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에피루스

출간일: 2021.01.07

분량: 본편 2권

 

point 1 책갈피

"예전에 어디선가 들은 우스갯소리인데요. 어떤 사람이 호랑이를 두고, 이 녀석이 내 고양이 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했대요. 그러자 곁에 있던 사람들이 그럼 그루밍 한 번에 피부과 가야 하고 꾹꾹이 한방에 골절이겠네. 쥐돌이로 놀아 주다가 잘못 깔리면 그대로 사망이고 말이지, 하고 말했대요. 웃기죠?"

"뭐?"

"어, 그리고 이건 또 다른 우스갯소리인데요. 그 호랑이보다 훨씬 더, 훨씬 더 커서 집채만 한 호랑이가 있어요. 그 호랑이를 상대로 꼬리를 조물조물하고, 귀를 문질문질하고, 이마를 부비고, 배를 만지작거리고, 혀를 꾹꾹 눌러 대면, 어떻게 될까요?"

"......설마, 인간!"

금왕이 당황해서 눈을 부릅뜬 순간, 나는 이미 그를 향해 점프하고 있었다.

point 2 줄거리

기: 어릴 때부터 동물을 많이 좋아했던 호연은, 훌륭한 맹수 덕후로 성장한다. 호연은 고양잇과 맹수를 조물조물, 부비부비하는 불가능한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악착같이 알바를 해 돈을 모으고 휴학을 한 채 아프리카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호연은 체력단련을 위해 오르내리던 동네 뒷산에서 갑툭튀 등장한 삵에게 목이 물리고, 눈을 떴을 때 집채만 한 검은 호랑이(흑호)와 사랑해 마지않는 고양잇과 맹수들이 모인 재판장에 있었다.

승: 금수들의 왕, 금왕 흑호는 삵의 처벌에 관해 호연의 의견을 묻지만, 이미 장화 신은 고양이 눈을 한 삯을 본 것만으로도 성덕이 된 호연은 쿨하게 용서해 준다. 그 대신 삵을 만지고 싶다고 말하고, 꿈에 그리던 고양잇과 맹수들를 조물조물, 부비부비하며 너무도 행복해한다. 그 모습을 본 금왕은 호연을 등에 태우고 아프리카 초원으로 가고, 금왕과 함께 온 인간에게 금수들은 기꺼이 자신들의 몸을 내어준다. 물론, 금왕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전: 금왕은 모든 금수들을 다스리고 있었기에, 사막과 설원, 하늘의 동물 모두 금왕을 찾아온다. 그 일환으로 북극여우가 아프다는 소식이 금왕에게 전해지자, 북극여우를 탐(?) 했던 호연은 금왕과 함께 북극으로 간다. 그리고 호연이 그곳에서 만난, 북극 설원을 다스리는 설왕의 반려는 인간으로 호연과 같은 나라의 동양인이었다. 그는 호연을 친근하게 대해주며, 왕의 반려로서의 삶을 알려준다.

결: 한편, 미어캣의 실수로 호연을 존재를 알게 된 사막의 염왕은 두 사람을 찾아온다. 염왕은 반려도 아닌 인간이 금왕의 곁에 머물고 있는 것을 비난하고, 결국 호연은 꿈같은 시간을 끝내고 현실로 돌아온다. 하지만, 호연은 현실에 적응하고 못하고, 금왕을 그리워하며, 뒤늦게 사랑을 깨닫는다. 마침 문조와 미어캣이 준 사막의 꽃마저 잃어버리고 상심에 빠져 있을 때, 금왕이 호연의 앞에 나타난다. 호연은 금신의 머리카락을 먹고 금왕의 반려가 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조물조물, 부비부비, 문질문질

일전에 리뷰에서도 잠깐 언급 한 적 있지만, 저는 전형적인 랜선 집사예요. 현실에서 그다지 동물들에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영상으로, 그림으로, 문자로나마, 조물조물, 부비부비, 문질문질을 충전 받곤 하죠. 이렇게 간접적으로도 느낄 수 있는 힐링이 있으니, 실제 동물과 교감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애니멀 테라피'는 엄청 날 거예요. 그래서, 관련 산업도 꾀나 다양해진 듯하지만, 싫다는 강아지를 억지로 돈 주고 산책시키는 것까지 '테라피'라고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짝사랑은 애틋하지만, 강제성을 띠는 순간 그냥 괴롭힘이에요.

'금수의 왕'은 조물조물, 부비부비, 문질문질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쓰인 소설입니다. 그것이, 목적이자 줄거리죠. 사실, 이외에 다른 포인트가 있는 글은 아닙니다. 다만, 기왕 시작한 대리 만족이기에, 스케일을 제대로 키웠습니다. 이것이 동물을 좋아하는 정도에 따라 몰입도가 달라질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해요. 조연으로서 등장하는 동물, 수인으로서 등장하는 동물이 아닌, 줄거리 자체로 등장하는 동물이라는 것이 흔하지는 않으니까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조물조물, 부비부비, 문질문질에 대한 공감도가 크기 않으면, 지루한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현생에서 절대 성덕이 될 없는 고양잇과 맹수 덕후 호연이, 징한 덕심으로 마침내 성덕이 된 성공신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일단 집채만 한 흑호의 꼬리를 양손에 쥐고 조물조물, 볼에 부비부비는 기본이고, 사뿐히 머리에 톡 닿는 꼬리의 촉감부터, 폭 안겨도 한 아름인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짧지만 충분히 보드라운 털에 얼굴이 문질문질 하죠. 동그랗게 몸을 말린 흑호 이불을 덮고 잘 때면 들리는 들락 날락 숨 쉬는 소리, 콩닥콩닥 심장 소리...

흑호뿐인가요? 표범, 백호, 삵, 설표, 치타, 미어캣, 문조, 사막여우, 늑대, 황제펭귄, 등등등... 모든 동물 새끼는 다 귀엽고, 장화 신은 고양이 눈빛은 발사만 하면 다 사랑스러워지는 모르겠습니다. 북극곰 배 위에 자고 있는 북극여우는 말해 뭐 하겠습니까? 거대한 북극곰이 기둥에 느슨히 기대서, 육중하고 볼록한 배에 작고 여린 북극여우 올려 두고 토닥이는 둔탁한 손, 그 느리게 껌뻑거리는 근심스러운 눈빛! 엽서로 남기고 싶을 정도로 간질거리죠.

