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B-Lab(비랩코믹스)

분량: 본편 2권

point 1 한 컷

point 2 줄거리

기: 나츠카는 고등학교 때부터 하쿠시마를 좋아해, 대학까지 따라간다. 하지만, 과거 '그릇'에 대해 고민하는 하쿠시마를 보고 섣불리 고백하지 못한 채, 섹파 세노와 욕구를 풀며 하쿠시마의 친구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느 날, 사소한 잔소리에 빈정 상한 나츠카는 집으로 찾아온 하쿠시마를 돌려보내고, 돌아가는 길 하쿠시마는 세노의 오토바이에 치인다. 그리고, 먼저 정신이 든 세노는 자신이 '하쿠시마 히로'라고 말하고, 하쿠시마는 의식불명에 빠진다.

승: 세노의 몸에 들어간 하쿠시마는 집으로 가지 못하고, 나츠키의 집으로 찾아간다. 나츠키는 세노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둘만의 추억인 '루바이야트'시를 암송하자, 하쿠시마의 말을 믿게 된다. 그렇게 두 사람의 동거는 시작되고, 나츠키는 하쿠시마의 몸을 돌릴 방법을 찾는다. 그러던 어느 날, 하쿠시마에게 게이라는 사실을 들킨 나츠키는 폭주해서 하쿠시마를 안으려 하지만, 하쿠시마는 거부한다. 한편, 나츠카의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는다.

전: 하쿠시마와 나츠카는 함께 본가로 가고, 나츠카는 입양 사실을 고백한다. 나츠카는 다시 하쿠시마에게 고백을 하고, 하쿠시마는 나츠카를 받아들인다. 한편, 의식불명의 '하쿠시마'가 깨어난다. 혼란을 느낀 나츠카는 세노의 몸에 들어간 하쿠시마를 믿고 계속 사랑한다고 고백하지만, 그는 하쿠시마를 연기해 나츠카를 속인 세노였고, 사실을 밝힌 세노는 나츠카의 집을 떠난다. 한편, 나츠카는 진짜 하쿠시마가 그날 사고를 낸 이유를 듣고, '친구'로서 위로해 준다.

결: 세노가 고등학교 동창임을 알게 된 나츠카는 세노를 찾아 고향으로 내려간다. 세노는 오랫동안 나츠카를 좋아했지만, 하쿠시마만을 바라보던 나츠카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나츠카는 세노의 하숙집에서 굶고 있는 세노를 발견해 병원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그곳으로 찾아온 하쿠시마에게 커밍아웃하고 세노와 함께 살 계획에 대해서 알린다. 하쿠시마는 나츠카를 격려해 준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뻐꾸기 3마리

타메코우님은 개성이 강한 작가님입니다. 정확히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다양한 소재와 연출을 사용했음에도, 각 작품들에서 '일관성'이 느껴져요. 그것이 스타일 때문인지, 아니면 어떤 동일한 메세지가 함의 되어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생각의 꼬리가 꼬리를 물어고 늘어지면, 그 자체로 소설이 될 것도 같고 말이에요. 다만, 타메코우 풍의 감각적 표현법이 있고, 비정상적 주인공들의 보편적 정서에 대해서 말하고 있긴 한 것 같습니다.

제가 타메코우님 작품 중에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라라의 결혼'입니다. 정발은 1권까지 됐고, 일본에서는 3권까지 발간된 것으로 알고 있는, 미완결 작품이죠. 'ZE'처럼 일본 발간과 정발 사이에 시차가 벌어지는 것 같아, 내심 언젠가는 다 보겠지... 마음을 내려놓고 있습니다.....(훌쩍 ㅠ.ㅜ)

'뻐꾸기의 꿈'은 뻐꾸기 3마리가 꾸는 꿈에 대한 이야기예요. 묘~하죠. 본디, 뻐꾸기라는 새는 원래 둥지의 주인을 몰아내고, 그 주인이 받았어야 하는 애정과 안락을 훔쳐 주인 행세를 하는 악역을 빗댈 때 사용되잖아요. 분명, 정상적이지 않고, 윤리적이지도 않죠. 하지만, '뻐꾸기의 꿈' 속 3마리 뻐꾸기를 보면, 뻐꾸기로 살아가는 그들이 안쓰럽고 치열해 보입니다. 그 안에는 가장 순수한 애정을 갈구하지만, 그 순수성에 대해서 결코 단정할 수 없는, 보편적 갈등이 담겨있기 때문일지도요.

첫 번째 뻐꾸기, 나츠카는 친동생의 자리를 차지한 뻐꾸기예요. 슈퍼 사장인 양부모에게 입양되어 자라는 동안 친동생이 생기지만, 집 안에서는 여전히 나츠카를 후계자로 여깁니다. 나츠카의 가족들은 나츠카를 다정하고 격식없이 대해주고, 언제나 '가족' 속 그의 자리를 비워둡니다. 하지만, 나츠카는 그 둥지 안에서 이질감을 느끼며, 권리 없는 행복과 자격 없는 자리를 받았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거칠어졌고, 학교에서 트러블이 생겼습니다. 그런 나츠카를 도와주고, 친구로서 함께해 준 사람이 바로 하쿠시마였어요.

나츠카는 하쿠시마를 좋아하고, 어쩌면 자신이 주인이 둥지를 함께 만들 수도 있을 거라고 바랐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츠카는 후쿠시마에게 고백도 하지 못하고,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도 밝히지 못하며, 친구로서 만족해야 했죠.

그 이유는, 하쿠시마가 이런 외모, 이런 집안, 이런 성적, 이런 성격이 아니었다면,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를 좋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무엇을 그 사람으로 정의해야 하는지는 난해한 문제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반문하게 되는 질문입니다. 사고로 외모를 잃어도, 집안이 망해도, 내가 더 이상 우수한 인기인이 아니어도, 지금처럼 한결같이 사랑받고 싶다. 사람은 그런 소망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물론, 정답은 없고, 그래서 아직도 돌고 도는 듯 합니다. 나츠카에게도 그랬을 테고요.

하지만, 상황이 바뀝니다. 하쿠시마의 영혼이 세노의 몸으로 들어갑니다. 세노의 육체를 지닌 하쿠시마는, 담배를 피우고, 문신을 했고, 닳고 닳은 게이였지만, 나츠카는 여전히 하쿠시마를 사랑하고 있었어요. 나츠카는, 과거 하지 못한 질문에 대해 확실한 답을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쿠시마가 '그' 그릇이 아니어도, 난 하쿠시마의 영혼, 그 자체의 본질을 사랑하고 있어!라고 말이죠.

두 번째 뻐꾸기, 바로 하쿠시마를 연기한 세노입니다. 나츠카는 한 사람을 사랑하면, 올인하는 스타일이었어요. 하쿠시마가 모르는 것이 이상 할 정도로, 언제나 하쿠시마를 바라보고 있었죠. 그래서, 하쿠시마 이외의 것들은, 하쿠시마와의 비교 대상일 뿐 그 자체로서 비치지 않습니다. 섹파인 세노에게도, 하쿠시마에게는 없고 세노만 있는 것들을, 무의식적으로 거부할 정도로 말이에요.

