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처: 씨앤씨레볼루션(주)

분량: 본편 62화

point1: 한 컷

point2: 줄거리

기: 경찰대 수석 입학, 바른 생활의 표본인 태준은 자취 집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알 수 없는 이끌림에 문득 빨간 이층집을 찾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을 너무나 반갑게 맞이하는 잘생긴 남자를 만난다. 그 남자의 이름은 정연우, 다섯 살 때 단짝이었다고 말하는 성공한 추리소설가였다. 사실, 태준은 5살 이전의 기억이 없다. 연우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태준에게 화가 난 듯 보였지만, 기꺼이 태준을 자신의 집에서 살게 해 준다.

승: 엉겁결에 동거는 시작되었다. 한편, 태준의 친구들은 태준의 자취방을 찾아와 예의 없게 굴고, 연우를 그들을 거침없이 대한다. 사실, 고아인 태준은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었다. YES 맨인 태준은 인기도 많았지만, 그래서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 역시 많았다. 때때로 태준은 숨이 막혔고, 그때마다 목을 조르는 버릇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태준에게, 안하무인인 연우는 이상적이었다.

전: 연우와의 생활이 지속되면서, 태준은 조금씩 변한다. 그의 은밀한 시간이 늘어가고, 태준은 연우를 통해 느낀 개방감에 점점 중독된다. 스터디차 집에 놀러 온 동기들이 연우에 의해 쫓겨날 때도, 친구들이 신경 쓰이지 않고 연우에게 미움받을 것만이 두려워졌다. 그리고, 잊었던 과거의 기억도 조금씩 돌아왔다. 연우의 부모는 어린 연우를 학대했고, 그 장소는 거울이 잔뜩 있는 검은 방이었다. 태준의 악몽에 등장한, 무수한 손들 이 있는 방이기도 했다.

결: 태준과 연우의 관계는 깊어지고, 태준의 모범생 가면은 무너진다. 한편, 태준은 대량의 혈액은 남았는데 사람은 없는 증발 사건을 연속해서 경험한다. 연우의 소설 속 사건과 똑같은 사건들이었다. 사범님의 의심까지 연우를 부추기자, 태준은 연우를 의심한다. 그리고, 연우는 태준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다. 태준은 집을 나온다. 연우는 자신의 생일에 태준과, 태준의 친구, 사범을 모두 집으로 초대한다. 그날 태준은 '진실'을 '경험'한다.

point3 진지충의 review: 나는 너야(feat. 자! 숨 쉬세요.)

'검은 거울'을 읽다 보면 호흡이 딸리는 경험을 자주 합니다. 연재분 마지막 단에, 숨 쉬라는 리뷰를 보고서야, 숨을 참고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곤 하죠. 스릴러의 꽃! 쫀쫀한 긴장감이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작품이에요. 게다가, 연우와 태준의 관계는 '동상 화상'을 떠올리게 합니다. 차가운 줄 알고 만진 드라이아이스가 입힌 화상처럼, 사랑의 속성이 없는 진짜 사랑이라는 역설과 그 애정 아래 깔린 음습한 잔인성 때문에 말이에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 안에는 '태준'이 있습니다. 어느 책에 보니, 집단 사냥을 했던 초기 인류도 눈치를 봤었데요. 언어가 없었으니, 대화도 제대로 못했을 텐데 말이죠. 물론, 눈치를 안 보는 계층도 소수지만 존재하긴 한다고 합니다. 바로, 최상위층과 최하위층! 둘 모두 눈치가 '생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이들이라고 합니다. 반면, 상대에 따라 때론 강자가 되고, 때론 약자가 되는 사람들은 살기 위해 기민하게 주변을 살펴야 합니다.

 

물론, 태준의 상황은 '일반적'이지 않았어요. 고아였던 태준은 경찰대학교 교수이기도 한 사범님에게 의탁하고 있었죠.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욕구와 다시 버림받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이... 더불어 알 수 없는 상실에 대한 공포도 있었어요. 사실, 5살 태준은 우연히 연우와 함께 검은 방에 갇히고, 최초의 '증발 사건'이 발생합니다. 부모가 모두 실종된 연우는 그 집을 떠나고, 홀로 남겨진 태준은 수군거리는 주변의 시선이 괴로워 기억을 봉인해 버리죠. 그리고, 그 기억이 뜯겨진 자리에 남은 건 공허감이었습니다.

태준은 스스로 병들어 가는 줄도 모르고, 막연한 공포에 젖어 살고 있었어요. 그런 태준이 연우를 만납니다. 운명에 이끌림처럼 과거 '그 집'을 찾아가요. 그리고 연우는 태준을 기다렸다는 듯 반기죠. 이상한 만남, 낯선 사람, 하지만 태준은 그 집에 살기로 합니다. 매일 밤 태준을 공포에 떨게 하는 이상한 소음과 자신을 더듬는 많은 손들을 느끼면서도, 그 집을 떠나지 않습니다. 왜냐면, 태준에겐 그건 이미 익숙한 감정이었으니까요. 어디에 있든 말이에요.

 

'착한 사람' 태준을, 연우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연우는 아무도 모르는 음침하고 비정상적인 태준을, 그래서 태준이 정확히 원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이 행동해요. 연우는 태준이 금기시 여긴, 위험한 쾌락을 줍니다. 멈칫거리던 태준은 점점 과감하게 그것을 요구하기 시작하고, 꽁꽁 숨겨둔 밑바닥의 욕구들을 끌어올리기 시작해요. 태준은 오랫동안 써온, 불편한 가면을 벗습니다. 그리고 봉인된 옛 기억도 서서히 되찾게 돼요.

5살, 연우와 태준 수 많은 거울이 을씨년스럽게 벽면을 채운 어둠의 공간에서 공포에 떱니다. 학습된 공포에 질려있는 연우를 달랬지만, 사실 태준도 무서웠었죠. 그때 연우와 태준 안에서 '악의'가 깨어납니다. 거울 너머에 또 다른 자신들은 거울 밖으로 나와, 그들을 태어나게 한 목표를 향해 전진합니다. 그리고 태준이 기억을 잃었던 시간 동안, 연우는 이 '악의'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게 돼요. 연우는 '악의'에 '동화'됩니다.

그런데 이 악의라는 것은, 드러나는 순간 증식하는 성격이 있습니다. 부모의 학대로부터 태어난 악의는 본의의 목적을 잃고, 그 특유의 폭력성만 남죠. 연우의 양부모는 연우를 학대하지 않았고, 영화관 관람객이나, 태준의 지인들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하지만, 숨겨지지 않는 악의는, 오로지 '둘만 있는 세계'를 방해는 모든 이들을 공격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끝내 '둘만 있는 세계'를 완성하죠. 피바다가 된 집안을 치우는 두 사람의 모습은, 티 없이 해맑고 달달하기까지 합니다. 태준은 불안이 없는, 완벽한 안식 속에서 잠이 들고요.

 

보통 사람들은 '악의'를 쉽사리 드러내지 못해요. 악의를 드러내도 되는 대상인지 상황인지 기타 등등 눈치를 보기 때문이죠. 어쩌면, 이런 행동들이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불쑥불쑥 솟어나는, 잔인한 악의들을 잘 숨기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존재'하는 악의는 거울 밖을 나오지 못한 채 거울 안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울이 깨지는 순간이 오면, 악의는 그 본신을 살라 먹습니다. 가끔, 뉴스에 나오는 악의에 삼켜진 사람들처럼요.

그 사람들은 최초의 악의가 발생시킨 원인에 대해, 더 이상 눈치 보지 않게 된 것이 아닙니다. 몸집을 불린 폭력성만 남아, 방향을 잃고 몰락을 향해 질주하는 거죠. 그래서, 전 '묻지마 범죄'의 가해자들을 동정하지 않습니다. 피해자는 그저 가해자의 눈먼 악의에 휘말렸을 뿐이니까요. 악의는 나 자신이 맞습니다. 하지만, 악의에 삼켜지면 안 됩니다. 삼켜진다면 괴물이 되고 말거예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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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이색

출간일: 2017.10.30

분량: 본편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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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1 책갈피

어느새 이스엘 프레이저가 내 거가 됐는지.

태자가 반응 없는 내 거를 슬쩍 쳐다보았다. 사타구니를 조물조물하자 불편한지 몸을 뒤튼다. 좋은 냄새가 났다. 숨을 들이마시자 식욕이 돋았다. 저녁은 걸렀고, 아침은 먹는 둥 마는 둥 물 한 잔만 겨우 마셨다.

일단 벗겨놓고 한 판 하고, 침이나 좀 빨아먹고 늘어져서 자야지. 그러려면 분위기를 잡아야 하는데... 어디 보자. 내가 지금 멋있나? 뒷머리 눌린 건 아니겠지? 이럴 때면 집무실 한쪽을 죄다 거울로 만들고 싶단 말이야.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한 태자가 기사의 바지 안으로 쑥 손을 넣었다. 옷 안을 함부로 뒤적거리며 묻는다.

"오늘은 팬티 입었나?"

