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비욘드

출간일: 2018.01.19

분량: 본편 3권 + 외전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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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1 책갈피

"씨발 니가 왜 울어, 지금 울고 싶은 건 나인데."

"못 본 사이에 존나, 임포라도 됐냐고, 멀쩡하게 서던 게 왜 요즘은 잠잠한데?"

"야 그건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애새끼같이 보이냐? 내가 왜 애새끼야, 니가 늙은 거지!"

화가 나서 문장도 제대로 못 만들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토해내며 눈물을 뚝뚝 떨구고 있었다. 심지어는 자기가 말해 놓고 자기가 반박하며 북 치고 장구 치고 희권의 빰도 쳤다.

희권이 손가락으로 눈가를 닦아 주려고 해도 아랑곳 않고 콧물까지 찔찔거리며 서러움을 토하던 강진은 희권이 무슨 변명을 하려고 입을 열기만 하면 입술을 부닥쳤다.

"일단 진정해 봐, 니가 생각하는 그 이유가 다가 아니라니까 그러네."

눈물 때문에 축축한 입맞춤을 연달아 하다 보니 꼭 강아지 코에 뽀뽀를 한 기분이 들어 희권이 인상을 쓰고 강진을 말리다가 결국 못 참고 강진의 뒤통수를 잡아 누르고 입을 맞췄다.

눈물의 짠맛이 나는 입술을 빨다가 울어서 더 열이 오른 입안을 훑었다. 코를 옆으로 틀어 강진의 혀를 옭아매고 더 깊게 입을 맞추던 희권은 강진이 킁킁거릴 때마다 숨을 쉴 수 있게 쉬어 갔다.

눈물이 좀 멈추고 강진이 킁킁거리는 소리도 줄어들 때가 되어서야 입술을 뗀 희권이 욕을 내뱉으며 신경질적으로 시동을 걸자 옆에서 강진이 딸꾹질을 하며 웅얼거렸다.

"진짜 하고 싶은 게 맞으면, 여기서 하면 되잖아. 이 차 씨발 쓸데없이 시트 존나 잘 젖혀지더만."

아직 아무것도 시작 안 했는데 다 짓무른 눈가를 손등으로 세게 문지르며 약간 부은 입술로 툴툴거리는 강진을 보지 않고 희권이 차를 움직였다.

"나 좁은 거 싫어해."

point 2 줄거리

기: 아이돌 '원사이드'의 비주얼 담당 이강진, 28세 데뷔 7년 차, 루머가 많다. 거친 말투, 까칠한 성격, 속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투명함 때문이다. 국민배우 윤희권, 42세 연예계의 잔뼈가 굵은 제벌 3세, 엔터테인먼트 대주주, 그리고 이혼남, 역시 루머가 많다. 거친 말투, 까칠한 성격, 권위적 태도 때문이다. 둘은 영화<이면> 투톱 주연으로 발탁된다. 과거 한 시사회에서 강진을 보고 팬이 된 희권은, 강진을 놀리는 재미에 빠진다. 물론, 강진 역시 당하지만은 않는다.

승: 희권은 은근히 강진을 챙기지만, 강진은 계속 경계를 풀지 않았다. 사실, 강진은 같은 팀 멤버 태우에게 협박 당하며, 호모포비아 대현을 짝사랑하며, 사생 스토커에게 시달리며, 팬들에게 실력 없다고 비난받으며, 친구 하나 없이 힘들게 살고 있었다. 그러다 <이면>의 조연 성민근에게 태우와 같은 이유로 협박 당한다. 이 모습을 본 윤희권은 강진을 취조하고, 눈치 백단인 희권은 백지 같은 강진의 상황을 삽시간에, 그리고 정확하게 파악한다.

전: 태우와 대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진은 희권과 사귀는 척을 하기로 한다.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가면서, 희권은 입만 거칠고 마음은 약해 홀로 폭탄을 떠 앉고 사는 강진에게 '진짜로' 마음이 쓰이기 시작한다. 강진 역시 든든하고 유능한 보호자(?) 희권을 진심으로 의지하게 된다. 한편, 강진은 성민근이 마약 혐의로 체포되자 함께 휘말리고, 때마침 성민근의 복수 계획까지 알게 되자, 희권에게 피해 갈 것이 두려워 그를 피한다.

결: 희권은 강진을 둘러싼 문제를 해결하려 고군분투하고, 한차례 홍역을 치른 강진과 희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하지만, 연이어 터진 사건으로 곧 위기를 맡는다. 희권의 이혼 사유에 대한 제보가 터지고, 강진의 스토커를 찾은 희권이 그를 폭행한다. 동시에, 성민근은 강진에게 마약을 주사하고 스폰서에게 넘기려 하다, 희권에 의해 미수로 끝난다. 하지만, 두 사람은 끝내 진실을 밝혀내고, 가해자에게 그들 식의 응당한 처분을 내린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대현

연예계물이 보고 싶었습니다. 오글오글, 꼴갑꼴갑, 꽁냥꽁냥한 걸로 말이죠. 마침 리디북스에서 대체공X휴일수 할인행사를 하고 있어 뒤적뒤적 거리는데, 연예계물이 2편 있더라고요. 한편은 대배우와 아이돌 출신 하룻강아지의 티키타카 개그물, 다른 한편은 대배우와 매니저의 시리어스 버스물이었어요. 저는 저의 니즈에 맞게, 전자를 골랐죠. 하지만... 형사도, 탐정도, 의문의 살인사건도 발생하지 않지만, 이건 분명히 추리물이었습니다. 반전을 거듭하는...

'오프 더 레코드'는 제목처럼, 화려한 연예계 이면에 암암리 행해지는 스폰서 브로커, 사생 테러, 성 상납, 마약, 거액의 위약금과 폭력적 추심, 계약 결혼, 언론 플레이 등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밝고 맑은 소재는 아니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프 더 레코드'는 개그 코드를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작위적인 오버액션이 아니라, 욕쟁이 공수의 입담 때문이에요. 어느 리뷰어는 정진이 28살이 아니라 18살 같다고 하셨는데, 28살에 떼쟁이를 적잖게 봐 온 저로서는, 꾀나 현실감 있었어요.

