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주)고렘팩토리
출간일: 2017.11.27
분량: 본편 2권
point 1 책갈피
익제는 유리의 고충을 알고 있었다. 잠든 사이 눈물짓고 그저 하루하루 맘 졸이면서 오늘이 괜찮았으니 내일도 괜찮을 거라 불안한 가슴을 남몰래 달래는 걸 알았기에 마지막 갈 때까지 유리에게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결국 유리는 크게 오열하며 화사에게 기댔다. 서른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사랑했고 가장 많이 의지했던 정인의 죽음 앞에 모든 일에 초연했던 유리마저도 버텨 낼 재간이 없었다.
"내가 너무 나빴어요, 그래도 곁에 남은 건 나 하나뿐이었는데! 고단한 마음 기댈 수도 없게 미워해서, 그래서 그렇게 가셨나봐요... 이제 괜찮다, 나 아픈 만큼 아프셨던 거 다 안다... 그리 말 한마디 못했는데......"
"......"
"마마...... 사평관도 결국 저희가 돌아갈 곳은 아니었어요."
유리는 그제야 깨달은 마음을 화사에게 토했다. 나의 정인과 나의 고향, 이 둘 사이에서 갈등하며 나는 어찌하냐고 물었던 유리는 두 가지 모두를 잃고 나서야 슬픔의 무게를 잴 수 있었다.
절절한 깨달음을 말하는 유리를 보듬어 주며 화사는 지긋한 눈물을 한 방울 흘렸다.
point 2 줄거리
기: 망국의 길을 걷던 후평국을 바로 세운 창제 야무는, 스스로 황제가 되어 국정을 농단한 직미의 우군, 무신상단을 괴멸시킨다. 그리고, 불타는 전각에서 야무는 화사를 구한다. 화사는 무신상단의 연동이자 직미의 최측근 대귀족 아진건의 부인이었다. 화사는 야무를 원망하며 살기를 거부하고, 야무는 화사에게 황후로 만들어 줄 테니, 자신에게 복수하기 위해 살라 한다. 신료들의 극렬한 반대에도, 오랜 짝사랑의 대상인 화사를 기어이 반려로 맞이한다.
승: 과거 선황은 직미를 사랑해, 아진건과 약혼한 직미의 가문을 역적으로 몰아 그녀를 강제로 취한다. 독을 품은 진미는 황제의 양위와 대귀족의 수락을 받아 여제가 되고, 유일하게 생존한 황손인 야무는 무신상단에 숨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야무는 천하일색 화사를 만난다. 천생이 장사꾼인 상주 사마걸은 야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화사를 대귀족 아진건에게 비싸게 판다. 이에 사마걸과 틀어진 야무는 무신상단을 떠나고, 익제를 만나 반정의 시기를 앞당긴다.
전: 한편, 아진건을 사랑하게 된 화사는 직미를 사랑한 아진건과 혼례 하지만, 첫날밤 아진건은 직미에게 가고 신방에는 야무가 나타난다. 다음날 뒤늦게 아진건이 찾아오고, 화사는 야무에게서 아진건을 살리려고 불을 질러 화상을 입는다. 화사는 아진건과 함께 고향이자 직미군이 주둔한 무신성에 가려 하지만 야무에 의해 실패하고, 이 과정에서 아진건은 죽는다. 형식상으로나마 대부인이 된 화사는 복수를 위해, 사마걸은 이익을 위해, 직미군을 돕기 시작했다.