그 말에 기사의 몸이 흠칫 굳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태자는 지분거리며 손가락을 놀렸다. 제 손에 흡수된 보습제의 바닐라 향이 이스엘의 성기에 옮을 때까지 주물럭댔다. 어쩔 줄 몰라 헤매면 그 뺨을 죽죽 빨고 옷을 홀랑 벗겨서 또 팬티를 뺏어갈 생각이었다.

point 2 줄거리

아델라이데 귀족 이야기: 순혈로 이어져 온 귀족가, 이스엘은 그 피를 지키기 위해 임신하는 약을 먹고 침대에 묶인 채 아버지에게 강간 당해야 했다. 그리고, 성교가 끝나면 아버지의 비서, 이스카란이 준 알약을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스카란은 이스엘에게 아버지는 죽고, 자신이 가문의 주인이 되었음을 알린다. 사실, 이스카란이 이스엘에게 먹인 약은 '임신하는 약'이 아닌 '정조대'라는, 섹스파트너를 천천히 죽게 만드는 약이었다. 이스카란은 이스엘을 갖기위해 오랜 세월 더러운 일을 참으며 오늘을 기다린 것이다.

아델라이데 왕족 이야기: 능력은 출중하지만, 사교성이 떨어지는 태자 포사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포사가 은밀히 마약 유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을 모으려 하자, 당연히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그때, 제1기사단 부단장 세리언이 나서고, 조사는 시작된다. 세리언은 적을 만드는 포사의 태도를 고쳐주려 하지만, 곧 포사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고립된 상황을 알게 된다. 세리언은 포사에게 마음이 쓰이고, 볼 때마다 몸이 달아오는 것을 느낀다. 한편, 왕의 명령으로 홀로 슬럼가에 간 포사는, 죽을 뻔한 위기에서 세리언에게 구출된다. 그 후, 베르나차의 여관에서 포사는 다른 의미로 세리언에 의해 죽을 뻔한다.

아델라이데 동맹 이야기: 재능과 충심을 겸비한 이스엘은 제국의 태자 피닉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스엘의 부모형제가 어마 무시한 부패를 저지르다 처형당하고, 이스엘은 피닉에게 경멸 받는다. 하지만, 이스엘의 능력을 인정한 황제는 그를 태자의 호위로 임명한다. 그러다 이스엘은 피닉에 대한 연심을 우연히 들키고, 피닉은 이스엘을 역겨워하며 괴롭힌다. 모멸감을 주기 위해, 화풀이로, 때론 재미 때문에 이스엘을 불러 강간하고, 그 빈도도 점점 늘어갔다.

그러던 중 제국을 방문한, 동맹국 아델라이데의 2왕자가 이스엘을 달라고 하고, 피닉은 이스엘을 그의 밤 시중을 들라 한다. 하지만, 이스엘은 차마 2왕자의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마법사 제레미를 찾아가 마음을 없애는 시술을 받는다. 한편, 이스엘의 실종으로 공황에 빠져있던 피닉은 이스엘이 돌아오자 반긴다. 하지만, 이스엘은 피닉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며 떠나겠다 말한다. 순간 이성이 끊긴 피닉은, 2왕자에게 빼앗은 '임신하는 약'을 이스엘에게 먹인다.

이스엘은 도망친다. 피닉은 샅샅이 뒤지지만 이스엘을 찾지 못하고, 그간 이스엘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고 있었는지, 자신이 얼마나 이스엘에게 못되게 굴었는지 깨닫고 절실히 후회한다. 그때, 이스엘은 피닉의 아이를 임신해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결국, 이스엘을 숨겨주었던 엘리노어는 피닉에게 사실을 고백하고, 이스엘은 궁으로 들어온다. 피닉은 이스엘에게 기꺼이 발 닦개가 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변태력

제가 '세헤라자데'를 선택한 이유는 전적으로 '리뷰'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리뷰를 쓰고 있고, 다른 이웃님들 리뷰도 읽지만, 같은 책을 읽어도 감상은 다~ 다릅니다. 특히나, 공감을 많이 받은 리뷰들은 대게 <매주 좋음>과 <매우 나쁨>으로 나뉘기 쉽습니다. 극단의 감정일수록 공감도가 높으니까요. 또, <매우 좋음>안에도 공맘, 수어메, 클리셰 편식, 작가 팬심, 필력부심 등 꽂히는 요소도 다양하죠. 그래서, 이렇게 리뷰가 대동단결하는 것은! 참 대단한 일입니다.

그 공감의 요소는 다름 아닌 변태!!! 변태의, 변태에 의한, 변태를 위한, 변태적인 판타지!!! 공감 순위는 좀 낮지만, 정말 아래 리뷰들이 대부분의 리뷰를 요약해 놓은 것 같아요. 흥미롭지 않으십니까? 빻빻한 빨간 맛과 창의적 하드코어물이 영역을 늘려가는 이 시국에, 피폐물인데 개그물인 것도 기발한데, 이렇게 많은 독자가 '변태'를 외치는 작품이란, 도대체 어떤 내용일까? 궁금했어요.

'세헤라자데'의 변태력은 매우 높습니다. 귀족, 왕족, 동맹 편에서 공통적 등장하는 중요 소재는 '약'입니다. '정조대'와 '임신하는 약'! 섹스 상대방의 이성을 앗고 끝내 죽게 만드는 약인 주제에, 이름이 '정조대'예요. 이것만으로도 작가님의 변태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리고, '임신하는 약'... 작중 의원에 말대로 이 약의 개발자는 변태예요. 임신하자마자 가슴에서 모유가 나오고, 극심한 통증을 없애기 위해 주기적으로 애 아빠의 정액을 먹어야 하죠.

피닉이야... 언제나 이스엘이 입었던, 검은 팬티를 갖고 다니는데요... 이 팬티가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는지... 읽는 내내, 작가님의 상상력에 투텀즈업을 날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귀족 편의 이스카란이 감금을 좋아하는 집착 통제광이라면, 왕족 편의 세리언은 초하이 텐션의 절륜공이예요. 하지만, 피닉은 순수한 변태예요. 앞선 두 공이 지나치게 건강한 신체(?)가 문제라면, 피닉은 거기에 더해 수치를 모르는 성향과 호기심을 지니고 있죠. 그래서, 홀로 후회공과 발닦개공의 루트를 걷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수가 처한 상황 때문에 '피폐물'을 넣지 않을 수 없었지만, 피폐물을 잘 못 보시는 분도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개그물에 훨씬 가까워요. 일단, 설정 자체가 현실과 백만리 쯤 떨어진 판타지여서, 마음 편히 변태력을 즐길 수 있습니다. 또, 3편의 수는 결국 공에게 종속되지만, 그전보다 나은 삶을 살게 됐어요. 귀족 편의 이스엘은 애매하지만, 분명히 포사나 이스엘은 사랑을 이룬 셈이니 공의 변태력만 좀 덜하다면 완벽한 해피엔딩인 셈이죠.

주의! 귀족 편의 '이스엘'과 동맹 편에 '이스엘'은 다른 사람입니다. 둘 모두 소극적이고 피학적인 수 이미지라, 다르다는 문구를 읽었음에도 저는 자꾸 오버랩되더라고요. 짧은 단편에 안에 같은 이름을 반복해 쓰신 걸 보니, 작가님이 '이스엘'이라는 이름을 좋아하시나 봅니다. 헝거게임도요. 그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주인공 이름을 그 영화에서 차용하셨다고 하더라고요. 네... 어떤 이름이든 좋습니다. 작가님의 다작을 기원합니다.(찡긋)

 

 

 

※ 동일 작가의 다른 소설 리뷰

 

2020.12.12 - [BL 소설] - [현대물/달달물] 올림피언 - 한여름

 

[현대물/달달물] 올림피언 - 한여름

출판사: B&M 출간일: 2018.05.04 분량: 본편 1권 ​ ​ ​ ​ ​ point 1 책갈피 ​ ​ "저야 올림픽에 나가는 것만도 감지덕지지만 선배는 다르잖아요. 선배는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니까.... 혹시 1

b-garden.tistory.com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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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비올렛

출간일: 2021.03.23

분량: 본편 2권 + 외전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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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1 책갈피

"재판 결과를 처음 들었을 때는 그게 꼭 제 고통이 2년짜리라는 통보 같아서 속상했어요. 저는 그런 기억이 고작 2년만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거든요. 어쩌면 평생 그림자처럼 뒤를 따라다니다가 중요한 순간 저를 약하게 만들 거라는 것도."

역시 자신의 인생은 극적인 해피엔딩이랑은 거리가 먼 것 같다는 자조 어린 생각도 했다. 정헌에게도 말하지 못한 생각이었다. 아니 정헌이라서 말하지 못했다. 이단보다 더 마음이 아파하고 걱정할 테니까.

"처벌이 약해서 또 여러 사람을 다치게 했다고 생각하면 화가 나지만, 그 사람한테 사형이 나왔다고 해서 제가 마법처럼 행복해지지도 않을 것 같아요. 그 말은...... 판사님 입에서 나온 숫자는 감히 누군가가 겪은 고통의 수치가 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해요."

이단이 재판정에 서지 않았다고 해서 그가 겪은 사건들이 없는 일이 되는 게 아닌듯이, 그 냉엄한 숫자는 고통의 유통기한이 될 수 없었다. 누구도 평가하고 강요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저는 또 판결문에 어떤 숫자가 적히든 상관없이 마음껏 슬퍼하다가 다시 행복해지려고 해요. 어쨌든 저는 싸웠잖아요. 아니 설령 싸우지 않았더라도......"