정진은 매우 잘 생겼습니다. 그래서 길거리 캐스팅되고, 곧 데뷔를 하죠. '원 사이드'는 연습생 시절을 거치며 훈련받은 멤버들로 만든 그룹인데, 비주얼이 부족하다는 사장님의 판단에 급하게 정진이 합류된 거였어요. 여기에 정진의 잘못은 없습니다. 하지만, 소설의 얽히고 설킨 혐오는, 바로 이 시점부터 시작돼요. 대현에게 '원 사이드'는 무명 작곡가의 곡을 사고, 스폰서에게 성 상납을 하며 브로커 역할까지하더라도, 반드시 이루어야 할 절대적 목표였기 때문이죠.

그런 대현에게 정진은 미운 오리였어요. 대현은 모든 감정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정진의 마음을 알고도 노골적으로 냉대하죠. 정진 앞에서 호모포비아라며, 호모들에 대한 비난도 서슴지 않아요. 그러다, 결정적 사건이 터집니다. 몸이 헐도록 성 상납을 해도 얻을 수 없었던 스폰서가, 정진을 원하죠. 또 다른 브로커 성민근은 정진을 그 스폰서에게 바치려 하고, 대현은 분노를 느껴요. 아무것도 안 하고 다 가진 정진... 그 정진을 몰락시키려고 합니다.

정진은 애당초 대현 이외에 소속사 사람들에게도 그다지 인정받지 못했어요. 노래도 춤도 못 하면서 얼굴 하나로 데뷔했고, 연습생 기간이 없었으니 유대감도 없었죠. 게다가 입은 걸걸해서, 쉽게 오해를 사고 루머에 시달렸어요. 하지만, 정진은 배우로서 돈을 벌어주는 오리였기에, 재계약을 하면서도 그냥 방치해요. 정진이 친구가 있었다면 부당함을 알았겠지만, 갑자기 데뷔한 정진에게 연예계 안이나 밖에나 친구가 있을 리가 없었죠.

대현의 분노와 소속사의 무관심 속에서 정진은 고립됩니다. 대현은 같은 그룹 멤버 태우에게 마약과 돈을 주겠다며, 정진에게 마약을 먹이고 섹스 사진을 찍어오라고 합니다. 이걸로 정진을 묻어버리려 하지만, 때마침 터진 같은 그룹 멤버의 대형 사건으로 적기를 놓쳐버립니다. 태우는 약속된 마약과 돈을 받지 못한 대신, 이 사진으로 정진에게 성 상납을 받아요. 호모라는게 밝혀져 대현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았던 정진은, 태우와 끔찍한 관계를 거부하지 못하죠.

대현은 스토커도 고용합니다. 무려 정진의 전 남자친구이자 전 과외 선생님! 처음이자 마지막 애인이었어요. 왜냐면, 그 이후 정진은 연애에 치를 떨게 됐으니까요. 명문대 공대 출신인 그의 전 남자친구는, 머리도 나쁜 주제에 혜성처럼 데뷔해 인기를 얻고 있는 정진이 못마땅했어요. 너 따위가!!! 하고 있을 때 대현이 손을 내밀고, 온갖 난잡한 짓거리부터 불법 도청과 촬영, 심지어 고양이 시체를 정진의 침대 위에 두기도 해요. 나중엔 희권에게 까지 손을 뻗치죠.

데뷔했단 죄로, 정진은 눈 먼 혐오의 대상이 됩니다. 그런 정진의 인생에 희권이 나타나요. '오프 더 레코드'가 할리킹이 아닌 이유는, 희권이 재벌3세에 머리 좋은 대배우라도, 희권 역시 연예인이기 때문이에요. 그 한계를 넘을 수 없었죠. 하지만, 일찍히 연예계의 더러운 일면에 직면하고 아끼던 동생의 자살까지 봐야 했기에, 희권은 더 예민하게 주위를 살피며 힘을 키워왔어요. 이미 '경험'해 봤다. 정진과 희권의 결정적 차이는 그곳에서부터 비롯됩니다.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 진실이 무엇인지, 심지어 범죄인지 아닌지, 누가 죽거나 다치거나,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게 얼마나 자극적이고, 구미에 맞게 각색할 수 있는지, 언제 터트릴 때 가장 효과적인지가 중요했어요. 그래서, 사파리 같은 연예계에 오랫동안 살아남은 이들은 모두 이슈 전문가들입니다. 희생자는 이슈 전문가라고 착각한 장기말이거나, 이슈 전문가에게 버림 받은 장기말들 뿐이었죠. 물론, 이슈 전문가에게 사랑 받은 장기말은 아니구요!

'노칼라' 리뷰 할 때도 언급했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노력한 것을 쉽게 얻은 사람에게 일종의 분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악의가 없고, 부정한 방법을 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내가 힘들게 극복한 것은 너도 힘들게 극복해야 공평하다고 여겨요. 자신의 비난은 정당하다고 생각하죠. 물론, 저도 그렇고요. 다만, 그 분노의 기원이 나의 자격지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면 내가 좋은 기회를 얻게 되면, 그건 나의 공덕이라고 정당화하거든요.

대현은 억울할지도 모릅니다. 잡아 먹고 잡아먹히는 야생에서, 나만 사냥의 대가를 치르는 것 같겠죠. 누군가는 스폰서에게 지목되고, 망가지고, 진탕 속에 살아야 해요. 그렇다면 그 대상은 팀을 띄우겠다고 검은 일도 마다치 않고, 연습생 시절부터 노력하고 인내해 온 내가 아니라, 손쉽게 기회를 잡은 정진이 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정진은 또 '우연히' 희권을 만나 보호와 애정을 받죠. 누구는 기회를 얻고, 누구는 노력해도 얻지 못하는가? 그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실체 없는 분노가 망치는 것은, 괴물이 되어가는 자신뿐이라는 거예요. 구원의 기회는 인간 한정이니까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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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처: 씨앤씨레볼루션(주)

분량: 본편 62화

point1: 한 컷

point2: 줄거리

기: 경찰대 수석 입학, 바른 생활의 표본인 태준은 자취 집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알 수 없는 이끌림에 문득 빨간 이층집을 찾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을 너무나 반갑게 맞이하는 잘생긴 남자를 만난다. 그 남자의 이름은 정연우, 다섯 살 때 단짝이었다고 말하는 성공한 추리소설가였다. 사실, 태준은 5살 이전의 기억이 없다. 연우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태준에게 화가 난 듯 보였지만, 기꺼이 태준을 자신의 집에서 살게 해 준다.

