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비욘드

출간일: 2017.03.03

분량: 본편 2권 +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완전히 결박된 후에야 소영의 움직임이 멈췄다. 환이 안에 진득하게 파정하자 소영의 아랫배가 볼록해졌다. 내장을 틀어막은 압박감에 얕은 숨만 간신히 내뱉으며 눈물 흘리는 소영의 귓가에 대고 환이 속삭였다.

"영희공 환소영은 귀비에 봉하고 원자 호를 내려 그를 원귀비라 한다."

자신을 귀비에 봉한다는 말에 소영의 젖은 눈이 커졌다. 현재 황제의 후궁 중에 정일품 비는 품계를 받은 이가 없었다. 소영이 결박의 고통도 잊고 저를 동그랗게 뜬 눈으로 쳐다보자 환이 다정스레 웃으며 그 눈가를 쓸었다.

"처소는 영수궁으로 하나, 짐의 별궁인 양심전에서 옮겨 가는 것을 허락지 않겠다. 황제의 화원인 어화원에 유일하게 출입을 허락하며 원한다면 언제든지 짐에게 함께 가자고 청해도 좋다."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교지를 읊는 양하시는데 소영의 눈가에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귀비의 태에서 나는 황자가 이 나라의 태자가 될 것이며 그 태자는 짐의 뒤를 이어 다음 대의 황위에 오르게 될 것이다."

자신과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그 목소리가 너무나 달콤해서 기어이 눈물이 흘러넘쳤다.

"그러나 짐은 귀비를 닮은 황녀도 기꺼우니 귀비는 괘념치 말라."

덧붙이시는 말씀이 왠지 귀여워서 소영은 결국 웃어버렸다.

point 2 줄거리

기: 직첩조차 받지 못한 천한 어머니의 태에서 태어난 5황자 소영은, 궁인들의 박대와 괄시, 황자녀들의 괴롭힘을 당하며 삼남소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소영을 유일하게 아끼고 보살피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태자 환이었다. 태자는 동궁에 소영을 불러 함께 생활하고, 음인이 소영에게 발정기가 오자 최측근인 중랑장 민석호를 시켜 시침을 들게 한다. 당연히, 태자의 이런 총애는 시기를 불러왔고, 소영은 태자비의 눈 밖에 나 동궁에서 쫓겨난다.

승: 황후는 완전한 음인이 된 소영을 민석호에게 보내려 하는 한편, 소영은 무작위로 발정기가 찾아오는 야화라는 것이 밝혀지고, 잠잠했던 태자비의 행보도 거칠어지자, 태자의 마음은 급해진다. 사실 태자환은 소영에게 좋은 형의 가장하고 있었지만, 어린 소영과 각인이 되면서 양인으로 발현했고, 그 후 이복동생인 소영을 온전히 얻기 위해 준비해 왔었다. 하지만, 황제의 양위가 생각보다 늦어지면서, 소영의 초야를 뺏기고 소영마저 잃게 생긴 것이었다.

전: 마음이 급해진 태자는 소영의 몸을 끈덕지게 길들이고, 소영은 그런 형에게 이성적 성애를 느끼며 혼란과 갈등을 겪는다. 그때 마침, 소영은 자신의 약혼자이자 자신을 사랑하는 민석호와 함께 잠시 숨을 돌리러 출궁하고, 환은 허락 없이 사라진 두 사람에게 분노하며, 소영을 거칠게 대하고 강제로 각인한다. 그 후 상처 입은 소영을 달래 간신히 연인이 되지만, 야화라는 소문이 돌면서 결국 소영은 황적에서 제적 당하고 정업원에 유폐되기에 이른다.

결: 하지만, 갑작스러운 낙마 사고로 마비가 온 황제가 태자에게 양위를 결정하면서, 환은 곧 소영에게 '환'이라는 성을 내리고, 영희공에 봉작하여 곁에 둔다. 한편, 황후의 직첩을 받지 못한 태자비는 사가의 연이 있었던 의친왕과 함께 반역을 도모하지만, 이미 만만의 대비를 하고 있던 황제에 의해 발각된다. 환은 소영을 귀비로 삼고, 소영에게서 자식들을 본다. 그 후 민석호는 문성황녀와 결혼하여 부마가 되고, 소영은 황후가 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자낮수

근래 문득 자낮수가 참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스라이팅이 자주 당장하는 피폐물이나 할리킹의 일부에서나 볼 수 있었던 키워드 였던것 같은데... 이제는 스릴러, 판타지, 일상물 할 것 없이, 자낮수가 등장합니다. 우연인지, 최근 저의 책장을 메운 책들 중에서도 많은 유형의 자낮수가, 다른 소재와 장르의 이야기 속에 나오더라고요. 하지만, 아시나요? 리디북스에 자낮수 키워드가 없다는 것!

드라마는 시대의 이상을 반영하고, 소설은 시대의 아픔을 반영한다. 어디선가 읽었던 구문인데,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드라마나 소설이 그만큼 대중적 채널이고, 어떤 형식으로든 시대를 투영하고 있다는 거겠죠. 유난히 '헬 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때에 '이세계물', '회귀물', '환생물'이 많아진 것 처럼요. 그렇다면, 걱정 많고 늘 불안해하지만, 알고 보면 재주도 많고 사랑스러운 자낮수도 이 시대 일면을 비추고 있는 걸까요?

'야화'는 고백하자면, 한번 읽고 방치한 많은 도서들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 다시 보니, 조금 다르게 보였어요. 문득, 이 책이 절륜한 황제와 백치 이복동생의 씬풍년 시대물 BL이 아니라, 환의 일생을 건 계략기 혹은 한걸음 당 한 번씩 '자낮의 덫'에 빠지는 소영의 구원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제가 환을 보며, '집착' '광공'이 아니라 '성실' '헌신'이란 단어를 떠올렸다는 것이, 저조차도 낯설었어요. 분명, 제 기억 속 '야화'는 킬탐용 뽕빨물이었거든요.

일단, 제가 과거 '야화'를 저평가했던 이유는, 갈등이 변변찮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어요. 출신도 천하고 뒷배도 없는 5황자 소영은,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짓궂은 황자녀들의 괴롭힘 대상이었죠. 게다가, 소영의 유일한 동아줄 태자에게는 황후의 조카인 태자비가 있었고, 그 묘가는 견고한 외척세력으로의 입지를 다지며 정치력을 키워왔어요. 황제가 될 것이 확실한 태자에게는, 소영을 반려로 맞는다는 것은 여러모로 힘든 일이고, 당연히 갈등도 많긴 했지만...