호박빛 조명이 비친 눈이 안쪽에서부터 조용히 빛났다. 작지만 분명한 빛이었다.

"제 삶은 여기 그대로 있고 저는 살아 있어요. 늘 바라 왔던 대로 부끄러움 없이, 떳떳하게요. 저는 상처를 입은 거지 죄를 지은 게 아니니까요."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었다. 과거를 끊임없이 곱씹고 후회하며 불행해져야 할 사람은 이단이 아니었다.

고개를 들자 지원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이단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혼자 말을 늘어놓은 것이 부끄럽고 머쓱해져서 뒷덜미를 어루만졌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데, 안 될까요?"

point 2 줄거리

기: 빨간 카디건에 싸여 버려졌기에, 이름이 단(붉을 단)이 된 이단(열성 오메가)! 예쁜 얼굴과 다소곳한 성격으로 충분히 사랑스러운 아이였지만, 3번이나 파양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첫 번째는 양부모의 이혼, 두 번째는 양부모의 사망, 세 번째는 성폭행 하려는 이부형 때문에 가출... 결국 17살부터 길거리에 내몰리게 된 단은 22살이 된 지금까지 자신을 '줍는'이들의 손을 전전하며 살아야 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것도 해주는 대우도 똑같았다.

승: 그날도 단은 하룻밤 잠자리를 구걸하기 위해 폭력을 견디려 하고 있었다. 일하던 슈퍼에서 도둑으로 몰려 쫓겨나고, 연인이 다른 이를 데려오면서 지내던 곳에서마저 나왔기 때문이다. 그때, 정헌(극우성 알파)이 나타나 단을 구하고 '주워' 준다. 좋은 집, 포근한 잠자리, 따뜻한 식사... 하지만, 정헌은 단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숙식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 몸을 내주려는 단을 되려 밀어냈다.

전: 정헌은 단에게 얼마든지 집에서 머물러도 좋다고 말하며, '대가'없는 호의를 한결같이 베푼다. 단은 주제넘은 줄 알면서도 그런 정헌을 점점 좋아하게 되고, 정헌의 마음에 들고 싶어졌다. 단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월급을 받아 정헌의 선물을 살 희망에 부푼다. 단이 알바를 시작한 햄버거 가게 지점장과 동료들은 단에게 친근하게 대했고, 단은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부지점장이 본심이 드러내면서, 단은 위기에 빠진다.

결: 하지만, 단은 달라졌다. 부지점에게 저항했고, 정헌은 그후 부지점장을 고소한다. 정헌은 2년 전 단과 우연히 만나 한눈에 반했고, 단의 히트에 휘말려 각인도 되지만, 자신의 감정에 혼란스러워 단을 잡지 못했다. 그 후 간신히 단과 재회하자, 집으로 데려와 귀하게 여겨주었던 것이다. 단과 정헌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쌍방 각인 후 부부의 연을 맺는다. 한편, 부지점장은 제 무덤을 스스로 파고, 제대로 파멸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쌍방'성장'물

'스위트 낫 슈가'의 단을 보면서, '뉴욕뉴욕'의 멜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최악의 환경을 타고나 몸을 팔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사랑에 헌신적인 모습이 단과 멜이 참 많이 닮아 있었어요. 게다가, 예쁜 얼굴과 순한 성격, 차별과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도덕을 지키는 모습까지도요. 심지어,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동정하는 모습까지도 너무 비슷했습니다. 참고로, 마리모 라가와님의 '뉴욕뉴욕'의 저의 인생작 중 하나랍니다. 갓띵작이죠!

반면, '스위트 낫 슈가'의 정헌과 '뉴욕뉴욕'의 케인은 완전 반대였어요. 정헌과 케인 모두 사랑이 넘치는 가정에서, 모범적인 부모님께 교육받죠. 다만, 정헌은 그대로 자랐고, 케인은 반대의 길을 갑니다. 물론, 오메가버스와 뉴욕이라는 배경차도 있지만, 감정적 혼란 상태에서 정헌은 인내하고 자제하지만 케인은 일탈했다는 점에서 캐릭터차가 더 큰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스위트 낫 슈가'는 쌍방성장물, '뉴욕뉴욕'은 쌍방구원물로 느껴집니다.

재벌공을 만나 자낮수가 호강하는 건 할리킹입니다. 공은 수에게 큰 부를 쥐여 주며, 출구 따윈 없었던 환경의 굴레를 손쉽게 정리해 줘요. 정헌이 단에게 누명을 씌운 슈퍼에서 못 받은 월급을 받아주거나 단을 죽이려고 하는 부지점장을 뭉게버리는 것, 그리고 최상의 의식주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재벌공'처럼 보여요. 하지만, 단이 정헌을 만나 '행복'해졌다면, 정헌이 단을 만나 '생명'을 잃지 않게 됐으니, 정헌이 얻은 것이 더 커 보이기도 합니다.

'스위트 낫 슈거'는 공수는 서로에게 '성장의 계기'가 되어 줘요. '구원'보다는 말이죠. 정헌을 만난 후, 단의 가장 큰 변화는 '자존감'이 생긴거예요. 단은 몸을 파는 일이 비난받을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잠자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누군가에게 주워달라고 해야 했지만, 처지는 건 핑계고, 자신은 올바르게 살지 못한 한심한 사람이라 여기죠. 단은 더럽게 살기를 선택한 자신이 받는 부당한 대우는, 자신이 치러야 할 죗값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부지점장에게 저항하는 단은 "당신에겐 나를 만지 권리가 없다!"고 외쳐요. 그리고, 지원에게 "자신은 상처 입은 거지 죄를 지은 것이 아니다."라고도 말하죠. 정헌은 단을 존중해줬고. 단은 정헌이 존중해 준 사람을 자신도 존중하려 합니다. 물론, 정헌이 알 밖에서 도움을 주긴 했지만, 알을 깨고 나온 건 분명 단의 의지라고 볼 수 있어요.

정헌 역시 마찬가지예요. 청교도인가? 의심하게 만드는 이 남자, 정헌은 단에 대한 감정에 혼란스러워합니다. 독점욕, 집착 같은 폭력적 감정들은 몽실몽실한 사랑의 감정과는 다른 각인의 증거였으니까요. 하지만, 인생은 타이밍이고, 정헌이 단에 대한 감정을 갈무리했을 때부터 정헌은 단을 찾을 수 없게 됩니다. 정헌은 2년간, 각인된 오메가를 곁에 두지 못한 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만했죠.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요.

그래서, 정헌은 단과 재회한 후, 정말 조심합니다. 각인으로 인한 강한 욕구에, 사랑이라는 고삐를 채워 두죠. 단을 귀하게 여기며, 모든 걸 가진 정헌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단에게 한껏 몸을 낮춰요. 그러느라 '사랑하는 일'을 피합니다. '지키는 일'만 열심히 하죠. 단은 그런 지헌에게 파렴치해질 것을 요구합니다. 그건 단을 상처 입힐 수도 있지만,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었거든요. 참는 익숙한 것에서, 참지 않은 필요한 것으로, 정헌은 용기를 냅니다.

결정적으로 정헌과 단은 '구원'이라는 말을 쓰기엔, 너무 바른 사람들이었어요. 늙은이 같은 소리지만, 정헌을 보면 '그 부모에 그 자식' '자식 교육 참 잘 했네!'같은 말이 하고 싶어집니다. 내가 할 수 있었는데 못 해준 일은 미안해하고, 남이 할 수 없는 것을 못하는 건 당연하다며 타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차이는 타고난 환경이며, 그건 선택도 노력도 아닌 감사해야 할 행운이라고 여겨요.

단은 거의 기적 수준입니다. 단은 빨간 카디건과 함께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에게 카디건을 주고 한 겨울, 온 길을 뒤돌아 갔을 어머니가 추웠을 거라고 말해요. 정헌의 돈이 많은 줄 알아도, 그 돈을 받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은 삶을 살았어도, 도둑질은 커녕 다른 사람에게 피해 준 적도 없었죠.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해야 하기 때문에, 언제나 스스로만 손해 보는 선택을 해왔어요.

자존감의 무게와 상관없이 두 사람은 자기 철학과 의지가 아주 강한 사람들이죠. 그래서 그런지, 읽는 내내 이모 미소를 짓게 됩니다. 기특하다. 기특하다. 하면서 보게 돼요. 너무나 경건한 작품이라, 19금이고 절륜공과 경험 많은 오메가수가 등장하는, 심지어 러트. 노팅, 히트가 모두 나옴에도!!! 왜 이렇게 건전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지나친 배려심 때문에 늘어지는 삽질 구간도 있습니다. 사건 중심보다는 인물 중심이에요.

저는 착한 사람들이 나오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기승전결이 스펙터클하지 않아도, 심장을 쫄깃쫄깃하게 만드는 긴장감은 없어도, 흐뭇하게 볼 수 있거든요. 하지만, 밀당을 좋아하신다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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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비욘드

출간일: 2019.09.09

분량: 본편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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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1 책갈피

"하언아. 흠이 아닌 것도 내가 흠이라고 생각하면 그게 흠이 되더라."

"......"

