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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1 책갈피

"노력으로 세상 모든 것이 바뀌지 않음을 안다. 하지만 그것을 이유로 시도조차 않아 놓고 그저 핑계를 대며 타인을 미워하는 것만큼 못난 것도 없다. 자청. 네가 진정으로 원해서 시도했다면 나는 너와 경쟁을 펼쳤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내가 세 번 국시를 시도하는 동안 그 어떤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지."

당연한 일이었다. 자청은 당연히, 우문단이 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니 결국 우문가의 가주 자리는 자신의 것이라 여겼다.

"나는, 나는 방계라..."

"그래. 너는 방계다. 하지만 문가장의 자식이지. 만약 네가 진정으로 바랐다면 본가에서는 너를 위해 방계인 너도 국시를 볼 수 있도록 어떻게든 도와주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네 나름대로 나라에 공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왔겠지. 분가라고 하나 그 역시 우문가. 가문을 빛내고 나라에 충성하는데 어찌 분가와 본가가 있겠느냐?"

"......"

"너에겐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런데 너는 방계라는 이유 하나에 얽매여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지."

"......"

"너는 그 어떤 노력도 않고, 그저 내 실수와 실패만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노력으로 얻어낸 것이 네 자리라 당연하게 여기며 말이다. 비열하고 모자란 놈."

point 2 줄거리

기: 패현왕의 반란이 진압되고, 황제 염과 우문단, 화와 섭청은 화목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건이 동시에 터진다. 하나는 무향현에서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조사하러 간 관리들마저 연이어 실종되었던 것! 다른 하나는 과거 범인 체포에 도움을 준 화산파 장문인이 섬서성 조사관으로 섭청을 요청한 것! 우문단은 장문인 요청을 거절하는 대신 섭청으로 하여금 선물을 보내도록 한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모르는 화는 섭청과 싸우고 만다.

승: 한편, 무향현 살인사건을 맡게 된 섭청은 화와 오해를 풀지 못하고, 급하게 길을 떠난다. 설상가상 무향현은 섬서성에 있었고... 화는 불타는 질투심에 무향현으로 섭청을 찾아 나선다. 이때, 섭청은 무향현으로 향하는 배에서 귀편랑 송명을 만난다. 송명은 과거 독에 당해 폐를 크게 상했지만, 의형제인 문가장 가주인 우문자청이 준 약으로 연명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편, 섭청은 배에 들이닥친 수적에게 우문단이 준 우문가의 홍패를 잃어버린다.

전: 섭청이 도착해 목격한 무향현의 모습은 실로 가관이었다. 관리가 없는 무향현에는 문가장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고, 말도 안 되는 재판을 하며 잔인한 형벌을 내리고 거액의 벌금을 갈취하고 있었다. 더불어, 주변에 날뛰는 수적과 댐 붕괴로 주민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실종된 이들의 가족들은 애달프게 길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더불어, 시중에 폭약은 씨가 마르고 있었다. 섭청은 이상한 징후들 모두가 문가장의 가주 자청을 향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결: 한편, 섭청을 따라온 화와, 섭청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화산파 장문인 설영은, 섭청의 사건을 돕는 한편 서로를 경계하며 신경전을 펼친다. 하지만, 사건을 파고들수록 우문자청의 잔혹성에 치를 떤다. 그러던 중 변장한 섭청과 화가 문가장에 잠입하고, 화가 섭청을 대신해 독을 마시면서,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독 '목식'의 정체가 알려진다. 자청을 대신해 송명은 죄를 뒤집어쓰고 죽지만, 무향현에 나타난 우문단은 우문자청의 죄상을 낱낱이 밝힌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남 탓

매우 격렬하게 남 탓을 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사실, 저는 자주 그러는 것 같아요. 원치 않은 결과를 인정해야만 할 때, 완벽하게 통제되지 않았던 과정에 관여한 모든 것들을 탓하고 싶습니다. 거기엔, 사람도 있고, 제도도 있고, 문화나 시스템도 있지만... 솔직히 사람 탓을 제일 많이 하게 돼요. "그랬었어야지! 이랬었어야지!" 하면서요. 그 작은 타인의 거슬림이 나의 중요한 미래를 망친 것 같다! 꿈에도 나오고, 호흡 곤란도 일으키죠.

하지만, 이런 일들은 너무나 많고, 억울함은 사람을 포악하게 만드는 맹독이라, 안하려 하지만 자꾸 하게 됩니다. 최상의 컨디션이라는 것은 엄청 희귀하고 드문 일인데, 요행과 행운이 모두 투입된 그 상태를 기대하게 돼요. 그러니, 요행과 행운은 고사하고 뜻하지 않은 장애와 불운이 겹치게 되면, 누군가를 탓하지 않고 견딜 수 없는 억울함과 분노가 생깁니다. 물론, 어떤 사태에도 흔들리지 않는 능력이 있었다면 좋겠지만, 그 정도의 경지는 쉽지 않으니까요.

그렇다고 모두가 우문자청이 되지는 않습니다. 동정할 이유도 되지 못하죠. 저는 개인적으로 송생원의 땅을 얻기 위해, 고의로 도난 사건을 조작한 사건이 충격적이었어요. 공개 재판에서 자백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마치 자혜로운 재판관인 양 말도 안 되는 벌금을 부가하죠. 그 벌금을 내기 위해 선산인, 그 땅을 팔 수밖에 없게 말이에요. 하지만, 선산만은 팔 수 없는 송생원은 곤장을 선택하지만, 곤죽이 되어가는 아버지를 본 아들이 결국 선산을 팔겠다 외칩니다. 송생원은 후유증으로 하반신 불구가 되고, 억울한 마음에 새로 부임한 정문에게 상소를 하려 하자, 자살을 가장해 살해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메인은 고사하고, 우문자청의 수많은 수작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문자청은 무관한 이들을 잡아와, 약을 먹이고, 산 채로 피를 뽑아 죽입니다.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온 수사관들도 예외는 아니었죠. 또, 주변 현에서 무향현에 관여할 여유가 없도록, 수적 때를 이용해 수탈을 일삼고, 폭죽으로 둑을 터트려 물난리를 일으킵니다. 그리고 섬서성 화산파에 수적떼를 토벌해 달라고 구조요청을 보내요. 물론, 화산파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번번이 놓치게끔 만들어 놓은 덫이었으니까요.