승: 엉겁결에 동거는 시작되었다. 한편, 태준의 친구들은 태준의 자취방을 찾아와 예의 없게 굴고, 연우를 그들을 거침없이 대한다. 사실, 고아인 태준은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었다. YES 맨인 태준은 인기도 많았지만, 그래서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 역시 많았다. 때때로 태준은 숨이 막혔고, 그때마다 목을 조르는 버릇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태준에게, 안하무인인 연우는 이상적이었다.

전: 연우와의 생활이 지속되면서, 태준은 조금씩 변한다. 그의 은밀한 시간이 늘어가고, 태준은 연우를 통해 느낀 개방감에 점점 중독된다. 스터디차 집에 놀러 온 동기들이 연우에 의해 쫓겨날 때도, 친구들이 신경 쓰이지 않고 연우에게 미움받을 것만이 두려워졌다. 그리고, 잊었던 과거의 기억도 조금씩 돌아왔다. 연우의 부모는 어린 연우를 학대했고, 그 장소는 거울이 잔뜩 있는 검은 방이었다. 태준의 악몽에 등장한, 무수한 손들 이 있는 방이기도 했다.

결: 태준과 연우의 관계는 깊어지고, 태준의 모범생 가면은 무너진다. 한편, 태준은 대량의 혈액은 남았는데 사람은 없는 증발 사건을 연속해서 경험한다. 연우의 소설 속 사건과 똑같은 사건들이었다. 사범님의 의심까지 연우를 부추기자, 태준은 연우를 의심한다. 그리고, 연우는 태준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다. 태준은 집을 나온다. 연우는 자신의 생일에 태준과, 태준의 친구, 사범을 모두 집으로 초대한다. 그날 태준은 '진실'을 '경험'한다.

point3 진지충의 review: 나는 너야(feat. 자! 숨 쉬세요.)

'검은 거울'을 읽다 보면 호흡이 딸리는 경험을 자주 합니다. 연재분 마지막 단에, 숨 쉬라는 리뷰를 보고서야, 숨을 참고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곤 하죠. 스릴러의 꽃! 쫀쫀한 긴장감이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작품이에요. 게다가, 연우와 태준의 관계는 '동상 화상'을 떠올리게 합니다. 차가운 줄 알고 만진 드라이아이스가 입힌 화상처럼, 사랑의 속성이 없는 진짜 사랑이라는 역설과 그 애정 아래 깔린 음습한 잔인성 때문에 말이에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 안에는 '태준'이 있습니다. 어느 책에 보니, 집단 사냥을 했던 초기 인류도 눈치를 봤었데요. 언어가 없었으니, 대화도 제대로 못했을 텐데 말이죠. 물론, 눈치를 안 보는 계층도 소수지만 존재하긴 한다고 합니다. 바로, 최상위층과 최하위층! 둘 모두 눈치가 '생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이들이라고 합니다. 반면, 상대에 따라 때론 강자가 되고, 때론 약자가 되는 사람들은 살기 위해 기민하게 주변을 살펴야 합니다.

 

물론, 태준의 상황은 '일반적'이지 않았어요. 고아였던 태준은 경찰대학교 교수이기도 한 사범님에게 의탁하고 있었죠.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욕구와 다시 버림받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이... 더불어 알 수 없는 상실에 대한 공포도 있었어요. 사실, 5살 태준은 우연히 연우와 함께 검은 방에 갇히고, 최초의 '증발 사건'이 발생합니다. 부모가 모두 실종된 연우는 그 집을 떠나고, 홀로 남겨진 태준은 수군거리는 주변의 시선이 괴로워 기억을 봉인해 버리죠. 그리고, 그 기억이 뜯겨진 자리에 남은 건 공허감이었습니다.

태준은 스스로 병들어 가는 줄도 모르고, 막연한 공포에 젖어 살고 있었어요. 그런 태준이 연우를 만납니다. 운명에 이끌림처럼 과거 '그 집'을 찾아가요. 그리고 연우는 태준을 기다렸다는 듯 반기죠. 이상한 만남, 낯선 사람, 하지만 태준은 그 집에 살기로 합니다. 매일 밤 태준을 공포에 떨게 하는 이상한 소음과 자신을 더듬는 많은 손들을 느끼면서도, 그 집을 떠나지 않습니다. 왜냐면, 태준에겐 그건 이미 익숙한 감정이었으니까요. 어디에 있든 말이에요.

 

'착한 사람' 태준을, 연우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연우는 아무도 모르는 음침하고 비정상적인 태준을, 그래서 태준이 정확히 원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이 행동해요. 연우는 태준이 금기시 여긴, 위험한 쾌락을 줍니다. 멈칫거리던 태준은 점점 과감하게 그것을 요구하기 시작하고, 꽁꽁 숨겨둔 밑바닥의 욕구들을 끌어올리기 시작해요. 태준은 오랫동안 써온, 불편한 가면을 벗습니다. 그리고 봉인된 옛 기억도 서서히 되찾게 돼요.

5살, 연우와 태준 수 많은 거울이 을씨년스럽게 벽면을 채운 어둠의 공간에서 공포에 떱니다. 학습된 공포에 질려있는 연우를 달랬지만, 사실 태준도 무서웠었죠. 그때 연우와 태준 안에서 '악의'가 깨어납니다. 거울 너머에 또 다른 자신들은 거울 밖으로 나와, 그들을 태어나게 한 목표를 향해 전진합니다. 그리고 태준이 기억을 잃었던 시간 동안, 연우는 이 '악의'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게 돼요. 연우는 '악의'에 '동화'됩니다.