황제가 허무할 정도로, 너무 쉽게 모든 일을 해결합니다. 소영을 사랑한 민석호는 소영의 시침도 들고 약혼자도 되지만, 단 한 번의 반항도 없이 소영을 포기합니다. 태자비와 의친왕의 반역은 놀랍도록 위협적이지 않았고, 황후는 불용패 조카를 쉽게 버립니다. 태자는 황제의 낙마사고도, 소영과 환의 관계를 반대하는 상소들도, 어렵지 않게 처리하죠. 물론, 소영을 단 한번이라도 건드린 자들을, 그 시기와 신분를 불문하고 톡톡히 복수해줘요. 그래서 갈등은 있으나, 갈등 풀어가는 재미는 좀 아쉬웠습니다.

그럼에도, 첫인상이 '나쁨'이 아니었던 건, 분량과 가격이 혜자스럽기 때문이었어요. 한 권 10만 자도 안 되는 소설들도 즐비한데, 야화는 한 권 당 20만 자초과에 4500원! 가성비가 우수하죠. 또, 환의 원앤온리와 소영의 귀욤귀욤에도 후한 점수를 줬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정신만 들면 '그' 생각뿐인, 절륜한 황제의 씬씬씬은 달달구리하지만, 지나치게 왕성하셔서 소영도 지치고, 보는 독자1도 어느 순간 흐린 눈 스킵을 하게 됩니다.

이 소설에는 숨겨진 섭공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설표'예요. 한결같이 소영을 바라보는 순정파 표범이죠. 물론, 나중에 반려를 만나 아이를 낳고 잘 산다만은... 나름 애정에 목마른 야수예요. 소영은 분명 일부의 황자녀들과 권력으로만 가치를 평가하는 궁인들에게 괄시 받습니다. 하지만, 두 섭공인 민석호나 설표에게, 일반적이지 않은 독점적 애정을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태자의 절대적 비호를 받고 있고, 태자는 그것을 외부에 숨기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소영은 태자의 권위를 앞세워 호가호위할 수도 있고, 그럴 깜냥에 없다 하더라도 자신을 사랑하는 권력자들에게 고단한 삶에 대해 토로하고 기댈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소영은 태자가 위대한 줄은 알아도, 태자가 사랑하는 자신은 '이복동생'이고 '야화'라는 이유만으로 유령이 되어 평생 후궁에서 비참한 삶을 살 거라고 무서워합니다. 민석호가 공신 가문의 장자이며, 많은 황녀들이 꿈꾸는 이상적 반려임을 알아도, 대 놓고 구애하는 민석호의 약혼자 자리가 얼마나 대단한 줄은 알지 못합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면, 이 소설을 많은 갈등을 열심히 풀어가려 노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갈등은 암투도 아니고 근친관계도 아니었어요. 세상으로부터 숨고 싶어 하는 소영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황제가, 설득하고 달래고 안심시키는 과정이었던 거죠.

태자의 첫째 미션, 선물 주기! 태자가 어린 소영과 각인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환은 서서히 소영에게 '주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궁박한 소영에게 하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죠. 많은 이들은 하사받고자 했고, 하사받았다는 사실을 떠벌리며 친분을 과시하고 싶어 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소영은 주면 쩔쩔매고, 없는 살림에 답례품 구해오고, 답례품 대신 연주를 듣게 된 후로도, 너무 자주 준다며 부담스러워하죠. 소영에게 태자비도 누리지 못한, 태자의 지밀을 공유해 주었음에도, 태자비가 쫓아내면 고자질은 고사하도, 냉큼 초라한 남삼소로 돌아갑니다. 태자가 준 팔찌는, 착용하지 않고 상자에 보관만 해요.

태자의 둘째 미션, 안심시키기! '야화'의 설정상, 양인이 음인과 각인이 되면, 자신의 음인 이외에 만족감을 얻지 못할 뿐 관계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반면에, 음인은 오로지 각인한 양인과만 관계를 할 수 있죠. 태자는 소영을 안고 포태시키고 싶었지만, 황제가 될 때까지 참아야 후환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소영의 발정기에 믿을 수 있는 민석호를 보내지만, 가까이 각인된 음인을 두고 안지 못하는 고통에 시달립니다.

그리고, 마침내 소영에게 각인을 합니다. 하지만, 각인 전의 고난보다 더 큰 고난이 있었으니, 그것은 소영을 달래는 일! 태자는 지존이지만, 태자의 약속은 믿을 수 없는 것일까요? 사모하고, 어떤 경우에도 보호해 주고, 그대가 낳은 아이를 태자로 삼겠다고 달래어도, 소영은 세상에 손가락질 받고 이름 없는 자가 되어 어느 후궁의 전각에서 비참한 생을 이어갈 거라고 태자를 원망하죠. 야화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태자는 '정말' 비참한 상황에 놓일 뻔한 소영을 기지와 협상으로 구해내지만, 소영은 보호받았다는 '증명'보다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슬퍼합니다.

태자의 세 번째 미션, 결혼하기! 태자는 황제가 된 후 황적에서 지워져 평민이 된 소영을, 영희공으로 봉작하면서 형제가 아닌 황족으로 만듭니다. 또, 자신의 이름에 획만 바꾼 '환'이라는 성을 주어 '내 사람'임을 찜하고, 즉위식 연회장에서 나쁜 손으로 '내 음인'임을 만인에게 알립니다. 게다가 소영을 구박했던 태자비는 황후는 고사하고 재인이 되었고, 소영에게는 태후라는 든든한 우군도 있어요. 하지만, 소영은 귀비가 되는 것을 기꺼워하지 않죠.

소영은 태생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고, 주목받는 자리가 무서우며, 황제의 총애는 받아도 총비가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황제와 보내는 밤이 늘어나나 회임을 하지 못하자, 황제에게 후궁을 권하기도 합니다. 후사의 책임은 막중하고, 환을 독점하고 싶어도, 독점할 자신은 없었죠. 황제는 이미 오래전에 소영의 독점물이었음에도, 황제는 소영의 시기심을 자극하고, 자리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역설하며, 어렵게도 소영의 반려가 돼요.

자낮수가 고구마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자낮수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게끔 만드는데, 엄청난 공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인들 중 자존감이 떨어졌다고 말하는 이들이, 이렇게 많았던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 때문이다, 경기 때문이다, 자연재해 때문이다, 그런 것들이 위로가 되었을 때도 있었겠지만, 그 위로의 유통기한은 의외로 짧아서, 당장 되는 일이 없으면 자신의 가치도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요. 그리고, 항상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성공하는 사람들은 존재하고요. 그들의 존재가, 위기를 기회로 만들지 못한 자신의 무능을 지탄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존감이 낮다는 건, 반대로 자기 가치는 높다는 말인 셈이죠. 자존감이 떨어져 힘들다면, 적어도 지금 느끼는 자신보다는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BL에 나오는 '자낮수'는, 잘난 공이 가지지 못하고, 공 주변에서도 도무지 찾을 수 없는, 귀한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음에도 스스로는 모르고 있어요. 공이 그것을 발견하고, 알려주고, 사랑해 주는 것으로 자낮수의 인생을 달라집니다. 신데렐라랑은 달라요. 마법사는 필요 없고, 왕자만 있거든요.