BL이라고 하지만, 금왕과 호연은 주인공이라기보다 동물 소개 가이드 같은 존재였어요. 실상, 둘의 애정은 그다지 촘촘히 다뤄지지 않습니다.

염왕이 등장한 이후, 갑자기 금왕이 호연에게 반려가 되면 계속 만질 수 있다고 말하며, 떠나보내길 아쉬워하는 것을 보며 ".... 금왕이 언제부터"... 뒤늦게 알게 된 절친의 연애 사실만큼 당황했죠. 오히려 금왕이 냄새를 묻히기 위해 한 키스가 첫 키스라, 인간으로 변한 금왕이 너무 멋있어서, 두근두근했던 호연은 '금왕을 만지는 것을 좋지만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 반려가 될 수 없다!'라며 현실로 돌아왔는데 말이에요. 물론, 후일담에 인간을 싫어한 금왕이 곁에 둘 때부터 호연을 사랑한 거라고, 염왕은 말하지만 독자는 알 수 없단 말입니다.

본디, 동화적 소설이 디테일에 약한 것이 사실이지만, '금수의 왕'은 정말 과감한 생략이 많습니다. 사이좋은 가족마저도 고려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사랑이 위대해도, 꺄웃했어요. 두 사람이 이루어진 다음은 더더욱 스케일을 키워, 왕들의 파티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굳이' 씬이 하나 등장하고, 짤막한 육아기가 등장하죠. 저는 이것이 19세 BL 구색 맞추기처럼 느껴져, 결의 흐름이 튀는 것 같았어요. 구작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조금 더 틈을 채우고 연결고리를 매끄럽게 하는데 신경을 썼다면, 대체 불가능한 소재의 명작이 될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 동일 작가의 다른 소설 리뷰

 

2021.04.06 - [BL 소설] - [인외존재/힐링물/달달물] 금수의 왕자 - 몽낙

 

[인외존재/힐링물/달달물] 금수의 왕자 - 몽낙

출판사: 블릿 출간일: 2021.04.06 분량: 본편 2권 ​ ​ ​ ​ ​ ​ point 1 책갈피 ​ ​ "도후 님은, 가끔 절 이렇게 무는데. 그럼 안 돼요." ​ 금왕자가 하얀 발끝으로 제 입술을 톡톡 두드리며 늘어

b-garden.tistory.com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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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주)현대지능개발사

분량: 본편 1권

point 1 한 컷

point 2 줄거리

기: 고등학교 동창인 카나메와 시마, 고등학교 때부터 사귀기 시작한 두 사람은 대학에 함께 진학한 후 동거를 시작했다. 연인 2년 차, 동거 1년 차, 아직도 서로만 보면 불타오른다. 연애는 순항 중...인 듯했지만, 카나메는 근래 스스로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시마만 보면 불끈거려 매일 뜨밤을 보내고 있었고, 시마를 생각만 하면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카나메는 스스로를 섹스중독이라고 진단하고, 시마와의 섹스를 피하기 시작한다.

승: 반면, 시마는 최근 잠자리를 피하는 카나메를 보며 누나에게 상담을 요청했고, 누나는 권태기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둘이 계획했던 도쿄 여행 날이 다가온다. 각기 다른 이유로 뒤숭숭한 두 사람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여행은 즐거웠고 두 사람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밤이 오기 전까지만... 시마는 거부의 몸짓을 보이는 카나메를 보며 마음이 조급해져 카나메를 몰아붙이고, 결국 두 사람은 각자의 침대에서 어색한 밤을 보낸다.

전: 그 다음날 두 사람은 우연히 시마의 고교 전학 전 친구들을 만나 합석한다. 그리고 시마는,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카나메를 만나기 전 짧았던 연애에 관하여 떠올리고, 카나메 역시 자신에게 질려 떠날 거라고 생각한다. 카나메는 전날 밤에 일에 대해 급하게 사과하고, 괴로운 표정으로 급하게 자리를 떠나는 시마를 보며 죄책감을 느낀다. 카나메는 시마를 찾아내, 불안함을 전멸시킬 정도로 후끈한 사랑을 열렬히 고백한다.

결: 숙소로 돌아온 카나메는 섹스 중독으로 고민했던 일에 대해, 시마는 카나메의 마음이 식었다고 걱정했던 일에 대해 털어놓는다. 한결 가벼워지고 한층 단단해진 두 사람은, 온기가 넘치는 섹스를 후 둘만의 스위트하우스로 돌아온다. 졸업을 하고, 시마는 회사원, 카나메는 프리랜서가 되고, 두 사람은 2LDK로 이사한다. 하지만, 같은 침대에서 잠들고 일어나며 여전히 꽁냥꽁냥 살고 있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손 그림이 예뻐요!

전 아날로그를 좋아합니다. 물론, 완벽한 디지털은 아날로그와 구별이 가지 않기에, 그 경지에 이른 디지털 결과물도 좋아합니다. 요즘은 여러 가지 이유로 3D 프로그램으로 작업하는 애니메이션이나 웹툰, 만화들이 많아졌어요. 제가 좋아했던 따뜻한 감성 작화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죠. 물론, 품과 공, 기술이 많이 드는 만큼, 더 지불 할 수 있는 것도, 더 지불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거부할 수 없는 변화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3D나 이미지 프로그램으로 그리지 않은, 소품이나 배경을 보면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특히나 음식이나 지하철, 자동차 같은 교통수단은 대부분 손으로 안 그리시는 것 같아요. 심지어, 요즘은 침대 같은 가구도... 그러니 인테리어 소품을 말해 뭐 하겠습니까? 여러모로 아기자기한 아이템 구경하는 맛이 줄어들었죠.