하지만, 세노는 하쿠시마에게 향하는 나츠키의 애정이 탐났습니다. 그 올곧은 시선을 받고 싶었죠. 하쿠시마는 '그릇'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지만, 세노는 그 애정이 주는 행복에 참과 거짓을 따질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내가 사랑을 받아 행복하다면, 그 소중한 것을 감사히 아껴주리라... 어쩌면, 하쿠시마의 고민은, 세노에게는 가진 것이 많은 자의 배부른 고민처럼 여겨졌을지도 몰라요.

그럼에도, 세노는 그렇게 그리고 그리던 나츠카의 다정한 손길을 거부합니다. 욕구만 해갈되면 그만이었던 그간의 정사와, 전혀 다른 그 몸짓을 견딜 수 없었죠. 세노는 세노로서 사랑받고 싶었으니까요. 세노는 이 둥지에서 자신이 불청객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지워내지 못합니다.

마지막 뻐꾸기, 하쿠시마예요. 하쿠시마는 형의 형수와 부정한 관계를 맺습니다. 실제로, 작품 내에는 자세히 나와있지 않지만, 하쿠시마의 집에 있는 형수의 물건들과 그 물건을 돌려 달라는 형수를 뻔뻔하다 분노하는 하쿠시마의 모습,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어져 온 그릇에 대한 고민 역시, 두 사람이 '좀 친한'관계는 아님을 추측하게 하죠. 무엇보다, 사건의 발단이 된 교통사고가 하쿠시마의 자해였다는 것만으로도 하쿠시마의 절박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쿠시마는 형이 주인인 둥지에서, 형의 여자를 탐낸 뻐꾸기였던 셈이죠. 후쿠시마는 교통사고가 나서 자신이 많이 다치게 되면, 예정된 형과 형수의 결혼식이 성사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깨어난 후쿠시마는 형수 노릇을 하기 위해 집을 찾은 '진짜' 형수를 만나게 됩니다. 그녀가 있는 둥지는 형의 둥지였고, 형수도 형의 것이었으니, 그것을 빼앗긴다고 해도 객은 억울해 할 수 없습니다. 후쿠시마가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자해였던 것처럼요.

원래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뭐가 있을까요? 누구 말대로 좋은 부모 아래 태어난 것도 나의 운이니, 부모의 재산도, 그로 인한 기회도, 마땅히 나의 것일까요? 틀리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딘가 반발감이 느껴지긴 하죠. 그 이유는, 노력 없이 우연히 얻은 것을 당연히 독점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 Crystal Clear한 답변이 아직까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나의 것이 아니라고 느껴지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 껄끄러운 일일 거예요.

그래서인지, 저는 이 장면이 많이 인상 깊었습니다. 후끈하지도, 절절하지도, 유쾌하지도 않은데, 잠시 멍~ 때리고 봤던 것 같아요.

왜 그럴까? 생각해 봤더니, 이 장면에는 '뻐꾸기'가 없더라고요. 세노와 나츠카가 있을 때는 세노가, 나츠카와 하쿠시마가 있을 때는 나츠카가, 거짓으로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연기합니다. 하지만, 이 병실은 속여야 하는 자도 없고, 속이고 싶은 자도 없는, 그냥 그 자체로 있어도 상관없는 장소였고, 그래서 이곳이 뻐꾸기가 주인인 둥지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뻐꾸기들은 이제 그 불편한 둥지에서 독립을 선언합니다. 나츠카는 슈퍼 후계자 자리를 고사하고, 세노와 함께 동거하며, 하쿠시마에게 게이라는 사실을 밝혀요. 세노는 '나츠카 스토커'에서 은퇴하고, 세노로서 나츠카의 흔들림 없는 시선을 받습니다.

세노는 하쿠시마에게 나츠카의 애정을 정말 몰랐냐고 묻습니다. 대답을 하지 못한 하쿠시마는 세노에게 다정한 나츠카의 모습을 바라보죠. 하쿠시마는 편안한 표정으로 웃으며 그들의 보금자리를 떠납니다. 나츠카의 애정도, 형수에 대한 연심도, 결국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는 듯이 말이에요.

예전에 안젤리나 졸리가 영화 시상식에서, '왜 나는 나이고, 난민은 난민인지 모르겠다.' 말한 것을 들은 적 있습니다. 왜 그들은 굶주리고 위협받고 있으며, 나는 이 화려한 시상식에서 스포트라이트와 갈채를 받고 있는가... 어쩌면, 뻐꾸기들은 억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도 뻐꾸기로 태어나고 싶지 않았어! 태어나 보니 뻐꾸기였고, 뻐꾸기로 살았을 뿐이야!라고 할지도요.

다만, '왜'라는 질문은 너무 현학적이니, 좀 더 쉬운 길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무엇을'이라는 말이에요. 세 뻐꾸기들이 그랬던 것처럼요. '뻐꾸기의 꿈'은 이 세 명의 뻐꾸기가 꾼 꿈 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모든 뻐꾸기들의 바람을 뜻하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

출판사: 연필

출간일: 2019.06.03

분량: 본편 4권

 

 

 

point 1 책갈피

"폐하, 이렇게 살아 폐하를 다시 뵈니 너무나도 기쁘지만...... 만일 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희, 어리석구나. 어찌 그런 말을 하지."

"......"

"네가 짐이었다면, 그때도 그리 생각했을 것 같으냐."

"폐하, 어찌...... 어찌 제가 그렇게 생각하겠습니까."

단우가 당치도 않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화인은 그를 더욱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기며 몸을 단단히 붙였다.

"한데 어찌 짐의 마음이 다르리라 생각하느냐."

"...... 저는 폐하를 연모하기 때문에, 저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폐하를 먼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폐하처럼, 대단한 분이 될 수 없는 것이겠지요."

그 말에 화인은 한숨처럼 웃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를 먼저 생각한다면, 그것이 연모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화진 국왕에게 그런 전갈을 받았을 때 그를 버린다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배제하고 구할 방법부터 생각했던 자신의 마음은 무엇일까.

가장 특별히 아끼던 수집품을 잃은 자가 할만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그것은 자신도 끔찍하리만큼 노골적으로 느껴왔다.

"...... 그렇다면, 우희."

"......"

"짐 역시 너를 연모하는 모양이다."

point 2 줄거리

기: 소국 화진과 대국 창이 화친을 맺으며, 화진의 창녕대군 위단우는 창의 볼모로 가게 된다. 그 후 청운궁에 머물게 된 단우는 하인들의 박대 속에서, 제대로 된 섭식, 관계, 배움도 없이, 고립된 채 서러운 생활을 한다. 그런 단우는 간혹 청운궁을 찾다가 아예 발길을 끊어버린 2황자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8년을 보낸다. 한편, 화진의 국왕이 화친을 깨고 창의 땅을 침범함하자 창의 황제는 단우를 불러 죄를 묻고 죽이려고 한다. 그때, 태자가 된 2황자가 나타난다.