이 시대가 자낮수를 필요로 하는 걸까요? 그럼 자낮수의 '자낮'보다는 결국, 마침내, 파이널리, 그 자낮수가 도달한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서 였으면 좋겠습니다. 오랜 BLer로서, 확신하지면, 그 '결과'는 이미 자낮수에게 있어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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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비애코믹스

분량: 본편 1권

point 1 한 컷

point 2 줄거리

: 유타카는 타인과 함께 하는 식사가 불편했다. 그래서, 매일 점심시간이 되면 공원 벤치에서 주먹밥 도시락을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꼬르륵 소리를 내며 한 꼬마가 다가오고, 미네는 자신의 주먹밥 하나를 건네준다. 그 후 그 공원에서 그 꼬마와 꼬마의 형을 다시 만난다. 꼬마는 그날 먹었던 주먹밥이 너무 맛있었다며 다시 먹고 싶어 했고, 꼬마의 형은 주먹밥 만드는 법을 알려달라고 부탁한다. 얼떨결에 유타카는 주말에 집에 찾아가기로 약속까지 한다.

: 꼬마의 이름은 미네, 꼬마의 형은 미노루, 이 형제는 2년 전 어머니를 잃었고, 도자기 빚는 재주는 있지만 요리는 영 창의적인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예상외로, 정말 찾아온 유타카와 함께 주먹밥을 만들어 먹으면서, 세 사람은 함께 하는 식사가 주는 평화를 나눈다. 이후 매주 주말 미네와 미노루는 유카타를 기다리고, 유타카는 행복한 식탁으로 향하는 생활이 이어진다.

: 여느 주말처럼 함께 마트를 간 날, 세 사람은 우연히 유타카의 형과 마주치고, 미노루는 순간 경직된 유타카를 발견한다. 한편, 세 사람은 점점 서로의 삶 속에 깊이 스며들고, 미노루는 회사 점심시간에 유타카가 점심을 먹는 공원에 찾아가 함께 도시락을 먹기도 한다. 시간은 흘러, 크리스마스이브가 되고, 감기에 걸린 미네의 초대에 응하지 못한다. 그리고, 집에 홀로 있는 유타카를 찾아가 우동을 끓여주고, 간호해 주며 쓸쓸하지 않도록 함께 있어 준다.

: 건강을 회복한 유타카는 미노루에게 혼자 밥을 먹게 된 사연을, 미노루는 유타카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들의 첫 만남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미노루는 유타카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유타카는 미노루, 미노와 함께 한 시간이 너무 행복한 나머지 잃을까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한편, 유타카는 미노루의 집에서 신년을 함께 보내고, 미노루의 아버지에게 용기를 얻어 미노루의 고백에 대답한다. 두 사람은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살기로 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함께 먹는 밥의 맛!

민족의 대명절 설입니다. 두둥! 하지만, 명절 분위기 참 안 나네요. 작년 추석에 '우리 집 신령님'을, 크리스마스이브에 '섹시 산타 카리스마'를 리뷰하면서 같은 류의 멘트를 했던 것 같은데, '완전히'는 아니지만 이렇게 조금도 나아지지 않을 줄이야... 올해 추석은 좀 나아질까요? 기대의 기회비용이 실망인 것을 알아도, 도무지 기대를 버릴 수 없네요.

혼밥족이라는 말조차 어색할 정도로, 근래에는 밥을 혼자 먹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졌어요. 저는 좀 많이 바쁜 대학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다 보니 혼자 밥 먹는 것이 익숙했습니다. 틈을 놓치면, 식사 타이밍을 잡기 애매했거든요. 그래서, 밥, 국, 반찬 다 나오는 한식도 10분 만에 클리어하는 재주도 생겼습니다.(흐뭇) 어쨌든, 그 시절 혼자 밥 먹고 있으면, 지나가던 친구들이 불쌍하게 밥을 왜 혼자 먹냐고 부러 앞자리에 앉아, 본인에게만 자애로운 불편함을 주었었죠. 근데, 특정인을 비난하기엔, 그땐 제가 혼자 밥 먹는 걸 보는 열 중 아홉은 안타깝게 여졌습니다. 정말 여~세월의 이야기예요.

하지만, 확실히 정말 기억에 남을 정도로 맛있었던 밥을 생각해 보면, 혼자 먹은 식사는 딱히 떠오르지 않아요. 혼자 여행하며 맛있게 먹었던 음식은 많지만, 그래도 음식 맛에 즐거운 분위기를 더 한 것을 이길 수 없는 듯합니다. 유타카의 주먹밥처럼요.

식사의 목적은 오로지 배고픔을 잠재우기 위한 것! 유타카는 빨리 간편히 먹을 수 있도록 속 재료를 잔뜩 넣은 주먹밥을 만들어 먹었어요. 유타카의 주먹밥은 조금도 특별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렇게 맛있다고 느끼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미네가 맛있다고 하는 순간 맛있는 주먹밥이 됐고, 미노루 형제와 함께 만들면서 특별한 주먹밥이 됐죠. 유타카는 이 주먹밥을 함께 만들어 먹는 것이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세사람은 매일 주말 함께 장을 보고, 요리를 만들고, 함께 먹는 것을 기대하고 기다리게 돼요.

 

유타카, 미네, 미노루 모두 서로를 몰랐던 시절에도 밥을 먹고 살았을 거예요. 먹지 않으면 살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이 먹은 것은 밥만이 아니었고,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영양소만이 아니었죠.

유타카는 어린 시절 부모님을 잃고, 조부모와 함께 살다가, 친척 집에 양자로 입양됩니다. 재정적으로 풍족했던 양부모님은 유타카를 아낌없이 지원해 주지만, 그 집에 형제들을 유타카에게 나누어지는 부모님의 것들이 싫었어요. 그래서, 부모님이 안 계신 식사 자리에서, 유타카를 식사 예절이 없고, 송곳니 같은 이도 더러워서, 밥맛이 떨어진다고 구박을 해요. 유타카는 혼자 밥 먹기 시작했고, 그 이후 친구나 동료들과도 함께 식사하기 무서워졌죠.

 

유타카는 이렇게 '밥의 맛'을 잃어가요. 반면, 미노루는 '밥의 맛'에 허기를 느낍니다. 미노루는 어머니를 병으로 잃습니다. 그때, 미노루는 아픈 어머니가 언제 자신을 떠나갈까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조금은 편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미노루가 느끼게 됐던 건, 속이 비어버린 것 같은 허기였어요. 미노루가 먹고 싶은 어머니의 밥은 더 이상 먹을 수 없었죠. 미노루는 밥을 먹으면서, 그 밥의 맛을 그리워합니다.