그나마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는 감수성 듬뿍 묻은 아날로그 작화들을 볼 수 있는 듯합니다. 개성 있는 소품, 일상의 거리, 정서를 담은 배경, 이런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집니다. 특히나, 저는 시장이나 축제, 번화가 장면 뒤에 메뉴판이나 상표, 자연스럽게 널브러진 잡동사니들을 구경하는 걸 좋아해요. 은근히 숨은 그림 찾기 같은 재미도 쏠쏠하답니다. 간혹, 작가님이 암호 같은 마크나 소품을 그려 넣었다는 후기를 보면, 바로 가서 꼭 찾아보죠.

인물이 매력적인 작품이 독자에게 접근하기 쉽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저도, 제목보다 주인공 이름으로 작품을 더 잘 기억하곤 하니까요. 하지만, 인물만 따라 작품을 보는 것은, 앞만 보고 목적지로 걸어가는 것과 같아서, 때론 좋은 풍경들을 놓치고 마는 듯해요. 작품이 주는 감동이, 비단 스토리에만 있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언젠간, 주름 하나 없는 그러데이션 3D 침대에, 그림자 없는 3D 음식에, 잔뜩 뭉개 놓은 마트나 시장 이미지에 익숙해질 날도 오겠죠. 하지만, 아직까지는 저는 옛날 사람인가 봅니다.

'Sweet Our 1R'은 큰 사건은 없습니다. 예쁜 커플이 작은 오해를 하고, 여행을 떠나 더 사랑하며 돌아오는 내용이에요. 하지만, Kamoburger 님의 그림을 보다 보면, 사박사박 눈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잔잔물이라는 키워드를 자주 쓰긴 하지만, 이 작품은 잔잔한 평화를 느낄 수 있기에 '잔잔물'입니다. 저의 그 평화 몇 컷 나누어 봅니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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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비욘드

출간일: 2019.05.23

분량: 본편 1권 +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드럽고 치사해서 진짜. 사람이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지. 이제 좀 한가해지니까 옛 생각이 솔솔 피어오르던가요? 내가 무슨 장작불도 아니고 부채질만 하면 다시 활활 타오를 줄 아셨어요?"

"잠깐. 내가 설명하마."

"설명은 무슨.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뭔지 알아?"

숨 쉴 틈도 없이 카일을 몰아세우던 레블리가 어깨를 들썩이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활짝 웃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지며 그의 두 눈이 밤바다와 같이 일렁거렸다. 레블리는 눈물을 떨어뜨리지 않으려 눈을 부릅떴다. 무릎을 꼭 쥔 손에 파랗게 핏줄이 돋았다. 가느다란 손목을 묶은 수갑이 유난히도 잔혹하게 보였다.

"내 몫이 아닌 사랑을 구걸하는 거야."

그렁그렁 고여 있던 눈물이 기어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아, 짜증 나게."

point 2 줄거리

기: 사랑 받지 못한 현생을 사는 민웅은, 집착 광공인 황제공과 미녀 가련수의 피폐 로맨스 '파멸 열애'의 광팬이다. 그날도, 읽고 또 읽은 '파멸 열애'를 읽다가, 책에 머리를 박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눈이 떴을 때 카일의 지독한 사랑을 받으며, 감금 당한 채 인형처럼 살고 있는 레블리에 빙의 되어 있었다. 장면은, 무슨 수를 써도 카일에게 벗어 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레블리가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깨어나 카일과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승: 괴로운 눈빛을 하고, 광기를 숨기지 않는 카일! 하지만, 빙의 된 레블리는 카일에 대한 참사랑을 깨달았다고 해맑게 웃으며, 카일을 '자기'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카일은 급변한 레일리의 행동을 보며, 도망을 위한 수작, 기억상실, 끝내는 감금과 통제로 인한 정신이상이라는 결론에까지 이른다. 그래서, 카일은 사랑스러움을 뿜뿜하는 레일리를 볼 수록 죄책감을 느끼고 구속구와 감금을 풀어주지만, 되려 레일리는 족쇄에 집착하며 외출을 거부한다.

전: 10년간 소설 속 카일을 사랑을 받고 싶었던 레일리는 목줄과 족쇄를 정표로 여기고, 카일이 먹여주는 밥을 먹기 위해 밥을 굶으며, 카일이 보이는 집착에 전율을 느낀다. 다만, 지식으로 커버할 수 없는 물리적 사이즈를 차마 수납하지 못했기에, 레일리의 고민은 카일과의 성공적인 섹스였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카일은 레일리를 피하기 시작한다. 찾아오지도 않고, 찾아가도 만나 주지 않으며, 정원에서 기다리다 마주쳐도 못 본 척 무시한 채 지나갔다.

결: 하지만, 그때 카일은 레일리를 독살하려는 잔당들을 뿌리 뽑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고, 레일리의 안전을 위해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카일은 23일+7시간 만에 레일리와 재회한다.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레일리는 울분을 토하고, 케일의 사과를 받는다. 레일리는 카일에게 청혼한다. 카일은 고자라는 소문을 낸 후 레일리를 잡음 없이 황후로 맞이하고, 10년이 넘도록 염병천병한 황제 커플의 영향으로 카딜록 제국 귀족 출산율은 올라간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집착광수?

아~ 이해 안 가! 솔직히 집 밖에 뭐 좋은 게 있다고, 호화로운 집에 원하는 것 다 사준다는데 얌전히 감금 당하는 게 요양이지 왜 도망을 못가 안달이야? 자유가 뭐 대단한 건 줄 아나? 그리고, 어차피 세상에 제일 중요한 한 사람만 있으면 되지, 기타등등 챙긴다고 긁어 부스럼 만들면 뭐 할 거야? 선택과 집중 몰라? 어차피 사람은 혼잔데, 나를 이렇게 사랑해 주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으면 이미 오바! 쥬분! 총뻔! 이게 성공한 인생이지! 모든 걸 가진, 모든 걸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의 독점적 선택과 지독한 사랑!!! 나도 받아보고 싶다!!!!

라고 생각해 본 적 있으신가요?