"그러니까 너는, 나를 좋아하는 너를 흠으로 여기지만 않으면 돼."

서노영이 나를 돌아보았다. 그가 코끝을 찡그리며 장난스레 웃어 보였다.

"그거면 돼. 그러니까 맞고 다니지 말고."

서노영의 시선이 검붉게 물든 내 광대 위를 안타깝게 맴돌았다. 그의 머리 위로 달빛이 번져 보였다. 문득, 이 사람을 좋아하게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멈춰 섰다. 하고 싶은 말은 무척 많았다. 생각을 정리하느라 잠시 까맣게 물든 호수 위로 시선을 던졌지만, 어떤 말도 섣불리 꺼낼 수가 없었다.

그의 말을 단박에 부정하고 싶었으나 망설여지는 것은 내가 여전히 무언가를 걱정하고 있기 때문일까? 단지 상대의 성별이 바뀐 연애일 뿐인데 보통의 연애와는 완벽히 다른 지점이 생긴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서노영의 잘못이 아니었다.

가슴이 아릿했다. 안타까운 것 같기도 하고, 속상한 것 같기도 하고, 정확히 콕 짚을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너를 좋아하는 나를 흠으로 여기지 말라니. 그가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도록 내가 상처를 준 걸까. 아니면 그의 일상에 자연스레 쌓인 버석버석한 모래일 뿐인 걸까. 슬펐다.

point 2 줄거리

기: 복학 후 자취방을 찾던 정하언은 보증금 오백에 월세 삼십, 풀옵션인 반옥탑방을 발견한다. 잘생긴 주인은 성격도 좋았고, 월세도 5만 원이나 깎아줬다. 이웃이랑 친구가 하고 싶었다는, 옆집에 사는 주인의 첫인상은 좋았다. 하지만, 게이인 이웃집 집주인은 하언에게 추파를 던지기 시작한다. 소심한 하언은 좋은 조건에 호의적으로 집을 빌려 준 주인, 서노영에게 갖은 희롱을 당하면서도 제대로 대거리를 하지 못한채 피해만 다닌다.

승: 하언은 서노영을 밀어내기 위해 무례한 행동을 하지만, 서노영은 포기하지 않고 꾸준이 하언의 주위를 맴돌았다. 사실, 서노영은 이것만 빼면 최고의 형이었다. 배려심 깊고, 센스 있고, 세심한 이웃이었다. 하언은 점점 노영에 마음을 알고도 애매하게 대하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다 하언의 학교 축제에 오게 된 노영은, 하언의 친구들이 하언의 여자친구에 대해 떠드는 것을 듣는다.

전: 사실, 하언과 같이 알바하는 윤희가 과팅에 나오고, 하언의 친구들은 다정한 두 사람을 보고 사귄다고 오해한 것이었다. 노영은 하언에게 묻고, 하언은 노영에게 여자친구가 있다고 거짓말한다. 하언은 화를 내는 노영에게 그간 참았던 이야기를 쏟아낸다. 이후, 노영의 하언을 무시하고 투명하게 대한다. 노영의 태도가 변하고서야, 하언은 노영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죄책감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 한편, 사이가 안 좋던 강준수는 하언에게 게이 아니냐고 비꼬고, 순간 욱한 하언은 강준수와 주먹다짐하다 경찰서에 가게 된다. 터진 얼굴로 돌아온 하언을 본 노영은 집에 불러 치료해 주고, 하언은 여자친구가 있다고 거짓말 한 사실을 고백한다. 노영은 하언의 마음을 알아챈다. 그리고, 하원과 노영은 조심스럽게 연애를 시작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사랑은 불편함을 싣고

다른 리뷰어님들은 어떻게 작품을 선정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의 경우는 <매우 별로, 별로, 보통, 좋음, 매우 좋음> 5 단계로 작품을 구분한다면, <좋음>과 <매우 좋음>은 왠만하면 쓰고, <별로>는 때때로 쓰고, <보통>과 <매우 별로>는 왠만하면 쓰지 않아요. 좋은 작품은 수다 거리가 많고, 또 살짝 아쉬운 작품도 이야깃 거리가 많습니다. 하지만, <매우 별로>는 욕만 하게 되고,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보통>은 할 말이 없어요.

저에겐 선명님 작품이 대부분 <보통>이었죠. 네임드 작가님이고, 유명한 작품도 많은데... 저는 다소 심심하더라고요. 아마도 저와 잘 안 맞았었나 봅니다. 돈이 아까운 작품은 없었지만, 기억에 남는 작품도 꼽기 어려웠죠. 몇 작품은 리뷰를 쓰다가, 중도 하차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웃집 집주인'은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작품이었어요. 완전 잊고 있었죠. 그러다 핑크빛 표지가 갑자기 눈에 띄어 재탕하게 됐는데... 또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갈등을 푸는 동기! 저는 '불편하기 싫어서'가 가장 많은 것 같아요. 껄끄러움을 피하려고, 원만한 해결을 고심하죠. 그런데 가끔 그것이 불가능한, 제대로 꼬인 관계가 있어요. 대다수가 지극히 감정적으로 촉발 된 것들인데, 그냥 싫거나 그냥 좋은 경우는 근본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해요. 특히나, 한쪽만 그냥 좋은 경우는... 무시조차 할 수 없는, 진정 곤란한 사태를 야기합니다. 그 어색함이 싫어, 내가 나를 설득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해요.

하언의 경우가 그렇죠. 노영은 하언에게 '매우' 공을 들입니다. 노영은 하언의 서툰 삽질조차도 사랑스럽게 감싸주죠.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요즘은 열 번 찍기 전에 경찰서행이겠지만, 어쨌든 노영은 하언을 열심히 찍습니다. 그리고 잘 나가는 미남 작곡가, 돈도 많고 센스도 있는 이 남자! 게이인 것만 빼면 완벽한 이 남자에게 하언의 마음은 점점 기울어요. 하지만, 하언에게 '동성애'는 넘사벽이었고, 결국 노영을 밀어내기로 결정하죠.

'우리애기~ 우리애기~'하던 노영은 '너가 어떻듯 나랑 무슨 상관?'으로 돌변합니다. 노영은 취향인 하언에게 한눈에 반했고, 열심히 어필했어요. 하지만 하언은 노영의 마음을 알면서도 모호하게 피하는 태도로 일관했죠. 그것이 하언 딴에는 간접적 거절이었겠지만, 분명 노영에게 예의 있는 태도는 아니었어요. 그럼에도 노영은 받아줬습니다. 이상한 옷을 빌려 입고 왔을 때도, 타박하기보다는 잘 어울리는 옷을 사주면서요. 하지만, 여자친구건은 확실한 기만이었어요.

노영은 폭발합니다. 하언도 폭발해요. 그런데, 두 사람의 대화가 오묘합니다. 노영은 하언의 행동에 대해 화를 내지만, 하언은 횡설수설해요. 하언은 후한 형과 잘 지내며, 조건 좋은 자취 집에서 살고 싶었지만, 게이가 되고 싶진 않았어요. 그래서 노영의 마음을 제대로 보지 않고, 상황만 모면하려 해요. 결국, 노영은 그런 하언의 태도에 폭발했고, 하언은 이런 상황에 이르러서도 궤변을 늘어 놓습니다. 물론, 하언은 실패하고, 노영과는 불편한 관계가 돼요.

하언은 냉정해진 노영를 보며 못 견뎌해요. 무시 받는 것이 서러워 술 먹고 우는소리도 해보지만, 노영은 더 이상 다정하게 하언을 받아주지 않아요. 그러다 강진수 사건을 겪으면서, 하언은 확신합니다. 게이가 되는 것보다, 노영에게 무시당하는 것이 더 힘들다는 걸 말이에요. 하언은 노영에게 다가갑니다.

노영의 계기는 하언의 외모였고, 하언의 계기는 불편함이었죠. 하지만, 계기가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두 사람은 서로 알아 갈수록 깊이 빠져듭니다. 애당초 하언을 좋아했던 노영조차도 놀랄 정도로요. 노영은 연애 순둥이 하언을 잘~ 리딩 합니다. 연상 다운 노련함과 편견을 먼저 경험한 선배의 현명함으로, 당근과 채찍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죠. 물론, 쩔쩔매면서도, 노영에게 매달리는 연하남 하언에게도 귀여움이라는 큰 무기가 있고요.

하언은 '성장했다.'보다 '철들었다.'가 더 잘 어울리는 수였어요. '이웃집 집주인'이 수시점이기 때문에 더더욱 두드러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문득, 선명님 작품이 거품은 없지만 심심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서재에 방치된 선명님의 작품을 차근차근 재탕해 봐야겠어요. 첫 정독에는 몰랐던 재미를 발굴하는 묘미! 이것이 재탕의 매력이죠.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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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처: 봄툰

분량: 본편 3화

point1: 한 컷

point2: 줄거리

기: 한그루, 초등학교 5학년, 집 앞에서 비를 맞으며 쪼그리고 있는 아이를 본다. 그루는 그 아이에게 우산을 씌워주지만, 아이는 이상한 질문만 던진 채 옆집으로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루는 다음날 학교에서, 그 아이가 여름방학 직전에 전학 온 이가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후 그루는 가람을 마주칠 때마다 아는 척 하지만, 가람은 그루를 무시하기만 한다.