이런 유타카와 미노루이기에, 다시 찾은 행복한 식탁을 잃고 싶지 않았어요. 유타카는 미노루의 고백을 받고, 미노루의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행복할수록, 어느 날 찾아올지도 모르는 상실의 아픔이 무서워졌어요. 유타카는 겁이 나기 시작했고, 결국 미노루의 아버지에게 어머니와 헤어지고 느끼는 슬픔에 대해 묻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훌륭한 어른은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법이죠.

 

어딘가에서 가장 오래 기억되는 감각은 후각이라고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예전에 살았던 집에 항상 밥 냄새가 났었는데, 저는 그것이 참 싫었습니다. 꽃향기나 상큼한 과일향같이 좋은 냄새가 나는 집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디퓨저 따위는 낭비라는 신념(?)을 가진 가주에 의해, 그 집 벽지에, 가구에 베인 향은 압력 밥솥에서 폴폴폴 올라오는 밥 김 냄새였었어요.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식후 나른함을 즐기며 툇마루에 앉아있는 유타카, 미네, 미노루의 모습을 보는데, 문득 그 밥 냄새가 떠올랐습니다.

명절 밥상에 대한 좋은 기억은 없습니다. 조용한 명절도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혼자 먹는 밥은 썩 맛있지 않네요.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먹고, 그 순간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런 밥에 대한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 매일 내가 먹는 밥의 맛을 감칠맛 나게 만들어 줄 것 같아요. 맛소금보다, MSG보다 강력한, 그때 먹었던 그 맛에 대한 기억이라는 조미료 말이에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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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B-Lab(비랩코믹스)

분량: 본편 2권

point 1 한 컷

point 2 줄거리

기: 나츠카는 고등학교 때부터 하쿠시마를 좋아해, 대학까지 따라간다. 하지만, 과거 '그릇'에 대해 고민하는 하쿠시마를 보고 섣불리 고백하지 못한 채, 섹파 세노와 욕구를 풀며 하쿠시마의 친구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느 날, 사소한 잔소리에 빈정 상한 나츠카는 집으로 찾아온 하쿠시마를 돌려보내고, 돌아가는 길 하쿠시마는 세노의 오토바이에 치인다. 그리고, 먼저 정신이 든 세노는 자신이 '하쿠시마 히로'라고 말하고, 하쿠시마는 의식불명에 빠진다.

승: 세노의 몸에 들어간 하쿠시마는 집으로 가지 못하고, 나츠키의 집으로 찾아간다. 나츠키는 세노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둘만의 추억인 '루바이야트'시를 암송하자, 하쿠시마의 말을 믿게 된다. 그렇게 두 사람의 동거는 시작되고, 나츠키는 하쿠시마의 몸을 돌릴 방법을 찾는다. 그러던 어느 날, 하쿠시마에게 게이라는 사실을 들킨 나츠키는 폭주해서 하쿠시마를 안으려 하지만, 하쿠시마는 거부한다. 한편, 나츠카의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는다.

전: 하쿠시마와 나츠카는 함께 본가로 가고, 나츠카는 입양 사실을 고백한다. 나츠카는 다시 하쿠시마에게 고백을 하고, 하쿠시마는 나츠카를 받아들인다. 한편, 의식불명의 '하쿠시마'가 깨어난다. 혼란을 느낀 나츠카는 세노의 몸에 들어간 하쿠시마를 믿고 계속 사랑한다고 고백하지만, 그는 하쿠시마를 연기해 나츠카를 속인 세노였고, 사실을 밝힌 세노는 나츠카의 집을 떠난다. 한편, 나츠카는 진짜 하쿠시마가 그날 사고를 낸 이유를 듣고, '친구'로서 위로해 준다.

결: 세노가 고등학교 동창임을 알게 된 나츠카는 세노를 찾아 고향으로 내려간다. 세노는 오랫동안 나츠카를 좋아했지만, 하쿠시마만을 바라보던 나츠카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나츠카는 세노의 하숙집에서 굶고 있는 세노를 발견해 병원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그곳으로 찾아온 하쿠시마에게 커밍아웃하고 세노와 함께 살 계획에 대해서 알린다. 하쿠시마는 나츠카를 격려해 준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뻐꾸기 3마리

타메코우님은 개성이 강한 작가님입니다. 정확히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다양한 소재와 연출을 사용했음에도, 각 작품들에서 '일관성'이 느껴져요. 그것이 스타일 때문인지, 아니면 어떤 동일한 메세지가 함의 되어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생각의 꼬리가 꼬리를 물어고 늘어지면, 그 자체로 소설이 될 것도 같고 말이에요. 다만, 타메코우 풍의 감각적 표현법이 있고, 비정상적 주인공들의 보편적 정서에 대해서 말하고 있긴 한 것 같습니다.

제가 타메코우님 작품 중에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라라의 결혼'입니다. 정발은 1권까지 됐고, 일본에서는 3권까지 발간된 것으로 알고 있는, 미완결 작품이죠. 'ZE'처럼 일본 발간과 정발 사이에 시차가 벌어지는 것 같아, 내심 언젠가는 다 보겠지... 마음을 내려놓고 있습니다.....(훌쩍 ㅠ.ㅜ)

'뻐꾸기의 꿈'은 뻐꾸기 3마리가 꾸는 꿈에 대한 이야기예요. 묘~하죠. 본디, 뻐꾸기라는 새는 원래 둥지의 주인을 몰아내고, 그 주인이 받았어야 하는 애정과 안락을 훔쳐 주인 행세를 하는 악역을 빗댈 때 사용되잖아요. 분명, 정상적이지 않고, 윤리적이지도 않죠. 하지만, '뻐꾸기의 꿈' 속 3마리 뻐꾸기를 보면, 뻐꾸기로 살아가는 그들이 안쓰럽고 치열해 보입니다. 그 안에는 가장 순수한 애정을 갈구하지만, 그 순수성에 대해서 결코 단정할 수 없는, 보편적 갈등이 담겨있기 때문일지도요.

첫 번째 뻐꾸기, 나츠카는 친동생의 자리를 차지한 뻐꾸기예요. 슈퍼 사장인 양부모에게 입양되어 자라는 동안 친동생이 생기지만, 집 안에서는 여전히 나츠카를 후계자로 여깁니다. 나츠카의 가족들은 나츠카를 다정하고 격식없이 대해주고, 언제나 '가족' 속 그의 자리를 비워둡니다. 하지만, 나츠카는 그 둥지 안에서 이질감을 느끼며, 권리 없는 행복과 자격 없는 자리를 받았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거칠어졌고, 학교에서 트러블이 생겼습니다. 그런 나츠카를 도와주고, 친구로서 함께해 준 사람이 바로 하쿠시마였어요.

나츠카는 하쿠시마를 좋아하고, 어쩌면 자신이 주인이 둥지를 함께 만들 수도 있을 거라고 바랐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츠카는 후쿠시마에게 고백도 하지 못하고,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도 밝히지 못하며, 친구로서 만족해야 했죠.