그런데, 그렇게 생각 안 해 본 사람도 있을까요? 그렇다면, 할리퀸, 할리킹, 신데렐라 콤플렉스, 주인공이 재벌이고 황제인 무궁무진한 로맨스물이,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사랑받았을 리가 없겠죠. 손해 보지 않고 사는 법에 익숙한 현생이라, 미친 것처럼 직진하는 가상세계를 꿈꾸고, 내 것이 없는 현생이라, 그것을 온전히 그리고 넘치도록 가질 수 있는 가상세계를 그리는 걸 거예요. 그런 점에서, '저스트 핏!'의 설정은 흥미로웠습니다.

하지만, 흥미진진한 출발에 비해 아쉬운 점도 많았습니다.

일단, 집착 강공이 없습니다. 전쟁광, 레일리를 쳐다만 봐도 눈알을 뽑는 잔혹무도한 성정, 레일리의 고향마을을 도륙하고 레일리를 납치 감금한 광기어린 애정...을 가진 황제를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본 황제는, 자살 시도 후 깨어난 레일리에 턱 좀 세게 쥐고 키스하다가, 갑자기 해맑게 웃는 레일리가 걱정이 돼서 구속구도 풀어주고, 산책도 억지로 시키죠. 레일리가 굶으며 밥 먹여 주러 오고, 레일리가 목욕시켜 달라면 기꺼이 수발들고, 레일리가 너무 커서(?) 아프다고 하면 곱게 잠만 자죠. 레일리가 화낼까, 도망갈까, 심지어 나중엔 주름 생기면 싫어할까 전전긍긍해요. 집착광공을 길들이는 집착광수라는데... 집착광공은 어디 계시나요?

더 놀라운 건 레일리의 끼부림입니다. 물론, 민웅은 현생에서 사랑의 기근에 시달렸고, 10년간 소설 속 레일리의 삶을 부러워했죠. 하지만, 이 정도면... 현생에서도 썩 평범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어느 순간, 애교를 부리고 싶다!라고 애교 멘트와 표정이 자동 발사 되는 것도 아니고, 법치국가에서 일생을 살았는데, 몸 닦아 줬다는 이유로 시종 손가락부터 밟는 공을 보며, '집착애'라고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의아했습니다. 차라리, 빙의 전에 신분제 있는 시대나, 전쟁 같은 비정상적인 환경 속에 살았다면 이해해 볼 법도 한데 말이죠.

그 중,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수의 '하이텐션 말투'예요. 처음 빙의가 되었을 때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생에서 민웅은 사랑을 구걸하지 않았죠. 고독한 자존심 덩어리... 하지만, 마땅히 나의 것으로 할당된, 넘치는 사랑을 바라지 않은 것은 아니었어요. 그러니, 정말로 그 달콤한 케이크의 주인이 되었을 때, 흥분감을 표현하기 힘들었겠죠. 그러나 10년간, 한치의 변함없이, 계속 하이텐션 말투가 이어집니다. 이것을 어색하거나 조금 지친다고 느낀다면 몰입도가 떨어질 수 있지만, 사랑스럽다고 느끼신다면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과하다고 느꼈습니다. 요부도 이런 요부가 없다!라며 봤어요.

하지만, 수에게 쩔쩔매는 공! 족쇄로라도 소속감을 느끼고 싶은 집착수! 이 들의 달달하고 위기 없는 꽁냥꽁냥을 보고 싶으시다면, 킬링타임용으로는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음악으로 친다면, 소설 톤이 '솔'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것 같은... 그래서, 다소 '길다.'라는 인상의 피곤감이 있었습니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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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비욘드

출간일: 2018.01.19

분량: 본편 2권 +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헤이든 머피가 살을 뺐단 사실이 싫었다.

'내가 도와주려고 했는데.'

이안이 꿈꿨던 그림은 이게 아니었다. 처음 계획 - 헤이든 머피 친구 만들기 - 을 세울 적에, 이안은 통통한 헤이든과 함께하길 원했었다. 통통한 헤이든이 그 자체로 친구를 사귀고 '헤더의 양 날개'가 되건 뭐가 되건 숨지 않고 다니길 원했었다.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되게 만들거라고 확신했었다.

'내가 바보 같았어. 좀 더 일찍 도와줄 수 있었을 텐데...'

갑작스럽게,

'뚱뚱한 공주 같은 건 없어!'

언젠가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잊고 있던 기억 안에서, 얼굴도 기억나지 않은 어떤 남자아이가 그런 말을 외쳤었다.

그때부터 이안은 다소 염세적인 아이였다. 이안은 세상이 부정하는 모든 것을 한 번 더 부정하곤 했었다. 뚱뚱한 아이도 원한다면 공주가 될 수 있고 크림 선생님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며, 맨하튼의 유기견 이백 오십 마리에게 행복할 자격이 있고, 자신은 여자가 아닌 남자와 결혼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이안은 헤이든 머피가 부정당하는 현실이 싫었다. 헤이든 머피 스스로가 변화를 원했단 것이 싫었다. 이안이 반했던 통통한 헤이든 머피를, 헤이든 머피 본인조차 부정하고 떠나버린 것이 싫었다. 무엇보다 이안은 자기 자신이 싫어졌다.

'내가 뭐라고.'

이안은 회의에 빠졌다. 우드 집안의 귀한 도련님이라는 입자에서 이뤄 온 일들이 의미를 잃어버렸다. 모든 것이 그저 자만 같았다. 그는 헤이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언지에 대한 의문을 가져 본 적 없었다. 뭘 원하느냐고 물어본 적도 없었다. 그런 주제에 '헤이든 머피 친구 만들기'라니, 계획을 세웠던 것 자체가 부끄러웠다.

point 2 줄거리

기: 헤이든 머피는 심장에 선천적 기형을 가지고 태어났다. 부와 애정이 넘쳤던 헤이든의 부모는 아픈 외동아들을 과보호 속에 키웠고, 헤이든은 '돼지'라는 별명 속에 외로운 학교생활을 해야 했다. 그리고, 루이스 고교 입학 후 와이어트 존슨을 만난 후 헤이든의 불행은 정점을 찍는다. 와이어트는 헤이든은 '붉은 돼지'라 부르며, 때리고, 모욕하고, 부려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헤이든은 우연히 이안의 도움을 받고, 다정한 이안, 이안의 친구들과 친구가 된다.