승: 번번이 무시당하기를 3년, 그루도 가람도 중학생이 되었다. 그날도 가람은 그루를 모른 척 지나갔다. 순간 욱한 그루는 가람을 잡고, 같이 하교하자고 말한다. 의외로 가람도 그러자고 말한다. 하지만, 그날따라 교무실에 불려간 그루는 뒤늦게 교실로 돌아오고, 모두가 하교한 빈 교실에 가람만이 그루를 기다리고 있었다. 잔뜩 땀을 흘리고 있는 가람은 해가 지면 나가자고 하고, 둘은 어색한 침묵이 감도는 시공간에 덩그라니 남겨진다.

전: 입을 먼저 뗀 것은 그루였다. 그루는 3년 전 가람이 물었던 이상한 질문에 답을 한다. 가람은 그런 그루의 진지함에 웃어버리고, 둘은 소소한 대화를 이어간다. 그러다, 그루는 고백 아닌 고백을 하고, 가람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 다음날 가람이 전학 갔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로부터 10년 뒤, 그루는 문학잡지사 기자로 일하면서, 작가 B의 인터뷰를 담당하게 된다.

결: 베일에 가려진 작가 B, 베스트셀러 로맨스 소설 '소나기' 1권을 쓰고 후속편을 내지 않는 야속한 작가였다. 약속 시간을 1시간 40분 넘긴 시점, 서서히 분노에 젖어가는 그루 앞에 성인이 된 가람이 나타난다. 작가 B의 인터뷰가 무난하게 끝나고, 가람은 그루에게 맥주 마시자고 제안한다. 그곳에서, 가람은 글의 쓴 계기가 자신의 짝사랑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의 비밀에 대해서도... 10년, 그루는 자신의 첫사랑이 이루어졌음을 깨닫는다.

point3 진지충의 review: 혼몽해 질 정도로 더웠던 여름을 기억하며...

'입추'도 지나고, 숨 막히는 더위도 한풀 꺾인 듯합니다. 잠깐이긴하지만 소나기도 시원하고 내렸고요. 바람도 불고, 아스팔트를 디디는 순간부터 끈적이던 땀도 좀 덜 나는 것 같아요. 24절기를 정하던 시절과 기후는 천지개벽할 만큼 바뀌었을 텐데, 참으로 오묘한 우주의 진리가 아닌가 합니다.(멍~) 물론, 그럼에도 아직 덥긴 덥습니다. 더워서 그런지 멍~하네요. 몇 달 내내 이 상태였던 것 같지만요.

김에...라고 하긴 면구스럽지만, 한 여름 신비로웠던 첫사랑의 기억을 담은 단편 웹툰 한편을 리뷰 해 볼까 합니다. 사실, 오늘 아침까지 잊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어요. 한 여름을 다룬 많은 소설, 영화, 만화나 웹툰은 몽환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한여름 밤에 꿈'도 여름밤에 일어난 요정들의 장난을 소재로 하고 있잖아요. 고온 습윤한 공기에 혼몽한 계절, 이성이 한없이 버벅거리는 시간 동안, 현실인 듯 꿈인 듯 살게 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소나기' 속 그루와 가람은 여름에 만나, 여름에 헤어지고, 여름에 재회합니다. '여름'이 이들에게 특별한 이유! 바로 가람의 체질 때문이에요. 가람은 모친인 인어의 형질을 물려받았고, 체온이 올라가면 잠시 기화해 버려요. 물론, 물에 닿거나 체온이 내려가면 원래대로 돌아옵니다. 한여름 열기에 기화했다가, 문득 쏟아지는 소나기에 돌아오곤 하죠. 문제는, 한여름의 열기에 더해, 체온을 올리는 일이 발생할때예요. 가령, 좋아하는 아이와 대화하는 것처럼요.

소나기가 내리 던 날, 물웅덩이를 보고 있던 가람에게 노란 우산을 든 그루가 나타납니다. 엉뚱한 질문, 엉뚱한 대답, 별것 아닌 시간이었지만, 가람은 몸에서 기화할 것 같은 열기를 느낍니다. 집으로 돌아가던 가람은 기어코 기화되어 버려요. 그 후, 가람은 그루를 피해 다닙니다. 사람들 앞에서 사라지는 일은 막아야 했으니까요. 이런 사정을 모르는 그루는, 홀로 분이 차오르고 있었고요. 결국, 그루는 가람을 잡고, 가람은 그루의 고백(?)에 체온이 올라가 그의 앞에서 사라져 버립니다. 본의는 없었지만, 어쨌든 그루는 첫 실연을 당하죠.

10년이 지나, 그루와 가람은 재회합니다. 기자와 작가가 되어서요. 그루 앞에만 서면 기화하는 가람은 미련 덩어리인 소설을 쓰고, 덕분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됩니다. 역시, 최고의 글은 '겪은 일'에서 비롯되는 것 같죠? 어쨌든, 두 사람의 오해는 풀리려고 하는 순간! 가람은 또 기화해 버립니다. 그루의 두 번째 실연인가!!!! 싶은 그때! 하늘에서 소나기가 내립니다. 그리고, 이번엔 너무 늦지 않게, 가람은 그루 앞에 나타나요. 두근두근 체온이 오르면 기화하는 인어와, 두근두근 한순간마다 실연을 당할 뻔한 그루의, 신비로운 한여름 이야기였어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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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미열

출간일: 2020.11.06

분량: 본편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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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1 책갈피

"나를 떠나지 마!"

아케론이 루키우스를 올려다보았다. 일그러진 얼굴이 눈물로 물들어 있었다.

"제발...... 제발......"

마부가 당황하여 말의 고삐를 잡아당겼다. 서서히 멈추는 마차. 사내의 발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루키우스의 창백한 입술이 달싹거렸다.

"아케론."

사내는 흐느끼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죽을 테니까."

피로 물든 몸. 그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사내는 흙투성이 위에 무릎을 꿇었다. 마차의 틀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했다. 무너져 내리는 혼이 그것에 있었다. 루키우스가 얼어붙을 그 순간에 아케론의 입술 밖으로 헐떡거리는 숨이 흘렀다.

"죽을 거야."

충혈된 눈.

흐르는 눈물.

"죽을 테니까......"

고통에 쩍쩍 갈라진 목소리를 사내는 힘겹게 토해 냈다.

"내가 죽을 테니까."

고꾸라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척추가 도드라지게 몸을 웅크린 사내가 이마를 땅바닥에 깊이 박고 흐느꼈다. 그는 절규했다.

"...... 가지 마."

루키우스의 푸르스름한 입술이 달싹이는 순간, 마차를 움켜쥔 손이 흘러내렸다.

"책임져......"

거구의 몸이 애처롭게 떨렸다. 가늘게 떨리는 어깨가 늘어져 있었다. 사내는 더 이상 말을 내뱉지 못했다. 처참한 모습을 루키우스는 멍하니 바라보다가 숨을 멈추었다.

point 2 줄거리

기: 검투사 아케론, 집정관 마르쿠스의 노예, 이스카리아의 왕이라 불리는 그는 섬에 팔려 온 3년간 단 한 번의 패배도 없는 절대 승자였다. 검투장의 주인이기도 한 마르쿠스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인 아케론을 결코 팔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마르쿠스는 절벽 위 로마식 저택의 주인에게 아케론을 팔았다고 말한다. 그렇게 아케론은 검투장을 떠나 저택의 주인, 루키우스의 노예가 된다. 그가 아케론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 매일 밤 자신을 안으라는 것!

승: 노예가 된 지 7년, 하지만 아케론은 로마의 개선장군 게르마니쿠스였다. 아케론은 금발의 가녀린 소년 루키우스를 안으면서도, 그를 창부마냥 무시했다. 반면, 루키우스는 아케론에게 시중들 노예를 붙여주고, 별채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게 해 준다. 한편, 아케론은 나날이 변해가는 마음을, 루키우스의 몸에 미혹된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저택을 찾은 원로원 의원인 달마티카가 루키우스를 겁간하려 하고, 분노한 아케론은 그를 죽인다.

전: 아케론은 루키우스에 대한 감정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편, 루키우스는 아케론을 살리고자 재판장에서 신분을 밝힌다. 그는 로마 황제 카이사르의 사촌이자 아케론의 원수, 포스투무스의 친동생이었다. 풀려난 아케론은 루키우스의 출신에도 불구하고 구애하지만, 루키우스는 아케론의 사랑을 냉정하게 쳐낸다. 아케론은 그런 루키우스를 술에 취해 잔인하게 강간하고, 후회하며 자해한다. 루키우스는 아케론을 용서하지만, 사랑은 인정하지 않았다.

