, 그래 봐야 우린 세상 앞에 다 핏덩이인 어린애들이야. 미래에 대해서 우리가 뭘 알겠냐. 지금 자신의 감정과 신념에 최대한 솔직하게 최선을 다할 수 있을 뿐인 거지. 꿈이 변했다고 해서 내가 다른 인간이 된 게 아니야."

스스로를 고정된 존재로 여기기 쉽지만, 존재하는 모든 것은 매 순간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 꾸었던 낡은 꿈으로 현재와 미래의 자신을 만족시키려는 의도야말로 위험하지 않을까. 현재의 자신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계속해서 면밀하게 살펴 나가는 그 과정이 삶이 아닐까. 변화의 흐름 속에 놓인 핏덩이에 불과한 나는 그렇게 생각해 볼 뿐이다.

"그리고 너, 예전 내 꿈의 진짜 허점이 뭔지 아냐?"

박한철은 나에게 허점 같은 게 없다고 믿는 놈이었다. 그런 믿음이 나를 더 일으켜 세워준 것도 사실이었지만, 가끔은 부담이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게 합쳐진 복잡한 관계가 바로 가족이겠지.

"사랑은 둘이서 하는 거고, 가정도 둘이서 꾸리는 건데, 난 내가 누구와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면서, 사랑의 방식과 형태를 혼자 미리 정해 뒀다는 거야. 아마 사랑을 안 해봤기 때문에 그랬겠지."

사랑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마다 내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안다미로의 얼굴이 떠올랐다. 예전에 나는 사랑의 감정을 떠올릴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방식만을 생각할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 사랑은 이렇게 해주고 저렇게 해줘야지, 하는 계획이 아니었다. 안다미로라는 구체적인 인간을 중심으로 다시 구축되는 삶 자체였다. 나 같은 놈에게 그게 어떤 행복인지, 안다미로는 알까.

point 2 줄거리

기: 시설에서 동생 한철과 독립한 19세 최무이는 중식집 대흥각 배달원 면접을 보고, 마의 진상 VIP 고객 124 맨션 펜트하우스 배달을 성공하며 채용된다. 속칭, 124맨션 또라이로 불리는 21세 안다미로는 D건설사 막내아들로, 망나니 게이 라이프를 즐기고 있었다. 어느날, 맛 좋은 대흥각 짬뽕 배달을 온 잘생긴, 일반인 형아에 흥미를 느낀다. 하지만, 잘빠진 아들(?)을 보여줘도, 라이브 자위쇼를 해도, 300만 원짜리 파카를 선물해도 이 형아는 요지부동이다.

승: 안다미로는 정글 같은 집 안에서 우아하고 과묵한 첫째 형을 짝사랑했다. 한편, 다미로는 중학교 시절 상류층 자제들이 모인 게이 클럽 다비드에서 첫동정도 떼고 연애도 한다. 그러던 중 첫째 형에게 키스하는 모습을 들키고, 형은 다미로를 보호하며 통제한다. 형의 그런 관심이 좋았던 다미로는 부푼 마음을 형의 그림을 그리며 풀었고, 그 결과물을 형에게 들킨다. 하지만, 형은 묵인한채 결혼하고, 딸 다미를 낳았으며, 이혼했지만 재혼할 예정이다.

전: 한편, 다미로는 무이를 꼬시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지만 모두 실패한다. 반면, 무이는 엉뚱한 짓을 일삼으며 눈앞에 알짱거리는 무개념 도련님이 귀여워 보이기 시작했다. 무이는 곧 다미로는 좋아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방만한 성생활에 절여진 늑대소년에게 다른 즐거움을 알려주기 위해, 쉽게 함락당해주지 않는다. 사랑의 신세계에 몸달은 다미로와 이런 무이가 밀당하는 사이, 다미로는 다비드 멤버들과 약에 취해 난잡해진 모습을 무이에게 들킨다.

결: 무이는 다미로에게 독설을 내뱉고, 124맨션에 배달도 가지 않는다. 그러던 중 무이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다미로는 무이의 판잣집에서 수발을 들며 반동거를 시작한다. 하지만, 무이의 동생 한철이 둘의 정사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되면서 난관에 부딪친다. 동시에, 이 반동거를 알게 된 다미로의 첫째 형은 역시, 다미로를 유학 보내려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의외로 쉽게 가족들을 설득한다. 그 후 무이는 소설가로 데뷔하고, 다미로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시작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 진짜 너희 나이를 말해봐!