결: 화사는 야무를 괴롭히기 위해, 황후로서 온갖 패악과 사치를 부리면서, 자신의 안위를 인질 삼아 후궁을 간택하고 합방하도록 강요한다. 그런 화사는 귀비 일가에 의해 습격 당하고, 이 과정에서 야무는 큰 부상을 입는다. 깨어난 야무는 마지막 반군을 소탕하기 위해 길을 떠나고, 끝내 직미를 처결한다. 그리고, 화사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화사는 지독히도 한 길밖에 몰랐던 야무를 '낭군'으로 맞이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잃어버린 것과 잃어버릴 것
BL 서적은 프로모션이 많은 편이지만, 대상이 되는 서적들은 비슷합니다.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들은 부동의 위치를 점유하고, 그렇기 때문에 또 읽히게 되는 선순환이 발생합니다. 그렇게 폭발적으로 구매되는 작품 중에서는 당연히 명불허전도 있지만, 빚 좋은 개살구도 많습니다. 지적 재산을 단순 비교한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동일 클리셰, 유사 디테일, 크게 차이 않나는 문장력의 책들 중에 유독 '그' 책만 '베스트셀러'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물론, 홍보 효과에 의한 전략적 우위를 나쁘다고 할 수 없겠으나, 독자로서는 좀 아쉽습니다. 특히나, 제값 주고 읽은 작품이 몇 년째! 매번! '반복'해서! 할인 프로모션에 포함되면, 내가 산 '정가'는 정가가 아닌 것 같고, 또 대상 작품이 많은 듯 보이지만 실제로 읽을 건 없습니다. 심지어 신작 프로모션도, 일부 작가에 편중돼 그다지 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결국은 독자가 평가한다고 하지만, 모든 작가들이 공정한 기회를 얻는 것 같지도 않고, 독자가 충분히 다양한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것 같지도 않아요. 물론, 전대 후문, 미증유의, 대체불가 작품이라면 어떻게든 인정받겠지만, 그런 극소수를 이유로 선택받지 못한 작가나 작품을 탓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라건대, 다양한 작가의, 다양한 작품을, 다양한 기회로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독자는 그저 재미있는 책이 보고 싶을 뿐입니다.
씁쓸한 마음에 서두가 길었습니다. '화사, 황제의 꽃'은 저에게, 이렇게까지 안 읽힐 작품인가?라는 의문이 든 작품이었어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 같다는 아쉬움이 느껴지는 소설이었습니다. 다소 각진 서술과, 튀는 말투, 노골적 일면은 있지만, 충분히 개성이라고 납득할만했고, 무엇보다 독특하고 일관성 있는 인물들이 매력적이었거든요.
화사는 무신상단의 연동으로 키워집니다. 상단에 팔린 아이들의 사정이 좋을 리 없었고, 도망친 황손 역시 예외는 없었죠. 당차고 어여쁜 화사와의 강렬한 첫 만남 이후, 야무와 화사는 10년간 친한 지기로 지내며,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을 품습니다. 하지만, 화사는 손님을 기쁘게 해 주는 도구로서 훈육 받으며, 야무에 대한 마음을 접습니다. 야무는 황제가 아닌 자신에게 화사를 주지 못하겠다는 사마걸과, 일개 호위의 것이 되어 주지 않는 화사를 보며, 빨리 황제가 되려 하죠.
야무가 상단을 떠난 후, 화사는 다정한 아진건을 만나요. 값비싼 화대를 치르고도, 함께 좋은 곳에서 풍류를 즐기며, 연동이 아닌 사람으로 자신을 아껴주는 대귀족이었죠. 사마걸은 기꺼이 아진건에게 화사를 내어주고, 화사는 아진건에게 마음을 줍니다. 하지만, 아진건은 화사에게 '아진'의 모든 것을 주었지만, 마음만은 주지 않습니다.
직미는 아진건의 약혼자였어요. 하지만, 황제의 눈에 띄고 난 뒤, 그녀의 비극은 시작됩니다. 직미는 집안을 멸문시키고 강제로 자신을 취한 황제를 증오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몸에 움튼 황제의 씨를 혐오하죠. 결국, 아이는 친모에게 부정당한 채 버려지고, 아진건은 그 아이를 찾아, 직미를 대신해 보상해 주려 합니다. 그게 바로 화사였어요. 다만, 아진건의 예상을 엇나간 것은, 직미의 아이가 자신을 사랑했다는 겁니다.