승: 소국 화진은 제갈량의 현신이라 불리는 학자 한맹위를 얻고 창을 쳐 창의 땅을 얻었다. 태자는 이 한맹위를 창으로 데리고 온 상으로 단우를 요구하고, 화진의 대군 신분을 버린 단우는 동궁 내 연위궁에 머문다. 그러던 어느 날 태자의 정사를 엿보게 되고, 얼떨결에 함께 하게(?) 된 후, 단우는 태자의 총자가 된다. 그리고 태자의 지밀에서 나신으로 목줄을 차고 태자만을 기다리며, 성적으로 길들여지고 통제받는다. 그러던 중 황제와 태자는 광보성으로 떠난다.

전: 4황자는 그 틈에 연위궁을 찾아 단우를 모욕하고, 태자가 묶어준 정조대를 훼손시킨다. 한편, 황제는 정신을 잃어 급히 환궁한다. 황제의 병인은 중독이었고, 황제는 곧 병사한다. 그리고, 4황자의 친모인 귀비가 준 다식판에서 독이 발견되면서, 4황자는 모반죄로 죽는다. 황제가 된 태자는 단우를 은밀한 낙랑궁으로 옮기고 탐한다. 그때, 화진 왕비의 무사였던 윤상궁이 단우를 화진으로 도피시키려다 잡히는 사건이 발생하고, 단우는 황제의 계략을 알게 된다.

결: 불행한 인생의 원인이 황제라는 것을 알게 된 단우는 그를 거부하고, 황제는 폐가와 다름없는 영수궁으로 단우를 유폐한다. 단우는 반성하고 황제에게 돌아가지만, 곧 한맹위를 찾기 위해 창으로 온 화진의 사신단에 의해 붙잡혀 화진으로 간다. 황제는 한맹위의 신분으로 화진에 가 단우를 구하고, 단우는 천둥 트라우마 이면에 숨겨진 친부의 비극사를 기억해 낸다. 단우와 황제의 도움으로 화진은 새로운 왕을 맞는다. 창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산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불가역'과 '화중매'

베스트셀러 혹은 스테디셀러는 많고, 무공진님의 작품들 중에도 유명한 작품이 많지만, 세계관 주인공 서사 모두를 인정받는 작품은 많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점에서 무공진님의 '불가역'은 명작 중에 명작이죠.

'화중매'는 '불가역' 그 이후 창의 황실을 배경으로 합니다. 태조가 기틀을 잡았던 창천성, 태조의 마지막 전투가 있었던 광보성, 글과 그림에 빠져 있던 태조... '불가역'의 내용이 소록소록 떠오르죠. 또, 직접적이진 않지만, 탈 많았던 희매성, 매위가 좋아했던 하미과, 산이 피운 남령초 등 소재들도 간간이 등장해 소소한 재미를 선사해 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인을 보며 산을 오버랩하게 되는 부분들도 제법 있었어요.

그러면, '화중매'는 '불가역'의 후속작이나 아류작처럼 느껴지는가? 물으신다면, 아닙니다! '화중매'에는 '화중매'만의 매력이 있습니다.

일단, 산과 강은 감정적으로 건강했습니다.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을 수 있었죠. 다만, 그들 사이엔 '과거'의 역린이 아슬아슬하게 돋아 있었어요. 하지만, '화중매'에 두 사람은 감정적으로 건강하지 않습니다. 화인의 단우에 대한 소유욕은 아름다움에 대한 수집욕으로 시작해서, 통제욕을 거쳐, 마지막에서야 연심에 다다릅니다. 그 대상이 된 단우는, 화인의 총자일때도 연인일때도, 절대적 맹종을 보이죠.

제갈량의 버금가는 지략가이자 계략가, 하지만 그 우수한 이성의 산물도 결국은 감정을 가진 인간입니다. 화인은 심리적 허기를 심미적 만족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도자기, 보석, 심지어 사람까지도 아름다운 것들을 모아요. 겁 먹은 10살의 단우 역시 그렇게 눈에 띕니다. 화인은 단우를 진심으로 아끼는 윤영을 8년간 단우와 격리시켜 놓고, 청운궁에 단우를 방치한 채 간간이 찾아가 오아시스 같은 다정함을 쏟아부어 줍니다.

화진의 왕비와 밀약을 했으면서도, 유일한 구세주인 마냥 단우를 구해요. 그리고, 고립되어 제대로 배우지도, 사람을 사귀지도 못한 채, 백치가 된 단우을 성 노리개처럼 조련하죠. 그렇게 아낌 받는 것이, 단우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이자 유일무이한 상량함인 것처럼 말이에요. 화인이 도자기를 닦는데 들이는 시간은 줄어들고, 단우를 길들이는 시간은 늘어납니다. 그리고, 단우가 '진정한' 총자가 되자, 화인은 더 이상 도자기와 보석을 모으지 않죠.

또 다른 차이이자,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수 포지션입니다. '불가역'에 능력수, 얼마나 능력이 있느냐 하면 공을 덜덜 떨게 할 정도의 능력이죠. 천리안을 가지고 있고, 장서각의 책은 모조리 읽고도 결코 잊지 않는 비망의 재주를 가진, 하늘로 돌아갈 수 있는 귀한 신분! 아름다운 외모와 서화에 능한 사기캐예요. 강은 산에게 천하를 얻게 해 준 책사이자 치세를 돕는 든든한 내조자였어요. 두 명의 수 모두 똑같이 냉궁에 갇히지만, '불가역'에서 공이 사정해서 수를 데리고 왔다면, '화중매'에서는 수가 사정해서 공이 용서해 주는 모양새였죠.

반면, '화중매'는 수가 너무 백치 같다, 답답하다, 고구마다, 라는 리뷰를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그리고, 아마도 작가님은 그렇게 보이도록 의도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단우가 암굴에 갇혀 있다가 화인을 만났어도, 절대자처럼 느껴졌을 거예요. 하지만, 단우가 있었던 환경은 암굴보다 훨씬 냉혹했죠. 신분이 낮은 이들에게 음식과 같은 기본적 욕구를 저당잡힌 채 조롱당했고, 이런 서러운 삶에 유일한 출구였던 귀국의 꿈은 아버지가 자신을 버림으로써 끝났습니다. 사람은 있었지만, 자신과 대화해 줄 사람은 없었고, 문밖에 세상은 있었지만, 문을 열 수는 없었어요. 비록 이 모든 것이 화인이 꾸몄다 하더라도, 단우가 따뜻하게 대해 준 단 한 사람을 절대적으로 의존하지 않을 방법은 없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계략공의 레벨이 업! 합니다. '불가역'에서 산 역시, 처음부터 모든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일을 꾸미고 상황을 유도합니다. 하지만, 건국황인 산은 전쟁에서 칼을 들고 싸우는 황제였고, 화인은 무능한 선황을 몰아내고 창의 번영을 되찾아야 하는 지능형 암투가였죠. 산이 명민한 야수였다면, 화인은 괴물을 품은 선비라고 볼 수 있어요. 화인은 긴 시간 공을 들여, 어떠한 불필요한 손실 없이,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집니다. 무시무시해요.