김다윗님하면 차가운 도시를 배경으로 한 관능적 씬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전체적으로 차갑고, 날카롭고, 세련된 느낌... 씬장인으로 불리는 작가님들이 많으시지만, 이런 풍의 정사씬은 김다윗님이 으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봄보로봄봄'은 의외로 따뜻하고 유쾌한 작품이에요. 물론, 이 작품에서도 시크, 도도, 엣지의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입니다. 저는 김다윗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내가 얼마나 잘 쓰는지 보여줄게'라는 목소리를 들리는 듯해요. 거만하다기보다는, 자신만만하고 거침없는 필법이라는 인상에 더 가깝죠. 문장에서 여유가 느껴져요. 얼마나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은지,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많은지, 벼르고 있는 모습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풀어내는 법에 비해 풀어내는 알맹이는 좀 아쉽습니다.

'봄보로봄봄'은 극과 극의 공수가 만나,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쌍방구원물이자 쌍방성장물입니다. 흔한 클리셰긴 하지만, 극단의 삶을 살고 있는 두 사람이 '보통의 행복'을 찾아가는 개연성이 쫀쫀하고 찰지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많이 가지고 있는 쪽이, 많이 가지지 못한 쪽에게 시혜적 베풂을 내리고, 그 대가로 애정을 얻는 할리킹물이 아닙니다. 돈 많고 철없는 도련님은 첫째 형을 마음에서 떠나보냈고, 염세적 냉소적이었던 고아 소년은 소설가가 되었죠. 두 사람의 보금자리는 124 맨션 펜트하우스가 아닌, 판자촌에 더 가깝습니다.

할리킹이 보여주는 신데렐라 판타지도 좋습니다. 가진 게 많아서, 내 님에게 주겠다는데 그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요. 그래서, 주는 것보다 어려운 '공유하는 것'에 깨인 주인공의 이야기를 더 좋아합니다. 다미로처럼 말이에요. 무이의 공간을 공유하고, 동생을 이해하고, 그의 삶을 공감해 주고, 선택을 존중해 줘요. 판잣집보다 좋은 집을 사주는 것이 더 쉽고, 동생 알바를 묵인해 주는 것보다 노트북 값을 주는 것이 더 쉽고, 배달을 그만두고 소설 쓰게 해주는 것이 더 쉽지만, 그렇게 하지 않죠.

다만, 읽는 내내 적응이 안 됐던 것은 이들의 '나이'입니다. 무이는 헐벗은 남자의 무리들 사이에서도, 돈 많고 태가 다른 상류층의 거만함 앞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아요. 또, 본능적이고 육감적인 사랑을 너머, 그 사람의 습관과 진로의 방향성이라는 장기적 시점도 고찰해요. 게다가, 극강의 소유욕과 독점욕을 느끼면서도, 다미로가 엔조이 게이 라이프를 단 번에 끊을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고, 본인의 거친 언사와 분노를 자제하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19살 이란 나이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설 생활로 인해 눈치가 발달했고, 폭력 사건을 일으켜 퇴학 당할 정도로 뜨거운 가슴이지만, 반대로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킬 만큼 주관이 뚜렷한 성격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를 참작해도 이것이 정말 19세의 생각이고 행동인가... 괴리감이 느껴집니다.

다미로도 마찬가지예요. 아무리, 재벌이고 15세에 동정을 뗀 선구자(?)라고 하지만, 21살 나이에 그렇게 많은 경험과 유명세를 가진 게이가 될 수 있을까? 심지어, 다미로가 중학교 때 활동했던 다비드는 비밀 클럽 아니던가요? 게이 클럽, 게이 바 할 것 없이 이 정도의 입지(?)를 가지기 위해서는, 정말 24시간이 모자랄 듯 해요. 물리적 한계도 있는데, 분신술을 쓰지 않고서는, 이 정도의 경험과 노련미는... 그저 대단한 게이라고 인정을 해줘야 하나 싶어요.