그 이유는, 하쿠시마가 이런 외모, 이런 집안, 이런 성적, 이런 성격이 아니었다면,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를 좋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무엇을 그 사람으로 정의해야 하는지는 난해한 문제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반문하게 되는 질문입니다. 사고로 외모를 잃어도, 집안이 망해도, 내가 더 이상 우수한 인기인이 아니어도, 지금처럼 한결같이 사랑받고 싶다. 사람은 그런 소망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물론, 정답은 없고, 그래서 아직도 돌고 도는 듯 합니다. 나츠카에게도 그랬을 테고요.

하지만, 상황이 바뀝니다. 하쿠시마의 영혼이 세노의 몸으로 들어갑니다. 세노의 육체를 지닌 하쿠시마는, 담배를 피우고, 문신을 했고, 닳고 닳은 게이였지만, 나츠카는 여전히 하쿠시마를 사랑하고 있었어요. 나츠카는, 과거 하지 못한 질문에 대해 확실한 답을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쿠시마가 '그' 그릇이 아니어도, 난 하쿠시마의 영혼, 그 자체의 본질을 사랑하고 있어!라고 말이죠.

두 번째 뻐꾸기, 바로 하쿠시마를 연기한 세노입니다. 나츠카는 한 사람을 사랑하면, 올인하는 스타일이었어요. 하쿠시마가 모르는 것이 이상 할 정도로, 언제나 하쿠시마를 바라보고 있었죠. 그래서, 하쿠시마 이외의 것들은, 하쿠시마와의 비교 대상일 뿐 그 자체로서 비치지 않습니다. 섹파인 세노에게도, 하쿠시마에게는 없고 세노만 있는 것들을, 무의식적으로 거부할 정도로 말이에요.

하지만, 세노는 하쿠시마에게 향하는 나츠키의 애정이 탐났습니다. 그 올곧은 시선을 받고 싶었죠. 하쿠시마는 '그릇'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지만, 세노는 그 애정이 주는 행복에 참과 거짓을 따질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내가 사랑을 받아 행복하다면, 그 소중한 것을 감사히 아껴주리라... 어쩌면, 하쿠시마의 고민은, 세노에게는 가진 것이 많은 자의 배부른 고민처럼 여겨졌을지도 몰라요.

그럼에도, 세노는 그렇게 그리고 그리던 나츠카의 다정한 손길을 거부합니다. 욕구만 해갈되면 그만이었던 그간의 정사와, 전혀 다른 그 몸짓을 견딜 수 없었죠. 세노는 세노로서 사랑받고 싶었으니까요. 세노는 이 둥지에서 자신이 불청객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지워내지 못합니다.

마지막 뻐꾸기, 하쿠시마예요. 하쿠시마는 형의 형수와 부정한 관계를 맺습니다. 실제로, 작품 내에는 자세히 나와있지 않지만, 하쿠시마의 집에 있는 형수의 물건들과 그 물건을 돌려 달라는 형수를 뻔뻔하다 분노하는 하쿠시마의 모습,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어져 온 그릇에 대한 고민 역시, 두 사람이 '좀 친한'관계는 아님을 추측하게 하죠. 무엇보다, 사건의 발단이 된 교통사고가 하쿠시마의 자해였다는 것만으로도 하쿠시마의 절박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쿠시마는 형이 주인인 둥지에서, 형의 여자를 탐낸 뻐꾸기였던 셈이죠. 후쿠시마는 교통사고가 나서 자신이 많이 다치게 되면, 예정된 형과 형수의 결혼식이 성사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깨어난 후쿠시마는 형수 노릇을 하기 위해 집을 찾은 '진짜' 형수를 만나게 됩니다. 그녀가 있는 둥지는 형의 둥지였고, 형수도 형의 것이었으니, 그것을 빼앗긴다고 해도 객은 억울해 할 수 없습니다. 후쿠시마가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자해였던 것처럼요.

원래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뭐가 있을까요? 누구 말대로 좋은 부모 아래 태어난 것도 나의 운이니, 부모의 재산도, 그로 인한 기회도, 마땅히 나의 것일까요? 틀리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딘가 반발감이 느껴지긴 하죠. 그 이유는, 노력 없이 우연히 얻은 것을 당연히 독점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 Crystal Clear한 답변이 아직까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나의 것이 아니라고 느껴지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 껄끄러운 일일 거예요.

그래서인지, 저는 이 장면이 많이 인상 깊었습니다. 후끈하지도, 절절하지도, 유쾌하지도 않은데, 잠시 멍~ 때리고 봤던 것 같아요.

왜 그럴까? 생각해 봤더니, 이 장면에는 '뻐꾸기'가 없더라고요. 세노와 나츠카가 있을 때는 세노가, 나츠카와 하쿠시마가 있을 때는 나츠카가, 거짓으로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연기합니다. 하지만, 이 병실은 속여야 하는 자도 없고, 속이고 싶은 자도 없는, 그냥 그 자체로 있어도 상관없는 장소였고, 그래서 이곳이 뻐꾸기가 주인인 둥지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뻐꾸기들은 이제 그 불편한 둥지에서 독립을 선언합니다. 나츠카는 슈퍼 후계자 자리를 고사하고, 세노와 함께 동거하며, 하쿠시마에게 게이라는 사실을 밝혀요. 세노는 '나츠카 스토커'에서 은퇴하고, 세노로서 나츠카의 흔들림 없는 시선을 받습니다.

세노는 하쿠시마에게 나츠카의 애정을 정말 몰랐냐고 묻습니다. 대답을 하지 못한 하쿠시마는 세노에게 다정한 나츠카의 모습을 바라보죠. 하쿠시마는 편안한 표정으로 웃으며 그들의 보금자리를 떠납니다. 나츠카의 애정도, 형수에 대한 연심도, 결국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는 듯이 말이에요.

예전에 안젤리나 졸리가 영화 시상식에서, '왜 나는 나이고, 난민은 난민인지 모르겠다.' 말한 것을 들은 적 있습니다. 왜 그들은 굶주리고 위협받고 있으며, 나는 이 화려한 시상식에서 스포트라이트와 갈채를 받고 있는가... 어쩌면, 뻐꾸기들은 억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도 뻐꾸기로 태어나고 싶지 않았어! 태어나 보니 뻐꾸기였고, 뻐꾸기로 살았을 뿐이야!라고 할지도요.

다만, '왜'라는 질문은 너무 현학적이니, 좀 더 쉬운 길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무엇을'이라는 말이에요. 세 뻐꾸기들이 그랬던 것처럼요. '뻐꾸기의 꿈'은 이 세 명의 뻐꾸기가 꾼 꿈 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모든 뻐꾸기들의 바람을 뜻하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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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연필

출간일: 2019.06.03

분량: 본편 4권

 

 

 

point 1 책갈피

"폐하, 이렇게 살아 폐하를 다시 뵈니 너무나도 기쁘지만...... 만일 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희, 어리석구나. 어찌 그런 말을 하지."