승: 생에 첫 친구 이안을 위해 헤이든은 지옥의 다이어트에 돌입한다. 그리고, 방학이 끝나고 난 뒤 헤이든은 완벽한 '인싸'가 되어 루이스 고교에 나타난다. 하지만, 이안은 헤이든의 다이어트를 반기지 않았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름다운 외모로 주목받았던 이안은, 평범한 원생으로 자신을 대해주는 뚱뚱한 크림 선생님을 좋아했다. 이후, 게이인 이안은 루이스 고교 입학식에서 꿈에 그리는 이상형을 발견한다. 바로, 다이어트 '전'의 헤이든이었다.

전: 하지만, 헤이든과 이안은 반이 갈리면서, 이안은 헤이든에게 다가가는 데 시간이 걸렸고, 헤이든은 '붉은 돼지'가 되어 있었다. 한편, 이안의 노력과 헤이든의 바뀐 외모로, 헤이든은 즐거운 고교 생활을 누린다. 한편, 살 빠진 헤이든에게 차인 와이어트는, 다시 살이 쪘다며 헤이든을 괴롭힌다. 헤이든은 강박적으로 무리한 다이어트를 밀어붙이다, 쓰러진다. 고통에 허덕이며 깨어난 헤이든에게, 이안은 뚱뚱하든 아니든, 어떤 헤이든이든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결: 학교로 돌아 간 이안은 와이어트에게 보복하고, 와이어트는 어쩔 수 없이 헤이든에게 사과하기 위해 병원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헤이든은 지독히 괴로웠던 시간의 진짜 이유를 알게 된다. 헤이든은 이안에게 고백한다.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한편, 주지사 선거를 앞 둔 이안의 아버지와, 머피 일가가 모두 참석한 자선 파티에서 두 사람은 연인 선언을 한다. 다소의 우여곡절은 있지만, 이안은 큰 무리 없이, 무사히 머피가 이 예비(?) 데릴사위(?)가 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붉은 돼지'를 사랑해주세요.

면역력이 떨어지는 계절이면, 잠잠했던 고질병이 고개를 듭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허리가 시큰거리고, 잇몸이 욱신거리고, 승모근이 뭉치고, 무릎이 삐꺽거리고... 어떻게 그렇게 약한 부분만 기가 막히게 악화되는지 신기할 때가 있어요.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약해지기에 약점이라 불리기도 하는 거겠지만, 때론 감기만 걸려도 아파지는 허리를 부여잡고 있다 보면 억울한 마음에 눈물이 핑 돌 때가 있습니다. 부딪친 것도 아닌데!!!

마음도 그런 것 같아요. 꼭꼭 숨겨 둔 상처는 아주 사소한 노출에도 쉽게 공격당하고, 지치고 힘든 날이면 유독 더 심하게 곪죠. '이곳이 제일 약한 곳'이라고 표지판이 붙어 있는 것도 아닌데, '악의'와 '불안'은 그곳을 기가 막히게 찾아냅니다.

'마이 펫보이'는 밝고 명쾌한, 전형적 청게물이자 성장 소설이에요. 얼마나 전형적이냐 하면, 스토리가 한 줄 요약이 됩니다. '다이어트 후 미녀가 된 뚱뚱보 공주님은, 외모가 아닌 공주님 자체를 사랑해 준 왕자님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공주님은 심장병이 있고, 재벌가 외동에, 부모님의 절대적 애정을 받으며,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고, 괴롭힘을 당하지만 사랑스럽고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어요. 살을 빼니, 절.세.미.녀가 됩니다. 참, 어디서 본 것 같은 내용이죠.

하지만, 김아소님의 소설이 그러하 듯, '마이 펫 보이' 역시 단순한 스토리 아래 흥미로운 설정과 뼈 있는 메세지가 심어져 있습니다.

일단, 동전의 양면 같은 이안이 있습니다. 이안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름다운 외모로 의사의 감탄을 자아냅니다. 이안은 완전무결한 왕자님으로 보일 수 있는 법, 즉 젠틀하게 웃고, 말하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기대와 환상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있었죠. 이안에게 이 세상은 꼭 맞았고, 이안이 이 사회의 브라만으로 사는 것은 조금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안의 뒷면에는, 이런 사회에 대한 반발감이 있었어요. 이안은 뚱뚱한 크림 선생님이 아름다웠고, 뚱뚱하지만 유일하게 손을 든 친구가 공주 역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여자가 아닌 남자를 좋아했죠. 이안의 이런 반항심은 어느 순간 꿈속 완벽한 이상형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납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루이스 고교 입학식에서 그 꿈속 주인공을 만나게 됩니다. 이안에게 '그' 수드라 붉은 돼지는, 나의 공주님이 되어야 했어야만 했어요. 헤이든 폴더가 이안의 컴퓨터에 만들어지는 순간이었죠.

전교 1등 헤이든이 있는 A 반에 배정받지 못한 이안은 헤이든의 끔찍한 불행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와이어트의 체육복을 빌려준 사건을 계기로 드디어 헤이든과 친분을 만들기 시작해요. 이안은 헤이든 앞에서는 다정하고 상냥한 친구, 뒤에서는 숨은 해결사가 되어 주었죠. 이안과 친구가 되고 헤이든은 행복해졌고, 이안을 절대 잃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몇 번이고 실패하고, 그토록 고통스러우면서도 결심하지 못했던, 다이어트를 성공해요. 그리고, 이안은 깊은 회의에 빠집니다. 물론, 이안이 '어떤 헤이든이든 사랑해!'로 마음이 굳어졌기에, '전형적인' 청게물이 되긴 합니다.

소설을 읽다보면, 문득 불편한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마이 펫 보이'의 경우는, '빨간 돼지를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였습니다.