그 사이, 아들을 잃어 미친 어머니가 길거리를 헤매고, 약 한 첩 쓸 수 없어 다리가 썩어가는 여동생을 움막에 둘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생겨나요. 섭청은 이것이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님을, 그보다 더 뿌리 깊은 원한이 켜켜이 쌓여 있음을 짐작하죠. 그리고, 의외로 뚝심 있고 실력 있는 검시관과 두 강호 명문 문파의 수장들의 도움으로 사건은 실체는 점점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그 이면에는 열등감에 절어 있는 우문자청이 있었어요.

우문가의 방계 문가장의 우문자청은, 본가에 입양되어 우문가의 가주가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문단은 여자란 이유만으로 가주일을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아버지가 건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도 클리어합니다. 능력을 증명한 우문단은 당당히 가주가 되고, 우문자청은 닭 쫓던 개가 됐죠. 우문자청은 모든것이 우문단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괴한 사건을 일으켜 도성에 있는 우문단을 불러와, 무향현에서 살해할 계획을 세웠던 거였어요. 참... 허무하기 그지없죠?

물론, 우문자청이 사람들의 피를 모은 이유 중 하나는 송영에게 줄 약을 만들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어찌 보면, 송영이 다치게 된 건 우문자청 탓이기도 합니다. 우문자청이 일으킨 수적 때가, 우문자청이 제조한 목식으로 송영을 중독시킨 거니까요. 하지만, 분명 우문자청은 송영에게, 다른 이에게 열지 않았던 마음을 보여줍니다. 후에 송영이 우문자청을 의심할 때에도, 학살자 답지 않게 머뭇거리죠. 그러나, 자신을 위해 오명을 뒤집어 쓰고 죽은 송영을 기회로 삼으려 했다는 점에서, 동정의 여지는 없어 보입니다.

전전반측 1부와 2부는 완전히 다른 풍의, 연결된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전반측 1부를 보지 않은 독자는, 전전반측 2부의 갈등을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전반측 1부를 근거 삼아, 전전반측 2부의 분위기를 추측하셔도 곤란합니다. 물론, 전전반측 1부에도 패현왕의 반란군에 맞선 사건이 있었지만, 메인은 화와 섭청의 숨바꼭질 같은 연애담이었죠. 하지만, 전전반측 2부는 1부와 다르게 무겁고 진중하게 살인사건을 쫓습니다.

2부 이야기의 시작은 화와 섭청의 다툼입니다. 섭청을 포기하지 못한 화산파 장문인 설영은, 범죄 사건 해결에 지대한 공을 세운 대가로 섭청을 섬서성 관리로 보내 줄 것을 요구하죠. 하지만, 우문단은 그 요청을 거절하고,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섭청은 백옥을 세공해 설영에게 보냅니다. 하지만,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 된 화는, 당연히 섭청이 자신을 위해 몰래 준비한 선물이라고 들떠하죠. 그러나, 그 선물에 진짜 주인을 알고 난 후 폭발합니다.

이유는, 1부에서 이어져 온 '설영'과 '선물'이라는 트리거 때문이었어요. 1부에서 섭청은 화 앞에서 무심결에 설영의 이름을 읖조립니다. 그리고, 화가 설영이 누구인지 묻자, 이화를 화의 연인으로 오해하고 있던 터라, 모난 마음에 대답을 피하죠. 그때부터 이화는 '설영'에 대한 질투심을 키웠어요.

그러다, 설영이 섭청에게 과일 사탕을 선물하자, 동굴 연공실 분노의 정사씬이 펼쳐집니다. 그 후, 천신만고 끝에 부부가 되지만, 그 후에 또 설영은 섭청의 생일 선물로 녹두고를 보냅니다. 그리하야, 비 오는 날 2차 대삐짐 사건이 발발하죠. 그러니, 2부 시작과 동시에 발발한 '백옥 선물 사건'은 3차 선물 사태라고 볼 수 있어요. 화는 섭청이 설영에게 선물을 준 이유 따윈 중요하지 않았어요. 결국, 섭청에게 변명의 기회조차 주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뱉어 내죠.

더불어, 엽하와 정문의 팬심도요. 1부에서 천뢰검은 부패한 관리들을 타도하는 정의의 협객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그 천뢰검의 정체는 섭청의 사매였던 엽하였고, 우문단은 자신을 죽이러 온 엽하의 능력을 인정해 중책을 맡깁니다. 하지만, 천뢰검의 명성은 여전한데 비해, 그 실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우문자청 역시 자신이 일으킨 살인사건을 천뢰검의 소행으로 조작하려 합니다. 어차피 죽은 무향현 관리들이 정직하지도 않았고요.

그래서, 무향현에서는 천뢰검 굿즈가 대유행합니다. 덕분에 무향현 관리로 발령 받은, 원조 천뢰검빠 정문의 덕질은 호황을 맞이하죠. 그리고, 첫 사건을 훌륭하게 처리한 정문에게, 우문단은 선물인 듯 엽하를 정문의 호위이자 수사관으로 발령 내 줍니다. 정문이 성덕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밖에도, 분위기는 전혀 다르지만, 1부를 떠올릴 만한 소재나 인물은 자주 등장합니다. 2부를 먼저 읽고 1부를 읽어도 좋지만, 1부를 먼저 읽고 2부를 읽는 것이 더 풍부한 재미를 맛보 실 수 있을 거예요. 다만, 1부가 19세인데 비해 2부는 15세... 절륜 집착공 화와 순진 떡대수 섭청의 알콩달콩 스토리가 아쉬웠어요. 염병 첨병이 트레이드 마크인 화에게 사건을 쫓으라니... 참으로 가혹하죠. 3부가 나온다면, 화와 섭청의 달달한 애정행각이 듬뿍! 담겼으면 좋겠네요.