다미로의 절친이 무이의 판잣집에서 사회적 지위와 한계에 대해서 설교를 늘여 놓는 장면에서도, 21살이라고 생각하니... 심각한 장면인데도, 묘하게 귀여워 보이더라고요. 어쨌든, 문득문득 나이가 떠오르면 몰입에 방해가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이는 25살, 다미로는 28살이라고 바꿔 생각하고 읽으니, 편안하더라고요.

더불어, 갈등 부분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미로와 첫째 형의 관계는, 무이와는 또 다른 극과 극의 관계였죠. 모범적이지 않아 기대를 받지 못하고, 그 덕에 자유로운 다미로와 모범적이고 우월하지만, 덕에 선택 없는 삶을 살아야 했던 첫째 형... 배다른 두 형제 사이에 애정은 있었지만, 다미로의 것은 성애였고 형의 것은 우애였어요. 형은 다미로를 보호하고 싶어 했고, 다미로는 형에게 관심받고 싶었지만, 둘 다 이루었다고 볼 수도 있고, 모두 이루지 못했다고도 해석할 수 있을 듯합니다.

다미로에게는 유일하게 진지하고, 인내하고, 상처 입은 사건이었지만, 이런 형과의 갈등은 좀 어이없이 풀립니다. 형의 진심이 담긴 편지 한 장과, 다미로의 설득으로 말이죠. 오히려, 한철과 무이의 갈등이 좀 더 밀도 있게 다루어진 느낌입니다. 다미로는 과거 형에 대한 마음을 정신적 외도라고 생각했고, 형의 행복하지 못한 결혼생활, 이혼, 다미의 출생, 재혼, 각각의 계기마다 양가적 심정에 혼란을 겪었죠. 그런데, 그에 비해 허무한 마무리였습니다. 다미로와 형이 가지고 있는 깊고 오래된 이야기들이, 급하게 봉합 된 것 같았어요.

그럼에도, '봄보로봄봄'이 가지고 있는 재미를 모른척하기는 쉽지 않아요. 김다윗님의 현재 연재작 '초이스 오브 초이시스'와 비교 할 때, 확실히 초기 작품이기 때문인지 힘이 들어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들인 작품임을 틀림 없는 듯 합니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

출판사: 수려한

출간일: 2019.03.14

분량: 본편 4권

 

point 1 책갈피

"저... 형들 만나서 정말 좋아졌어요. 걸레라는 별명이 준 트라우마 때문에 목욕 시간이 오래 걸렸거든요. 근데 요즘은 목욕하는 데 10분밖에 안 걸려요. 악몽을 자주 꿨는데, 요즘은 잘 안 꾸고요."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리고 문제지 볼 때마다, 글자가 흔들려서 수능 볼 엄두도 못 냈었는데, 이렇게 시험도 잘 봤어요. 다 형들 만나고 변한 거예요. 그리고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요. 두 분 다 제 은인이에요. 정말 고마워요."

이런 솔직한 말이 서툰 윤원의 흰 얼굴에는 가득 홍조가 돌았다. 귓불은 이미 터질 듯 새빨개져 있었다.

point 2 줄거리

: 윤원은 오메가를 혐오한 어머니 탓에, 오메가로 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밝히지 못한다. 그런 윤원은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학창 시절 지독한 학교폭력에 시달렸고, 그 트라우마의 여파로 수능을 망친 채 편의점 알바를 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윤원의 어머니는 은퇴한 재벌 서승택과 재혼을 하고, 윤원은 서회장의 후계자인 장남 서정후와 천재 대학원생 차남 서건민과 한 집에 살게 된다.

승: 정후는 귀여운 동생 윤원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소극적이고 낯을 가리는 윤원을 살뜰히 챙긴다. 반면, 건민은 윤원을 박대하며, 동생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후는 자신에게 서서히 곁을 주며 마음을 여는 윤원에게 보호자 이상의 감정을 느끼고, 건민 역시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 윤원에게 생경한 욕구를 느낀다. 그러다 윤원의 히트에 두 형제가 동시에 휘말리면서, 윤원 쟁탈전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전: 윤원에 대해 알아가면서, 두 형제는 윤원이 방임과 학교 폭력에 시달렸고, 그 어떤 치료도 받지 못해 심신이 망가져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편, 재수 학원을 다니게 된 윤원은, 그곳에서 과거 자신을 괴롭히던 민규과 만나고, 재발한 트라우마로 몽유병을 앓는다. 민규가 주동자 태욱에게 윤원의 거취를 알리면서, 윤원의 상태는 최악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정후는 윤원을 설득해 태욱과 패거리를 고소하고, 윤원은 학원을 그만둔다.