그런데 이 악의라는 것은, 드러나는 순간 증식하는 성격이 있습니다. 부모의 학대로부터 태어난 악의는 본의의 목적을 잃고, 그 특유의 폭력성만 남죠. 연우의 양부모는 연우를 학대하지 않았고, 영화관 관람객이나, 태준의 지인들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하지만, 숨겨지지 않는 악의는, 오로지 '둘만 있는 세계'를 방해는 모든 이들을 공격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끝내 '둘만 있는 세계'를 완성하죠. 피바다가 된 집안을 치우는 두 사람의 모습은, 티 없이 해맑고 달달하기까지 합니다. 태준은 불안이 없는, 완벽한 안식 속에서 잠이 들고요.

 

보통 사람들은 '악의'를 쉽사리 드러내지 못해요. 악의를 드러내도 되는 대상인지 상황인지 기타 등등 눈치를 보기 때문이죠. 어쩌면, 이런 행동들이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불쑥불쑥 솟어나는, 잔인한 악의들을 잘 숨기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존재'하는 악의는 거울 밖을 나오지 못한 채 거울 안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울이 깨지는 순간이 오면, 악의는 그 본신을 살라 먹습니다. 가끔, 뉴스에 나오는 악의에 삼켜진 사람들처럼요.

그 사람들은 최초의 악의가 발생시킨 원인에 대해, 더 이상 눈치 보지 않게 된 것이 아닙니다. 몸집을 불린 폭력성만 남아, 방향을 잃고 몰락을 향해 질주하는 거죠. 그래서, 전 '묻지마 범죄'의 가해자들을 동정하지 않습니다. 피해자는 그저 가해자의 눈먼 악의에 휘말렸을 뿐이니까요. 악의는 나 자신이 맞습니다. 하지만, 악의에 삼켜지면 안 됩니다. 삼켜진다면 괴물이 되고 말거예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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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이색

출간일: 2017.10.30

분량: 본편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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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1 책갈피

어느새 이스엘 프레이저가 내 거가 됐는지.

태자가 반응 없는 내 거를 슬쩍 쳐다보았다. 사타구니를 조물조물하자 불편한지 몸을 뒤튼다. 좋은 냄새가 났다. 숨을 들이마시자 식욕이 돋았다. 저녁은 걸렀고, 아침은 먹는 둥 마는 둥 물 한 잔만 겨우 마셨다.

일단 벗겨놓고 한 판 하고, 침이나 좀 빨아먹고 늘어져서 자야지. 그러려면 분위기를 잡아야 하는데... 어디 보자. 내가 지금 멋있나? 뒷머리 눌린 건 아니겠지? 이럴 때면 집무실 한쪽을 죄다 거울로 만들고 싶단 말이야.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한 태자가 기사의 바지 안으로 쑥 손을 넣었다. 옷 안을 함부로 뒤적거리며 묻는다.

"오늘은 팬티 입었나?"

그 말에 기사의 몸이 흠칫 굳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태자는 지분거리며 손가락을 놀렸다. 제 손에 흡수된 보습제의 바닐라 향이 이스엘의 성기에 옮을 때까지 주물럭댔다. 어쩔 줄 몰라 헤매면 그 뺨을 죽죽 빨고 옷을 홀랑 벗겨서 또 팬티를 뺏어갈 생각이었다.

point 2 줄거리

아델라이데 귀족 이야기: 순혈로 이어져 온 귀족가, 이스엘은 그 피를 지키기 위해 임신하는 약을 먹고 침대에 묶인 채 아버지에게 강간 당해야 했다. 그리고, 성교가 끝나면 아버지의 비서, 이스카란이 준 알약을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스카란은 이스엘에게 아버지는 죽고, 자신이 가문의 주인이 되었음을 알린다. 사실, 이스카란이 이스엘에게 먹인 약은 '임신하는 약'이 아닌 '정조대'라는, 섹스파트너를 천천히 죽게 만드는 약이었다. 이스카란은 이스엘을 갖기위해 오랜 세월 더러운 일을 참으며 오늘을 기다린 것이다.

아델라이데 왕족 이야기: 능력은 출중하지만, 사교성이 떨어지는 태자 포사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포사가 은밀히 마약 유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을 모으려 하자, 당연히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그때, 제1기사단 부단장 세리언이 나서고, 조사는 시작된다. 세리언은 적을 만드는 포사의 태도를 고쳐주려 하지만, 곧 포사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고립된 상황을 알게 된다. 세리언은 포사에게 마음이 쓰이고, 볼 때마다 몸이 달아오는 것을 느낀다. 한편, 왕의 명령으로 홀로 슬럼가에 간 포사는, 죽을 뻔한 위기에서 세리언에게 구출된다. 그 후, 베르나차의 여관에서 포사는 다른 의미로 세리언에 의해 죽을 뻔한다.

아델라이데 동맹 이야기: 재능과 충심을 겸비한 이스엘은 제국의 태자 피닉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스엘의 부모형제가 어마 무시한 부패를 저지르다 처형당하고, 이스엘은 피닉에게 경멸 받는다. 하지만, 이스엘의 능력을 인정한 황제는 그를 태자의 호위로 임명한다. 그러다 이스엘은 피닉에 대한 연심을 우연히 들키고, 피닉은 이스엘을 역겨워하며 괴롭힌다. 모멸감을 주기 위해, 화풀이로, 때론 재미 때문에 이스엘을 불러 강간하고, 그 빈도도 점점 늘어갔다.

그러던 중 제국을 방문한, 동맹국 아델라이데의 2왕자가 이스엘을 달라고 하고, 피닉은 이스엘을 그의 밤 시중을 들라 한다. 하지만, 이스엘은 차마 2왕자의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마법사 제레미를 찾아가 마음을 없애는 시술을 받는다. 한편, 이스엘의 실종으로 공황에 빠져있던 피닉은 이스엘이 돌아오자 반긴다. 하지만, 이스엘은 피닉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며 떠나겠다 말한다. 순간 이성이 끊긴 피닉은, 2왕자에게 빼앗은 '임신하는 약'을 이스엘에게 먹인다.