 

 

 

※ 동일 작가의 다른 소설 리뷰

 

2020.11.04 - [BL 소설] - [무협물/삽질물/달달물] 전전반측 - 정초량

 

[무협물/삽질물/달달물] 전전반측 - 정초량

출판사: 유펜비 출간일: 2020.01.23 분량: 본편 2권 + 외전 1권 ​ ​ ​ ​ ​ point 1 책갈피 ​ ​ 그는 섭청에게서 한걸음 물러났다. ​ "섭청." ​ 그리고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로 섭청을 불렀다. ​

b-garden.tistory.com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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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BIBLOS

분량: 본편 1권 + OVA

point 1 한 컷

point 2 줄거리

기: 쿠로다는 인형사다. 그가 만드는 인형은 하이브리드 차일드(HC)! 기계도 사람도 아닌, 주인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다. 명문가 이즈미가의 예비 당주 코타로는 HC 하즈키의 주인이다. 어느 날 하즈키가 쓰러지고, 코타로는 하즈키를 데리고 HC 인형사인 쿠로다를 찾는다. 하즈키는 초기 모델로 수명이 다 한 상태였고 고칠 수 없었다. 코타로는 새로운 HC를 구매하라고 조언했지만, 코타로는 한사코 하즈키만을 원했다. 결국, 쿠로다는 하즈키의 수명이 끝나기 전에 달의 물방울을 구해오라고 시킨다.

승: 도련님 코타로는 손에 피가 나도록 바닷가 땅을 파, 달의 물방울을 찾지만 끝내 실패한다. 그렇게 하즈키를 눈물로 떠나보내고 1년이 지나 쿠로다에게 전화 한 통을 받는다. 그리고, 청구서를 든 하즈키가 집으로 돌아온다. 은둔 무사 이치는, 또 다른 HC 유즈의 주인이다. 유즈는 이치님과 나란히 서고 싶지만 계속 키가 크지 않아 속상하다. 유즈는 깊은 밤, 정원에서 괴로운 표정을 짓는 이치님의 버팀목이 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즈는 끈적한 스킨십이 도움이 된다는 조언을 듣고 이치를 찾는다.

전: 이치에게 키스+a를 받은 유즈는 키가 조금 컸다. 신이 난 유즈는 이치와 함께 새로 옷을 맞추러 시장으로 나가고, 이치는 괴한의 공격을 받아 두 눈을 잃는다. 유즈는 이치님의 과거를 듣고, 키가 안 크는 이유를 알게 된다. 유즈는 다정한 이치님이 아닌, 어떠한 이치님도 모두 알고 싶다고 말한다. 이치는 유즈의 말에 치유받는다. 이치는 과거 막부 세력과 반막부세력 간의 전쟁에 참전했다. 번의 가로인 츠키시마를 총지휘관으로, 소꿉친구인 쿠로다와 이치 역시 잔혹한 전장의 선봉에 섰다.

결: 하지만, 전쟁은 패하고, 영지를 지키기 위해 츠키시마는 할복을 요구받는다. 쿠로다는 츠키시마의 할복에 수긍하지 못하고, 할복 전날 츠키시마를 찾는다. 쿠로다와 츠키시마는 생애 마지막 밤을 함께 보내고, 다음날 아침 츠키시마는 할복한다. 쿠로다는 폐인이 되어 시간을 보내다, HC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완성한 HC, 츠키시마와 닮은 그 인형은 과거 츠키시마가 건넨 벚꽃 가지 한 줄기를 꺾어 쿠로다에게 건넨다. 쿠로다의 마음을 비춘 거울, HC에 비친 건 츠키시마에 대한 사랑이었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마음을 비추다.

떠올리려고 떠올리려고 해도, 도무지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는 작품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움을 청했고, 한 이웃님이 댓글로 작품명을 알려 주셨어요. 정말, 집단 지성의 힘이란! 이렇게 위대합니다. 그 작품은 나카무라 슌기쿠님의 하이브리드 차일드! 급한 일만 마무리되면 찾아보겠노라 벼르고 있다가, 오늘 일어나자마자 영접했죠. 일단, 만화책은 원서밖에 구하지 못했습니다. 과거 나는 어떻게 봤었던 걸까요?

하지만, OVA를 발견한 호재도 있었습니다. 만든지 제법 되는지, 올드 한 느낌이긴 했지만... 엄청 울었습니다. 퀄리티보다는, 원작의 감성을 충실하게 표현한 것으로 10점 만점에 10점이었어요. 다만, 원작 만화에는 있던 외전이 없는 것은 다소 아쉬웠습니다. 사실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부분이었거든요. 츠키시마가 좋아하는 만쥬를 사기 위해, 쿠로다는 비 오는 날 긴 줄을 섰다가 감기에 걸리죠. 그런 쿠로다를 츠키시마가 병문안을 가는 이야기인데, Point1: 한 컷의 원어 만화가 그 장면이에요.

하이브리드 차일드는 크게 3편의 짧은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어요. 하지만, 실은 앞에 2편은 마지막 이야기의 후일담이죠. 그 이후에도, 우리는 잘 살고 있어요~라는 말이에요. 츠키시마, 쿠로다, 이치는 신분은 다르지만 단짝 친구들이었어요. 몸이 약하고 소심한 츠키시마, 말은 걸걸하지만 다정한 쿠로다, 차분하고 진중한 이치, 이들은 만쥬와 꽃놀이를 즐기며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죠. 하지만 전쟁이 터지고, 가로 집안의 츠키시마와 무사 집안의 쿠로다와 이치는 선택 없는 비극을 맞이합니다.

결과는 처참했어요. 쿠로다는 전신에 큰 부상을 입고, 이치는 트라우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그리고 츠키시마는 모든 책임을 지고 할복하죠. 츠키시마는 야망도 없고 건강하지도 못했지만, 가로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냅니다. 그런 츠키시마를 구원해 준게 쿠로다였죠. 쿠로다는 다들 피하는 가로 집 도련님의 손을 잡고 산속을 뛰어다닙니다. 그 차가운 손이 조금이라도 따뜻해지길 바라면, 조급한 마음에 속도를 높여요.

분명, 그때부터 쿠로다는 츠키시마를 사랑했지만, 쿠로다는 끝끝내 츠키시마에게 그 말을 건네지 못합니다. 심지어, 마지막 밤 서로의 체온을 나누면서도, 둘은 서로에게 그 말을 하지 못합니다. 시간이 흘러 인형사가 된 쿠로다는 츠키시마의 얼굴을 잊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치는 쿠로다가 만든 HC를 보고 츠키시마를 떠올리지만, 쿠로다는 단호히 아니라고 해요. 잘 생각이 나지도 않는 과거일 뿐이라 여기면서요. 하지만, 쿠로다의 HC는 정확히 쿠로다의 마음을 비춥니다.