"......"

"네가 짐이었다면, 그때도 그리 생각했을 것 같으냐."

"폐하, 어찌...... 어찌 제가 그렇게 생각하겠습니까."

단우가 당치도 않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화인은 그를 더욱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기며 몸을 단단히 붙였다.

"한데 어찌 짐의 마음이 다르리라 생각하느냐."

"...... 저는 폐하를 연모하기 때문에, 저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폐하를 먼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폐하처럼, 대단한 분이 될 수 없는 것이겠지요."

그 말에 화인은 한숨처럼 웃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를 먼저 생각한다면, 그것이 연모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화진 국왕에게 그런 전갈을 받았을 때 그를 버린다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배제하고 구할 방법부터 생각했던 자신의 마음은 무엇일까.

가장 특별히 아끼던 수집품을 잃은 자가 할만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그것은 자신도 끔찍하리만큼 노골적으로 느껴왔다.

"...... 그렇다면, 우희."

"......"

"짐 역시 너를 연모하는 모양이다."

point 2 줄거리

기: 소국 화진과 대국 창이 화친을 맺으며, 화진의 창녕대군 위단우는 창의 볼모로 가게 된다. 그 후 청운궁에 머물게 된 단우는 하인들의 박대 속에서, 제대로 된 섭식, 관계, 배움도 없이, 고립된 채 서러운 생활을 한다. 그런 단우는 간혹 청운궁을 찾다가 아예 발길을 끊어버린 2황자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8년을 보낸다. 한편, 화진의 국왕이 화친을 깨고 창의 땅을 침범함하자 창의 황제는 단우를 불러 죄를 묻고 죽이려고 한다. 그때, 태자가 된 2황자가 나타난다.

승: 소국 화진은 제갈량의 현신이라 불리는 학자 한맹위를 얻고 창을 쳐 창의 땅을 얻었다. 태자는 이 한맹위를 창으로 데리고 온 상으로 단우를 요구하고, 화진의 대군 신분을 버린 단우는 동궁 내 연위궁에 머문다. 그러던 어느 날 태자의 정사를 엿보게 되고, 얼떨결에 함께 하게(?) 된 후, 단우는 태자의 총자가 된다. 그리고 태자의 지밀에서 나신으로 목줄을 차고 태자만을 기다리며, 성적으로 길들여지고 통제받는다. 그러던 중 황제와 태자는 광보성으로 떠난다.

전: 4황자는 그 틈에 연위궁을 찾아 단우를 모욕하고, 태자가 묶어준 정조대를 훼손시킨다. 한편, 황제는 정신을 잃어 급히 환궁한다. 황제의 병인은 중독이었고, 황제는 곧 병사한다. 그리고, 4황자의 친모인 귀비가 준 다식판에서 독이 발견되면서, 4황자는 모반죄로 죽는다. 황제가 된 태자는 단우를 은밀한 낙랑궁으로 옮기고 탐한다. 그때, 화진 왕비의 무사였던 윤상궁이 단우를 화진으로 도피시키려다 잡히는 사건이 발생하고, 단우는 황제의 계략을 알게 된다.

결: 불행한 인생의 원인이 황제라는 것을 알게 된 단우는 그를 거부하고, 황제는 폐가와 다름없는 영수궁으로 단우를 유폐한다. 단우는 반성하고 황제에게 돌아가지만, 곧 한맹위를 찾기 위해 창으로 온 화진의 사신단에 의해 붙잡혀 화진으로 간다. 황제는 한맹위의 신분으로 화진에 가 단우를 구하고, 단우는 천둥 트라우마 이면에 숨겨진 친부의 비극사를 기억해 낸다. 단우와 황제의 도움으로 화진은 새로운 왕을 맞는다. 창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산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불가역'과 '화중매'

베스트셀러 혹은 스테디셀러는 많고, 무공진님의 작품들 중에도 유명한 작품이 많지만, 세계관 주인공 서사 모두를 인정받는 작품은 많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점에서 무공진님의 '불가역'은 명작 중에 명작이죠.

'화중매'는 '불가역' 그 이후 창의 황실을 배경으로 합니다. 태조가 기틀을 잡았던 창천성, 태조의 마지막 전투가 있었던 광보성, 글과 그림에 빠져 있던 태조... '불가역'의 내용이 소록소록 떠오르죠. 또, 직접적이진 않지만, 탈 많았던 희매성, 매위가 좋아했던 하미과, 산이 피운 남령초 등 소재들도 간간이 등장해 소소한 재미를 선사해 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인을 보며 산을 오버랩하게 되는 부분들도 제법 있었어요.

그러면, '화중매'는 '불가역'의 후속작이나 아류작처럼 느껴지는가? 물으신다면, 아닙니다! '화중매'에는 '화중매'만의 매력이 있습니다.

일단, 산과 강은 감정적으로 건강했습니다.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을 수 있었죠. 다만, 그들 사이엔 '과거'의 역린이 아슬아슬하게 돋아 있었어요. 하지만, '화중매'에 두 사람은 감정적으로 건강하지 않습니다. 화인의 단우에 대한 소유욕은 아름다움에 대한 수집욕으로 시작해서, 통제욕을 거쳐, 마지막에서야 연심에 다다릅니다. 그 대상이 된 단우는, 화인의 총자일때도 연인일때도, 절대적 맹종을 보이죠.

제갈량의 버금가는 지략가이자 계략가, 하지만 그 우수한 이성의 산물도 결국은 감정을 가진 인간입니다. 화인은 심리적 허기를 심미적 만족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도자기, 보석, 심지어 사람까지도 아름다운 것들을 모아요. 겁 먹은 10살의 단우 역시 그렇게 눈에 띕니다. 화인은 단우를 진심으로 아끼는 윤영을 8년간 단우와 격리시켜 놓고, 청운궁에 단우를 방치한 채 간간이 찾아가 오아시스 같은 다정함을 쏟아부어 줍니다.

화진의 왕비와 밀약을 했으면서도, 유일한 구세주인 마냥 단우를 구해요. 그리고, 고립되어 제대로 배우지도, 사람을 사귀지도 못한 채, 백치가 된 단우을 성 노리개처럼 조련하죠. 그렇게 아낌 받는 것이, 단우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이자 유일무이한 상량함인 것처럼 말이에요. 화인이 도자기를 닦는데 들이는 시간은 줄어들고, 단우를 길들이는 시간은 늘어납니다. 그리고, 단우가 '진정한' 총자가 되자, 화인은 더 이상 도자기와 보석을 모으지 않죠.