'마이 펫 보이'를 읽다 보면, '헤이든은 '빨간 돼지'가 자신이라는 것을 몰랐다.' '헤이든은 '빨간 돼지'를 미워하고 있었다.'라는 식의 서술이 자주 등장합니다. 헤이든은 자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이안에게도 눈물을 흘리며, '나도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다.'고 말하죠. 분명, 헤이든은 '빨간 돼지'를 아주 싫어합니다.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빨간 돼지'를 싫어할까요?

거울에 비친 뚱뚱보가 보기 싫어서? 예쁜 옷을 입을 수가 없어서? 외모가 하고 싶은 직업이나 취미에 방해가 돼서? 아닙니다! 헤이든이 빨간 돼지를 싫어하는 '빨간 돼지'가 자신의 삶은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었어요. 헤이든은 사과를 위해 병문안 온 와이어트가, 살이 쪄서 헤이든을 괴롭힌 것이 아니라 반응이 재밌어서 괴롭힌거라고 말하자 발작적 공황 증세를 보여요. 와이어트가 자신을 괴롭힌 이유는 반드시, 자신이 뚱뚱하기 때문이어야 한다는 듯이 말이에요.

헤이든이 외로운 학교생활을 한 이유는 심장병으로 학교를 자주 빠져서 친구를 사귈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숫기가 없는 성격이라 '헤이트 헤이든'이라는 놀림을 당해도 잘 받아치지 못했을 거예요. 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겁니다. 하지만, '혼자'라는 것에, '뚱뚱하다는 것'에 의기소침해 있던 헤이든의 '약점'에 와이어트라는 '악의'가 들러붙으면서, 살이 쪘다는 것은 모든 불행의 원인이 되어 버립니다.

진짜 가해자는 와이어트인데도, 헤이든은 '빨간 돼지'라는 가해자에게 괴롭힘받고 있었어요. 그래서, 헤이든은 와이어트를 부모님이나 학교에 알릴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계속 그 고통을 감내합니다. 하지만, 헤이든은 살이 빠지자마자 이안의 도움 없이 혼자서, 와이어트에게 물세레를 내립니다. '붉은 돼지'는 사라졌고, 그래서 헤이든은 더 이상 괴롭힘당할 이유가 없었죠.

그런 헤이든에게 다시 살이 찐다는 건 그 불행의 구렁텅이로 회귀하는 것이었고, 와이어트의 '살이 찐 것 같다.'라는 흘린 말에도 먹지 못하고, 잠을 줄여 무리하게 운동하며, 심지어 출처 불명의 다이어트 약을 사 먹기 시작해요. 결국, 쓰러져 입원한 헤이든은 와이어트에게 화를 냅니다. 나는 살이 빠졌는데, 더 이상 괴롭힘 당할 이유가 없는데, 와이어트는 자신을 괴롭게 하고 있으니까요. 동물처럼 학대할 때도, 한마디 하지 못했던 화를 이제서야 말이죠. 하지만 돌아온 건, 그렇게 오래토록 자신을 괴롭힌 '가해자'가 존재한 적 없다는 대답이었어요.

'오컴의 면도날'을 아시나요? 가장 간단한 대답이 옳다는 이론인데요, 뻔한 말 같지만 의외로 현실에선 잘 적용이 안 돼요. 교통사고가 났다면, 원인은 중앙차선을 넘어온 상대방 차량일 텐데, 그날 약속 시간을 변경해서 그 차량과 마주쳤다며, 원래 지하철을 타는 거린데 마침 파업이 일어나서 차를 몰고 왔다며, 가해자와 죄책감을 양산해내죠. 그렇게 따진다면, 사고가 난 이유는 '태어났기 때문'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도 몰라요.

보이는 것을 보이는 데로 보는 것도 어려운 일이 되어갑니다. 아는 것이 많아지고, 그래야 하는 것이 많아져서 그런 걸까요? 바다처럼 푸른 눈을 올망 거리며 샐러드를 양볼에 넣고 뇸뇸거리는 헤이든은 사랑스럽습니다. 안경을 쓰고, 조금 큰 바지를 입었지만 붉은 돼지도 사랑스럽습니다. 붉은 돼지는 아무도 괴롭힌 적 없고, 어떤 잘못을 저지른 적도 없으며, 언제나 헤이든 안에 함께 살고 있었으니까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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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비욘드

출간일: 2017.03.03

분량: 본편 2권 +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완전히 결박된 후에야 소영의 움직임이 멈췄다. 환이 안에 진득하게 파정하자 소영의 아랫배가 볼록해졌다. 내장을 틀어막은 압박감에 얕은 숨만 간신히 내뱉으며 눈물 흘리는 소영의 귓가에 대고 환이 속삭였다.

"영희공 환소영은 귀비에 봉하고 원자 호를 내려 그를 원귀비라 한다."

자신을 귀비에 봉한다는 말에 소영의 젖은 눈이 커졌다. 현재 황제의 후궁 중에 정일품 비는 품계를 받은 이가 없었다. 소영이 결박의 고통도 잊고 저를 동그랗게 뜬 눈으로 쳐다보자 환이 다정스레 웃으며 그 눈가를 쓸었다.

"처소는 영수궁으로 하나, 짐의 별궁인 양심전에서 옮겨 가는 것을 허락지 않겠다. 황제의 화원인 어화원에 유일하게 출입을 허락하며 원한다면 언제든지 짐에게 함께 가자고 청해도 좋다."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교지를 읊는 양하시는데 소영의 눈가에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귀비의 태에서 나는 황자가 이 나라의 태자가 될 것이며 그 태자는 짐의 뒤를 이어 다음 대의 황위에 오르게 될 것이다."

자신과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그 목소리가 너무나 달콤해서 기어이 눈물이 흘러넘쳤다.

"그러나 짐은 귀비를 닮은 황녀도 기꺼우니 귀비는 괘념치 말라."

덧붙이시는 말씀이 왠지 귀여워서 소영은 결국 웃어버렸다.

point 2 줄거리

기: 직첩조차 받지 못한 천한 어머니의 태에서 태어난 5황자 소영은, 궁인들의 박대와 괄시, 황자녀들의 괴롭힘을 당하며 삼남소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소영을 유일하게 아끼고 보살피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태자 환이었다. 태자는 동궁에 소영을 불러 함께 생활하고, 음인이 소영에게 발정기가 오자 최측근인 중랑장 민석호를 시켜 시침을 들게 한다. 당연히, 태자의 이런 총애는 시기를 불러왔고, 소영은 태자비의 눈 밖에 나 동궁에서 쫓겨난다.