이스엘은 도망친다. 피닉은 샅샅이 뒤지지만 이스엘을 찾지 못하고, 그간 이스엘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고 있었는지, 자신이 얼마나 이스엘에게 못되게 굴었는지 깨닫고 절실히 후회한다. 그때, 이스엘은 피닉의 아이를 임신해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결국, 이스엘을 숨겨주었던 엘리노어는 피닉에게 사실을 고백하고, 이스엘은 궁으로 들어온다. 피닉은 이스엘에게 기꺼이 발 닦개가 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변태력

제가 '세헤라자데'를 선택한 이유는 전적으로 '리뷰'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리뷰를 쓰고 있고, 다른 이웃님들 리뷰도 읽지만, 같은 책을 읽어도 감상은 다~ 다릅니다. 특히나, 공감을 많이 받은 리뷰들은 대게 <매주 좋음>과 <매우 나쁨>으로 나뉘기 쉽습니다. 극단의 감정일수록 공감도가 높으니까요. 또, <매우 좋음>안에도 공맘, 수어메, 클리셰 편식, 작가 팬심, 필력부심 등 꽂히는 요소도 다양하죠. 그래서, 이렇게 리뷰가 대동단결하는 것은! 참 대단한 일입니다.

그 공감의 요소는 다름 아닌 변태!!! 변태의, 변태에 의한, 변태를 위한, 변태적인 판타지!!! 공감 순위는 좀 낮지만, 정말 아래 리뷰들이 대부분의 리뷰를 요약해 놓은 것 같아요. 흥미롭지 않으십니까? 빻빻한 빨간 맛과 창의적 하드코어물이 영역을 늘려가는 이 시국에, 피폐물인데 개그물인 것도 기발한데, 이렇게 많은 독자가 '변태'를 외치는 작품이란, 도대체 어떤 내용일까? 궁금했어요.

'세헤라자데'의 변태력은 매우 높습니다. 귀족, 왕족, 동맹 편에서 공통적 등장하는 중요 소재는 '약'입니다. '정조대'와 '임신하는 약'! 섹스 상대방의 이성을 앗고 끝내 죽게 만드는 약인 주제에, 이름이 '정조대'예요. 이것만으로도 작가님의 변태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리고, '임신하는 약'... 작중 의원에 말대로 이 약의 개발자는 변태예요. 임신하자마자 가슴에서 모유가 나오고, 극심한 통증을 없애기 위해 주기적으로 애 아빠의 정액을 먹어야 하죠.

피닉이야... 언제나 이스엘이 입었던, 검은 팬티를 갖고 다니는데요... 이 팬티가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는지... 읽는 내내, 작가님의 상상력에 투텀즈업을 날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귀족 편의 이스카란이 감금을 좋아하는 집착 통제광이라면, 왕족 편의 세리언은 초하이 텐션의 절륜공이예요. 하지만, 피닉은 순수한 변태예요. 앞선 두 공이 지나치게 건강한 신체(?)가 문제라면, 피닉은 거기에 더해 수치를 모르는 성향과 호기심을 지니고 있죠. 그래서, 홀로 후회공과 발닦개공의 루트를 걷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수가 처한 상황 때문에 '피폐물'을 넣지 않을 수 없었지만, 피폐물을 잘 못 보시는 분도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개그물에 훨씬 가까워요. 일단, 설정 자체가 현실과 백만리 쯤 떨어진 판타지여서, 마음 편히 변태력을 즐길 수 있습니다. 또, 3편의 수는 결국 공에게 종속되지만, 그전보다 나은 삶을 살게 됐어요. 귀족 편의 이스엘은 애매하지만, 분명히 포사나 이스엘은 사랑을 이룬 셈이니 공의 변태력만 좀 덜하다면 완벽한 해피엔딩인 셈이죠.

주의! 귀족 편의 '이스엘'과 동맹 편에 '이스엘'은 다른 사람입니다. 둘 모두 소극적이고 피학적인 수 이미지라, 다르다는 문구를 읽었음에도 저는 자꾸 오버랩되더라고요. 짧은 단편에 안에 같은 이름을 반복해 쓰신 걸 보니, 작가님이 '이스엘'이라는 이름을 좋아하시나 봅니다. 헝거게임도요. 그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주인공 이름을 그 영화에서 차용하셨다고 하더라고요. 네... 어떤 이름이든 좋습니다. 작가님의 다작을 기원합니다.(찡긋)

 

 

 

※ 동일 작가의 다른 소설 리뷰

 

2020.12.12 - [BL 소설] - [현대물/달달물] 올림피언 - 한여름

 

[현대물/달달물] 올림피언 - 한여름

출판사: B&M 출간일: 2018.05.04 분량: 본편 1권 ​ ​ ​ ​ ​ point 1 책갈피 ​ ​ "저야 올림픽에 나가는 것만도 감지덕지지만 선배는 다르잖아요. 선배는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니까.... 혹시 1

b-garden.tistory.com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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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비올렛

출간일: 2021.03.23

분량: 본편 2권 + 외전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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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1 책갈피

"재판 결과를 처음 들었을 때는 그게 꼭 제 고통이 2년짜리라는 통보 같아서 속상했어요. 저는 그런 기억이 고작 2년만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거든요. 어쩌면 평생 그림자처럼 뒤를 따라다니다가 중요한 순간 저를 약하게 만들 거라는 것도."

역시 자신의 인생은 극적인 해피엔딩이랑은 거리가 먼 것 같다는 자조 어린 생각도 했다. 정헌에게도 말하지 못한 생각이었다. 아니 정헌이라서 말하지 못했다. 이단보다 더 마음이 아파하고 걱정할 테니까.

"처벌이 약해서 또 여러 사람을 다치게 했다고 생각하면 화가 나지만, 그 사람한테 사형이 나왔다고 해서 제가 마법처럼 행복해지지도 않을 것 같아요. 그 말은...... 판사님 입에서 나온 숫자는 감히 누군가가 겪은 고통의 수치가 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해요."