그 대표적인 설정이 '한맹위'예요. 강건한 창은 무능하고 여색만 밝은 황제로 인해 지고 있고, 주변 소국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립니다. 소국의 황자들을 볼모로 잡고 있지만, 창의 근본적인 내실 문제는 나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화인은 트리거를 당겨요. 바로, 한맹위로 위장해서 화진의 황제에게 천하를 가질 수 있는 천기를 누설한 것! 화진은 청천성까지 창의 땅을 삼키고, 야심가인 화진의 국왕은 단꿈에 젖어들죠.

그때, 한맹위가 창에 억류됩니다. 그로부터 10년, 화진은 창과 화친이 깨진 상황에서, 더 이상 진격도 하지 못하는 사면초가에 빠져요. 한편, 화진에 영토를 빼앗기면서 창의 실태가 면면히 드러나고, 선황의 권위는 땅으로 떨어집니다. 하지만, 화인은 태사는 양위를 권고에도 불구하고, 되려 이를 사양하며 황제를 천천히 독살합니다. 주변국의 승냥이떼가 기회를 노리는 시국에, 내부에서 갑론을박의 양분화를 막아야 했으니, 효자로서 무탈히 황제에 오를 수를 노린 셈이죠.

단순히 SM을 동양풍으로 각색한 자극물이라기엔 볼거리도 풍성하고, 흥미진진한 서사도 '불가역' 못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천둥과 악몽이라는 복선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화진의 혁명에 명분을 제공하기 위해서든, 단우가 친부에게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든, 아니면 황제를 영수궁으로 가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든, 뭔가 쓰이다 만 느낌입니다. 초반부터 너무 의미심장하게 여러 번 등장한 것치고는, 살짝 바람 빠지는 것 같았어요.

※ 동일 작가의 다른 작품 리뷰

 

2020/09/24 - [BL 소설] - [시대물/인외존재/시리어스물] 불가역 - 무공진

 

[시대물/인외존재/시리어스물] 불가역 - 무공진

제목: 불가역 작가: 무공진 출판사: 연필 출간일: 2019.03.27 분량: 본편 9권 #point 1 한 줄 "내가 널 겁먹게 했어." 산이 그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가 노력해 보겠다고 해야 했어. 시간을 달라

b-garden.tistory.com

2020/09/30 - [BL 소설] - [현대물/연예계물/시리어스물] 소실점 - 무공진

 

[현대물/연예계물/시리어스물] 소실점 - 무공진

제목: 소실점 작가: 무공진 출판사: 연필 출간일: 2017.01.20 분량: 본편 5권 + 외전 1권 #point 1 한 줄 정말 많이 좋아하는 거면 그건 사랑하는 걸까. 이준은 스치듯 생각하며 작게 웃었다. 그래도 그건

b-garden.tistory.com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

출판사: 블래스트

출간일: 2020.05.07

분량: 본편 3권

 

point 1 책갈피

"나한테는... 가족이 중요해요."

맥주 캔을 쥔 인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럼 그렇지. 씁쓸한 마음에 맥주를 마시며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준원이 고기를 다시 뒤집는다. 기름이 떨어지며 숯에서 불이 후루룩 올라왔고, 익은 고기는 능숙하게 한쪽으로 옮겨 놨다.

"그래도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인우가 다시 고개를 돌려 준원을 바라봤다. 준원은 익은 고기를 접시에 덜어 놓은 뒤 눈을 맞추고 웃었다.

"인우씨 옆에 있을게요."

인우는 눈조차 깜빡일 수 없었다. 준원의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무조건 인우씨 편들어 줄게요. 내가 많이 좋아하니까."

그는 곧 아무렇지 않게 남은 고기를 올려놨다. 치이익- 고기 익어가는 소리가 사랑의 세레나데처럼 들렸다. 인우가 위로 올라가는 입술을 애써 감쳐물고 맥주를 입으로 가져갔다. 괜히 민망해져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이 반짝반짝 수두룩했다. 아, 왜 이러지? 이럴 리가 없는데. 서울 하늘에 저렇게 별이 많을 리가 없는데. 매일 보던 하늘도 땅도 나무들도 왜 달라 보이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point 2 줄거리

기: 엔조이 게이 라이프를 즐기며 살고 있던, 톱스타 배우 김인우는 야구 시구 차 야구장을 찾는다. 인우는 얼굴을 붉히며 팬을 자처하는 서준원을 보고, 호기롭게 자신의 시구볼을 치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서준원이 친 볼은 인우의 중요 부위로 직진하고, 인우는 국민 고자(?)가 된다. 준원은 사과하기 위해 인우가 입원한 병원을 찾는다. 그리고, 인우의 빨간(?) 요구를 받게 되고, 이런 자극을 처음 맞본 준원은 기절한다. 그 후 재도전(?) 끝에, 무사히 뜨밤을 보낸다.

승: 인원의 오랜 팬이었고, 인우를 많이 좋아했던 준원은 바로 고백한다. 하지만, 인우는 준원을 거절하고, 준원은 상처 입는다. 한편, 준원의 은퇴 소식이 터지고, 은퇴 사유로 인우가 거론되면서, 인우는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 어쩔 수 없이 인우는 준원을 만나 해명을 부탁한다. 하지만, 인우의 예상과 다르게 준원은 사과를 했고, 그런 순수한 모습을 본 인우는 준원과 만날 수 없는 이유를 솔직히 고백하고, 개의치 않는다면 만나자고 제의한다.

전: 두 사람의 연애는 시작되었다. 인우는 11자리 번호로만 저장되어 있는 수많은 섹파들을 정리하고 준원에게 정착하려 한다. 반면, 은퇴 후 제빵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떠날 예정했던 준원은, 한국에 빵집을 차리기로 계획을 선회한다. 한편, 인우는 오랜 염원인 윤태용 감독 작품 출연을 위해, 강원도에 은둔한 윤감독을 찾아가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고를 당해 쓰러진 윤감독을 구하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김원기와 윤감독 영화를 함께 찍게 된다.

결: 게이인 김원기는 인우의 난잡한 생활을 알고 있었고, 흥미 삼아 인우와 즐겨보려 수작질을 부린다. 한편, 인우의 전 섹파이자 준원의 친형인 영민은 둘 사이를 반대하지만, 준원은 오히려 가족들에게 인우와의 관계를 당당히 밝힌다. 그때, 인우의 섹스 동영상과 스토커가 나타나고, 윤감독 영화 캐스팅의 비밀이 드러나는 등의 사건사고가 발생하지만, 두 사람은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알콩달콩 사랑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What for?