또 다른 차이이자,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수 포지션입니다. '불가역'에 능력수, 얼마나 능력이 있느냐 하면 공을 덜덜 떨게 할 정도의 능력이죠. 천리안을 가지고 있고, 장서각의 책은 모조리 읽고도 결코 잊지 않는 비망의 재주를 가진, 하늘로 돌아갈 수 있는 귀한 신분! 아름다운 외모와 서화에 능한 사기캐예요. 강은 산에게 천하를 얻게 해 준 책사이자 치세를 돕는 든든한 내조자였어요. 두 명의 수 모두 똑같이 냉궁에 갇히지만, '불가역'에서 공이 사정해서 수를 데리고 왔다면, '화중매'에서는 수가 사정해서 공이 용서해 주는 모양새였죠.

반면, '화중매'는 수가 너무 백치 같다, 답답하다, 고구마다, 라는 리뷰를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그리고, 아마도 작가님은 그렇게 보이도록 의도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단우가 암굴에 갇혀 있다가 화인을 만났어도, 절대자처럼 느껴졌을 거예요. 하지만, 단우가 있었던 환경은 암굴보다 훨씬 냉혹했죠. 신분이 낮은 이들에게 음식과 같은 기본적 욕구를 저당잡힌 채 조롱당했고, 이런 서러운 삶에 유일한 출구였던 귀국의 꿈은 아버지가 자신을 버림으로써 끝났습니다. 사람은 있었지만, 자신과 대화해 줄 사람은 없었고, 문밖에 세상은 있었지만, 문을 열 수는 없었어요. 비록 이 모든 것이 화인이 꾸몄다 하더라도, 단우가 따뜻하게 대해 준 단 한 사람을 절대적으로 의존하지 않을 방법은 없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계략공의 레벨이 업! 합니다. '불가역'에서 산 역시, 처음부터 모든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일을 꾸미고 상황을 유도합니다. 하지만, 건국황인 산은 전쟁에서 칼을 들고 싸우는 황제였고, 화인은 무능한 선황을 몰아내고 창의 번영을 되찾아야 하는 지능형 암투가였죠. 산이 명민한 야수였다면, 화인은 괴물을 품은 선비라고 볼 수 있어요. 화인은 긴 시간 공을 들여, 어떠한 불필요한 손실 없이,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집니다. 무시무시해요.

그 대표적인 설정이 '한맹위'예요. 강건한 창은 무능하고 여색만 밝은 황제로 인해 지고 있고, 주변 소국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립니다. 소국의 황자들을 볼모로 잡고 있지만, 창의 근본적인 내실 문제는 나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화인은 트리거를 당겨요. 바로, 한맹위로 위장해서 화진의 황제에게 천하를 가질 수 있는 천기를 누설한 것! 화진은 청천성까지 창의 땅을 삼키고, 야심가인 화진의 국왕은 단꿈에 젖어들죠.

그때, 한맹위가 창에 억류됩니다. 그로부터 10년, 화진은 창과 화친이 깨진 상황에서, 더 이상 진격도 하지 못하는 사면초가에 빠져요. 한편, 화진에 영토를 빼앗기면서 창의 실태가 면면히 드러나고, 선황의 권위는 땅으로 떨어집니다. 하지만, 화인은 태사는 양위를 권고에도 불구하고, 되려 이를 사양하며 황제를 천천히 독살합니다. 주변국의 승냥이떼가 기회를 노리는 시국에, 내부에서 갑론을박의 양분화를 막아야 했으니, 효자로서 무탈히 황제에 오를 수를 노린 셈이죠.

단순히 SM을 동양풍으로 각색한 자극물이라기엔 볼거리도 풍성하고, 흥미진진한 서사도 '불가역' 못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천둥과 악몽이라는 복선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화진의 혁명에 명분을 제공하기 위해서든, 단우가 친부에게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든, 아니면 황제를 영수궁으로 가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든, 뭔가 쓰이다 만 느낌입니다. 초반부터 너무 의미심장하게 여러 번 등장한 것치고는, 살짝 바람 빠지는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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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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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처: 봄툰

분량: 95화

point1: 한 컷

point2: 줄거리

기: 그레이는 낮엔 카페 종업원, 밤엔 사람의 꿈속에 찾아가 정기를 먹는 몽마로 산다. 단, 어머니가 인간인 반쪽 몽마라, 약한 몸과 인간의 수명을 지닌 캠비온이라는 것이 다를 뿐! 카페 단골인 회계사 에단을 짝사랑한 그레이는 밤마다 그의 방을 찾지만, 그의 정기를 먹지 않고 지켜보기만 한다. 한편, 인간들의 돌연사가 급증하면서, 몽마의 어머니 격인 에나벨라는 라미아들을 의심하고, 라미아의 쉬운 표적이 될 수 있는 그레이를 더 보호한다.

: 에단은 카페 종업원 그레이를 짝사랑한다. 단지, 라미아 블레어의 수호를 받는 케인가 출신이라는 것이 다를 뿐! 에단은 이종족에 배타적인 케인가가 싫었고, 동생 리암을 버리고 홀로 도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블레어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지지부진했던 그레이와의 관계가 변한다. 그러던 중 블레어의 약점을 잡고 싶었던 그레이는 블레어의 의식으로 들어가고, 곧 들켜 정기를 모조리 빼앗긴 채 방치되다 에단에 의해 구해진다. 둘은 연인이 된다.

전: 한편, 돌연사 급증의 원인이 미숙한 그레이의 정기 흡입이라고 결론이 나면서, 에나벨라는 그레이를 감금한다. 에단은 사라진 그레이를 찾기 위해 에나벨라를 만나고, 에나벨라는 그레이에게 정기를 가장 많이 주고도 살아 있는 에단의 존재를 통해 의심을 거둔다. 그리고, 근래 종적을 감춘 칼을 떠올린다. 그레이의 아버지 아치는 반려인 인간이 살해당한 후 이성을 잃고 라미아들을 사냥을 했고, 사건이 커지자 몽마들은 동족 보호를 위해 아치를 잠재웠다.

결: 아치의 충실한 심복이었던 칼은 라미아와 에단의 동생 리암을 이용해 아치를 깨운다. 이 과정에서 그레이와 토레스는 크게 다친다. 한편, 아치는 자신의 반려를 죽인 라미아와 자신을 잠재운 동족을 공격하려 하지만, 그레이를 발견하고 옛 기억들을 떠올리며 주저한다. 폭군 아치를 선망했던 칼은, 그 모습을 보며 흥분해 지난 비극들의 진실을 발설한다. 아치는 칼을 죽이고, 그레이에게 자신의 정기를 나누어 준채 사라진다. 그 후, 라미아와 몽마들은 협정을 맺는다.

point3 진지충의 review: ... 끝인가요?