많은 사랑꾼 황제공 중에서도, 야무는 진짜 짐승 같습니다. 영민하지만 요령은 없죠. 야무는 화사를 이용하고, 기만하고, 부정한 자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길고 긴 전쟁을 치릅니다. 하지만, 자신을 이용한 자를 가족이라 믿고, 기만한 자를 지아비라 여기며, 부정한 자를 살려 달라고 매달리는 화사의 바람은 단칼에 끊어냅니다. 야무는 화사를 위해 살았지만, 화사에게 늘 약탈꾼일 뿐이었어요.
야무는 노련한 무장이고, 카리스마 있는 리더지만, 표현력은 꽝입니다. 숨기거나 거짓말을 하진 않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을 달래지 못하고, 능구렁이같이 넘어가는 면이 없어요. 목표를 포획하는 방법에는 전략가지만, 목표를 물고 나서는 맛있게 요리하는 법을 몰라, 날 것 그대로를 물어뜯는 모양새랄까요. 야무는 화사에게 휘둘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애당초 야무에게 화사를 곁에 둘 수만 있다면 '잘 두는 방법' 따위는 상관없어 보여요.
'화사, 황제의 꽃'에서는 '연동'의 삶에 대해 다소 신랄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화사는 여리고 어리석으면서도, 닳고 거친 초연함을 보이기도 합니다.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연정 따윈 초탈한 것처럼, 값을 주고 정사를 팔면서도, 정에 굶주린 것처럼... 참 양가적이죠. 게다가, 화사의 지병은 아름다움을 위해 명줄을 줄여야 했던, 연동들의 직업병이었어요. 야무는 화사를 궁에 데리고 오자마자 지병을 치료하는 탕약부터 먹입니다. 탕약을 먹지 않겠다는 협박에, 딴 여자와 합방을 하면서까지요.
야무는 아진건을 '직접' 죽이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진건이 직미에게 가서 죽겠다며 말에 실려간 일을 설명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야무는 화사의 고향이었던 사평관, 가족이었던 무신상단을 도륙하면서도, 사마걸과의 거래나 화사의 지병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욕정 하느냐 괴롭게 묻던, 연동의 기억을 헤집기 싫었을 테니까요. 아진건의 기만도, 화사의 출신도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부정한 친모에 대해 알릴 수 없었으니까요. 참 요령 없는 남자예요.
화사와 같은 사평관 무신상단 출신인 유리는 익제의 첩이 었지만, 야무의 부탁으로 화사의 수발을 듭니다. 그러다 승상 익제가 노환으로 물러나자, 그를 간호하기 위해 궁을 떠납니다. 익제가 죽은 후 빈소를 찾은 화사 앞에서, 유리는 애절하게 후회합니다. 야무와 익제는 후평국을 통일했고, 그로 인해 화사와 유리는 고향을 잃었어요. 야무와 익제는 화사와 유리에게 죄인이었고, 화사와 유리는 연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한 미움을 완전히 놓지 못합니다. 하지만, 잃고 나서야 진정 내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죠. 유리는 익제가 죽고 난 다음날 목을 메 자살합니다.
화사는 자신이 잃었던 것들을 내려놓지 못했기에,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야무를 생각합니다. 야무로 인해 품고 있는 슬픔과, 야무를 잃는다면 품게 될 고통은 비교가 되지 않았죠. 화사는 유리의 선택을 공감합니다.
화사가 야무에게 정착하며, 실 없어진 황제의 기행담은 드디어 해피엔딩이구나!!! 안도케하지만, 이어 지병이 심해진 화사가 살고 싶다고 절규하며, 야무와 함께 천년목을 찾는 장면은 여운을 남깁니다. 두 사람이 이루어졌으니 해피엔딩이라고 봐야겠지만, 그래도 잠든 화사의 숨소리에 기뻐하는 야무의 모습은 많이 슬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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