HC에 비친 것은 자신을 위해 벚꽃나무 가지를 가지고 와 건네 던 츠키시마의 모습이었어요. 쿠로다는 그날의 여름풀 향기, 하얀 구름과 바람, 그곳에 서 있던 츠키시마의 모든 것을 하나도 잊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그건 뇌리가 아니 마음에 사무친 쿠로다의 연정이었으니까요. 쿠로다는 그 장면 속 자신이 느낀 강렬한 감정을 잃어 본 적이 없었던 거죠. 언제나 있었던 '사랑'이라는 것 말이에요. 쿠로다는 츠키시마에게 해주지 못한, 그 고백을 츠키마시를 닮은 하이브리드 차일드에게 드디어 건넵니다.

OVA는 없지만 원작에는 있는 짧은 이야기 속에서도, 수다스러운 두 사람은 말하지 않습니다. 시답지 않은 질문과, 핑계인 게 뻔한 답변만을 하죠. 비가 내려서, 수리를 맡긴 우산이 돌아오지 않아서, 비가 그칠 때까지는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을 간절히 여기며, 결코 말할 수 없는 연인의 시간을 보냅니다.

가끔, '나는 참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소름 끼칠 때가 있어요. 절대 흥분하지 않겠노라 그토록 많이 다짐했음에도 또 욱하고 마는 자신을 바라볼 때, 해는 바뀌어도 침대에 녹은 인절미처럼 박제한 듯 빈둥거릴 때,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도 같은 작품 같은 장면을 보고 질질 짜는 자신을 볼 때, 과거의 내가 데칼코마니처럼 묻어 나온 형체가 지금의 나인 것 같이 느껴져요. 참... 무섭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한 경험이 아닐 수 없네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

출판사: 베아트리체

출간일: 2020.03.09

분량: 본편 1권 + 외전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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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1 책갈피

"너."

"왜."

"성병 검사하고 와."

"... 뭐?"

유신이 저런 바보 같은 표정을 짓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네가 멋대로 휘두르고 다닌 좆대가리 나한테 넣으려면 그 정도는 해야지. 안그래?"

나는 반찬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으며 이어서 말했다.

"결과 나올 때까지 너랑 섹스할 생각 없어. 그게 싫으면..."

유신은 뭐라고 말하고 싶은 듯 입을 벙긋대다가 내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먹던 숟가락을 식탁 위에 내려놓은 채 방으로 가 버렸다.

유신이 사라지자마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렇지. 순순히 응해 줄리가 없었다. 이미 입에 넣기까지 했는데 성병 검사가 무슨 소용인가 싶긴 했지만 솔직히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는 게 사실이었다. 앞을 사용하기도 전에 뒤를 먼저 쓰게 생겼으니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유신이 다른 사람들과 많은 관계를 가졌다는 것에 뭐라 하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다. 유신은 그저 궁금하니까 한번 넣어 보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막상 해 보고 거부감이 들거나 만족스럽지 않으면 그 후에 나와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끝날 것이고, 그건 나에게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유신이 콘돔 없이 관계를 갖지 않는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다. 다만 나랑 하기 전에는 그 정도의 정성이라도 보여 주길 바란 것이다. 싫다고 하면 나는 어쩔 수 없이 그저 농담이었다고 알겠다고 하겠지만.

그나마 화내면서 나에게 욕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방에서 계속 나오질 않은 걸 보면 삐진 것 같은데, 저걸 또 어떻게 풀어 줘야 되나 싶었다. 갑자기 밥맛이 떨어져서 숟가락을 놓는 사이 유신이 휴대폰을 손에 들고 방에서 나왔다.

"예약했어."

유신이 식탁 의자에 앉으며 내뱉은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병원. 내일로 예약했다고."

​ point2: 줄거리

기: 연오는 13년째 친구 유신을 짝사랑하고 있다. 매우 독특한... 연오는 유신 이름을 부르며 자위하는 것을 들켜 혐오 받았고, 유신은 연오의 마음을 알고도 상대를 바꿔가며 자유로운 연애를 했지만, 연오는 유신의 으리으리한 집에 얹혀살며 유신이 사준 명품 옷을 입고 다녔다. 유신은 자신을 보면 좆을 세우는 연오를 탓하면서도, 연오가 늦게 들어오거나 연락이 안 되면 삐진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오묘한 관계는 전환점을 맞는다.

승: 대리인 연오는 같은 팀에 일하는 인턴 수인에게 게이라는 사실이 들키면서, 수인의 연애사에 도움을 주게 된다. 사실, 게이라고 하기엔 좋아하는 사람은 수인뿐인, 무연예 동정남이었지만, 수인의 적극성에 말려들어 이런 저런 사건을 겪는다. 한편, 연오와 수인이 가까워지면서, 유신은 불편함을 느끼고 연애도 잘 안 풀리며 짜증도 늘어갔다. 결국, 유신은 관계를 정리하고 연오의 오랜 짝사랑에 응답해 주는 듯하지만... 이들 사이에는 큰 장애물이 있었다.

전: 상상 속 수인과의 관계에서, 연오는 늘 탑이었다. 하지만, 수인에게 동정남 연오에게 탑은 가당치도 않았고, 결국 둘은 합의 안된 마지막 보루(?)만을 남겨둔 채 열심히 서로를 탐한다. 한편, 연오의 마음은 심란해진다. 첫사랑이자, 외로움을 많이 타고, 쉽게 곁을 내주지 않은 유신에게 힘들게 얻는 친구의 위치마저, 유신과의 섹스 후에는 지킬 수 없을 것 같았다. 선을 넘은 후, 자신에게 호기심이 떨어진 유신이 다른 사람과 연애하는 걸 볼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결: 하지만, 더 이상 미룰 없는 상황에 오자, 연오는 유신에게 탑을 양보한다. 그렇게 둘은 마지막 보루를 넘게 되었다. 그 후, 연오의 예상과 다르게, 유신은 연오를 더 갈구하고, 집착하고, 수인과의 관계를 질투하기에 이르렀다. 수인은 연오가 회사의 미국 연수를 신청했다는 사실을 알고, 연오를 감금하려 하지만, 연오는 그런 유신에게 청혼한다. 둘은 비록 사귄 적은 없지만, 결혼하기로 한다. 연오도 유신도, 서로가 떠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견딜 수 없었으므로....