결: 7년의 시간이 흐른 뒤 저택에 불이 나고, 루키우스는 갑자기 저택을 떠난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여름, 루키우스가 돌연 나타나 아케론의 신분을 해방시키고 그를 로마로 보낸다. 작가 우티스가 쓴 로마사 '네체시스타스'가 지중해를 장악하고 있었고, 그 책엔 누명을 쓴 게르마니쿠스에 대한 진실이 담겨 있었다. 포스투무스를 경계한 황제의 도움이 더해져, 게르마니쿠스는 복권된다. 1년 뒤, 게르마니쿠스에게 아이깁투스로부터 온 루키우스의 편지가 도착한다.

point 3 전지 충의 Review: 숙명

'아울루스 셈프로니우스 달마티카' '우티스 루키우스 아르카디우스 풀케르'..... 주문 아닙니다. 사람 이름입니다. '게르마니쿠스 막시무스', 10글자 이름이 짧게 느껴지는 신비! 서양풍, 특히나 유서 깊은 가문 귀족님들이 많이 등장하는 소설은 눈이 뱅뱅돌아요. 그래서 손이 잘 가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로 제 서재에는 동양풍이 서양풍에 비해 3배 정도가 많아요. 그럼에도, 서양풍을 완전히 놓을 수 없는 이유는, 역시 좋은 작품이 너무 많기 때문일 거예요.

'네체시스타'는 게르마니쿠스의 '노예 14년'입니다. 포스투무스에 의해 몰락해서 루키우스에 의해 부활 할 때까지, 노예 검투사 아케론이 잃어버린 자유와 숙명을 찾는 이야기죠. "로마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다."라는 작중 루키우스의 말처럼, 자유가 있어야만 숙명을 증명할 수 있을 테니, 결국 '존재하는 인간'과 '소유되는 노예' 사이에 가장 큰 차이는 '자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유 시민들의 유희를 위해 잔인하게 죽임 당하는 노예의 서사로 시작하지만, 사실 '네체시스타'는 고요한 절벽 위 저택을 배경으로 한 잔잔하고 애절한 서사를 메인으로 합니다. 스펙타클하다기보다는 서정적이예요.

게르만족의 정벌자, 그래서 게르마니쿠스가 된 (구)개선장군, (현)노예 아케론! 유례없는 승리와 수려한 외모로 로마인들의 영웅이 된 게르마니쿠스! 그의 개선식은 성대했습니다. 모두가 광란에 도가니였죠. 그리고 이 개선식은 아르카디우스 풀케르가의 두 사람의 인생을 바꿉니다.

한 사람은 당연히, 루키우스에요. 약한 몸을 가진 루키우스는 명문 풀케르의 흠이었고, 어머니는 루키우스를 절벽에 던져 죽이려고 합니다. 하지만, 때마침 개선식을 열리고, 어머니는 루키우스를 놓고 개선식을 가요. 그 개선식이 루키우스를 살린 셈이죠. 다른 이는 포스투무스예요. 그는 동생을 살린 개선식을 보고, 개선식에 대한 선망과 집착을 갖게 돼요. 그리고, 이 꿈에 방해가 되는 상사 게르마니쿠스를 고발하기에 이릅니다.

"더 찾아봐라. 신이 너를 세상에 내린 이유가 한 가지는 있겠지." 연회에서 만난 로마의 영웅 게르마니쿠스는 어린 소년 루키우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루키우스는 자신의 숙명이 게르마니쿠스에게 닿아 있음을 확신하죠. 신이 세상에 나를 내린 이유, 그것이 진짜 숙명이라면 말이에요. 반면, 게르마니쿠스의 숙명은 '생존'이었어요.

과거 게르마니쿠스는 승리에 기쁨에 도취되어 보지 못한, 전쟁의 참상을 직시하게 됩니다. 게르마니쿠스는 더 이상 영토를 넓히기 위한, 무용한 전쟁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전쟁을 하지 않으면 개선식도 없죠. 게르마니쿠스의 부관인 포스투무스는 겁쟁이가 되어버린 상관에 크게 실망합니다. 왜냐면, 포스투무스의 숙명이 바로 '개선식'이었으니까요. 결국 포스투무스는 게르마니쿠스를 이민족과 밀회하여 로마를 배신한 반역자로 몰고, 게르마니쿠스는 소중한 벗 군나르를 남기고 홀로 도망칩니다. 그리고, 반드시 살아남으라는 그의 유언이, 살아남은 게르마니쿠스의 숙명이 되죠.

그런데 문제는, 게르마니쿠스와 포스투무스의 숙명이 명료한 데 비해 루키우스의 숙명이 모호하는 거예요. 루키우스는 자신의 영웅, 구원자, 사랑하는 게르마니쿠스를 위해 남은 수명을 쓰려 합니다. 그러면서도, 검투장에서 환호 받는 게르마니쿠스를 보고, 가지고 싶은 욕망도 생기죠. 결국, 루키우스는 게르마니쿠스를 옆에 두고 아끼며, '네체시스타'를 통해 그의 명예를 찾아주려고 합니다. 좋은 음식, 편안한 잠자리, 안온한 생활, 그리고 자유를 주려 해요.

하지만, 루키우스의 계획이 어그러집니다. 창부같이 구는 자신을 혐오해 마지않던 게르마니쿠스가 점점 변하면서요. 그가 절대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노예 아케론을 주인으로서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대쪽 같은 장군 게르마니쿠스는 사랑에 있어서도 우회로를 몰랐어요. 사랑을 자각한 게르마니쿠스는 폭풍처럼 루키우스를 몰아칩니다. 그의 형과 사촌, 심지어 신분도 막을 순 없었죠. 루키우스가 애타게 부르던 '장군'이 자신이고, 자신이 사랑하는 이가 '그'라는 것만이 중요했어요.

루키우스의 몸에는 종양이 자라고 있었고, 로도스 섬의 밀교조차도 치료에 도움이 되지 못했죠. 간신히 위험한 진통제를 먹으며 '네체시스타'에 몰두 하던 루키우스에게, 아케론은 사랑하지만 사랑하면 안되는 사람이었어요. 게다가, 게르마니쿠스의 복권은 포스투무스의 몰락을 의미하죠. 루키우스는 게르마니쿠스가 마땅히 해야 할 복수에 걸림돌이 되고 싶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루카우스는 결국 이 사랑을 참아내지 못합니다.

'네체시스타'는 전형적인 비극의 서사를 가지고 있어요. 병약한 주인공과 원수의 혈연, 생명을 태워 숙명을 이룬 헌신적 사랑... 하지만, 놀랍게도 '네체시스타'는 해피엔딩입니다. 포스투무스는 죽거나 노예가 되지 않고, 루키우스도 아이깁투스에서 수술을 받아요. 흐름상 튀는 결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급건강해진 주인공과 쉽게 벗은 복수의 고리,,, 그럼에도 왜일까요? 어색해도 해피엔딩이라 좋아요. 정말, 죽~~도록 마음 고생한 둘의 행복한 모습이 흐뭇해요.

이번 리뷰를 쓰면서, 정말 이름... 후덜덜하네요. 웬만해선 4글자를 넘지 않는 동양의 작명 전통을 사랑합니다.

※ 동일 작가의 다른 소설 리뷰

 

2021.03.12 - [BL 소설] - [오메가버스/동양풍/개그물/달달물] 채련담 - 모르고트

 

[오메가버스/동양풍/개그물/달달물] 채련담 - 모르고트

​ ​ ​ ​ ​ point 1 책갈피 ​ ​ "억울해요." ​ 그리고 유영의 답변이었다. ​ '억울해?' ​ 희릉사의 몸이 우뚝 굳었다. ​ 얼이 나간 그를 위로하고 유영은 서러운 말을 이어 나갔다. ​ "왕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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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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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주)현대지능개발사

분량: 본편 1권

point 1 한 컷

point 2 줄거리

기: 어릴 때부터 게임이 만들고 싶었던 미사키는 전문학교에 입학한다. 제법 재능도 있기에 자신만만했지만, 그곳엔 카나메라는 진짜 천재가 있었다. 하지만, 카나메는 사회성이 없었고, 덕분에 쉽게 미움을 샀다. 그러다 과제 USB가 도난당하면서 진급을 못할 위험에 처하고, 그때 마사키가 카나메를 도우면서 간신히 진급 과제를 제출한다. 성격 좋은 노력파 마사키를 카나메는 좋아하게 되고, 두 사람은 친해진다.

승: 카나메는 점점 마사키에게 속절없이 빠져들었지만, 마사키는 점점 열등감에 시달린다. 마사키에게 카나메는 더 이상 대단한 동기도 라이벌도 아니었다. 그냥 넘을 수 없는 절벽이었고, 마사키는 점점 좌절에 빠진다. 그러다, 카나메는 마사키가 동경했던 '골드 게임스'에 스카우트되고, 마사키는 더 절박한 심정으로 '골든 게임스' 입사를 준비한다. 그런 마사키를 도우려다 카나메는 마사키의 열등감을 자극하고, 마사키는 폭발한다. 둘은 그 상태로 졸업한다.

전: 그 후 미사키는 원래 하고 싶었던 모델러는 아니지만 언젠가 모델러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CG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형 프로젝트에서 마사키가 아닌 '골드 게임스'를 나와 프리로 일하던 카나메가 모델러를 맡게 된다. 둘은 그렇게 재회하게 된 것이다. 카나메는 여전히 뛰어났고, 또 여전히 마사키를 좋아하고 있었다. 마사키는 한결같은 카나메의 마음에 넘어가고, 프로젝트가 끝난 뒤 두 사람은 연인이 되어 있었다.