이단이 재판정에 서지 않았다고 해서 그가 겪은 사건들이 없는 일이 되는 게 아닌듯이, 그 냉엄한 숫자는 고통의 유통기한이 될 수 없었다. 누구도 평가하고 강요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저는 또 판결문에 어떤 숫자가 적히든 상관없이 마음껏 슬퍼하다가 다시 행복해지려고 해요. 어쨌든 저는 싸웠잖아요. 아니 설령 싸우지 않았더라도......"

호박빛 조명이 비친 눈이 안쪽에서부터 조용히 빛났다. 작지만 분명한 빛이었다.

"제 삶은 여기 그대로 있고 저는 살아 있어요. 늘 바라 왔던 대로 부끄러움 없이, 떳떳하게요. 저는 상처를 입은 거지 죄를 지은 게 아니니까요."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었다. 과거를 끊임없이 곱씹고 후회하며 불행해져야 할 사람은 이단이 아니었다.

고개를 들자 지원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이단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혼자 말을 늘어놓은 것이 부끄럽고 머쓱해져서 뒷덜미를 어루만졌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데, 안 될까요?"

point 2 줄거리

기: 빨간 카디건에 싸여 버려졌기에, 이름이 단(붉을 단)이 된 이단(열성 오메가)! 예쁜 얼굴과 다소곳한 성격으로 충분히 사랑스러운 아이였지만, 3번이나 파양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첫 번째는 양부모의 이혼, 두 번째는 양부모의 사망, 세 번째는 성폭행 하려는 이부형 때문에 가출... 결국 17살부터 길거리에 내몰리게 된 단은 22살이 된 지금까지 자신을 '줍는'이들의 손을 전전하며 살아야 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것도 해주는 대우도 똑같았다.

승: 그날도 단은 하룻밤 잠자리를 구걸하기 위해 폭력을 견디려 하고 있었다. 일하던 슈퍼에서 도둑으로 몰려 쫓겨나고, 연인이 다른 이를 데려오면서 지내던 곳에서마저 나왔기 때문이다. 그때, 정헌(극우성 알파)이 나타나 단을 구하고 '주워' 준다. 좋은 집, 포근한 잠자리, 따뜻한 식사... 하지만, 정헌은 단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숙식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 몸을 내주려는 단을 되려 밀어냈다.

전: 정헌은 단에게 얼마든지 집에서 머물러도 좋다고 말하며, '대가'없는 호의를 한결같이 베푼다. 단은 주제넘은 줄 알면서도 그런 정헌을 점점 좋아하게 되고, 정헌의 마음에 들고 싶어졌다. 단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월급을 받아 정헌의 선물을 살 희망에 부푼다. 단이 알바를 시작한 햄버거 가게 지점장과 동료들은 단에게 친근하게 대했고, 단은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부지점장이 본심이 드러내면서, 단은 위기에 빠진다.

결: 하지만, 단은 달라졌다. 부지점에게 저항했고, 정헌은 그후 부지점장을 고소한다. 정헌은 2년 전 단과 우연히 만나 한눈에 반했고, 단의 히트에 휘말려 각인도 되지만, 자신의 감정에 혼란스러워 단을 잡지 못했다. 그 후 간신히 단과 재회하자, 집으로 데려와 귀하게 여겨주었던 것이다. 단과 정헌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쌍방 각인 후 부부의 연을 맺는다. 한편, 부지점장은 제 무덤을 스스로 파고, 제대로 파멸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쌍방'성장'물

'스위트 낫 슈가'의 단을 보면서, '뉴욕뉴욕'의 멜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최악의 환경을 타고나 몸을 팔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사랑에 헌신적인 모습이 단과 멜이 참 많이 닮아 있었어요. 게다가, 예쁜 얼굴과 순한 성격, 차별과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도덕을 지키는 모습까지도요. 심지어,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동정하는 모습까지도 너무 비슷했습니다. 참고로, 마리모 라가와님의 '뉴욕뉴욕'의 저의 인생작 중 하나랍니다. 갓띵작이죠!

반면, '스위트 낫 슈가'의 정헌과 '뉴욕뉴욕'의 케인은 완전 반대였어요. 정헌과 케인 모두 사랑이 넘치는 가정에서, 모범적인 부모님께 교육받죠. 다만, 정헌은 그대로 자랐고, 케인은 반대의 길을 갑니다. 물론, 오메가버스와 뉴욕이라는 배경차도 있지만, 감정적 혼란 상태에서 정헌은 인내하고 자제하지만 케인은 일탈했다는 점에서 캐릭터차가 더 큰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스위트 낫 슈가'는 쌍방성장물, '뉴욕뉴욕'은 쌍방구원물로 느껴집니다.

재벌공을 만나 자낮수가 호강하는 건 할리킹입니다. 공은 수에게 큰 부를 쥐여 주며, 출구 따윈 없었던 환경의 굴레를 손쉽게 정리해 줘요. 정헌이 단에게 누명을 씌운 슈퍼에서 못 받은 월급을 받아주거나 단을 죽이려고 하는 부지점장을 뭉게버리는 것, 그리고 최상의 의식주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재벌공'처럼 보여요. 하지만, 단이 정헌을 만나 '행복'해졌다면, 정헌이 단을 만나 '생명'을 잃지 않게 됐으니, 정헌이 얻은 것이 더 커 보이기도 합니다.

'스위트 낫 슈거'는 공수는 서로에게 '성장의 계기'가 되어 줘요. '구원'보다는 말이죠. 정헌을 만난 후, 단의 가장 큰 변화는 '자존감'이 생긴거예요. 단은 몸을 파는 일이 비난받을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잠자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누군가에게 주워달라고 해야 했지만, 처지는 건 핑계고, 자신은 올바르게 살지 못한 한심한 사람이라 여기죠. 단은 더럽게 살기를 선택한 자신이 받는 부당한 대우는, 자신이 치러야 할 죗값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부지점장에게 저항하는 단은 "당신에겐 나를 만지 권리가 없다!"고 외쳐요. 그리고, 지원에게 "자신은 상처 입은 거지 죄를 지은 것이 아니다."라고도 말하죠. 정헌은 단을 존중해줬고. 단은 정헌이 존중해 준 사람을 자신도 존중하려 합니다. 물론, 정헌이 알 밖에서 도움을 주긴 했지만, 알을 깨고 나온 건 분명 단의 의지라고 볼 수 있어요.