point3 진지충의 review: 찐친구의 리얼 연애 라이프

사회생활을 하다 알게 된 사람들이랑 여행을 가면 잘 안 싸웁니다. 물론, 갈등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럭저럭 원만하게 잘 넘어가죠. 그런데, 학창 시절부터 알아 온 녀석들과는 갈 때마다 싸웁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렇게 안 맞으면 다시 안 가면 될 텐데,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도 또 여행을 다니고 있다는 거예요. 물론, 사회생활하다 알게 된 친구들 역시 미주알고주알 털어놓고, 추한 모습도 수토록 보이며, 마음을 터놓고 지내긴 합니다. 그래도, 찐친이랑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찐친이란, 내가 어떻게 변해도, 어떤 갈등이 생기더라도, 그 다음이 걱정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화도 나고, 싸우기도 하고, 실망도 하고, 골치 아프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별일 없듯, 언제나처럼 실 없는 얘기하며, 당연히 서로의 일상 어딘가에 있겠죠. 오래 보지 않아도 서먹해질 거라 여기지 않고, 수고스러운 부탁을 해도 미안하지 않아요. 만약, 반대 상황이 돼도, 나 역시 그것을 수고스럽게 여기지 않을 거라고 의심하지 않기에 말이죠. 확실히, 세련됨이랑은 거리가 먼 관계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드라마나 소설, 영화 속에서 절친의 의리를 멋진 미사여구가 잔뜩 들어간 대사로 화려하게 포장 한 것들을 보면, 좀 간지러울 때가 있어요. "너는 꼭 살아남아... 너의 친구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이런 장면에 찐친의 얼굴을 대입하자면, 손이 오그라들죠. "야! 정신 똑띠차리고 살아라! 나 개죽음 만들지 말고!" 실제는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요? 같은 선택, 다른 장면입니다.

'짝사랑의 비밀'은 이런 리얼 찐친들의 이야기예요. 아름다운 미사여구 따위는 없습니다. 짝사랑을 하면서, 학도 접지 않고, 한걸음 뒤에서 바라보며 눈물 한 방울 흘리지도 않습니다. 연우는 어렸던 유신을 보고 첫사랑에 빠졌고, 그 후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났을 때 역시 유신이 좋았어요. 이 까칠한 도련님의 비위를 맞춰가며, 간신히 절친의 직위를 하사(?) 받았을 때는, 유신이 마음을 준 친구가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에 으쓱하기도 했죠. 문제는 건강한 남학생의 아랫도리 역시 으쓱했다는 거...

유신에게 고백을 했을 경우에 성공 확률? 연우는 감히 0라고 확신했습니다. 성격은 모났지만, 잘생기고 돈 많은 유신은 본능에 충실한 연애를 꾸준히 해왔거든요. 그리고 연우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것을 지켜봐왔죠. 그것이 서럽거나, 절망스럽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짝사랑의 향후 향방에 대해서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어요. 연우는 유신을 끊어내기 위해 입대하지만, 실패합니다. 이후, 유신에게 마음도 들키고, 건강한 아들내미의 기상(?)도 빈번히 목격 당하지만, 유신과의 인연은 끊어지지 않아요.

그 이유는 유신이 이 관계를 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죠. 인기 많은 친구가, 나만을 챙겨 줄 때의 만족감! 연우가 으쓱하고 있을 때 유신 역시 뿌듯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멋대로인 나를 한결같이 챙겨주던, 성격 좋은 친구가 어느 날 군대를 갑니다. 누가 봐도 핑계인 변명을 대면서요. 유신은 연우가 제 성격을 버티지 못해 질려 떠났다는 생각에 두려워지죠. 연우가 없는 유신은 너무 외로웠어요. 연우의 자리는 여자친구도, 가족도, 향락으로도 채울 수 없었어요. 비록, 연우가 자신만 보면 발정한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유신은 연우의 마음을 받을 순 없었지만, 연우가 없는 생활을 상상하기 싫었어요. 그래서, 연우를 자신에 집에 데리고 삽니다. 명품을 입혀가면서요.

그러다가 아주 작은 조약돌이 이 미묘한 관계에 던져집니다. 연우는 팀 내 인턴 수인의 저돌적 요구에 전복(?) 당해, '질투 유발 대작전'에 투입되죠. 수인의 남자친구를 도발하기 위해, 수인과 호텔에 가고, 수인의 전화를 대신 받아 으름장도 놓습니다. 굴곡 많은 수인의 연애사에 상담사가 되어주기도 해요. 문제는 그 장면을 모두 목격한 유신이 매우 불편해지기 시작했다는 거죠. 유신은 영인의 우선순위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영인이 원하는 대로 섹스해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다다릅니다.

처음부터 순서를 지키며 시작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연우와 유신은 모든 게 뒤죽박죽입니다. 하지만, 조금씩 길을 찾아가요. 그건,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이고, 멋있거나 단호하진 않습니다. 질질, 질척, 우발적이고 즉흥적이죠. 그런데, 저는 이런 게 찐친의 러브 라이프가 아닌가 싶어요. 대부분 사람들에게 이미지메이킹 하며, 좋은 사람으로 비치기 바라면서도, 찐친에게만은 긴장감 0의 아메바가 되고 마는... 저만 그런 건 아니겠죠?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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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처: 봄툰

분량: 본편 49화 + 외전 13화

point1: 한 컷

​point2: 줄거리

기: 정민은 신입생 환영회에서 자신을 도와준 이룸을 좋아하게 됐고, 이후 우연히 술 취한 이룸의 실수로 얼떨결에 뜨밤을 보냈다. 그리고, 정민은 짝사랑 상대 이룸과 섹파라는 애매한 관계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룸과 섹스를 마치고 돌아오는 씁쓸한 길, 한 남자를 만난다. 그 남자가 정민의 몸의 손을 대자 오색빛깔 산호가 피어나고, 그는 그 산호를 떼어먹었다. 그는 학교 선배 사로였다. 그 후, 정민은 사로 제안에 요상한 아르바이트도 시작한다.