결: 두 사람은 함께 게임을 제작하기로 하지만, 마사키는 극복하지 못한 카나메에 대한 질투심과 깊어지는 사랑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결국 마사키는 게임을 그만두고 도망친다. 그 후 편의점에서 일하던 마사키는 카나메가 모델링 한 게임을 하고, 잊었던 꿈을 떠올리게 된다. 마사키는 다시 시작한다. 게임회사에 재취업해서 실력을 키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마사키는 카나메가 만든 게임 회사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point 3 전지 충의 Review: 지긋지긋한 열등감!

오게레츠 타나카님 하면, '이스케이프 저니'나 '플레잉☆보이부'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물론, 저의 원픽은 '이스케이프 저니'지만, 모두 사랑스러운 작품이에요. 오게레츠 타나카님 작품의 특징은 섬세한 심리묘사라고 생각합니다. 캠퍼스물이든 뽕빨물이든 시리어스물이든, 뻔한 스토리를 오게레츠 타나카답게 만드는 매력이기도 하죠. '데이지 젤러시'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스토리는 전형적인 '그' 클리셰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까칠한 성격의 천재와 사교성 좋은 범재의 만남, 그리고 천재의 순애보에도 열등감 때문에 혼란스러워 하는 범재의 이야기... 둘의 갈등은 범재의 폭발로 시작해서 극복으로 봉합되죠. 연애에 서툴지만 사랑에 우직한 천재와, 연애엔 능숙하지만 사랑엔 우왕좌왕하는 범재의 좌충우돌 연애담이에요. 다만, 오츠카레 타카가님이 그 뻔한걸 뻔하지 않게 쓰시는 금손이시죠. 역시, 차별점은 디테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사키는 어릴 때부터 게임이 좋았어요. 게임을 즐겼고, 또 모델링을 취미 삼아 할 정도로 재능도 있었죠. 하지만, '나 좀 한다.'고 생각한 마사키는 전문학교에서 진짜 천재를 만났습니다. 처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좋은 자극제라고... 세상은 넓고, 저렇게 잘하는 사람도 있으니, 분한 마음에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고 말이에요. 그 천재는 말만 하면 주변에 미움을 샀고,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어요. 재능 이외에는 분명 부족한 부분도 있는 사람이었죠.

그래서 진급과제도 도와준 거였어요. 열심히 하는 카나메가, 열심히 하지 않는 동료들의 시기로 진급이 누락되는 것이 싫어서... 노력하는 자는 노력하는 만큼 인정을 받아야 분하지 않은 거니까요.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카나메의 첫사랑은 시작되지만, 미사키의 열등감은 본격화돼요. 어깨너머로 보던 천재성을 가까이서 보니, 애당초 카나메를 라이벌이라고 생각한 것 조차 어불성설이었죠. 마사키는 더더더 노력합니다. 주변에 걱정을 살 정도로 피폐해지지만, '골드 게임스'가 선택한 사람은 결국 카나메 뿐이었어요.

 

 

그 후 4년의 시간이 흐릅니다. 마사키는 원하던 모델링일은 하지 못했지만, 열심히 일하고 있었어요. 언젠가 이렇게 성장하다 모델링 일도 할 수 있을 거라고 희망하면서... 하지만, 그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을 때, 신예 프리 모델러 카나메가 등장합니다. 마사키는 어른이 됐고, 비록 자신이 바라던 일은 카나메가 하게 됐지만, 학교를 다닐 때처럼 심한 열등감이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간 한 번도 변한 적 없다는 카나메의 일편단심에 감동을 하죠.

두 사람은 연인이 되어 행복한 연애를 합니다. 프로젝트는 끝나고, 마사키와 카나메는 게임을 만들기로 해요. 하지만, 마사키의 열등감은 극복된 게 아니었어요. 난관에 부딪칠 때마다 카나메와의 실력차는 절실히 느껴지고, 한편으로는 카나메가 자신에게 실망을 해주길 바랍니다. 카나메는 연인으로서, 동료 개발자로서, 마사키에게 최선을 다하지만, 그런 카나메의 모습이 오히려 마사키를 더 비참하게 만들어요. 마사키는 결국 평생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선택을 하게 됩니다. 바로, 게임을 포기하는 거 말이에요.

 

 

물론, 마사키는 극복합니다. 게임을 좋아하는 초심으로 돌아가죠. 사실, 마사키가 전문학교에 간 건,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지 카나메만큼 모델링을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잖아요. 하지만, 어느 순간 카나메라는 목표가 생기고, 아무리 노력해도 마사키는 초라해지기만 하고 더 나아지지는 않는 것 같았죠. 하지만, 사실은 열심히 나아지고 있는 거였어요. 별에 닿지 않아도 별을 향해 나아가는 우주선처럼, 위대한 도약을 하고 있는 중이었던 거였죠.

참 어렵습니다. '목표'라는 것이 생기면, '실패'가 생기는 까닭에요. 그리고, '실패'라는 것은 그간의 노력을 무효화할 뿐만 아니라, 초심과 자존감마저 앗아갑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이것만 해도 훌륭하다! 스스로를 다독여도 안되니, 자기개발서 좀 읽는다고 '나는 이미 충분하다.'는 마음이 생길리가 없습니다. 1%의 성공률이면, 사실상 성공할 수 없다는 문장의 숫자적 표현인데도, 1%는 성공한다. 나도 1%가 될 수 있다.는 해석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 가끔 경악스럽습니다. 열등감은 학습되고, 학습된 열등감은 체화되죠. 어느 순간 내 영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샴쌍둥이같이 되어 버려요.

정말 지긋지긋한 열등감입니다. 저 역시 '극복'이라는 단어를 쓰긴 했지만, 열등감이 극복의 대상은 아니죠. 마사키도 정확는 '극복'을 한건 아닙니다. 단지, 익숙해진 거죠. '인정'해도 '익숙'해지지 않으면 괴로운 게 열등감이니까요. 마사키는 초심으로 돌아갑니다. '나, 마사키는 게임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그건 목표도 아니고 비교할 필요도 없지만, 가장 흔들림 없는 진심이었어요. 나의 초심은 무엇인가? 나의 '열심히 사는 방법'은 틀리지 않았나? 저에겐 이런 질문들이, 지긋지긋한 열등감과 익숙해지는 노력인 것 같아요.

더불어, 천재 여러분! 열등감을 느끼는 존재의 일을 대신해 주거나 섣불리 위로하려 들면, 그들은 존재가 지워지는 절망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카나메 역시 '골드 게임스' 입사 준비로 무리하는 미사키에게 그냥 본인의 모델을 쓰라고 하고, 게임 개발할 때에도 본인과의 실력차로 힘들어하는 줄도 모르고 계속 위로하려 합니다. 이로 인해 두 번이나 이별을 겪어야 했고, 카나메는 교훈을 얻습니다. 그 후엔, 그냥 기다려 줍니다. 미사키가 충분히 성장할 때까지 말이죠.

결론은 해피엔딩입니다. 해피엔딩인 줄 알았지만, 해피엔딩이라 정말 다행이에요. 열등감을 너무 리얼하게 다룬 작품이어서, 열등감쟁이인 저는 너무 몰입해 버렸거든요.

※ 동일 작가의 다른 만화 리뷰

 

2020.08.19 - [BL 만화] - [현대물/일상물/잔잔물] 오게레츠 타나카 - 이스케이프 저니

 

[현대물/일상물/잔잔물] 오게레츠 타나카 - 이스케이프 저니

제목: 이스케이프 저니 작가: 오게레츠 타나카 출판사: (주)현대지능개발 출간일: 2017.03.24 분량: 본편 3권 ​ # point 1 한 컷 # point 2 줄거리 기: 사교성 갑인 나오토는 자신과 같은학교 같은학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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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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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처: 레진코믹스

분량: 본편 70화

point1: 한 컷

 

point2: 줄거리

 

기: 불의 나라는 불을 숭배하는 7국의 맹주였던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대륙의 패권을 쥔다. 그 힘의 근원은 불의 악마와 불의 악마가 알려준 화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불의 악마가 납치되고, 불의 나라 주단왕은 악마를 찾는 공문를 붙인다. 그리고, 한 왕조의 후손이지만 천한 돗자리 장수로 살고 있던 유하는 들판에서 그 불의 악마를 발견한다. 유하는 불의 악마를 궁에 데려다준 대가로 입궁을 요청하고, 허드레 일꾼으로 궁에서 일하게 된다.

 

승: 불의 나라는 과거 7나라 중 최약소국으로 차별받으며 비굴하게 살고 있었다. 타국에 굽신거리는 것이 일상인 왕족들은, 민생은 버려두고 자신들의 향락만 찾았다. 막내였던 주단은 핍박받는 백성을 구하고자 홀로 고군분투했고, 그러던 중 사랑하는 불의 악마를 형제들이 해하려 들자, 그 형제들을 죽이고 왕이 되어 전쟁을 일으킨다. 그리고, 화약을 이용해 최강국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살아남은 5국 위에 군림하게 된다. 하지만, 그 후 주단은 화약 개발에 집착하며 불의 악마를 홀대하기 시작한다.