사회생활은 무데뽀, 사생활은 동물남, 하지만 겉과 속이 똑같아서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백치수! 이런 인우가 저의 생활에 비타민이었을 때가 있었죠. 물론,한결같은 인우쟁이 준원이야 말할 것도 없고요. 어쩌면, 인우가 이렇게 투명하기 때문에, 연기를 잘 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알람이 안 울려도, '그' 시간이면 눈이 떠지는 것처럼, 다른 일을 하다가도 업댓 시간이 되면 자연스럽게 접속할 정도로, 열심히 챙겨 봤던 연재작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마지막에 fin이라는 글자를 봤을 때는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순간 fin tech인가?라는 엉뚱한 생각까지 들었을 정도였어요. 갑자기, 준원과 사랑을 외치며 끝납니다. 준원 집안과의 갈등이나, 의미심장한 서영민의 경고, 온갖 고초를 겪어가며 찍게 된 영화에 대한 마무리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연재작이란 작가의 일신상 혹은 출판사 사정이나, 단순히 새로운 작품에 필이 꽂혀서 등등 여러 이유로 허망하게 끝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실망은, 그 요일, 그 시간을 기다려 읽었던 독자의 몫입니다.

그러다 우연치 않게, 단행본을 읽게 되었습니다. 외전 형식으로나마 벌려 놓은 떡밥들을 회수해 놓으셨더라고요. 그나마 다행입니다. 김원기는 마약에 강간 미수, 동물 학대까지 했는데, 녹취 하나 약점으로 남겨 놓고 눈치 보며 종결! 영화는 그럭저럭 찍고 있음! 우리만 사랑하면 장땡이지! 가 아니라, 단행본 발간과 함께 더해진 외전에는, 옴팡지게 고생하는 김원기와 순항하고 있는 촬영, 인우의 선물공세에 한풀 꺾인 회장님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영민의 경고가 암시했던 사건들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순수한 염려였던 것으로...

인우는 아마도, 이렇게까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줄 몰랐을 거예요. 인우는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성공한 배우였고, 충분히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섹파들이 많이 있었죠. 욕구에 충실한 단세포 동물! 조금 부족한 지식과 상식, 더 부족한 수치심까지, 엔조이 게이 라이프를 부추겼을 거예요. 하지만, 자신과 전혀 다른 순정 곰탱이 서준원을 만납니다. 형과 섹파라고 해도, 동영상이 있다고 해도, 김원기가 인우의 난잡한 성생활을 고자질해도, 심지어 집안의 반대가 있어도, 흔들리는 척 조차 하지 않는 직진 순정 다정남말이에요.

인우가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지금까지와의 다른 삶이 시작됩니다. 하나는 연인으로서, 다른 하나는 배우로서의 삶이었죠. 성욕은 있어도 애욕은 없었던 인우는 한 사람에게 정착하려 합니다. 그러자, 지금까지 없었던 시련이 찾아와요. 젠틀한 섹파였던 영민은 인우를 걸레라고 부르며 무시하고, 섹스 동영상을 이유로 광고를 해지하려 하죠. 흔적도 없었던 과거 섹파는 스토킹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연예계에는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는 지뢰들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즐기는 생활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약점과 비난의 대상이 돼요.

배우로서 인우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윤감독의 영화에는 도무지 캐스팅되지 않았죠. 쫓아가면, 도망가는 윤감독이란 사람! 인우는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하고, 윤감독이 은신해 있는 강원도까지 찾아갑니다. 윤감독은 집에 없었고, 기다려도 오지 않았죠. 그때, 준원이 미심쩍은 흔적을 발견하고 윤감독의 사고를 추측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입원부터 보호자 소환까지, 놀라 덜덜 떠는 인우를 달래며 처리해 줘요. 물론, 깨어난 윤감독이, 생명의 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역할을 주진 않지만, 중요한 계기가 되긴 하죠.

더불어, 김원기가 마약사건을 덮기 위해 인우의 소속사와 계약하면서, 인우는 윤감독 작품의 무려 주연이 됩니다. 작은 역이라도 그저 감사했던 인우로서는, 고진감래라고 할밖에요. 그 애타는 구애의 몸짓이 빛을 봅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 역이 오롯이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김원기와 양대표의 찜찜한 거래가 있었다는 사실에 상처받습니다. 김원기는 웃는 낯으로 인우를 비웃고, 인우는 영화를 안 찍으려 하죠. 물론, 준원의 설득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에요.

살던 대로만 살 수 있으면, 편하지만 재미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절대적 다수는 살던 대로 살죠. 그래서, 정 반대의 사람을 만나, 살던 대로 살지 않으면서, 살던 대로의 방식으로부터 난관을 겪는 이야기는 흥미롭습니다. 게다가, 그 당사자가 우월한 외모와 재력을 지닌, 똘끼 충만한 육식남이라니! 저는 '순정 곰탱이'가 그런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이 이야기가 인우가 사랑을 깨닫는 과정이었나? 그럼 그간에 사랑을 느껴온 장면들은 뭐였지? 그냥 어느 날 보니, 생각보다 큰 사랑이었나? 연예계 일상물도 아니고... 뭘 쓰고 싶었던 거지? 제가 멘붕에 빠졌습니다.

캐릭터가 너무 사랑스럽고 매력적인이라, 더더 아쉬움이 짙은 작품이었어요.

※ 동일 작가의 다른 소설 리뷰

 

2020/09/11 - [BL 소설] - [현대물/코믹물] 열애기 - 계자

 

[현대물/코믹물] 열애기 - 계자

출판사: 블랙아웃 출간일: 2019.07.19 분량: 본편 3권  point 1 책갈피 "똥은 원래 지들이 무서워서 피했다고 생각하지, 싫어서 피했다고 생각 안해. 그러니까 한번쯤은 얼마나 내가 너희를 싫어하고

b-garden.tistory.com

2020/08/06 - [BL 소설] - [현대물/코믹물/배틀연애] 미친놈 종합세트 - 계자

 

[현대물/코믹물/배틀연애] 미친놈 종합세트 - 계자

출판사: 블랙아웃 출간일: 2017.10.16 분량: 본편 3권 point 1 책갈피 "살면서 한 번도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은 안 했는데... 요즘은 느껴. 그래도 버티고 살길 잘했구나" point 2 줄거리 기: 조직 폭력

b-garden.tistory.com

2020/10/22 - [BL 소설] - [오메가버스/현대물/시리어스물] 콜드 블러드 - 계자

 

[오메가버스/현대물/시리어스물] 콜드 블러드 - 계자

출판사: 수려한 출간일: 2019.12.17 분량: 본편 3권 ​ ​ ​ ​ point 1 책갈피 ​ ​ 잘 살자. 서로 위해 주면서. 아껴 주면서. ​ ​ ​ point 2 줄거리 ​ ​ 기: 알파 최기준은 연인이자 이복동생인 오

b-garden.tistory.com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

출판사: 비애노블

출간일: 2018.07.20

분량: 본편 3권

 

point 1 책갈피

"한철아, 사람이 꿈을 위해서 사는 거냐, 사람을 위해서 꿈이 있는 거냐."