승: 사로의 일족은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저주에 걸렸고, 부득불 타인의 감정으로 피어난 산호를 먹으며 생명을 유지해 왔다. 그리고, 순수한 감정으로 피어난 산호는 맛있지만 희귀했기에, 사로는 맛없는 산호를 먹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후배 정민은, 산호를 눈으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너무나 순수하고 맛있는 '짝사랑'의 감정을 뿜어내고 있었다. 사로는 정민에게 맛있는 산호를 얻어 내기 위해 알바를 제안한다.

전: 이룸은 정민의 마음을 알고 정민에게 독점욕도 느끼지만, 금기를 넘을 용기가 없었다. 그러던 중 사로의 계략에 말려 여자친구를 사귀고, 그 모습을 본 정민은 크게 상처 입는다. 짝사랑에 힘겨운 정민은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사로에게 편안함을 느낀다. 반면, 정민이 가진 이룸에 대한 지고 지순한 사랑의 감정을 지켜본 사로는, 정민을 사랑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그래서, 사로는 일족의 저주를 풀기 위해 어머니를 만나고, 진짜 저주의 실체를 알게 된다.

결: 한편, 사로의 계략을 알게 된 이룸은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정민에게도 이 사실을 알린다. 그리고,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정민에 대한 이룸의 집착은 나날이 심해진다. 한편, 사로는 정민을 이룸에게서 구하겠다며 정민을 감금한다. 하지만, 비극적인 전생의 기억을 되찾은 사로는 정민을 놓아 준다. 이룸은 사로의 집을 나오는 정민을 보고 흥분해 도로로 밀치고, 그 순간 사로는 정민을 구하고 대신 죽는다. 그때 용왕이 나타나 사로의 저주를 풀어준다.

point3 진지충의 review: 감정의 맛

욕구의 종류는 많지만, 결국 그 본질은 대동소이한 것 같습니다. 때론 서로 간의 경계를 넘나들기도 하는데, 제일 범용적으로 쓰이는 욕구가 식욕! 바로 맛! 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BL에서도 제법 많은 맛집들이 존재하지요~ 집착광공은 매운맛, 대형견공은 달달구리, 쌍방구원물 속 공수는 쓰지만 중독성 짙은 에스프레소가 연상되기도 해요. 여기 감정을 느끼고, 보고, 맛보는 초능력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언어가 아닌 방법으로 정보를 얻는 초능력자들을 많습니다. 문자를 읽는 향현사나, 이미지를 읽는 사이코메트리스트, 타인의 감정에 동화할 수 있거나 이세계 존재와 소통할 수 있는 신력을 지닌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그 능력으로 인해 힘든 삶을 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소재가 꾸준히 그리고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진의'를 알고 싶은 보통 사람들의 간절함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하여 '맛보는' 초능력까지 등장했습니다. 두둥! 저는 굉장히 신선했어요. 그런데, 이 능력... 정말 보통 사람보다 우월한 걸까요? 물론, 웹툰 속에서 사로는 시시각각 변하는 정민의 감정을 맛본 덕분에, 능수능란하게 이룸과 정민 사이를 이간질 하긴 합니다. 하지만, 감정의 산호를 먹지 않으면 죽으니까 손해도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애당초 이 능력은 용왕의 산호 정원을 망친 죄로 내려진 벌이니,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로는 999년을 산 예비 용이었어요. 하지만, 거사를 1년 앞둔 검은 뱀은, 용왕의 산호 정원을 가꾸는 아름다운 정원사에게 첫눈에 반하죠. 하지만, 정원사는 사로를 거절했고, 분노한 사로는 정원 깊숙이 숨겨진 진주를 훔쳐 먹습니다. 불행히도, 그 진주는 가장 순수한 사랑을 모아 만들어진 보옥이었고, 엇나간 연심으로 가득 찬 사로에게 그 결정체는 독이었어요. 용왕은 꾀씸한 뱀에게 벌을 내리려 하지만, 그때 정원사가 앞으로 나섭니다. 그리고 뱀의 죄를 함께 지기를 청합니다. 그 모습을 갸륵하게 본 용왕은, 진정한 사랑을 깨우치게 되면 저주를 풀어주겠노라 선처를 베풀어, 두 존재를 인간 세계로 떨굽니다.

사로의 일족은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저주에 걸려있기에, 타인의 감정을 먹어야만 살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저주의 실체는 '사랑하면 미치는 저주'였어요. 수없이 반복되는 윤회 속에서, 사로는 환생한 정원사를 만나고 필연인 듯 사랑에 빠집니다. 그리고, 집착과 광기로 인해 진정한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결국 미쳐 환생한 정원사를 죽이고 맙니다. 이번 생에 정민으로 환생한 정원사 역시 또 같은 위기에 처하게 되죠. 물론, 결말은 달랐지만 말이에요.

'산호가 피는 소리'에 재미있는 설정 중 하나는, 역시 '맛'인데요. 집착, 독점욕, 질투 같은 악의적 감정들은 흔히 독처럼 묘사되잖아요. 하지만, '산호가 피는 소리'에서 맛은, 순수할수록 좋습니다. 그 감정이 무엇이든 꾸미지 않을수록 맛있다는 거죠. 사로는 이룸의 독점욕을 보고 입맛을 다시고, 상처 입은 정민의 감정은 맛난 아이스크림이 돼요. 부산물이 뒤섞이지 않은 질 좋은 재료들은, 밀폐용기에 잘 보관되어 훌륭한 음식으로 재탄생하기도 합니다.

 

맛없는 음식도 있습니다. 바로 거짓이 섞인 감정이요. 상대방을 위해 인내하고 희생하는 사랑, 상처 입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한 위로, 이런 것들은 맛이 없습니다. 신선하죠? 단순한 욕구보다 고차원적인, 흔히 어른스럽고 성숙하다고 불리는 감정들인데 말이에요. 하지만, 결국 이런 감정들은 이기심, 사랑받고 싶은 욕구, 혹은 미움이나 슬픔 따위의 '진짜' 감정에, 불순물을 잔뜩 첨가한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짝퉁이라는 거죠.