결: 윤원의 사정을 알게 된 승택은, 아내의 본성을 깨닫고 그녀와 이혼한다. 정후는 윤원을 위해 지금까지 쌓아 온 것들을 버리려 하고, 건민은 정후와 정후를 좋아하는 윤원을 보며, 윤원을 포기하려 한다. 하지만, 형들을 좋아한 윤원은 형들의 희생이 싫었고, 결국 도망친다. 정후와 건민은 서로에게 폭발하여 그간 쌓인 응어리를 풀어내고, 합의점(?)을 찾아 윤원을 데리고 온다. 세 사람은 평화로운 동거를 시작하고, 윤원은 우수한 성적을 받아 명문대생이 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상처 준 사람은 없고, 상처받은 사람만 있는 세상

'슬로우 데미지'의 기대치는 0였습니다. 1권을 시작한 저의 표정은 (=_=)였죠. 일단, 잉? 윤원? 표지 일러스트부터 도입부의 뻔한 전개, 평이한 서사... 관성에 의한 구매, 그 끝이 씁쓸했던 여러 케이스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읽다 보니 형제들의 티카타카와 윤원의 꼼지락이 너무 귀여웠어요. 그리고, 비현실적 존잘님들이 신데렐라 간택하는 할리킹이 아니라, 너무나 인간적인 형제가 비인간적인 환경 속에서 숨겨왔던 자아를 찾아가는 스토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물론, 소심하고 착하지만 자존감은 심해 바닥보다 낮게 깔려 있는, 상처수의 구원물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또 계속 읽다 보니, 그것만이 아니었구나 싶었습니다. 저의 표정은 (+~+) 변했어요. 이 소설 속에서 자낮수는 단순히 무한한 공의 사랑을 받아 밝아지는 것이 아니었고, 원래 잘난 공들은 진심 어린 애정, 단 하나만이 부족한 이들도 아니었습니다. 윤원은 자신의 오랜 상처를 해결해 준 정후를 스스로 떠나고, 정후와 건민은 인생에 미뤄둔 숙제를 끝내고 나서야 윤원을 얻을 수 있었죠. 참 잘 짜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슬로우 데미지'에서 가장 감탄한 부분은 인물 묘사였어요. 전형적인 듯 보이지만, 개성 있고 일관된 캐릭터가 잘 표현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이소 작가님의 '개 같은 베이비'와 비교해 봤을 때, 정말 엄청난 변화로 느껴졌습니다. 오메가버스, 집 안의 차별, 재벌물, 구원물 이라는 유사한 클리셰임에도, '슬로우 데미지'가 훨씬 설득력 있고 흡입력 있는 작품이었어요.

세상에 상처받았다는 사람은 많지만, 상처 줬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상하죠?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으면 준 사람도 있을 텐데, 모두는 피해자이고 위로가 필요합니다. 몇몇 가해의 기억도 실수로 치부하거나 반성으로 충분하다고 여겨요. 나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고, 세상엔 나보다 나쁜 사람도 많다고 믿으면서요. 불행의 원인을 나의 과오보다, 그저 권력도 돈도 없는 사회적 지위에서 찾고, 억울해 하기도 합니다.

한 걸음 물러나서 보면, 객관적으로 보일 만도 하지만, 늘 그 한가운데 있을 때는 그 실상을 깨닫지 못해요. 그렇게 속세의 수레바퀴는 돌고 도나 봅니다.

윤원의 어머니는 피해자예요. 남자 오메가와 바람난 남편으로 인해, 졸지에 외벌이로 아들을 키워야 했죠. 아들을 짐짝처럼 여기고, 그 아들이 괴로움에 허덕이는 것을 무시하지만, 그래도 자식을 때리거나 버리는 사람보다는 낮다고 여겼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재벌을 만나 재혼하기까지 했으니, 윤원은 평생 갖지 못할 부를 자신 때문에 누려보는 거였어요. 그래서, 아들에게 부채가 없다고 여기는 어머니는, 아들의 끔찍한 학교폭력 사실을 알게 되었을때도, 그 아들을 위로하기보다는 남편에게 자신을 변호해 주길 바라죠.