승: 황후는 완전한 음인이 된 소영을 민석호에게 보내려 하는 한편, 소영은 무작위로 발정기가 찾아오는 야화라는 것이 밝혀지고, 잠잠했던 태자비의 행보도 거칠어지자, 태자의 마음은 급해진다. 사실 태자환은 소영에게 좋은 형의 가장하고 있었지만, 어린 소영과 각인이 되면서 양인으로 발현했고, 그 후 이복동생인 소영을 온전히 얻기 위해 준비해 왔었다. 하지만, 황제의 양위가 생각보다 늦어지면서, 소영의 초야를 뺏기고 소영마저 잃게 생긴 것이었다.

전: 마음이 급해진 태자는 소영의 몸을 끈덕지게 길들이고, 소영은 그런 형에게 이성적 성애를 느끼며 혼란과 갈등을 겪는다. 그때 마침, 소영은 자신의 약혼자이자 자신을 사랑하는 민석호와 함께 잠시 숨을 돌리러 출궁하고, 환은 허락 없이 사라진 두 사람에게 분노하며, 소영을 거칠게 대하고 강제로 각인한다. 그 후 상처 입은 소영을 달래 간신히 연인이 되지만, 야화라는 소문이 돌면서 결국 소영은 황적에서 제적 당하고 정업원에 유폐되기에 이른다.

결: 하지만, 갑작스러운 낙마 사고로 마비가 온 황제가 태자에게 양위를 결정하면서, 환은 곧 소영에게 '환'이라는 성을 내리고, 영희공에 봉작하여 곁에 둔다. 한편, 황후의 직첩을 받지 못한 태자비는 사가의 연이 있었던 의친왕과 함께 반역을 도모하지만, 이미 만만의 대비를 하고 있던 황제에 의해 발각된다. 환은 소영을 귀비로 삼고, 소영에게서 자식들을 본다. 그 후 민석호는 문성황녀와 결혼하여 부마가 되고, 소영은 황후가 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자낮수

근래 문득 자낮수가 참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스라이팅이 자주 당장하는 피폐물이나 할리킹의 일부에서나 볼 수 있었던 키워드 였던것 같은데... 이제는 스릴러, 판타지, 일상물 할 것 없이, 자낮수가 등장합니다. 우연인지, 최근 저의 책장을 메운 책들 중에서도 많은 유형의 자낮수가, 다른 소재와 장르의 이야기 속에 나오더라고요. 하지만, 아시나요? 리디북스에 자낮수 키워드가 없다는 것!

드라마는 시대의 이상을 반영하고, 소설은 시대의 아픔을 반영한다. 어디선가 읽었던 구문인데,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드라마나 소설이 그만큼 대중적 채널이고, 어떤 형식으로든 시대를 투영하고 있다는 거겠죠. 유난히 '헬 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때에 '이세계물', '회귀물', '환생물'이 많아진 것 처럼요. 그렇다면, 걱정 많고 늘 불안해하지만, 알고 보면 재주도 많고 사랑스러운 자낮수도 이 시대 일면을 비추고 있는 걸까요?

'야화'는 고백하자면, 한번 읽고 방치한 많은 도서들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 다시 보니, 조금 다르게 보였어요. 문득, 이 책이 절륜한 황제와 백치 이복동생의 씬풍년 시대물 BL이 아니라, 환의 일생을 건 계략기 혹은 한걸음 당 한 번씩 '자낮의 덫'에 빠지는 소영의 구원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제가 환을 보며, '집착' '광공'이 아니라 '성실' '헌신'이란 단어를 떠올렸다는 것이, 저조차도 낯설었어요. 분명, 제 기억 속 '야화'는 킬탐용 뽕빨물이었거든요.

일단, 제가 과거 '야화'를 저평가했던 이유는, 갈등이 변변찮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어요. 출신도 천하고 뒷배도 없는 5황자 소영은,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짓궂은 황자녀들의 괴롭힘 대상이었죠. 게다가, 소영의 유일한 동아줄 태자에게는 황후의 조카인 태자비가 있었고, 그 묘가는 견고한 외척세력으로의 입지를 다지며 정치력을 키워왔어요. 황제가 될 것이 확실한 태자에게는, 소영을 반려로 맞는다는 것은 여러모로 힘든 일이고, 당연히 갈등도 많긴 했지만...

황제가 허무할 정도로, 너무 쉽게 모든 일을 해결합니다. 소영을 사랑한 민석호는 소영의 시침도 들고 약혼자도 되지만, 단 한 번의 반항도 없이 소영을 포기합니다. 태자비와 의친왕의 반역은 놀랍도록 위협적이지 않았고, 황후는 불용패 조카를 쉽게 버립니다. 태자는 황제의 낙마사고도, 소영과 환의 관계를 반대하는 상소들도, 어렵지 않게 처리하죠. 물론, 소영을 단 한번이라도 건드린 자들을, 그 시기와 신분를 불문하고 톡톡히 복수해줘요. 그래서 갈등은 있으나, 갈등 풀어가는 재미는 좀 아쉬웠습니다.

그럼에도, 첫인상이 '나쁨'이 아니었던 건, 분량과 가격이 혜자스럽기 때문이었어요. 한 권 10만 자도 안 되는 소설들도 즐비한데, 야화는 한 권 당 20만 자초과에 4500원! 가성비가 우수하죠. 또, 환의 원앤온리와 소영의 귀욤귀욤에도 후한 점수를 줬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정신만 들면 '그' 생각뿐인, 절륜한 황제의 씬씬씬은 달달구리하지만, 지나치게 왕성하셔서 소영도 지치고, 보는 독자1도 어느 순간 흐린 눈 스킵을 하게 됩니다.