사로는 정민을 만나기 전, 그 맛없는 산호들만 먹으며 살고 있었어요. 불순물들이란, 결국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에게 필요해 생긴 것들일 테니, 자의든 타의든 '우리' 주변에 널려 있을 거예요. '우리'로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맛 좋은 산호를 먹기는 힘들었겠죠. 그러다 순수한 짝사랑의 산호를 퐁퐁 내뿜는 정민과 마주치게 됩니다. 그날 사로가 맛본 정민의 산호는, 냉동 닭 가슴살만 삶아 먹다 튀긴 치킨을 먹었을 때만큼 충격적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사로는 말도 안 되는 알바를 제안하고, 뒷수작을 부려 정민을 곁에 붙들어 놓죠. 포기할 수 없는, 한 번 맛본, 그 환상적인 맛 때문에...

 

그러다 사로는 정민의 그 순수한 애정을 먹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가지길 원하게 됐죠. 오랜 짝사랑에 지친 정민은, 마음속에서 이룸을 끊어 내고 싶어졌고요. 결국, 사로와 정민은 서로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해 보기로 해요. 물론, 그전에 먼저 사로의 저주를 풀어야 했어요. 두 사람은 사로의 어머니를 만나 저주의 진실을 듣게 됩니다. 한편, 부쩍 가까워진 사로와 정민을 보는 이룸의 질투는 한계에 다다릅니다. 결국, 이룸은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정민에게 고백합니다. 동시에, 사로의 뒷공작(?)이 들키면서, 정민은 사로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되고, 결국 이룸을 선택합니다. 이후, 장르는 급 피폐물의 길을 걷게 되죠.

마무리는 좀 아쉬웠습니다. 폭행, 감금, 탈출, 사고, 깨달음...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느린 템포로 섬세하게 다루던 초중반과 다르게, 후반부는 대형 사건들이 몰아칩니다. 물론, 빠른 템포가 긴장감을 고조시킬 때도 있지만, 인물의 심리 중심이던 '산호가 피는 소리'가 후반부로 가면서, 사건 중심으로 급변하는 모양새다 보니... 전 좀 잉?했어요. 지리멸렬한 몇 갑절의 시간 동안 벗어나지 못했던 저주의 굴레가, 너무 툭 끊어진 느낌이랄까요. 사로가 정민을 위해 희생하는 건 그렇다 쳐도, 사로가 정민을 죽이지 않고 이룸에게 보내주는 장면은 이해가 안 갔어요. 과거의 사로와 현재의 사로가 반대의 결정을 하는, 엄청나게 위대하고 핵심적인 심리 변화가 빠져 있는 느낌이랄까요.

공들인 밑 작업의 마지막 화룡점정이 초큼 부족한 것 같은... 이어지는 외전에서 용왕이 등장해 과거 스토리의 여백을 메꿔주고, 서툰 사로와 정민의 연애 분투기가 본편에서 중단된 '사랑하기 위한 노력'을 보충해 주긴 하지만, 저의 갈증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죠. 그래도, 이제는 사로와 정민을 떠나보내야 하는 시간이 왔음을 알고 있습니다. ㅠ.ㅜ 미련 많은 이 여자의 아쉬움은, 정민의 귀욤 귀욤 짤로 달래보도록 하겠습니다.

 

 

※ 동일 작가의 다른 웹툰 리뷰

 

2020.10.24 - [BL 웹툰] - [SF물/시리어스물/애절물] 별이 잠들 때 - TOU, 상혁

 

[SF물/시리어스물/애절물] 별이 잠들 때 - TOU, 상혁

연재처: 봄툰 분량: 본편 54화 + 외전 10화 ​ ​ ​ point1: 한 컷 ​ ​ ​ ​ ​ ​point2: 줄거리 ​ ​ 기: 2020년 가을 소행성이 지구에 떨어지고 , 소행성을 파괴하기 위해 쏘아 올린 수 많은 미사일

b-garden.tistory.com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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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비하인드

출간일: 2019.01.04

분량: 본편 1권 +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남자들의 성기가 입안과 배 속을 후비고 그들의 손이 재경의 유두며 성기를 장난감처럼 주무르는 동안, 재경의 눈동자는 열심히 굴러가며 방안을 훑었다. 거의 생존본능에 기인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이 방에는 시계가 없었다. 시간제한도, 단서도 없었다. 그저 벽에 걸린 합성사진과 지독한 약품냄새가 전부였다. 재경은 그저 그를 범하는 이들 사이에 둘러싸여 죽을 것 같은 기분과 죽고 싶은 기분 사이에서 헤매었다. 동창들은 죄다 미쳐버린 것 같았고, 지금 그들이 재경을 범하고 있는 것은 이 방을 탈출하는 것과는 완전히 상관없는 일이었다.

 

 

 

point 2 줄거리

 

 

기: 재경은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겼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4명의 동창들이 있었다. 두루두루 원만했던 송우진, 반장 이준환, 체대를 다닌다는 김태우와 정영호, 모두 별로 친하지 않았던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밀실에 갇혀 있었다. 마지막으로 눈을 뜬 재경은 시간이 줄어들고 있는 타이머와 방의 구조를 보고 방탈출 게임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힌트를 찾기 시작한다. 그때 재경은 자신의 주머니에 든 백신을 발견하고, 혼자 마신다.

 

승: 한편, 4명의 동창들은 본인들이 잔인하게 살해당한 모습을 합성한 사진을 발견하고, 흥분한다. 그리고, 재경이 섹스 토이에 농락당하는 사진이 추가로 발견되자, 탈출을 명분으로 재경을 사진과 똑같은 모습으로 만든다. 재경은 격렬히 거부하지만 중과부적이었고, 그 고통의 시간이 끝나자 탈출구는 개방된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또 다른 방이었다. 그곳은 더 노골적인 퇴폐의 장소였고, 이미 광기 어린 4명의 동창들은 앞다퉈 재경을 유린한다.

 

전: 두 번째 방의 미션이 끝나자 또다시 탈출구가 개방되고, 그들은 세 번째 방에 도착한다. 두 개의 방에서 미미했던 약품 냄새가 심하게 진동했다. 순간, 재경은 Poison이라는 표시, 자신만 먹은 백신을 떠올리고, 4명의 동창을 미치게 한 것이 이 냄새라는 것을 직감한다. 그리고, 그 약품에 강하게 노출된 4명은 마지막 이성의 끈을 놓고 재경은 강간한다. 그때 3번째 방의 탈출구가 열리며 들어온 누군가는 강간 당하고 있는 재경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다. 웃으며...