한 화 20컷 미만과 흑백 연재... 원래 잘 보지 않습니다. 물론, 한 컷이 일러스트 수준이거나 전투씬처럼 고퀄리티인 경우라면 예외겠지만, 저의 경험상 고퀄 작가일 수록 한 화의 컷 수도 많아요. 혹은 고퀄 작가가 컷 수를 줄이면서 저퀄이 되는 경우도 있고요. 저작물의 가치는 비교 할 수 없다!는 말에 일부 동의하지만, 다양성을 이유로 동가를 주장하는 것도 어패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차이를 평가하는 비교적 객관적 지표 중 하나가, 작화와 분량일 테고요.

그럼에도, '미드나잇메어'는 참 오래도 봤습니다. 언제나 마지막 스크롤에서는, 그 짧은 분량에 놀라면서도 끊을 수 없었던 이유! 당연히 재미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을 배경으로 한 몽마와 회계사의 사랑 이야기! 더불어 메인 커플에 밀리지 않은 일편단심 서브 커플의 찌롱 스토리도 다음 편을 부르게 됐죠. Take my money!!!

하지만, 결말은 많이 아쉬웠습니다. 깨어난 아치가 너무도 어이없이 사라져서 좀 허무했어요. 결국, 이 웹툰의 최대 하드 캐리어는 '칼'입니다. 칼이 없었다면, 애당초 모든 사건은 시작도 안 했을 지도요. 그래서 장시간 비밀리에 주도면밀하게 준비 한 것에 비해, 칼이 마지막에 스스로 폭주하고 자멸하다는 것이 일관성 없게 느껴졌어요. 인간을 사랑한 아치가 아들인 그레이를 보고 흔들리는 것이 예측 못 할 사태였을까요? 깨우면 장땡!이라는 걸까요? 구태여 묻지도 않았는데, 아치를 분노케 하고 싶었던 걸까요? 죽고 싶었던 걸까요?

 

칼의 제외하고 본다면, '미드나이트 메어'의 주요 갈등은 종족 간 균열이에요. 과거, 인간과 라미아, 몽마는 협정을 맺고 균형을 지키며 평화를 유지해왔죠. 하지만, 균형이 깨지면서 인간들은 이종족을 사냥하고, 이야기 속 비극도 시작돼요. 블레어는 자신을 숨겨준 케인과의 후손들을 이종족으로부터 지켜주겠다는 계약을 맺어 종족의 이단아가 되고, 몽마는 협정을 깬 라미아를 증오합니다. 라미아와 몽마는 잔인하게 학살되었고, 살아 남은자들은 숨어 살게 돼요.

그래서, 몽마와 라미아 모두 인간에게 동족을 노출시키지 않는 것을 절대 규칙으로 여깁니다. 몽마들은 라미아를 괴롭혔고, 라미아들을 늘 당하며 살았지만, 인간에게 발각되지만 않는다면 문제없었어요. 하지만, 원인불명의 급사가 늘고, 몽마들은 미지의 존재에 대한 인간들의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없었죠. 몽마의 어머니인 에나벨라는 과거의 전적을 기억하며 라미아가 그 범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칼의 모략에 의해 그레이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그레이는 캠비 온 이 자 아치의 아들입니다. 아치는 아주 강한 몽마였고, 많은 몽마들의 우상이었죠. 하지만, 어느 날 인간 여자를 사랑하게 되고 반려로 맞이하면서, 행복한 '일반' 생활을 누립니다. 그런 모습이 아치의 추종자들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일탈이었고, 몽마에 맺힌 것이 많은 라미아들에게는 공격의 빌미를 제공합니다. 물론, 라미아들의 어설픈 납치는 실패로 끝나지만, 그 기회를 틈타 아치의 광팬인 칼은 아치의 반려를 죽이고 그 일을 라미아들에게 뒤집어 씌워요.

반려를 잃은 아치는 라미아들을 학살하고, 그 행위는 너무 잔인하고 광범위해서 동족을 노출시킬 위험에 처하게 돼요. 결국, 아나벨라는 아치를 잠재우죠. 아나벨라는 아치의 아들인 캠비온을 보호함으로서 아치에 대한 죄책감을 덜려고 합니다. 반면에, 아치의 누나였던 브렌다는 치 떨리는 아치의 아들을 무시해요. 모두 찰나와 같은 인간의 수명을 누리게 될 캠비온이라는 존재를, 아치라는 안경을 투영해서만 바라봅니다.

그런 그레이였기 때문에, 자신을 '아치'가 아닌 '그레이'라는 존재만으로 바라보고 사랑해 주는 에단에게 빠질 수밖에 없었는지도요.

그리고 영생의 존재들이, 이 어리고 약한 존재로 인해 변합니다. 오랜 시간을 살았다는 것은 앞으로 살아갈 무한의 시간도 얼마나 긴지 알고 있다는 거겠죠. 또, 오랜 시간을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상실을 봤다는 의미기도 할 거예요. 그래서, 그 오래된 존재들은, 거만하고, 쉽게 체념하고, 염세적이면서, 엉덩이가 무거워요. 하지만,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계속 새롭게 겪을 수밖에 없고, 배울 수밖에 없고, 변할 수 밖에 없었죠. 캠비온이 알려 준 것은 그 작은 진리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나 이 서브커플 말입니다. 솔찍히, 어느 순간부터는 그레이와 에단보다 더 애정 했던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입니다. 중반 이후부터는 더블데이트도 드물지 않게 등장하고, 마지막엔 그레이와 에단의 새로운 보금자리 위층 이웃 주민이 되기도 하죠.

몇백 년을 살았던 이 커플은, 반백년도 채 살지 않은 어린 커플들에 의해 변합니다. 남겨진 시간이 많다면, 그 시간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지는데 써야 한다는 당연한 진실 하나를 아프게 깨닫죠. 토레스는 몽마인 자신의 존재가 몽마들에게 라미아인 블레어를 노출시킬 계기가 될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같이 있고 싶은 간절한 바람을 아슬아슬한 섹파라는 관계로 근근이 유지합니다.

하지만, 고작 인간인 에단과, 반쪽 몽마인 캠비 온 이 치열하게 서로를 갈구하는 모습을 봐요. 두 사람은 더 짧은 생을 살고, 더 약한 신체를 타고났으며, 더 악조건인데도 포기한다거나 석파로 남는다는 선택지는 없었고, 그 무모함이 용기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죠. 왠지 외전이 나온다면, 메인 커플보다는 더 보고 싶은 서브 커블이에요.

배경과 그림체 모두 미드를 감상하는 듯한 착각을 들게 합니다. 클래식 무비에서 상영해 줄 법한 드라큘라 흑백영화 말이에요. 물론, 그보다 훨씬 차분하고, 잔잔하며, 발칙합니다. 하지만, 사건의 진모가 밝혀지면서 끝을 맺는 스릴러와 다르게, 숨겨진 비밀이 아치를 깨우는 것이었기 때문에, 깨어난 아치가 묵은 갈등을 바로잡는 시즌이 다시 펼쳐질 거라고 예상했어요. 어찌 보면 반전이긴 하네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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