정후와 건민의 아버지 역시 피해자입니다. 가족을 중요히 여기는 서승택은, 아내 없이 아들들을 훌륭하게 키웠지만, 아들들은 자신에게 박대합니다. 첫째 아들은 회사 경영권을 승계 받은 이후에, 무능하지만 자신이 아꼈던 동생을 내치고, 자신과 다른 스타일로 경영을 하죠. 결혼은 하지도 않고, 결혼 전에 분가 불가의 명을 어기고 웬 남자와 정분이 나서 집을 나가겠다고 합니다. 둘째 아들은, 가족 모임은 고사하고, 말은 귓등으로 듣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왜 아들들이 어머니의 애정에 목말랐고, 그 관심을 독점하기 위해서 어떤 상처를 가지게 되었는지는 관심을 가지지 않아요.

정후와 건민 역시 피해자죠. 정후는 권리에 맞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고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일생을 살아요. 그러면서도, 모난 동생의 뒤처리를 도맡으며, 의젓한 장남의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관심은 하고 싶은 것 다하는 건민에게 향하고, 이렇게 노력해도 아버지는 늘 부족하다 여깁니다. 건민은 애당초 형에게 모든 걸 빼앗겼다고 생각합니다. 후계자의 지위, 어머니의 관심, 그리고 윤원의 사랑까지 말이에요. 그저 자신은 곁방에서 좋아하는 로봇만을, 조용히 만들며 살 뿐이라고요.

어째 죄인은 윤원 한 사람뿐인 듯 합니다. 또, 어머니를 이해하는 것도, 승택의 부를 누리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것도, 애정을 받는 것에 감사하는 것도 윤원 혼자인 것 같아요. 윤원 인생 그 자체는 만신창이인데 말이죠. 윤원은 어머니에게도, 학교 폭력 가해자들에게도 사과받지 못합니다. 그들은 나름의 인과응보를 당하지만, 그 결과에서조차 그들은 억울한 피해자를 자처해요.

윤원은 오메가라는 사실을 숨긴 채, 부실한 영양 상태와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오랜 기간 억제제를 먹고 소취제를 뿌리며 살았어요. 그래서, 오메가로서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했고, 엉망인 몸은 폭탄처럼 히트를 터트립니다. 거기에 휘말려, 알파인 형들과 잠자리를 하게 되죠. 형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다정하고 상량했지만, 정후는 맞선을 보러 다녔고 건민은 친절하지 않았어요. 윤원은 우유부단하게 두 사람 사이를 오가면서도, 정착할 근거를 찾지 못합니다.

윤원이 어머니의 요청을 자르고, 승택의 집을 나오며, 정후의 고백을 거절하는 결정을 하는 부분이 저에게는 피크 타임이었습니다. 자낮수가 자존감을 찾는다는 차원이라기보다는, 윤원이 사라진 뒤 나머지 인물들이 어떻게 변할지가 궁금했거든요. 물론, 해피엔딩을 위해서, 예상 가능한 전개로 이어집니다. 어머니는 현실을 도피하며, 승택은 경영권 일부를 돌려받고, 정후는 영화사를 인수하죠. 더불어, 세 사람은 공존과 균형을 이룩합니다.

분명 '슬로우 데미지'는 할링킹입니다. 권선징악의 룰에 따라, 달달물로 끝나는 구원과 성장의 스토리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로우 데미지'라는 제목이, 천천히 끓는 물에 죽어가는 개구리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 뜨거운 물은 피해지 의식인지도 몰라요. 아픈 것은 감각이고, 아프게 한 것은 인식이니, 당연히 머리보다 촉각이 예민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 감각에만 취해 있으면 칼의 휘두르고도, 사회를 탓하는 망상가가 될지도 모릅니다. 비커를 뛰쳐나온 개구리에게 필요한 건, 비단 용기뿐만은 아닐 거예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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