 

결: 그는 고등학교 학폭 피해자 김건우였다. 재경은 건우를 때리거나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집단 폭행 당하는 건우의 사진을, 지금의 건우처럼 찍은 적 있었다. 건우는 웃으며 자신의 사진을 찍는 재경을 보며 꼴렸고, 재경을 위해(?) 방탈출 게임을 계획한 것이었다. 건우는 강간 당하는 재경의 입에 키스하며 알약을 밀어 넣는다. 재경은 정신을 잃고, 건우의 집에서 깨어난다. 건우는 참아 온 욕구는 재경에게 무참히 푼다. 그리고, 그곳은 탈출이 불가능한 방이었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흥미로운 소재와 전개에 비해, 점점 싱거워지는...

 

 

하드코어물에 대해 리뷰하면서, '하드코어' 장르에 대한 이야기도 몇 번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도 다양한 소재와 클리셰가 있지만, 결국 비일상, 비상식, 초자극의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하드코어라고 불리는 걸 거예요. 확실히 하드코어를 무난한 장르라고 부르긴 힘들 것 같네요. 그런 점에서 마크다운 백포백에서 하드코어 작품들의 등장 빈도가 늘고 있는 것이, 개인적으로 놀랍습니다. 사실, 백포백은 생각 없이 결재하는 사람으로서, '방 탈출 게임'이 하드코어인지 모르고 봤어요. 다 읽고 보니, 제목이 제법 의미심장하더라고요.

 

원래 하드코어는 따지지 않고 봅니다. 상식을 기준으로 하드코어 작품을 이해하려고 시도하면, 카오스에 빠질 거예요. 애당초, 그게 그 장르의 재미이고 기발함이니까요. 그럼에도, '방 탈출 게임'은 좀 잉?스럽긴 합니다. 상황과 인물을 납득시키려는 설명이 공연히 아귀가 엇나가게 만든 것 같달까요. 그럴 거면 차라리 분량을 늘리고, 설정을 좀 더 촘촘히 다져서 스릴러물로 만들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드코어치고는 수위나 배덕감은 낮기도 하고 말이죠.

 

'방 탈출 게임'은 흥미진진하게 시작합니다. 밀실에 갇힌, 서로의 학창 시절 치부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대면 대면한 동창들이, 합성 사진 속 잔인하게 죽은 자신의 모습을 보며 공포를 느끼고 있을 때, 그들은 알아채지 못할 정도의 흥분성 마약에 노출됩니다. 줄어드는 시간과, 미션을 완료해야만 탈출할 수 있다는 압박감... 첫 번째 방에서 4명의 동창들은, 법률 조각 사유를 들며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재경을 섹스토이에 앉히고 유린해요. 방을 탈출하기 위해, 미션이 요구한 사진 속 재현에 충실하면서요.

 

두 번째 방으로 이동했을 때, 4명의 동창들은 장시간 마약에 노출된 상태였고, 이미 첫 번째 방에서 평소라면 감히 시도도 못할 자극적 쾌락을 맛본 뒤였죠. 게다가, 두 번째 방은 완벽한 퇴폐의 방이었어요. 그곳에는 번호가 매겨진 섹스토이와, 합성된 재경의 사진이 놓여 있었죠. 하지만, 그들은 이제 사진을 재현하는 것에만 몰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호스트가 요구하지도 않은 방법으로 섹스토이를 사용하며, 괴로워하는 재경의 모습을 즐기다가, 준환을 시작으로 재경을 강간하기 시작하죠.

 

넝마가 된 재경이 세 번째 방에 도착했을 때, 자신이 먹은 백신의 정체를 확신해요. 그리고, 세 번째 방에 노골적으로 쏟아지는 마약에 취한 4명의 동창들은 미션도 없이 재경에 달려들어요. 오로지 재경만이, 맑은 정신으로 그 고통을 당하고 있었죠. 그 백신은 재경에게 진짜 Poison이었어요. 그리고, 그때 등장하는 이 게임을 만든 호스트! 바로 클라이맥스라고 생각했지만... 안타깝게도 글을 그다음부터는 좀 싱거워집니다.

 

'방탈출 게임'은 하드코어치고는 씬의 특이점이 없어요. 24세 청년들은 그다지 창의적이지 않았답니다. 게다가, '폭행당하는 자신을 찍는 재경의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는 것이 방 탈출 게임을 기획한 이유였다는, 호스트 건우도 좀 허무했습니다. 차라리, 짧게 끝내야 했다면, 호스트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열린 결말로 마무리 짓는 것이 더 완결성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솔직히, 방 탈출 이후 건우의 집으로 이동한 후 이야기는 긴장감도 없고, 의미도 없고... 건우는 절륜하고, 재경은 갇혔다.라는 말을 늘려 쓴 것 같달까요.

 

게다가, 고등학생인 건우가 따돌림당했던 이유는 아버지가 낙선한 의원이었고, 선거 자금을 많이 소진해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이라는데, 24살의 건우는 엄청난 재력가이고 약지가 잘린 동창의 고용주예요. 그 연결고리가 너무 헐거웠어요. 차라리 건우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학폭 피해자였던 찌질이가 사실은 사이코였다! 면 미싱 링크는 없었을 듯해요. 잘 조작된 장소, 모호한 관계, 생존 본능과 폭력적 욕구가 가학적 행위를 합리화해주는 '미션'이라는 설정... 정말 매력적인 요소들이 많은 작품인데, 아쉬워요. 뒷부분에서 너무 많이 희석됐어요.

 

'방탈출 게임'의 외전 격인 '방탈출 게인-보너스 트랩'는 정말 사족이었습니다. 재경이 건우의 집에서 탈출하는 내용인데, 긴장감도 없고, 예상하다시피 건우는 모든 것을 알고 지켜보고 있었죠. 그리고 재경은 건우에게 길들여진 자신의 모습에 안절부절못하면서도, 결국 다시 건우에게 안착합니다. 건우는 손쉽게 재경을 다시 감금하고, 재경은 탈출의 의지를 완전히 포기해요.

 

본권 2/3까지가 좋았어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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