박한철은 대답이 없다.

"너한테 내가 어떤 존재인지는 잘 알지만, 그래 봐야 우린 세상 앞에 다 핏덩이인 어린애들이야. 미래에 대해서 우리가 뭘 알겠냐. 지금 자신의 감정과 신념에 최대한 솔직하게 최선을 다할 수 있을 뿐인 거지. 꿈이 변했다고 해서 내가 다른 인간이 된 게 아니야."

스스로를 고정된 존재로 여기기 쉽지만, 존재하는 모든 것은 매 순간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 꾸었던 낡은 꿈으로 현재와 미래의 자신을 만족시키려는 의도야말로 위험하지 않을까. 현재의 자신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계속해서 면밀하게 살펴 나가는 그 과정이 삶이 아닐까. 변화의 흐름 속에 놓인 핏덩이에 불과한 나는 그렇게 생각해 볼 뿐이다.

"그리고 너, 예전 내 꿈의 진짜 허점이 뭔지 아냐?"

박한철은 나에게 허점 같은 게 없다고 믿는 놈이었다. 그런 믿음이 나를 더 일으켜 세워준 것도 사실이었지만, 가끔은 부담이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게 합쳐진 복잡한 관계가 바로 가족이겠지.

"사랑은 둘이서 하는 거고, 가정도 둘이서 꾸리는 건데, 난 내가 누구와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면서, 사랑의 방식과 형태를 혼자 미리 정해 뒀다는 거야. 아마 사랑을 안 해봤기 때문에 그랬겠지."

사랑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마다 내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안다미로의 얼굴이 떠올랐다. 예전에 나는 사랑의 감정을 떠올릴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방식만을 생각할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 사랑은 이렇게 해주고 저렇게 해줘야지, 하는 계획이 아니었다. 안다미로라는 구체적인 인간을 중심으로 다시 구축되는 삶 자체였다. 나 같은 놈에게 그게 어떤 행복인지, 안다미로는 알까.

point 2 줄거리

기: 시설에서 동생 한철과 독립한 19세 최무이는 중식집 대흥각 배달원 면접을 보고, 마의 진상 VIP 고객 124 맨션 펜트하우스 배달을 성공하며 채용된다. 속칭, 124맨션 또라이로 불리는 21세 안다미로는 D건설사 막내아들로, 망나니 게이 라이프를 즐기고 있었다. 어느날, 맛 좋은 대흥각 짬뽕 배달을 온 잘생긴, 일반인 형아에 흥미를 느낀다. 하지만, 잘빠진 아들(?)을 보여줘도, 라이브 자위쇼를 해도, 300만 원짜리 파카를 선물해도 이 형아는 요지부동이다.

승: 안다미로는 정글 같은 집 안에서 우아하고 과묵한 첫째 형을 짝사랑했다. 한편, 다미로는 중학교 시절 상류층 자제들이 모인 게이 클럽 다비드에서 첫동정도 떼고 연애도 한다. 그러던 중 첫째 형에게 키스하는 모습을 들키고, 형은 다미로를 보호하며 통제한다. 형의 그런 관심이 좋았던 다미로는 부푼 마음을 형의 그림을 그리며 풀었고, 그 결과물을 형에게 들킨다. 하지만, 형은 묵인한채 결혼하고, 딸 다미를 낳았으며, 이혼했지만 재혼할 예정이다.

전: 한편, 다미로는 무이를 꼬시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지만 모두 실패한다. 반면, 무이는 엉뚱한 짓을 일삼으며 눈앞에 알짱거리는 무개념 도련님이 귀여워 보이기 시작했다. 무이는 곧 다미로는 좋아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방만한 성생활에 절여진 늑대소년에게 다른 즐거움을 알려주기 위해, 쉽게 함락당해주지 않는다. 사랑의 신세계에 몸달은 다미로와 이런 무이가 밀당하는 사이, 다미로는 다비드 멤버들과 약에 취해 난잡해진 모습을 무이에게 들킨다.

결: 무이는 다미로에게 독설을 내뱉고, 124맨션에 배달도 가지 않는다. 그러던 중 무이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다미로는 무이의 판잣집에서 수발을 들며 반동거를 시작한다. 하지만, 무이의 동생 한철이 둘의 정사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되면서 난관에 부딪친다. 동시에, 이 반동거를 알게 된 다미로의 첫째 형은 역시, 다미로를 유학 보내려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의외로 쉽게 가족들을 설득한다. 그 후 무이는 소설가로 데뷔하고, 다미로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시작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 진짜 너희 나이를 말해봐!

김다윗님하면 차가운 도시를 배경으로 한 관능적 씬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전체적으로 차갑고, 날카롭고, 세련된 느낌... 씬장인으로 불리는 작가님들이 많으시지만, 이런 풍의 정사씬은 김다윗님이 으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봄보로봄봄'은 의외로 따뜻하고 유쾌한 작품이에요. 물론, 이 작품에서도 시크, 도도, 엣지의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입니다. 저는 김다윗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내가 얼마나 잘 쓰는지 보여줄게'라는 목소리를 들리는 듯해요. 거만하다기보다는, 자신만만하고 거침없는 필법이라는 인상에 더 가깝죠. 문장에서 여유가 느껴져요. 얼마나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은지,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많은지, 벼르고 있는 모습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풀어내는 법에 비해 풀어내는 알맹이는 좀 아쉽습니다.

'봄보로봄봄'은 극과 극의 공수가 만나,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쌍방구원물이자 쌍방성장물입니다. 흔한 클리셰긴 하지만, 극단의 삶을 살고 있는 두 사람이 '보통의 행복'을 찾아가는 개연성이 쫀쫀하고 찰지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많이 가지고 있는 쪽이, 많이 가지지 못한 쪽에게 시혜적 베풂을 내리고, 그 대가로 애정을 얻는 할리킹물이 아닙니다. 돈 많고 철없는 도련님은 첫째 형을 마음에서 떠나보냈고, 염세적 냉소적이었던 고아 소년은 소설가가 되었죠. 두 사람의 보금자리는 124 맨션 펜트하우스가 아닌, 판자촌에 더 가깝습니다.

할리킹이 보여주는 신데렐라 판타지도 좋습니다. 가진 게 많아서, 내 님에게 주겠다는데 그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요. 그래서, 주는 것보다 어려운 '공유하는 것'에 깨인 주인공의 이야기를 더 좋아합니다. 다미로처럼 말이에요. 무이의 공간을 공유하고, 동생을 이해하고, 그의 삶을 공감해 주고, 선택을 존중해 줘요. 판잣집보다 좋은 집을 사주는 것이 더 쉽고, 동생 알바를 묵인해 주는 것보다 노트북 값을 주는 것이 더 쉽고, 배달을 그만두고 소설 쓰게 해주는 것이 더 쉽지만, 그렇게 하지 않죠.