이 소설에는 숨겨진 섭공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설표'예요. 한결같이 소영을 바라보는 순정파 표범이죠. 물론, 나중에 반려를 만나 아이를 낳고 잘 산다만은... 나름 애정에 목마른 야수예요. 소영은 분명 일부의 황자녀들과 권력으로만 가치를 평가하는 궁인들에게 괄시 받습니다. 하지만, 두 섭공인 민석호나 설표에게, 일반적이지 않은 독점적 애정을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태자의 절대적 비호를 받고 있고, 태자는 그것을 외부에 숨기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소영은 태자의 권위를 앞세워 호가호위할 수도 있고, 그럴 깜냥에 없다 하더라도 자신을 사랑하는 권력자들에게 고단한 삶에 대해 토로하고 기댈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소영은 태자가 위대한 줄은 알아도, 태자가 사랑하는 자신은 '이복동생'이고 '야화'라는 이유만으로 유령이 되어 평생 후궁에서 비참한 삶을 살 거라고 무서워합니다. 민석호가 공신 가문의 장자이며, 많은 황녀들이 꿈꾸는 이상적 반려임을 알아도, 대 놓고 구애하는 민석호의 약혼자 자리가 얼마나 대단한 줄은 알지 못합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면, 이 소설을 많은 갈등을 열심히 풀어가려 노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갈등은 암투도 아니고 근친관계도 아니었어요. 세상으로부터 숨고 싶어 하는 소영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황제가, 설득하고 달래고 안심시키는 과정이었던 거죠.

태자의 첫째 미션, 선물 주기! 태자가 어린 소영과 각인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환은 서서히 소영에게 '주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궁박한 소영에게 하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죠. 많은 이들은 하사받고자 했고, 하사받았다는 사실을 떠벌리며 친분을 과시하고 싶어 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소영은 주면 쩔쩔매고, 없는 살림에 답례품 구해오고, 답례품 대신 연주를 듣게 된 후로도, 너무 자주 준다며 부담스러워하죠. 소영에게 태자비도 누리지 못한, 태자의 지밀을 공유해 주었음에도, 태자비가 쫓아내면 고자질은 고사하도, 냉큼 초라한 남삼소로 돌아갑니다. 태자가 준 팔찌는, 착용하지 않고 상자에 보관만 해요.

태자의 둘째 미션, 안심시키기! '야화'의 설정상, 양인이 음인과 각인이 되면, 자신의 음인 이외에 만족감을 얻지 못할 뿐 관계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반면에, 음인은 오로지 각인한 양인과만 관계를 할 수 있죠. 태자는 소영을 안고 포태시키고 싶었지만, 황제가 될 때까지 참아야 후환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소영의 발정기에 믿을 수 있는 민석호를 보내지만, 가까이 각인된 음인을 두고 안지 못하는 고통에 시달립니다.

그리고, 마침내 소영에게 각인을 합니다. 하지만, 각인 전의 고난보다 더 큰 고난이 있었으니, 그것은 소영을 달래는 일! 태자는 지존이지만, 태자의 약속은 믿을 수 없는 것일까요? 사모하고, 어떤 경우에도 보호해 주고, 그대가 낳은 아이를 태자로 삼겠다고 달래어도, 소영은 세상에 손가락질 받고 이름 없는 자가 되어 어느 후궁의 전각에서 비참한 생을 이어갈 거라고 태자를 원망하죠. 야화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태자는 '정말' 비참한 상황에 놓일 뻔한 소영을 기지와 협상으로 구해내지만, 소영은 보호받았다는 '증명'보다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슬퍼합니다.

태자의 세 번째 미션, 결혼하기! 태자는 황제가 된 후 황적에서 지워져 평민이 된 소영을, 영희공으로 봉작하면서 형제가 아닌 황족으로 만듭니다. 또, 자신의 이름에 획만 바꾼 '환'이라는 성을 주어 '내 사람'임을 찜하고, 즉위식 연회장에서 나쁜 손으로 '내 음인'임을 만인에게 알립니다. 게다가 소영을 구박했던 태자비는 황후는 고사하고 재인이 되었고, 소영에게는 태후라는 든든한 우군도 있어요. 하지만, 소영은 귀비가 되는 것을 기꺼워하지 않죠.

소영은 태생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고, 주목받는 자리가 무서우며, 황제의 총애는 받아도 총비가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황제와 보내는 밤이 늘어나나 회임을 하지 못하자, 황제에게 후궁을 권하기도 합니다. 후사의 책임은 막중하고, 환을 독점하고 싶어도, 독점할 자신은 없었죠. 황제는 이미 오래전에 소영의 독점물이었음에도, 황제는 소영의 시기심을 자극하고, 자리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역설하며, 어렵게도 소영의 반려가 돼요.

자낮수가 고구마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자낮수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게끔 만드는데, 엄청난 공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인들 중 자존감이 떨어졌다고 말하는 이들이, 이렇게 많았던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 때문이다, 경기 때문이다, 자연재해 때문이다, 그런 것들이 위로가 되었을 때도 있었겠지만, 그 위로의 유통기한은 의외로 짧아서, 당장 되는 일이 없으면 자신의 가치도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요. 그리고, 항상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성공하는 사람들은 존재하고요. 그들의 존재가, 위기를 기회로 만들지 못한 자신의 무능을 지탄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존감이 낮다는 건, 반대로 자기 가치는 높다는 말인 셈이죠. 자존감이 떨어져 힘들다면, 적어도 지금 느끼는 자신보다는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BL에 나오는 '자낮수'는, 잘난 공이 가지지 못하고, 공 주변에서도 도무지 찾을 수 없는, 귀한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음에도 스스로는 모르고 있어요. 공이 그것을 발견하고, 알려주고, 사랑해 주는 것으로 자낮수의 인생을 달라집니다. 신데렐라랑은 달라요. 마법사는 필요 없고, 왕자만 있거든요.

이 시대가 자낮수를 필요로 하는 걸까요? 그럼 자낮수의 '자낮'보다는 결국, 마침내, 파이널리, 그 자낮수가 도달한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서 였으면 좋겠습니다. 오랜 BLer로서, 확신하지면, 그 '결과'는 이미 자낮수에게 있어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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