정헌 역시 마찬가지예요. 청교도인가? 의심하게 만드는 이 남자, 정헌은 단에 대한 감정에 혼란스러워합니다. 독점욕, 집착 같은 폭력적 감정들은 몽실몽실한 사랑의 감정과는 다른 각인의 증거였으니까요. 하지만, 인생은 타이밍이고, 정헌이 단에 대한 감정을 갈무리했을 때부터 정헌은 단을 찾을 수 없게 됩니다. 정헌은 2년간, 각인된 오메가를 곁에 두지 못한 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만했죠.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요.

그래서, 정헌은 단과 재회한 후, 정말 조심합니다. 각인으로 인한 강한 욕구에, 사랑이라는 고삐를 채워 두죠. 단을 귀하게 여기며, 모든 걸 가진 정헌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단에게 한껏 몸을 낮춰요. 그러느라 '사랑하는 일'을 피합니다. '지키는 일'만 열심히 하죠. 단은 그런 지헌에게 파렴치해질 것을 요구합니다. 그건 단을 상처 입힐 수도 있지만,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었거든요. 참는 익숙한 것에서, 참지 않은 필요한 것으로, 정헌은 용기를 냅니다.

결정적으로 정헌과 단은 '구원'이라는 말을 쓰기엔, 너무 바른 사람들이었어요. 늙은이 같은 소리지만, 정헌을 보면 '그 부모에 그 자식' '자식 교육 참 잘 했네!'같은 말이 하고 싶어집니다. 내가 할 수 있었는데 못 해준 일은 미안해하고, 남이 할 수 없는 것을 못하는 건 당연하다며 타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차이는 타고난 환경이며, 그건 선택도 노력도 아닌 감사해야 할 행운이라고 여겨요.

단은 거의 기적 수준입니다. 단은 빨간 카디건과 함께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에게 카디건을 주고 한 겨울, 온 길을 뒤돌아 갔을 어머니가 추웠을 거라고 말해요. 정헌의 돈이 많은 줄 알아도, 그 돈을 받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은 삶을 살았어도, 도둑질은 커녕 다른 사람에게 피해 준 적도 없었죠.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해야 하기 때문에, 언제나 스스로만 손해 보는 선택을 해왔어요.

자존감의 무게와 상관없이 두 사람은 자기 철학과 의지가 아주 강한 사람들이죠. 그래서 그런지, 읽는 내내 이모 미소를 짓게 됩니다. 기특하다. 기특하다. 하면서 보게 돼요. 너무나 경건한 작품이라, 19금이고 절륜공과 경험 많은 오메가수가 등장하는, 심지어 러트. 노팅, 히트가 모두 나옴에도!!! 왜 이렇게 건전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지나친 배려심 때문에 늘어지는 삽질 구간도 있습니다. 사건 중심보다는 인물 중심이에요.

저는 착한 사람들이 나오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기승전결이 스펙터클하지 않아도, 심장을 쫄깃쫄깃하게 만드는 긴장감은 없어도, 흐뭇하게 볼 수 있거든요. 하지만, 밀당을 좋아하신다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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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비욘드

출간일: 2019.09.09

분량: 본편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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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1 책갈피

"하언아. 흠이 아닌 것도 내가 흠이라고 생각하면 그게 흠이 되더라."

"......"

"그러니까 너는, 나를 좋아하는 너를 흠으로 여기지만 않으면 돼."

서노영이 나를 돌아보았다. 그가 코끝을 찡그리며 장난스레 웃어 보였다.

"그거면 돼. 그러니까 맞고 다니지 말고."

서노영의 시선이 검붉게 물든 내 광대 위를 안타깝게 맴돌았다. 그의 머리 위로 달빛이 번져 보였다. 문득, 이 사람을 좋아하게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멈춰 섰다. 하고 싶은 말은 무척 많았다. 생각을 정리하느라 잠시 까맣게 물든 호수 위로 시선을 던졌지만, 어떤 말도 섣불리 꺼낼 수가 없었다.

그의 말을 단박에 부정하고 싶었으나 망설여지는 것은 내가 여전히 무언가를 걱정하고 있기 때문일까? 단지 상대의 성별이 바뀐 연애일 뿐인데 보통의 연애와는 완벽히 다른 지점이 생긴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서노영의 잘못이 아니었다.

가슴이 아릿했다. 안타까운 것 같기도 하고, 속상한 것 같기도 하고, 정확히 콕 짚을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너를 좋아하는 나를 흠으로 여기지 말라니. 그가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도록 내가 상처를 준 걸까. 아니면 그의 일상에 자연스레 쌓인 버석버석한 모래일 뿐인 걸까. 슬펐다.

point 2 줄거리

기: 복학 후 자취방을 찾던 정하언은 보증금 오백에 월세 삼십, 풀옵션인 반옥탑방을 발견한다. 잘생긴 주인은 성격도 좋았고, 월세도 5만 원이나 깎아줬다. 이웃이랑 친구가 하고 싶었다는, 옆집에 사는 주인의 첫인상은 좋았다. 하지만, 게이인 이웃집 집주인은 하언에게 추파를 던지기 시작한다. 소심한 하언은 좋은 조건에 호의적으로 집을 빌려 준 주인, 서노영에게 갖은 희롱을 당하면서도 제대로 대거리를 하지 못한채 피해만 다닌다.

승: 하언은 서노영을 밀어내기 위해 무례한 행동을 하지만, 서노영은 포기하지 않고 꾸준이 하언의 주위를 맴돌았다. 사실, 서노영은 이것만 빼면 최고의 형이었다. 배려심 깊고, 센스 있고, 세심한 이웃이었다. 하언은 점점 노영에 마음을 알고도 애매하게 대하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다 하언의 학교 축제에 오게 된 노영은, 하언의 친구들이 하언의 여자친구에 대해 떠드는 것을 듣는다.