다만, 읽는 내내 적응이 안 됐던 것은 이들의 '나이'입니다. 무이는 헐벗은 남자의 무리들 사이에서도, 돈 많고 태가 다른 상류층의 거만함 앞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아요. 또, 본능적이고 육감적인 사랑을 너머, 그 사람의 습관과 진로의 방향성이라는 장기적 시점도 고찰해요. 게다가, 극강의 소유욕과 독점욕을 느끼면서도, 다미로가 엔조이 게이 라이프를 단 번에 끊을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고, 본인의 거친 언사와 분노를 자제하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19살 이란 나이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설 생활로 인해 눈치가 발달했고, 폭력 사건을 일으켜 퇴학 당할 정도로 뜨거운 가슴이지만, 반대로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킬 만큼 주관이 뚜렷한 성격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를 참작해도 이것이 정말 19세의 생각이고 행동인가... 괴리감이 느껴집니다.

다미로도 마찬가지예요. 아무리, 재벌이고 15세에 동정을 뗀 선구자(?)라고 하지만, 21살 나이에 그렇게 많은 경험과 유명세를 가진 게이가 될 수 있을까? 심지어, 다미로가 중학교 때 활동했던 다비드는 비밀 클럽 아니던가요? 게이 클럽, 게이 바 할 것 없이 이 정도의 입지(?)를 가지기 위해서는, 정말 24시간이 모자랄 듯 해요. 물리적 한계도 있는데, 분신술을 쓰지 않고서는, 이 정도의 경험과 노련미는... 그저 대단한 게이라고 인정을 해줘야 하나 싶어요.

다미로의 절친이 무이의 판잣집에서 사회적 지위와 한계에 대해서 설교를 늘여 놓는 장면에서도, 21살이라고 생각하니... 심각한 장면인데도, 묘하게 귀여워 보이더라고요. 어쨌든, 문득문득 나이가 떠오르면 몰입에 방해가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이는 25살, 다미로는 28살이라고 바꿔 생각하고 읽으니, 편안하더라고요.

더불어, 갈등 부분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미로와 첫째 형의 관계는, 무이와는 또 다른 극과 극의 관계였죠. 모범적이지 않아 기대를 받지 못하고, 그 덕에 자유로운 다미로와 모범적이고 우월하지만, 덕에 선택 없는 삶을 살아야 했던 첫째 형... 배다른 두 형제 사이에 애정은 있었지만, 다미로의 것은 성애였고 형의 것은 우애였어요. 형은 다미로를 보호하고 싶어 했고, 다미로는 형에게 관심받고 싶었지만, 둘 다 이루었다고 볼 수도 있고, 모두 이루지 못했다고도 해석할 수 있을 듯합니다.

다미로에게는 유일하게 진지하고, 인내하고, 상처 입은 사건이었지만, 이런 형과의 갈등은 좀 어이없이 풀립니다. 형의 진심이 담긴 편지 한 장과, 다미로의 설득으로 말이죠. 오히려, 한철과 무이의 갈등이 좀 더 밀도 있게 다루어진 느낌입니다. 다미로는 과거 형에 대한 마음을 정신적 외도라고 생각했고, 형의 행복하지 못한 결혼생활, 이혼, 다미의 출생, 재혼, 각각의 계기마다 양가적 심정에 혼란을 겪었죠. 그런데, 그에 비해 허무한 마무리였습니다. 다미로와 형이 가지고 있는 깊고 오래된 이야기들이, 급하게 봉합 된 것 같았어요.

그럼에도, '봄보로봄봄'이 가지고 있는 재미를 모른척하기는 쉽지 않아요. 김다윗님의 현재 연재작 '초이스 오브 초이시스'와 비교 할 때, 확실히 초기 작품이기 때문인지 힘이 들어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들인 작품임을 틀림 없는 듯 합니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

출판사: 수려한

출간일: 2019.03.14

분량: 본편 4권

 

point 1 책갈피

"저... 형들 만나서 정말 좋아졌어요. 걸레라는 별명이 준 트라우마 때문에 목욕 시간이 오래 걸렸거든요. 근데 요즘은 목욕하는 데 10분밖에 안 걸려요. 악몽을 자주 꿨는데, 요즘은 잘 안 꾸고요."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리고 문제지 볼 때마다, 글자가 흔들려서 수능 볼 엄두도 못 냈었는데, 이렇게 시험도 잘 봤어요. 다 형들 만나고 변한 거예요. 그리고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요. 두 분 다 제 은인이에요. 정말 고마워요."

이런 솔직한 말이 서툰 윤원의 흰 얼굴에는 가득 홍조가 돌았다. 귓불은 이미 터질 듯 새빨개져 있었다.

point 2 줄거리

: 윤원은 오메가를 혐오한 어머니 탓에, 오메가로 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밝히지 못한다. 그런 윤원은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학창 시절 지독한 학교폭력에 시달렸고, 그 트라우마의 여파로 수능을 망친 채 편의점 알바를 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윤원의 어머니는 은퇴한 재벌 서승택과 재혼을 하고, 윤원은 서회장의 후계자인 장남 서정후와 천재 대학원생 차남 서건민과 한 집에 살게 된다.

승: 정후는 귀여운 동생 윤원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소극적이고 낯을 가리는 윤원을 살뜰히 챙긴다. 반면, 건민은 윤원을 박대하며, 동생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후는 자신에게 서서히 곁을 주며 마음을 여는 윤원에게 보호자 이상의 감정을 느끼고, 건민 역시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 윤원에게 생경한 욕구를 느낀다. 그러다 윤원의 히트에 두 형제가 동시에 휘말리면서, 윤원 쟁탈전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전: 윤원에 대해 알아가면서, 두 형제는 윤원이 방임과 학교 폭력에 시달렸고, 그 어떤 치료도 받지 못해 심신이 망가져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편, 재수 학원을 다니게 된 윤원은, 그곳에서 과거 자신을 괴롭히던 민규과 만나고, 재발한 트라우마로 몽유병을 앓는다. 민규가 주동자 태욱에게 윤원의 거취를 알리면서, 윤원의 상태는 최악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정후는 윤원을 설득해 태욱과 패거리를 고소하고, 윤원은 학원을 그만둔다.