 

전: 1000년 전 , 불의 산에서 홀로 살던 불의 악마는 인간 세계를 가고 싶어, 불을 품을 수 있는 자를 불렀다. 그리고 그 소리에 응답한 자가 척이었다. 불의 악마를 얻은 척은 6명의 인재를 모아 혼란한 세상을 평정하고, 척의 한나라를 비롯해 대륙엔 7개의 나라가 건국한다. 그러다 척이 죽고 불의 악마는 또다시 불을 품을 자를 부르지만, 1000년이 지나서야 주단이 나타났다. 불의 악마와 주단은 서로 사랑에 빠지고, 악마는 주단과 불의 산으로 함께 돌아가길 원했지만, 주단의 점점 변해갔다.

 

결: 주단은 천재 화약 개발자 지율과 함께 더 강한 화약을 만들어, 계속 사람을 죽이고 있었다. 결국 주변국들은 주단에게 반기를 드는 지하 모임을 만든다. 중간에 지율의 고발로 작전이 실패해 우나라 왕자 무기가 목숨을 잃지만, 한나라의 왕족인 유하와 척의 유지가 보태지면서 결국 주단은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모든 대륙의 왕이 된 유하는 주단의 시신을 악마에게 주고, 약속한 대로 악마를 불의 산으로 데려다준다.

 

point3 전지 충의 review: 홀로 타는 불은 없다.

 

비교적 비슷한 시기에 신유리님의 세편의 작품이, 각각 다른 플랫폼에 완결 났습니다. 봄툰에서 '수라의 연인', 리디북스에서 '후안무치', 레진코믹스에서 '불이 부르는 소리에'가 말이죠. 모두 동양풍 BL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후안무치'는 진양님의 소설을 웹툰화한 개그물인 반면, '수라의 연인'과 '불이 부르는 소리에'는 시리어스물입니다. 강렬한 색채로 인간의 잔인성을 묘사한 피폐물이기도 하죠. 그 중 원픽은 단연 '불이 부르는 소리에'입니다.

 

'불이 부르는 소리에'에 가장 흥미로운 설정은 '불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거였어요. 활활 타오르는 불의 산, 그곳에서 사는 불의 악마는 인간 세상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세상으로 옮겨 줄 이를 애타게 부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거나, 자신의 욕망을 찾았거나, 일생에 한 번 가슴속에 불꽃을 태울 사람을 말이에요. 그때, 정의로운 돗자리 장수 척은 무가의 장군 무장운을 만나 어지러운 세상을 바꿀 꿈을 꾸고 있었죠. 척은 그 불꽃으로 인재를 모으고, 불의 악마의 부름에 응답 할 수도 있게 되요.

 

불의 악마는 척에게 지혜를 빌려줍니다. 뜻을 함께한 6명과, 척의 한나라... 불을 숭배하는 대륙의 7개의 나라는 이렇게 탄생한 거죠. 불의 악마는 아름다웠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기꺼이 알려 줍니다. 많은 이들이 불의 악마를 사랑했고, 척 역시 불의 악마에게 깊이 빠집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사람들은 척을 시기하며 악마를 빼앗으려 들고, 다른 쪽에선 불의 악마를 왕을 꼬신 요물이라고 비난해요. 불의 악마는 돌연 바뀌는 사람들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고 깊이 상처 입습니다.

 

불의 악마는 자신을 원하는 사람과 비난하는 사람 모두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이 궁금해졌어요. 그리고, 곧 사랑이 하고 싶어졌죠. 사랑하는 사람과 불의 산으로 돌아갈 꿈을 꾸게 됩니다. 불의 악마를 세상으로 옮겨준 불이 '욕망'이었다면, 불의 산으로 돌아가게 해줄 불은 '사랑'이길 바란 거죠. 하지만, 현명하고 의로운 왕, 척이 죽자 불의 악마는 곤궁엔 처해요. 불의 악마를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 누구의 가슴도 불타지 않았거든요. 불의 악마는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1000년간 철창 안에 방치돼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새로운 세상을 열망하는 불꽃이 한 사람의 가슴속에서 타오릅니다. 최약국, 불의 나라의 막내 왕자 주단이었어요. 7개의 나라는 건국 신념 따위는 모두 망각하고, 부패와 일그러진 욕망만이 가득한 혼돈이 되었죠. 한나라는 힘으로 약소국을 핍박하고, 그 약소국들은 더 약소국을 유린했어요. 최약국인 불의 나라 백성들의 삶은 당연히 가장 처참했죠. 주단은 그들을 구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주단은 자신을 부르는 악마에 소리에 이끌립니다.

 

불의 악마와 주단은 서로를 사랑하게 됩니다. 척과 불의 악마 역시 '사랑'했지만, 그때 불의 악마는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죠. 불이 악마를 불타게 해줄 사람은, 작품에 3명 등장합니다. 그들은 모두 강한 욕망을 가지고 있었고, 불의 악마를 사랑하게 됐지만, 결국 악마가 '진짜' 사랑했던 사람은 주단뿐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긴 기다림, 정의롭고 약한 왕자, 불의 악마는 주단에게 화약에 대해 알려 줍니다.

 

화약을 이용하면서 주단은 삽시간에 대륙의 절대 강자가 됩니다. 불의 나라 백성들은, 괄시받는 존재에서 괄시하는 위치에 오른 것을 기뻐하며, 주단과 불의 악마를 칭송했어요. 화약으로 죽어간 사람이나, 초토화된 한나라 땅은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오랜 세월 서러운 삶을 살았을 그들에게는 타고 남은 잔열처럼, 잔잔히 깔리 분노가 있었으니까요. 반면, 주단은 초조했습니다. 그래서, 주변국이 감히 따라하지 못할, 더 강하고 오래 타는 화약을 개발하려고 골몰하죠.

 

주단은 불의 악마를 밀실에 가두고 더 좋은 화약을 만들 지혜를 강요합니다. 인간성을 상실한 지율을 이용해 살상력이 높은 화약을 개발하죠. 사랑을 갈구하는 악마를 누르고, 통제하고, 함부로 대하면서, 나를 이렇게 대하지 말라는 악마의 눈물 어린 호소를 듣지 않아요. 화약에 대한 주단의 집착은, 그를 불안과 광기밖에 남지 않은 사람으로 만듭니다. 그의 가슴에 불꽃은 꺼져가고 있었어요. 악마는 살기 위해, 새로운 불꽃으로 갈아타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새로운 불꽃 유하가 나타나죠. 유하는 숨겨진 척의 유지를 찾기 위해 궁으로 들어갑니다. 더불어 하찮은 돗자리 장수에게 불씨를 옮겨 준, 불의 악마를 사랑하게 돼요. 불의 악마는 주단에게 당하면서도, 주단을 사랑하는 마음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죠. 그리고, 유하가 찾은 척의 유지에는, 자신이 죽고난뒤 영겁의 시간을 홀로 살아가야 하는 악마에 대한 염려가 가득 담겨 있었어요. 유하는 주단에게서 악마를 구하기로 합니다.

 

 

작품 속 모두가 자신의 '불'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불의 악마를 불의 산으로 데리고 가 줄 그릇은, 오로지 세 사람뿐이었죠. 그럼, 다른 사람들의 불은 왜 악마에게 선택받지 못한 걸까요? 왜 척이나 주단, 유하처럼 전쟁의 신, 승리의 증표, 제왕의 증거를 가지지 못한 걸까요? 그건 아마도, 그것이 세상을 비추는 불이 아니라, 자신만을 태우는 불이기 때문일 거예요. 모두 스스로 죽음으로 가거나, 타인을 죽음으로 몰기 위해 불타고 있었죠. 때론 알면서도, 때론 모르기 때문에...

 

불의 악마가 '악마'로 불리는 설정도 흥미로워요. 이 작품에 등장하는 많은 '인간'들은 복잡하고, 잔인하고, 남 탓도 잘합니다. 화약 개발에 재능이 있는 지율은, 과거 왕족들의 장난감으로 학대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자학을 반복해요. 그럼에도 그들이 아닌, 단 한번 자신을 모른척했던 악마를 증오하고, 많은 무고한 이들을 태워 죽이죠. 무기도, 심지어 불의 나라 궁인들도, 상황과 사정이 바뀌면, 거침없이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얼굴을 바꿔요. 오로지 악마만이 변함없이 선의를 베풀며, 계속 한결같이 사랑만을 바랍니다. 사람을 죽이지 않는 뿔을 가진 악마와, 사람을 죽이는 뿔이 없는 인간인 셈이죠.

 

불은 인력이 있습니다. 붉은색이 퍼지는 모습이 꽃 같기도 하고, 하늘하늘 흔들리는 모습이 춤사위 같기도 하고, 타오르다 허공에서 소멸하는 부티는 신기루 같기도 합니다.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소리에 열기도 잊고 가까이, 가까이, 다가가게 되죠. 사람 안의 불도 인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연정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굳건한 의지의 발현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아요. 하지만, 선을 넘어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불은 돌연 광기가 되어 뜨거운 열기로 덮쳐 올지 모릅니다. 재가 될 때까지 모든 걸 태워야, 비로소 꺼지는 그 속성대로 말이죠.

 

사람과 어울려 살며 사랑하고 싶었던 악마가 끝내 깨달은 것은, 불은 불의 산에 있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불은 홀로 타지 않습니다. 많은 것들을 태우고, 멀리멀리 옮겨붙습니다. 재가 되지 않고, 불을 품을 수 있는 강한 사람조차 광기에 취하게 하는... 불이란 그런 거니까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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