전: 사실, 하언과 같이 알바하는 윤희가 과팅에 나오고, 하언의 친구들은 다정한 두 사람을 보고 사귄다고 오해한 것이었다. 노영은 하언에게 묻고, 하언은 노영에게 여자친구가 있다고 거짓말한다. 하언은 화를 내는 노영에게 그간 참았던 이야기를 쏟아낸다. 이후, 노영의 하언을 무시하고 투명하게 대한다. 노영의 태도가 변하고서야, 하언은 노영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죄책감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 한편, 사이가 안 좋던 강준수는 하언에게 게이 아니냐고 비꼬고, 순간 욱한 하언은 강준수와 주먹다짐하다 경찰서에 가게 된다. 터진 얼굴로 돌아온 하언을 본 노영은 집에 불러 치료해 주고, 하언은 여자친구가 있다고 거짓말 한 사실을 고백한다. 노영은 하언의 마음을 알아챈다. 그리고, 하원과 노영은 조심스럽게 연애를 시작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사랑은 불편함을 싣고

다른 리뷰어님들은 어떻게 작품을 선정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의 경우는 <매우 별로, 별로, 보통, 좋음, 매우 좋음> 5 단계로 작품을 구분한다면, <좋음>과 <매우 좋음>은 왠만하면 쓰고, <별로>는 때때로 쓰고, <보통>과 <매우 별로>는 왠만하면 쓰지 않아요. 좋은 작품은 수다 거리가 많고, 또 살짝 아쉬운 작품도 이야깃 거리가 많습니다. 하지만, <매우 별로>는 욕만 하게 되고,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보통>은 할 말이 없어요.

저에겐 선명님 작품이 대부분 <보통>이었죠. 네임드 작가님이고, 유명한 작품도 많은데... 저는 다소 심심하더라고요. 아마도 저와 잘 안 맞았었나 봅니다. 돈이 아까운 작품은 없었지만, 기억에 남는 작품도 꼽기 어려웠죠. 몇 작품은 리뷰를 쓰다가, 중도 하차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웃집 집주인'은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작품이었어요. 완전 잊고 있었죠. 그러다 핑크빛 표지가 갑자기 눈에 띄어 재탕하게 됐는데... 또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갈등을 푸는 동기! 저는 '불편하기 싫어서'가 가장 많은 것 같아요. 껄끄러움을 피하려고, 원만한 해결을 고심하죠. 그런데 가끔 그것이 불가능한, 제대로 꼬인 관계가 있어요. 대다수가 지극히 감정적으로 촉발 된 것들인데, 그냥 싫거나 그냥 좋은 경우는 근본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해요. 특히나, 한쪽만 그냥 좋은 경우는... 무시조차 할 수 없는, 진정 곤란한 사태를 야기합니다. 그 어색함이 싫어, 내가 나를 설득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해요.

하언의 경우가 그렇죠. 노영은 하언에게 '매우' 공을 들입니다. 노영은 하언의 서툰 삽질조차도 사랑스럽게 감싸주죠.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요즘은 열 번 찍기 전에 경찰서행이겠지만, 어쨌든 노영은 하언을 열심히 찍습니다. 그리고 잘 나가는 미남 작곡가, 돈도 많고 센스도 있는 이 남자! 게이인 것만 빼면 완벽한 이 남자에게 하언의 마음은 점점 기울어요. 하지만, 하언에게 '동성애'는 넘사벽이었고, 결국 노영을 밀어내기로 결정하죠.

'우리애기~ 우리애기~'하던 노영은 '너가 어떻듯 나랑 무슨 상관?'으로 돌변합니다. 노영은 취향인 하언에게 한눈에 반했고, 열심히 어필했어요. 하지만 하언은 노영의 마음을 알면서도 모호하게 피하는 태도로 일관했죠. 그것이 하언 딴에는 간접적 거절이었겠지만, 분명 노영에게 예의 있는 태도는 아니었어요. 그럼에도 노영은 받아줬습니다. 이상한 옷을 빌려 입고 왔을 때도, 타박하기보다는 잘 어울리는 옷을 사주면서요. 하지만, 여자친구건은 확실한 기만이었어요.

노영은 폭발합니다. 하언도 폭발해요. 그런데, 두 사람의 대화가 오묘합니다. 노영은 하언의 행동에 대해 화를 내지만, 하언은 횡설수설해요. 하언은 후한 형과 잘 지내며, 조건 좋은 자취 집에서 살고 싶었지만, 게이가 되고 싶진 않았어요. 그래서 노영의 마음을 제대로 보지 않고, 상황만 모면하려 해요. 결국, 노영은 그런 하언의 태도에 폭발했고, 하언은 이런 상황에 이르러서도 궤변을 늘어 놓습니다. 물론, 하언은 실패하고, 노영과는 불편한 관계가 돼요.

하언은 냉정해진 노영를 보며 못 견뎌해요. 무시 받는 것이 서러워 술 먹고 우는소리도 해보지만, 노영은 더 이상 다정하게 하언을 받아주지 않아요. 그러다 강진수 사건을 겪으면서, 하언은 확신합니다. 게이가 되는 것보다, 노영에게 무시당하는 것이 더 힘들다는 걸 말이에요. 하언은 노영에게 다가갑니다.

노영의 계기는 하언의 외모였고, 하언의 계기는 불편함이었죠. 하지만, 계기가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두 사람은 서로 알아 갈수록 깊이 빠져듭니다. 애당초 하언을 좋아했던 노영조차도 놀랄 정도로요. 노영은 연애 순둥이 하언을 잘~ 리딩 합니다. 연상 다운 노련함과 편견을 먼저 경험한 선배의 현명함으로, 당근과 채찍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죠. 물론, 쩔쩔매면서도, 노영에게 매달리는 연하남 하언에게도 귀여움이라는 큰 무기가 있고요.

하언은 '성장했다.'보다 '철들었다.'가 더 잘 어울리는 수였어요. '이웃집 집주인'이 수시점이기 때문에 더더욱 두드러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문득, 선명님 작품이 거품은 없지만 심심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서재에 방치된 선명님의 작품을 차근차근 재탕해 봐야겠어요. 첫 정독에는 몰랐던 재미를 발굴하는 묘미! 이것이 재탕의 매력이죠.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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