결: 윤원의 사정을 알게 된 승택은, 아내의 본성을 깨닫고 그녀와 이혼한다. 정후는 윤원을 위해 지금까지 쌓아 온 것들을 버리려 하고, 건민은 정후와 정후를 좋아하는 윤원을 보며, 윤원을 포기하려 한다. 하지만, 형들을 좋아한 윤원은 형들의 희생이 싫었고, 결국 도망친다. 정후와 건민은 서로에게 폭발하여 그간 쌓인 응어리를 풀어내고, 합의점(?)을 찾아 윤원을 데리고 온다. 세 사람은 평화로운 동거를 시작하고, 윤원은 우수한 성적을 받아 명문대생이 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상처 준 사람은 없고, 상처받은 사람만 있는 세상

'슬로우 데미지'의 기대치는 0였습니다. 1권을 시작한 저의 표정은 (=_=)였죠. 일단, 잉? 윤원? 표지 일러스트부터 도입부의 뻔한 전개, 평이한 서사... 관성에 의한 구매, 그 끝이 씁쓸했던 여러 케이스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읽다 보니 형제들의 티카타카와 윤원의 꼼지락이 너무 귀여웠어요. 그리고, 비현실적 존잘님들이 신데렐라 간택하는 할리킹이 아니라, 너무나 인간적인 형제가 비인간적인 환경 속에서 숨겨왔던 자아를 찾아가는 스토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물론, 소심하고 착하지만 자존감은 심해 바닥보다 낮게 깔려 있는, 상처수의 구원물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또 계속 읽다 보니, 그것만이 아니었구나 싶었습니다. 저의 표정은 (+~+) 변했어요. 이 소설 속에서 자낮수는 단순히 무한한 공의 사랑을 받아 밝아지는 것이 아니었고, 원래 잘난 공들은 진심 어린 애정, 단 하나만이 부족한 이들도 아니었습니다. 윤원은 자신의 오랜 상처를 해결해 준 정후를 스스로 떠나고, 정후와 건민은 인생에 미뤄둔 숙제를 끝내고 나서야 윤원을 얻을 수 있었죠. 참 잘 짜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슬로우 데미지'에서 가장 감탄한 부분은 인물 묘사였어요. 전형적인 듯 보이지만, 개성 있고 일관된 캐릭터가 잘 표현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이소 작가님의 '개 같은 베이비'와 비교해 봤을 때, 정말 엄청난 변화로 느껴졌습니다. 오메가버스, 집 안의 차별, 재벌물, 구원물 이라는 유사한 클리셰임에도, '슬로우 데미지'가 훨씬 설득력 있고 흡입력 있는 작품이었어요.

세상에 상처받았다는 사람은 많지만, 상처 줬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상하죠?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으면 준 사람도 있을 텐데, 모두는 피해자이고 위로가 필요합니다. 몇몇 가해의 기억도 실수로 치부하거나 반성으로 충분하다고 여겨요. 나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고, 세상엔 나보다 나쁜 사람도 많다고 믿으면서요. 불행의 원인을 나의 과오보다, 그저 권력도 돈도 없는 사회적 지위에서 찾고, 억울해 하기도 합니다.

한 걸음 물러나서 보면, 객관적으로 보일 만도 하지만, 늘 그 한가운데 있을 때는 그 실상을 깨닫지 못해요. 그렇게 속세의 수레바퀴는 돌고 도나 봅니다.

윤원의 어머니는 피해자예요. 남자 오메가와 바람난 남편으로 인해, 졸지에 외벌이로 아들을 키워야 했죠. 아들을 짐짝처럼 여기고, 그 아들이 괴로움에 허덕이는 것을 무시하지만, 그래도 자식을 때리거나 버리는 사람보다는 낮다고 여겼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재벌을 만나 재혼하기까지 했으니, 윤원은 평생 갖지 못할 부를 자신 때문에 누려보는 거였어요. 그래서, 아들에게 부채가 없다고 여기는 어머니는, 아들의 끔찍한 학교폭력 사실을 알게 되었을때도, 그 아들을 위로하기보다는 남편에게 자신을 변호해 주길 바라죠.

정후와 건민의 아버지 역시 피해자입니다. 가족을 중요히 여기는 서승택은, 아내 없이 아들들을 훌륭하게 키웠지만, 아들들은 자신에게 박대합니다. 첫째 아들은 회사 경영권을 승계 받은 이후에, 무능하지만 자신이 아꼈던 동생을 내치고, 자신과 다른 스타일로 경영을 하죠. 결혼은 하지도 않고, 결혼 전에 분가 불가의 명을 어기고 웬 남자와 정분이 나서 집을 나가겠다고 합니다. 둘째 아들은, 가족 모임은 고사하고, 말은 귓등으로 듣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왜 아들들이 어머니의 애정에 목말랐고, 그 관심을 독점하기 위해서 어떤 상처를 가지게 되었는지는 관심을 가지지 않아요.

정후와 건민 역시 피해자죠. 정후는 권리에 맞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고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일생을 살아요. 그러면서도, 모난 동생의 뒤처리를 도맡으며, 의젓한 장남의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관심은 하고 싶은 것 다하는 건민에게 향하고, 이렇게 노력해도 아버지는 늘 부족하다 여깁니다. 건민은 애당초 형에게 모든 걸 빼앗겼다고 생각합니다. 후계자의 지위, 어머니의 관심, 그리고 윤원의 사랑까지 말이에요. 그저 자신은 곁방에서 좋아하는 로봇만을, 조용히 만들며 살 뿐이라고요.

어째 죄인은 윤원 한 사람뿐인 듯 합니다. 또, 어머니를 이해하는 것도, 승택의 부를 누리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것도, 애정을 받는 것에 감사하는 것도 윤원 혼자인 것 같아요. 윤원 인생 그 자체는 만신창이인데 말이죠. 윤원은 어머니에게도, 학교 폭력 가해자들에게도 사과받지 못합니다. 그들은 나름의 인과응보를 당하지만, 그 결과에서조차 그들은 억울한 피해자를 자처해요.

윤원은 오메가라는 사실을 숨긴 채, 부실한 영양 상태와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오랜 기간 억제제를 먹고 소취제를 뿌리며 살았어요. 그래서, 오메가로서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했고, 엉망인 몸은 폭탄처럼 히트를 터트립니다. 거기에 휘말려, 알파인 형들과 잠자리를 하게 되죠. 형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다정하고 상량했지만, 정후는 맞선을 보러 다녔고 건민은 친절하지 않았어요. 윤원은 우유부단하게 두 사람 사이를 오가면서도, 정착할 근거를 찾지 못합니다.

윤원이 어머니의 요청을 자르고, 승택의 집을 나오며, 정후의 고백을 거절하는 결정을 하는 부분이 저에게는 피크 타임이었습니다. 자낮수가 자존감을 찾는다는 차원이라기보다는, 윤원이 사라진 뒤 나머지 인물들이 어떻게 변할지가 궁금했거든요. 물론, 해피엔딩을 위해서, 예상 가능한 전개로 이어집니다. 어머니는 현실을 도피하며, 승택은 경영권 일부를 돌려받고, 정후는 영화사를 인수하죠. 더불어, 세 사람은 공존과 균형을 이룩합니다.

분명 '슬로우 데미지'는 할링킹입니다. 권선징악의 룰에 따라, 달달물로 끝나는 구원과 성장의 스토리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로우 데미지'라는 제목이, 천천히 끓는 물에 죽어가는 개구리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 뜨거운 물은 피해지 의식인지도 몰라요. 아픈 것은 감각이고, 아프게 한 것은 인식이니, 당연히 머리보다 촉각이 예민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 감각에만 취해 있으면 칼의 휘두르고도, 사회를 탓하는 망상가가 될지도 모릅니다. 비커를 뛰쳐나온 개구리에게 필요한 건, 비단 용기뿐만은 아닐 거예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